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프랑스 파리] 베르사이유 궁전

푸른 바다. 2010. 5. 4. 15:05

 

베르사이유 궁전

 

 

서유럽 여행 4일째 프랑스에서 2일째인 오늘은 파리 외곽에 있는

베르사이유 궁전에 가는 날이다.

짐이 곧 국가라고 한 루이 14세와 베르사이유의 장미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살았던

궁전을 실제로 본다는 사실에 잠을 설쳤다.

 

궁전 입구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인 베르사이유 궁전은

 바로크 건축의 대표작품으로, 호화로운 건물과 광대하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하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1km 떨어진 곳에 있는 베르사이유는 파리의 시골 마을 중 하나였으나 ,

이 궁전이 세워진 이후부터는 자치권을 가지는 파리 외곽의 도시가 되었다.

1682년 짐이 곧 국가라고 한  절대왕권의 루이 14세가 이 곳으로 옮겨 온후,

 1789년 혁명 군중들이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파리로 끌고와 처형한 해 까지

107년간 프랑스의 정치적 수도이자 왕궁이었으며 권력의 중심지였다.

 

 

1634년 루이 13세에 의해 사냥궁으로 세워진 베르사이유 궁전은  

 1662년 무렵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대정원을 착공하고

1668년 건물 전체를 증축하여 외관을  U자형 궁전으로 개축하였다.

1680년대 다시 커다란 건물 2동을 증축하고,

별관과 안뜰을 추가하여 전체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을 이루었다.

 세계 5대 황실 중에 하나로 뽑힐 만큼 그 화려함은 17세기를 대표하고 있다.

 

 

루이 14세는 천재적인 조경사 앙드레 르 노트르와 건축가 루이 르보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실내 장식가, 예술가, 3만 명 이상의 노동력을 동원, 엄청난 비용과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한 끝에

 장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유럽 최고의 궁전을 완성했다.

또한 루이 15세는 프티 트리아농과 식물원을 만들기도 했다.

 

 

1870년 보불 전쟁때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에게 항복하자

 승전한 프로이센이 1871년 1월에 거울의 방에서 독일 제국 수립을 선언하고,

 프로이센왕 빌헬름1세가 독일황제가 되는 대관식을 가졌다.

또한 1919년에는 세계1차대전을 매듭 짓는 강화조약(베르사이유 조약)이

거울의 방에서 체결되어 공식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기도 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루이 16세를 비롯한 왕실 가족들이 베르사이유를 떠나 파리로 간 다음,

왕실 소유의 모든 가구들이 매각되고, 예술품들은 파리로 옮겨졌다.
이후 나폴레옹 1세를 비롯해 여러 왕들이 이곳의 활용을 두고
고심하다가

루이 필립왕때 박물관으로 활용할 것을 결정했다.

 

베르사이유 궁전 관람 전에 가이드가 나누어준 내부도 

중앙의 왕의 침실과 집무실을, 윗쪽의 왕의 방들과 왕비의 방들 표시를 편집하여 삽입 하였다.

 

왕실 성당

1층과 2층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1층엔 귀족들이 2층엔 왕실 가족들이 예배를 본다.

 

 

성 루이에게 바쳐진 성당으로 1710년에 완성 되었다.

왕실 가족들의 예배와 왕실 결혼식이 있던 곳이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천정에는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 그리고 신의 영광을 알리는, 삼위 일체의 천정화가 유명하다.

아래층 기둥은 하얀색 대리석의 사각 기둥이며, 2층의 기둥은 코린트식 둥근 기둥이다.

제단은 황금 장식으로 화려하며 천정의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이다.

 

 

거울의 방

원래 2층 테라스가 있던 곳으로 건축가 망사르의 설계로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2.3m인 회랑이 되었으며, 루이 14세 초기 친정 17년을 상징하는

17개의 아치형 큰 거울들이 맞은편 17개의 대형 유리창과 정확히 대칭을 이루며

유리창은  정원과 대운하를 바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장식 되어 있으며,

내부 장식과 천정화는 왕실 최고의 화가인 샤를르 르브룅 작품이다.

 

 

 궁정 의식을 치르거나 외국특사를 맞을 때 대 연회장이나 무도회장으로 사용되었으며,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방이다. 

천장은 샤를 르브룅이 그린 루이 14세의 생애로 장식 되어 있고,

거울, 크리스탈 샹들리에, 황금 촛대, 조각상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거울의 방에서 프로이센이 독일 제국 수립을 선언하고,

  빌헬름1세가 독일황제가 되는 대관식을 가졌다.

그리고 1919년에는 세계1차대전을 매듭 짓는 강화조약(베르사이유 조약)이

이 방에서 체결되어 공식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었다.

 

 화려함의 극치인 거울의 방

샹들리에가 빛을 받아 너무나 아름답다.

 

 

 헤라클레스의 방에 들어 가기전 복도

 

 

 

 

 

 

 

헤라클레스 방 

대 연회장소로 쓰였으며 왕실 성당이 지어지기 전에는 미사를 드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방의 벽과 천장 사이에 금으로 장식된 프리즈가 빙 둘러져 있다.

이 금장식 프리즈 위로 천장화가 있고 한 쪽 벽면에는 커다란 그림이 있다. 

 

 

  베니스 공국에서 루이 14세에게 선물한 ‘시몬 집에서 식사하는 예수님’이라는 베로네즈의 그림이다. 

 

 

루이 15세가 이 그림에 걸맞는 천장화를 그리라고 해서 나온 천장화로

신의 대열에 들어 가고 있는 헤라클레스를 그렸다.

 

 

헤라클레스의 방에 있는 베르사이유에서 가장 화려한 벽난로

 

 

 

헤라클레스의 방 문

 

왕의 방

궁전 정면 중앙에 배치한 루이 14세의 방으로 왕비의 방과는  거리가 좀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문이 있는 파리 대로와 일직선상에 보이도록 창문을 달았으며,

루이 14세의 방에서 서쪽으로 뻗은 기본 축을 중심으로

꽃밭과 울타리, 분수 등이 있어 주위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본 축을 따라 라톤의 분수, 아폴론의 분수, 십자 모양의 대운하등을 배치하였다.

 

 왕의 방들에는

풍요의 방, 비너스의 방, 다이아나의 방, 마르스의 방, 머큐리의 방, 아폴로의 방, 전쟁의 방이 있다.

 

각의의 방

왕의 침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각료들과 회의하는 왕의 집무실

 

풍요의 방

뷔페 음료수가 놓여 있던 방으로 루이 14세 자손들이 4점의 초상화로 남아 있다.

 

 

앙주 공작 (스페인의 왕 필립 5세), 왕세자 루이, 그의 아들 부르고뉴 공작, 부르고뉴 공작의 아들 루이 15세

 

 

 

 머큐리의 방

 머큐리의 방은 초기에 왕의 침실로 후엔 대기실로 바뀌었다.

   

 

머큐리의 방은 루이 14세와 루이 15세의 장례식이 있었던 방이다.

 

 

침대는 의전용으로 최근에 복원하였다.

 

천정에는 새벽별과 함께 수레에 오르는 머큐리를 볼 수 있다.

 

 

비너스의 방

천정에는 여신 비너스를 볼 수 있고, 정면에는 로마식 복장을 한 루이 14세의 조각이 있다.

  

비너스의 방

 

 

 

 

 

다이아나의 방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의 방 천정에는 24시간 변화하는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

정면에는 8개의 흉상에 둘러싸인 루이 14세의 흉상이 있다.

루이 14세때는 방 중앙에 당구대를 설치하여 게임을 즐기던 방이다.

 

 

  프랑스왕 및 나바르왕  루이 14세   로렌초 베르니니  1665년

흰 대리석 흉상

 

 

24시간 변화하는 다이아나 여신의 천정화

 

아폴로의 방    루이 14세 초상화

왕이 외국대사들을 접견하고 알현 하던곳으로 ,

오른쪽에는 루이 14세 왼쪽에는 루이 16세의 초상화가 있다.

가운데 왕좌가 있고 천정에는 태양신 아폴로가 태양 수레를 끌고 있다.

 

전쟁의 방

천정에 루이 14세의 초상화가 그려진 방패를 중심으로 승리에 쌓인 프랑스를 나타내고 있다.

 

전쟁에서 승리한,  말을 탄 루이 14세의 모습이 부조 되어 있다.

 

평화의 방

왕비의 방들중 하나이다.

1792년 왕비와 공주들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거울의 방과는 대형 그림 병풍으로 막아져 있다.

이 방은 왕비가 음악을 듣거나 오락을 즐기던 곳이다. 

천정의 벽화는 유럽이 평화를 되찿는 모습이며, 벽난로 그림은 루이 15세가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가지를 나누어 주고 있는 그림이다.

 

왕비의 방에는

평화의 방, 왕비의 침실, 귀족의 방, 부속실, 왕비의 경호실, 대관식의 방이 있다.

 

부속실

왕과 왕비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던 장소이다.

루이 15세 쌍둥이 첫딸들의 초상화와 마리 앙뚜아네트와 함께 있는 자녀들의 초상화가 있다.

오른쪽 맨끝의 사진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자녀들    엘리자베스 루이 비제 르 브룅 

 

프랑스왕 루이 16세의 왕비.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이다.

화려한  베르사이유 궁전보다는 베르사이유 정원에 지어진 전원적인 작은 트리아농관에서 

생활하는것을 더 좋아했으며, 아름다운 외모로 베르사이유의 장미라 불렸다.

 프랑스혁명이 시작되자 파리의 왕궁으로 연행되어 튈르리궁에서 시민의 감시 아래 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콩쉬에쥐리에 갇혀 있다가 국고를 낭비한 죄와 반혁명을 시도하였다는 죄명으로 38세에 콩코드 광장에서 처형되었다.

많은 부분이 혁명군에 의해 와전되었지만 사치와 낭비와 국민들의 어려움을 몰라

국민들에게 오스트리아 여인이라고 비하되어 불려진 비운의 왕비이다. 

 

 

조그만 방들에 걸려 있던 그림들

그림과 조각과 천정화로 이루어진 베르사이유 궁전 전체가 박물관이다.

 

 

 

 

 

 

 

 

 

 

 

 

 

 

 

 

 

전쟁의 갤러리

1837년 루이 필립왕때 만들어진 곳으로 프랑스 전쟁사를 그리고 있다.

흉상들은 대원수급 이상과 왕실의 혈통을 가진 장군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496년 똘비악 전투부터 백년전쟁, 쟌 다르크, 미국 독립전쟁,그리고 나폴레옹의 승전등을 보여준다.

 

갤러리 조각상

 

 

 궁전에서 바라본 베르사이유 정원 모습

 

 

태양왕 루이 14세에 의해 튈르리 정원을 설계했던 정원사 르 노트르가 설계한 이 정원은

혁명이전까지 2400만평였지만 현재는 250만평의 숲과 정원이 남아있다.

아름다운 조각 분수들과 기하학적인 잔디밭, 거대한 운하 끝으로 이어지는 대정원은 놀라울 따름이다.

 

 

대운하 북쪽 끝에는 이탈리아식 이궁인 그랑 트리아농(1687년)과

프티 트리아농(18세기)이 루이왕조의 장려함과 섬세한 양식으로 세워져 있는데,

스위스로 가야 하는 일정 때문에 시간이 없어,

그것을 보지 못하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파리 동역

프랑스 도착은 영국에서 유로스타 타고 파리 북역으로 들어 왔는데,

프랑스를 나갈때는 파리 동역에서 나가게 되었다.

오후 3시경 동역에 도착하여 기차 시간 기다렸다가

 유로 레일 편으로 프랑스 동쪽 끝 국경 도시인 물하우스에 저녁 8시경에 도착하여(약 4시간 30분 소요),

다시 바로 버스로 스위스 인터라켄까지 약 2시간 20분 정도 이동하여

호텔로 들어가니 오늘도 피곤해서 녹초가 되었다.

가이드 말이 유럽 여행은 체력 소모가 많은 강행군의 연속이니

컨디션 조절을 잘 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