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카이로 국제공항에서 이집트 박물관으로

푸른 바다. 2021. 7. 17. 19:11

카이로 국제공항에서 이집트 박물관으로

 

 

2018년 12월 18일 화요일

이집트 여행 둘째 날

 

인천에서 전 날 23시 20분

터키항공편으로 출발하여 기내에서 1박한 뒤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 07시 25분경 환승하여

카이로 국제공항에 09시 경 도착하였다.

카이로는 국적기 직항이 없는 곳이라 꼭 환승이 필요하다.

이집트에 도착 후 이집트 비자를 25달러에 구매한 뒤

입국 수속을 한 뒤 현지 가이드(교포)를 만나

카이로 국제공항에서 바로 이집트 박물관으로 출발했다.

기내에서 불편하게 가수면 상태로 1박을 한지라

엄청 피곤하지만 오늘 일정도 만만치 않다.

국립 고고학 박물관과 카이로 기자 피라미드를 본 뒤

다시 공항으로 와서 저녁 10시 15분에 출발하는

아스완행 비행기에 탑승해야 한다.

밤 11시 40분경 아스완에 도착하면

호텔까지 버스와 배를 타고 또 가야한단다.ㅜ

 

 

 

이집트 지도

 

 

 

 

카이로 국제 공항에서

이집트 박물관으로 출발하였다.

그동안 이집트 여행을 매번 꿈꾸었으나

IS테러 사건으로 시나이에서 우리 여행객이 2명 희생된 후

10여년 동안이나 여행 제한 지역으로 지정 되었고,

그후 다소 완화되어 이집트 경찰 경호를 받으며

여행을 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풀린것은 지난 해 부터다.

그동안 독재 군부의 장기 집권과 민주화 운동,

쿠테타 등 우여 곡절이 많았던 이집트이다.

 

 

 

 

이번 이집트 여행을 계획하면서

마음이 많이 설레었었다.

지난 인도여행 때도 느꼈던 이 설레임은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를 여행한다는 사실이다.

이 여행은 평범한 여행이 아니라

역사의 기원 속으로,

아득한 먼 시간으로의 여행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의 역사를 가진 나라 중 하나인

이집트를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이집트의

정식 국가 명칭은 이집트아랍공화국

(The Arab Republic of Egypt)이다.

영어로는 이집트로 알려져 있지만

아랍에서는 2개 해협 또는 국가라는 뜻의

아랍어인 미스르(Misr)라는 국명으로 부르며

현지 발음으로는 마스르라고도 한다.

 

 

 

카이로 시내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 동북부

지중해 연안에 자리 잡고 있다.

북동쪽으로 이스라엘 과 가자 지구,

서쪽으로 리비아, 남쪽으로는 수단과 국경을 접하고,

북쪽으로 지중해, 동쪽으로 홍해가 있다.

국토의 일부인 시나이 반도가 이스라엘과 접경하여

중동지방에 걸쳐 있다.

 

 

 

카이로 시내

 

이집트 영토는

한반도의 약 5배이며 남한의 10배 수준이다.

전 국토의 95%가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어

국토의 60% 정도에서만 사람이 살 수 있다.

이집트의 지형은 국토의 면적에 비해 단순하다.

나일강 하곡과 그 유역의 삼각주 평야, 수에즈 운하 연안,

이곳을 제외한 넓은 사막지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이집트 경관의 지배적인 특징은

북류하는 나일 강에 의해 크기가 다른 극도로 건조한 두 지역으로 나뉜다.

보다 큰 사막지대인 서부 사막은 와디(건천)가 없는 낮은 대지이며,

보다 작은 동부 사막은 석회암과 사암층의 대지로

와디에 의해 널리 개척되어 있으며, 남동부에는 험준한 산들이 솟아 있다.

동부 사막의 북동부에 있는 시나이 반도에는 와디가 많다.

시나이 반도 남부 산지에는 해발 2,642m의 이집트 최고봉인 캐서린 산이 있으며

동부 사막의 홍해 구릉지대에는 해발 1,800m가 넘는 산이 많다.

나일 강은 이집트 영내에서는 중요한 지류가 없으며,

가파른 벼랑들 사이에서 대략 8∼16km 너비의

바닥이 평평한 유역을 따라 흐르다가

카이로 북쪽에서 부챗살 모양으로 갈라지며

삼각주 저지대를 이룬다.

 

 

 

 

이집트에는

겨울(11∼3월)과 여름(5∼9월) 두 계절만 있다.

겨울은 서늘하고 온화하며, 여름은 일반적으로 무덥다.

그리고 이집트는 우기가 없고 비도 없다.

연 강수량이 40미리 수준으로 작다.

물은 남아프리가 빅토리아 폭포쪽에서

북아프리카로 흐르는 나일강이 젖줄이고

나일강 줄기를 따라 강 유역에 모두 모여산다.

이집트의 종교는 이슬람교이며, 대부분이 수니파에 속한다.

이집트의 국가형태는 민주공화국이지만,

부분적으로 자유기업을 인정하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가진 개발도상국이며,

산업의 약 70%가 국유화되어 있다.

 

 

 

 

이집트의 도로 포장률은 70% 이상이다.

내륙수로는 총길이가 3,200km를 넘는데,

160km가 넘는 수에즈 운하를 제외하면

전부가 나일 강 수로이다.

수에즈 운하로는 해마다 2만여 척의 배가 지나 다닌다.

수출은 주로 원유와 정제품 및 면직물과 면사로 이루어지며,

이집트의 최대수출국은 이탈리아이다.

수입액은 통상 수출액보다 훨씬 많다.

주요 수입품은 식료품, 기계류와 전기기구, 수송장비, 화학제품 등이며,

주로 미국·독일·프랑스로부터 수입한다.

해외근로자들의 송금이

큰 폭의 무역적자를 줄이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현대차가 보인다.

 

 

 

삼성 간판도 보인다.

 

 

 

 

이집트의 국가형태는 민주공화국이고

정부 형태는 대통령 중심제 (6년 중임제)로

대통령 중심제에 내각책임제 요소를

일부 가미한 중앙집권적 정부 형태이다.

이집트의 의회는

양원제(하원 508석, 상원 270석)이다.

수도는 카이로이며 카이로 인구는 2.800만명이다.

전체 인구는 1억을 조금 넘으며 우리 교민은 5천명 수준이다.

한국과는 1961년 12월 영사관계를 맺었으며,

이어 1962년 5월 카이로에 한국 총영사관이 설치되었다.

 

 

 

 

이집트의 언어는

공용어로 아랍어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카이로 방언을 쓰는데,

상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는 발음이 다르다.

영어 및 프랑스어가 통용되며 (지식층)

관광지나 관광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많이 사용한다.

 

 

 

 

이집트의 교육은

의무교육 9년(초등학교~중학교)이며

학제는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대학 4년이다.

문맹률은 26.1% (남 18.3%, 여 34.2%)이다.

 

 

 

 

이집트의 휴무일은 금요일, 토요일인데

토요일은 정상 근무하는 직종이 많다.

금요일은 일반적으로 이슬람교 사람들이

많이 사는 아랍 세계에서는

금요일 오후 1시의 예배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금요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이집트의 역사는

BC 8000년부터 나일강 유역에 농경생활을 시작하여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더불어 최초의 고대 문명을 탄생시켰다.

고대 파라오 왕조는 30개 왕조가 흥망을 거듭하였으며

통상 고왕조시기, 중왕조 시기, 신왕조 및 후기왕조 시기

3기로 시대를 구분하고 있다.

- 고왕조 시기 (BC 3,100년~ BC 2,040년 약 1000년간) :

10개의 왕조(1~10 왕조)가 변천하는 기간 약 40명의 왕이 통치

- 중왕조 시기 (BC 2,040년~ BC 1,567년 약 500년간) :

7개의 왕조(11~17 왕조)가 변천하는 기간 약 30명의 왕이 통치

- 신왕조 및 후기왕조 (BC 1,567년~ BC 332년 약 1200년간) 시기 :

13개의 왕조(18~30 왕조)가 변천하는 기간 약 80명의 왕이 통치

 

 

 

 

1. 이집트의 고왕조 시기 (BC 3100-2040)

○ 1왕조의 Menes 왕은 최초의 파라오로서 남‧북 이집트 통합후,

Memphis에 도읍(BC 3100경)

○ 3왕조 Zozer 왕은 공사장 Imhotep의 도움으로 Saqqarah 지역에

최초의 피라미드(계단식)를 건축하고, 시나이 반도 정벌

○ 4왕조 Khufu왕, Khafre 왕, Menkaure 왕은 Giza 피라미드 건축

○ 5왕조 Unas 왕부터 피라미드에 문자기록(Pyramid Text)를 남기기 시작

- 5왕조 기간중 리비아, 누비아, 시나이 등을 정벌한 기록

- 태양신 Ra를 숭배한 기록 등

○ 6왕조부터 왕권이 쇠퇴하여, 7~10왕조 기간중에는 지방 세력들이 활거

 

 

 

 

2. 이집트의 중왕조 시기 (BC 2040-1567)

○ 11왕조 Menthuhotep 2세는 남‧북 이집트를 재통합

○ 12왕조는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국력을 신장

- Senusert 3세는 지방 족벌들을 평정하고 강력한 중앙집권 확립

- 12왕조 기간중 리비아, 누비아, 시나이, 시리아, 푼트 지역을 정벌

- 12왕조 시대부터 왕과 왕위 계승자간 공동 통치(Co-Regency) 관행 발생

○ 13-17왕조는 힉소스 등 외적의 침입으로 쇠퇴기

-16~17왕조는 힉소스 통치기 (이민족 통치기)

 

 

 

 

3. 이집트의 신왕조 및 후기왕조 시기 (BC 1567-332)

○ 18왕조부터 국력이 다시 번성하여 동쪽으로 유프라테스강, 남쪽 으로 수단지역까지 지배

-제18왕조 테베 왕가 출신 아흐모세는 힉소스의 세력을 델타 지역에서 소탕하고,

상하 이집트를 재통일하였으며,

- Hatshepsut 여왕은 Thebes(Luxor) 지역에 최초의 신전 건축

- Tuthmosis 3세(Hatshepsut 여왕의 조카) 통치기간 중 최대 영토 확장

- Amenhotep 3세는 Luxor 신전, Memnon 거상 등 건축

- Amenhotep 4세는 Akhetaten (Amarnah) 지역으로 일시 천도하고,

전통적 Amun 신 숭배에서 벗어나 Aten 신을 숭배

(기존의 제사장 그룹과 갈등을 피하고 정치에도 무관심)

- Amenhotep 4세와 왕비 Nefertiti 사이에서 태어난 Tutankhamun 왕이 요절하고,

그 뒤를 이은 Ay왕도 단명함에 따라 Horemheb, Ramses 1세 등

장군 출신들이 왕위를 승계(18 왕조 멸망)

○ 19왕조는 국력을 정비하고, 신전 건축 등을 통해 고도의 문화 창달

- 19왕조 Seti 1세는 아시아 지역을 정벌하고, Abydos 신전 등을 건축

- Ramses 2세(Seti 1세의 아들)는 Hittites의 침입을 격퇴(Kadesh 전투)하고,

Abu Simbel 신전 등을 건축

○ 20왕조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함에 따라

왕권이 약해진 반면 제사장의 권한이 강화됨.

○ 22왕조에 이르러 왕권은 Delta(나일강 하류) 지역에만 미치고

Upper Egypt(나일강 상류)는 제사장들이 관할

○ 25왕조 시기에 Assyria의 침입을 받은 후 국력이 급격히 쇠퇴

○ 27~30왕조 기간은 페르시아의 속국으로 전락

-제30왕조의 마지막 군주 넥타네보가 페르시아군의 침입을 저지하는데 실패하고

누비아로 도망함으로써 이집트인에 의한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되고

페르시아 군주들의 제31왕조가 들어섰다.

- 페르시아 출신 파라오가 지배

 

 

 

 

31왕조에서 32왕조는 침략한 이민족들이

이끄는 왕조시대로 이집트 왕조시대는 끝났다.

31왕조의 페르시아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배하여

헬레니즘문화를 표방하는 그리스시대를 맞게 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세계의 중심이었고,

학문과 예술의 수준이 세계 최고인 도시였다.

 

4.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BC 332- BC 30)

○ Alexander 대왕은 이집트 정복 후 Ptolemy 장군을 이집트 총독으로 임명하고,

Alexandria에 새로운 수도 건설

- Alexandria는 Hellenism 문명의 중심지로 발전

- Fayyum을 농업 중심지로 개발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해군은 지중해 및 홍해의 해상활동 지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국가통합 차원에서 파라오왕조 시대의 건축 양식을 답습한

신전을 건축하고(Dendarah, Philae, Edfu 지역), 파라오 왕조시대의

이집트 신들을 모방한 그리스신화 도입

 

 

 

 

프톨레마이오스의 후손들은 기원전 30년 안토니우스와

연대하여 옥타비아누스와 대결하려 했던 클레오파트라 7세가

악티움 해전에서 패하고 알렉산드리아가 함락당하여

자살할 때까지 300년 이상 이집트를 다스렸다.

프톨레마이우스왕조 말기 클레오파트라 7세의 죽음으로 고대 이집트 시대는

막을 내리고 이집트는 로마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로마 황제들은 이집트의 전통을 존중하였고,

이시스 숭배를 비롯한 이집트 문화의 영향이 로마까지 파급되었다.

그리고 기독교가 이집트로 전파된다. 기독교는 발생 초기 박해를 받았으나,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보호 속에서 급격히 발전한다.

이집트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동로마 제국(비잔틴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비잔틴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자 대부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되고

토착종교는 거점을 점점 잃어 갔다.

기독교 수도자와 은둔자들이 급격히 늘어나 세계 최초로 이집트에 수도원이 등장하였다.

성서, 성자들과 순교자들의 삶에 대한 번역물이 주를 이루는 풍부한 콥트문학이 이집트에서 발달했다.

 

5. 로마 제국시대 (BC 30 - AD 638)

○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장군 안토니우스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Actium 해전에서 물리치고, 이집트를 정복하여 로마의 속국으로 합병(BC30)

- 이집트는 로마의 식량 공급기지 및 로마와 인도간의 중계 무역장소 역할 수행

- Philae, Dendarah, Esna 지역에 신전 건축

○ 기독교의 유입으로 콥틱어 사용이 유행하고, 수도원이 창설됨(전통 종교 몰락)

- Constantine 황제, 기독교 포교를 승인(312)

- 성 「마가」의 이집트 포교(AD 50년 경)

○ 이집트에 대한 지배권이 동로마제국(Constantinople)으로 넘어간 후

리비아, 누비아, 페르시아 등의 침입이 5~6세기까지 지속

 

 

 

 

동로마제국은 AD642년

아라비아의 아무르 사라센제국의 침략전쟁에서 져서

이집트는 200~300년동안 아랍어를 쓰는 나라로 바뀌었고,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우마이야왕조를 시작으로 아바스왕조, 파티마왕조, 맘루크왕조등을 거치면서

이집트는 거의 동부 아랍어 사용권으로 만들어져 아랍화가 완성 되었고

이때부터 독립의 중요성을 느낀다.

 

6. 이슬람의 이집트 정복(AD640년 -1798년)

○ Khalif(이슬람 수장) Umar의 명령에 따라 Amr Ibn Alas가 지휘하는 이슬람군이

동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이집트를 정복(AC 640)

○ 이후 Ummayya(다마스커스) 왕조 및 Abbasid(바그다드) 왕조 등으로부터

파견된 이슬람 총독이 이집트를 지배

- 이 기간중 많은 콥틱 교도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아랍어가 콥틱어를 대체

- Tulun 총독 시기에는 바그다드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반독립적 세력 형성(Tulun 왕조)

○ Fatimah 왕조는 예언자 마호메트의 사위인 Ali(예언자의 딸 Fatimah와 결혼)를 정통 Khalif로 인정하는

시아파 이슬람 왕조로서 순니파 Ummayya 및 Abbasid 왕조의 Khalif 승계에 도전하였으며,

969년 이집트를 정복

- 초기에는 Fatimah 왕조의 Khalif들이 직접 이집트를 통치하였으나, 후기에는 군출신 총독을 파견

- 알렉산드리아에서 카이로로 천도

○ 이집트를 침입한 십자군에 대항하기 위해 Saljuk Turkey의 Sultan이 파견한

Salah Al Din이 십자군을 물리친 후 이집트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

- Fatimah 왕조를 폐지하고 Abbas 왕조를 전통 Khalif 승계자로 인정(시아파 척결)

- 십자군의 공격에 대해 카이로 주변에 Citadel 축조(십자군은 Damietta, Mansurah 지역 점령)

○ Ayyub 왕조는 십자군에 대항하기 위해 터키계 노예 출신인 Mamluk족을 수비대로 활용하였으나,

Mamluk족의 반란으로 몰락(1250)

○ Mamluk 장군 Baybar(후에 Sultan직 승계)는 몽골군의 침입을 격퇴하고,

십자군 세력, Ayyub 왕조 잔당, 아르메니아, 누비아 등을 정벌한 후 순니 이슬람의 보호자 역할 수행

○ Mamluk 왕조 시대에는 터어키어가 널리 사용되었으며, 내정은 불안하였으나

대외적인 관계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체로 안정 유지

○ 오스만 트루크 왕조의 Salim 1세가 Mamluk 왕조를 멸하고, 이집트를 정복(1517)

- Ottoman 왕조에서 파견한 총독 Pasha가 이집트 지배

-후기에는 군출신 귀족 Bay들이 사병의 힘을 토대로 Pasha의 권위에 도전

- 이집트는 오스만트루크의 속국이 되면서 문화 중심지로서의 역할이 쇠퇴하였으나,

이슬람 종교 중심지로서의 중요성 확보

 

 

 

 

1789년 프랑스의 침략으로

몇 년 동안 유럽의 정치와 문화를 받아 들이게 되었으나

1802년 영,오스만 연합국에 의해 프랑스를 물리치고

무하마드 알리에 의하여 무하마드 알리왕조가 세워진다.

무하마드 알리왕조는 그와 그의 측근들에 의해 많은 치부와 팽창주의 때문에

영국에 많은 빚을 지게 되고 그로 인해 내란이 일어난 틈을 타

1882년 영국이 수에즈 운하 보호를 이유로 이집트 정부를 장악하였다.

이집트는 1914년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1922년 이집트 왕국으로서 부분적으로 독립하여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7. 19세기의 변천

○ 프랑스의 이집트 지배(1798-1801)

- 나폴레옹의 이집트 정복(1798)

- 프랑스 학자들에 의한 ‘Rosetta Stone’ 발견(1799) 등 많은 고고학적 유물 및 유적 발굴

○ 이집트 근대 왕조 성립

- 무하마드 알리(1769-1849)는 원래 프랑스의 이집트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터어키 왕조에서 파견한 장군이었으나 이집트 정착 후

정치, 군사, 경제개혁 단행 등 근대 이집트 건설의 기초를 닦고,

수단 정벌(1820), 팔레스타인 지역 및 아라비아 반도 파병 등 세력 확장

- Ali의 장손 이스마일(I1863-1879)은 대규모 국토 개발계획

(수에즈 운하 건설, 철도, 통신, 공장, 관개수로 등)을 추진함으로써

외채가 누적(1875 영국 정부의 수에즈운하 주식 43% 매입)

- 1876년 외채 상환이 정지됨에 따라 공채정리위원회(영, 불, 독, 이, 오)에 의한

국가재정 관리 실시(식민지화의 길)

○ 영국의 군사점령과 통치(1882-1952)

- 1882 영국군의 알렉산드리아 상륙(Arabi 등 민족주의 그룹이 주도한 알렉산드리아 반영 폭동 진압) 및

카이로 점령 이후 사실상 영국 총영사에 의한 국정 수행

- 1914 영국 보호령 선포(1차 대전중)

- Wafd당(Saad Azgloul 등이 주도)의 범이슬람주의, 입헌제 운동(1919 혁명)

- 192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쟁취, 국제연맹 가입(1936까지 영국의 실질적 지배 지속)

 

 

 

 

제2차 세계대전 후

민족운동과 반영국운동이 격화하면서 완전한 주권을 찾았다.

1952년 쿠데타로 군주제가 타도되고,

가말 아브델 나세르가 2,000년 이상의 역사 속에서

최초의 이집트 본토 출신의 지배자로 떠올랐다.

나세르에 이어 사다트가 대통령이 되었으나 1981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암살 당하였고

그 다음 무바라크가 대통령이 되었으나 2011년 2월의 민주화시위에 의해 퇴진하였다.

이렇듯 5천년 역사 속에 수많은 왕조가 세워지고 쓰러지고 하면서 오늘날의 이집트가 있게 되었다.

참고로 1왕조라 함은 한사람의 왕이 다스린 것이 아니고

여러명의 왕들이 있으며 한 왕조가 끝날때 까지를 이른다.

1왕조에서 30왕조까지는 엄청난 시대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8. 독립 이후의 이집트

○ 2차 대전 당시 영국을 도와 연합군에 참전

- 1942년 Al Alamayn 전투에서 독일군 침공 저지

○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참전

- 이스라엘 독립국가 건설(1947 UN의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에 반대한 아랍국가들이

이-팔간 내전에 개입, 이스라엘을 공격하였으나 결과적으로 패배

○ 1952년 Nasser 중령 휘하의 자유장교단 혁명

- 왕정 폐지, 이집트아랍공화국 건립

- BC 341년이래 약 2300년간에 걸친 이민족 지배 종지부

○ 1956년 Nasser 대통령, 수에즈운하 국유화

- 영 ・ 불 및 이스라엘의 이집트 공격으로 제2차 중동전쟁 발발,

유엔(미 ‧ 소)의 중재로 휴전(아랍의 자존심 회복, Nasser 대통령은 아랍 민족주의의 영웅으로 부상)

○ 1958년 이집트- 시리아 아랍연방공화국 결성(1961 시리아 탈퇴)

○ 1967년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

- 소련의 지원을 받은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등이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팔레스타인 지원,

이스라엘의 Tiran항 봉쇄 조치 등을 취하자,

미 ‧ 영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이 이집트 등을 기습 공격

-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가자지구, 요르단 서안 및 골란고원 점령

○ 1970년 Sadat 대통령 취임(Nasser 대통령 지병으로 사망)

- 친서방 온건 노선 추구

○ 1973년 10월 전쟁(제4차 중동전쟁)

- 시나이 반도 등 회복을 위해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였으나 실패(이집트측은 승전 주장)

- 이집트 ・ 이스라엘 평화협상의 계기 마련(아랍에 대한 서구 및 이스라엘의 인식 전환)

○ 이집트 ・ 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미국 중재)

- 1979년 이집트 ‧ 이스라엘 평화협정 체결

- 1982년 시나이 반도에서 이스라엘군 철수 완료

○ 1981.10월 Mubarak 대통령 취임(Sadat 대통령 피살)

- Nasser의 아랍 민족주의와 Sadat의 친서구주의의 장점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중도주의를 지향

○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항, 걸프전 참전

- 이집트 ・ 이스라엘 평화협정 체결이래 이집트는 아랍권으로부터 소외당했으나,

걸프전 참전 계기 아랍의 중심국으로 재 부상

(1979년 평화협정체결 당시 아랍연맹본부를 이집트에서 튀니지로 옮겼으나,

1989년 아랍연맹 본부를 카이로로 다시 이전)

○ 1997년 Luxor 테러사건 발생(외국인 58명 희생)

○ 1999년 이집트 최대 이슬람 과격단체인 ‘Gamma Islamiya’, 대정부 투쟁 종식 선언

○ 1999.10월 Mubarak 대통령 4선 당선(6년 임기)

○ 2005.9월 Mubarak 대통령 5선 당선

○ 2011.1.25 이집트 시민혁명

○ 2011. 2.11 Mubarak 대통령 하야

○ 2012.6.30 Mohamed Morsy 대통령 취임

○ 2013.6.30 Mohamed Morsy 대통령 축출 및 Mansour 최고헌법재판 소장이 임시대통령직 수행

○ 2014.6.8. Abdel Al Sisi 대통령 취임

 

 

 

카이로 시내

 

카이로는 이집트와 아랍 연맹의 수도이며,

나일강의 물줄기가 여러 지류로 갈라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과 중동 지역 최대의 도시이다.

서기 642년에 건설된 도시로,

도시권의 인구는 1700만에 달한다.

 

 

 

 

카이로는 나일강 삼각주의 남단에서

약 25km 남쪽 나일강 우안에 있다.

시가는 하중도인 게지라섬에서 강의 좌안까지 펼쳐지며

아랍권과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1월 평균기온 12.7℃, 8월 평균기온 27.7℃, 연평균강수량 25mm이다.

카이로라는 이름은 969년부터 불렸으나 도시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수도 멤피스는 현재의 카이로 남쪽 교외,

나일강 좌안에 해당하며, 로마·비잔틴 시대에 형성되었다.

바빌론이라고 하던 도시는 지금의 구 카이로(Old Cairo)에 있었다.

 

 

 

카이로 시내

 

카이로는

10세기에 마그레브를 본거지로 하는 파티마 왕조가

이집트를 지배하였을 때 장군 조하르 알루미가

카타이의 북쪽에 새 수도 카히라(Kahira)를 건설하였는데(969),

카히라는 ‘승리’라는 뜻으로 카이로의 어원이 되었다.

이곳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전략적인 요충지로,

경제적으로도 다수의 인구를 부양하는 데 적당하였기 때문에

고대부터 도시가 건설된 것이지만 같은 이유로

카히라라는 지명이 되고 나서도 지배자의 변동은 심하였다.

아이유브왕조(1169∼1250) ·맘루크 왕조(1250∼1517)의 지배를 거쳐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통치할 때에는 문화가 정체하였으나,

1798∼1801년 프랑스 점령시대에는 시가가 확장되었고,

영국과 터키의 연합군이 카이로를 프랑스에서 탈환하여

터키의 주권하에 메메드 알리 왕조의 수도가 되어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서쪽으로 확장되었다.

 

 

 

시장이 보인다.

 

 

 

차창으로 보는 카이로 시내

 

 

 

 

카이로에는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다.

시내는 전통적인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뉘며,

신시가에는 정부청사·회사·은행·호텔 등이 있다.

나일강 서쪽에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고,

시내에는 옛 성채와 아므르사원(642), 알아즈하르 사원(970)을 비롯하여

많은 이슬람 사원과 궁전 등의 건축물, 박물관,

그 밖의 문화시설이 있어 관광자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지하철이 건설되었고, 북서쪽 약 180 km의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하여

포트사이드, 이스마일리아, 수에즈, 훌완과는 철도와 국도로 연결되며,

카이로-이스마일리아의 운하 등 나일강과

그 삼각주 지대의 수로에 의한 수운도 발달하였다.

교외의 헬리오폴리스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카이로는 예로부터

정치·군사·무역·학술·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방적·식품가공 등의 경공업도 발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철강·조선·철도차량·화학비료 등의 중공업,

석유정제·석유화학공업 등도 발달하여

수에즈의 정유공장과 송유관으로 연결되어 있다.

알아즈하르대학은 970년 설립되었으며

그 밖에 카이로대학(1908년 설립), 아메리카대학(1919년 설립),

아인샴스대학(1950년 설립된 옛 이브라힘파샤대학)의

4개 종합대학 외에도 많은 고등교육기관, 조사연구기관이 있다.

아랍 연맹의 본부가 있으며,

아프리카와 아랍의 망명정당 사무소도 설치되어 있어

망명 정치가의 활동이 활발하다.

 

 

 

 

차창으로 카이로 시내를 보며

귀로는 이집트 현지 가이드가 이야기하는

이집트에 관한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다.

 

 

 

 

 

 

 

 

 

 

 

 

 

 

 

드디어 이집트 박물관이 보인다.

 

 

 

 

내릴 수 있는 지점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드디어 도착

 

투탕카멘과의 만남이

곧 이루어진다.

 

 

[참고 발췌: 두산백과,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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