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독일 2010년] 하이델베르크

푸른 바다. 2010. 5. 18. 10:01

 하이델베르크 2010

 

 

 

 

중세의 고성인 하이델베르크 성, 그리고 칼 테오도르 다리와

철학자의 길이 있고, 구시가지엔 시청사와 고색창연한 성령교회 등이 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유서 깊은 대학으로

1368년 교황 우르바누스 6세의 인가를 받아 1386년에 루프레히트 1세에 의해 설립되었다.

바덴의 카알 프리드리히 대공이 집정하던 1803년에 최초의 국립대학으로 결정되어

수많은 석학들,특히 노벨상 수상자를 7명이나 배출하였으며

영국의 옥스퍼드,케임브리지 등과 함께 세계 최고 명문 대학의 하나이며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촬영지로 유명하다.

 

성령교회

 

이 교회는 500년이 된 건물인데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후 개신교에 속한 교회이다.

앞의 동상은 베드로의 동상이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독일 신교도(칼뱅교도)의 신앙고백으로서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의 요구에 따라 작성된 것이며,

 1563년 발행된 후 널리 호응을 받아 여러 신교 교파에도 채택되었다.

 

 

건물 밑에는 천막을 치고 상가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가난한자를 구휼하는 의미에서라 한다.

 

 

 

전형적인 독일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하이델베르크 시청사.

 

 

 

 

 

 

 

 

 

 

 

하이델베르크 고성

 

13세기에 프와르츠공이 만든 성으로 처음 건축된 이래 증축을 거듭하여,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등의 다양한 양식이 복합되어있다.

17세기 초 구교도와 신교도가 벌인 30년 전쟁,

성의 후계자를 놓고 벌어진 팔츠 계승 전쟁,

오를레앙전쟁 등과 갖가지 천재지변으로 성이 많이 파괴된 모습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연합군으로부터 폭격의 위기를 맞았으나,

아름다운 옛 도시의 모습을 보존한다는 취지에서

폭격이 극적으로 취소되었다 한다.

 

코른 마르크 광장 성모자상

 

하이델베르크성을 파괴한 이는 프랑스의 루이 14세라 한다.

그는 군대를 보내 두 번이나 하이델베르크를 초토화시켰다.

독일 사람들은 파괴된 하이델베르크 고성을 볼 때마다

프랑스에게 받은 모욕을 상기한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 고성은 현재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과거에 아름다웠던 것으로 유명하다.

불에 탄 성을 재건축 하지 않은 그 모습 때문에 이름이 난 성이다.

수많은 시인들과 음악가들이 전쟁의 잔인함과

세월의 덧없음에 대해 하이델베르크 성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고적위원회는 이 성의 폐허 자체를 보호하기로 한 것이라 한다.

 

 

하이델베르크성 안에 들어가면 해자가 있고 해자를 통과하는 다리에는

괴테가 쓴 “여기서 나는 사랑하고, 그리하여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노라”라는

시구가 적힌 비석이 있다고 한다.

 

 

시청사 광장에 있는 성모자상을 조각한 분수대이다.

이 광장 뒤로 하이델베르크의 고성이 보인다.

 

 

이 성의 지하에는

하이델베르크 툰이라는 약 5만 8080갤런 규모의 거대한 술통이 있다.

 

 

 

 

하우프트 거리는

서울의 명동거리로 하이델베르크 구시가 관광의 중심이 되는 거리다.

거리 좌우가 고풍스런 건물과 교회들 및 레스토랑이 즐비하고

노천카페와 많은 기념품 가게와 상점들이 있다.

특히 노천카페엔 많은 남녀들이 나와 맥주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며 여유와 한가를 즐기고 있었다.

 

 

 

유럽은 광장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특히 독일은 더 그러한것 같다.

공기도 맑고 햇빛이 좋은 날이면 광장에서 차나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 전통을 가진 나라다.

 

 

 

 

 

 

 

 

 

젊은 낭만의 도시 하이델베르크

 밤마다 학사 주점에서 청춘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으며,

  대학들이 도시 전체에 흩어져  타운을 이루고 있다. 

 

 

고풍스런 고성과 푸른 언덕

그리고 조용한 거리의 붉은 벽돌집에 황혼이

스며들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는 하이델베르크.

 

 

 

 

칼테오도르 다리

 

네카강에 위치하며 가장 오래된 다리로 칼 테오도르가

1786~1788년에 개축하였는데 시민들은 구다리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이 다리너머 그 유명한 철학자의 길이 .

 

 

 

 

 

칼 테오도르상과 여신 아테나상

 

다리 끝에 테오도르 황태자의 동상과

아테네 여신상, 하이델베르크 원숭이 상과 바로크 양식의 탑이 있다,
원숭이가 들고 있는 거울을 만지면 재운이 따르고,

 원숭이의 뻗은 손가락을 만지면하이델베르크에 다시 오게 되며

아래 쥐를 만지면 자녀를 많이 낳는다는 재미있는 설이 있다.


 

이 원숭이 상은 1979년에 만든 것이지만 15세기부터 기록이 존재하며
왕위 계승 전쟁시 소실됐다고 하는 원숭이 상에는 3가지 설이 존재한다.

1.네카강 주변에 손에 거울을 가지고 다니며

 나쁜 사람을 알아보던 영리한 원숭이가있었는데

그 원숭이의 조각을 세워 다리를 건너오는 사람들을 감시하였다는 설.
2.전쟁시 원숭이들에게 거울을 나눠주어 반사하는 빛에

적군들이 볼떄 많은 병사가 방패를 들고 있는 걸로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설.
3.한 귀족이 키우던 원숭이가 나이가 들자 버려졌다고 한다.

 버림받은 원숭이는 거울을 하나들고
"너도 늙는다"란 뜻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었다는 설.

 

 

 

 네카강 칼 테오도르 다리 건너편의 부촌이 있는 산 중턱에

괴테도 헤겔도 헤세도 야스퍼도 걸으며 사색에 잠겼다는 철학자의 길이 있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 산책은 해 보지 못하였다.

 

 

환갑이 넘은 괴테와 서른의 마리안네 부인이 사랑을 나누었던 하이델베르크.

괴테는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을 걷으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품을 탈고하였으며,

1779년 하이델베르크를 찾아 파우스트를 집필하면서

한 여인을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