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박물관 1층
2018년 12월 18일 화요일
이집트 여행 둘째 날
이집트 유물로는 세계 최고의 고고학 박물관인
이집트 박물관부터 이번 이집트 여행을 시작했다.
공항에서 박물관까지 약 30분 정도 지나 도착하여
오전 10:30 부터 약 1시간 동안 가이드동반 하에
박물관 내 주요 유물들을 관람했는데
그야말로 주마간산씩이었다.
고대 유적의 경우 설명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은데 몇 개의 유적은 현지가이드분이
재밌고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특히 투탕카멘의 유물 앞에서는 그 화려함과 신비함에
인상 깊게 둘러보았다.
이집트 박물관 티켓
이집트 5,000년 역사를 볼 수 있는 이집트 박물관은
제18왕조 말 투탕카멘묘의 부장품이 가장 유명한데,
그의 황금마스크와 황금의 관을 비롯하여
호화롭던 파라오의 궁정예술을 잘볼 수 있다.
이집트 박물관
박물관 입구 연못에는 상,하 이집트를 나타내는
연꽃과 파피루스가 심어져 있다.
그리고 스핑크스가 박물관을 지키고 있다.
현 박물관은 공간이 협소하고 유물을 보존하는 시설이 미비하여
많은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관리, 전시하지 못하고
또한 설명도 따르지 못하는 유물이 많아
기자의 대피라미드 근처에 새 건물을 짓고 있는데,
이 Grand Egytian Museum이 완공되면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으로 재 탄생한다고 하니
정말 엄청나고도 훌륭한 유물에 걸맞는
박물관이 되었으면 한다.
이집트 박물관
카이로의 중심부에 있으며,
고대 이집트의 미술과 고고학적 유물의 수집으로는
양과 질적인 면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19세기 초부터 이집트의 고 미술품이 함부로 해외에 반출되자
이를 우려한 프랑스 고고학자 A.마리에트(1821∼1881)에 의해
1858년 카이로 교외의 불라크에 창설된 후1902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선사시대부터 그레코로만시대 초기에 이르는 유물
약 12만 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그 대부분은 이집트 각지의 신전 유적이나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로서,
건축의 일부, 각종 조상, 부조, 벽화, 공예품 등 당시의 생활 전반에 걸쳐 있다.
제18왕조 말 투탕카멘묘의 부장품이 가장 유명하며,
카프레왕, 멘카우레왕, 람세스왕 등의 조상,
서기, 귀족, 궁정부인, 일하는 노예의 조상 등이 유명하다.
또 역대 파라오와 왕비의 미이라를 한 곳에 모아 놓은 방도 있다.
해마다 1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 박물관을 찾고
이 중 이집트인들이 약 50만명에 이른다.
1897년 착공 - 1901년 준공 - 1902년 개관
파사드 중앙의 3개의 부조는
소 뿔에 태양의 상징인 원반을
가지고 있는 사랑과 미의 하토르 여신이며
왼쪽은 생산과 모성의 이시스 여신,
오른쪽은 조화의 네프티스 여신이다.
태양신의 사자 또는 화신이라는 풍뎅이 (스카라베)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을 설명하려면
오귀스트 마리에트를 언급안 할 수 없다.
프랑스의 이집트 학자로 브로뉘에서 출생, 카이로에서 사망.
모교인 부르고뉴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으며
1848년부터 루부르 미술관 이집트부에서 근무하였다.
1850년에 비문 수집을 위해 박물관원으로서 이집트에 파견되어
사카라의 세라페움, 테티의 무덤 등을 발굴하였고,
후엔 전 생애를 이집트 전토의 발굴에 바쳤다.
1855년부터 베를린에서 이집트학을 공부한 후
1858년 신설된 이집트 고고학국장에 취임하여
다시 이집트에서 많은 중요한 유물을 발굴,
현재 걸작으로 알려진 미술품 특히 조각의 많은 것을 발견하였다.
또한 발굴한 유물은 전부 현지에 보존할 것을 주장한
오귀스트 마리에트의 노력으로 카이로 교외에 1863년
이집트의 이스마일 파샤 총독이 이집트 박물관의 첫 삽을 떴다.
지금의 불락지구의 강변에 들어섰던 불락크 초대 박물관은
이후 잦은 나일강의 범람으로 1890년 기자 지구로 옮겨졌다가
다시 1902년 지금의 위치에 들어서게 되었다.
오귀스트 마리에트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이집트 유물들이
유럽 탐험가나 도굴꾼에 의해 무수히 약탈당하여
딴 나라로 반출되는 것을 보자
역사적으로 중요한 고대 유물들을 지키기 위해,
발굴 금지 및 제한을 엄중히 하며 이집트 유물들을 보호하였다.
사후 석관에 안치되어 이집트 박물관 정원 한쪽에 묻혔다.
좌 람세스 2세 입상
1층 그라운드 플로어에는
주요 연대별 조각상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집트의 조각들은 뒷 면이 없고
정면이나 측면이라 벽에 붙여 세워 놓았다.
우: 람세스 2세 (재위 BC 1279년 - BC 1213년)입상
이집트를 지배했던 외국인 힉소스 족을
물리치고 이집트를 재 통일한 신왕국의 두 번째 왕조
제 19왕조의 3번째 파라오이다.
60년 넘게 이집트를 통치했으며,
이집트 제일 미녀 네페르타리를 왕비로 두었다.
상이집트 파라오 조각상
상이집트의 왕관 헤제트를 쓰고 있는 조각상으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양손에 앙크를 쥐고 가슴에서 맞잡고 있다.
앙크는 고대 이집트의 상징물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영원한 생명을 뜻하며, 내세의 문을 열 수 있는 생명의 열쇠이다.
앙크는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고
사후 세계에서 망자의 영혼을 되살리는 힘을 가졌다.
오시리스가 죽자 그의 아내 이시스가 태양신 라에게 기도해
지혜의 신 토트에게 영원한 생명과 치유를 상징하는 앙크를 받아
오시리스를 부활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세르왕의 석상 (재위 BC 2668년-BC 2649년)
이집트 고왕국 제3왕조의 두번째 파라오이다.
조세르는 선왕인 사나크테의 동생으로
통치기간은 19년이다.
세계 최초 피라미드의 주인공으로
피라미드의 원조인 스텝 피라미드를 건설한 파라오이다.
사카라 계단식 피라미드 북쪽 세르답이라고
불리는 부속 건축물에서 발견된 석상이다.
세르답은 사후에 망자의 영혼인 카가 머물 수 있는
밀폐된 공간을 말한다.
이 공간에 무덤의 주인과 꼭 닮은 석상을 모시고
고인의 영혼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작은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현재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세르답에는
복제품이 놓여 있고 진품은 이 조각상이다.
조세르 왕의 석상
이 석상의 모습이 전형적인 이집트 파라오의 모습이다.
머리에는 네메스 왕관을 쓰고,
턱에는 파라오 특유의 수염 장식을 한 모습이 그렇다.
비어 있는 두 눈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도굴 추정)
좌: 아멘호테프 3세 입상
카르나크 신전에서 발견되었으며
18왕조의 9번째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
(재위 BC 1390년- BC 1352년)의 고관이다.
그는 탁월한 치유능력을 가졌으며
사후에는 의술의 신으로 받들어진다고 한다.
이 조각상은 그의 사후 반세기 이상이
지난 후에 만들어졌다.
로제타 스톤 (모조품)
1799년 7월15일 나폴레옹의 이집트원정대 소속이던
피에르 부샤르대위가 알렉산드리아에서 56㎞ 떨어진
지중해변의 작은 마을 로제타(아랍어로는 라시드)에서 발견했다.
로제타석에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히에로글리프, 맨 윗부분),
아랍인들이 사용했던 민용문자(상형문자의 필기체, 중간부분),
그리스문자(맨 밑 부분) 등 세가지 문자로
기원전 196년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공덕을
기리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발견 당시에는 아직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해독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비석의 문자해독이
그 열쇠라고 생각되어 매우 소중하게 보관되었는데
1801년 아부키르 전투에서 영국에 패배한 프랑스가
평화조약 대가로 영국에 넘겼다.
현재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원 주인인 이집트 박물관에는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다.
로제타 스톤(모조품)과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 (1790-1832) 흉상
로제타석 해석의 기초는
영국의 이집트학자 토머스 영이 닦았다.
그는 새나 동물모양의 문자에서 얼굴을 향하고 있는
방향을 연구해 부호 읽는 법 등을 알아냈다.
이후 프랑스의 샹폴리옹은 영의 뒤를 이어 해석에 착수해
1822년 9월14일 26개 이집트 상형문자의 의미와 음가, 용법을 밝혀냈다.
샹폴리옹은 고대 이집트의 언어가
상형문자(히에로글리프), 신관문자(히에라틱),
민중문자(데모틱)라는 세 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상형문자는 그림문자의 특징을 가진 상징문자이자
뜻을 단순화시킨 표의문자이며,
동시에 음가를 지닌 표음문자이기도 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은 프랑스의 이집트 학자이자,
어학의 천재로 이집트 학의 창시자라 불린다.
1809년 그로노플 대학의 역사학 교수로 있으면서
오랫동안 이집트어를 연구,
'히에로글리프는 표의 문자'라는 기존의 설을 버리고
표음 문자라는 전혀 새로운 가설을 세워
그리스어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에 대응되는
상형 문자를 대조·분석한 결과 상형 문자 해독에 성공하게 되었고,
1822년 로제타 비문 판독에 성공했다.
이로서 이집트학은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되었다.
1824년에 이집트 각지를 여행하고, 1830년 학사원 회원,
1831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이집트학 교수가 되었다.
노출되어 있는 유물들
여느 박물관에서 보던 유리 전시관은 커녕
박물관의 가장 기본인
습도 조절이 전혀 안되고 있다.
엄청난 인파들이 드나들고 있는 이곳에
몇 천년된 유물들에는 치명적인 빛과 습도가
전혀 조절이 안된 채 그대로 전시되고 있다.
더군다나 오고 가는 사람들의 터치에도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석관
미이라를 만드는 베드
미이라를 만들 때 나오는 혈액을
모으는 구멍과 반원형 용기도 부착되어 있다.
박물관 입구 홀
1층 입구의 홀에는 람세스 2세의 석상들과
누군지 모르는 석상들이 먼저 눈에 뛴다.
107개의 전시관은 연대기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입구의 47번 전시실부터 시계방향으로 돌아보면
고왕조시대부터 중왕조시대, 신왕조시대 순으로 관람할 수 있다.
후기왕조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도 1층에서 관람이 가능하다.
2층에는 투탕카문의 전시실이 꾸며져 있는데,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9년의 짧은 재위기간에도 불구하고 이 만큼 많은 유물이 있었다는 것은
다른 파라오들의 무덤이 도굴되지 않았다면
어땠을 것인지 상상하게 만든다.
세계 최초의 역사적 문서인 나르메르 팔레트 (Narmer Pallete) 모조품
선사 시대 이후 최초의 이집트 미술품으로
거의 완벽한 상태로 5,000년을 잠들어 있던 유물이다.
BC 3100년경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첫번째 파라오가
통일한 기념으로 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팔레트에는 둘로 나뉘어진 이집트가
하나로 통일되었다는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어
세계 최초의 역사적 문서라 한다.
한 면에는 상 이집트의 관을 쓴 나르메르 왕이
포로를 잡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다른 한 면에는 하 이집트의 왕관을 쓰고 있는 나르메르와
전쟁을 위해 출정하는 행렬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호루스, 람세스 3세, 세트여신
하트셉수트 상
무릎을 끓고 물항아리를 양손에 쥐고
신에게 숭배하고 있는 하트셉수트
신왕국
제 18왕조의 파라오들은 이집트 곳곳에
그들의 자취가 남아 있을 정도로 아주 유명하다.
우선 왕가의 계곡을 건설한 투트모스 1세(재위 BC 1520-BC1492)
그의 외동딸이자 남장 여왕인 하트셉수트 (재위 BC 1473-BC1458)
이집트의 나폴레옹 소리를 듣는 위대한 정복자 투트모스 3세(재위 BC 1479-BC 1425)
종교개혁을 명목으로 유일신 아텐을 숭배했던 몽상가 아멘호테프 4세 개명 후 아크나톤
(재위 BC 1352-BC1334) 아크나톤의 왕비는 이집트 최고의 3대 미녀인 네페르티티
그리고 황금마스크의 주인공 소년왕 투탕카멘 (재위 BC 1333-BC 1324)이다.
아메넴하트 3세가 하피 신 모습으로 생선을 바치는 모습
중왕국 12왕조 아메넴하트 3세가
나일강의 신 하피 모습을 하고 생선을
바치는 모습으로 좌우 조각상의 완벽한 대칭이
이 조각상의 매력이다. 모두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카르투시와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아메넴하트 3세는 그의 아버지 세누스레트 3세와 함께
남겨진 조각상의 숫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트셉수트 두상(재위 BC 1541년-BC 1520년)
제 18왕조의 파라오였던 하트셉수트의 두상으로
미국 메트로폴리탄 발굴팀이 룩소르 서안의
하트셉수트 장제전 2층에 세워진 오시리스 신전에서 발견했다.
여성적인 얼굴 선이 엿보이며, 석회암에 붉은색 계열의 채색을
한 얼굴의 진한 아이라인이 감각적이다.
하트셉수트는 제18왕조의 3번째 파라오인 투트모스 1세와
그의 정비 아흐모스 사이에 태어난 외동딸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왕위계승권이 없었던 하트셉수트는
후궁 출신의 이복남매 투트모스 2세와 결혼했으나,
남편이 일찍 죽고 후처 소생의 어린아들 투트모스 3세가
왕위에 오르자 섭정에 나서게 된다.
섭정 생활 몇 년이 지나 스스로 공동 파라오 자리에 올라
남자 옷을 입고 가짜 수염을 달고 여성 최초의 파라오로서,
이후 약 20년 동안 이집트를 통치하며 주로 내정에 치중하여
그녀가 통치했던 기간만큼 평화스러웠던적도 없었다라는
평을 듣을 정도로 그녀의 치세는 안정적이었다.
하트셉수트의 스핑크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어느날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남긴 거대한 장제전에서도 그녀의 흔적들이 지워졌다.
그래서 독자적인 파라오 자리에 오른 투토모스 3세가 저지른
암살과 보복이라는 설이 많았다.
2007년 행방불명이었던 그녀의 미이라가 현대 과학의 힘을 빌려
확인되었고 또한 그 미이라에서 암이 그녀의 사망 원인임을 찿아 내었다.
그래서 현대에 들어 전문가들은 투토모스 3세에게
면죄부를 주는 추세라고 한다.
하트셉수트의 의붓 아들인 투트모스 3세의 흉상
파라오 투트모스 2세의 누이이자 정비인 하트셉수트는
아들을 낳지 못하고 후궁은 아들을 낳는데,
그 아들이 투트모스 3세이다.
어린 투트모스 3세가 파라오가 되자 하트셉수트는
섭정을 하게 되고 얼마지나 스스로 공동 파라오에 오르게 된다.
투트모스 3세는 하트셉수트가 사망한 후에야 독자적인
파라오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
그의 재위 기간은 54년에 달하지만 21년은 하트셉수트가
섭정하거나 공동 파라오로 실권을 쥐고 있었다.
독자적인 파라오 권력을 확보한 그는 이집트 영역 확장 정책을 펼쳤다.
이렇게 17회의 원정을 한 그를, 20세기 역사가들은
'고대 이집트의 나폴레옹'으로 부른다고 한다.
중왕국 12왕조의 6대 파라오 아메넴하트 3세의 얼굴 스핑크스 형상 화강암 조각상
중왕국 12왕조의 6번째 파라오 아메넴하트 3세를
형상화한 스핑크스로 타니스 지역에서 발견되어
타니스 상이라 부른다.
사자의 몸에 인간의 얼굴을 한 고대 이집트의
전형적인 스핑크스 상인데 고대 왕국의 전형적인 파라오
머리 장식인 네메스 대신에 사자의 갈기가 달린 스핑크스의
얼굴이 아메넴하트 3세를 묘사한 것이다.
이 조각상들은 처음 텔 바스타에 있는 고양이 여신의 바셋 신전을
장식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세크메트 여신 좌상
인간의 몸에 암사자 머리를 한 세크메트 여신
사랑과 미의 여신 하토르의 분신으로,
태양신 라의 뜻을 어긴 인간을 징벌하기 위해 사자로
변해 무차별하게 살상한 흑역사가 있는 신이다.
파괴와 전쟁의 여신, 그리고 암사자의 여신으로 불린다.
프타와 결혼하여 농작물의 신이자 의술의 신인
네페르툼을 낳았다.
< 기자의 3개 피라미드의 주인공>
쿠푸왕 좌상( 재위 BC 2589년-BC 2566년)
이집트 4왕조 3번째 파라오이다.
기자 대피라미드의 주인 쿠푸왕의
부장품 중 남아있는 것은 높이 7.5Cm인
하이집트 왕관을 쓴 이 상아 조각상이 유일하다.
그는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대피라미드를
남기면서도 자신에 대한 흔적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이 유물은 1903년 아비도스 근처 콤엘술탄에서
플린더스 페트리가 조각상의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했다.
페트리는 조각상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머리를 찿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내 걸었다.
그리고 3주 후, 머리는 더 깊은 층 방의 잔해에서 발견되었다.
제 4왕조 카프레왕의 좌상 (재위 BC 2558년-BC 2532년)
이집트 제 4왕조의 4번째 파라오이며
쿠푸왕의 아들이다.
섬록암으로 만들어진 카프레 왕의 실물 크기 좌상은
1880년 발굴 작업 막바지에 우연히
카프레 피라미드의 계곡 신전에서 발견되었다.
이곳에는 조각상 거치대가 23개나 있었는데
이 조각상 하나만 남아 있었다.
카프레는 전형적인 파라오 모습인 네메스 왕관을 쓰고
턱에는 특유의 수염 장식을 하고 있다.
카프레 피라미드 계곡 신전 옆에는 카프레왕보다도 더 알려진
유명한 스핑크스가 있다.
카프레 왕의 좌상
두상 뒤쪽에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 신이
날개를 펴 파라오를 지키는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이것은 파라오의 힘과 신의 힘을 이상적으로
결합시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혹은 석상의 목이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껍게 처리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집트 화폐 10파운드에 나와 있다.
이집트 화폐 10파운드
멘카우레 3신 조각상 (재위 BC 2532년-BC 2504년)
좌우로는 하토르와 바트
이집트 제 4왕조 5번째 파라오 멘카우레 3신 조각상이다.
그는 카프레의 아들이자 쿠푸의 손자이다.
멘카우레의 자세는 전형적인 파라오의 모습으로
왼 발을 앞으로 살짝 내밀고 상이집트의 왕관인 기다란 백관을 쓰고
턱에는 특유의 수염장식을 하고 있으며 전통의상인 킬트를 입고 있다.
파라오 옆의 두 여신은 하토르와 파르바의 수호신인 바트인데
하토르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하늘, 사랑, 기쁨, 결혼, 미를 관장하는
여신이고 바트는 나중에 중왕국 시대로 접어들면 하토르와 합체된다.
두 여신의 머리 장식을 보면 신성한 암소의 모습인데
하토르여신의 암소 뿔은 바깥쪽으로 휘어져 있고,
바트 여신의 뿔은 안쪽으로 휘어져 있다.
멘카우레 3신 조각상 2번째 작품
카이로 박물관에 전시 중인 멘카우레 3신 조각상 중
2번째 작품으로 와세트의 보호신으로 지방신만 다르다.
와세트의 주도는 테베(룩소르)로 이곳의 신은
킬트를 입은 남성신이다. 그의 머리를 장식한 것은
왕권의 상징인 지팡이나 지휘봉 같은 홀이다.
체구를 작게 표현한 것은 상하 이집트가 통일되면서
중앙정부에 권력이집중된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토르여신의 머리장식은 보통 2개의 암소 뿔과 그 사이에
태양원반을 달고 있는 여신, 또는 암소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하토르가 태양신 라를 보호하는 '라의 눈'의 역할을
맡게되면 코브라나 암사자로 표현되기도 한다.
4개의 멘카우레 3신 조각상
1908년부터 멘카우레 피라미드 발굴작업을 시작한
조지 라이스너는 부속체인 계곡신전에서
멘카우레 3신 조각상 4개를 발견했다.
이 조각상은 8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3개는 이집트 박물관에 있고
좌에서 2번째 유물은 (하토르 여신이 중앙에 위치)
조지 라이스너가 소속한 멘카우레 피라미드 발굴을 후원한
보스턴 박물관에 현재 보관되어 있다.
가부좌를 한 서기 좌상
사카라에서 발견된 서기 좌상으로
이집트 박물관의 대표적 유물 중 하나이다.
다리 위에 놓인 파피루스에 뭔가를 쓰려고
심오한 명상과 생각 중인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필기구는 분실되었다.
기원 전 2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인데도 불구하고
눈의 선명함 때문일까 바라보는 각도와 거리에 따라
눈이 달라보인다.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고대 이집트 왕조는 중앙집권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관료들이 필요하게 되고 그중에서 글을 쓰고 기록하는
서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서기를 양성하기 위해 학교가
세워졌으며 귀족의 자제들이 모여 배우고 일단 서기가 되면
관청에 배치되어 공무를 담당하는데, 노동은 물론이고 세금이 면제됐으며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두려워할 만큼 강력한 권력을 누렸다.
이집트 200파운드 지폐의 주인공
카퍼 Kaaper 조각상
세이크 엘 벨레드로 알려진 카퍼 상이다.
하나의 통나무로 만들어진 고대 이집트의 사제이자 서기로
4왕조 말기에서 5왕조 초기(기원전 2500년경) 사이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이 나무 조각상 하나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조세르의 계단 피라미드 북쪽에 있는 사카라 네크로폴리스에서
발굴된 그의 마스타바에서 아우구스트 마리에트가 발견했다.
발굴단이 이 조각상을 발굴할 때, 뛰어난 인물 묘사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 조각상의 모습이 지역의 원로와 매우 닮아 아랍어로
마을 우두머리란 뜻의 세이크 엘 벨레드라고 불렀다.
눈에 빛을 쏘이면 눈동자가 빛이 나고 눈이 반짝인다.
영혼이 잘 찿아올 수 있도록
눈을 수정과 동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카퍼 조각상
약 5세기경의 나무 조각상이지만
살아 있는 듯한 눈은 수정과 동판을 넣어 만들었는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직도 미스테리라고 한다.
라호테프와 노프레트 부부상
헬리오폴리스의 대제사장인 라호테프와 노프레트 부부로
제 4왕조 창시자 스네푸르 파라오의 아들이다.
아우구스트 마리에트는 1871년 메이덤의 어느 벽돌
마스타바에서 완벽하게 보존된 두개의 조각상을 발견했다.
바로 왕자 신분의 라호테프와 그의 부인 노프레트의 조각상이다.
약 4,60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건조하고 햇빛이 없는 밀실에 갇혀 있었던 덕분에
이 조각상은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석회암을 조각하여 색칠한
하얀의상과 화려한 색감이 놀랍도록 잘 보존되어 있었다.
조각상의 질과 아름다움은 그들이 귀족 이상의 신분임을 짐작케 했다.
라호테프와 노프레트 신관 부부상
이 조각상은 실체와 똑같게 만드는 초상조각에 속하는데
유리 상감된 두 눈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120cm와 118cm의 조각상 크기도 실체와 같으며,
라호테프의 살짝 찌푸린 얼굴과 콧수염을 기른 것도
개인적인 특징을 반영한 것이다.
눈 주위에 진한 화장을 하는 것은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인데
오늘날의 아이라인, 아이새도우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세네부와 가족 동상
난쟁이 세네부는 궁정 건설 현장을
감독하는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파라오가 지배하던 고대 이집트에서
난쟁이는 사회적으로 신망을 얻고 특별 대우를 받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난쟁이 신을 숭배했으며
파라오 왕가의 일을 보는 중요한 직책을
난쟁이가 맡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난쟁이 세네부 가족 동상
세네부 아래에는
딸과 아들의 조각이 있다.
Hor왕의 카(Ka) 조각상
1894년 프랑스의 자크 드 모르간의 발굴팀이
제 2중간기 제13왕조의 파라오 호르 아이 혹은
아위브르의 무덤에서 발견했다.
그의 무덤은 도굴되지 않은 것과 이 카 조각상으로 유명하다.
이 조각상은 나무로 만들었으나 잘 보존된 걸작에 속한다.
조각상의 수염과 머리장식은 그가 파라오 신분임을 암시하고
두 팔을 직각으로 구부려 머리 위에 올려 놓은 모습의 이 조각상은
성각문자로 뚜렷하게 호르 아위브르 왕의 Ka라고 적혀있다.
카 조각상의 오른손에는 홀을, 왼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이 조각상의 매력은 눈으로 얼굴에 생동감을 주기 위해
별도로 수정으로 상감 처리했다.
'카'는 죽은 자와 산 자를 구분 짓는 영적인 요소의 개념으로,
카가 몸을 떠나면 죽는다고 믿었다.
카는 죽은 자의 무덤에서 주인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메인 로비
중앙 홀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좌상은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넓이 4.4m, 높이 7m의
고대 이집트 18왕조의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 (재위 BC 1390년 - BC 1352년)와
왕비 티예 그리고 그들의 딸 3명이다.
이집트에서 부부를 함께 조각한 작품 중에서는 가장 크다.
아멘호테프 3세의 별명은 이집트 최고의 부자 파라오라고 한다.
이집트 박물관 중앙 홀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 부부의 거대 조각상이
발견된 곳은 그의 장제전으로
지금 그 장제전은 입구를 지키는 멤논의 거상만 살아남아 있다.
그의 장제전은 카르나크 신전보다 더 컸으나
나일강 범람 지역에 가깝게 지은 탓으로 200년도
지나지 않아 완전 폐허가 되었다.
19세기 말 폐허 속에서 발견된 부부 조각상은 부서진 상태의
파편 조각들이었다. 이를 발견한 조르주 다레시는 파편들을 모아
인근 메디네트 하부의 아문 신전 앞 뜰로 옮겼다.
1902년 이집트 박물관을 개관하면서 조각난 파편들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2011년 새로운 조각들을 발견하면서 지금의 상태로 마무리 되었다.
지금의 완성도는 약 70% 수준이다.
아멘호테프 3세와 티예 상, 밑에는 그들의 공주 3명
두 사람 모두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관을 쓰고 있으며, 티예왕비는 오른팔을 왕의
허리에 두르고 있는 다정한 모습이다.
왕과 대등한 왕비의 앉은 키는 그녀가 한때 왕의 역할을 한,
위대한 여왕이라는 수사가 붙어 있는 지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아멘호테프 3세는 고대 이집트에서는 아주 드물게
평민 출신 티예를 왕비로 삼았다.
아멘호테프 3,4세의 치세는 최고조의 번영에 이르러
고대 이집트 역사상 매우 뛰어난 아마르나 시대를 맞이했다.
아멘호테프 4세는 유일신을 주장하며 이름을 아크나톤으로 개명하고
수도를 테베에서 아마르나로 옮긴 인물이다.
그만큼 나라를 혼란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아크나톤의 아들이 투탕카멘이다.
아메넴하트 3세의 피라미디온(벤벤 스톤)
피라미드 꼭대기를 장식하는 돌로
12왕조 아메넴하트 3세의 피라미디온으로
블랙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었다.
12왕조 Amenemhat 3세 (Black Pyramid)와 13왕조 Khendjer왕의 피라미디온
피라미디온(벤벤스톤)은
당시에는 황금으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좌: 빈 석관 우: 석관 두껑
석관 두껑 안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누트신을 보여주기 위해 석관과 석관 두껑을
분리해 전시해 놓았다.
석관 두껑
이 밑에 거울을 설치해 놓아
두껑 안쪽에 조각되어 있는 누트 신을
볼 수 있다.
석관 두껑과 두껑 안쪽의 누트신
석관 밖에서는 볼 수 없고 누워있는 망자만
바로 정면으로 볼 수 있게 두껑 안쪽에 조각되어 있는
누트 신을 보여주기 위해 박물관에서,
두껑 아래에 거울을 놓아 거울에 비친
하늘의 여신이자 죽은 자를 수호하는 신인 누트의
섬세한 조각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하늘의 여신, 죽은자의 수호신 누트
누트의 옷에는 밤하늘의 별처럼 수 많은 별들이 수 놓아져 있다.
쭉 뻗은 그녀의 몸은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 역할도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가지고
그들은 재생과 부활을 생각했고 그것을 관장하는 누트를
죽은자의 수호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 최고의 미녀인 네페르티티의 미완성 흉상
흔히 알려진 네페르티티의 흉상은
독일 베를린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네페르티티는 정면보다 측면 모습으로 나타난다.
바람의 신 아문과 태양의 여신 무트의 석상
아우구스트 마리에트가 1873년 카르나크 신전에서 발견했다.
아문은 신왕국 수도인 테베에서 숭배되던 바람과 공기의 신으로
이후 하이집트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라와 결합하여
최고의 신 아문 라가 되고 무트는 고대 이집트어로 어머니라고 하며
아문 라의 부인으로 아문이 최고의 신이 되자,
그녀 또한 태양의 여신, 하늘의 여신으로 승격한다.
처음에는 무트여신의 머리 부분만 발견했지만,
이후 수 년에 걸쳐 발굴작업을 진행하여
79개의 흩어진 석상의 조각들을 모아 지금 모습
수준으로 복원을 마쳤다.
5,000년이 넘는 유물들을 보니
찬란한 이집트 문명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듯하다.
2층으로 올라오면
왕가의 계곡, 왕들의 무덤에서 발굴된
화려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1층은 석상, 석관, 스핑크스, 입상 등
각종 유물이 시대 순으로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투탕카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황금관, 황금 왕좌,
황금 목걸이, 투탕카멘의 실물 크기 입상,
목관, 전차, 장식품 등 2천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미이라 특별 전시실에는 람세스 2세의 미이라를 비롯해
18~20왕조의 파라오 미이라 12기가 있다.
각종 사진 자료실, 연구실, 도서관 등이 있다.
[참고 발췌: 두산백과, 위키백과, 네이버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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