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시가지 ( 유네스코 탈린 역사지구)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 돔 성당, 톰페아성(국회의사당), 톰페아 언덕 전망대
북유럽 여행 제 9일째
라트비아 리가의 구시가지를 보고
점심 식사 후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넘어 왔다.
오늘은 정말 내 생애에서 이렇게 드라마틱한 날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삼시 세끼를 다 다른나라 수도에서 먹은 날이기 때문이다.
아침은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의 유로파 스테이 호텔에서,
점심은 라트비아 수도 리가의 코롬보 현지 레스토랑에서,
저녁은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사계미 중국 레스토랑에서 각각 먹은 것이다.
발트 3국을 하루만에 정복한 기분 좋은 하루였다.
오후에 도착한 탈린은 자전거 경기를 구 시가지에서 개최해,
골목 통제를 하는 바람에 구 시가지를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겠다.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옮겨 가야 하는데
길을 펜스로 막아 놓아 빙 두르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에스토니아 는
본토와 발트 해의 800여개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1918년까지 독립국이었던 에스토니아는 1940년 소련에 합병되었다가
1991년 독립을 되찾았다.
북쪽으로 핀란드만, 동쪽으로 러시아 연방, 남쪽으로 라트비아,
서쪽으로 발트해와 접해 있다.
에스토니아는
남한면적의 절반 정도 되는 면적을 가지고 있고
인구는 136 만명 (2008 추계)으로 수도인 탈린에 40여만명이 살고 있다.
주 종교는 루터교이며 국민 총생산의 45%가 목재와 펄프산업이다.
IT강국으로서 이미 3년전에 인터넷 선거를 한 나라이다.
핸드폰 하나면 극장, 은행, 등 공공 업무를 포함한 모든업무를 처리할 정도로
IT가 발달된 나라이다.
탈린은 중세시대부터 항구도시로 번성했고,
과거 한자동맹에 속했던 상선들이 핀란드만과 발트해로 수없이 드나들던 곳이다.
15-16세기는 탈린의 전성기로서 시내에 멋진 건축물들이 세워졌는데,
부유한 이도시를 탐내는 외침이 잦아지자,
도시의 중심이 바다에서 내륙쪽으로 점차 옮겨갔다고 한다.
그렇게해서 내륙쪽의 비시고로트언덕에 도시가 형성됐고,
해안가에는 건물다운 건물이 없다고 한다.
탈린은 발트해의 핀란드만 연안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발트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중의 하나인 에스토니아 수도이다.
13세기 십자군 기사단에 의해 세워진 성채도시이며
한자동맹의 주요도시로 화려한 공공건물과 상업시설들로 유명하다.
자갈로 포장된 거리, 중세풍의 건물과 성벽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탈린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확연히 구분되어 있는데,
구시가지는 1997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219년 발데마르 덴마크왕이 에스토니아 북부를 점령한 후.
수도 탈린은 덴마크인에 의해 도시가 형성되었다.
그 후 스웨덴, 독일, 러시아, 구소련 지배를 받으며
유럽 각국 문화를 흡수하였으며 탈린에는 현재 40여만명이 살고 있다.
에스토니아어와 핀란드어, 러시아어, 영어를 사용한다.
차창으로 톰페아 성 성벽의 포탑인
키엑 인 드 쾩(Kiek in de kok부엌을 들여다 보아라)이 나무 사이로 보인다.
탈린시 히르베 공원
구 소련에서 독립한 23개의 크고 작은 공화국 중에서
유럽쪽에 제일 가까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탈린 올드타운은
1154년에 세워진 발트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아름다운 중세 14~15세기의 거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풍스러운 도시이다.
히르베 공원(Hirve park)에 있는 동상
이 공원을 지나면 탈린 구 시가지의 톰페아 언덕에 있는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이 나타난다.
Johan Pitka.
에스토니아 독립전쟁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활약했던
에스토니아의 유명한 군대 사령관이다.
탈린 구시가지 관광은
고지대인 톰페아 언덕에서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 돔 성당, 톰페아성을 보고난 뒤
톰페아 언덕 전망대에서 고풍스러운 탈린 시내 전경을 조망하고
저지대의 옛스러운 중세 골목 길에서 명소들을 찿아보고,
비루 게이트가 있는 비루 거리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
히르베 공원을 지나면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이 있고
맞은 편에 톰페아 성이 있다.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
톰페아 언덕 위에 자리잡은
양파 모양의 지붕을 한 돔형 구조의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은
탈린에 있는 정교회 중 가장 크고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성당으로
높은 곳에 있고 독특한 외관 때문에 먼 곳에서도 눈에 잘 띄는 건물이다.
러시아가 에스토니아를 점령하고 있던 1900년에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건축가 Mikhail Preobrazhenski에 의해 설계된 이 교회는
탈린에서 가장 거대하고 부유한 러시아 정교회이며
교회 내부는 페테르부르크의 성당들처럼 모자이크와 아이콘으로 잘 꾸며져 있다.
내부 촬영은 금지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은
톰페아 언덕에1894~1900 사이에 세워졌다.
내부는 성화와 아이콘으로 가득하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서는 의자가 없이 서서 예배를 드리며
노란 밀랍 양초에 불을 밝힌다.
알렉산더 네프스키왕자는(1220~1263)는
1242년 4월 5일 페입시호 둑에서벌어진
독일과의 얼음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독일의 동방 진출을 차단 시킨 인물로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이다.
성당의 옆면
성당의 종탑은 11개의 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탈린에서 가장 웅장한 종 소리를 낸다.
11개의 종 가운데는 무게가 1.5톤으로 탈린에서 가장 큰 종도 있다.
십자가 두개 아래에 초승달이 있는 첨탑은
러시아 정교회의 상징이다.
러시아가 에스토니아를 점령하고 있던 시기에
에스토니아의 영웅 무덤위에 세웠다고 한다.
성당은 성 페테르부르크 출신의 미하일 프레오브라즈헨스키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노브고라드의 왕자인 알렉산더 야로슬라비츠 네프스키에게 헌정되었다.
내부 모습 (자연속의 돌담님 블로그에서 퍼옴)
에스토니아의 국회의사당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 맞은 편의 핑크색 건물은 국회의사당 건물인데
이는 원래 에스토니아의 톰페아 성이다.
13C 경 덴마크인이 지었고, 14~15C에 더 높고 두껍게 개축했으며
톰페아 성의 주건물은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인구 130만에 국회의원수는 101명이나 된다.
세마리의 사자는 스웨덴의 상징이며
탈린 구시가지는 크게 툼페아라고 불리는 고지대와
타운 월로 불리는 저지대로 나뉜다.
툼페아는 중세 시대 귀족이나 지배계급이 거주하던 곳으로,
대표적인 것이 툼페아 성이다.
톰페아 성 뒤편으로 보이는 톰페아 성채
이 성채는 덴마크인이 1219년에 세운 성채 자리에
1227년과 1229년에 세운 것이다.
국회의사당으로 쓰이는 톰페아성인 분홍색 건물은 캐더린 대제가 개축한 것이다.
위대한 장병이란 뜻의 피크 헤르만 성탑(키다리 헤르만)은 높이가 95m로
1371년에 증축된 것으로 남서쪽에 위치하며,
이 성에서 유일하게 15세기 건축당시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피크 헤르만 타워 정상에 오르려면 215개 계단을 올라야 한다고.
키엑 인 드 쾩(Kiek in de kok) 포탑
에스토니아어로 "부엌을 들여다 보아"라는 뜻의 키엑 인 드 쾩은
지름17m, 높이 38m, 두께 4m인 높은 포탑의 구멍을 통해
이웃집들의 주방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병사들 사이에서 부르던 이름이라고.
15세기 후반 건설된 이 포탑은 탈린의 든든한 방어벽 역할을 해왔으며
대포를 발사하기 위한 포탑으로는 북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에핑 타워
현재 남아 있는 26개의 성탑 중 하나로,
중세 시대의 각종 갑옷을 입어볼 수 있고, 당시의 무기도 전시돼 있는 체험 박물관인데,
탈린 요새에 대한 자료도 구비하고 있단다.
돔 교회를 가기 위해 약간 언덕 쪽으로 오르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평지로 고지대 언덕이라고 해도 50m 높이 정도이다.
에스토니아 추기경의 관저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 바로 뒤에 있는 에스토니아 추기경의 관저
추기경은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의 대주교이기도 하다.
자전거 대회가 있어 펜스로 출입 통제를 하고 있다.
탈린 구시가의 고지대 톰페아 언덕의 돔교회 첨탑
돔교회는
에스토니아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되는 역사적인 교회이다.
원래는 로마 가톨릭 성당이었지만 지금은 루터 교회로 사용하고 있으며
약 100년이 걸린 확장공사를 거쳐 14세기 후반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하였고
1772년 바로크식 뾰죽탑이 세워졌다.
돔교회 Toomkirkk (성모 마리아 성당)
13C 초에 톰페아 언덕에 요새를 건설한 덴마크인들이 교회가 필요하여,
1219년 발데마르 2세가 탈린 지배 때 최초로 지은 가톨릭 성당으로
건축 당시에는 목조 건물이었지만 15~16세기에 재건축하면서 석조로 바뀌었다.
종탑부분은 1772년에 재건축했다.
사용한 화려한 문장과 묘비등이 보관되어 있는 유서 깊은 교회이다.
첨탑 꼭대기에 1772라고 표시되어 있다.
톰페아란 이름은 루터교 돔 교회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돔교회
톰페아 언덕의 중심에 서있는 중세 교회인 돔교회 또는
동정녀 마리아 성당이라고 불리는 이 교회는 에스토니아의 주요 루터교 교회이다.
1233년 이 전에 설립되었으며 그 이후 반복적으로 재건축 되어
교회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69미터 높이의 바로크 종탑에 올라가면 탈린시를 감상 할 수 있다.
돔교회 내부 (한티님 블로그에서 퍼옴)
길드들의 문장
탈린(Tallinn)이라는 도시 이름은 에스토니아어로
덴마크인의 도시라는 뜻이다.
톰페아는 에스토니아의 영웅적 시조 칼레프가
묻힌 곳이기도 하다.
골목길에는 주 에스토니아 대사관저가 많다고 한다.
만약 여권을 분실 할 경우
라트비아의 리가에 곧 대사관이 생길 것이라 한다.
왼쪽 황색건물은 에스토니아 총리관저이고
오른쪽 흰건물은 아일랜드 대사관저이다.
총리관저 정문
총리관저 외벽엔 두 개의 대리석판이 있는데
탈린 독립운동을 위해 애썼던 애국지사의 이름과 생존연대가 기록되어 있다.
애국지사들은 주로 타르투 대학 출신들이다.
언덕 위에 서있는 총리공관
총리공관은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데
성벽을 약간 허물고 총리공관을 지어 놓았다.
톰페아 언덕 전망대로 일반인이 올라 가는 계단 바로 옆이다.
톰페아 언덕 전망대로 올라 가는 계단
에스토니아는 국토 전체가 거의 평지인데
탈린이란 도시가 형성된 톰페아 언덕의 높이는 약 50m라고 한다.
구름 때문에 찍은 사진이다.
해안가 석회암 절벽에 위치해 있는 톰페아 언덕은
탈린 구 시가지의 중심으로 최고봉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13세기부터 14세기까지 건설되었다.
전망대에서
멀리 탈린만의 항구까지 조망되는 이곳 톰페아 언덕이
탈린의 최고 관광 코스가 되었다.
발트해가 보인다.
톰페아 언덕에서 바라보는 탈린 시내
눈 앞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발트해의 진주 탈린시의 건물들은 거의 14~ 15C에 지어진 건물들이란다.
톰페아 언덕위의 톰페아 성벽은
1218년에 에스토니아를 정복한 덴마크인들이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탈린은 에스토니아가 덴마크의 지배 아래 있었던 13세기에 처음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탈린이라는 이름도 덴마크의 도시라는 뜻이다.
두께 3m, 높이 15m의 성벽이 도시를 감싸며 4.7km나 뻗어 있었고,
성벽에는 붉은빛 원뿔 모양의 지붕을 이루고 있는 탑이 46개 세워져 있었다.
이 성벽은 북유럽 최고의 철옹성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1.85km의 옛 성벽과 26개의 성탑만이 남아 있다.
성 니콜라스성당 첨탑, 높이 124m의 성 울라프성당 첨탑,
그리고 구시청사 첨탑과 성령성당의 첨탑이
에스토니아의 수도인 탈린의 구시가지는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1229년 독일기사단이 최초로 요새를 건설한,
탈린의 탄생지인 톰페아 언덕에서 보는 전망은
정말이지 중세의 독일기사단 중 한 명이 긴 창을 옆구리에 끼고
말갈퀴를 휘날리며 곧 달려 올것만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발트 3국의 도시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에스토니아의 탈린
정말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유네스코 탈린 역사지구 지도가 성벽에 붙어 있다.
성벽에 안내 포스터들이
마치 액자에 넣은 그림 같이 붙여져 있다.
자전거 경기로 인해 못 본 구시가지를 향해
다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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