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2010년
서유럽 여행 11일째인 2010년 4월 18일
하이델베르그에서 약 120Km 이동하여 프랑크푸르트로 향하였다.
일정으론 오늘 오후 6시 30분발 아시아나 항공으로 인천을 향해 떠나야 하는데,
3~4일전부터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공항이 폐쇄 되어 비행기를 못 탈 가능성이 많다고 하여
모두들 하루 하루 풀리기를 바라며 관광을 했는데,
이제 정식으로 가이드가 무기한으로 비행기가 뜨지 않아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이곳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인 경비로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오 마이 갓!!!!!!!
공항에 들어가지 못한 오후 시간 가이드가 숙소를 예약하는 동안 잠깐 뢰머 광장을 관광했다.
마인강
프랑크프르트는 라인 지구대 북부 라인강의 지류인 마인강 연변에 있는 상공업도시이다.
문호 괴테의 출생지로 널리 알려졌으며, 18세기까지는 국왕의 선거 및 대관식이 거행되던 곳이었다.
1815년 빈 조약으로 독일의 4개 자유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1816년에는 독일연방 의회의 개최시가 되었다.
1848∼49년에는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가 열렸으며,
1871년에는 프랑스-프로이센전쟁의 화평조약이 이곳에서 체결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항공·철도·자동차 교통의 요지가 되었으며,특히 프랑크프르트 공항은
영국의 히드로 공항,프랑스의 샤를드골 공항과 함께 유럽 3대 공항으로 유럽을 찿는 여행자들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의 경제·금융의 중심지로서 주식·상품거래소가 있고
11세기에 무역 박람회가 개최된 이후 매년 국제박람회가 열리는데 특히 2년마다 열리는 자동차박람회가 유명하며,
그외 서적, 기계공구, 생활용품, 액세서리 등의 국제박람회로 알려졌다.
뢰머 광장
독일 헤센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의 구시가지 중앙에 위치한 광장이다.
뢰머(로마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고대 로마 군이 주둔하고,로마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인데
15~18세기의 건물들이 몰려 있다. 광장 주변에는 구시청사와 오스트차일레가 있다.
구시청사
중세기에 지은 계단식 지붕을 가지고 있는 이 건물은 세개의 동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1405년 프랑크푸르트 참의회가 귀족의 저택을 사들여 시청사로 개조하여 사용하던 건물이다.
구시청사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대관식이 끝난 후에 새로 즉위한 황제가
화려한 축하연을 베풀었던 유서깊은 곳으로 '황제의 홀'이라 불린다.
프랑크푸르트 최초의 박람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중앙건물에 3개의 깃발이 게양되어 있는데 맨 왼쪽은 유럽연방기이고 가운데는 독일 국기이고, 오른쪽 기는 헤센주 기이다.
구시청사 중앙 건물을 뢰머라 한다.
뢰머는 프랑크푸르트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2차대전 이후 손상된 청사를 원형 그대로 복원한 바로크양식의 화려한 건물이다.
뢰머의 2층에는 신성로마제국의 대관식을 기념하는 축하연을 베풀던 방, 카이저자르가 있고,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의 초상화도 걸려 있다.
2층 발코니
2층 발코니는 특별한 일이 있을때 군중 앞에서 개방하는데
우리나라 차범근씨가 외국인으로는 처음 이 발코니에 오른적이 있다고 한다.
그가 분데스리 선수로 있을때 85~86시즌 분데스리팀이 우승하여 MVP로 선정되어
이 발코니에서 환영 받았다고 한다.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 동상
정의의 여신상이라고도 불리는 이 유스티아동상과 분수대는 1543년에 제작 된것으로
눈은 시청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공무원은 공무집행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의미라 한다.
뒷쪽으로 오스트차일레가 보인다.
오스트차일레
구시청사 맞은편에 있는 목조건물들을 통칭 오스트차일레라고 하며,
본래는 오른쪽 건물로 15세기에 쾰른의 비단상인들의 숙소로 지어진 것이다.
뢰머광장의 대관식 조각상과 수도
독일적인 건물들이 다른나라들과 확연히 구별이 된다.
건물들을 붙여서 건축한것은 지진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뢰머광장 한쪽에 위치한 니콜라이 교회
11290년 지어져 14세기까지 왕실 예배당으로 사용되다가 15세기에 시 정부 소유의 예배당이 되었다.
본래 고딕 양식의 건물이었다가 여러 차례의 보수 공사를 거쳐 후기 고딕 양식의 건물로 변화되었다.
전체적으로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며, 흰색 외벽과 빨간 벽돌의 조화가 아름답다.
밤이 되면 교회 전체에 조명이 비춰져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매일 3번 아침, 점심, 저녁때 40회의 종이 울린다.
현재는 루터교 교회이다.
니콜라이 교회의 아름다운 야경
출처 http://blog.daum.net/sunghwa/8675904
사진 중앙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1562년부터 230년간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 되었던 곳이라 황제의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은 붉은 갈색으로 된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첨탑 높이가 95m에 이르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카롤링거 왕조의 루드비히 대제때인 852년에 세워졌고
교황이 성 바르톨로메오의 해골을 성물로 보낸 이후 1239년 이 교회당은 성 바르톨로메오에게 다시 헌정되었다.
정식 명칭은 예수님의 12사도중 하나인 바르톨로메오가 주보성인으로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이다.
사진 왼쪽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첨탑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은 대규모 건축 계획이 시작되어 백 년 이상 지속되었고,
1415년, 여러 노련한 건축가들과 업자들이 맡았던 커다란 팔각탑을 완공하면서 성당의 건축 작업은 완성되었다.
그러나 1867년 화재가 성 바르톨로메오 교회를 덮치는 바람에, 탑의 종들은 녹아 버리고 종탑 역시 심한 피해를 입었다.
다행히 처음의 중세 설계를 이용해 다시 지을 수 있었다.
2차세계대전으로 많이 손상되었다가 역시 다시 한번 재건축되었다.
뢰머 광장 옆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 작업으로 인해 7세기의 무덤 여러 개가 드러났는데,
이 중에는 메로빙거 왕조의 한 소녀의 무덤이 있었고, 도자기 조각과 황금 장신구가 함께 발견되었다.
성 바르톨로메오의 성골함 외에도, 이 성당이 간직하고 있는 귀중품으로는 섬세한 황금 성찬배,
알브레히트 뒤러 스타일의 판화들과 황금으로 된 성체현시대가 있다.
반 다이크의 유화 그리스도의 애도를 비롯하여,
1973년에 그려진 에밀 슈마허의 예언자 욥과 같은 현대적인 작품 등도 있다.
95m의 첨탑 밑에는 전망대가 있어 프랑크프루트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뢰머 광장의 카페들
시간과 마음적인 여유가 있다면 정말 앉아서 시원한 음료나 한 잔 마시고 싶다.
젤라또라도 하나...
파울 교회
뢰머 광장과 자일 거리 중간쯤에 위치한다. 고전 건축 양식의 원형을 갖추고 있다.
1786년부터 건축되기 시작하였으나, 나폴레옹이 점령한 뒤부터 건축이 중단되어 1833년에야 겨우 완성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재건한 것이다.
독일 국민에게는 유서 깊은 역사적인 교회로, 평화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1848년 5월 18일, 독일 제1회 국민회의에서 59개 항목의 국민 권리를 채택하여 헌법의 기초가 마련된 곳이다.
독일 국기의 검정 빨강 노랑의 모습도 여기서 만들어 졌으며,
또 동서독 분단 당시에는 독일 통일이 실현되는 상징적인 장소로 여겼다.
지금은 교회로서의 기능보다 집회나 축하연 장소로 이용되지만, 여전히 자유, 통일,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심플한 교회 홀에서 독일 출판 평화상과 괴테 상의 시상식이 열린다
독일의 건물들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과 확실히 구별이 된다.
독일적인 개성이 문외한인 나에게도 많이 보이는것 같다.
프랑크푸르트는 현대적인 초고층 건물과 옛 중세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전차
유럽은 도시마다 전차가 다닌다.
그래서 그런지 공기가 대도시인데도 매연이 별로 없는것 같다.
도로 한 복판의 전찻길
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이쁜 저택이다.
아마 옛날에는 귀족의 저택이였다가 현재는 관공서인것 같다.
유럽의 도시에는 그런 저택이 많은것 같다.
프랑크푸르트 국제 전시장 건물
박람회나 전시회 수만 약 42개 정도가 열리니 1년 내내 박람회나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유명한 것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이다.
프랑크푸르트 한국 영사관
마침 전시회가 끝난 날이라 단체 투숙객이 왕창 빠져 나간 이비스 호텔에서
할인된 요금으로 비행기가 다시 뜰때까지 지내게 되었다.
지금부터는 개인경비로 지출해야 하므로 돈이 모자라는 사람들을 위해 영사관에 갔다.
해외에서 여비가 모자라면 우리나라 영사관에서 본국의 가족과 연락하여
그 가족이 지정된 은행의 계좌로 돈을 입금하면 영사관이 있는 나라 은행을 통하여
일정 액수의 수수료를 제하고 출금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다.
저녁 사먹으러 다니던 이비스 호텔에서 가까운 전차역
점심은 호텔 조식에서 빵 한덩이를 챙겨 인근 공원에 앉아 먹고
저녁밥은 왕복 약 9,000원가량하는 전차를 타고 카이저 거리까지 가던지,
남겨 두었던 딱딱한 빵 한 조각을 물이랑 먹었다.
카이저 거리에서 바라본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카이저 거리의 노상 카페
프랑크프르트가 항공 요충지다 보니 유럽 in,혹은 out을 이곳에서 주로 하다보니
물가가 비싸서 그렇지 중국집 한식집 다양하게 음식점들이 있었다.
자장면 한 그릇이 30,000원, 김치찌개 35,000원 정도 였다.
이비스 호텔 근처의 공원
호텔 조식에서 챙겨둔 빵 한덩이, 물, 삶은 계란을 가지고
일행들과 시간을 때웠던 공원
심란한 마음을 달래주었던 오리 가족
새끼들을 앞 뒤로 보호하며 물가로 가고 있다.
수면 아래에서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을 백조
그러나 한참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도 평화로운 모습에
불안한 마음이 저절로 풀어짐을 느꼈다.
다행히 영사관에서 무기한이라 하던 대기 기간이 빨리 풀려 5일째 되는 새벽에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대한항공은 런던과 프랑크푸르트 두 곳에 다 임시 비행기를 띄웠는데,
아시아나는 하루는 프랑크푸르트 , 하루는 런던 이렇게 격일로 띄운다는 소식에,
그것도 인원이 많아 제비뽑기로 순번을 정해야 한다는 말에 다들 흥분을 했었다.
그런데 나는 운좋게 첫 임시 비행기에 타게 되어
밤 11시경 택시로 프랑크푸르트 비행장으로 가 새벽 2시경 이륙했다.
정상적인 시간에는 기존 스케쥴대로 비행장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임시 비행기들은 특별히 내 준 독일 정부의 운행 허가로 새벽에 출국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서유럽 여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한 막이 닫히면 또 다른 막을 올려야 하는데 그 막을 올리기 위해
나는 또 꿈을 꾸어야 겠다.
이번에 우리 발을 프랑크푸르트에 묶었던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은 1100년의 역사에서 4차례 폭발했는데 마지막 폭발은 1821년에 있었다.
이 화산은 3월 20일 저녁 189년 만에 1차 용암 분출이 있었고, 이어 4월 13일 대규모 2차 분출이 일어났다.
4월 14일부터 거대한 화산재를 뿜어내고 있다.
화산재는 대서양 상공 11㎞까지 올라간 뒤 바람을 타고 남동진, 영국과 북유럽 상공을 뒤덮었다.
이에 따라, 영국, 독일, 덴마크,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 공항들은 항공기 운항 전면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화산재는 특히 비행기에 매우 치명적인데,
차가운 빙하수와 만난 마그마가 만들어내는 날카롭고 미세한 화산재 입자는
항공기 엔진의 모든 구멍을 막아버려 연료 및 냉각시스템을 마비시킨다.
16일 하루 동안에만 유럽 전역에서 1만7000여편의 항공기 운항이 취소되면서
유럽 공항들의 인근에 있는 호텔들은 갑자기 몰려드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겪었다.
대도시 기차역에는 표를 구하려는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화산재로 인한 운항 취소는 보험금 청구 대상이 아니라서
그 손실을 고스란히 항공사가 떠안아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독일의 루푸트 한자 비행사의 회장이 공항폐쇄를 풀기 위해 직접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공기 샘플을 채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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