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이집트 개황

푸른 바다. 2021. 7. 15. 10:42

이집트 개황

 

 

정식 국가 명칭은 이집트아랍공화국

(The Arab Republic of Egypt)이다.

영어로는 이집트로 알려져 있지만

아랍에서는 2개 해협 또는 국가라는 뜻의

아랍어인 미스르(Misr)라는 국명으로 부르며

현지 발음으로는 마스르라고도 한다.

 

 

 

아프리카 지도

 

아프리카 대륙 동북부

지중해 연안에 자리 잡고 있다.

북동쪽으로 이스라엘 과 가자 지구,

서쪽으로 리비아, 남쪽으로는 수단과 국경을 접하고,

북쪽으로 지중해, 동쪽으로 홍해가 있다.

국토의 일부인 시나이 반도가 이스라엘과 접경하여

중동지방에 걸쳐 있다.

북위 20-30도, 동경 30도에 위치한다.

 

 

 

이집트 지도

 

면적은 1,002천㎢로 한반도의 약 5배이다.

전 국토의 95%가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어

국토의 60% 정도에서만 사람이 살 수 있다.

이집트의 지형은 국토의 면적에 비해 단순하다.

나일강 하곡과 그 유역의 삼각주 평야, 수에즈 운하 연안,

이곳을 제외한 넓은 사막지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나일강 하곡과 삼각주평야를 형성하는 나일강은

상류의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발원한 청나일과

아프리카 중동부 빅토리아호에서 발원한 백나일에 합류하여

6,671km를 흘러 지중해로 유입하는 대하천이다.

삼각주평야와 나일강 하곡평야는 곡창지대를 이루는 인구조밀지역이다.

나일강의 서쪽은 인간이 살기에는 어려운 사막이다.

파이윰 저지·카타라 저지 등에 분포한 오아시스들을

제외하면 거의 인간의 거주가 불가능하다.

바하리야·파라피라·다흘라·하르가·시와 등 5개의 오아시스는

1600년경부터 이집트인에 의해 농경지로 이용되었다.

1971년 아스완 하이댐의 건설로 아스완 남쪽으로

인공호인 나세르호가 생겨 이 인공호의 물을 이용하여

사막지방의 관개를 통한 개발을 서두르게 되었다.

시나이반도의 석유자원의 매장은 이집트 경제에 큰 역할을 한다.

 

 

 

이집트 지도

 

고대문명 발상지로,

16세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았으며

오늘날 아랍과 중동지역에서 정치적·문화적인 중심국가를 이룬다.

이집트의 행정 구역은 26개 무하파자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GOPP에서 계획 목적으로 사용되는

7개의 경제 지역이 있다.

수도는 카이로(Cairo)이며 카이로의 인구는

2018.5월 기준 약 969만 명이며

기자 지역 인구는 약 800만 명이다.

 

 

 

이집트 국기

 

1984년에 제정되었으며

위부터 빨간색, 흰색, 검정색의 가로 줄무늬 3색기이다.

하얀색에 ‘살라딘(Saladin)의 독수리’라고 하는

이집트의 국장이 새겨져 있다.

빨강색은 혁명(반식민주의)과 투쟁의 피를,

흰색은 평화 또는 밝은 미래를,

검정색은 칼리프 시대의 영광 또는 지난날의 암흑시대를 나타낸다.

가로세로 비율은 3:2이다.

 

 

 

 

이집트의 국장

 

살라딘의 수리라고 부르는 금색 독수리 모양의

디자인 가운데에는 이집트의 국기를 구성하는 색인

빨간색, 하얀색, 검은색 세로 줄무늬가 그려진 방패가 그려져 있다.

독수리의 발톱 아래에 있는 두루마리에는

이집트의 공식 명칭인 이집트 아랍 공화국이 아랍어로 쓰여져 있다.

 

 

 

 

국가형태는 민주공화국이고

정부 형태는 대통령 중심제 (6년 중임제)로

대통령 중심제에 내각책임제 요소를

일부 가미한 중앙집권적 정부 형태이다.

 

 

 

 

이집트의 의회는

양원제(하원 508석, 상원 270석)이다.

2016년 1월 신의회(하원)가 개원했고

(Ali Abdel Aal 의장)

2019년 4월 개헌 시 상원 재구성을 명시하여

상원은 2021년 출범이 전망된다.

 

 

 

 

동북 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에 있으며

기후는 아열대성 사막 기후로

고온 건조하며 온화한 겨울이다.

이집트 날씨는 연중 대부분 덥고 건조하다.

12월, 1월, 2월의 겨울동안 일일 평균 기온은

지중해 연안에서는 섭씨 20도 정도(화씨 68도 전후),

아스완(Aswan)에서는 섭씨 26도(화씨 80도) 정도이다.

최고 온도는, 지중해 연안이 섭씨 31도(화씨 88도),

아스완은 섭씨 50도(화씨 122도)까지 오른다.

겨울밤이면 섭씨 8도까지 내려가는데

이집트 기준에서는 아주 추운 날씨라 할 수 있다.

 

 

 

 

이집트의 민족은

이집트인, 베두인(Bedouin)족, 베르베르(Berber)인으로

구성된 함(Ham)족인 이집트인이 99.6%로 대다수를 차지하며

그외 그리스인, 누비아인, 모로코, 리비아, 터키 민족 등

소수민족이 0.4%이다.

 

 

 

 

이집트의 인구는

2021년 기준 1억 425만 8,327명이다.

이중 수도 카이로의 인구는

2018.5월 기준 약 969만 명이며

기자 지역 인구는 약 800만 명이다.

국토의 99%이상이 불모의 사막지대이므로,

인구의 99%가 전 국토의 3%에 해당되는 지역,

즉 비옥한 나일강 계곡과 나일강 삼각주에 밀집해 있다.

 

 

 

 

이집트의 언어는

공용어로 아랍어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카이로 방언을 쓰는데,

상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는 발음이 다르다.

영어 및 프랑스어가 통용되며 (지식층)

관광지나 관광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많이 사용한다.

 

 

 

 

이집트의 종교는

수니파 이슬람교(90%), 콥트정교회(9%),

기독교(1%)이다.

다신교로 수많은 신을 섬겼던 고대 이집트 종교는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전반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에는 이집트인 대다수가 수니파이슬람교를 믿는다.

이집트의 전통 기독교인 콥트교회가 그 뒤를 잇는다.

 

 

 

 

이집트의 교육은

의무교육 9년(초등학교~중학교)이며

학제는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대학 4년이다.

문맹률은 26.1% (남 18.3%, 여 34.2%)이다.

 

 

 

 

이집트의 휴무일은 금요일, 토요일인데

토요일은 정상 근무하는 직종이 많다.

금요일은 일반적으로 이슬람교 사람들이

많이 사는 아랍 세계에서는

금요일 오후 1시의 예배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금요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늦고,

그리니치 표준시보다 2시간 빠르다.

 

 

 

 

이집트의 문화는

이집트는 카이로 부근 룩소르 및 아스완 부근의

유적보호와 관광자원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유적 중 유명한 것은 피라미드이다.

이집트인은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고,

죽은자의 분리는 죽음이지만, 사자는 영혼이 머무는 곳인 시체가

멸하지 않고 공물을 받을 수 있다면 죽은 자도 저승에서

계속 산다고 믿어 피라미드를 건조했다.

시체를 미라로 만든 이유라든가, 또는 사자의 영원한 집인

분묘를 정비한 이유가 모두 이러한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피라미드는 초기왕조시대의 마스타바에서 발전된 것이다

최성기는 제3∼5왕조로 '피라미드시대’라 부른다.

최고 오래된 피라미드는 사카라에 있는 제3왕조 조세르왕의

계단식 피라미드로 재상 임호테프가 설계한 것이다.

피라미드를 건조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무거운석재를 필요한 높이까지 운반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피라미드 측면에 직각으로 경사로를 만들고 석재는 썰매로 운반하였다.

또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로 방첨탑이라고도 한다.

하나의 거대한 석재로 만들며 단면은 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피라미드꼴이며 태양신 신앙과 관계 있다.

문화의 꽃은 언어라 할 수 있는데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들 수 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가 서기전 3,000년을 전후하여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함으로써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기록되었는데

최근의 발견으로 이집트에서 먼저 상형문자가 발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내용은 다름 아닌 세금에 관계된 것이어서 최초의 문자는

역시 경제적인 필요에 의해 사용되기시작했음을 잘 알 수 있다.

이런 고대문화의 발달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고

라디오, 텔레비전, 신문, 잡지 등의 발달도

아랍 세계에서 가장 앞서며 문학·미술·무용·연극·영화 등의 분야에서도

전통적인 것과 현대작품이 공존하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집트의 사회는

이집트는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과밀한 나라 중 하나이다.

농촌의 잠재실업자와 도시의 실업자는 상당한 수에 이른다.

이슬람은 하루 5회의 예배와 단식월(라마단)의 준수 등

주민의 일상생활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이집트인들의 생활양식과 풍습에

이슬람 문화의 종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남녀격리의 습관, 남존여비의 경향 등이 있으며

일부다처제가 인정되었으나 국민생활의 근대화와

더불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농촌지역에는 고대의 가족제도가 있고,

메카 순례자를 존경하는 등 아직도 이슬람의 계율이 충실히 지켜진다.

이집트는 아랍세계의 교육, 문화의 중심으로

아즈하르대학과 같은 10세기 이래의 이슬람학술의 본거지와

가장 새로운 교육, 문화시설도 있다.

 

 

 

 

이집트의 경제는

국내 총생산 GDP 2,496억 달러 (2018, IMF),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2,573달러 (2018, IMF),

경제성장률은 5.6% (2018/19 회계연도)이고

인플레이션은 11.2%로 높다.

화폐단위는 이집트파운드(Egyptian Pound, EGP)이다.

주요 자원으로는 원유 (매장량 33억 배럴, 생산량 65만 배럴/일),

천연가스(매장량 62.8조입방피트, 생산량 72억 입방피트/일)가 있다.

매장량은 2017.12월, 생산량은 2019.12월 기준

주요수출품은 석유와 석유제품, 원면, 면사와 면제품이며,

주요 수출대상국은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 미국, 네덜란드 등이다.

주요 수입품은 식료품, 기계류와 수송장비, 화학제품, 윤활유, 연료와 광물이며,

주요 수입대상국은 미국, 독일이다.

이집트의 수출은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유, 원면 등 1차산품이 주종을 이루어 1차산품의

국제시세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반면, 수입은 식량 및 중간재, 자본재 등으로 대외 의존비율이 높다.

 

 

 

 

이집트의 대한관계는

1963년 8월에 북한과 수교하였고, 한국과는 1995년 4월에 수교하였다.

1967년, 1975년 중동전쟁 때 북한의 군사지원으로

친북한 외교정책을 유지하고 있으며

1970년 중반 이후 이집트의 문호개방정책으로 외교관계로 발전,

1980년대 이후 실질 협력 관계를 수립하였다.

1999년 2월 총리 김종필의 이집트 방문 후

4월에는 대통령 무바라크의 방한으로 양국관계가 더욱 진전되었다.

1994년이중과세 방지협정, 1988년 항공협정, 1989년 문화·과학·기술협력협정,

1997년 투자보장협정, 1998년 무역협정, 1998년 사증면제협정을 체결하였다.

1999년에는 과학기술양해각서, 외교연구원간 협력의정서에 서명하고

원자력협력의정서에 가서명하였다.

2000년 현재 대한수입 5억 1590만 달러, 대한수출 2억 597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납사, 동 및 합금, 원유 등이며

수입품은 자동차 및 부품, 일반기계, 직물 등이다.

 

 

 

이집트의 역사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 이집트는

주민의 생업과 정치, 종교, 문화의 정서가 서로 다른 두 지역처럼

나일 하류 삼각주의 하이집트와 나일 상류지방인 상이집트로 나누어졌다.

상이집트는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이용할 만한 토지가 점차 줄어들고

생산성도 떨어져 가는 나일 강변의 좁고 긴 지역이었다.

하이집트는 오늘날 카이로 북부에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 있는

인구가 밀집된 풍요로운 땅으로 다른 이민족들과의 교역과 교류가

육지와 바다를 통해서 활발이 이루어지던 지역이었다.

그후 1,000여 년에 걸쳐 끊임없이 적대하고 경쟁하던

상, 하이집트는 기원전 3000년경 무렵 상이집트의 나르메르(혹은 메네스) 왕에 의해

최초로 통일되어 수도는 중간지점인 나일 델타 곡창지대가 시작되는

멤피스에 건설되어 통일왕조가 시작된다.

통일 제1왕조에서 30왕조까지를 고대 이집트라 하며

크게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으로 나눈다.

제1왕조에서 2왕조까지는 왕조의 초기라 할 수 있으며

정부 조직과 행정 체계, 건축과 토목 기술, 예술 등 모든 면에서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집트 인들의 문자 체계인 히에로글리프도 정비되었고, 1년을 365일로 하는 역법이 완성되었다.

기원 전 약 2800년경의 제3왕조의 2대 군주 조세르는 이집트 왕들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사카라 지역에 최초의 피라미드(계단식)를 건설한 군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피라미드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제4왕조에서 나타난다.

제4왕조의 쿠푸 왕, 카프라 왕, 멘카우라 왕은 기자에 피라미드를 건축했다.

제4왕조는 고대 이집트 왕국이 정점에 도달한 시기였으며,

사람인 동시에 신이기도 했던 파라오와 그의 왕권이 문자 그대로 절대적이던 시기였다.

제5왕조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군주의 절대 권력은 제6왕조 때 완전히 약화되고

이후 이집트인들은 폭력과 내전으로 점철되고,

비관과 혼란이 가득한 제7~10왕조의 제1중간기를 겪게 된다.

마네토의 제11왕조(기원전2133~1991년)와 제12왕조(기원전 1991~1785년)에

해당되는 중왕국시대는 제11왕조의 테베의 왕자 멘투호텝 2세가 상·하 이집트를 재통합하고,

제12왕조의 세누세트 3세는 지방 족벌들을 평정해 강력한 중앙 집권을 확립했다.

12왕조시대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기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이집트 역사의 황금기라고 하는 세소스트리스 3세와 아메네메트 3세의 재위 기간은

평화와 안정의 시기였으며, 신인 동시에 인간이었던 파라오들이 인간 쪽에 더 가까워진 시기였다.

13왕조에서 나라가 분열되면서 여러 대 전부터 이집트 땅에 들어와 정착한

아시아 쪽 외국인들이 제16왕조와 제17왕조 시기에는 이집트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들을 힉소스(이민족 통치자들)라고 부르며 이 시기를 제2 중간기라 한다.

18왕조에서 20왕조는 뉴킹덤(신왕국)으로

제18왕조의 테베 왕가 출신 아흐모세는 힉소스의 세력을 델타 지역에서 소탕하고,

상하 이집트를 재통일하였으며, 그후 투트모스 3세는 이집트의 옛땅을 수복하고

아시아 지역을 편입하여 '나일 제4폭포'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러한 이집트의 정치 세력은 아멘호텝 3세 시대에 절정에 달했다.

그는 황금의 호루스, 진리의 통치자, 상하이집트의 왕, 라의 아들이라는 칭호로 불렸다.

신왕국시대에 누렸던 영화는 왕가의 계곡에서 출토된 화려한 부장품들,

그중에서도 투탕카멘 파라오시신의 얼굴 덮개인 투탕카멘 황금 가면 등으로 확인된다.

제19왕조는 람세스 1세부터 시작한다. 그의 뒤를 이은 세티 1세는

훌륭한 군사 지도자로 아시아의 지배자가 된 히타이트 왕국을 무력으로 압도하고

3대 군주 람세스 2세는 66년간 이집트를 다스린 위대한 왕이었다.

아부 심벨 신전 등을 건축하였고, 평화 조약과 혼인 동맹을 맺는 등

히타이트족과의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데 성공하였다.

제20왕조의 오랜 평화시대가 가고, 왕권이 몰락하고 사제들이 정치를 농단하고,

외세의 침입을 받는 제21~25왕조가 이어지는데 이 시기를 제3중간기라고 불린다.

리비아계 군주들이 통치하고 에티오피아 군주들과 앗시리아인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

기원전 663~332년의 후기왕조 시대는 이집트를 지배하던 아시리아인들을 무찌른

하이집트 델타 지역 사이스의 왕자 프삼티크 1세의 제26왕조로부터 시작된다.

제27왕조 시대에 페르시아의 군주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총독을 두어 다스렸으나 이집트인들은 복종하지 않았다.

외세의 강점에도 불구하고 건축과 조각과 문학이 흥성했다.

제28왕조를 연 사이스 출신 아미르타에우스에 의해 반 페르시아 투쟁은 드디어 승리를 거두고,

제29왕조시대에는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세력 균형에 힘입어

이집트가 다시 국제 무대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제30왕조의 마지막 군주 넥타네보가 페르시아군의 침입을 저지하는데 실패하고

누비아로 도망함으로써 이집트인에 의한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되고

페르시아 군주들의 제31왕조가 들어섰다.

 

 

 

 

 

31왕조에서 32왕조는 침략한 이민족들이 이끄는 왕조시대로 이집트 왕조시대는 끝났다.

31왕조의 페르시아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배하여 헬레니즘문화를 표방하는 그리스시대를 맞게 된다.

알렉산더 대왕은 알렉산드리아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그의 휘하 장군이었던 프톨레마이우스 1세가 32왕조를 세워 다스리게 되고

프톨레마이오스의 후손들은 기원전 30년 안토니우스와 연대하여 옥타비아누스와 대결하려 했던

클레오파트라 7세가 악티움 해전에서 패하고 알렉산드리아가 함락당하여 자살할 때까지 300년 이상 이집트를 다스렸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세계의 중심이었고, 학문과 예술의 수준이 세계 최고인 도시였다.

프톨레마이우스왕조 말기 클레오파트라 7세의 죽음으로 고대 이집트 시대는 막을 내리고 이집트는 로마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로마 황제들은 이집트의 전통을 존중하였고, 이시스 숭배를 비롯한 이집트 문화의 영향이 로마까지 파급되었다.

그리고 기독교가 이집트로 전파된다. 기독교는 발생 초기 박해를 받았으나,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보호 속에서 급격히 발전한다.

이집트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동로마 제국(비잔틴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비잔틴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자 대부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되고 토착종교는 거점을 점점 잃어 갔다.

기독교 수도자와 은둔자들이 급격히 늘어나 세계 최초로 이집트에 수도원이 등장하였다.

성서, 성자들과 순교자들의 삶에 대한 번역물이 주를 이루는 풍부한 콥트문학이 이집트에서 발달했다.

그러나 동로마제국은 AD642년 아라비아의 아무르 사라센제국의 침략전쟁에서 져서

이집트는 200~300년동안 아랍어를 쓰는 나라로 바뀌었고,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우마이야왕조를 시작으로 아바스왕조, 파티마왕조, 맘루크왕조등을 거치면서

이집트는 거의 동부 아랍어 사용권으로 만들어져 아랍화가 완성 되었고 이때부터 독립의 중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1517년 다시 오스만제국의 침략으로 오스만트루크의 속국이 되면서 경제와 문화가 쇠퇴해간다.

1789년 프랑스의 침략으로 몇년동안 유럽의 정치와 문화를 받아 들이게 되었으나

1802년 영,오스만 연합국에 의해 프랑스를 물리치고 무하마드 알리에 의하여 무하마드 알리왕조가 세워진다.

무하마드 알리왕조는 그와 그의 측근들에 의해 많은 치부와 팽창주의 때문에 영국에 많은 빚을 지게 되고

그로 인해 내란이 일어난 틈을 타 1882년 영국이 수에즈 운하 보호를 이유로 이집트 정부를 장악하였다.

이집트는 1914년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1922년 이집트 왕국으로서 부분적으로 독립하여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민족운동과 반영국운동이 격화하면서 완전한 주권을 찾았다.

1952년 쿠데타로 군주제가 타도되고,

가말 아브델 나세르가 2,000년 이상의 역사 속에서 최초의 이집트 본토 출신의 지배자로 떠올랐다.

나세르에 이어 사다트가 대통령이 되었으나 1981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암살 당하였고

그 다음 무바라크가 대통령이 되었으나 2011년 2월의 민주화시위에 의해 퇴진하였다.

이렇듯 5천년 역사 속에 수많은 왕조가 세워지고 쓰러지고 하면서 오늘날의 이집트가 있게 되었다.

참고로 1왕조라 함은 한사람의 왕이 다스린 것이 아니고

여러명의 왕들이 있으며 한 왕조가 끝날때 까지를 이른다.

1왕조에서 30왕조까지는 엄청난 시대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집트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총 15건

 

이집트의 세계유산은 세계문화유산의 등록기준 조건을 충족하여

세계유산위원회를 거쳐 등록된 이집트의 세계유산을 일컫는다.

이집트는 6건의 세계유산과 1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문화유산 중 1건은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분류되었다.

 

이집트 유네스코 세계유산 총 7건

고대 테베와 네크로폴리스 / (문화, 1979년)

누비아 유적 - 아부 심벨에서 필레까지 / (문화, 1979년)

멤피스와 네크로폴리스 — 기자에서 다슈르까지의 피라미드 지역 / (문화, 1979년)

아부 메나 그리스도교 유적 / (문화, 1979년), 2001년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 등재

역사 도시 카이로 / (문화, 1979년)

성 캐서린 지구 / (문화, 2002년)

와디 알 히탄(고래 계곡) / (자연, 2005년)

 

이집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총 4건

수에즈 운하 관련 기록물 / (기록, 1997년)

이집트 술탄과 군주의 권리증 / (기록, 2005년)

페르시아의 삽화 및 채식 필사본 / (기록, 2007년)

이집트 국립도서관의 맘루크 쿠란 필사본 컬렉션 / (기록, 2013년)

 

이집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 총 4건

베두인족의 서사시 ‘알 시랏 알 힐랄리야흐’ / (인류무형문화, 2008년)

봉술, 타흐팁 / (인류무형문화, 2016년)

알 아라고즈, 이집트의 전통 손 인형극 / (인류무형문화, 2018년)

대추야자와 관련된 지식과 기술, 전통과 관습 / (인류무형문화,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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