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독일] 쾰른대성당, 로마 게르만 박물관

푸른 바다. 2014. 6. 19. 13:48

쾰른

 

 

 

쾰른대성당, 로마 게르만 박물관

 

 

여행 2일째인 오늘

국경도시 아헨에서 잠시동안 관광을 하고

약 1시간 정도를 달려 라인강 좌안에 위치한

 가장 오래된 독일도시 중 하나인 쾰른에 도착했다.

 

 

쾰른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도시이다.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에 이어 독일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

과거 프로이센에서는 베를린 다음가는 제2의 도시였다.

 기원전 38년 로마 제국에 의해 설립되었던,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 중 하나이다.

 쾰른은 서기 50년 로마의 도시 지위를 수여받았다.

 

 

라인강 좌안에 있는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로마 시대의 식민도시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쾰른이란 이름은

로마명 콜로니아에서 유래한다.

795년 카를 대제가 대주교구를 이곳에 설치한 후 역대 대주교의 정치적 수완에 의해서

 10∼15세기에는 독일 최대의 도시로 번창하였다.

중세에는 북·서 유럽에서의 수륙교통·상업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여

한자동맹에 소속되었고,

현재는 교통(철도· 라인강 수운·고속도로)의 요지로서

라인란트의 경제·문화의 중심을 이룬다.

 

 

라인 강을 끼고 있는 고도 쾰른은

기원전 37년 로마 군에 의해 건설된 도시이다.

기원 50년에는 쾰른 출신의 아그리피나가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하여

 쾰른 시민들은 로마 시민권을 갖게 되었는데,

 이 아그리피나의 아들이 훗날의 네로 황제이다. 

260년에서 271년까지 쾰른은 포스투무스, 마리우스, 빅토리누스 황제가

통치하던 갈리아 제국의 수도였다.

310년에 콘스탄티누스 1세의 통치 아래 라인강 너머로 다리가 건설되었다.

 

 

중세 말까지 건설된 시가는

라인강 좌안에 반원형을 이루고 주위에 방벽을 둘러쳤으나

제2차세계대전 중에 옛 건물이 거의 파괴되고, 성곽자리는 현재 넓은 녹지대가 되었다.

 그 바깥쪽에 19세기 이후의 신시가가 건설되어

주택지대와 공장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기계·전기·섬유·화학 등의 공업이 활발하다.

 

 

 구시가에는 독일 고딕 건축의 걸작품인 쾰른대성당을 비롯하여

로마 시대의 유적 및 모자이크 등을 전시하는 로마게르만박물관,

16∼17세기의 독일과 네덜란드의 회화를 소장한 발라프리하르츠미술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게레온교회 등 몇몇 유명한 옛 건축물이 남아 있다.

 

 

 1388년에 처음 개교한 쾰른대학의 전신은

신성로마제국에서 프라하, 빈, 하이델베르크에 이어서 4번째로 설립되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에 의해 이 지역이 점령되어

 1798년에 대학교는 문을 닫아야 했다.

그 후 1919년에 지금의 새로운 대학이 다시 문을 열었다.

 약 4만 5000명의 학생이 등록하여 독일에서 큰 규모의 대학에 속한다.

 

 

쾰른 대성당

 

쾰른 대성당은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124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880년에 완공하였다.

약 6세기 이상 건축이 진행된 이 건축물은,

여러 건축자들이 최초 설계에 대한 신념과 절대적인 충성으로 건축 작업에 임함으로써 완성되었다.

 쾰른 대성당은 고유의 특별한 가치와 훌륭한 예술 작품을 간직한 걸작으로 인정받을 뿐 아니라

유럽 기독교의 영속적인 힘을 증명하는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두 개의 첨탑과 서쪽 면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연합군의 대규모 쾰른 폭격에도 살아남았지만,

 성당은 열네 번이나 직접 명중 당해 건물의 다른 부분들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복원 작업은 1956년에 끝났다.

 

Kreuzblume 크로이츠블루메

 

해석하면 애기풀이라는 이 동상은

쾰른 대성당의 두개의 탑 꼭대기에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실제 크기를 옮겨 놓은 9.5m 높이에 4.6m의 폭.

  애기풀 탑 (Kreuzblume) 각각의 면에는  

 세계 각국 언어로 복제한 탑 꼭대기 장식물 크기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는데,

중국과 일본어는 있는데 우리나라 한글은 없었다.

 

 Hohe Domkirche St. Peter und Maria 성 베드로와 마리아 대성당이

쾰른 대성당의 정식 명칭이다.

 

중세의 랜드 마크로 기독교 신앙과 인내력의 상징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쾰른대성당의 높이와 거대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그 옛날 사람과 동물의 힘으로 이만한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것이 정말 경이로울 뿐이다.

정말 대단하다.

 

  두 개의 탑이 하늘을 찌를 듯한 쾰른 대성당의 서쪽 중앙 현관

 

작업이 시작된 지 632년 만인 1880년에 완공된 쾰른대성당은

독일에서 가장 커다란 교회당이었으며 뛰어난 두 개의 첨탑은 그 높이에서

오직 울름에 있는 첨탑에만 뒤쳐질 뿐이었다.

 쾰른 대성당은 한 시대의 전통적인 석조 기술의 한계까지 다다른,

때로는 뛰어넘기도 한 고딕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 중 하나이다.

 

쾰른 대성당 서쪽 정면

왼쪽문 동방박사 문, 중앙문, 오른쪽 문 베드로 문

 

쾰른 대성당의 초석은 1248년 대주교 콘라드 폰 호흐슈타덴이 놓았는데,

  1164년 쾰른의 대주교인 라이날드 폰 다셀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모셔 온

동방 박사 세 사람의 성물을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1265년에도 아직 완공되지 않은 상태의 건물에서 예배가 열렸지만 건축은 더뎠고,

결국 1560년 성당이 반밖에 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재정란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19세기 고딕 부흥의 시대까지 더 이상의 건축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1842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남아 있는 중세의 설계도와 그림에 기초하여 건축을 계속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248년 공사를 시작해서 무려 632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뒤인 1880년

 빌헬름 1세가 참여한 가운데 마침내 준공식을 가졌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교회가 화재로 불타버리자

쾰른의 대주교였던 콘라트 폰 호흐슈타덴(1205~1261년)이 새로운 대성당 건립을 명한 뒤

 632년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딕 건축의 특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이는 중세 건축가와 장인들로부터 시작된 건축이 근대 건축가와 장인에 의하여 완성된

 수백 년에 걸친 기술적인 전수가 완벽하게 이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공사 막바지에 첨탑을 목조에서 철근으로 대체한 것 외에는

 설계 변경이 없을 만큼 완벽한 설계도를 그려냈다.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독일 고딕건축의 상징 퀼른대성당

첨탑의 높이는 157m로 독일에서는 두 번째 높은 성당이고

세계에서는 세 번째로 높은 성당이다.

바티칸의 산피에트로(성 베드로), 영국 세인트폴(성공회)에 이어

유럽 3대 성당의 하나로 그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쾰른 대성당 서쪽 정면

 

쾰른 대성당 정면에서 본 왼쪽 기둥은 색깔이 다른데 이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손되었으나 전 후 복원된 것이다.

수백년 전 것을 저렇게 정교하게 복원해 내는 것 또한 대단하다.

 

 

고딕 건축물의 특징은 하늘을 찌를 듯한 뾰족한 탑과 높고 둥근 아치형 천장,

 그리고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꼽을 수 있다.

쾰른 대성당의 내부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가 42m에 달해

하늘로 쭉뻗은 수직 효과를 강조하였고,

겉모습도 화려한 조각이나 복잡한 장식을 많이 하지 않고 상당히 단순화되어  

독일 고딕의 특징인 간결함과 단순함이 잘 드러나 있다.

 

 

 쾰른의 심장부,

 라인 강의 제방 위에 서 있는 이 교회는 신앙과 영성의 기념비라 할 수 있다.

순수한 규모만 따져도 폭 86m,

네이브와 성가대석을 합친 건물 안의 길이가 144미터에 이르고,

 높이가 157미터에 이르는 첨탑들은

구조적 설계의 지평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좌우에 12사도의 조각상이 있는 쾰른 대성당의 서쪽 중앙 파사드

 

쾰른대성당의 화려한 남쪽 정면 출입구는

네오고딕의 지극히 화려한 형태들을 보여 준다. 

중앙의 천상모후의 관을 쓴 성모와 아기예수상, 좌우에 12사도의 조각상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천상 모후의 관을 쓴 성모와 아기 예수 조각 위의 팀파늄 부조

 

성당 정문위 반원형구조로 다양한 조각상이 부조 되어 있다.

 

정문 왼쪽문인 동방박사 문의 파사드

 

 정문 옆의 문으로 출입했다.

출입문의 크기도 어마어마함을 알 수 있다.

내부 입장은 무료,

그리고 수많은 종교 보물과 역사를 전시한 보물관과 첨탑 전망대는

유료로 입장할 수 있다.

 

사자 장식의 문고리와 천사 모양을 한 성당 청동문의 손잡이

 

모자이크 장식을 한 청동문은 

1948~54년에 에바르트 마타레가 새로 디자인한 것이다.

 

중앙 회랑

 

들어 가는 순간

높이와 그 웅장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입구에서 제단까지가 아득해 보인다.

 

쾰른 대성당 천정

 

일곱 세기에 걸친

기독교 신앙의 인내력과 확고부동함을 보여 주는 최고의 상징이라고

표현된 쾰른 대성당

 

 

고딕 양식의 전형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엄청난 높이의 카리스마에 압도 당해 입이 벌어진다.

 

 

보물 중에는

중세에 만들어진 금은세공품의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는 동방 박사의 관,

마리아와 예수를 나타낸 1290년의 목조 조각상인 밀라노의 마돈나 ,

그리고 970년부터 전해 내려 온 게로 십자가 등이 있다.

 

여행자의 수호신 성크리스토퍼 상

 

아이를 업고 있는 이 조각상은

성당을 찾는 순례객들을 보호한다는 의미의 조각상이다.

 

기둥 석상

 

기둥에 장식된 14개의 조각 석상들은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와 12사도 석상이다.


자연채광이 되는 쾰른 대성당

 

이곳은 쾰른 대주교의 집전으로

아헨에서 즉위식을 마친 독일 왕들이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이다.

 

 

대성당을 구경한 괴테는

 완성된 부분과 설계도에만 있는 부분, 실제 이루어진 것과 의도된 것,

지어진 것과 암시된 것이 마구 뒤섞여 있는 미로라고 표현했다.

그는 대성당을

창조의 한가운데에서 완성되지 못한 채 굳어버린 세계적 건축물이라고 하면서

 장대한 계획이 수차례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현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 했단다.

 

 

쾰른성당의 중앙제단

 

제단

 

뒤로 동방박사 유물함과 대제대가 있다.

 

 

 제단 뒤 유리상자 안에 있는 마기의 성전은

중세 황금 세공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중앙 제단인 검은색 대리석 제단(미사를 드리 단)


이 제단은 앞면에 흰색 대리석 벽감(장식을 위해 벽을 오목하게 파서 만든 공간)을 만들고,

성모 마리아가 왕관을 쓰는 모습과 12명의 사도를 조각해 넣었다.

 

 

 쾰른 대성당의 보물인

성삼왕 (흔히 동방박사 3인)의 성소이다. 

동방 박사 세 사람이 별에 이끌려 구세주의 탄생을 알고

나사렛의 작은 마을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경배한 것을 기념 하는 날이 1월 16일인데

독일어권에서는 이날을 성삼왕절이라고도 부른다.

 

동방박사의 유해가 간직되어 있다는 동방박사  유물함 

 

성탄절 이야기에 나오는

동방박사 세 사람의 유골은 중앙 유리함 안에 황금색 관 속에 봉안되어 있고,

 이 관은 중세 정금예술의 정점이라고 한다.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바르사로사 황제가 1164년 롬바르디아를 정복할 때,

 라인하르트 다셀대주교가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에 있던 것을

강제로 모셔왔다고 전해진다.

 

 

금으로 도금된 외면의 조각은

구약성경에서 부터 그리스도 종말까지 묘사하고 있다.

 

 

 

클라라 제대.

 

가장 오래 보존된 제대로 견고히 부착된 감실과 함께

날개 제단은 삼단으로 열려지고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 클라라 성당소속이던 것을

쾰른성당으로 옮겨 왔다.

 

동방박사의 경배

 

성당 오른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동방 박사의 경배라는 그림은

 1445년경 독일 고딕회화의 거장 슈테판 로흐너라는 화가가 그린 제단화이다.

쾰른 대성당에 보관 중인 수많은 그림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성당 안에 있는 왕비의 예배실에는

비운의 왕비 마리 드 메디시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그녀는 프랑스의 앙리 4세에게 시집갔다가 추기경 리슐리외에 의해 파리에서 추방되고

1641년 쾰른에서 최후를 맞았다.

 

 

 지나 다니는 통로 쪽에 석관들이 있다.

 

 

쾰른 대성당에는

976년부터 1612년 사이에 안치된 대주교 12명의 묘소가 있다.

 

 

게로 십자가 경당

 

이탈리아 북쪽 서유럽 최초의 대형 십자가이며,

1000년 전에 제작된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대형 나무 십자가인 게로 십자가는

중세 유럽 대형 십자가 세공의 시초가 되었다. 

 

기적을 행하는 게로 십자가  

 

오토시대에

터키 이스탄불에서 수입된 게로십자가 역시 중요한 유물로,

터키 이스탄불에서 가져온 이 십자가는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십자가인데 원인 모르게

 머리부분에 균열이 생겼다.

이에 대주교 게로가 성만찬식을 집례한 뒤 성체 한조각을 밀어넣자

 기적이 일어났다는 데에서 게로 십자가라 불린다.

 

 

 

 

기적의 성모상

 

이 제단의 소원초 양이 유독 많다.

 

기적의 성모상

 

축복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바친

십자가 등 성물들과 애장품들이 달려있다.

 

 

피에타

 

 

 

 

전쟁때 파괴된 첨탑 중 일부를 전시해 놓았는지?

 

 

색유리를 창이나 천장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7세기경 이슬람 지역에서 비롯되었으며,

 이슬람 건축에서는 대리석판에 구멍을 뚫어서 유리 조각을 끼워

채광과 장식을 겸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였다.

 

 

 길이가 144미터, 폭이 76미터인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성가대석 위에 있는  

동방박사들과 48명의 왕을 묘사한 아름다운 스텐인드글라스가 있다.

 

익랑쪽 파이프 오르간

 

이 파이프 오르간 하나로는 음량이 부족하여

1998년에 제비집 오르간이 봉헌되어 파이프 오르간이

쾰른대성당은 2개이다. 

 

 

 

  쾰른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의 면적은 10,000 평방미터이다.

 

  

쾰른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마치 그림과 같은 섬세한 표현과 다양한 색감이

 너무나 아름답다.

   

 바이에른 국왕 루드비히 1세가 기증한 바이에른 창

 

창틀만 없다면

그림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의 섬세함과 색감이다.

  

바이에른 창

 

성당의 남쪽 측랑에 설치되어 있는 5개의 채색 창으로 이루어진 바이에른 창이다.

1842년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1세가 기증한 창문으로 1848년 창틀에 삽입되었다.

 성 요한 세례자와 카를 대제, 네 명의 복음 사가 등이 묘사되어 있다.

 

 

윗쪽:  피에타

아래:  4복음 사가들 복음서를 쓴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이며

 발 아래에 그들의 상징인 사람, 사자, , 독수리 그림도 새겨있다.

 

 

윗쪽:  목동과 삼왕의 경배.

아래:  선지자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다니엘

 

 

그냥 회화로도 표현하기 힘든

섬세하고 부드러운 표현을 유리에 저렇게 아름답게 담아내다니

정말 놀랍다.

 

 

 성당 벽의 많은 부분이

스테인드 글라스로 되어 있는데

오래된 창들은 색감이 좀 떨어진다.

 

 

스테인드 글라스하면

프랑스 파리 노틀담 사원의 것이 항상 생각 났었는데

이제 이 곳의 스테인드 글라스도 함께 생각날 것 같다.

 

동방박사 경당의 성서 창

 

 성서 창

 

 

 쾰른대성당의 유명한 5개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중 

본당 뒤쪽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성녀 마리아와 성 베드로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독일 출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05년 세계 청소년의 날을 맞아 쾰른 대성당을 찾았을 때,

 그 이후 벌어진 제전에는 1백만 명이 성당을 방문했다고 추산된다.

 

모자이크로 된 성당 바닥

 

모자이크 바닥화는 1300 평방미터나 된다고 한다.

 

 

 

 

 

 

성수대

 

 

  

 쾰른 대성당에는 열두 개의 종이 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그 역사가 1418년부터이다.

성 베드로의 종(페테르스글로케)는 1922년에 주조되었으며,

24t의 무게로 세계에서 가장 큰 내타식 종이다.

( 종신 내부에 추를 매달아 종 전체를 흔들어 소리를 내게 하는 서양식 종)

 

전망대가 있는 쾰른 대성당의 첨탑

 

쾰른 대성당

정면 두 개의 탑 중 남쪽 탑은 156m이고 북쪽 탑은 157.38m로

 쾰른 대성당은 1889년 파리에 에펠탑이 건설되기 전까지

9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4유로를 내고 509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라인강과 쾰른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단다.

 

독일 가톨릭 신앙을 대표하는 쾰른 대성당

 

제2차세계대전 중,

 영국 공군의 장군 아더.T.해리스의 지휘아래 있던 폭격기 1080여대가

쾰른시를 1942년 5월 31일에 폭격을 감행하는 일명 밀레니엄 작전을 실행해

20분만에 쾰른시의 90%가 괴멸, 6만여명의 민간인이 학살을 당하였다.

이때 쾰른 대성당은 문화유산이라는 명목하에 타겟에서 제외되어

건물 자체의 파괴는 모면했지만 

이 역시 파손이 나고 심하게 그을리는 등 피해를 입었다.

 1956년 완전 복구된 대성당에는 연간 6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 든다.

 

 

하얀색 조그만 건물이 화장실 들어가는 입구다.

길쭉한 곳은 엘리베이터가 있고

네모진 곳은 계단이 있다.

ㅇ.5유로 즉 50센트 유료 화장실이다.

 

 

정말 아무리 크다고 표현을 해도

직접 보지 않는 이상은 절대 그 크기를 느낄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정말 이 웅장함은 보지 않고는

말이나 글로는 표현이 너무 어렵다.

 

남쪽 현관의 파사드

왼쪽 문은 우루술라 문, 중앙문은 수난의 문, 오른쪽 문은 게레온 문

 

쾰른 대성당은 원래는 하얀석 대리석으로 지어졌는데,

 제2차 세계 대전때 폭격의 영향으로 매연에 그을려 
외벽이 검게 변했단다.

 시당국이 100년 계획으로 현재 세척작업을 시작했다고.

 

성당 옆면 (남쪽)

 

이 사진을 찍을 때 목을 너무 뒤로 꺽는 바람에 

목을 주무러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교통사고 후유증 ㅋ)

 

옆면 남쪽 파사드

 

 쾰른 대성당은 일반 시민들이 노동력은 물론 경제적인 부분까지

크게 기여한 건축물이다.

공사에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다.

기록이 남겨진 1842년부터 완공까지 투입된 건설비만 2,700만마르크.

요즘 돈으로 10억달러가 넘는 비용의 30%만 국비로 충당되고

나머지는 기업과 시민들이 떠안았다.

 

대성당옆 분수대

 

1814년 쾰른 남쪽에 있는 다름슈타트 성당 지붕 밑에서

 쾰른 대성당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쪽 정면 설계도가 발견된 데 이어,

1816년 프랑스 파리에서 나머지 설계도가 발견되었다.

이 일은 독일인들 사이에서 커다란 화젯거리가 되면서

대성당을 다시 짓는 계기가 되었다.

 쾰른 대성당을 다시 짓자는 여론이 시민들 사이에 퍼지면서

많은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공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대성당 복권’이라는 것을 발행했는데,

시민들은 복권도 적극적으로 구입했다고 한다.

 

 

분수대에서 쉬어 가기도 한다.

 

 

쾰른 대성당은

오늘날에도 인간의 영혼이 이루어낼 수 있는 경이로운 업적으로

 쾰른시 위에 우뚝 세워져 있다.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된 위풍당당한 모습과

중세에서 근대로 이어진 건축 기술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면,

 쾰른 대성당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더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다.

쾰른 대성당은 독일 종교가 다시 태어난 것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독일 민족의 고유한 정신을 되살리게 만든 건축물이었다.

 독일 국민들 모두가 힘을 합쳐 완성하면서 독일인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쾰른 대성당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는데,

2004년 대성당이 위치한 라인 강의 건너편에

새로 지어지는 고층 건물이 대성당의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위험 목록에 올랐다.

이에 쾰른 시에서는 라인 강 건너편에 짓기로 한 건물들의 높이를 제한하여 

 위험목록에 올랐던 쾰른 대성당은

2년만인 2006년에 위험목록에서 삭제되었다.

 

 

파손된 부분을 보관하고 새로 맞추는 공사를 하는

작업장인 것 같다.

 

 

 로마 게르만 박물관

 

쾰른에 있는 유명한 로마 게르만 박물관이다.

이 로마 게르만 박물관은 1946년 10월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로마시대 유물과 선사시대 유물 등 총 300만점 이상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의 유명한 술과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여러 작품도 있다고 하는데.

직접 들어가서 보지 못한게 조금 아쉽다.

 

벽이 유리로 된 부분이 있어 밖에서 찍었다.

 

로마 제국 시절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던 생활용품과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장품이 전시 중이며,

 특히 로마 제국의 유리 공예품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소장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쾰른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도시가 형성된 곳이라

로마 제국의 유적, 특히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유적들이 다수 발굴되었는데

  그 로마 제국의 유적과 보물을 로마 게르만 박물관에 보관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밖에도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일부 유적의 잔해는 건물 입구 밖에 진열하여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중 공습을 피할 방공호를 파는 과정에서 

 로마 제국의 유적터가 발굴되고 유물이 출토되었다 한다.

그래서 대성당 바로 옆의 그 유적터 위에 박물관을 지었다고.

 

 

1946년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쾰른 지역에서 출토된 유적들을 중심으로 박물관을 개장하였고,

 이후 다른 나라로 유출된 보물을 반환받고,

로마의 보물을 추가로 확보하면서 1974년 오늘날의 모습으로

새 단장하였다.

 

 

입장료는 성인 8 유로, 학생 4 유로

 

 

 

 

 

박물관 건물 밖에 유적들을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 벽에 전시해 놓은 로마시대 유적들

 

 

 

 

 

루드비히 박물관

 

 로마 게르만 박물관 옆에 있었는데

집에 와서 무슨 박물관인지 검색해 보고서야 대단한 박물관인줄 알았다. ㅋ

 

 1976년 루드비히 부부가 1900년 이후 현대 예술작품 350점을 기증하면서 재단이 만들어졌고,

  20세기 모던아트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 현대미술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고

 초현실주의, 추상주의, 팝아트 등의 작품을 전시하며,

유럽에서 가장 많은 피카소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단다.

미국의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많은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데

 박물관이 소장하는 팝아트 작품은 세계 최대 규모라 한다.

 

 

천사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언뜻 봤을때 상당히 놀랬다.ㅋ

 

로마시대 쾰른의 북문 유적

 

 

로마시대 쾰른의 북문 유적이 남아 있다.

CCAA는 예전 로마시대 쾰른의 약자인 것 같다.

 

 

쾰른 무역 박람회는

예술 쾰른 박람회,국제 가구 박람회, 포토키나 같은 수많은 무역 쇼를 주최한다.

쾰른은 또한 쾰른 카니발 제전, 연례 레게 썸머잼,

 게이/레즈비언 프라이드 페스티벌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 (CSD) 으로 잘 알려져있다.

 

 

 

1824년 미완성의 성당 막스 하삭

 

 

위키피디아에서 퍼 온 야경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