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르코성당, 성 캐서린 성당, 반 옐라치치 광장
2017년 4월 17일
발칸 9개국 여행 둘째 날
크로아티아 - 슬로베니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 알바니아 -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 불가리아 - 루마니아
이스탄불에서 자그레브에 도착해
바로 시내 투어에 들어가
자그레브 대성당을 둘러보고 난 뒤
자그레브에서 제일 오래 되었다는
성 마르코 성당과
전형적인 바로코 양식의 성 캐서린 성당,
그리고 자그레브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자
만남의 광장인 반 옐라치치 광장을 계속 투어했다.
자그레브는 13세기 오스만투르크족의 침입을 막기위한 성벽에 둘러싸인 그라데츠와 16세기에 요새화된 성직자 마을 카프톨, 이 두 마을이 결합하여 세워졌다. 크로아티아의 수도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고 소박하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는 중부유럽 교통의 요지로써 동과 서를 향하는 여행자들의 기착지로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했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가 자그레브를 통과하며
이스탄불과 베오그라드,빈(비엔나)과
서유럽이 연결되어 있다.
성 마르코 성당
13세기인 1256년에 지어진 성 마르코 성당은 도시의 교구성당으로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인 그라데츠 구역의 중심부인 성마르크 광장(구 그라데츠 광장)에 위치한다.
타일 지붕으로 유명한 성 마르코 성당은
자그레브를 대표하는 건물 중의 하나이다.
성 마르코 성당
지붕의 왼쪽에는 크로아티아 문장이,
오른쪽에는 자그레브 시 문장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성 마르코 성당
자그레브 기념엽서에
자주 등장하는 성 마르코 성당은
자그레브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성당이 세워지면서 중세 때 그라데츠 지구가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 마르코 성당 현관문 위의 조각상
현관에는 15개의 조각상이
11개의 벽감(조각상을 놓기 위해 만든 곳)에 놓여 있고
맨 꼭대기에는 예수와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측면에는 예수의 12제자 조각상이 있는데,
이 조각상들은 예술적 가치가 높아 성당뿐만 아니라
남동유럽에서도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겨진다.
북서쪽 측면 외부에는 1499년 제작된 석조작품의 복제품이 있는데,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슬로베니아 기사들이
문장이 들어간 덧옷을 걸쳐 입은 모습을 표현했으며
자그레브에서 가장 오래된 원본작품은
자그레브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성 마르코 성당
14세기 후반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통하여
성당의 외관은 고딕양식으로 바뀌었고,
지붕은 3곳으로 구분되어 육중한 원형 기둥이
고딕 양식으로 장식한 서까래를 받치고 있다.
성당 내부는 3개의 회중석을 가진
삼각구도로 되어 있다.
성 마르코 성당
건물 남쪽의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현관은 고딕 양식으로
19세기 말 프라하 출신의 건축가가 지었다.
성당 내부에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유명한 조각가
이반 메슈트로비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화려한 벽화와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로 유명하다.
성 마르코 성당은 재건하는 데에만 25년이 걸린 만큼
고딕 후기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빼어난 외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수많은 내외국 관광객들의 칭송을 받는 관광 명소이다.
성 마르코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성당 내부는 황금색의 천장과 양쪽 벽면을
가득 채운 프레스코화가 있다.
위키백과 사진
성 마르코 성당 뒷 편
성 마르코 광장의 대통령궁
성 마르코 광장은
그라데치라 불리는 자그레브 구도심의 중심부이자,
법과 정치, 종교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국회의사당, 정부청사, 시의회의사당, 법원 등
주요기관들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 대통령 취임식도 이 광장에서 열린다.
크로아티아 정부청사
유고연방 시절,
크로아티아 대통령의 관저이자 집무실이었다.
국회의사당
자그레브 시청사
사진의 맨 뒤에
남쪽 성문을 지키는 역할을 했던
로트르슈차크 탑이 보인다.
오른쪽 건물은 박물관
맨 뒤에는 로트르슈차크 탑
로트르슈차크 탑(LotrscakTower) 퍼 온 사진
중세시대에 도시를 방어하던 탑으로 보존이 잘되어 있다.
그라데츠 타운의 남쪽 문에 있으며 13세기에 건축되었다.
외형은 사면으로 된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서로 모양이 다른 돌과 벽돌을 혼합하여 만들었고
성벽의 두께는 1.95m이다.
탑에 있는 종은 매일 저녁 도시로 진입하는
문을 닫기 전에 울렸는데, 종(Bell)이 없어졌기 때문에
‘도둑의 종’이라는 뜻의 '로트르슈차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19세기에 4층으로 증축되었고 창문도 덧대었으며
맨 위에 대포를 들여놓아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일 정오에 종 대신 대포를 발사한다.
오늘날에는 전시관으로 사용되며
근처에는 선물가게와 갤러리들이 있다.
높은 전망대에서는 자그레브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바로코 양식의 성 캐서린 성당
17세기에 지어진 교회로
전형적인 바로크 스타일이다.
성 캐서린 성당
자그레브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코 양식의 캐서린 성당은
14세기에 세워진 낙후된 성 도미니크 성당을
17세기 초반에 예수회 사람들이
1620년부터 1632년까지 재 건축하여
지금의 성당이 세워졌다.
성 캐서린 성당 파사드
성 캐서린 성당 외벽 벽감 안의 조각상
성 캐서린 성당 내부 ( 퍼 온 사진)
파이프오르간
반 옐라치치 광장으로 가고 있다.
크로아티아 국부 토미슬라바 왕의 동상이
서 있는 자그레브 역에서
자그레브에서 가장 번화한
반 요셉 옐라치치 광장에 이르는 길이
자그레브 관광의 핵심 루트다.
스토로마이어, 즈린스키 등의 예닐곱 개 공원이 이어지는
이 코스는 말발굽과 같다고 해서
18세기 자그레브를 설계한 도시설계가의 이름을 붙여,
레누치의 푸른 말발굽으로 불린다.
이 코스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면
작은 콘서트가 곳곳에서 열리고
거대한 수목들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자그레브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용되고 있다.
자그레브 시티투어용인가 보다.
자전거만 보았는데
재미있겠다.
트램
반 옐라치치 광장부터
대부분의 문화재가 들어선
올드타운에는 자동차가 다닐 수 없다.
트램만이 들어올 수 있는데
자그레브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가장 복잡하고 번화한 지역이다.
트램으로 자그레브 전 지역과 연결되어 있다.
반 옐라치치 광장
반 옐라치치 광장에 도착했다.
반 옐라치치 광장
17세기에 건설된
오스트로-헝가리 스타일의 광장으로
시내 중심부에 있다.
자그레브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궁전과 업무지구, 카페, 상가가 밀집해 있으며
여름의 민속 축제가 벌어질 때면
큰 공공 무대로 바뀐다.
반 옐라치치 광장
광장 주변에는 고전주의 양식과 모던 양식 등 서로 다른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 조화롭게 들어서 있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은 1827년에 지어진 건물이며, 아름다운 파스텔 색상의 오픈 카페와 상점이 여럿 들어서 있다.
반 옐라치치 광장
반 옐라치치 광장은
184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입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전과를 세운
옐라치치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광장이다.
반 옐라치치 동상
반 옐라치치 광장 중앙에는
1866년에 오스트리아 조각가 안톤 도미니크 코튼이 만든,
오스트로-헝가리 점령 당시 총독을 맡았던
반 옐라치치 백작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칼을 들고
말에 앉아 있는 동상이 있는데
광장 이름은 이 동상에서 유래됐다.
반 옐라치치 동상
동상은 여러 번 정치적인 위기를 맞아,
1947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1990년에야 그가 국가를 대표한
민족주의자라는 판단으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반 옐라치치 백작
'반'이란 귀족이나 왕족작위이고,
옐라치치는 19세기 말
크로아티아 지역을 다스리던 총독의 이름이다.
184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당시
크로아티아 독립운동에 앞장 섰던
민족주의자이다.
만두세바크 분수
이 광장의 이름은 분수의 이름을 딴
만두세바크로 시작하여
과거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사회주의 시절 공화국광장이라고 불렸으나,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한 후 반 옐라치치라는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만두세바크 분수
옐라치치광장에 있는 분수로
땅을 오목하게 파고 그 안에 만든 수조의 한 가운데에서
물이 올라오는 바로 자그레브라는 지명이 유래하게 된
만두세바크 샘이다.
만두세바크 샘 전설
11세기 초에 한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 편력기사가 되어 큰 활약을 했는데,
어느 날 베어마운틴 인근의 깊은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되었지만
작은 연못이나 개울도 만날 수가 없었다.
더러운 먼지 속에 하릴 없이 앉아 비라도 내리기를 바라고 있는
젊은이 앞에 홀연 아름다운 처자가 나타났다.
젊은이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물을 가져다 달라고 그녀에게 부탁을 했지만,
그녀 역시 물을 가져다 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기사가 앉아있는 곳,
즉 다리 아래의 먼지구덩이를 가리키며 'Zagrebite!'라고 외쳤다.
우리말로 옮기면 '거기를 파보라는 주문이었다.
젊은 기사는 그녀 말대로 땅을 팠고
이내 물이 용솟음쳐 올라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젊은 기사는 그녀더러 혹시 요정이냐 물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가난한 고아이고 이름은 만두사라고 대답했다.
젊은이는 자신이 발견한 샘을 만두세바츠샘이라고 부르고
그녀에게 청혼하면서 이곳에 커다란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녀가 승낙하자 햇빛이 두사람을 감싸면서
미래에 이곳에 들어설 도시의 정경을 보여주었다는 전설이다.
따라서 자그레브는 사전적으로 '긁어서 파낸 장소'를 뜻하게 된 것이다.
이 샘의 물을 마시면 이곳을 결코 잊지 않게 된다고 전해온다.
[참고: 두산백과, 위키백과, 네이버 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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