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폴란드] 비엘리치카

푸른 바다. 2014. 8. 10. 16:40

비엘리치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여행 제 7일째 4월 28일 월요일

평생 잊지못할 부다페스트 도나우강의 아름다운 야경을 뒤로한 채

 오늘의 여정은 크로아티아의 타트라 산맥을 넘어

유네스코 문화유산 제1호로 등재되어 있는

폴란드의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을 둘러보고

 크라쿠프에서 숙박할 예정이다.

 

 

 

슬로바키아 보다는 집들이 좋아 보이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겨울에 눈이 많이 와도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붕이 경사져 있다.

 

 

독특한 지붕과 창문을 가진 집들이다.

 

 

폴란드는

유럽의 중국이라 할만큼 외국에서 투자 러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폴란드 국민들의 교육열도 대단하다고 한다.

의료는 대부분 무상이며 일부 부자들은 사설의료기관을 이용하기도 한다.

 수출 주력 상품은 보드카와 화장품이다.

 

 

 현재 폴란드에는

LG LCD와 삼성전자(백색가전 파트)가 진출해 있고,

크라쿠프에 포스코가 진출하여 폐기물 소각장을 건설 중이며

체코에는 현대차와 한화가, 슬로바키아에는 기아차가 있다고 한다.

 

 

크라쿠프는

 11-16세기 동안 폴란드의 수도로서

 현재는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이 역사적인 도시이며, 

16세기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기기 이전까지 

500년간 폴란드 왕국의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다.​

또한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서

유구한 역사와 뛰어난 문화를 자랑하는 크라쿠프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당하지 않아

고풍스런 중세도시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유럽의 도시 중 하나다.
그 덕택에 크라쿠프의 구 시가지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비엘리치카는

폴란드 남부 크라쿠프 도시권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는 19,128명(2006년 기준)이다.

1290년 폴란드의 프레미슬라스 2세 공작에 의해 마을이 건설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금 광산 중 하나인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이 있다.

그리고 이 소금 광산을 기반으로 한 관광 산업이 주요 산업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이곳은 수백년에 걸쳐 유럽세계에 알려진 명소로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나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괴테,

폴란드 출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다녀간 유명한 곳으로

 소금 기둥에 이들의 조각상들을 새겨 기념하고 있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은

크라쿠프 남동쪽으로 약 15km정도 떨어져 있으며

폴란드의 왕과 권력자가 소금의 중요성을 알면서 본격적으로 개발했다.

소금으로 만든 예술품은 당시 광부들의 작품이며

특히 깊은 신앙심으로 만든 지하 110m의 킹카 성당은 그 결정체라 할 것이다.

 광산투어는 반드시 광부를 동반한 가이드 투어로만 이루어진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세계 12대 관광지로

독일의 아헨 대성당, 미국의 옐로우 스톤 등 11곳과 함께

 197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첫번째로 지정될 만큼

유럽 최대의 관광명소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은

약 200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본래는 바다였으나 지각변동으로 인한 자연현상에 의해 수분이 증발한 후

소금만 남아 암염이 되기까지는 약 1만5천년이 걸렸다고 한다.

 가장 깊은 소금층은 지하 340m 정도이며,

서에서 동쪽으로 약 10Km, 두께는 500m에서 1.5km에 이른다고.

 

비엘리즈카 소금광산의 내부 구조도

 

 중세 시대에는 소금이 대단히 귀하고

 값비싼 물품이었기 때문에

당시 폴란드 왕가 수입의 1/3 이 비엘리치카 광산에서 나왔다고 한다.

소금의 채취는 13세기부터 개발을 시작해

지하 9층 327m 깊이까지 개발된 거대한 규모이고

  700년 동안 소금을 채취하고도 현재까지도 소량의 채굴이 계속되는

암염 광산 중에서 가장 오래된 소금광산이다.


 

소금광산 내부에는

 180개 이상의 갱이 있고 2040여 개의 채굴이 끝난 빈 방들이 있으며,

갱도의 연장길이가 총 300㎞에 이른다.

 700년 동안 약 2600㎦의 암염이 채굴되어 폴란드 왕국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 구실을 했다.

 17세기부터 소금 채굴량이 줄면서 소금광산으로서 의미는 퇴색했으나,

 수백년 채굴 과정에서 형성된 독특한 광산 내부 자체가

 관광자원으로서 연간 1,000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매표소

 

소금광산이 관광자원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광산노동자들이 채굴 뒤 남은 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면서

 놀라운 예술작품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빈 공간을 예배당이나 운동장, 성인이나 유명인의 기념공간으로 활용하면서

내부에 수많은 조각작품을 남겼다.

 모두가 소금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광산 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입장권

 

사진 촬영권

 

3 유로를 별도로 내고 스티커를 받아 카메라에 붙여야 한다.

4,500원 정도인데 우리팀에서는 3~4명 정도만 산 것 같다.

 

소금광산 입구

 

내려갈 때는 계단으로 내려 가고

 올라 올 때는 엘리베이터로 올라온다.

 

산 입구에서 표를 받고 있다.

 

모두 9개의 층 위에 퍼져 있는 소금 광산은 

깊이가 327m에 달하며 광산 작업장 외에도

제단, 예술 작품, 예배당, 조각상 등을 암염에 조각한

300Km의 갤러리가 있다.

 

 

깊이는 지하 327m까지 9층으로 뚫려 있고 

 갱도의 길이는 300㎞ 이상이며 26개의 표층 갱도,

 9층에 걸쳐 파인 굴을 연결해 주는 갱도가 180개가량 있다.

관광객들은 130m까지만 내려간다.

관광객들에게 개방되는 구역은 전체의 1%쯤 밖에 안되며,

 채굴이 끝난 2,040여 개의 방 중

 28개의 독특한 방들이 일반에 공개 중이다.

 

 

700년 넘게 비엘리치카의 광산 노동자들은

 약 7,500만 톤, 2600만㎢의 암염을 채굴했다.  

 

 

나무로 만든 통로의 모습으로 이곳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관광은

 지하 101m 지점에 있는 킹가대성당까지

 378개의 나무계단을 이용해 내려가야 한다.

 

 

소금을 캐고 난 뒤 남은 공간은 나무를 세워 버티게 했다.

이 나무들은 소금기로 인해 썩지를 않는다고 한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에는

 수세기에 걸쳐 광부들이 암염에 조각을 해 왔는데,

​그 결과 광산내에는 여러개의 교회, 제단, 수십개의 동상들이

 실물 크기이거나 혹은 그 보다 크게 만들어져 있다.

 

첫번째 방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방

 

갈릴레이보다 먼저 세계에서 처음으로 지동설을 주장한

폴란드 크라쿠프 대학 출신의 천문학자.

지동설태양이 우주 혹은 태양계의 중심에 있고

 나머지 행성들이 그 주위를 공전한다는 우주관이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동상

 

1493년 크라쿠프에서 공부를 했던

코페르니쿠스가 비엘리치카를 방문한 것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1897년~1927년에 방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1973년 위대한 천문학자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여

 비엘리치카 광부들이

 4.5m의 소금기둥에 둥근 지구를 손에 든 코페르니쿠스를

 조각해 세웠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1473.2.19 ~ 1543.5.24 )

 

지동설을 착안하고 그것을 확신하게 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저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전4권)는

1525∼1530년 사이에 집필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한 태양계의 모습은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태양계와는 다르다.

 

가이드가 소금광산의 벽을 라이트로 비췄다.

 

 

가이드가 바위는 빛을 투과하지 못하지만

암염(소금)은 빛을 투과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라이트를 켜서 암염에 비추자 빛이 암염을 투과한 모습이다.

 

두번째 방 전설의 방인 킹가공주의 방

 

폴란드의 왕자와 결혼한 

13세기 헝가리왕 베라4세의 딸인 킹가 공주는

 폴란드에 소금이 없음을 알고 지참금으로 소금 광산을 달라고 하였다.

4세는 딸에게 마라무레라는 소금 광산을 주었는데,

그녀가 헝가리를 떠날 무렵 소금 광산의 수직 통로에 자신의 약혼 반지를 던졌다.

그리고 크라쿠프로 가는 도중 비엘리치카에서 행렬을 멈추고 그곳에 우물을 파보라고 명했다.

 랍게도 우물에서는 물대신 소금이 나왔고 맨 처음 캐낸 암염 덩어리 속에서

그녀가 던져 넣은 약혼 반지가 발견되었다 한다.

  이리하여 킹가 공주는 비엘리치카 암염 광산과 비엘리치카 마을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 후 킹가 공주는 소금 광산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이 암염 조각상은  약혼 반지를 찾아서 바치는 장면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약혼 반지를 찾아 바치는 장면을 재현해 놓았다.

 

왕비가 된 킹가 공주는 워낙 착해서 가난한 백성들을 도우며 살았고

남편이 죽고 난 뒤에도 갖고 있던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뒤

수도원에 들어가 여생을 마쳤다.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1999년 킹가 공주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이곳에서는

안내인이 통제하는 코스 이외의 갱도로 잘못 들어가면 

찾아나오기가 어렵다고 한다.

 

세번째 방  불에 탄 방 혹은 기어다니는 자의 방

 

이 조각은

 초기의 소금광산 개발 당시 갱도 확보를 위해 

광산 터널내부에 가스가 차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막대 끝에 횃불을 켜고  선발 광부가 먼저 진입하는 광경이다.

 

횃불을 치켜든 광부상

 

메탄가스는 화기를 만나면 순식간에 폭발하기 때문에

광부들은 얼굴과 몸을 가리고 긴 막대 끝에 횃불을 붙였지만

 여차할 경우에는 햇불을 들고 있는 광부는 가스에 의해 희생이 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한사람의 희생으로

 많은 많은 광부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며,

몹시 위험한 일이어서 이 역할을 수행하는 광부는

특별 대우와 동료 광부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불에 탄 방

 

1740년 버팀목이 불에 탄 것 때문에 불려진 방으로

천정이 그을린 것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다.

역사로 몇 번의 화재가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재난은 1644년에 일어 났다.

여러 달 동안 지속된 화재많은 사람들과 많은 말들이 죽었다.

또 다른 위험으론 초산 가스라 불리는 메탄이다.

 그 것은 새로 굴착바위 틈 새에서 나온다.  

메탄은 독성이 없으며 무색 무취 가스지만 5%~14% 메탄이 공기와 접촉하폭발한다.

광산 내부는 자연적인 폭발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그래서 가스를 태워버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긴 막대기 끝에 불을 붙이고

 얼굴과 몸은 폭발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것으로 가리고

 가스가 있을 법한 곳에 기어 들어가 불을 붙이는 아주 위험한 일을 했다.

그들은 대단히 존경 받았으며

농담 섞인 별명으로 고행자들 또는 기어 다니는 이라 했다.

 

 

습기가 많은 여름에 소금이 공기 중에 녹아 있다가

건조한 겨울에 소금이 굳은건데 소금꽃이라 부른다.

 

소금기둥

 

광산  실내에 있는 수분으로 인해

 소금은 자연히 소금 기둥을  형성하게 된다.

 

카시미르 대왕의 방

 

1368년 폴란드 카시미르 대왕은 소금광산에 관련된 법령을

 최초로 제정하여 광부의 특권을 정하여 소금 개발을 본격화한 왕이다.

 카시미르 대왕은 오래된 모든 광산법과 관습들 개편하여

소금 역법과 소금 캐는 방법 등을 재정하였다.  

 새로운 법은 고생하는 광부들에게 이익을 주었고, 광부를 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소금 광부들은 자유스럽게 일했고

 왕실 광산에서 일하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 하게 되었다.

   카시미르 대왕의 흉상은 탄생 600년을 기념해 1968년에 만들었다.

 

 

 소금을 채취하고 운반하는 광부들의 생활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하여 보여 주고 있다.

 

 

소금광산에서의 노동은

사람의 힘이나 혹은 동물의 힘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광산에서 부렸던 말 모형과 밀랍인형을 전시하여

당시 일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큰 말들은 좁고 깊은 지하까지 데리고 올 수가 없어서 

광부들이 어린 망아지를 안고 내려와 키워서

 노동을 시켰다고 한다.

 

 

캐낸 소금을 아래 층에서 위층으로 끌어올리는 도르래를

말들이 돌리고 있는 모습이다.

층마다 도르래가 있어서 말의 힘을 빌려 소금을 나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한번 들어온 말들은 평생 햇빛을 못보고

어두운 지하에서 시력이 퇴화해 눈이 먼 채

광산에서 생을 마치기 때문에 광부들은 고마운 말들을

아끼고 잘 먹였다고 한다.

 

광산 도르래로 돌리면 줄이 감기면서 물건이 올라온다.

 

18세기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치하에 들어가게 되면서

본격적인 소금 채굴작업이 활발히 이어졌다.

그 전까지는 인력으로 소금을 캐고 운반하고 물을 빼내던 것을

이제는 마력을 이용하게 되어 소금 채굴작업은

 상당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18세기의 폴란드 분할로

오스트리아 제국에 병합된 비엘리치카 암염 광산은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시찰할 때, 갱 안에 협궤 철도가 부설되었다.

 길이가 3km에 이르는

철도를 따라가면 지하 136m까지 내려갈 수 있다.

 

광산을 발견하기 전의 모습

 

습기가 물이 된 것을 모으는 장소 

 

습기가 모여져 물로 변해 흐르는 것을 모으고 있다.

 

 

소금의 가장 큰 적은 물이다

소금 광산에 흐르는 물은 일정한 지역으로 모아서 

 빼내줘야 한다.

 

나무로 되어 있는 계단 옆에 오래된 계단이 있다.

 

지금은 소금이 매우 흔하지만

 고대와 중세시대에는 소금이 아주 귀해서

소금의 축적은 부의 상징이 되었으며,

 손님이 오면 소금으로 간을 한 짠 음식을 대접해야

제대로 접대를 하는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유럽을 여행하면서 먹은 식당의 음식들이 

보편적으로 많이 짜게 느껴졌다.

 

 

 

광산의 광부들은 일이 너무 힘이들어

요정들이 있다고 믿어가면서 일을 했다고 한다.

 

 

모두 9개 층의 갱도 가운데

위에서부터 두번째 단계인 지하 90m에 내려 왔다.

이 지하 2층 이름은 성 킹가 성당의 조각상들을 만든

 광부 형제인 마르코브스키 형제라고 붙여져 있다.  

 

 

가발을 쓰고 있는 신분이 높아 보인는 사람이

앉아서 광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난장이방 (요정들의 방)

 

전설 속의 8명의 난장이 광산 요정 조각으로

소금 난장이들이 소금을 캐고 있는 모습이다.

 소금 보석을 지키는 이 요정들은 물로부터 소금을 보호하고

광부들에겐 위험을 알려 주었으며,

 또한 하얀 소금 광맥이 있는 곳에는 표시를 해 주기도 했다는 난장이 요정들.

이 요정들의 우두머리는 하얀 머리로

가장 아름다운 소금 크리스탈이 있는 방에서 살며, 

 물건을 오래 보존시키는 소금의 힘을 상징하듯 절대로 늙지 않는다고 한다.

 

광부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문

 

성 십자가 교회

 

일하는 광부들을 위해 나무로 만든 작은 성당인 성 십자가 교회

 나무로 예수를 안은 승리의 성모자상과

십자가에서 수난당하는 예수를 나무로 조각해 놓은 방이다.

.

승리의 성모자상

 

십자가 맞은편에 나무로 만든 승리의 성모자상이 있다.

1644년 스웨덴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광부들이 용감하게 싸워준 것에 감사해

폴란드 왕이 선물했다고 한다.

 

성 십자가 교회의 십자가에서 수난당하는 그리스도상

 

승리의 성모자상 맞은편에

십자가에서 수난당하는 예수를 나무로 조각해 놓았다.

소금광산에서 유일하게 나무로 만든 십자가로

광산에 화재가 났을때 다른 나무들은 다 탔는데

이 예수님 십자가만 안타고 남았다고 한다.

 

성 십자가 교회의 소금으로 만든 샹들리에

 

킹가 공주의 성당을 처음 접하는 곳인 커다란 발코니에서 본 킹가 성당의 전경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에서

 가장 크고 위대하고 감동적인 방은

 이 지역 광부들의 수호성인인 성녀 킹가의 성당이다.

깊이 지하 101m , 길이 54m, 폭 18m, 높이 12m인

 이 공간에서 파낸 소금만 약 2만2천t이 넘는다고 한다.

바닥과 벽 모두 암염인 체육관만한 공간에

1896년부터 광부인 요셉과 토마스 마르코프스키 형제가 조각한 것인데, 

 제단과 성인들의 조각상, 얕은 부조 등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든 것이 소금으로 되어 있다.

심지어 샹들리에까지 소금 크리스탈로 만들어져 있다.

 

 공사로 왼쪽부분이 비닐로 가려져 있는 킹가 성당

 

 여기서 작업하던 세 사람의 광부 중

킹가 성당의 많은 조각상들은 요셉과 토마스 마르코브스키 형제 작품으로

90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순전히 소금으로만 제작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상 처형을 생생하게 묘사한 중앙제대를 비롯해서

최후의 만찬, 아기 예수 피난 등 성경에 나오는 장면들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조각돼 있다.

 

 

소금 광산 관광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킹가 성당에서는 

지금도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음향 효과가 뛰어나 콘세트 같은 공연도

정기적으로 개최된다고 한다.

 

킹카 성당으로 내려 가는 계단 벽에 있는 조각상

 

토마스 마르코브스키의 손자 이그나시는 

소금광산 책임자로 일하며 비엘리치카 광산의

1978년 첫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성사시킨 주역이라고 한다

 

킹카 성당으로 내려 가는 계단 벽에 있는 조각상

 

어두운 지하공간에서

 일생을 광부로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오로지 신앙심 하나로

 이런 경이로운 종교적인 예술적 작품들을 만든이에게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킹카 성당으로 내려 가는 계단 벽에 있는 부조

 

벽에는 전문 조각가가 아닌 광부들에 의해 만들어진

성서의 여러 모습들이 조각되어 있다.

 

예수님의 탄생과 일생을 소금벽에 조각 했다.

 

마굿간에서 탄생하신 예수님 조각

 

동방박사 세분이 예수님을 만나러 마굿간으로 오는 모습

 

 

예수님이 태어나자 헤롯왕의 명령에 의해

아기들을 죽이는 모습을 조각했다.

 

 

성 킹가 성당의 조각들은

아마추어 조각가라 할 수 없을 만큼

기막힌 걸작들이다.

 

소금으로 만든 샹들리에가 휘황찬란하다.


 헝가리에서 폴란드로 시집오면서

소금광산을 지참금으로 가져왔다 하여

 수호신처럼 숭배되는 킹가 공주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작업의 안전을 기원하는 뜻으로 건설한 소금 예배당은

여느 지상의 예배당과 다를 것이 없다.

제단과 촛대는 물론 성서의 중요 장면들을 묘사한 부조와

기독교 성인들의 조각상까지 갖추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광산 노동자들이 암염을 캐내기 위해

광산에서 사용하는 도구만으로 조각한 것이다.

 

킹가 성당의 주 제단

 

주 제단은 형인 요셉이 4년 걸려 만든 것인데

주제단에 모신 반투명 소금 조각상은

성모님이 아니라 성녀 킹가 공주다.

 

 

성 킹가 예배당은

 광부 조각가, 그중에서도 요셉 마르코프스키의 작품이다.

 마르코프스키는 동료 광부들과 함께

사제석에 성 요셉과 성 클레멘트를 새긴 제단도 만들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무릎 꿇고 있는 수도사,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조각상이 예배당 양옆을 장식하고 있다.

 

 

요셉 마르코프스키는 훗날 성구실과 설교단,

 그리고 보조 제단까지 만들었다.

 1918년에는 예배당의 소금 크리스털에 전기가 설치되었다.

 

 

1920년 형 요셉이 죽자

동생인 토마스가 예수의 일대기를 조각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성당 벽면에 조각을 하기 시작해

1920년부터 1927년까지 얕은 부조를 추가했으며,

1927년 토마스가 죽자 1927년부터 1963년까지는

 안토니 뷔로데크가 작업을 이어받았다.

 

 

성 킹가 예배당은

 킹가 축일(7월 24일), 성 바르바라 축일(12월 4일), 성탄절 이브등

 3일은 직접 미사가 열린다 한다.

 

 

암염에 조각된 품들을 보니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제대 왼쪽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소금조각상

 

가나안 혼인잔치 장면을 소금으로 조각했다.

 

 

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은

 1935년 안토니 뷔로데크가 만든 것으로서

 원근법이 뛰어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불과 20cm밖에 안 되는 두께의 소금벽을 파고

조각된 최후의 만찬 조각이다.

 

 

예수님과 12제자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  소금조각상

 

 

성 가족상으로

아기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가 말을 타고

아버지 요셉이 말을 끌고 이집트로 피난 가는 소금조각상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기념상

 

이곳을 방문했던 폴란드 출신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 동상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기념상

 

작고한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은  

성직에 뜻을 두고 나치 치하에서 비밀리에 운영되던 크라쿠프 신학교를 졸업(1942)하고

사제가 되어(1946) 크라쿠프교구의 대주교로(1964) 봉사하였으며 

 비 이탈리아권 국가에서 455년 만에 처음으로 교황(1978)에 선출되었다.

그는 27년간 재직하는 동안 1994년 2,000년을 맞는 칙서를 통하여

 구·신교의 일치운동을 위한 화해적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으며 

우리나라를  위시해서 세계의 많은 분쟁지역을순회하면서 

분열을 조정하고 세계평화를 위하여 수많은 치적을 쌓았다.

 

마리아상

 

암염으로 만들어진 마리아상

 

암염은 빛이 통과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리아상도 빛이 통과해 신비롭게 보인다.

 

 

 

소금 샹들리에

 

 소금 크리스탈로 만든 대형 샹들리에로

1918년에 전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소금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암염을 크리스탈처럼 깍아서 

구멍을 내고 줄로 이은게 보인다.

 

지하 성당의 바닥도 소금으로 만들어져 있다.

 

성당 바닥도 모두 암염에 무늬를 넣어

마치 타일을 깐 것처럼 보이도록 새겼다.

 

 

킹가 공주의 전설을 새겨 놓았다.

 

지하성당을 만든  3인의 광부들 업적을 담은 기념물

 

광산에서 조각을 하던 광부들이 죽으면

이곳에 이름과 업적을 새겨 기렸다.

세 명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는데 마지막 칸이 비어 있는건

아직 1명이 생존해 있기 때문이라 한다.

 

성 안토니우스의 예배실

  

광산 안에 있는 여러 개의 예배당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바로크 양식의 성 안토니우스 예배당으로,

이곳에서는 1698년에 첫 미사가 거행되었다.

 광부들은 지하로 내려가는 길에 항상 여기 들러 기도했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와 금속을 캐내는 광부들의 수호성인인 성 안토니우스의 조각상은

17세기에 비엘리치카 암염 광산에서 일하던 안토니 쿠츠즈코브스키가 만들었다.

포루투칼 리스본의 성 안토니우스는

 무엇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호 성인으로 광부들은

성 안토니우스가 어디를 파야 소금이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고 믿고 있다.

 

이곳을 방문했던  독일시인 괴테의 기념상

 

 

계단도 소금덩어리를 깎아 만든 것이다.

 

소금광산의 벽

 

 유네스코 최초 문화유산에 등재된 10개 나라 표시석

 

폴란드 크라쿠프지구의 비엘리치카는 암염갱으로

 독일의 아헨 대성당, 미국의 옐로우 스톤 등 12곳이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1978년에 첫번째로

 등재되었다는 내용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1호 표석

 

보석을 지키는 신의 방

 

소금광산의 오랜 전설로 지하세계의 보석을 지키는 신이 있는데, 

그가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광산의 아주 오래된 부분에서만 나타난다.

원래는 희고 긴 수염을 한 노인이지만

다양한 형태로 광부들 앞에 나타난다.

광산 속에서 파란색 불빛이 앞을 스쳐 지나가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징조다.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홀로 떨어져 어두운 통로로 걸어가던 광앞에

갑자기 한쪽 벽에서 나타나 반대편 벽 속으로 들어가는 짧은 순간

 반짝이는 눈으로 광부를 무섭게 노려 보면서

 한 손으론 위험을 알리는 행동을 했고 한다.

 이런 일을 당하면 더 이상 그 길을 가지 말고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거나,

동료들에게 돌아가서 빨리 밖으로 나가야 된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징조는 가스폭발, 굴의 함몰 또는 위험한 불 등이 일어날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광산의 내부온도는 항상 14℃를 유지 한다.

공기 순환을 위해서 6단계 243m에서 콤프레셔를 통해 지하에 공기를 보낸다.

 통로는 공기 순환 때문에 바람이 세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자동으로 닫히게끔 만든 문들이 있다.

그리고 수동인 문들도 많은데 이 문들을 닫을 때는

가장 나중에 오는 사람은 반드시 뒤에 처진 사람이 없는지 확인해서

 문을 닫아야 한다.

 

 

소금 광산 내부의 공기가 포함하고 있는

 염화나트륨, 마그네슘, 칼슘 등의 암염 성분들이

호흡기 질환에 치유 효과가 있다는게 알려지면서

1964년에는 5단계 지하 211m 지점에

호흡기질환자와 천식이나 알러지 환자들을 위한

온천 건강 센터를 영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우체국

 

비엘리치카 광산에는

유럽에서 가장 깊은 우체국과 운동장

그리고 자그마한 배를 타고

노를 저어갈 수 있는 9m 깊이의 소금 호수까지 있다.

 

 

 소금광산의 공기는

여름에는 공기가 외부보다 차갑기 때문에 습기가 생기고

겨울엔 외부 온도보다 높아서 내부가 조하게 되어 모든 습기를 증발시킨다.

그래서 광산 내부는 항상 14℃ 온도를 유지하고 공기는 소금기를 가지고 있어

지하공간이라 해도 신선한 공기와 소금 특유의 호흡기 치유성분으로

갑갑하다거나 탁한 기분을 못 느끼고 매우 상쾌한 기분으로 둘러볼 수 있다.

 

소금광산의 휘장 

 

 소금광산의 문양

 

 광산내의 주의사항

    1. 절대 성냥이나 라이터 등을 사용할 수 없다.

    2. 가장 나중에 오는 사람은 반드시 뒤에 처진 사람이 없는지 확인해서 문을 닫아야 한다.

    3. 만약 파란 불빛을 보면 놀라지 마시길, 것은 소금을 지키는 영혼이다.

 

 소금광산의 문양

 

 

이 소금광산은 폴란드 국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무원 신분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전에 이곳 광산에서 근무하던 광부들이라고 한다.

 

부드리크 챔버

 

소금 광산에는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점과 식당, 우편물 취급소 등이 있고

특히 세 곳의 식당에서는 폴란드 전통 요리를 맛볼 수 있으며

그 중 한 곳인 부드리크 챔버

약 150명이 함께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소금광산 관광객들이

 내려 갈 수 있는 곳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식당으로

광부들이 사용하던 곳이다.

 지금은 일반 관광객도 사용할 수 있다.

 

 

​비엘리즈카의 소금광산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천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엘리베이터 층, 소금 박물관,

비스툴라(비스와) 방엔 화장실과 기념품점,

식당과 카페가 있는 통로다.

 

소금박물관

 

  130m 깊이에는

광산의 채굴 역사, 기술 발전사, 채굴 도구와 기계, 광산 지도 등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설치되어 있으며, 수많은 도구나 기계도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다.

최근 복원된 박물관의 중앙에는 현장 감독이 사용하던

호화로운 장식이 곁들여진 무기류와 광산 책임자의 휘장 등도 장식되어 있다.

 또한 전시품 중에는 17세기의 동판화가 윌리엄 혼디우스가 작성한 광산 지도도 있는데,

그 곳에는 장식 문양과 함께 광산의 일상적인 풍경도 그려져 있다.

이 지하 박물관에는 보존 상태가 좋은 오래된 바퀴의 굴대, 수차, 가축의 힘을

 이용해 움직였던 권양기등도 전시되어 있다.

또한 몇 세기에 걸쳐 갱도의 조명, 환기, 공기 정화 등의 설비가

 서서히 갖추어진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율리우시 스워바츠키(1809년~1849년)

 

폴란드의 시인·극작가

 

소금 박물관의 끝에 놓여 있는 성녀 킹가 공주의 그림

 

소금 박물관의 끝에 성녀 킹가의 초상이 있다.

그 아래 십자가를 새긴 암염 덩어리가 놓여 있다.

 

 

 

 

헤어질 때 흔히 하는 영어 인사

신의 축복이 있기를(God bless you)은

비엘리치카 광부들이 서로 지나칠 때 하던 인사말에서 유래했다고.

어둠과 위험과 두려움 속에서 하얀 황금을 캐내러

지하로 내려가는 광부들에게 광산 운영자와 선임자들이 헬멧을 벗고

경의를 표하던 말이기도 했다 한다.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 광산의 총 갱도 길이는 300km에 달하며 

가장 깊은곳은 지하 328m이다.
관광코스로 개방되어 있는 곳은 지하 101m에 위치한 지하성당까지
로,

내려갈 때는 378개의 나무계단을 걸어 내려가면서

 시설들을 관람하고 

올라올 때는 승강기를 타고 올라오게 돼 있다.

 

밖에서 본  엘리베이터

 

비엘리치카 광산 매표소겸 지하 갱도 입구

 

 

 

비엘리치카에 있는 공원과 뒤에 교회가 보인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가고 있다.

 

폴란드 전통음식인 플라츠키로 저녁을 먹은 KMITA 레스토랑

 

 

자게 될  폴란드 크라쿠프 퀄리티 시스템 호텔

 

아침에 찍은 퀄러티시스템 호텔

 

호텔 로비

 

객실 복도 

 

객실

 

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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