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구박물관
국립 대구 박물관은 대구를 비롯한 경상북도 서북부 지역의
문화유산을 연구, 조사, 전시, 보존, 교육하기 위해 1994년 12월 7일 개관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의 범어공원 안에 지상 2층, 지하 1층의 벽돌건물로 지어졌고,
국립박물관으로는 8번째로 문을 열었다.
박물관은 고대문화실, 중세문화실, 섬유복식실, 야외 전시실, 사이버 전시실 등을 통해
대구·경북 지역의 선사문화, 삼국시대의 고분문화, 불교문화, 사림문화,
민속놀이와 주거문화 등을 알기 쉽게 내용별로 전시하고 있다.
(출처:네이버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케빈 카터가 1994년 수상하고 3개월뒤 여론의 비판을 받아 자살한,
굶주림에 지쳐 엎드려 있는 어린 소녀의 뒤로 독수리 한 마리가 먹잇감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 유명한 사진을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아쉽게 보지못했다.
앞 마당은 민속 놀이터로 활용
야외 전시장
분수대
중앙 천정은 유리로 되어 있어 채광이 잘되는 것 같다.
[고대문화실]
대구, 경북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고고, 역사 관련유물을 소개하는 전시실
상주 신상리 출토 유물 구석기시대
대구 월성동 출토 유물 구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대구 서변동 신석기시대
남부지방의 빗살무늬토기는
그릇의 형태와 무늬의 구성면에서는 중서부 지방의 것과 비슷하나,
무늬의 선이 굵고 빗금무늬보다는
구획된 선안에 빗금을 채워 넣는 집선문이 주류를 이루는 것이 차이가 난다.
결합식낚시바늘 울산 신석기시대 흑요석촉 경남지역 신석기시대
조가비팔찌 발찌 통영 연대도 신석기시대
가락바퀴 발화석 대구 서변동 청동기시대 숫돌 대구 경북지역 신석기시대
위: 간돌창 대구 경북지역 청동기시대 밑: 화살촉 상주 청리 청동기시대
별모양도끼 대구 서변동 청동기시대 간돌도끼 대구 경북지역 청동기시대
돌칼 청동기시대
괭이 고령 법리 청동기시대 갈판, 갈돌 대구 월성동 청동기시대 반달돌칼 대구 경북지역 청동기시대
붉은간토기 대구 상동 청동기시대
항아리 대구 청동기시대
대롱옥, 비취옥 영덕 오포리 청동기시대 활석목걸이 안동 사신리 청동기시대
요령식동검 구미 선산읍 청동기시대 한국식동검 대구지역 철기시대
굽다리바리 대구 팔당동 철기시대
검은간토기 대구 팔당동 철기시대
덧띠토기 대구 팔당동 철기시대
청동방울 대구 평리동 철기시대
고깔동기 대구 평리동 청동도끼 대구 서변동 이형동기 대구 평리동 철기시대
장대투겁 대구 신청동 철기시대
깃대 또는 의장용의 장대 끝부분에 매어 달거나 끼워 사용한 것이다.
주술적인 성격을 지니거나 특수한 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투겁창 대구 신청동 철기시대
본뜬거울 대구 평리동 철기시대
목걸이 대구 팔당동 원삼국시대 본뜬거울 대구 평리동 철기시대
투겁창 대구 팔달동 원삼국시대
원삼국시대는 삼국시대의 초기 단계로 고구려가 국가 단계로 성장하고
백제와 신라, 가야의 모태인 삼한이 있었던 시기이다.
도끼모양철기, 쇠도끼 대구 팔당동 원삼국시대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 경산 신대리 원삼국시대
쇠뿔손잡이항아리 대구 팔달동 원삼국시대
주머니단지 대구 팔당동 원삼국시대
독 경산 임당동 원삼국시대
굽다리접시 원삼국시대
검은간토기 원삼국시대
뼈로 만든 바늘, 도구 경산 임당동 삼국시대
제사토기 경산 임당동 삼국시대
방울잔 삼국시대
청동방울 삼국시대
거북모양토기 대구 달성동 삼국시대 배모양토기 달성 평촌리 삼국시대
말모양토기 달성 삼국시대
기마인물형토기 삼국시대
쇠솥 의성 학미리 삼국시대
고리자루칼 맨위: 상주 신흥리 중간: 경산 임당동 밑: 상주 신흥리 삼국시대
오리모양토기 삼국시대
얼굴모양토우 대구 삼국시대 말모양토우 대구 삼국시대
복골 경산 임당동 삼국시대
등울 대구 비산동 삼국시대
안장가리개 대구 내당동 삼국시대
재갈 삼국시대 재갈 대구 비산동 삼국시대
발걸이 대구 비산동 삼국시대
원형을 복원한 갑옷
투구 삼국시대
목가리개 삼국시대
뚜껑굽다리접시 달성 문산리 삼국시대
뚜껑굽다리접시 삼국시대
뚜껑굽다리접시 대구 두산동 삼국시대
뚜껑굽다리접시 고령 지산동 삼국시대
바리모양그릇받침 칠곡 삼천리 삼국시대
원통모양그릇받침 달성 문산리 삼국시대
화로모양그릇받침 삼국시대
말모양 허리띠고리 상주 신흥리 삼국시대
금동관 대구 비산동 삼국시대
금동관 의성 탑리 삼국시대
금동신발 의성 탑리 삼국시대
금동제관장식 의성 탑리 삼국시대
관장식은 유기질의 모자 앞에 세워 붙이는 장식물이다.
신라의 관장식 중에는 금이나 금동제품은 적은 편이다.
나비모양관장식 의성 탑리 삼국시대
신라의 관장식 중에는 날개를 펴고 나는 새나 나비모양 장식도 있는데
이처럼 관장식에 새의 날개를 표현한 것은
아마도 무덤 주인을 하늘로 데려가 달라는 기원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은제관장식 경산 임당동 삼국시대
신라의 관장식 중에는 은제품이 가장 많다.
허리띠, 드리개 경산 조영동 삼국시대
목걸이 대구 경북지역 삼국시대
귀걸이 삼국시대
은팔찌, 금제반구형장식 삼국시대 굽은옥 대구 경북지역 삼국시대
[중세문화실]
대구, 경북 지역의 불교문화와 유교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실
반가사유상 김천 양천동 신라 7세기
반가사유상은 원래 석가모니가 태자였을 때
인생의 덧없음을 사유하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음보살 선산군 고아면 신라 7세기 전반 국보 184호
중국적인 요소가 강한 복잡하고 화려한 장신구의 표현이 매우 독특하다.
이 시기 금동보살상으로서는 유례가 드문 작품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갖춤 칠곡 송림사 통일신라 8세기 보물325호 집모양 사리 그릇
1969년 송림사 오층전탑을 해체 수리할 때
2층 탑신의 거북모양 석함 안에서 사리기와 여러 공양물이,
5층 옥개석 윗면에서는 고려상감청자합이 발견되었다.
화려한 전각모양 사리기 안에 녹색유리 사리병과 잔을 안치하였다.
금판을 오려 만든 신라 고유의 금속공예기술과
서역에서 유입된 유리제작 기술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갖춤 나뭇가지모양 관장식 보물325호
송림사는 진흥왕 5년(544) 명관이 중국에서 가져온 사리를 모시기 위해 세운 절로,
여기에는 우리 나라에 몇 개밖에 남아 있지 않은 벽돌로 만든 송림사 오층전탑(보물 제189호)이 있다.
1959년 이 탑을 수리하기 위해 해체하면서 탑 안에 있던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의 다양한 유물들이 하나의 탑 안에서 발견된 점으로 보아,
보수가 여러 차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갖춤 꾸미개,굽은옥, 고리 보물325호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갖춤 고려 상감청자합 고려 12세기 보물325호
1969년 송림사 오층전탑을 해체 수리할 때
2층 탑신의 거북모양 석함 안에서 사리기와 여러 공양물이,
5층 옥개석 윗면에서는 고려 상감청자합이 발견되었다.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의 다양한 유물들이 하나의 탑 안에서 발견된 점으로 보아,
보수가 여러 차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섬유복식실]
실, 직조, 색채, 옷이라는 4개의 키워드를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 옷에 대해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전시실
구름과 보배무늬 철릭 조선 16세기
철릭은 고려시대 말 원나라를 통해 전래된 옷으로
주름 잡힌 치마형의 하의와 상의가 연결된 원피스 형태가 특징이다.
또 양쪽 소매의 중간이 분리되도록 만든 것도 있는데, 이는 유사시 소매를 떼어 불편함이 없게 하기 위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남자들이 일상적으로 착용했던 옷이면서 , 문무백관이 원행을 떠날때에는 융복으로 착용하였다.
융복용 철릭은 좋은 직물을 사용하여 일상복으로 입는 철릭과는 차별화 하였다.
광다회 조선
철릭에 매는 띠로 다회란 매듭을 엮기위해 필요한 여러가닥의 색색의 실로 만든 끈목을 말한다.
세조대 조선
도포나 전복, 창의에 착용하는 가느다란 띠
무명 저고리 조선 17세기 대구 달성 진주 하씨(1580~1652)묘
진주 하씨는 현풍 곽씨의 19세손인 곽주(1569~ 1617)의 두번째 부인이다.
1989년 4월 현풍 곽씨 문중에서 무덤을 옮기는 과정에서
저고리와 장옷등 의복류 81점과 그의 남편인 곽주가 진주 하씨에게 쓴 편지 등 서간물 172점이 발견되었다.
부인의 옷과 편지는 후손들에 의해 국립대구박물관에 기증되어 전시와 연구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17세기 중기의 복식사 연구뿐만 아니라
한글로 쓴 서간문들은 당시의 언어와 생활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소모자 조선 17세기 대구 달성 진주 하씨(1580~1652) 묘 중요민속자료 제229호
저고리 조선 17세기 전반 충북 청주 신득연(1585~?)묘
영조대왕의 도포 조선 1740년 대구 파계사 관세음보살 복장유물 중요민속자료 제
불복장물이란 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할 때 불상의 몸안에 넣는 물건을 말한다.
주로 경전이나 발원문, 발원자들의 옷, 직물류 등을 넣는다.
1979년 파계사 원통전의 관세음보살상을 개금할 때
발견된 도포는 영조의 1740년 옷이란 기록이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발원문에 의하면 영조 16년(1740) 9월 파계사 대법당을 수리하고 영조가 탱화 일천불을 기부하면서
이 곳을 왕실을 위해 기도하는 곳으로 삼고, 영조의 청사상의를 복장하여 만세유전을 빈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치막 조선 17~18세기
임진왜란 이후에 왕 이하 서민에 이르기까지 두루 입었던 옷으로 ,
사대부들은 관복 아래 받쳐 입거나 외출복으로 입었다.
겨드랑이부터 옆이 트여 있어 안쪽 옷이 보이며, 깃은 곧고 소매는 넓다.
단령 조선 19세기~20세기 전반
단령은 조선 말기까지 모든 관원이 집무복으로 착용한 상복(常服)
옷깃이 둥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조선시대에는 1품~9품의 관리와 유생들이 입었다.
특히 왕이 입은 용무늬가 있는 단령을 곤룡포라 한다.
목화 조선
허리띠 조선
활옷 조선
조선 왕조때 공주와 옹주의 대례복으로, 서민에게는 혼례때에 한하여 입도록 허락 되었다.
혼례를 치를 때에는 활옷을 입고 화관을 썼으며, 갖가지 용잠이나 봉잠비녀로 장식했다.
부채 조선
화관 조선
당의 조선
당의는 간이예복 또는 소례복으로 평복 위에 입었으며 궁중에서는 평상복으로 입었다.
심의 조선 경기도박물관 소장
유학자들이 입던 겉옷.
백세포로 만들며 깃·소맷부리 등 옷의 가장자리에 검은 비단으로 선을 두른다.
흥선대원군 기린흉배 조선 19세기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상복(常服) 단령에 달았던 기린이 수놓인 흉배
장옷 조선
장옷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는 쓰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초, 중기까지는 여성들의 대표적인 겉옷이었다.
두툼한 솜을 댄 점, 화려한 직물을 사용하거나
고름의 형태나 위치가 실용적으로 디자인 된 것을 보면 조선시대 후기의 장옷과는 차이를 보인다.
토시 20세기 전반
풍차 20세기 전반
조선시대 남녀 두루 사용한 방한모로
남자용은 위에다 갓이나 관을 쓰고, 두루마기와 함께 착용하였다.
머리 윗부분이 트여 있고, 목덜미까지 오며, 뒤에서 보면 삼각형이다.
앞은 이마까지 오고, 귀와 턱을 가리는 내리닫이 볼끼가 있다.
초기에는 양반계급에서 주로 썼으나 점차 평민화 되었다.
아얌 20세기 전반 김경선 기증
아얌은 조바위와 함께 조선시대 말에 생긴 여성용 방한모이다.
예복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예모를 대신하여 사용되기도 했다.
귀를 덮지 않고 머리 윗부분만 감싸는 형태로 아얌의 위에 큰 댕기를 늘어뜨린다.
비녀 조선
비녀는 부녀자가 쪽을 진 머리가 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꽂거나,
관이나 가체를 머리에 고정시키기 위하여 꽂는 장식품이다.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의 사절복색자장요람에 보면, “비녀도 계절에 맞추어 직금당의에는 봉잠이나 옥모란잠을 꽂는다.
평시 문안에는 10월 초하루부터 용잠, 2월에는 모란잠, 4·8·9월에는 매죽잠이나 옥모란잠을 꽂는다.
원삼에 큰머리를 할 때는 칠보수식을 하고, 금박당의에는 옥봉잠·원앙잠 또는 이사련잠을 꽂는다.
옥칠보가 무거울 때에는 금칠보를 하여도 좋으나,
원칙적으로는 젊어서는 옥칠보를 하는 것이 좋고 노년에는 금칠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조짐머리에는 10월부터 정월까지 도금용잠을 꽂고, 2월에는 옥모란잠을 꽂는 것이 좋으나,
조심스러울 때에는 은모란잠을 꽂아도 좋다. 옥모란잠은 호사할 때 꽂으면 더욱 좋다.
5월에 백광사당의를 입을 때는 민옥잠이나 용잠에 떨잠을 꽂는다.
봄과 가을에는 모란잠·매죽잠을 꽂고 그 위에 이사떨잠을 꽂아 수식한다”고 하였다.
뒤꽂이 조선 떨잠 조선
중국 명나라에서 전해진 장신구로 생각되는 떨잠은
왕비나 내외명부 여인들이 예복을 입고 머리를 장식할 때 가운데와 양 옆에 꽂은 것이다.
용수철 모양 장식이 움직일 때마다 떨린다고 해서 떨잠이라 부르며 떨철반자라고도 한다.
모양은 중앙에 꽂는 나비 모양을 한 선봉잠과 양쪽에 꽂는 둥근 모양의 반자가 있으며, 사각모양의 것도 있다
조선시대 의식 때 왕실이나 상류계급에서 큰머리나 어여머리에 꽂았던 떨잠도 꽂는 장소야 어디든지 뒤꽂이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 것은 나비모양·둥근모양·사각모양 등의 옥판에 칠보·진주·보석 등을 장식하여 만든 것으로
큰머리와 어여머리의 중심과 양편에 하나씩 꽂았던 최고의 수식품이다.
빗치개 조선 뒤꽂이 조선 김영숙 기증
뒤꽂이는 쪽찐 머리 뒤에 덧꽂는 비녀 이외의 장식품으로
실용을 겸한 뒤꽂이로는 빗치개와 귀이개가 있다.
빗치개는 가리마를 탈 때나 밀기름을 바르거나 빗살 틈에 낀 때를 빼는 데 필요한 것으로,
다른 화장도구와 함께 경대에 두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머리를 장식하기에 알맞은 형태로 만들어서 머리 수식물의 하나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첩지 조선 김영숙 기증
조선시대 왕비를 비롯한 내외명부가 머리를 치장하는 장신구이다.
왕비는 도금한 용첩지를 쓰고
내외명부는 신분에 따라 개구리 형태의 첩지를 썼다.
떠구지
조선시대 궁중에서 비빈들이 큰머리를 틀 때, 머리 위에 얹던 나무로 만든 머리틀.
나무 표면을 머릿결처럼 조각하고 검은 칠을 했다.
아랫부분에 비녀를 꽂을 수 있는 2개의 구멍이 뚫려 있고, 자주색 댕기를 맸다.
원래 다리(月子)로 큰머리를 만들어 얹었는데, 정조 때에 체계가 금지되면서 나무로 떠구지를 만들게 되었다.
화각 빗접 조선
수저집 조선
베갯모 조선
규중칠우
바느질 도구로는 바늘을 비롯하여 자, 누비밀대, 골무, 가위, 인두, 다리미 같은 재봉 도구와
반짇고리, 바늘집, 바늘쌈, 바늘꽂이, 실첩, 실패 같은 정리 도구가 있으며
인두질할 때는 인두관과 화로가 반드시 따랐다.
특히 바늘, 실, 자, 인두, 다리미, 골무, 가위를 규중 여인의 일곱 벗으로 꼽았다.
인두
불에 달구어 옷의 솔기나 모서리 등 천의 구김살을 눌러 펴는 데 사용하는 바느질 용구.
망건, 대모풍잠 조선 동곳 고려
풍잠은 망건의 앞에 다는 장식품으로
갓이 뒷쪽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고정하는 역활을 한다.
상류층에서는 대모나 호박, 마노 등을 사용하여 신분에 따라 풍잠의 재료를 다르게 하였다.
동곳은 상투를 튼 후에 풀어지지 않도록 위에 꽂는 장식이다.
갓끈 조선
갓을 매는 데 사용하는 끈.
대개 헝겊으로 만들었으나
옥ㆍ마노(차돌의 하나)ㆍ호박ㆍ산호ㆍ밀화ㆍ수정 등으로 만든 장식적인 갓끈도 있었다.
갓솔 조선
경대 조선 남자의 휴대용 거울
털배자 1940년대 김경선 기증
굴레 조선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김영숙 기증
누비타래버선 1960년대 김영숙 기증
굴레는 조선시대 때 여자아이들이 쓰던 모자로
조선 후기 상류층 가정에서 돌 무렵부터 4, 5세 정도의 어린이들에게 호사 겸 방한모로 씌웠다.
주로 비단으로 만들었으나, 여름에는 사(紗)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누비타래버선은 돌 전후의 어린이가 신는 누비 버선의 한 가지.
양볼에 수를 놓고 코에 색실로 술을 단다.
돌띠, 까치두루마기 1960년대 김영숙 기증
까치두루마기는 설빔으로 주로 남자 아이들이 입는 5색으로 지은 두루마기.
돌띠 조선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김영숙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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