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2016년 3월31일 목요일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여행 첫 날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과 함께 유럽의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미술관에 왔다. 스페인 왕가에서 수집해온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는
프라도 미술관이 아름다운 점은
약탈품이 없는 순수한 수집품이라는 점이다.
에스파냐 왕들은 그림 수집을 위해
대사까지 파견 할 정도로 그림 애호가가 많았다고 한다.
여기에 올린 그림들은 현재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 올린 것으로
짐작컨대 몇년 전 사진 촬영이 허용 되었을 떄 찍은 것이거나
아니면 프라도 미술관 홈피에서나
또는 미술 서적에 올려진 것을 포스팅했지 싶다.
이에 푸른 바다 서명이 되어 있지 않은 사진들은
모두 여러 블로그에서 가져왔음을 밝혀둔다.
산 헤로니모 왕립성당 옆에서 내렸다.
산 헤로니모 왕립 성당 (성 예로니모, 성 제롬)
헤로니모 수도원의 일부분으로
1503년에 카톨릭 국왕부처에 의해 세워졌다.
1808년 프랑스 침공 때 프랑스 군대에 의해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이사벨 2세 때 나르시소 파르쿠알 콜로메르에 의해
신고딕 양식으로 재건 되었다.
산 헤로니모 왕립 성당 (성 예로니모, 성 제롬)
미술관 뒷편에 위치한 산 헤로니모 엘 레알 성당에는
프라도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17세기
스페인의 주요 종교화가 전시되어 있다.
알론소 카노, 안토니오 데 페레다, 후안 카레뇨 데 미란다의
작품을 성당 개방 시간 동안 감상할 수 있다.
성당 내부
펠리페 2세부터 이사벨 2세까지
왕위계승자의 서약식이 열린 곳으로,
스페인 왕들의 결혼식과
퇴위한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즉위식이 거행된 곳이다.
프라도 미술관 옆
레티로 공원과 산 헤로니모 (성 제롬)성당
레티로 공원을 내려가면
프라도 미술관이 있다.
조르주 드 라 투르 (1593-1652) 프랑스
The fortune teller 1632-1635
17세기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화가.
거짓과 속임이 난무한 세상의 일면을 꿰뚫고 있는 풍속화와
경건한 신앙과 고요한 명상으로 이끄는 종교화를
주로 그려 생전에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사후 오랫동안 잊혔다가 20세기 초에 재발견되었다.
프라도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 중 하나이다.
원래는 왕가 수집품의 분산을 방지하기 위해
페르난도 7세에 의해서 1819년에 왕립미술관으로 발족한 것으로서,
1868년의 혁명 후에 국유화되어
프라도(지명으로 ‘목장’의 뜻)로 개칭되었다.
15세기 이후 스페인 왕실에서 수집한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림과 조각을 위한 전용 박물관으로 설립되었으며
5,000개 이상의 그림과 2,000개 이상의 판화,
1,000개 이상의 주화와 메달
그리고 2천 개 이상의 장식물과 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조각상은 700개 이상이 있다.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 왕실의 미술 컬렉션 약 300점을 중심으로 1819년에 개관한 이 미술관은 이후 작품의 양과 질에서 매우 큰 발전을 이루며, 현재는 3만점 이상의 회화와 조각을 소장하는 유럽 최고의 미술관으로 성장하였다. 주로 12~19세기의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플랑드르 회화를 전시하고 있는데, 16세기의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
17세기의 디에고 데 벨라스케스 (1599~1660), 18세기의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로 이어지는 스페인 근대 회화 클린업 트리오의 명화는 프라도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가 있다.
고야 동상 뒤 호텔 리츠 마드리드에서 가장 좋은 호텔중 하나인 이곳은 영국의 에드워드 7세로부터 '왕들의 호텔리어, 호텔리어의 왕'이란 칭호를 얻은, 1850년 스위스 니더발트에서 태어난 세자르 리츠가 1910년에 호텔 리츠 마드리드를 세웠으며 2003년에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호텔스가 호텔 리츠 마드리드를 인수했다.
파리, 런던, 마드리드에 있는 호텔만
리츠란 이름을 사용할 수 있으며
그 외의 지역에서는 리츠칼튼을 사용하고 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
스페인의 3대 거장에 속하는
고야의 동상이 서 있다.
고야의 동상
프라도미술관의 18세기의 소장품으로는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의 작품이 있다.
스페인의 18세기는 미술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시기였으나
고야의 부상으로 초현실주의 및 인상주의로 이어지는
근대미술이 태동한 시기였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궁정화가의 여동생과 결혼하여
1785년 왕실 화가로 임명되었으며,
왕실 내에서 특별한 지위를 얻어 활동했다.
프라도 미술관은 72세의 늙고, 귀먹고 고독했던 고야가
인간의 무용성 및 비관적인 면들을 그린
암흑의 그림들 (Black Painting)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된 고야의 작품 중
옷입은 마야, 옷벗은 마야, 카를로스 4세 가족초상화,
5월 2일, 5월 3일 등은 유명하다.
옷 벗은 마하가 조각되어 있다.
프라도 미술관 정문 벨라스케스 문
프라도 미술관의 3개의 문 앞에는
벨라스케스, 고야, 무리요의 동상이 있고,
이들 각각의 이름을 붙여
벨라스케스의 문, 고야의 문, 무리요의 문이라 불린다.
벨라스케스의 동상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18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후안 데 비야누에바가 세운 건물로
스페인 신고전주의의 신고전 양식 최고걸작으로서 유명하다.
2007년에는 스페인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1937년생)가
확장 공사를 설계하였고,
확장된 부분에는 박물관의 관리부, 보존팀, 새로운 도서관,
판화와 스케치 갤러리, 카페와 식당, 강당,
전시 공간이 들어서게 되었다.
프라도미술관 고야 문
정문인 벨라스케스의 문은 닫혀 있고
고야의 문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그리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된다.
프라도 미술관의 티켓
티켓의 그림은 유명 소장품으로
수시로 바꾸고 있다는데
지금은 엘 그레코의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이다.
프라도 미술관의 개방 시간은
화요일~일요일과 휴일이 09:00~20:00시,
월요일은 휴관이다.
12월 24일, 12월 31일, 1월 6일의 개방 시간은
09:00~14:00시이다.
앞쪽에 기념품 판매 샵
스페인 왕가의 회화 수집열은
이사벨 여왕(재위 1474~1504)에게서 시작되어,
카롤루스 1세(신성로마 황제 카를 5세), 펠리페 2세, 4세,
카롤루스 3세, 4세, 페르난도 7세로 계승되었는데
펠리페 4세 등은 벨라스케스를 비롯하여 미술품 구입을 위해서
대사를 몇명이고 파견하는 정도의 정열을 보였다.
이 덕분으로 프라도 미술관은 약탈품이 한 점도 없다.
한국어로 된 팜플렛을 받을 수 있다.
수집품은 중세부터 18세기에 이르는
에스파냐 및 유럽 여러 나라의 회화에 중점을 두고,
그 중에서도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 등 3대 거장에 관해서는
질과 양적인 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프라도 미술관 내부
고딕에서 신고전주의까지의 화가
약 500인의 작품 6,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히에로니무스 보스 (스페인 이름은 엘 보스코),
로히르 반 델 웨이덴, 얀 브뤼헐, 루벤스, 반 다이크를
중심으로 하는 플랑드르 파와
티치아노, 틴토레토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파 및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의 전모는 물론이고
16, 17세기의 황금시대를 중심으로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흐름을 남김없이 망라하고 있는
스페인파의 충실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 루벤스, 반다이크를 중심으로 하는 플랑드르 회화,
리베라, 무리요, 수르바란 등
에스파냐 화가의 작품수집도 뛰어나다.
Jose Alvarez Cubero (1768-1827)
The Defense of Zaragoza 1823
이 곳 로비만 촬영이 가능하다.
이 점 너무 아쉽다.
몇년 전까지는 노 후래쉬로 허용했는데
이후부터는 그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불허한단다.
프라도미술관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고야인데,
초기로부터 만년에 이르는
100점이 넘는 유화와 수백 점의 소묘가 소장되어 있는데
옷을 벗은 마하, 옷을 입은 마하를 비롯하여
카를로스 4세의 가족, 1808년 5월 3일, 마녀의 집회 등
각 시기의 대표작들이 갖추어져 있다.
엘 그레코의 그리스도의 세례, 부활, 성모자, 오순절,
벨라스케스의 바커스의 승리,
브레다의 개성, 시녀들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보시의 쾌락의 뜰, 루벤스의 사랑의 뜰도 빼놓을 수 없다.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쾌락의 뜰 중 중간 부분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중 천사 부분
미술관은 0,1,2 층 총 3층으로 되어 있다.
미술관 안내 책자에서
사진 촬영이 불가라
최대한 안내 책자에 올려져 있는
작품을 찿아 볼려고 노력했다.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작품들을
캡처해 왔다.
전시실 입장
프라도 미술관 홈피에서
페테르 파울 루벤스 (1577-1640) 벨기에
삼미신 1636-1638
프란시스코 프라딜라 오르티스
광녀 후아나
화면의 한가운데에
임신한 몸으로 상복을 입은 채,
초점이 나간 눈으로
관 앞에 우뚝 서있는 여자는
스페인 연합왕국, 남 이탈리아, 라틴아메리카의 여왕인
사랑에 미쳐버린 여왕 후아나이다.
후아나는 이사벨여왕의 세째 딸로 남편인 펠리페 1세의
죽음을 받아드리려 하지 않고 단지 잠이 들었다고 믿었다.
남편의 시신이 담긴 관을 마차에 싣고 수도원을 돌아다녔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를 광녀 후안나라 불렀다.
그녀는 정치적인 이유로 아버지인 페르난도 2세에 의해
1507년에 토르데시야스 성에 감금당하는데,
이후 그녀는 1555년 4월 12일 사망하는 날까지
토르데시야스 성에 유폐 되었다.
프라도 미술관의 3대 거장
16세기의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
17세기의 디에고 데 벨라스케스 (1599~1660),
18세기의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의
순으로 그림을 올린다.
엘 그레코 (1541~1614) 그리스 출신, 스페인
삼위일체 1577-1579
엘 그레코 (1541~1614) 그리스 출신, 스페인
그리스도의 세례 1608-1614
엘 그레코 (1541~1614) 그리스 출신, 스페인
오순절 1596
엘 그레코 (1541~1614) 그리스 출신, 스페인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1596
엘 그레코 (1541~1614) 그리스 출신, 스페인
목동들의 경배 1612-1614
엘 그레코 (1541~1614) 그리스 출신, 스페인
그리스도의 부활 1595
엘 그레코 (1541~1614) 그리스 출신, 스페인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 1580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St. John the Evangelist 1600-1604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Christ Crucified 1632
디에고 벨라스케즈 (1599-1660) 스페인
바쿠스의 승리 1628-1629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불카누스의 대장간 1630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시녀들 (라스 메니나스) 1656
피카소가 44번 넘게 따라 그렸다는 라스 메니나스
왼편에서부터 궁정화가였던 이젤 앞의 벨라스케스 자신과
왼쪽부터 시녀 도냐 데 사르미엔토,
펠리페4세의 사랑스러운 딸 마르가리타 공주,
다른 시녀인 도냐 이사벨 데 벨라스코,
우측 전경에 난쟁이 마리바르볼라와 니콜라시토 페르투사토가 있다.
그 뒤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왕비의 시녀장인 도냐 마르셀라와
확실치 않으나 왕비의 수행원인 돈 디에고 루이스로 추정된다.
배경 중앙부의 좌측에는 거울에 비친
마리아나 왕비와 국왕 펠리페 4세의 모습이 보이고
그 우측 열린 문 틈 사이로 보이는 계단 위의 인물은
왕비의 시종 돈 호세 니에토 벨라스케스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왕녀 마르가리타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이숍 (이숍 우화의 저자)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교황 이노센트10세의 초상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궁정의 어릿광대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궁정의 어릿광대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어릿광대 돈 디에고 데아세도 엘 프리모 1635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실 잣는 여인들 (아라크네) 1657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브레다의 항복 1635
스페인 사령관이 네덜란드 지휘관으로부터
항복을 받는 장면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자화상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발타사르의 카를로스 왕자의 기마 초상
펠리페 4세의 아들로 16세에 요절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펠리페 4세
궁정화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벨라스케스는
"나는 왕의 명령에 의해서만 그림을 그린다" 라고 말했고
왕인 펠리페 4세 또한
"나의 초상화는 벨라스케스만이 그릴수 있다."라고 말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갑옷을 입은 펠리페 4세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말을 탄 펠리페 4세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스페인
카를로스 4세의 가족
작품 한 가운데에는
궁정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왕비 마리아 루이사가
어린 남매를 양 옆에 데리고 있고,
그 옆으로 메부리 코에 배가 불룩하게 나온
무능한 국왕이 서 있다.
국왕의 뒤에 왕의 남동생 안토니오 파스쿠알의 모습이 살짝 보이며,
그 옆에는 아기를 안고 있는 공주 부부가 있다.
화면 왼편에는 장래 페르난도 7세가 되는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왕자가 보이고,
그 뒤에는 왕의 여동생인 마리아 호세파 공주가 서 있다.
얼굴을 뒤로 돌린 여성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카를로스 4세의 맏딸로 포르투갈 왕비가 된
도나 카를로타 호아퀴나로 보는 설과
장차 왕세자비가 될 나폴리 여왕의 딸 마리아 안토니아라는 설이다.
고야의 내면에 상처를 준 사건이 일어났다.
1808년, 나폴레옹의 군대가 마드리드에 들어와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살상하는 모습을 목격했던 것이다.
고야는 이러한 무자비한 살상을 잊을 수가 없었다.
〈1808년 5월 2일〉과 〈1808년 5월 3일〉은
전쟁의 참혹한 장면들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고야는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원을 풀어보겠다는 굳은 의지와
억압받는 인간성에 대한 저항의 외침을 표현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스페인
1808년 5월2일 맘루크의 공격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스페인
1808년 5월 3일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스페인
옷 벗은 마야 1795 - 1800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년) 스페인
옷 입은 마야 1795 - 1800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는
도발적인 이미지로 당시 스페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옷을 벗은 마하는 고야가 유화로 남긴 유일한 누드화로,
모델에 대한 논쟁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과거 역사서에 의하면 그림의 모델이 알바 공작부인이며,
두 사람이 연인관계였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재상 고도이의 정부인 페티타 투토라는 설도 있고,
한 수도사의 숨겨놓은 여인이라는 설도 있으며,
그저 고야의 상상 속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오늘날까지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알바 공작부인이라는 설이다.
고야는 1800년 무렵 스페인의 귀족이며 재상이었던
마누엘 고도이를 위해 일하였는데,
그는 왕비인 마리아 루이제의 애인으로 총애를 받고 있었다.
옷 벗은 마하의 원 소장자는 재상이었던 마누엘 데 고도이다.
1800년 옷 벗은 마하가 그의 미술품 소장 목록에 처음으로 기록된다.
소문난 난봉꾼이었던 고도이는 방 하나를 따로 떼어
누드 미술작품들만 모아 놓았다고 하는데,
옷 벗은 마하는 바로 그 방에 걸려 있던 것이다.
당시 그 방에는 벨라스케스의 유명한 누드화 비너스의 화장도
나란히 걸려 있었다고 한다.
고도이는 옷 벗은 마하 앞에 옷 입은 마하를 걸어놓고
도르래를 이용해 옷 입은 마하를 움직임으로써
옷 벗은 마하를 감추었다 드러냈다 하며 감상했다고 한다.
1808년 고도이의 누드화들이 발각되어 종교재판에 회부되면서
화가인 고야도 재판에 불려나갔다.
당시 고야가 이 그림에 대해 재판정에서 어떻게 답했는지
재판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
다만 미술품 징발 감독이 적은 바에 따르면,
고야는 이 누드화를
티치아노의 다나에와 벨라스케스의 비너스의 화장에
따라 그렸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스페인 교회가 누드화에 대해 매우 엄격했지만,
티치아노와 벨라스케스는 교회 미술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존경받는 대가였으므로,
두 대가를 따랐다고 한 고야는 처벌받지 않았다.
어쨌든 이 그림들은 1808년 고도이의 실각 이후
그의 다른 예술품들과 함께 폐쇄된 저장실에 보관되었다가
1834년 산 페르난도 아카데미에서 옷 입은 마하만 세상에 다시 공개되었다.
두 그림이 모두 햇빛을 본 것은 1900년의 일이다.
1800~08년 재상 고도이의 진열실에서
가끔 방문객을 맞은 이래 근 한 세기만의 일이라고 하겠다.
1901년 이후 두 작품은 프라도 미술관에서 나란히 관객을 맞고 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스페인
파라솔 The Parasol 1777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스페인
꽃 소녀 or 봄 1786-1787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스페인
포도수확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스페인
The Countess of Chinchon 1800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스페인
오수나 공작부부와 자녀들 1787-1788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스페인
자화상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스페인
아들을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스페인
마리아 루이사 왕비 초상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스페인
마리아 루이사 왕비 초상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스페인
알바공작부인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병마에 시달리다 가까스로 헤어난 고야는
스페인의 명문 가문 출신의 알바 공작 부인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고,
이 만남은 스페인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고야는 알바 백작 부인과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공작 부인의 손가락이 모래 위에 써 있는
"오직 고야뿐"이란 글씨를 가리키는 모습을 그렸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스페인
알바 공작부인
스페인에서 가장 오만하고 매력적인 알바 공작 부인 카에타나
그녀는 스페인 유수의 전통 있는 귀족 중에서도
명문 중의 명문으로 꼽히는 가문 출신이었다.
알바 공작 부인은 사람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법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절대 권력을 소유한
소수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털끝 하나까지 관능으로 충만한 요녀 알바 백작 부인과
걸어다니는 남성이라는 별명을 가진 고야의 사랑은
이내 스페인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고야는 알바 공작 부인의 초상을 그렸는데,
그림에서 당돌한 모습의 부인은 흙바닥에 쓴
나에게는 고야뿐(Solo Goya)이라는 글씨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이처럼 알바 공작 부인은 고야와의 뜨거운 사랑을
자랑스레 고백하고 있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식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작 부인이 관계를 정리하고 돌아선 것이다.
사랑했던 알바 공작 부인의 배신에
고야는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로 상심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상처는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1617-1682) 스페인
성가족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1617-1682) 스페인
마리아에게 제복을 받는 성 일데폰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1617-1682) 스페인
원죄 없이 잉태된 성모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1617-1682) 스페인
The Patrician Dream 1663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1617-1682) 스페인
The Holy Children with a Shell 1670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1617-1682) 스페인
세례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
프라도 미술관에는 기괴한 상상력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있다.
천하의 달리가 그의 작품 옆을 지날 때마다
질투심에 불타 눈을 가렸다는 바로 그 보쉬.
그의 상상력은 남달라서, 그의 작품 "세속적 쾌락의 정원"은
서양 미술 전체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고,
또 가장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기도 하다.
펠리페 2세가 그의 팬이었던 덕분에 프라도 미술관은
보쉬의 패널화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 되었다.
네덜란드의 화가이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세계를 만끽하려면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이 정석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쉬 (1450~1516) 네덜란드
미친 돌의 추출 1475년경
1475년에서 1480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작품은
미친 사람의 머리에서 광기의 돌을 꺼내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도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상징물을 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탁자 위의 구근이다.
미친 사람의 머리에서 꺼낸 것은
광기의 ‘돌’이 아니라 바로 이 ‘구근’인데,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구근이 바로 광기를 뜻한다.
히에로니무스 보쉬( 보스) (1450~1516) 네덜란드
세속적 쾌락의 정원 1500-1505
세폭 제단화 형식의 이 작품은 제단화의 두 날개를 열면
그 내부에 세 가지 장면으로 구성된 그림을 볼 수 있다.
세 장면은 왼쪽에서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연대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왼쪽 패널에는 에덴의 동산에서
하느님이 이브를 아담에게 대면시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 주변에는 조류인지 파충류인지
정확히 종류를 판명할 수 없는 기이한 생명체들이
하느님의 또 다른 피조물로서 함께 어우러져 섞여있다.
가운데 패널에는 역시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동물들과 함께
성행위에 몰두한 나체의 인물들,
지나치게 큰 과일과 여러 물체가 혼합된 기괴한 구조물이
거대한 파노라마 속에 담겨 있다.
오른쪽 패널은 지옥의 광경으로
다른 패널들과 달리 배경색이 어두우며 여러 피조물들이 잘리고,
찔리고, 떨어지는 등 지옥의 고통이 나타나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작품 또한 동시대 다른 화가들의 경향과 뚜렷한 차이가 있어
미술 역사상 가장 신비에 싸인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기괴하고 충격적인 이미지와 기묘한 상징성은
오늘날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고,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결부된 환상의 세계는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가운데 패널 그림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동물들과 함께
성행위에 몰두한 나체의 인물들,
지나치게 큰 과일과 여러 물체가 혼합된 기괴한 구조물이
거대한 파노라마 속에 담겨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쉬( 보스) (1450~1516) 네덜란드
7가지 대죄 탁자
바르톨로메 베르메호 (1440-1498) 스페인
성 도밍고 데 실로스 1474-1477
피터 파울 루벤스 (1577-1640) 벨기에
동방박사의 경배 1609-1628
피터 파울 루벤스 (1577-1640) 벨기에
삼미신 1635
피터 파울 루벤스 (1577-1640) 벨기에
아담과 하와 1628-1629
피터 파울 루벤스 (1577-1640) 벨기에
마리 드 메디치의 초상
피터 (페테르)파울 루벤스 (1577-1640) 벨기에
파리스의 심판 1636
피터 파울 루벤스 (1577-1640) 벨기에
사랑의 정원 1630
피터 파울 루벤스 (1577-1640) 벨기에
Dance of Italian villagers 이탈리아 주민들의 춤 1636
얀 브뢰헬 (1568-1625) 네덜란드 & 루벤스
미각 (대)
프라 안젤리코 (1387-1455) 이탈리아
수태고지 1426
로히르 반 데르 웨이덴 (1400년-1464년) 벨기에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1443
안드레아 만테냐 (1431-1506) 이탈리아
성모의 영면 1462
안토넬로 다 메시나 (1430-1479) 이탈리아
Dead Christ held up by an Angel 1475-1476
라파엘로 산치오 (1483-1520) 이탈리아
The Holy Family 1513-1514
( 성 제롬, 사자로 상징 되는 대천사 라파엘과 물고기를 든 토비아스)
라파엘로 산치오 (1483-1520) 이탈리아
추기경의 초상 1510
알브레히트 뒤러 (1471-1528) 독일
자화상 1498
알브레히트 뒤러 (1471-1528) 독일
아담과 이브
티치아노 베첼리오 (1488-1576) 이탈리아
황금 비를 맞는 다나에 1553년
황금비를 맞는 다나에는
카를 5세의 아들이자 그를 이어 스페인을 통치하게 된
펠리페 2세의 주문을 받아 그려진 포에지에 시리즈 일곱 점 중 일부이다.
포에지에는 우리말로 쉽게 ‘시’라고도 번역되지만,
신화 속 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시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황금비를 맞는 다나에는
딸이 낳은 아이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들은 왕이
딸 다나에를 탑에 가둔 사건부터 시작된다.
꽁꽁 가두어 그 어떤 남자와도 관계하지 못하게 하면
결국 외손자를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희대의 바람둥이 신 주피터는 황금비로 변신하여
그녀의 몸을 적신 뒤 결국 다나에를 임신하게 만든다.
그림은 바로 그 황금비가 탑을 뚫고 들어와
그녀에게 닿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바사리의 《예술가 열전》에 따르면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실제로 본 뒤 “색채의 적용이 인상적”이라고 말했지만
“베네치아에서 제대로 된 드로잉 교육이
기초부터 이루어지지 못한 점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선과 형태보다 색채와 빛을 중요시한
베네치아 화가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티치아노 베첼리오 (1488-1576) 이탈리아
안드로스 섬의 바쿠스 축제 1523-1526
티치아노 베첼리오 (1488-1576) 이탈리아
The Rape of Europa
티치아노 베첼리오 (1488-1576) 이탈리아
뮐베르크 전투의 카를로스 5세 1548
티치아노 베첼리오 (1488-1576) 이탈리아
펠리페 2세의 초상
티치아노 베첼리오 (1488-1576) 이탈리아
자화상 1560
요아힘 파티니르 (1480-1524) 네덜란드
스틱스 강을 건너는 카론 1515-1524
코레지오 (1489-1534) 이탈리아
Noli me tangere 1525
틴토레토 (1518-1594) 이탈리아
세족식 1548-1549
구이도 레니 (1575-1642) 이탈리아
아탈란타와 히포메네스
피테르 브뢰헬 (1525-1569) 네덜란드
죽음의 승리 1562
파울로 베로네제 (1528-1588) 이탈리아
비너스와 아도니스 1580
안토니스 모로 판 다스호르스트 (1517-1576) 네덜란드
메리 튜더 여왕의 초상 1554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1598-1664) 스페인
Saint Peter Nolasco Vision 1629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1598-1664) 스페인
산 페드로 놀라스코의 환영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1598-1664) 스페인
Santa Isabel de Portugal 1635
렘브란트 반 레인 (1606-1669) 네덜란드
홀로페르네스의 연회에서의 유디트 1634
반 다이크 (1599-1641) 네덜란드
엔디미언 포터경과 반다이크 1635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1573-1610) 이탈리아
다윗과 골리앗 1600
주세페 리베라 (1591-1652) 스페인
야곱의 꿈 1639
니콜라 푸생 (1594-1665) 프랑스
파르나소스 1630-1631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1696-1770) 이탈리아
원죄 없이 잉태된 성모 1767-1768
에두아르도 로살레스 마르테스 (1836-1873 )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유언 1864
페데리코 데 마드라조 이 쿤츠 (1815-1894) 스페인
빌체스 백작부인 도냐 아말리에 도트레스의 초상 1853
사라 프란세스 스페인
Maria Guerrero as a Girl 1878
호아킨 소로야 (1863-1923) 스페인 해변의 아이들 1910
프란체스코 멜치 (1493-1570) 이탈리아
검은 배경의 라 Gioconda 가장 오래된 초기 사본 눈섭이 그려진 모나리자가 프라도미술관에서 발견 되었다고 한다. 16세기에 그려진 이 그림은 다빈치의 제자 프란체스코 멜지가 그렸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프라도 미술관은 18세기경에 칠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배경을 복원한 결과 원화와 비슷한 토스카나 지방의 배경이 드러났다고 한다.
스페인의 여타 18세기 낭만주의 작품들은
마드리드 왕궁의 부속건물에 보관되어 있다.
19세기의 많은 작품들도 대부분 다른 미술관에 분산시켜 보관 중이다.
프라도 미술관은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
외국 화가의 작품들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
프라도 미술관 별관
이사벨 여왕의 동상
프라도 미술관 무리요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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