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
헌법광장, 아돌프 다리, 노틀담 사원,
기욤2세 광장, 대공 궁전(그랜드 두칼), 성 미셀성당
샤를마뉴대제의 도시인 독일의 아헨과 쾰른을 거쳐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럽의 요새라고도 불리는 룩셈부르크의 옛 시가지를 보기 위해
작아도 강한 나라인 룩셈부르크에 왔다.
유채꽃밭
유럽은 어디 가나 친 환경 오일을 짜내는 유채꽃밭이 많이 보인다.
유채꽃 씨는 기름이 많고
발화 성분이 있는 지방산이 풍부해 바이오 디젤의 원료로 적합하다고 한다.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해외에서는 많이 이용되고 있는데
오스트리아, 독일같은 경우에는
지금 상용화되어 매연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에 많이 사용되고 있단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용화단계에 들어가고 있다는데 언제가 될런지...
넓은 유채꽃밭은
북유럽, 서유럽 , 중부유럽, 동유럽 여행 중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유럽에서 또 하나 많이 볼 수 있는건
바람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해 내는 풍력 발전기다.
독일 쾰른에서
룩셈부르크의 수도 룩셈부르크로 가는 중이다.
나폴레옹이 유럽의 골동품이라고 부른
룩셈부르크
이제 룩셈부르크의 수도
크라잉 넛이 부른 룩 룩 룩 룩셈부르크에 다 왔다.
110년이나 된 그 유명한 아돌프 다리
룩셈부르크는 계곡을 따라 성벽을 쌓아 형성된 도시다.
그리고 도시 전체는 거대한 요새로 이루어졌다.
도시 전체가 요새로 이루어진 이유는
약 4백여 년간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의 주도권 싸움으로 이어져 온
유럽의 역사에서 항상 전략적인 요충지였던 탓이다.
저기 룩셈부르크의 상징이라는 노틀담 성당의 3개의 첨탑이 보인다.
이 첨탑은 룩셈부르크 시내 어디에서도 보인다고 하는데...
룩셈부르크는
자연을 이용하여 건설한 요새 도시로
서쪽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연적으로 형성된 호로 둘러싸여 있으며,
도시 전체가 5개의 커다란 교량과 62개의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독특한 시가지로 유명하다.
룩셈부르크는
영국의 직할식민지로서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천연요새 지브롤터와 비슷하다고 하여
북쪽의 지브롤터라고도 한다.
도시 전체가 요새로 이루어진 천년 요새의 도시 룩셈부르크.
계곡이 구시가를 감싸고 도는 지형으로
천연적인 요새 위에 도시가 자리잡고 있다.
룩셈부르크의 지붕들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봐 오던 자주색깔이 아닌 회색 톤이라
왠지 차분해지는 느낌이 든다.
차창 밖으로 보는 룩셈부르크 풍경들이다.
지붕 색깔을 도시 전체, 아니 나라 전체를 통일되게
칠한다는건 국민과 정부가 하나된 유물 보존 마음일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 헌법광장으로 가고 있다.
유럽투자은행과 은행박물관이 입주해 있다는
1909년에 건설된 Spuerkeess
차창 밖으로 본 헌법광장
룩셈부르크 중앙역에서 북쪽으로 구시가까지 연결해 주는
루즈벨트대로 건너편에 위치한 광장으로
페트뤼스 계곡과 아돌프 다리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장소로 여기서 내렸다.
아돌프 다리에서 찍는 경치가 최고라는데 시간상 못 가고 여기서 찍고
투어를 시작했다.
월계수를 들고 서 있는 황금여신상이 있는 헌법광장의 전몰자 위령탑
광장 중앙에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룩셈부르크를 위해 죽은 이들을 기리는 전몰자 위령탑이 서 있고,
그 탑 위에 월계관을 든 황금의 여신상이 서 있다.
Golden Lady
황금의여신상이
1차세계 대전 때 룩셈부르크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전물자들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려는 듯 월계수관을 높이 들고 있다.
Golden Lady
Gelle Fra 전몰기념비
기념비의 영어 명칭은 Monument of Remembrance.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했던
수천명의 룩셈부르크인들에게 헌정되었다.
Gelle Fra 전몰기념비
아래 쪽에 4개 국어로 설명되어 있다.
1958년 부분적으로 재건되었다가 1985년에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글씨 맨아래
1951- 1954 COREE라고 써 있는데
이는 한국전에 참전했었다는 표시라고 한다.
룩셈부르크는 한국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1개 소대의 병력이 참전했다고 검색에 나온다.
헌법 광장에 있는 전몰자 위령탑과 황금의 여신상.
Spuerkeess
궁전 같이 생긴 멋있는 건물은
유럽투자은행과 은행 박물관이 입주해 있는
1909년에 건설된 Spuerkeess
유럽투자은행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유럽투자은행은 1958년 설립 당시
유럽의 저개발국가를 위해 자금을 빌려주었으며,
지금은 약 150개국 이상의 나라와
거래를 하고 있는 세계적인 투자은행이다.
룩셈부르크 요새 도시는
수세기 동안 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천연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한
놀랄 만한 요새와 구시가지 같은 중요한 유적이 잘 보존되고 있다.
헌법 광장에서 바라 본 아돌프 다리
현지에서는 뉴 브릿지라고도 부르는데
룩셈부르크 남쪽에 있는
유럽투자은행 등 기업들이 모여 있는 신시가지(중앙역쪽)와
북쪽의 그랜드 두칼 궁전, 노틀담 대성당 등이 있는 구시가지를 연결해주는 다리로
리베르테 거리를 지나 페트뤼스 계곡의 아르제트강에 있는 다리다.
110년이나 된 룩셈부르크의 상징인 아돌프 다리
높이 46m, 길이 153m로 설계자는 폴 세주르이며
아돌프 대공작이 통치하던 1889~1903년에 건설하여,
그의 이름을 따서 아돌프다리라고 한다.
건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석조 아치교였으므로
세상의 관심을 끌었다.
헌법광장에서 내려다 본 둥근 아치형의 석조 다리와
그 밑 페트뤼스 계곡의 숲
세계에서 자살하기로 유명한 9곳 중에 한곳으로 뽑혔다는
아돌프 다리
룩셈부르크의 보크 요새로 통하는 길이 보인다.
헌법 광장 밑 지하에는 포대 유적이 있고
여기서부터 포대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최강인 복포대까지는
길이가 23km에 이른다고 한다.
예전에 룩셈부르크 시가지는
주로 절벽에 위치한 성벽과 2개의 강으로 둘러싸이고
절벽 여기저기에 각종 포대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지금도 성벽 위에서 경사지고 좁은 계단을 내려서면
땅 가운데로 지하도가 미로처럼 복잡하고 세밀하게 이어져 있고
곳곳의 절벽에는 고풍스러운 대포들이 놓여져 있단다.
전몰장군 기념 공원
노틀담 사원
1613~1621년에 건축된 성당으로,
기본적으로 고딕 양식으로 건축되었고 입구는 르네상스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첨탑이 높이 솟아 있으며,
건물 안에는 왕실의 거대한 석관, 보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서 전 국가원수인
장 대공과 벨기에 공주인 조세핀 샬로트의 결혼식이 거행되었으며,
매년 부활절 다섯째주 일요일에는 성대한 의식이 펼쳐진다.
맞은 편에는 헌법광장이 있다.
노틀담 성당
1613년에 시작한 예수 대학 교회의 전신으로 1621년에 축성된 성당으로
1613년에 예수회 수사이자 건축가인 장 데 브록에 의해 세워졌다.
당시 바로크 양식이 유행하고 있었지만,
브록은 네덜란드 후기 고딕 양식으로 간결하고 위엄 있는 성당을 세웠다.
이후 정문에 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되었다.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성당의 세 첨탑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다.
노틀담 성당의 파사드
르네상스 양식으로 만들어진 입구
노틀담 성당 제대
(이미지 출처: 두산백과)
노틀담 성당 출입문 위쪽에
2대의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두산백과)
룩셈부르크 국립도서관
노틀담 성당과 바로 붙어 있는 건물은
룩셈부르크 국립도서관이다.
]
노틀담 성당의 3개의 첨탑
3개의 첨탑은 룩셈부르크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꼽힌다.
버스에서 본 노틀담 성당의 뒷 모습
내부에는 왕가의 천정과 거대한 석관,
보물(이곳을 보려면 오른쪽의 사무소에 신청을 해야 한다.) 들이 있다.
지하실에는 보헤미아왕과 역대 주교들의 영묘와 교회사와 관련된 자료가 보관되어 있고
매년 부활절 다섯째주 일요일에는 볼 만한 의식이 펼쳐진다.
현재 국가적 행사나
대공가의 결혼이나 중요 인사의 결혼, 장례식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풍향계
노틀담 성당 옆에 부르고뉴 저택으로 알려진 정부 청사가 있다.
1676년까지는 전통적으로 공작 저택에
컵을 운반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부르고뉴 가문의 소유였다.
기욤2세 광장
네덜란드의 왕으로
룩셈부르크 대공이기도 했던 기욤2세의 이름을 붙인 광장으로
그는 룩셈부르크의 자치권과 정부 독립권을 준 사람이라고.
이 광장 뒤편에 룩셈부르크 시청사가 있다.
네덜란드왕 기욤2세 동상
룩셈부르크의 자치권과 정부 독립권을 준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만든 동상인데
불어로 기욤은 영어로는 윌리엄이란다.
원래 이 광장이 있던 자리는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이 있던 자리로
프랑스 혁명 중이었던 1797년 프랑스 군인들이 수도원을 해산시켰다고 한다.
그 후 1829년 시청사 건축계획이 세워져 그 해 수도원 건물은 해체되고,
1838년 수도원 해체 후 남은 재료로 시청사 건물은 완공되어
우선 시의회가 사용하였으며, 공식 준공식은 1844년에야 이뤄졌다 한다.
이때 기욤 2세 광장과 기욤 2세 기마상도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대공 궁전인 그랜드 두칼이 앞에 보인다.
대공 궁전 그랜드 두칼
앙리 대공이 집무소 겸 영빈관으로 사용되는 그랜드 두칼 궁전은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의 대리석 건물로 1572년 시청사를 궁전으로 개조한 것이다.
정면에 국기가 게양되어 있으면 대공이 집무 중이라는 표시이다.
앙리 대공 일가는 룩셈부르크 시외의 베르크성에서 주거하고 있으며
프랑스 남부지방의 카바송에 있는 별장에서 여가를 보낸다.
그랜드 두칼 궁전은
바로크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대리석 건물이다.
대공궁전(그랜드 두칼 궁전)
바로크와 르네상스 풍의 대리석 궁전으로 1418년에 지어져
최초의 룩셈부르크 시청으로 쓰이다가
1554년 폭발사고로 전소한 후 1573년 재건축하여 사용하다가
1841년부터 대공이 거주하는 궁전이 되었다.
이후 룩셈부르크의 통치자로 임명된만스펠트에 의해 스페인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되었다.
현재 대공 집안은 시외로 주거를 옮겨 살고 있다.
수 많은 첨탑으로 이루어져 있는 대공궁전 중앙의
위병소가 두 개 있는 곳이 출입구이다.
대공 궁전 문 위에 있는 룩셈부르크 대공의 문장
이전에 행정의 중심지였던 그랜드 두칼 궁전
대공궁전(그랜드 두칼 궁전)
이 궁전은 대공의 집무실 겸 영빈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시간 마다 근위병 교대식을 하며
건물 정면에 국기가 게양되어 있으면 대공이 집무 중이라는 신호가 된다.
약 50분 정도의 관광으로
무기고, 접견실, 다이닝 룸, 갤러리 등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대공궁전(그랜드 두칼 궁전)
국기가 게양되지 않은걸로 봐서 대공이 없는가 보다.
국가 원수의 집무실 출입구를
위병 한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면서 근무를 서고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룩셈부르크 대공의 문장이 있는 철문
거리의 카페
성 미셀성당이 보인다.
요새의 문 중 한 곳인데 집을 성문 위에 지었다.
중세의 오래된 집들은 집 안의 목재를 고정 하기 위해
집 밖의 벽과 연결하는 쇠 장석등이 있는데
건물 외벽을 튼튼하게 보완해주는 역할도 한다고.
성 미셀 교회
성 미셀 교회는
룩셈부르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교시설로
987년에 세워 졌던 룩셈부르크 백작을 위한 성채 예배소를 시작으로
같은 자리에 몇 세기에 걸쳐서 재건축이 계속 이루어졌다고.
그 후 1688년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외관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외관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혼재하여 있다.
성 미셀성당
계곡을 가로 질러 새 다리가 있다.
룩셈부르크 구 도시 지역은 보크 곶에서 서쪽으로 뻗어 있으며,
그곳은 처음으로 공작 가문이 성을 지은 곳이다.
보크 암벽은 17세기~18세기 포대가 벌집 모양으로 나 있는,
가장 큰 규모로 남아 있는 지하 요새이다.
요새 밑을 그룬트 저지대라고 부른다.
구멍이 뚫려 있는 곳에 포대가 설치 되어 있다.
복포대(보크의 포대)
포대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최강인 포대로서 길이는 23km에 이르고
1867년 요새 시설이 철거되기 전까지는
한때 1,200명에 달하는 군인들이 머무르기도 했단다.
지하도의 깊이는 무려 40m에 달하는 것도 있어
제1,2차 세계대전 중에는 3만 5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폭격을 피하기도 했다고.
지금도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지하도 중 17km는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단다.
우리는 시간상 보크의 요새(복포대)까지는 가지 못했다.
룩셈부르크는 유럽의 테라스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절벽 위의 성곽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모습처럼 아름다워서란다.
성벽위에 지은 아름다운 도시 룩셈부르크
도시 곳곳에 성벽이 그대로 남아있고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다.
이 성벽이약 천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견고하게 보존되어 있다.
룩셈부르크 구시가지는 완벽한 요새 위에 자리잡고 있다.
움푹파인 계곡이 둥그렇게 구시가지를 감싸고 도는
천연의 요새 위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룩셈부르크의 그룬트 저지대 모습
산을 거의 요새화해서 만든 도시다보니.
고지대와 그룬트 저지대로 나뉘어져 있다.
성벽의 초소였던 곳인가 보다.
룩셈부르크의 옛날 모습
C
다시 큰 성문을 통과해 아름광장쪽으로 이동했다.
설명서
룩셈부르크 골목길
가장 오래된 골목길이 있는 곳이라고
좁은 골목길
재미있는 모양의 분수
Cercle Municipal 시티센타
아름 광장에 위치하며,
시티센타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로
1904년부터 1909까지 신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발코니 위 프리즈에
룩셈부르크시 헌장이 새겨져 있다는데
글은 없고 그림만 있는데 이 부분이 아닌가 ㅋ
밴드 스탠드
밴드스탠드가 광장 중심에 있는데
연중 여러가지 페스티벌과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단다.
아름광장
룩셈부르크의 중심 광장으로
광장 이름은 예전 도시를 방어했던 군대가 연병장으로
사용한 것에 유래한다.
아름광장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자유 시간에 둘러 보았던 상점들은
따로 올렸다.
처음에 내렸던 헌법 광장으로 다시 돌아와
저녁 먹으러 식당으로 가기 전에
유럽투자은행과 은행 박물관이 있는
성처럼 생긴 아름다운 건물을
마음에 담으며 다시 한번 카메라를 눌렀다.
버스에 타고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하면서 찍은 거리 풍경들이다.
신호대기중 생전 처음 보는 자동차가 있어
급히 사진을 찍었다.
룩셈부르크 이비스 호텔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왔다.
오늘 묵을 이비스호텔이다.
호텔 외관 사진들은 뒷 날 아침에 찍은 사진들이라 밝다.
식당 테라스
호텔 객실
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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