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살라망카] 살라망카 대학, 클레레시아 성당, 조개의 집

푸른 바다. 2016. 10. 18. 12:42

스페인 살라망카 조개의 집, 클레레시아 성당 (신학대학), 살라망카 대학

 

 

 

2016년 4월2일 토요일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여행 세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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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 되어 있고,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살라망카 신, 구 대성당을 보고는,

아까 대성당을 보고 오는 길에 볼려고 지나쳤던

클레레시아 성당과 조개의 집으로 향했다.

 살라망카 중세 대학도시는 걷다보면 

붉은 사암으로 건축된 건물들의 색깔이

 햇빛으로 인해 수시로 변하는 걸 볼 수 있어

너무나 매력적이다.

 

 

 

 

살라망카 대학은

볼로냐, 옥스퍼드 대학보다 늦게 건립되었지만,

1250년에 이미 유럽 최고의 대학 중 하나로 입지를 굳혔다.

또 살라망카 대학은

기독교 세계에서 대학 기관의 다양한 기능을 보여 주는

우수한 건축 유산을 보존하고 있다.

 

 

 

 

살라망카는

다양한 교육기관을 가지고 있는 대학 도시로 유명한데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스페인 최초의 대학이자

유럽에서 세번째로 역사깊은 살라망카대학이 있는 곳이다.

  13c 알폰소대주교에 의해 설립된 살라망카대학이

사암의 붉은 흙으로 건설되어 건물들이 붉은 빛을 띠며,

도시전체에 분포되어 있는 대학도시이다.

 

 

 

 

1218년 스페인 최초의 살라망카 대학이 창립된 이래

학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인구 15만 정도의 소도시이지만

 대학생이 7만3천여 명으로,

거리에 젊은이들이 많은 젊음의 도시이기도 하다.

 

 

 

 

콤파니아 거리

 

살라망카 대학은

1218년에 설립되어 16세기까지 

스페인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였으며,

1088년 설립된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

1249년에 세워진 영국 옥스퍼드 대학과

더불어 유럽의 명문대학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살라망카 신학대학 건물과 조개의 집

 

살라망카 대학의 캠퍼스는

한 곳에 모든 학부가 있는 게 아니라

 시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클레레시아 성당 살라망카 신학대학

 

살라망카의 콤파니아 거리에 있는 클레레시아 성당은

국왕 펠리페 3세의 부인 마르가리타 왕비의 명령에 따라 

17세기 에스파냐 건축가 후안 고메스 데 모라가 총책임자로

 1611년에 처음 건축을 시작했다. 

이후 페드로 마토, 안드레스 가르시아 데 키뇨네스 등

 여러 건축가들이 대를 이어 건축하여

1755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완성했다.

건립 이후 한동안 왕립 예수회 신학대학으로 사용했다.

 

 

 

 

클레레시아 성당 현 살라망카 교황청 대학교 본부

 

중세시대 대규모 수도원의 웅장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건축물로

 현재 에스파냐에 남아 있는 바로크 양식 건축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걸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건축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완벽한 대칭 구조를 이루는 정면으로,

 거대한 규모의 정면 지붕 좌우측 끝에는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된 대형 탑이 각각 높이 세워져 있다.

 정면 1층 외벽에는 코린트양식의 

아름다운 대형 원기둥 6개가 대칭 구조로 세워져 있으며,

 원기둥 머리 부분마다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현재 이 건축물은 살라망카 교황청 대학교 본부 건물로 사용한다.

 

 

 

 

살라망카 신학대학

 

살라망카의 신학교는 12세기 말부터 존재해 왔다.

 이는 13세기 초에 수도회 대학으로 바뀌었고,

 1243년 4월에는 페르디난드 3세에 의해

왕실의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당시의 유명 신학자들은

거의 이 살라망카 대학 출신이었다.

중세의 대학 건물에선 현재 강의가 진행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전 유럽의 석학과 신학자가 모여들어

 연구를 하고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16세기에 아스테카 왕국을 정복한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와

돈키호테의 작가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가 이곳에서 공부했고,

특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살라망카 신학대학에서

신대륙 항해를 위한 공청회를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살라망카 대학은 1254년 알폰소 10세에 의해

 대학(Universidad)이라는 이름을 얻어

유럽에서 최초로 대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학교로 알려져 있다.  

시내에는 살라망카 대학들이 산재해 있다.

 

 

 

 

조개의 집 콘차스 저택 (카사 데 라스 콘차스)

 

콤파니아 거리에 있는 콘차스 저택은

조개껍데기 모양의 부조가 건물을 장식하고 있어서,

조개 껍데기 저택이라고 부르는데,

한쪽 벽면에 300개 이상의 조개 껍데기 형태의

부조를 새긴 외관이 아주 특이하다. 

15세기에 건축된 살라망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물로,

 조개껍데기 장식은 기사단 소속의 로드리고 말도나도 기사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또는 자신이 소속된 수도회를

나타내기 위해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 조개의 집은

공공도서관과 정보센터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조개의 집  (카사 데 라스 콘차스)

 

1493년 건축을 시작해 1503년 후기 고딕 양식과

 플래터레스크 양식으로 완성한 저택으로, 

유명한 순례 성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가는 순례 길을 지키던 기사 로드리고 아르얀스 말도나도가

결혼 후 거주할 공간으로 건립했다.

처음 건축 당시의 당당한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정면 외벽 전체에 동일한 모양의 조개 300개 이상이 장식되어 있어

흔히 '조개의 집'이라고 부른다.

1701년에 일부 파손된 부분을 보수하면서

 규모를 확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출입문 위쪽으로는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 이사벨 1세와 

남편 아라곤 왕국의 국왕 페르난도 2세를 상징하는

방패 문장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조개의 집 내부

 

산티아고 기사단의 숙소로 쓰인

저택 안으로 들어서면

사각형 정원이 있는 중정이 있고

 2층에는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사각형 발코니가 있다.

 

 

 

 

조개의 집 2층

 

15세기에 고딕양식, 무어양식

 그리고 이탈리아양식이 섞인

이 고풍스러운 저택은

독특한 외관 때문에 살라망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으며, 

 저택 내부 중앙의 안뜰만 일반에게 무료로 공개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보호하던 콤포 스텔라 기사단의 숙소 건물

 

벽면에 성 야곱(산티아고) 성인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상징인 조개로 장식하였다.

조개는 종교적 의미에서 야고보, 야곱을 뜻하며

 스페인어로 산티아고라 부른다.

야곱이 잠들어 있는 성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의 상징으로

 지금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목에 이 조개껍데기를 걸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개는 순례자를 상징하는데

 유명한 순례의길인 산티아고 델 콤보 스텔라

역시 조개로 순례의 방향을 표시하기도 한다.

조개가 순례자를 의미하는 이유는 다양한데

순례자들이 조개를 목에 걸고 다니는 여러 이유 중

 순례의 길에 물을 떠먹기 쉬운 가리비의 효율적인 용도부터

 멀리 까지 퍼지는 빛의 원리와 같이 퍼져 보이는 가리비의 모습

그리고 순결을  의미하는 등 다양한 의미가 있다.

 

 

 

 

프란시스코 데 살리나스 동상

 

스페인의 오르간 연주자이자

살라망카 대학의 교수였던 사람으로

16세기 도형으로 되어 있던 스페인의 음악 부호를

수학적인 정확한 용어로 설명한 음악가라고 한다.

 

 

 

 

 

 

살라망카는

약 40년간 스페인을 통치하며 민주주의를 억압한

파시스트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 하에서는

 저항운동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살라망카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대학에서부터 나온다.

15세기~18세기에 이르는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우수한 건축물군이

 스스로 ‘미덕과 학문과 예술의 어머니’라고 선포한

 대학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이는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처럼

살라망카가 기독교 세계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대학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에스쿠엘라스 마요레스  (밑에 사진들도 퍼 온 사진)

 

살라망카 대학 주요 시설물이 들어서 있는 곳으로 

15세기 초에 건축되어

 16세기에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여기에 살라망카 대학의 그 유명한 정문 파사드 및

내부 구경을 위한 입구가 위치해 있다.

 

 

 

 

 살라망카 대에스쿠엘라스 마요레스

 

성 이시드로(San Isidro) 광장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면 유서 깊은 살라망카 대학인데,

198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시내 곳곳에 대학 건물이 산재되어 있다.

대학 입구 광장 중앙에는

살라망카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던 교수이자

스페인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시인인

루이스 데 레온(Luis de Leon) 수사 동상이 서 있다.

 

 

 

 

플라테레스크 양식의 살라망카 대학 정문 파사드

 

플라테레스크 양식은

 후기 고딕양식인 불꽃양식에

 르네상스 초기양식을 섞은 양식이다.

원 안에는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 이사벨 1세와 

남편인 아라곤 왕국의 국왕 페르난도 2세 부조이다.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2세 (가톨릭 양왕)

 

 

 

 

해골 머리 위에 앉은 개구리

 

살라망카 대학의 정문 파사드 부조 중에는

해골 머리 위에 앉은 개구리가 있는데,

개구리를 찾는 사람에겐 행운이 깃든다는 이야기가 있어

문 앞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 개구리는 살라망카 대학의 상징이었는데

이제는 살라망카 시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건물 벽면엔 중세에 썼다는 글씨도 있다고.

 

 

 

 

 

 

살라망카 대학 도서관

 

대학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소는

살라망카 출신 화가인 페르난도 갈레고(1440~1507)

천장화가 있는 공간과 도서관이다.

 푸르스름한 바탕에 노랗고 화사한 별들이 있고

전갈, 마부, 뱀 등 별자리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진 천장화는

 보는 이를 신화와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다. 

도서관 벽면의 책장에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귀중한 필사본과

16세기 이전의 장서 약 100만 권이 소장돼 있다. 

살라망카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건물은

1413년에 세워진 오스피탈 델 에스투디오(의과대학)로,

현재 학장실과 그 부속 시설로 쓰이고 있다.

 

 

 

 

[참고: 두산백과, 위키백과, 네이버 캐스트, 유네스코]

[푸른 바다 서명이 없는 사진은 퍼 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