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살라망카] 살라망카 가는 길, 차창으로 보는 살라망카

푸른 바다. 2016. 10. 17. 13:21

스페인 살라망카 가는 길, 살라망카

 

 

 

2016년 4월2일 토요일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여행 세째 날

 

마드리드-톨레도-콘수에그라-살라망카-파티마-까보다로까

리스본-세비야-타리파-탕헤르-페스-라바트-카사블랑카-미하스-론다

코르도바-그라나다-바르셀로나-몬세라트

 

 

 

마드리드

 레가네스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호텔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살라망카 중세 대학도시로 향했다.

살라망카는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유럽에서 세번째로 역사 깊은

살라망카 대학이 있는 곳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새로운 도시를 보기 위해,

떠나는 여정은 항상 마음이 설렌다.

또 어떤 역사가 깃들어 있고 또 어떤 모습의 도시가

나를 맞아 줄지 궁금해 하며 기대하는게

여행의 크나 큰 기쁨이 아닐런지...

 

 

 

 

 

 현지 가이드의 구령에 따라

몸 풀기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이다.ㅋ

 

 

 

 

고국을 떠나 여행하다가

우리 기업의 로고를 보게되면

정말 정말 무지 반갑고 뿌듯하다.

 

 

 

 

마드리드에서 살라망카까지는

기차로 가면 약 2시간 반 정도이나

우리는 버스에다,

도중에 휴게소에 들렸다 갈 예정이므로

 3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생각했던 스페인에 연관된 것들을

지금 나열해 본다.

 투우, 정열의 나라, 집시들의 플라멩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킨 무자비한 코르테스,

잉카제국을 정복한 피사로,

영국 함대에 무너진 스페인의 무적함대,

 고야와 피카소,그리고 엘그레코와 벨라스케스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미션과 엘시드

알함브라 궁전 기타곡, 이슬람교의 모로코 무어인,

헤밍웨이,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근친혼,

스페인 내전, 독재자 프랑코총통,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평민 출신에 이혼 경력까지 있는

 레티시아와 결혼한 잘생기고 멋진 펠리페 6세

 

 

 

 

 

 

멀리 독재자 프랑코총통의 무덤이 있는

전몰자의 계곡이 보인다.

마드리드에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해발 1,000m의 과다라마 산맥에 위치한

전몰자의 계곡은 스페인 내전 때

전사한 사람들을 위한 거대한 기념물이다.

 

 

 

 

높이 152m의 세계 최대의 대형 십자가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십자가라고 한다.

참고로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 있는건 예수님상.

 

 

 

 

전몰자의 계곡

 

1936년에 일어난 에스파냐 내전 중

 사망한 4만여 명의 전몰자 무덤을 안치한 곳으로,

 에스파냐 내전을 승리로 이끈 프란시스코 프랑코총통이 

좌우 이념의 화합과 화해를 도모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1940년에 조성하기 시작해 1958년에 완공했다.

 산로렌소데엘에스코리알의 거대한 바위산에 묘지를 조성하면서

 바위산 정상에 높이 152.4m에 달하는 십자가를 세웠으며,

 바위산의 두꺼운 암반을 250m나 뚫고 들어가

축구장 크기의 거대한 지하 성당도 함께 조성했다.

 단일 기념물로는 20세기 최대 규모이다.

 

 

 

 

전몰자의 계곡 전경 (위키백과)

 

1975년 프랑코 총통 사망 이후

스페인 전역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후 전몰자 계곡은

실제로 프랑코 총통 개인 묘소와 가톨릭 수도원으로 쓰여,

프랑코 총통 개인을 위한 전승 기념관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 받았다.

2006년3월17일 유럽평의회상설위원회는

정부에 전몰자 계곡에서 프랑코 묘의 이전을 요구했으나

프랑코 유족측의 반대와 우파 정권인 국민당의 무성의로

지금까지 관철시키지 못했다.

 

 

 

 

십자가로 올라가는 모노레일과 십자가상 밑의 피에타 (퍼 온 사진)

 

성당 맨 안쪽에는 프랑코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위 높은 천장은 바로 산 정상의 거대한 십자가에 닿아 있다.

이곳에는 프랑코의 우군과 적군이었던

 전사자들도 모두 안치되어 있다.

이 포용력 있어 보이는 단면은

독재자 프랑코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어느 정도 상쇄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전몰자의 계곡 성당

 

성당의 전체 길이는 300미터이며

암벽 속의 길이만 해도 260미터에 달한다.

로마의 바티칸 성당이 260미터인데

그보다 길어서는 안 된다는 지침 때문에

 중간에 턱을 만들어 구분함으로써

 바티칸 성당과 같은 260미터가 되었다.

 

 

 

 

 이 기념물은

바위에 구멍을 뚫고 만든 거대한 성당으로

정상에는 125미터의 거대한 십자가가 설치되어 있다. 

프랑코는 직접 건축가들의 설계를 지휘, 감독했다.

그는 공사가 진행된 약 20년 동안(1941~1959)

수차례에 걸쳐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약 2만 명의 인부들이 작업했으며

그들 대부분은 정치범들이었다.

 

 

 

 

파시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년)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1892년에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방에서 태어났다.

  알카사르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09년부터 에스파냐령 모로코의 리프족의 민족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활약하였고, 타고난 군인이었던 그는

 모로코의 게릴라전에서 용맹을 떨치며 유능한 장교로 명성을 얻었다.

 1912년부터 1925년까지 모로코에서만 근무했다.

그 후 계속 승진하여 1921년  33세에 장군으로 진급,

 나폴레옹 이래 유럽 최초의 최연소 장군이 되었다

1931년 좌파인 공화제가 수립되자 공화정부에 반대한 이유로

 발레아레스섬으로 좌천되었다.

 1936년 ‘인민전선정부’가 수립되자 모로코로 가서 반정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후 2년 반에 걸친 스페인내전에서 승리,

팔랑헤당의 1당 독재에 의한 파시즘국가를 수립하였다.

프랑코는 마드리드에 입성한

1939년 4월부터 1975년 11월, 그가 죽을 때까지 스페인을 통치했다.

프랑코는 1938년 1월과 8월에 공포한 두 개의 법령을 통해서

자기가 원하는 모든 법률과 법령을 공포할 수 있는 권한을 스스로 부여받았다.

프랑코는 입헌 독재자이고,

그의 권한은 자기 스스로 내리는 한계 외에는 제한이 없을 정도였다.

 프랑코 자신이 언명했듯이 그의 독재권 행사에는

 '하느님과 역사 앞에서만 책임이 있을 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명목상으로 중립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독일 ·이탈리아를 지원하였기 때문에 전후에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초기는 표면적으로는 자유화의 기운이 돌았고

 1955년 미국의 반공정책에 따라 국제연합에 가입하였다.

 1966년 종신주석의 지위를 확립하고

1969년 국회에서 그가 죽거나 집정이 불가능해지면

부르봉가의 후안 왕자 카를로스가 왕위에 오를 것을 선언하였다.

이 선언으로 프랑코 사후 스페인은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스페인내전 (1936년~1939년)

 

1936년 2월 19일

 좌파인 스페인 제2공화국의 인민전선 정부가 성립된 데 대하여

 7월 17일 군부를 주축으로 하는 파시즘 진영이 일으킨 내전이다.

 스페인 내전은 20세기 정치 사회적 모든 이념들이 집중되어

 혼전을 일으킨 전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배경이 되었다.

 

 

 

 

과달라마 산맥을 관통하는

약 3Km의 과달라마 터널을 통과하면

카스티야이레온 지방이다.

 

 

 

 

 09:15분 경 휴게소에 도착

 

 

 

 

 

 

 

 

 

 

 

 

 

 

 

 

 

 

 

 

 

 

 

 

 

 

 

 

휴게소에서 20분 정도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살라망카로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풍력발전기는

 이제 어느나라를 가던

볼 수 있다.

 

 

 

 

스페인 북서부에 위치한

카스티야이레온 지방의 비옥한 농경지가

눈을 시원하게 한다.

 

 

 

 

살라망카

스페인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카스티야이레온 지방에 속하는

 주인 살라망카 주주도이다.

 

 

 

 

푸른 초원 뒤로 살며시 나타난

눈에 덮여 있는 산봉오리가 아름답다.

 

 

 

 

과달라마 산맥이 이어지고 있다.

 

 

 

 

 

 

 

 

 

 

평화로운 스페인 시골마을 모습

 

 

 

 

 

 

스페인 카스티야이레온 지방의 초원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다.

 

 

 

 

 

투우의 상징인 황소모양 간판이 종종 눈에 띄는데,

스페인 남부의 전형적인 포도주라는 뜻으로

 황소를 사용한 셰리주회사상품광고판이었다고 한다.

  고속도로에 난립하던 각종 광고물을

스페인 정부가 일제히 정리하여 광고판을 금지시키게 되었는데,

 이 간판을 스페인의 명물로 여긴

관광객들의 강력한 항의로 황소 모양의

이 간판만 유일하게 남게 된것이라고.

기업광고가 스페인의 상징물처럼 되어버린 특이 사례로

스페인 어딜 가든지 한적한 고속도로

국도변 등지에서 볼 수 있단다.

 

 

 

 

 

 

도시에 살라망카 대학 건물이 산재해 있는

중세 대학의 도시 살라망카에 다 온 것 같다.

 

 

 

 

살라망카

 

에스파냐 카스티야이레온 지방에 속하는

살라망카주의 주도로 마드리드 북서쪽 180km에 있는

바야돌리드 남동쪽 70km 지점에 위치하며,

 도루강 지류인 토르메스강 우안에 있다.
농산물 ·가축의 거래 중심지로,

비료 ·피혁 ·양조 ·제분업이 활발하다.

 한니발의 점령 이래, 로마의 군사도시였으나,

고트와 이슬람의 지배를 거쳐

 1085년 리스도교도의 지배로 되돌아갔다.

 13세기에 알폰소 대주교에 의해서

언어학부가 유명한 살라망카대학이 창립된 이래

학술 ·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영했다.

 

 

 

 

마드리드에서

 기차로 약 두시간 반 거리인 살라망카는

 12세기 로마네스크양식의 대성당을 비롯해서

 16세기에 건립된 고딕양식의 대성당과

 18세기에 만들어진 에스파냐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인 플라자마요르와

 로마시대의 다리, 극장 등

수많은 명승고적이 남아있다.

 

 

 

 

1218년 살라망카에

스페인 최초로 설립된 살라망카 대학은

130년 먼저 설립된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

 31년 늦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16세기까지 스페인에서 가장

 왕성하게 학문과 예술을 꽃피웠다.

 

 

 

 

 

 

 

살라망카 로마노 다리

 

살라망카 시는 토르메스 강 옆 산에 위치한다.

 이 강엔 길이 150 m의 교각이 존재하고,

총 26개의 아치 중 15개는 고대 로마 시대에 세워졌다.

 나머지는 16세기에 완성된 것들이다.

 

 

 

 

살라망카 고대 로마다리

 

 고대 로마가 에스파냐를 지배하던 시기인

1세기경에 건설된 2000년 된 다리로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로마의 건축술에

다시 한번 놀라울 따름이다.

 

 

 

 

살라망카 로마교

 

 2천년 가까이 토르메스강에 놓여 있는

 길이 356m에 달하는 로마교는

 89년에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모두 15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다.

교각 일부가 17세기에 홍수로 유실되면서

재건되기도 했다.

 

 

 

 

인간이 본격적으로

도로와 교량 건설에 매진한 것은

 로마시대부터다.

 끝없이 뻗어나가는 제국의 확장에

필수 인프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스페인 지역에는 로마 초기의 교량인

톨레도의 알칸타라 다리와 살라망카 다리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모로코 이슬람인인 무어인 양식이 가미된

무데하르 양식의 건물인 것 같다.

 

 

 

 

 

 

 

 

 

 

차창으로 살라망카시를 보고 있다.

 

 

 

 

 

 

 

 

 

 

 

 

 

 

 

 

 

 

 

 

 

 

각종 동상들이...

 

 

 

 

 

 

 

 

 

 

 

 

[참고: 두산백과, 위키백과, 스페인역사 다이제스트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