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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바티칸 박물관

푸른 바다. 2010. 5. 20. 11:29

 

바티칸 박물관

 

 

피사에서 로마로 입성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유럽 관광 칠일째인 오늘

드디어 로마 관광하는 날이다.

어젯밤 늦게 로마로 들어오면서 시저의 저 유명한 말

 나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자서 그런지,

 옛날에 본 영화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클레오파트라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시저의 아들을 데리고 로마로 입성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과 비슷한 꿈까지  꾸었다.

 

로마는 대형 버스가 들어 가지 못하여 걸어다니던지,

 소형 벤츠를 이용하여 관광하게 되어있다.

 

바티칸 시국의 성벽

 

바티칸은 전세계 카톨릭교회와 교인들의

정신적 상징이자 중심인 교황청을 두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다.

1861년 에마누엘레2세가 이탈리아를 통일한 뒤 교황청 직속의 교황령을 상실하게 되고,

교황청은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이탈리아와 갈등이 심화되었다.

 그러던 1929년 비오 11세 교황청과 그당시 총리인 무솔리니가 라테란 협정을 맺어

카톨릭을 이탈리아 국교로 삼고  교황청 주변지역에 대한 주권을 인정받게 된다. 

이로서 세계 최소 독립국이 된 바티칸시국은 하나의 국가이지만 국방은 이탈리아에 위임되어 있고 

인구 950명, 면적 0.44제곱km이며  산 피에트로 대성당(성 베드로 대성당)과 그 주변,

로마에 있는 성당과 궁전을 포함한 13개 건물,

카스텔 칸돌포의 교황 여름궁전이 영토의 전부이다.

교황의 신변보호는 1506년부터 전통에 따라 100여명의 스위스 근위병이

미켈란젤로가 디자인 한 복장을 입고 지키고 있다.

 

성 베드로 광장을 제외하곤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다.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의 산 피에트르 대성당에 인접한 교황궁 내에 있는 미술관이다.

창설은 율리우스 2세때인 1506년 벨베데레의 정원에 라오콘이 전시된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클레멘스 14세 치하인 1773년이다.

 24개 미술관,기념관에 역대 교황들이 헌납과 수집과 구매로 모은 45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현재 본관은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도서관·성유물관·회화관 등 많은 부분으로 나뉘고,

또 각방은 보르지아방,라파엘로방,지도방이라는 특유의 명칭으로 불린다.

 

  왼쪽 미켈란젤로와 오른쪽 라파엘로

 

미켈란젤로는 망치, 라파엘로는 파레트를 들고 있는데, 각각 조각과 그림을 표시하고 있다.

가운데는 이 문을 만든 교황의 문장이다.

 

  공항처럼 엑스레이 검사대를 통과해야 입장이 되며,

카메라와 핸드폰은 넣어야 되고  옷은 안 벗어도 된다.

8개 국어로 제공되는 오디오 가이드에 한국어도 있다.

 

피냐 (솔방울) 정원 

 

이 정원 북쪽 건물 앞에는 높이 4m의 청동 솔방울(피냐)상이 서 있다.

고대 로마의 분수대에 있던 것을 옮겨다 놓았는데 바티칸의 늘 푸른 정기를 의미 하며,

교황청을 상징하는 공작새가 양쪽에 서 있다.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인 장방형의 피냐 정원

 

 솔방울 상때문에 이름 붙여진 피냐 정원은 원래 벨베데레 정원과 붙어 있었는데

바티칸 도서관으로 인해 나누어진 곳이라고 한다.

 

 

이 솔방울 상은 원래 성 베드로 성당의 앞 마당에 있던 것인데 

현 베드로 성당이 새로 지어지면서 둘 자리가 없어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솔방울의 받침은 아그리파 목욕탕에서 가져온 것,

그 것을 받치고 있는 돌은 네로 황제가 만든 목욕탕에서 가져온 것,

양쪽의 봉황 두마리는 아비다누스 황제의 묘지에서 가져온 것,

 양쪽 사자는 어디 신전에서 가져온 것등 여기저기서 가져온 것들을 접합 한 것으로

가운데 아래쪽에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내용이 묘사 되어 있다 한다.

 

청동이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분수를 정원에

사용한것은 피냐 정원이 처음으로 시도 했다.

 

이집트 최후의 파라오 네크타네보스의 사자

 

이시스와 세파리스 신전에 있던 것을 이곳에 옮겨 놓았다.

기단부의 상형 문자는 마아트의호루스 상 하 이집트의 왕 케퍼 카 라

또한 강한 지배자의 아들이라고 쓰여 있다.

 

 

이탈리아 조각가 아르날도 포모도로의 작품 구 안의 구다.

안에 있는 작은 구는 지구를, 바깥에 있는 구는 기독교를 상징한다.

 

 오염되어 멸망하는 황폐화 된 지구를 형상화한 조각품

 

바티칸 박물관 중 가장 최근의 작품으로

 1990년 월드컵을 기념해서 만든 것으로 구가 빙글 빙글 돈다.

 

저 지구 안 쪽에 또하나의 지구가 있는데,

안의 지구는 신세계가 탄생하는 모습을 묘사한거라고 한다.

 

정원의 남쪽 부분은 담과 신전 모양 건물로 막혀 있다.

 

 

신전 안의 조각상들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천장화들을 설명하기 위해 설치 된 해설판들

 

교황궁 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경당)은 교황이 예배를 올리는 곳이자 교황을 선출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박물관 입구에 "시스티나 성당은 성스러운 장소이므로 경건한 자세와 드레스코드를 지켜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반바지, 민소매나 짧은 치마처럼 노출이 심한 옷차림과 슬리퍼차림으로는 입장이 안된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처럼 가장 권위있는 최고 성당을 바실리카라고 하고,

그 다음이 밀라노 두오모처럼 주교가 집전하는 카테드랄,

마지막으로 작은 성당 또는 예배당을 카펠라라고 한다.

시스티나 성당은 카펠라이면서도 바실리카 못지 않은 권위와 의미를 지닌다.

14세기에 교황 식스토 4세가 성모 마리아에게 바친 교황궁 내 예배당이라는 것 말고도

교황을 선출하는 성스러운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그림들은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데

정숙해야 하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가이드들이 소리내 작품을 해설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박물관에 들어가기 앞서 이곳에서

미리 설명을 듣고 가라는 배려로 그림 해설판이 있다.

또한 성당에서는 사진도 찍을 수 없다.

그래서 미켈란젤로의 그 유명한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사진을 찍지 못했다.

간혹 찍는 사람이 있었지만,

나는 감히 저 위대한 그림들을 내 촬영으로 미세하나마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찍지 못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서른한살 미켈란젤로가 4년을 그려 1512년 완성한 천장화 천지창조다.

조각가일뿐 벽화엔 아무 경험도 없던 그가 교황 율리우스2세의 

강요에 가까운 채근에 못이겨,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그 큰 화폭을 보고 결심하였다고 한다.

 최후의 심판을 그리기 앞서 그렸던 그림이다.

 

오른쪽 맨 위에 아담의 창조가 보인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가운데,맨 밑의 왼쪽 예수님의 모습이 마치 벨베데레의 아폴로 모습 같다고
비판 받아 없어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한다.

또한  그림의 하체에 가려져 있는 천은
그 당시 교황청의 부탁으로 미켈란젤로의 제자가 그렸다고 하는데
그 제자는 이 그림을 덧칠한 댓가로 그후에 화가 생활을 청산 했다고 한다.

 

 오른쪽 맨밑은 지옥문을 지키는 사자의 그림인데
이 인물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그림의 검열을 맡은 추기경의 모습인데, 

이것을 보고 분노한 추기경이 미켈란젤로에게  너의 모습도 그려 넣으라고 해서
 자신의 모습도 최후의 심판에 그려 넣었는데,
 
그 모습은 왼쪽 맨 밑의 두번째 그림이다.

 터키 알박에서 산채로 껍질을 벗기는 참형을 당하고 참수 당한 12사도중 한 분인

성 바르톨로뮤가 자신의 벗겨진 껍질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인데,

 이 그림에서 벗겨진 피부의 얼굴상으로 미켈란젤로는 일그러진 자신을 표현했다.

 

 

 

 

기둥들

 

로마의 첫번째 황제 아우구스투스상

 

 

박물관으로 들어 가는 문

 

계단

 

흉상들이 즐비한 키아라몬티 관

 

키아라몬티가 출신 교황 피우스 7세의 속명을 따 19세기에 조성한 전시실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대 조각품과 고전주의시대 인물상들 

값진 유물들이 이렇게.....

 

 

 

좋은 전망이라는 뜻을 지닌 벨베데레 팔각 정원

 

전망용으로 지은 건축 양식을 가리키는 말로, 

가장 대표적인 벨베데레가 바로 바티칸 궁전이다.

 벨베데레는 바티칸궁의 별명이기도 하다.

 

 

15세기 말 브라만테가 교황 인노센트 8세를 위해 지은 별장의 중심부로

교황 식스투스 4세가 조각 공원으로 다시 조성한 곳이다.

8각형 정원의 주위에 전시된 조각상들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귀중한 조각품들이다.

 

 

사방으로 팔각 회랑이 둘러싼 자그마한 팔각 정원인 벨베데레 정원에는,

벨베데레의 세 조각상으로 불리는

라오콘상,아폴로상,페르세우스상을 비롯한 고대 걸작 조각상들이 서 있다.

 

벨베데레 정원에 서 있는  걸작 아폴로상

 

화살을 쏜 뒤 잘 맞았는지 확인하는 모습이다.

왼손에 든 활과 오른손에 든 화살(또는 월계수 가지)이 없어진 채로 서 있으며,  

8등신 황금 비율이 완벽하게 구현된 조각상으로 유명하다.

네로황제의 별장에서 발견된 고대 걸작으로, 바티칸궁의 별명을 붙여 '벨베데레의 아폴로'로 불린다

 

벨베데레의 아폴로

 

태양의 신인 아폴로를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였다.

인체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걸작 중의 하나인 이 조각상은

1503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산 피에트로 (베드로성당) 성당 근처에 있던 그의 궁에서 여기로 옮겨온 것이다. 

 

포토스  

아프로디테의 친구로 욕망과 동경의 의인화로 생각 되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의 기원을 상징하는 물의 신,

 또는 이탈리아 서부 아르노강의 신이라고도 한다.

 

로마의 카라칼라 욕장에서 발견된 작품으로 발견 되었을 때는 머리와 오른쪽 팔, 왼쪽 손등

여러 부분이 없었으나 미켈란젤로의 감독하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되었다고 한다.

바오로 3세가 8각형 정원에 옮겨 놓았다.

 

펠리체의 비너스라 불리우는 베네레 펠리체 

 

 기원전 4세기 경에 프락시 텔레스가 만든 비너스상을 모방하여 만든 작품이다.

이 비너스상은 라오쿤, 아폴로 조각상과 함께 1509년에 이미 벨베데레 정원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조각의 얼굴은 2세기경의 황후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부인인 파우스티나이거나

 혹은 코모두스의 부인, 혹은 파우스티나의 며느리인 크리스피나의 모습으로 추정 된다. 

 

아폭시오메노스 (몸의 흙을 닦는 청년)     리시포스작

 

1849년 트라스 테베레에서 발견되었다.

이 조각상은 기원전 320년경 리시푸스가 청동으로 만든 것을 1세기 무렵 로마에서 모방 한 대리석 작품으로

신체에 향유를 바르고 경기를 한 다음 여기에 붙은 흙먼지를 스틀렝기스로 긁어내는 선수를 표현한 것이다.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카노바 페르세우스

 

페르세우스는 헤라클레스, 아킬레스와  함께 신화속 3대 반 신 영웅이다.

 미케네를 건설하고 미케네의 페르세이드 왕조의 시조라고 전해진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영웅이었으며,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반신화적인 실존 인물로서 이집트의 켐미스 출신이라고 한다.

그는 다양한 괴물을 처치하는데, 메두사를 살해하고,

바다 괴물이자 바다의 여신인 케토스를 죽이고 아이티오피아의 공주 안드로메다를 구하였다.

메두사의 머리털은 뱀이고 누구나 얼굴을 보면 돌로 변했다.

 

 

 

나폴레옹이 1797년 약탈하여 파리로 가져간 아폴로를 대신하기 위해 피우스 7세가 1802년 구입한 것으로,

제우스의 아들이며 영웅인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물리친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한 손에는 헤르메스가 준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메두사의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조각상은  권투선수 다모크세노스

 

상대 선수인 크레우가스의 위를 찔러 죽이자 심판은 다모크세노스를

실격패 처리하고 죽은 크레우가스의 승리로 선언한다.

 

왼쪽 조각상은 권투 선수 크레우가스

 

상대 선수인 다모크세노스의 반칙으로 경기 도중 위를 찔려 사망하게 되는 크레우가스

 

 

헤르메스 인제누이

 

 

 

석관들

 

맨 아래 석관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 항복하는 야만인의 모습을 조각 한것으로

율리우스2세 교황은 이 조각상의 황제의 모습이 자신의 외모와 닮은 트라야누스황제인줄 알고

이 작품을 무척이나 좋아 했다고 한다.

 

그리스와 아마존의 격렬한 전투를 묘사한 대리석 석관

 

석관

 

 

카살리 제대 

 

 

 

 

1506년 로마의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부근에서

한 농부가 포도밭을 파다가 우연히 공중 목욕탕 유적을 발견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라오콘 조각상이 나왔다.

교황 율리우스2세는 성베드로 대성당 공사를 맡고 있던 미켈란젤로를 보내 조사를 시키는데,

미켈란젤로는 원래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인들이 만든 청동 라오콘상을 로마 시대에 복제한 대리석 걸작이라는 걸 알아보고

교황에게 곧 바로 사들이라고 권한다. 한 달 뒤인 2월 14일 교황청은 라오콘상을 시민들에게 관람시켰다.

1506년 이 날을 바티칸 박물관의 효시이자 공식 개관일로 삼고 있다.

박물관이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18세기 클레멘스14세 때다.

 

라오콘 군상   신의 영역에 굴복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

 

일리아드의 한 장면으로 아폴로를 섬기는 트로이의 사제인 라오콘의 최후를 표현한 헬레니즘 조각

그리스 오디세우스의 목마가 계략임을 예견한 트로이 제사장 라오콘과 두 아들

 

작품의 내용은 트로이 전쟁에서 목마의 비밀을 알고 있는

트로이 제사장 라오콘이 목마를 받아 들이지 말라고 호소하자
신들은 트로이 전쟁에서 이미 그리스가 이기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신들의 결정을 뒤엎는 결과가 내려질 것을 두려워하여

포세이돈 (혹은 아테나)으로 하여금 바다 뱀을 보내어 죽이는 내용이다.


 

포세이돈이 보낸 두마리 뱀과 사투하는 부자의 모습으로 두려움, 공포, 아픔등 인간의 고뇌를 표현

왼쪽의 아들은 이미 죽었고

자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두 아들을 안타까워하는 표정과

팔의 근육, 뱀에게 옆구리를 물리며 뒤틀린 허리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보고 베드로를 조각했는데,
라오콘은 마치 살아서 움직일듯 했는데

자기 작품은 그렇지 않아 자기 작품을  부셔버렸다고 한다.

또한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보고 예술의 기적이라고 표현하였으며

이작품의 다리근육, 핏줄이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아
미켈란젤로의 후기 작품은 여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처음엔 오른팔이 없이 발견돼 당시 조각가들이 뱀을 치켜들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붙였는데,

그걸 본 미켈란젤로가 오른팔이 구부리고 있는 모양이 균형이 맞다고 했다는데,

나중에 발굴된 팔의 모양이 미켈란젤로가 말했던 대로

등에서 붙은 뱀을 떼어 내려는 모습이었다 한다.

 

 발굴 당시 없었던 오른팔은 1905년 로마의 한 석공의 작업장에서 발견 되었다.

처음에는 라오콘 조각의 잃어버린 팔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1960년경에 이르러서야 복원이 이루어졌다.

 한덩어리의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한다.

 

 

 

벨베데레 정원에서 피오클레멘티노 전시관으로 이동

피오클레멘티노 전시관은 교황 클레멘트 14세와 피오 6세가 만든 전시관으로

그리스 시대부터 로마를 거쳐 1800년대까지의 다양한 조각들을 동물의 방,

뮤즈의 방, 원형의 방, 그리스 십자가의 방에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동물의 방 

 

 1700년대 말에서 1800년대 초에 수집 정리 된 곳으로

동물 조각들은 헬레니즘 시대의 원본이다.

 

 

반인반수 켄타우로스가 라파타이족 왕 페이리토스의 결혼식에 초대 받았다가

술에 취해 신부 히포다메이아를 훔치려 하고 있고 그 뒤를 두명의 에로스가 따르고 있다.

 

 

미트라가 황소를 죽이는 장면인 토럭트니

 

미트라는 천상의 빛의 신이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며 누구도 미트라를 속이지 못한다.

 

 뮤즈의 방

 

뮤즈의 방은 예술과 학술을 관장하는 9명의 여신의 방이다.

뮤즈와 시인들의 조각들이 있으며 모든 작품들은 그리스 원작을 로마인들이 복사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학예, 음악, 무용, 시가 등을 관장하는 신들인 뮤즈와

소포클레스, 소크라테스, 호메로스 등 고대 그리스의 유명 문호들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아폴로 키타로에두스  키타라(하프의 전신)를 연주하는 아폴로

 

긴 옷을 입고 월계수관을 쓰고 있는 아폴로 무사게테스는 

1774년 티볼리의 카시우스 빌라 유적지에서 7개의 뮤즈상과 같이 발견되었다.

 

  칼리오페 

 

 뮤즈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이고, 높은 지혜와 지도력을 가지고 있으며

서사시 혹은 서정시를 관장한다.

손에 서판을 들고 있거나 머리에 금관을 쓰고 종이나 책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 된다.

 호메로스에게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영감을 준 대표적인 뮤즈로 알려져 있다.

 

테르프시코레 

 

춤과 서정시를 주관한다. 무용이란 단어가 테르프시코레의 이름에서 유래 되었다.

상반신은 여자이고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한 바다 괴물 세이렌은

테르프시코레와 강의 신 아켈로오스 사이에서 태어 났다.

 

 

 

주신 제우스와 여신 므네모시네(기억) 사이에서 9명의 뮤즈가 태어났다.

뮤즈들은 올림포스에서 아폴론을 도와 음악을 연주했다.

      

우라니아

 

아홉 뮤즈중 천문을 관장하며 지구의와 나침반이 상징이다.

암피마로스와의 사이에서 리듬과 멜로디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리노스를 낳았다.

 

  탈리아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여신들 카리테스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

희극과 전원시의 뮤즈로 아홉 뮤즈 중에서 여덟 번째로 태어났으며, 

여러 작품에서 탈리아는 담쟁이덩굴 화관을 쓰고

희극적인 표정의 가면과 양치기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클리오

 

역사를 주관하는 뮤즈로 트럼펫과 물시계를 지닌 모습으로 묘사 된다.

 

멜포메네

 

비극을 주관하는 뮤즈로

헤라클레스의 칼과 가면을 들고 있다.

기원전 2세기경 헬레니즘 양식의 조각을 하드리안 황제때 모사한 모사본이다.

 

폴리힘니아

 

찬가와 웅변을 담당하며 나중에는 서정시, 학예의 여신으로 불렸다.

또한 기하학과 무언극,명상과 농업의 신이기도 하다.

불멸의 명성을 얻고자 하는 작가들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에우테르페

 

음악 또는 서정시를 주관하며 피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 된다.

 

 

코린트인의 헬멧을 쓴 페리클레스와 여신상

 

고대 그리스의 명정치가 기원전 450년경 아테네의 실권을 쥐자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전쟁에서 폐허가 된 아크로 폴리스의 부흥 계획을 세워 파르테논등을 건립하여

아테네 미술의 황금 시대를 열었다.

 

소포클레스의 두상

 

아테네의 시인이며 비극작가

 

                                            고대 코린트의 참주 페리안드로스,         호머,                바이아스

 

피오클렌멘티노 미술관 두번째방 뮤즈의 방에는 그리이스의 유명한 철학자의 조각상이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토르소

 

15세기 미켈란젤로가 카라칼라 황제의 목욕장 폐허에서 발견한 것으로

미켈란젤로를 비롯하여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다.

그리스 아테네 출신 아폴로니어스가 만들었다는 서명이 아래 기단에 새겨져 있다.

기원전 1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처음엔 헤라클레스상일 거라고 짐작했다가

이제는 트로이전쟁의 그리스 영웅

자살을 곰곰히 생각하는 아이아스 탈레모니우스라는 설이 유력하다.

 

 

토르소는 이탈리아어로 몸통으로 조각에서는 머리와 사지가 없는 흉상을 말한다.

   벨베데레의 토르소는 인체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모습을 하고 있어 

          토르소를 본 미켈란젤로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교황 율리우스 2세가 토루소의 잘려나간 사지를 복원해 달라고 부탁 했을 때, 

                       지금의 모습만으로도 완벽해서 더 이상 손 댈 수가 없다며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 그릴 때 그리스도 몸의 모델이 되었다고 하며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기본 모델이 되기도 했다.

 

신화 속 신들과 로마 황제들을 모아놓은 원형의 방

 

 

원형의 방은 로마시내의 판테온(만신전)을 축소시킨 방으로, 

 방 구조는 큰 원형을 그리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네마리 사자가 받치고 있는

직경 5미터의 자주색(황제만 쓰는 로열 컬러) 욕조가 있는데,

이것은 네로 황제의 황금의 궁전에서 옮겨온 것이다.

 

그리고 아래에 모자이크 바닥이 있는데 이 작품은 3세기 때

오크리콜리 공중 목욕탕에 있던 작품으로 미켈란젤로 시모네티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움부리아 지방의 오트리 콜리 온천에서 옮겨온 것이다.


판테온을  축소시킨 방 답게 제우스를 비롯한 헤라클라스, 불칸등 여러 신상들이

벽감속에 전시되어 있다.

이 방의 좌우에는 안토니우스,하드리아누스 황제,주피터,헤라,아테네의 상들이 있다.

 

 

사진 왼쪽이 헤라클레스이고

 오른쪽은 로마의 대지의 여신이자 곡물의 여신 케레스다.

 

폼페이 극장의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상은 2세기에 도금해 만든 청동상으로

1864년 발견된 장소를 붙여 폼페이 극장의 헤라클레스라고 부른다.

중세 때 일부 교황들은 성기를 드러낸 조각상들이 외설적이라며

석고로 만든 무화과 잎을 덮어 가리게 했는데  

이 헤라클레스상은 청동으로 잎을 만들어 붙였다.

 

갈바 황제

 

주피터로 분장한 황제 클라디우스상

 

칼리쿨라 황제가 살해 된 뒤 근위병의 옹립으로 황제가 되었으며,

왕비 아그리피나에게 독살 된것으로 추정된다.

로마 제국 황제의 상징인 독수리가 올려다 보고 있다.

 

 바르베르니의 헤라 여신

 

가정과 정절의 수호 여신으로

제우스의 아내이며 올림프스 여신중의 여신이다.

왕권을 상징하는 지팡이 셉터를 들고

오른손엔 술 담는 접시 파테라를 들고 있다.

제우스의 바람기에 노해 그의 연인이나 아들을 박해하는 질투 많은 여신으로 묘사 된다.

 

 

 죽음의 여신   케레스

고대 아테네인들은 케레스가 죽음과 질병을 불러 온다고 믿었다.

 

칼리돈의 왕자 멜레아그로스

 

멧돼지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다.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 아테나 여신

 

지혜,전쟁, 직물,요리,도기, 문명의 여신이다.

로마 신화에서는 미네르바라 하며 완전 무장한 상태로 제우스의 머리에서 탄생하였으며,

포세이돈과 아티카 영토 분쟁에서 승리하여 아테네의 수호신이 되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 그녀의 신전이며

같은 전쟁의 신인 아레스와 달리 총명하고, 이성적이고, 순결하여

사람들에게 은혜를 많이 베풀며 영웅들을 수호한다.


하드리아누스가 사랑했던 안티누스 브라스키상

 

18세기에 하드리아누스의 별장에서 발견된 것으로,

이 조각상을 사촌인 교황 비오 6세로부터 선물받아 소장했던 브라스키공작의 이름이 뒤에 붙어있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사랑 했던 안티누스는

스스로 제물로 강에 떨어져 숨졌는데  황제가 통곡을 했다고 한다.

 

수호신 제니우스로 분한 토가를 입은 아우구스투스상   1세기

 

신중의 신 제우스

 

올림푸스 신들 위에 군림하고 그 권위는 다른 신들 모두 다 합한것보다 위대하다.

하늘 세계와 인간 세계를 지배하며 천둥과 번개를 마음대로 구사한다.

 

트라잔 황제의 부인 마르시아나의 동생인 플로티나

 

하드리아누스 황제

 

젊은 안티누스 흉상

 

 

티투스 황제의 딸 율리아 티티

 

머리 스타일은 플라비우스 가문 황제들의 여인들,

특히 티투스 황제의 부인과 딸이 즐겨한 스타일로 유명하다.

 

로마제국의 18번째 황제  푸블리우스 헬비우스 페르티낙스

 

세라피스 흉상

 

암흑계의 신 , 의술의 신으로 알렉산더 대왕 사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그리스인과 이집트인의

신앙통일을 목적으로 창조된 국가 신이다.

그리스풍 용모를 갖춘 인물상으로 묘사 되어 있다.

 

포도주와 술의 신 디오니소스 (바커스)의 동료이자 후견인인 실레누스상

 

19세기 교황 피우스 9세는  신성한 바티칸궁 안에서 성욕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곳을 내 놓고 있는 조각상들은

모두 그곳을 자르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다.

 

 

그리스 십자가의 방

 

거대한 대리석 트로피가 천정에 놓여 있다.

두 개의  붉은 화강암으로 된  석관이 있는 방으로,

하나는 전쟁 부조가 있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의 석관이고

또 하나는 포도 부조가 있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딸 콘스탄티나의 관이라 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딸 콘스탄티나의 관이라 한다.

 

그리스 십자가의 방 입구에 서 있는 젊은 안토니우스 상

 

 

 

그리스 십자가의 방에서 나와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놓여진

이집트의 스핑크스

 

1839년 교황 그레고리 4세에 의해 설립된

그레고리안 이집트 박물관엔 아홉개의 방이 있다.

 

촛대의 방

중간 중간에 아치형의 문이 있는데  이 문옆에 촛대 모양의 조각들이 있어서 촛대의 방이라고 부른다.

 

  풍요와 다산의 여신 아르테미스

 

풍요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다산을 상징하는 14개의 가슴을 달고 있다.

 여신상은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다, 나중에 돌로 만들어져 복제되었다고 한다.

가슴 아래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이 제사 의식때 마다 메달은 소의 음낭이라 한다. 

본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의 아르테미스는

달과 수렵의 여신이며 처녀의 여신인데 고대 소아시아 에페소에서는 풍요와 다산의 여신으로 여겼다.

 

 

 

 

 

오른쪽  가니메데스와 독수리

 

 

 

 

 

티투스 황제의 딸 율리아 티티

 

 

 아라치(타피스트리)의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19세기 교황 레오 13세 흉상이 문 위에 봉안되어 있다.

 

대리석 상감의 바닥장식

 

데스타치아에 있는 마르모나타의 엠포리움 발굴 동안 발견된

고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입체 부조처럼 보이지만 착시 현상을 이용한 평면 그림

 

천정화는 조각이 아니라 그림이라 한다.

꼭 조각을 붙여 놓은것 같은데 그림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왼쪽 타피스트리  그리스도의 승천

 

 

16세기 교황 클레멘스7세 때 라파엘로 제자들이 그린 카툰을 밑그림으로 삼아 

피에트르 반 엘스트 공방이 직물용 그림으로 그리고

벨기에에서 직물로 짠 플랑드르식 타피스트리들이다.

 이 회랑의 이름인 아라치는 타피스트리 원단의 이름.

 

그리스도의 탄생 

 

지도의 방

천장화가 특히 화려한 지도의 회랑이다.

16세기 교황 그레고리오 13세 때 옛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지도와 교회 재산을 나타내는 지도 40장을 모아 놓았다.

종이나 직물이 아니라 벽에 프레스코 방식으로 그린 벽화이다.

회반죽 칠을 한 벽이 마르기 전 축축하고 신선 할 때 물감을 발라 그리는 방식이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와 벽화가 바로 프레스코화다.

 

 

지도 회랑의 위치는 벨베데레의 안뜰 서쪽이며, 전시실의 길이는 120m이다.

 아치 천장의 장식들은 체사레 네비아,지롤라모 무치아노와 같은 매너리스트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대동여지도보다 100년 앞선 16세기 말 무치아노와 그의 제자들이 이탈리아 전역을 3-4년에 걸쳐

프레스코화로 그린것으로 이탈리아 곳곳에 있는 총 40개의 교황이 지배하는 성당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그린것이다.

 

천정의 그림은 아래 지도에 있는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성인들의 이야기를 그린것으로,

조각이나 장식품을 붙여 놓은것 처럼 보이지만 모두 그림이라 한다.

너무나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무원죄 수태의 방

 

무원죄 수태란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한 순간부터,

아담의 죄(원죄)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로마 가톨릭의 교리를 말한다.

무원죄 잉태설, 무염시태(예수와 더불어 성모 마리아도 원죄를 지지 않고 태어남) 라고도 한다.

 

이 방은 바티칸에서 공식적으로 무원죄 수태를 발표하고

 이에 답하는 세계 각국 가톨릭 사절단의 기념품들과 책들을 보관하고 있는 방이다.

 

 

 

 

라파엘로의 방에는

콘스탄티누스의방, 서명의 방, 보르고의 방, 엘리오두루스의

방(교황의 알현실), 4개의 방이 있다.

 

콘스탄티누스의 방        콘스탄티누스의 세례   프란체스코 뺀니 작품

 

천정화는 1585년 라우레티 작품으로 이교도의 우상이 파괴 되고

십자가가 세워지는 기독교의 승리를 묘사하였으며

원근법이 완벽하게 구사된 작품이다.

 

왼쪽 밀비오 다리의 전투    줄리오 노마노 작품

 

라파엘로의 제자들 작품으로 라파엘로 사후 5년 뒤에 완성된 작품으로,

311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비오 다리에서 막센티우스와 전투를 앞두고

구름 속에 나타난 십자가를 보고 전쟁에서 승리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서명의 방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플라톤, 유클리드, 아리스토 텔레스등 고대 그리스의 학자가 학당에 모인 것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

 

 아테네 학당에는 당시의 많은 철학자들의 얼굴이 실제로 등장하고 있는데

붉은색 옷을 입고 흰수염이 무성한 왼손에는 '티에모'를 들고

오른손을 살짝 하늘로 치켜세운 사람이 이상주의자 플라톤으로 당시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오른쪽 바로 옆에는 파란 천을 걸치고, 왼손에는 자신의 저서 "에티카"를 들고,

오른손으로 땅을 가르키는 사람이 현실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하늘색 천을 거치고 팔로 머리를 받치고 있는 아이스키네스에게 말하는 녹색옷을 입은 이가 소크라테스("너 자신을 알라")이고,

왼쪽에 머리에 투구를 쓰고 있는 인물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테네 출생으로

정치,군사적 재능, 준수한 외모를 타고났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한 알키비아테스,

그 옆에 검은 모자를 쓴 사람도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그리스 역사가인 크세노폰이다.   

왼쪽에 앉아서 책을 쓰고있는 사람이 수학공식의 달인 피타고라스,

그 옆에서 턱을 괴고 있는 사람이 미켈란젤로가 모델이 된 헤라클레이토스이다.

흰옷의 여인은 이집트의 플라톤파 철학자인 히파티아,

그 옆은  "모든 진리의 바탕은 이성이며, 이성에 의해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파르메니데스,

오른쪽 밑 일부 사진이 잘려서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하단에 켐퍼스로 원을 그리며 주변에 설명하는 사람이 유클리트다. 

그 오른쪽으로 하얀옷에 갈색 모자를 쓰고 오른손으로 지구본을 들고 있는 사람이 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이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3인 사이에 관객들을 빤히 쳐다보는 라파엘로 자신의 얼굴을 살짝 그려놓았다.

 

고대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들 총 54명이 그려져 있다.

 

성체 논의

 

맨 위에 하나님이 그려져 있는데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그린것은 드물다 한다.

라파엘로의 성체의 논의에서 위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그의 제자들을 ,

아래는 십계명이 보관된 성궤를 중심으로 한 추종자들을 배치하고 있다.

 

보르고의 방      샤를 마뉴 대제의 대관식

 

799년 교황 반대파에 잡혀 있던 레오 3세가 프랑크 왕 샤를 마뉴의 도움으로 다시 권좌에 복귀 하게 된다.

이에 레오 3세는 800년 샤를 마뉴를 서로마제국의 황제로 임명 한다.

 

 보르고의 불

 

트로이의 영웅인 에네아스가 아버지를 업고 화재를 피하는 모습을 그린 보르고의 불

 교황 레오 4세가 성호를 긋자 이 불이 가라 앉았다는 800년대의 기적을 나타낸 그림이다.

그림 오른쪽 뒤 건물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교황의 모습을 볼 수 있다

847년 레오 4세가 테라스에서 밖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세운 보르고 지역이 화재가 난 것을 보고

신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성호를 긋자 불이 진화되는 기적이 났다.

 신축이전의 베드로 성당이 왼쪽에 보이는데 귀중한 자료라 한다.

 

 

 

 

 

 

 

 

 

 

 

 

 

 

 

  

 

솔방울 정원->키아라몬티관->벨베데레 정원->피오 클레멘티노관의 동물의 방,

뮤즈의 방, 원형의 방, 그리스 십자가의 방->

2층, 태피스트리 갤러리->지도의 방->라파엘로 방을 거쳐, 

시스티나 예배당을 보고

통로를 따라서 쭉 나오면 베드로 성당과 연결되어 있다.

 패키지 상품으로 온 관계로, 더 많은 곳을 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려니

한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