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차 고성 -라자(라즈)마할, 제항기르마할, 쉬시마할-
2017년 12월 2일 토요일
인도여행 넷째 날 투어 버스로 험하고 복잡한 때로는 먼지투성이인 좁은 2차선 도로를 4시간여를 달려 온 오르차는 숨어 있는 지역,
은둔의 땅이란 뜻이다. 이곳에서 라자(라즈)마할, 제항기르마할, 쉬시마할 3개의 궁전을 보았다. 마할이란 궁전, 왕궁이란 뜻이다.
인도여행 지도
델리-바라나시-카주라호-오르차-아그라-자이푸르-델리
오르차
인도 중부 마디아 프라데시주에 위치하며,
북인도 아그라와 카주라호 사이에 있는 오르차는
1531년 루드라 프라탑이 분델라 왕조를 세우고
수도로 삼아 이 지역을 다스렸다.
전성기일 때는 55개의 궁전이 있을 정도로
분델라 왕조의 수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인구 2천명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오르차 고성 마을 옛 분델라 왕조의 수도였던 오르차 마을 한가운데에는 폭이 좁은 베트와강이 흐르고, 그 강을 경계로 높은 언덕에는 옛 분델라 왕조의 궁전들이 -라자마할, 제항기르마할, 쉬시마할,라즈 프라빈마할- 낮은 곳에는 마을과 힌두교 사원들이 -차트르부즈 만디르, 람 라자 만디르, 락쉬미 나라얀 만디르- 아름다운 베트와 강 풍경과 어울려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고 있다.
오르차 고성은
라자마할, 제항기르마할, 쉬시마할로
되어 있다.
마할(Mahal)은 궁전이라는 뜻이다.
해자의 역할을 했던 베트와 강에는
악어를 풀어 놓고 역적들을 집어 던졌다고 한다.
이 작은 다리를 건너면 큰 성문이 나온다.
1602년 무굴제국
악바르 황제의 아들 살림왕자(훗날 제항기르)가
반란에 실패하여 오르차로 피신했는데,
당시 분델라 왕조의
마하라자 왕 비르 싱 데오가 받아 주었고,
그로부터 3년 뒤 악바르 황제가 죽고
제항기르가 무굴제국의 왕위에 올랐다.
그는 은혜를 잊지 않고 재임기간 20년 동안
분델라 왕조를 후원하면서 오르차는 전성기를 맞았다.
왕이 된 제항기르가 방문할 때를 준비하여
비르 싱 데오가 지은 궁전이 바로 제항기르마할이다.
훗날 제항기르가 죽고
새로운 황제 샤 자한에게 냉대를 받던 비르 싱 데오는
무굴제국에 대항해 1627년 반란을 꾀했다가
샤 자한의 13살 난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패배를 당해
분델라 왕조는 22여 년의 황금시대를 마감하고,
찬란한 문화를 뒤로한 채 수도를
오르차에서 티캄가르로 옮겼다.
그 뒤 남겨진 오르차는 차츰 폐허가 되어 갔다.
라자마할, 제항기르마할, 쉬시마할
라자마할, 제항기르마할, 쉬시마할
비르 싱 데오가 오르차로
도망온 살림 왕자를 위해 지은
제항기르마할은 오르차 유적지들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고,
건축 양식 또한 아주 돋보이는 곳이다.
레스토랑 푯말 옆 길로 올라가면
오르차 성문
오르차 성의 메인게이트가 나온다.
이 성문을 올라가면
나오는 마당
라자마할, 제항기르마할, 쉬시마할
3개의 성이 다 보인다.
쉬시마할
쉬시마할은
제항기르 마할의 부속 건물로
현재는 주정부 관광청에 의해
레스토랑과 호텔로 개조되어
일반 관광객도 머물 수 있는 곳이다.
인도에서 가장 저렴한 궁전 숙소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왕의 접견실
라자마할에 들어가기 전
왕의 접견실 디완이암
왕의 접견실
16세기 건축된 접견실은
28개의 기둥이 있는
아름다운 아치형 공간이다.
디완이암(왕의 접견실)의 천정화
공작새, 앵무새, 코끼리, 들소,
사슴, 양 등의 그림이 화려한 채색화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디완이암(왕의 접견실)의 천정
지금은 황폐해진 저 계단 위 단에서
왕은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법과 행정을 다루었다고 한다.
왕의 접견실 앞 힌두 사원
맨 오른쪽 조그만 창문으로
하늘색이 보이는 공간
시바신의 상징인 링가와 요니
음양. 즉 남과 여를 상징하는 것으로
아래쪽의 것은 여자,
위의 돌은 남자를 상징한다.
힌두신 시바
시바는 인간의 모습 대신
발기된 남성성기인 링가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으며
링가 밑에는 여성성기를 상징하는 요니가 있다.
합일된 남녀 성기의 모양을 보여주는 링가와 요니는
진리는 영원히 나뉠 수 없으며
합일된 상태에서 모든 존재의 완전함이
나타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제항기르 마할의 돔 지붕과 차트리
라자마할 안내도
벽화가 보존되어 있는,
왕과 왕비가 머물던 궁전인
라자마할의 건물 평면 구조는
ㅁ자 형태로 되어 있는데,
3면은 5층이고 나머지
1면은 4층으로 되어 있다.
라자마할
1531년 가르쿤다르에서 오르차로 도읍을 옮긴
마하라자 루드라 프라탑(1501~1531)이
짓기 시작해서
1539년 바르티 찬드라(1531~1554)가
9년에 걸친 공사 끝에 완성했다.
그 뒤 마두카르 샤(1554~1592)가 개조하거나
증축하여 오늘날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왕이 기거하던 궁전 라자마할
라자마할은 분델라 왕조의
왕과 왕비의 궁전이다.
그 뒷 편에는 왕의 후처가 기거했던
프라빈 마할이 있다.
그 곳은 지하에 배수관을 설치하여
땅 밑으로 계속 물이 흐르게 하여
항상 푸른 정원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라자마할 안으로 들어 간다.
라자마할
궁전은 ㅁ자형의 중정 주위로 4~5층의 궁전이 둘러싸고 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궁의 전경과 탁 트인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다.
라자마할 내부 광장의 사각형 무대
이곳에서
거의 매일 악사들이 연주하고
무희들이 춤을 추면 위 층 테라스에서
마하라자(왕)와 마하라니(왕비)들이
보면서 여흥을 즐겼다고 한다.
라자마할의 차트리들
차트리란
덮개 혹은 우산이라는 뜻으로
정자 모양의 작은 돔이며
라자스탄의 건축 양식이다.
지금은 색이 너무 많이 바래고
색이 떨어져 나갔지만
당시에는 정말 화려했을 것 같다.
곳곳이 보석으로 치장돼 있고
다양한 색으로 화려했을
당시의 모습이 너무 궁금하다.
그러면서도 이 상태로 계속
관리가 되지 않고 방치된다면 이마저도
볼 수 없어지게 될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깝다.
왕의 방
라자마할 왕의 방
라자마할은 왕의 방을
가득 채운 채색벽화가 유명하다.
라자마할 왕의 침실 천정벽화
라자마할 왕의 침실 천정벽화
화려하고 아름다운 벽화들은
비슈누 신과 그 화신인 크리슈나의 일생과 업적 등
힌두 신화를 그린 것도 있고
왕족들의 민속과 사냥 등 일상생활이
그려져 있다.
라자마할 왕의 침실 천정벽화
라자마할 왕의 침실 천정벽화
라자마할 왕의 침실 천정벽화
라자마할의 정교한 채색벽화
왕비의 방
인도인은 사원에 들어갈 때
이외에 평소에도
맨발로 많이 다닌다.
왕비의 방
라자마할은
아름다운 채색 벽화로
가득한 궁전이다.
코끼리 안에 사람이 그려져 있다.
라자마할을 나오면 큰 마당이 나온다.
제항기르마할에서 바라다 본 풍경
왼쪽이 라자마할,
그 뒤 검은 첨탑이 차투르부즈 만디르(사원),
그 옆 흰 3개의 탑이 있는 곳은 람 라자 만디르,
맨 오른쪽 국기 있는 건물이 쉬시마할
제항기르 마할
정교한 차트리(정자 모양의 작은 돔)가 보이는
이쪽은 제항기르 마할의 정문 반대쪽이다.
중앙의 계단은 제항기르 마할의
중정으로 이어진다.
호텔로 개조된 쉬시마할의 레스토랑
쉬시마할은
제항기르 마할의 부속 건물로
수도 이전 후 왕족들이 오면 묵었던 곳으로
현재는 레스토랑과 호텔로 개조되어
일반 관광객도 머물 수 있는 곳이다.
인도에서 가장 저렴한 궁전 숙소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인도사람들
워낙 사진 찍는거 좋아하는데다
외국인이랑 같이 사진찍는거는
특히 더 좋아한다.
중앙 제항기르 마할로 들어가는 계단
이 폐허에서 비교적 보존이 잘된 곳은
1606년 제항기르가 왕이 되어 방문한 후
만들어진 제항기르 마할이란 궁전이다.
좁은 계단을 따라 궁전 안으로 들어서면
벽과 바닥에 그려진 문양과 그림들이
희미한 윤곽을 남기고 있는데,
몇 백년 전 번성했을 때는 매우 화려했을 것이다.
1602년 무굴제국
악바르 황제의 아들 살림왕자(훗날 제항기르)가
반란에 실패하여 오르차로 피신했는데,
당시 분델라 왕조의
마하라자 왕 비르 싱 데오가 받아 주었고,
그로부터 3년 뒤 악바르 황제가 죽고
제항기르가 무굴제국의 왕위에 올랐다.
그는 은혜를 잊지 않고 재임기간 20년 동안
분델라 왕조를 후원하면서 오르차는 전성기를 맞았다.
왕이 된 제항기르가 방문할 때를 준비하여
비르 싱 데오가 지은 궁전이 바로 제항기르마할이다.
제항기르 마할(궁전)
오르차 유적 중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하여
건축양식이 돋보이면서도
원형 또한 가장 잘 보전되고 있다.
제항기르 마할의 정문은 따로 있지만
이곳 계단으로 올라가 들어 갔다.
ㅁ자형 중정이 있는 제항기르 마할
오르차의 분델라 왕조의 건축물 중에서
가장 규모가 웅장하고 세련되고
훌륭하다는 제항기르 마할이다.
돔 지붕의 이슬람 전통양식의
사각형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광장 중앙에는 물을 가두어 둘 수 있는
노천목욕탕과 분수가 있어
무더운 여름을 지낼 수 있었다.
궁전 내부로 들어서면 회랑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어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칭적인 돔들이 인상적인 제항기르 마할
오르차 고성 중
가장 거대한 건물인 제항기르 마할은
반란에 실패했던 살림왕자가
훗날 제항기르 황제가 되어 오르차 성을
방문 할 때를 위해 지은 궁전이다.
오르차 왕의 궁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지었는데
총 5층에 132개의 방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칸막이가 없어서인지
그 많았던 방을 잘 느낄 순 없다.
제항기르 마할
힌두 양식과 아프가니스탄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외관을 지녔으며,
궁전 내부 또한 규모와 구조에 가히 놀랄 만하다.
회랑 사이마다 작은 문이 많이 있는데,
아름답고 섬세한 격자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궁전 안에는 비밀통로가 많이 있고,
마치 미로같이 통로가 짜여 있어
자칫 길을 잃기 쉽다.
제항기르 마할
오르차 성채는
곳곳에 힌두와 이슬람의 건축 양식이
교묘히 섞여 있다.
특히 지붕의 모양이나
기둥에 새겨진 작은 문양들은
이슬람 건축 양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제항기르 마할 계단
라자마할이나 제항기르 마할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계단을 통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오르차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옥상에 올라가면 이슬람 건축 양식의 특징인
아주 예쁜 지붕을 만나 볼 수 있어 좋다.
노천목욕탕
사각의 궁전 가운데에는 노천목욕탕이 있고
목욕탕을 내려다보며 즐겼던 난간도 있다.
처음에는 분수인 줄 알았는데
목욕탕이라고 가이드가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일어나
북인도를 다스렸던 무굴제국은
장자상속제가 확립되지 못해 왕위 계승을 놓고
끊임없이 골육상쟁이 벌어졌다.
1526~1858년 무굴제국 시대의 왕들은
바부르(1대)-후마윤(2대)-악바르(3대)-제항기르(4대)-
샤자한(5대)-아우랑제브(6대)이다.
제항기르마할 정문
600여 년 전에 무굴황제
제항기르의 방문을 위해 지어진
5층의 제항기르 마할은
중세 인도 이슬람 건축 발전의 정점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제항기르마할 정문
정문에 서 있는 거대한 코끼리 상을 지나
제항기르마할 정문인 이 문으로 들어가
미로처럼 얽힌 작은 통로를 지나면
노천목욕탕이 있던
네모난 정사각형의 마당이 나온다.
제항기르마할 정문
정교하게 조각하고 장식한
이 모든 건축과 조각의 재료들이
놀랍게도 모두 암석이다.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사암으로 조각된 코끼리
운트카나 (낙타 마굿간)
라즈 프라빈 마할에서 올라오면
성 안 넓은 마당 한쪽에
낙타 마굿간이 있다.
제항기르마할 정문을 나오면 보인다.
라즈 프라빈 마할과 제항기르마할 성문
라즈 프라빈 마할과 제항기르마할 성문
궁전 뒤쪽엔 많이 부서진 유적들과
마하라자 인드라니가 그의 후처를 위해 지었다는
왼쪽 2층짜리 라즈 프라빈 마할이 있고
오른쪽은 제항기르마할 성문이다.
라즈 프라빈 마할과 제항기르마할 성문
무굴제국 제 4대 황제인
제항기르가 오르차 성을 방문했을 때,
오른쪽 성문으로 들어와 중앙의 길을 따라
본인을 위해 지은 제항기르마할로 들어 갔다.
궁전에서 내려다 보는 오르차의 마을
제항기르 마할의 차트리들
창 밖으로 라즈마할이 보인다.
회랑 사이마다 작은 문이 많이 있는데,
아름답고 섬세한 격자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제항기르 마할에서 내려다 보니
앞에 라자 마할과 오르차 마을이 보인다.
제항기르 마할에서 내려다 본 쉬시 마할
지평선이 보이는 오르차 마을
이곳은 한때 무굴제국의 제후국으로서
명성을 날리던 곳인데
지금은 조그마한 마을로 전락하였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으로 보아
이곳이 풍요로웠던 왕국임을
짐작케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방과
미로같이 복잡한 통로가 있다.
비밀방과 비밀 통로들이 많아
미로처럼 헤메게 된다.
차트리
궁전 안에 비밀통로가 많이 있고
마치 미로같이 통로가 짜여 있어
자칫 길을 잃기 쉽다.
힌두 양식과 아프가니스탄 양식이
혼합된 궁전
오르차 유적지에는
바르 싱데오의 둘째아들이
형수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누명을 쓰고
그 결백을 증명하기 위하여
투신자살을 하였던 팔키마할도 있고,
유럽의 고딕양식을 본뜬 것과 같은
차투르부즈만디르 사원도 있다.
차투르부즈만디르는 높은 지대에
위치한 거대한 사원이어서
오르차의 전망을 즐기는 데는 가장 좋은 곳이다.
락쉬미 나라얀 만디르에서는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그려진 벽화를 감상 할 수가 있다.
잔시의 여왕이었던 라니락쉬미바이와 영국군의 접전 모습,
세포이항쟁 당시의 여왕의 모습,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스트로 된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소재로 한 작품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좌측에 보이는 것이
유럽의 고딕양식을 본뜬 것과 같은
차투르부즈 만디르 사원이다.
차투르부즈 만디르 사원
사진을 찍자 팁을 달라고 한다.
오르차 고성에서
이 다리를 건너면
오르차 마을과 사원들이 나온다.
주차장으로
[자료출처: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저스트 고, 프렌즈 인도,네팔]
[서명이 없는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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