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행

[부산] 동래부 동헌

푸른 바다. 2017. 3. 5. 16:10

동래부 동헌

 

 

 

 

 

친구들과 동래에서

모임을 하고 헤어지기 아쉬워

복원된 동래부 동헌에 들렀다.

 

 

 

 

 

동래부 동헌 입구

 

현재 부산지방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단일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유일한 동헌으로

조선 후기의 관아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는

유형 문화재이다.

 

 

 

 

 

 

동래부 동헌 충신당 부산유형문화재 제1호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이다.

동래부는 정3품 당상관부사가 재임하던 곳으로

국방 및 대일 외교상 중요한 곳이므로

관아 건물도 다른 고을에 비해 규모가 컸다.

 

 

 

 

 

동래부 동헌 충신당 부산유형문화재 제1호

 

동헌은 일명 아헌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따라서 동헌은 관아건물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동래부 동헌 충신당

 

동래부 동헌인 충신당은

1636년 인조 14년

동래부사 정양필이 창건하였고,

1711년 숙종 37년 동래부사 이정신이

충신당이라 이름하여 현판을 걸었으며

조선 말까지 사용되었다.

 

 

 

 

 

충신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인겹처마 단층 팔작지붕의 목조 건물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관아건물이다.

 

좌우에 방이 있고 가운데에 대청을 두었고,

대청에서 동래부사가

공무를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3품 당상관인 부사

 

동래부 동헌은 다른 동헌에 비하여

규모가 크고 세부의장도 짜임새가 있어,

정3품 당상관이 있던 관아로서의

격식을 갖추었다.

 

 

 

 

 

충신당 내부

 

 

 

 

 

 

 

 

 

 

 

 

 

옛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동래부 동헌이 동래군청 청사로 이용되었다.

벽면과 천장, 마루 등의 개·보수를 거치면서

목재 등 재료 대부분이 교체되어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으나,

서쪽 벽은 원래대로이며 문설주와 중방 등이 아직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에 시가지 정비라는 명분으로

망미루와 독진대아문이 금강 공원 안으로 이전되었으며,

서익랑(공물·형구 보관) 등을

포함한 많은 건물들이 철거, 이전되었다.

 

 

 

 

 

동래부 동헌 모형도

 

동래부 동헌 모형도를 보면

동래독진대아문인 외대문을 통과하면

현재 동헌 입구로 사용되는 대문이 나오는데,

즉 대문을 두 개 통과해야 부사가 집무하는

동헌인 충신당이 나오는 구조이다.

 

 

 

 

 

동래부 동헌 모형도

 

동래부 동헌에는 충신당과

좌우의 연심당과 독경당, 문루였던 망미루,

동래부 동헌 외대문 등

많은 관아 건물들이 부속되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충신당과 연심당을 제외한

건물들은 철거되었으며,

망미루와 동래부 동헌 외대문은

온천동 금강공원 일원으로 옮겨졌다.

2014년 독경당, 찬주헌을 복원하고

망미루와 동래부 동헌 외대문을

현재의 자리로 다시 이전해왔으며,

2015년 고마청을 복원하였다.

 

 

 

 

 

옛날에 입었던 옷과 장신구, 신발 등을

무료로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동래부 동헌 충신당과 연심

 

동래부는 정3품 당상관의 부사가 재임하던 곳이며

국방상, 대일 외교상 중요시되었던 곳이므로

관아건물도 다른 고을에 비하여 규모가 컸으며

위용을 갖추고 있었으나

일제시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이전되었다.

동래군 청사, 보건소 등으로 사용되면서

벽체와 마루, 천장 등이 개조되었다.

 

 

 

 

 

 

연심당

 

부사의 관사 또는6방 관리 계열 관원들의 대기소로쓰인 곳이다.

 

 

 

 

 

 

 

 

 

 

 

독경당

 

부사의 휴식 공간

혹은 관원들의 대기소로 추정된다.

현재 이곳에는 당시의 동래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임진왜란 항거 모습을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다.

 

 

 

 

 

찬주헌

 

 

부사의 경호를 맡았던 비장의 처소이다.

비장이란 조선시대 때 감사, 유수, 병사, 수사 등

지방 장관과 견외 사신을 수행하던

관원 중의 하나다.

 

 

 

 

 

복원된 고마청

 

고마청은 관용 말들의 마구간과 

말을 관리하는 관리들의 사무실이다.

 

 

 

 

 

 

 

 

 

망미루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

 

동래부 동헌 독진대아문 앞쪽에 세워진 대문 문루로

1742년 영조 18년 동래부사 김석일이 세웠고,

1870년 고종 7년에 현재의 건물로 중건되었다.

한양으로부터 부임해 온 동래부사가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이 누각을 망미루라 불렀다고 한다.

망미루는 일제가 금강원으로 옮겼었는데

90년만에 제 자리인 동래 동헌으로 돌아왔다.

 

 

 

 

 

 

동래부 동헌 내 청덕선정비

 

동래부 동헌에 있는 동래 부사 선정비이다.

모두 4기로 좌측부터

동래 부사 이원진, 황호, 조봉진,

동래 부윤 윤필은 선정비가 있다.

 

 

 

 

 

마당에 추가 설치된

전통놀이 도구와 곤장대 등 형틀

 

 

 

 

 

 

 

 

 

 

 

 

 

 

 

충신당에서 바라 본 입구 문

 

엣 모형대로라면 저 문을 나가면

동래부 동헌 동래독진대아문인 외대문이

나와야 하는데

외대문을 금강원에서 옮겨와도

대지 여건상 제대로 앉히지 못하고

옆에다 복원시켜 놓았다.

 

 

 

 

 

동래부 동헌 동래독진대아문 외대문 바깥쪽 모습

부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5호

 

 

이 문은 조선후기 동래부의 군사적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조선후기에 동래부는 일본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국방과 외교상 중요한 곳이었다

 때문에 다른 고을에 비해 관아의 수도 많았고, 규모도 컸다.

 이문은 1655년 효종 6년에 동래부의 군사권이

경사좌병영의 지휘 아래 있던 경주진관 소속에서

독립하여 동래독진이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동래부 동헌 (동래독진대아문) 외대문 안쪽 모습

부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5호

 

이 문은 부산에 남아 있는 전형적인 관아 대문이다.

규모는 작으나, 3문형식의 흔하지 않은 건물이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다.

지붕은 솟을대문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천장의 밑에 홍살이 설치된 것으로 보아

원래 외삼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망미루와 동래부 동헌 외대문은

온천동 금강공원 일원으로 옮겨졌다가

 

2014년 망미루와 동래부 동헌 외대문을

현재의 자리로 다시 이전해왔다.

 

 

 

 

 

동래부 동헌 입구

 

좌측 끝 동래부 동헌 외대문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에

1636년 창건된 조선 후기의 동래부 동헌 입구 앞에는

동래 문화유적지 탐방길 안내문,

동래부 동헌 문화재지정 표석,

동래부 동헌 안내문 등이 있다.

 

 

 

 

 

 

 

 

 

 

 

 

 

 

 

 

 

 

 

 

 

 

 

 

 

 

 

[참고: 두산백과,위키백과,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답사여행의 길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