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운하와 곤돌라 투어
꿈을 꾸던 시절,
퀸 엘리자베스호를 타고 세계 각국의 항구에 내려 도시를 관광하고,
다른 나라 다른 도시로 옮겨 다니면서,
가슴 가득히 모든것을 받아들이리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의 인내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값진 시절이라 자위하며 보내던 시절에,
메리 포핀스처럼 모자를 쓰고 가방과 우산을 들고,
포샤가 현명한 판결로 상인 안토니오를 살린 베니스에 가보리라 했었다.
그 곳 베니스에 왔다.
베네치아는 원래 습지였는데, 6세기경 훈족(몽골족)의 습격을 피해 온
이탈리아 본토 사람들이 452년간 간척을 시작, 수상도시를 세웠다.
697년에는 초대 총독이 선출되어 독자적인 공화제통치를 한 베네치아공화국이 되었다.
11세기에는 십자군 원정의 기지가 되었으며, 12세기엔 아드리아해 해상 무역권을 장악하고
막강한 부와 권력을 지닌 도시국가로 발전하여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 물의 도시로 번영하였다.
그러나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점점 쇠퇴하다가
1797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침략을 받아 1805년 나폴레옹 치하의 이탈리아 왕국에 귀속되었다.
1815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다가 1866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형 크루즈선들도 정박해 있다.
언젠가 나도 크루즈선을 타고 여행 할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베네치아 초입까지는 철도와 자동차 도로가 연결되어 있지만,
베네치아 도시 안에서는 해상운송 수단에 의존하므로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내려 배를 타고 이동하였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베네치아 본 섬
베네치아는 1864년에 철도가 건설되어 육지와 연결되었고,
1932년에 자동차 도로가 건설되었으며 그 후 마르코 폴로 공항도 만들어졌다.
육지 베네치아와 섬 베네치아를 잇는 4Km의 자유의 다리는 무솔리니가 1933년에 건설하였다.
자유의 다리 옆의 철도에는 유로열차도 다니며, 철도의 종착역은 산타루치아역이다.
베네치아는 베네치아만 안쪽의 석호 위에
118개의 섬들을 만들어 400여개의 다리로 이어 만든 도시이다.
베네치아 근처 아드리아해에는
무라노섬, 부라노섬, 리도섬 토르첼로섬등 아름다운 섬들이많다.
베네치아 건너편 주데카섬
10세기부터 유대인들이 살던 곳이다.
16세기 말을 무대로 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살던곳이다.
처음으로 이자라는 개념을 더해 돈을 빌려준 이들이 유대인이다.
중세에 퍼진 흑사병이 유대인들이 퍼트렸다는 누명까지 쓰면서,
중세 유럽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국가였던 베네치아조차 유대인 게토를 섬에 설치하여
주데카섬에서 따로 살게 했다.
배에서 본 주데카섬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교회
바로크 교회당으로 팔각형의 신랑 위에
16개의 와권장식으로 허리부분을 치장한 화려한 무드로 알려져 있고,
살루테는 건강과 구원을 의미하는 말이다.
내부에는 틴토레토의 가나안 혼인, 티치아노의 성령강림 작품이 천장과 제단에 그려져 있으며,
다양한 조각상과 회화작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물 위에 떠있는 듯한 모습은 베네치아의 대표적 경관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베니스를 정복하러 온 나폴레옹이 찬사를 보낸 교회이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교회
1630년 무렵, 베네치아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이 흑사병으로 몰살당했다.
베네치아 공화국 의회는 만약 공화국이
흑사병에서 구원받는다면 새 교회를 지어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겠다고 선포하였다.
이 맹세를 지키기 위해 1년에 걸쳐 설계안 공모가 열렸고,
열두 가지 안 중에서 지금껏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건축가가 최종적으로 채택되었다.
그리하여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는 1682년, 발다사레 론게나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완성되었다.
우리나라의 안성기씨가 맥심커피를 선전한 곳이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교회
흰대리석과 둥글고 큰 쿠폴라로 인해 산 마르코성당과 함께 베네치아의 상징이다.
아드리아해에서 대운하로 연결되는 지점에 세웠는데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의 돔 양식을 영향을 받아 바로크 양식으로 1682년에 지어졌다.
나폴레옹이 감탄한 이 성당은 100만개의 나무 기둥을 박은 위에 올라서 있다.
산 조르조 마조레섬과 성당
산 마르코 광장의 남쪽 해상에 떠 있는 산 조르조 섬에 위치한 성당이다.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설계하였고 1566년과 1610년 사이에 건축되었다.
1797년 천년을 이어 온 베네치아 공화국 최후의 날 , 나폴레옹 군대가 들이닥쳐 수도사들의 식당에 걸린
파올로 베로네세의 명화 '가나의 혼인잔치'를 떼간 곳으로 유명하다.
산 조르조 마조레섬과 성당
산 마르코 광장 바다 건너 맞은편 운하 입구에 있는
베네딕트수도회 계열 성당으로
성당안에는 티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이 있다.
배에서 내려 곧바로 성당으로 들어서게 돼 있으며,
종탑에 오르면 베네치아 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한다.
베네치아로 들어가는 배에서 본 두칼레 궁전과 종탑 그리고 산 마르코 성당의 쿠폴라
원래 갯벌가에 6개의 섬이 있었는데,
백향목 말뚝을 박아 인공으로 112개의 섬을 만들어 현재 118개의 섬이 있다.
만든지 15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건재한 것을 보면 그 옛날의 토목 기술이 놀랍기만 하다.
백향목 말뚝은 대운하에서는 길 안내 구실까지 한다고 한다.
레바논에서 수입한 고급 소나무 백향목을 일정한 간격으로 뻘에 박고
그 사이에 잔 나무 기둥을 박아 단단한 지대를 만든 뒤 건물을 올린다.
물 속엔 산소가 적어 나무가 잘 썩지 않고,
물 속 광물질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경화 현상이 일어나
나무가 바위처럼 굳어진다고 한다.
리알토 다리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다리로 대운하에서 폭이 가장 좁은 곳에 놓은 다리로
원래는 목조 였으나 16세기말 건설된 최초의 베네치아 석조 교량이다.
차승원씨가 순창 고추장 광고를 찍었던 곳이다.
리알토 다리
베네치아의 대운하에 의해 양분된 두 지역을 잇는 주요 다리들은
스칼찌, 리알토, 아카데미아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리알토 다리
원래는 목조물이었는데 1591년 안토니아 다 폰테가 석조다리로 재건하였다.
산 마르코 광장과 산 폴로지구를 연결해주고 있으며,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인다.
다리 양옆으로는 각종 상점들이 즐비한 베네치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베네치아는 S자 모양의 총 길이 3.8Km, 너비 30-70m의
대운하에 의해 크게 둘로 나뉜 형상이다.
베네치아의 수상 교통수단은 곤돌라와 수상버스 바포레토와 수상택시 모토스 카피 3종류가 있다.
대운하에는 빠르고 큰 배들이 많이 다니기 때문에 곤돌라는 50척만 운행 허가를 내 주었다 한다.
베네치아의 명물 곤돌라
45개의 운하길이 베네치아 곳곳을 미로 같이 엮고 있다.
곤돌라의 역사는 천년이 넘는데 처음 공식 문헌에 나타난 기록이 1094년이라 한다.
그 역사가 참으로 대단하다.
곤돌라는 천년전부터 베네치아사람들의 발구실을 해 왔다.
식료품, 농산물도 운반했는데 16세기엔 1만척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작은 모터보트를 쓰는 사람이 많고
곤돌라는 몇백척만 남아 관광용으로 운행 된다.
3m나 되는 긴 노를 젓기도 하고 물 밑바닥을 노로 밀기도 하며 배를 움직인다.
50대의 헤밍웨이는 베네치아에서 연인 아드리아나 이반체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면서 베네치아를 가르켜 '크로스 퍼즐을 푸는 것보다 재미있는 도시'라고 했다.
트집 잘 잡았던 미국 현대문학의 효시로 평가 받는 마크 트웨인도 곤돌라를 타보고 나서
'고색창연한 집들이 펼쳐진 베네치아는 완벽했다'고 감탄했다 한다.
"몇 분후 우리는 대운하로 들어섰다. 부드러운 달빛 속에 시와 낭만의 베네치아가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물가에는 장엄한 대리석 궁전들이 길게 줄지어 솟아 있었다.
곤돌라들은 날렵하게 여기저기 미끄러져 가다가 문득 예기치 않은 골목들 속으로 사라졌다.
육중한 돌다리가 반짝이는 물결 위로 비스듬히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사방에서 삶의 생동감이 넘쳐났다. 음악 소리가 물 위를 둥실넘어 들려왔다.
베네치아는 완벽했다."
-마크 트웨인의 바다 위 오솔길을 따라 중에서-
왕자와 거지, 톰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작가 마크 트웨인
'베네치아에 와서야 꿈이 현실인 것을 깨달았다.'
아드리아해의 여왕 베네치아를 찾은 퓰리처상을 4회 수상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던진 첫마디이다.
큰 도로인 대 운하
대운하는 몇 세기동안 요트 출입이 금지돼 있었지만 다니엘 크레이그가 주연한 2006년 작품
007 카지노 로얄을 찍을때 베니스시가 요트 출입을 처음으로 허가 했다고 하며,
숀 코너리의 위기일발, 로저무어의 문레이커에 이어 007시리즈중 세번째로 베네치아 로케를 했다고 한다.
카지노 로얄에선 대운하 옆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대형 세트장에서 찍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완성한 것이다.
카지노는 르네상스시대 귀족들이 갖고 있던 사교 오락용 별관을 뜻하는데,
1638년 최초의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대중 도박장 리도토 카지노가 들어선 곳이 바로 베네치아이다.
카사노바도 자주 드나들었다 한다.
수로에서 곧바로 건물로, 집으로 들어서는 뒷문이 나 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무너져도 물 위에 세운 집은 수백년 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19세기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로 지반이 꺼지고
20세기 후반 지구 온난화로 바닷물 수위가 높아지면서 베네치아는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서 곤돌라 투어를 시작하였다.
곤돌라 요금은 여행사 페키지안에 들어 있어서 얼마인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30분에 60유로쯤 된다고 한다.
단체라 조금 할인 된 요금인지...
곤돌라 정류소 앞에 있던 멋진 건물
곤돌라는 길이 10m 정도에 폭이 1.2m-1.6m의 규모로
뱃 머리(선수)와 뱃 꼬리(선미)가 휘어져 올라가 있어
마치 고대의 배 모양을 하고 있고, 배 사공이 4~5m나 하는 긴 노를 저어 운행하고 있다.
곤돌라의 색은 모두 검은색으로 통일돼 있다.
예전에 시민들의 자가용이었던 곤돌라는 부의 상징이어서
부자들 사이에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니는 경쟁이 붙었다 한다.
그러나 페스트가 휩쓸고 지나간 뒤 자숙하자는 뜻에서 베네치아 정부가 1552년 시령을 만들어
곤돌라를 검은색으로 통일하고 요란한 장식도 금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곤돌라엔 광이 나는 까만 옻칠이 되어 있다.
수로 위로는 모두 455개의 다리가 있는데 이는 순전히 보행자를 위한 다리들이고 ,
교통과 수송은 순전히 수로를 통해 이루어 진다.
베네치아의 골목길인 소운하
운하들에 의해 끊어진 도시 곳곳들이 350여개의 다양한 다리들에 의해 연결 되어 있다.
1480년대까지는 나무로 만든 다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후 아치 모양의 석조물로 바뀌었다.
빛 바랜 파스텔 톤 집들은 적어도 300~500년 됐다고 하며,
허름한 외벽 안에는 화려하게 꾸며 놓고 산다고 한다.
9월엔 곤돌라 경주 축제가 열려 곤돌리에들의 솜씨를 겨룬다.
경찰 모터보트이다.
수상택시 정류소
곤돌라란 이탈리아어로 흔들리다라는 뜻이다.
레스토랑
소운하 안에 있는 가게
카페인가 보다.
바로 소운하에서 들어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말뚝 2개는 배를 묶어 두는 용도라 한다.
여기서 돌아 대운하로 나간다.
도시 곳곳에 대운하로 흐르는 45개의 크고 작은 물길들이 나 있다.
곤돌리에가 부르는 산타루치아를 들을 수 있는 곤돌라를 탈려면 비용이 더 든다고 한다.
다리 위에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다. 우리는 저들을 구경하고...ㅋㅋㅋ
곤돌라 뱃사공을 곤돌리에라고 부른다.
옛날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세습됐지만 요즘엔 면허시험을 거쳐 자격증을 따야 한다.
이 좁은 미로같은 수로를 곤돌리에들은 잘도 빠져 나간다.
곤돌라의 운임은 흥정에 따라 기복이 많다.
줄무늬 티셔츠차림의 곤돌리에들은 개인업잔데
흥정을 잘하면 싸게 탈 수도 있다 한다.
곤돌리에 1
곤돌리에2
곤돌리에3
곤돌리에4
곤돌리에5
곤돌라에서 내려 걸으면서 찍은 골목길
집집마다 자가용인 보트들이 있다.
가라앉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바다 속 점토질 바닥에 나무를 묻고 석회암과 대리석을 얹어 만든 인공 기반 위에 건설되었다.
나무는 토양 속에서 공기와 차단되면서 화석화되어 단단한 토대를 형성했는데,
근래 들어 지반이 급격히 침하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면서 지반 침하를 막으려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12월의 베네치아는 심할 때는 1.5m높이로 물이 찰 때가 있어 1층은 비워 두고 있는 집이 많다고 한다.
지반 침하와 해수면 상승이 겹쳐 2030년이면 사람이 살 수 없게 될 거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와 있다.
그래서 베네치아는 엄청난 돈을 들여 '모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앞바다의 방파제 사이로 난 수로를 더 좁히고 바닷물 높이에 따라 수문이 자동으로
여닫히게 하는 공사인데 워낙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 별 진척이 없다고 한다.
최근엔 도시 밑에 바닷물을 주입해 도시 전체를 들어 올리는 아이디어까지 나왔다고 한다.
도시 주변 석호 바닥에 10년동안 깊이 600~800m 되는 우물 형태의 관 12개를 심고
이 관으로 바닷물을 주입하면 20~30cm쯤 도시가 올라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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