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뢰머광장, 니콜라스 교회, 프랑크푸르트대성당, 파울교회
여행 제 3일째 4월24일 목요일
룩셈부르크 이비스호텔에서 조식뷔페 후 08시 05분경
독일의 경제수도인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했다.
이번 여행은 독일의 도시들이 일정에 많이 들어 있어
2010년 서유럽 여행때 다녀 온 프랑크푸르트를 4년만에
다시 방문하게 되어 감회가 정말 새롭다.
그때는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귀국하지 못하고 기약없이
마음 졸이며 프랑크푸르트에서 몇 일을 자비로 이비스호텔에서 머물며 지냈었다.
룩셈부르크에서
유럽 심장부의 메트로폴리스라고 불리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길이다.
역시나 유채꽃밭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중심지다.
위치는 독일 중서부에 치우쳐 있고 베를린이 독일의 수도이지만,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경제 수도로 불린다.
독일 전역과 연결되는 교통망이 갖춰져 있고, 유럽의 다른 도시와도 쉽게 오갈 수 있다.
이런 지리적인 특성 덕분에 유럽중앙은행이 자리하고 있고,
도시 한가운데의 대형 전시회장인 메세에서는 쉴 새 없이 대형 전시회가 열린다.
국내에서는 세계적인 모터쇼인 프랑크푸르트모터쇼로도 유명하다.
은행의 도시인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헤센주에 있는 도시로 라인강 줄기인 마인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다. 1806년까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선거와 대관식이 거행된 장소이다. 1848년 독일 첫 국민회의 개최지이기도 하다.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적 중심지로 발달하여 14세기 이후 제국의 직할도시로서,
1815년 빈조약으로 독일의 4개 자유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경제수도답게 높은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
항공·철도·자동차 교통의 요지이며,
특히 프랑크프르트 공항은 영국의 히드로 공항,프랑스의 샤를드골 공항과 함께
유럽 3대 공항으로 유럽을 찿는 여행자들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 어느나라에서던 환경을 생각해
매연이 없는 트램이 대중교통이다.
마인강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경제·금융의 중심지로서 주식·상품거래소가 있고
11세기에 무역 박람회가 개최된 이후 매년 국제박람회가 열리는데
특히 2년마다 열리는 자동차박람회가 유명하며,
그외 서적, 기계공구, 생활용품, 액세서리 등의 국제박람회로 알려졌다.
시가지의 중심에 있는 구 시가는 12세기에 건설된 것이고
신 시가는 1333년 이래 확장된 것으로,
성벽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1806년 이후 철거되고 산책길로 바뀌었다.
19세기 중엽 이후 외곽으로 새로운 시가지가 발전하였다.
관광지로는 대성당, 뢰머광장, 괴테생가, 팔먼가든 등이 유명하며,
사과와인과 소시지가 특산물로 알려져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794년 프랑크 왕국 카를(샤를마뉴) 대제의 직할도시로
역사에 처음 이름이 등장하여 1805년 나폴레옹이 점령할 때까지
5.5킬로미터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채 도시였다.
1805년 프랑스 군에 의해 성이 파괴된 후,
성벽이 있던 자리에는 크리스티안 린츠의 설계에 따라 녹지대가 들어섰다.
이때 조성된 녹지대 중 서쪽 타우누스안라게에는
괴테의 동상을 필두로 실러, 하이네, 베토벤 등의 동상이 서 있다.
그중 나체의 베토벤이 두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의 베토벤의 정신상은
하이네의 봄의 노래상과 함께 제작자인 게오르크 코르베트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SG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한국의 차범근이 46골을 기록하는 등 활약한 팀으로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카이저 돔)의 첨탑이 보인다.
프랑크푸르트에는
다양한 종류의 박물관들이 모여 있는 박물관지구도 있다.
영화박물관, 통신박물관, 수공예박물관 등이
마인강 가까이에 모여 있어 산책 삼아 들르기 좋다.
이 가운데 슈테델 미술관은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마인강
프랑크푸르트의 정식 명칭은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이다.
암마인은 마인강이 흐르는 지역에 붙는 지명이다.
지명처럼 프랑크푸르트에는 라인강 지류인 마인강이 흐르고 있다.
괴테의 도시인 프랑크푸르트는
1749년 8월 28일 독일의 가장 위대한 시인 괴테가
이 도시의 그로스 히어슈그라벤 23번지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832년 바이마르에서 서거했다.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마인강을 바라보는 사람들,
한가로이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
인라인을 타는 아이들
정말 날씨도 좋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마인강변을 따라 고층 건물과 유적들이 들어 서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삼성, 현대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여러 기업들이 진출해 있어
약 1만 명 이상의 교민들이 이 곳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총영사관도 개설되어 있다.
사랑의 맹세 열쇠
다리 위에서 자전거를...
자유로운 영혼의 다리 위 음악가들
멋진 프랑크푸르트 마인강 풍경
왼쪽으로 카이저 돔이 보인다.
마인 강변을 따라 산책로와 관광 명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
드라이쾨니히 교회
구 시가지의 강 건너편에 있는 대표적인 교회다.
마인강 유람선 선착장
뢰머광장으로 가기 위해 건널목을 건너야 한다.
뢰머광장은
프랑크푸르트 구시가지의 중심으로
고풍스러운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뢰머(로마) 광장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의
구시가지 중앙에 위치한 광장으로
광장 앞의 3개 건물은 구시청사로 사용한 귀족의 저택이다.
광장 주변에는
프랑크푸르트 대성당과 니콜라이 교회 등 역사적인 건축물이 자리하며,
15~18세기의 건물들이 몰려 있고 오스트차일레가 있다.
뢰머 광장은
프랑크푸르트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고
프랑크푸르트 최초의 박람회가 열린 곳이다.
프랑크푸르트의 중세 거리로는 뢰머 광장(뢰머베르크)이 있다.
정의의 여신 분수 유스티아동상
정의의 여신상이라고도 불리는
이 유스티아동상과 분수대는
1543년에 작업이 시작되어 1611년에 완공이 되었다고 한다.
눈은 시청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공무원은 공무집행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의미라 한다.
유스티아동상은 프랑크푸르트시의 상징이 되고 있다.
광장 중앙에
오른손에 검, 왼손에 저울을 들고 있는 유스티아 청동상이 있다.
유스티아는 정의와 법을 담당하는 로마의 여신으로,
정의를 뜻하는 져스티스는 이 단어에서 비롯됐다.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는 4면에 각기 다른 조각이 조각되어 있는데.
Gerechtigkeit (공평, 정의), Mäßigung (절제, 억제).
Hoffnung (희망), Liebe (사랑).
뢰머 구시청사
중세기에 지은
계단식 지붕을 가지고 있는 이 건물은 세개의 동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1405년 프랑크푸르트 참의회가 귀족의 저택을 사들여 시청사로 개조하여 사용하던 건물이다.
뢰머 구시청 2층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대관식이 끝난 후 새로 즉위한 황제가
화려한 축하연을 베풀던 유서깊은 곳인 황제의 홀( 카이저자르)이 있다.
3개의 깃발이 게양되어 있는데
맨 왼쪽은 유럽연방기이고 가운데는 독일 국기이고, 오른쪽 기는 헤센주기이다.
구시청사
황제의 방에는 샤를마뉴(카를 대제) 이후
52인의 독일 황제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어,
황제들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다고 한다.
두 명의 기사가 프랑크푸르트의 문양을 앞에 세우고
뒤로는 뢰머 광장을 배경으로 서 있는 듯 하다.
구시청사 발코니
중앙건물에 3개의 깃발이 게양되어 있는데
맨 왼쪽은 유럽연방기이고 가운데는 독일 국기이고, 오른쪽 기는 헤센주기이다.
2층 발코니는 특별한 일이 있을때 군중 앞에 개방하는데
우리나라 차범근씨가 외국인으로는 처음 이 발코니에 오른적이 있다고 한다.
그가 분데스리 선수로 있을때 85~86시즌 분데스리팀이 우승하여 MVP로 선정되어
이 발코니에서 환영 받았다고 한다.
발코니 위에 4명의 황제가 각기 다른 물건을
손에 들고 서 있다.
구시청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다가
손상된 청사를 원형 그대로 복원한 바로크양식의 화려한 건물이다.
이 손가락이 2유로를 뜻한다는 것을 나중에 실감했다.
멋진 포즈를 잡아 주길래 한 컷 하고는
동전 합해서 1유로 30센트를 함에 넣고 돌아 가는데,
누가 어깨를 쳐서 돌아 봤더니
이 분이 2유로를 내란다.그래서 줬다.ㅋ
프랑크푸르트는 마차로 시가지 투어를 하는게 아니라
태국의 톡톡이에서 벤치마킹한
작은 전동자전거로 다닌다.
시청 앞에서 웨딩 촬영을 하는 신혼부부
촬영 내내 음악을 연주해 준 거리의 악사들에게
금일봉을 주기 위해 신랑이 돈지갑을 꺼내 들고 온다.
뢰머 광장을 이루는 뢰머 시청과
오래된 건물들은 중세 독일 특유의 분위기를 풍긴다.
건물들을 붙여서 건축한것은 지진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오스트차일레
구시청사 맞은편에 있는 목조건물들을
통칭 오스트차일레라고 하며,
본래는 15세기에 쾰른의 비단상인들을 위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뢰머광장 미네르바 동상
긴 창을 옆에 끼고 오른손에는 머리를 들고 있다.
미네르바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이름으로
그리스신화에서는 그 유명한 지혜와 전쟁의 여신인 아테나여신을 말한다.
1893년에서 1894년에 프리드리히 쉬어홀츠가 만들었다.
뢰머 광장엔 거리의 악기 중 최강인 피아노까지 있다.
뢰머광장 한쪽에 위치한 니콜라이 교회
독일 헤센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 있는 교회로
1920년부터 14세기까지 왕실 예배당으로 사용되다가
15세기에 시 정부 소유의 예배당이 되었다.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니콜라이교회
1264년에 지어졌으며, 초기 고딕 양식 건물이었다가
여러 차례의 보수 공사를 거쳐 후기 고딕 양식의 건물로 변화되었다.
전체적으로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흰색 외벽과 빨간 벽돌의 조화가 재미있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밤이 되면 교회 전체에 조명이 비춰져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매일 3번 아침, 점심, 저녁때 40회의 종이 울린다.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니콜라이교회의 파사드
현재는 루터교 교회이다.
내부가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화려하고 웅장함만 보다가 갑자기 단순하고 간결함을 보니
신교의 교회가 맞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제단
스테인드글라스
벽의 부조
파이프오르간
청빈함이 미덕이라는 글귀가 떠 오른다.
교회를 나오자
또 다른 신혼 부부가 웨딩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을 찍자 신부가 이쁜 미소를 띄며 포즈를 취해 준다.
신부의 등과 팔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니콜라이 교회의 아름다운 야경
출처 http://blog.daum.net/sunghwa/8675904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카이저 돔)
1562년부터 230년간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 되었던 곳이라
황제의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은
사암으로 된 벽 덕택에 독특한 장밋빛으로 빛나는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의 정식 명칭은
예수님의 12사도중 하나인 바르톨로메오가 주보성인으로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이다.
카롤링거 왕조의 루드비히 대제때인 852년에 세워졌고
교황이 성 바르톨로메오의 해골을 성물로 보낸 이후
1239년 이 교회당은 성 바르톨로메오에게 다시 헌정되었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 작업으로 인해 7세기의 무덤 여러 개가 드러났는데,
이 중에는 메로빙거 왕조의 한 소녀의 무덤이 있었고,
도자기 조각과 황금 장신구가 함께 발견되었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첨탑 높이가 95m에 이르는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95m의 첨탑 밑에는 전망대가 있어 프랑크프루트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대규모 건축 계획이 시작되어 백 년 이상 지속된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은
1415년, 커다란 팔각탑을 완공하면서 성당의 건축 작업은 완성되었다.
그러나 1867년 화재가 성 바르톨로메오 교회를 덮치는 바람에,
탑의 종들은 녹아 버리고 종탑 역시 심한 피해를 입었다.
다행히 처음의 중세 설계를 이용해 다시 지을 수 있었다.
2차세계대전으로 많이 손상되었다가 역시 다시 한번 재건축되었다.
중앙 제단
성 바르톨로메오의 성골함 외에도,
이 성당이 간직하고 있는 귀중품으로는 섬세한 황금 성찬배,
알브레히트 뒤러 스타일의 판화들과 황금으로 된 성체현시대가 있다.
반 다이크의 유화 그리스도의 애도를 비롯하여,
1973년에 그려진 에밀 슈마허의 예언자 욥과 같은 현대적인 작품 등도 있다.
피에타
파이프오르간
카이저 돔의 모형
4년 전에도 이 카페를 찍은 기억이 있다.
맥주의 나라인 독일답게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다양한 술들을 맛볼 수 있다.
그 중에도 맥주와 비슷한 알코올 도수로
사과를 발효시켜서 만든 사과 와인인 아펠바인이 유명하다.
뢰머광장에서 나와 건널목을 건넌 후 나오는
하우프트바헤 거리의 작은 교회와 분수대
프랑크푸르트는
현대적인 초고층 건물과 옛 중세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파울 교회
뢰머 광장과 자일 거리 중간쯤 파울광장에 위치하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원형 건축물이다.
장크트 파울 교회
1789년부터 건축되기 시작하였으나,
나폴레옹이 점령한 뒤부터 건축이 중단되어 1833년에야 겨우 완성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재건한 것이다.
지금은 교회로서의 기능보다 정치, 문화의 중요한 행사가 열릴 때 행사장소로 활용되고 있지만,
여전히 자유, 통일,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심플한 교회 홀에서 독일 출판 평화상과 괴테 상의 시상식이 열린다.
파울 교회는
독일 국민에게는 유서 깊은 역사적인 교회로, 평화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1833년 교회가 완공된 후 이 곳은 프랑크푸르트 의회의 회의장소로 사용되었다.
3월 혁명 후 1848년 5월 18일 이 곳에서 제1회 독일 국민회의가 열려
59개 항목의 국민권리를 채택하여 헌법의 기초가 마련된 곳이다.
즉, 독일의 민주주의가 시작된 장소다.
독일 국기의 검정 빨강 노랑의 모습도 여기서 만들어 졌으며,
동서독 분단 당시에는 독일 통일이 실현되는 상징적인 장소로 여겼다.
유태인 석상
밧줄에 묶인 형상의 석상 밑에
2차세계대전 당시의유태인 수용소의 지명이 표기 되어 있다.
파울교회의 내부는
독일의 민주주의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내부 중앙에는 원형으로 된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요하네스 그뤼츠케(Johannes Grützke)의 <국회의원들>이라는 그림이다.
실존인물들을 만화처럼 코믹하게 묘사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유명한 관광 명소로는
괴테하우스와 뢰머광장, 박물관지구 등이 있다.
괴테하우스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태어난 생가다.
고딕 양식의 괴테 생가는 괴테가 생전에 살았던 모습을 재현해놓고 있다.
괴테하우스 4층의 시인의 방은
괴테가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초고를 집필한 곳으로 유명하다.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세계 최대, 세계 최고의 도서전으로
독일출판인서적상협회에서 주최하며해마다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열린다.15세기 초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발명된 이후
부흐메세(책시장)라는 이름으로 인쇄업자와 작가들이 모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이단시되던 시기에
과감히 그의 책을 소개하여 자유정신을 발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국제 출판시장 참여 및 출판정보 수집을 위하여 효과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출판관계자들이 좀더 전문적인 논의와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반인의 관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897년 제1회 자동차쇼를 개최한 이후 해마다 홀수해에는 승용차와 부품을,
짝수해에는 상용차만을 전시하는 세계 최대의 모터쇼이다.
독일자동차공업협회가 주최하며,
세계 자동차 기술을 선도하는 독일 메이커들이 중심이 되어
특히 기술적 측면을 강조하는 모터쇼로 유명하다.
자동차 신기술에 중점을 둔 모터쇼라는 것이 특징이다.
파리모터쇼, 제네바모터쇼, 디트로이트모터쇼, 도쿄모터쇼와 함께
세계 5대 모터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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