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자다르
2017년 4월 19일 (수요일)
발칸 9개국 여행 넷째 날
크로아티아 - 슬로베니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 알바니아 -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 불가리아 - 루마니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너무나 청정하고도 깨끗했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보고 난 후
바다오르간으로 유명한 자다르로 향했다.
다행히 날씨가 맑고 화창해져
기분이 상쾌했다.
플리트비체에서 자다르로 향했다.
자다르 가는 길에
이런 이쁜 마을을 지나친다.
마을 이름은 모르겠다.
보기만 해도 맑은 공기가 느껴지는게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미세먼지에 시달렸던 몸이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그야말로 대형 차들의 곡예장이었다.
무슨 큰 다리가 눈으로 노면이 얼어
대형 차들의 교통이 통제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산길로 다들 우회하느라 이렇다.
우리 버스도 이 길로 돌아서 우회해 가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버스 중간 출입문 맞은 편에 앉았더니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자다르(Zadar)
노스 달마티아에 위치하고 있는 자다르는
과거에 달마티안의 수도였다.
동쪽에는 알프스가
서쪽에는 푸른 아드라아해가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는 항구도시로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 받는 휴양명소이다.
약 77,00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어업, 마라스키노술 양조업 외에
담배, 주류, 유류 등의 산업이 성하다.
자다르에 도착했다.
신시가지 쪽인가 보다.
자다르
자다르는 베네치아의 선물이란 뜻으로
30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고도이다.
크로아티아 서쪽 달마티아 지방아드리아 해 연안에 있다.
로마제국 시대부터 문헌에 나오는 오래된 도시로,
당시의 유적이 남아 있고,
중세에는 슬라브의 상업,문화의 중심지였으며,
달마티아의 주도였다.
구시가는 이탈리아풍으로
13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와
9세기의 특이한 원형교회 등 사적이 많고, 고고학 박물관도 있다.
역사적으로
9세기경 일리리아인이 세운 도시로
고대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 후 헝가리 왕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1920∼1940년은 이탈리아 영토였지만
구 유고연방을 거쳐
현재는 크로아티아의 영토로 확정된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말기에 완전히 파괴되었으나복구되었고
1991년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에서도
세르비아군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다시 복구되었다.
삼천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자다르는
멋진 자연 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유적들을 만날 수 있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이다.
특히 자다르에는
로마시대에 지어진 고대 건축물이 유명하다.
아드리아 해
자다르 주변에는 크고 작은
수백개의 섬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일부는 사람이 살지 않은 무인도도 있고,
몇몇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들이다.
여름에는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배를 타거나
개인적으로 조그만 요트를 대여해,
주변의 섬들을 둘러보며 항해를 즐길 수 있다.
자다르 시내 주요 명승지
벤치가 피아노 건반처럼 되어있다.
바다오르간이 있는 곳이라
같은 컨셉으로 디자인 되었나 보다.
아드리아해를 마주한다.
태양의 인사 Greeting To The Sun
2008년에 만들어진 태양열을 이용하여
불을 밝히는 태양의 인사는
바다 오르간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다르 항구 끝에 위치한 태양열 전지판이다.
330여 개의 유리판이 바닥에 깔려있다.
밤이 되면 낮에 모아두었던
태양 열의 에너지로 불을 밝힌다.
태양의 인사 Greeting To The Sun
원판은 태양, 그 주위에 있는 작은 원판들은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등
8개의 별과 행성의 지위를 잃어버린 명왕성을 포함한
9개의 별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330여 개의 태양열 전지판인 유리판
커다란 원형의 태양열 전지판과
발광다이오드(LED)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낮에는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 저장하였다가
밤이 되면 발광다이오드가 빛을 발한다.
해 질녁 태양의 인사 Greeting To The Sun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바다 오르간(Moske Orgulje)
세계 유일의 바다가 연주하는 바다오르간은
자다르 해변의 75m의 산책로에
넓고 길게 계단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계단 하단에 길이가 다른 35개의 파이프가
피아노 건반처럼 직사각형 형태로 되어 있는
작은 구멍 안에 설치되어 있다.
파도의 크기, 속도, 바람의 세기에 따라
바닷물이 공기를 밀어내며 파이프를 통해
구멍 사이로 다양한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바다 오르간이라 불린다.
건축가 니콜라 바시치가 2005년에 만든 작품이다.
바다 오르간(Moske Orgulje) 파도가 방파제 밑의 공기를 바깥으로 밀어내면 파이프를 통해 계단 밑 구멍으로 파도의 크기, 속도, 바람의 세기에 따라 고동 부는 소리 같은게
위의 구멍에서 소리가 난다.
자다르를 대표하는 랜드 마크인 독특한 바다 오르간(Moske Orgulje)은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아름다운 자연의 음악을 연주한다.
원문보기:
http://www.nocutnews.co.kr/news/4376543#csidx5b33556c1176f9cb6d1b98e59bf167f
바다 오르간(Moske Orgulje) 표지판
바다 오르간이 만들어진지 1년만에
유럽에서 도시의 공공장소 상을 받을 만큼,
달마시안의 작은 소도시를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명물이자 랜드마크가 되었다.
바다를 너무나 사랑한 건축가의 걸작인 바다오르간은,
2005년 자다르시 시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건축가 니콜라 바시치의 작품으로
그는 어린시절 자신이 자란 섬마을에서
들었던 파도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자다르 해안가에 바다오르간을 만들었다.
바다오르간
아름다운 아드리아해를 보며
바다오르간 계단에 앉아
파도가 들려주는 음악을 집중해서 듣는다.
바다 오르간의 소리는 인위적인 음악이 아닌
파도와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소리가 나기에
소리가 일정치 않다.
자다르엔 다른 역사적 볼거리들도 많지만,
오로지 바다오르간 하나만을 보기 위해
자다르에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제 자다르 구시가지를 향해 고
꽃 축제가 있어
가로수 위에 꽃 잎을 달아놓았다고.
바닷가에서 구시가지로 들어간다.
로만 포룸과 성 마리 성당 수도원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치세 때 세워진 자다르는
포룸과 바실리카, 신전, 극장, 시장 등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로마 시가지이다.
로마 제국이 쇠퇴하면서 기독교가 세력을 떨치게 되었고,
4세기에는 포룸이 있던 자리에 주교의 궁전이 세워졌다.
9세기에는 아드리아해 연안에 있는
다른 도시와 도서들과 함께 동로마 제국의
비잔틴 달마티아 지방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자다르를 비롯,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 등의
해안 도시들은 서로마 교회의 관할 아래 남아,
동방과 서방,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사이의
이념적 단층선이 되고 말았다.
로만 포룸(Forum)
포룸은 고대 로마시대 시민광장으로
집회장이나 시장으로 사용되었던 장소이다.
로만 포룸(Forum) 유적
고대 로마 도시 양식의 시민광장으로
집회나 시장으로 사용된 장소이다.
1~3세기 경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아드리아 해 해안에서 가장 큰 로마 시대의 광장이지만,
전쟁의 폭격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손상되었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 토론을 벌였음직한 광장의 끝에는
제우스상을 비롯해 로마인들이 모셨던 3명의 신상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가축을 잡아 제단에 올렸다고 한다.
광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대에 세워진
건축물이 둘러싸고 있어서
이 장소는 건축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자다르의 로만 포룸은
면적이 90m X 45m로 아드리아 해의
동부 해안에서 가장 큰 로마 시대 광장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손상되고 말았다
1964년에 시작한 복구작업이 아직까지 진행 중이다.
성 마리(마리아) 교회 수도원
포룸(시민광장)의 동쪽에 있다.
왼쪽사각 건물은 고고학 박물관
성 마리(마리아) 교회 수도원
로만 포룸의 동쪽에
베네딕트 파의 성모 마리 수도원이 있다.
수녀원은 1066년 치카(Cika)수녀가 세웠다.
그녀는 자다르의 귀족 Madijevacs가문 출신이다.
교회의 주 정면 입구와 남쪽면 입구는
베니스 르네상스 스타일로 만들어졌다.
고대 로마시대 포룸의 잔해
오른쪽 건물은 고고학 박물관
고대 로마시대 포룸
로마시대의 중심 광장터인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
좌편 성 도나트 대성당, 중간 고고학 박물관, 우편 마리수도원
자다르를 소개하는 안내책자 표지로 많이 등장하는
성 도나트 성당은 자다르의 대표 건축물이다.
로마 포룸의 동쪽편에 위치해 있다.
성 도나트 성당
죽기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자다르에서 가장 유명하고 뛰어난 건축물로
자다르 구시가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교회의 이름은 9세기 초 주교를 맡아 이 성당을 세운
도나트의 이름에서 붙여졌다.
자다르에는 30개의 교회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활을 하는 곳이다.
초기 중세, 9세기 초에 완공된 교회 건물은
달마티아 지방에서 보기 드문 비잔틴 양식건물로
전통적인 비잔틴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성 도나트 교회(Church of St. Donat)
자다르를 대표하는 건물인 도나트 성당은
로마 포룸에 있던 대 기둥 두개를 그대로 사용하여
건물보다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이 더 오래되었다.
독특한 부드러운 곡선의 원통형 외관이고 투브모양을 하고 있으며 내부는 이중공간으로 되어 있고, 벽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어
성 도나트 성당은
로마 경기장의 잔해들로 만들어
균일한 돌들이 아닌 규칙이 없는 돌들을
단순히 쌓아 올린 모양새이다.
하지만, 예술적인 측면에서 성 도나타 성당은
달마시아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비잔틴 건축양식으로 평가 받는다.
성 도나트 교회
초기 로마네스크 이전 양식 중
높이가 27m인 가장 큰 건축물로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여신에 해당하는
주노를 모시는 사원이 자리해 있었다고 한다.
성 도나트 성당 내부 모습
좌편에 로만 포룸에 있던 대 기둥 두개가 보인다.
세인트 도나트 교회
1797년부터 성당으로 사용하지 않지만
성당 내부의 울림이 좋아
지금은 연주회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960년 이래 매년 여름에 열리는
중세 르네상스 국제 음악 페스티벌을 위한
콘서트장으로 이용된다.
성 스토샤 대성당 (성 아나스탸사 성당) 종탑
성 스토샤 대성당과
나란히 서 있는 종탑은 15세기에 완성되었고
지금은 전망대로 사용되고 있는 종탑에 오르면
자다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자다르 건물 중 가장 높다.
성 스토샤 대성당 종탑에서 바라 본 자다르 풍경
성 스토샤 대성당 (성 아나스탸사 대성당)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규모로는 달마티아 지역에서 가장 크다.
9세기경에 처음 비잔틴 양식
(큰 기둥의 강직한 선과 이를 지탱하는 아치와 반원개)으로
세워졌다가 12.13세기 이후 로마네스크 양식
(창문과 문, 아케이드에 반원형 아치 를 많이 사용)으로
재건축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성당의 외관은 정면에서 바라 보았을 때
한 눈에 들어오는 2개의 동그란 장미모양 창문과
3개의 회랑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며
장미모양으로 만들어진 창문이 핵심이다.
지상층(0층)에는 도나타 주교가 헌정한 성 아나스타샤의
대리석 석관을 비롯한 그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성 스토샤 대성당의 장미 창
1177년 알렉산드르 3세 교황과
2003년 폴란드 출신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이
성 스토샤 대성당을 방문했다.
성 스토샤 대성당 내부
성 스토샤 대성당 측면
시로카 대로의 끝에 위치하며
포룸 옆에 3개의 회랑을 가진 성 스토샤 대성당은
성 아나스타샤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며,
자다르의 성인 성 아나스타샤의 대리석 석관이 안치된 곳이다.
성 아나스타샤는
기독교를 박해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대에
신앙을 지키다 화형으로 순교하였고
자다르의 주교 성 도나트가 그녀를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작은 바실리카 성당이 있었던 곳으로
성당 지하에는 12세기부터 사용되어 온 무덤이 있으며
성당 안에는 15세기 때의 성직자 석관들이 있다.
그리고 9세기에 주교 도나트가 헌정한
성 아나스타샤의 대리석 석관과 유품이 진열되어 있다.
주교궁전
주교 궁전은 11세기에 건축,
15세기에 증축,
지금의 모습은 1830년에 재건축한 것이다.
고대 로마시대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자다르는
중세시대에는 로마교황청에서 직접 관리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만큼 현재까지도
곳곳에서 다양한 유적을 찾아볼 수 있다.
수치심의 기둥
중세에서 1840년까지 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이
사슬에 묶여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었다는 기둥
대리석 보도블록의 구시가지
반질반질한 대리석 바닥
나르도니 광장
이 구시가지 골목으로 나가면
16세기 베네치아인들이 건축한
다양한 건축물을 볼 수 있다.
민족광장이라 불리는 나르도니 광장
구시가의 중심 시로카 대로
한 가운데 있는 중세시대 광장이다.
바닥은 대리석이 깔려 있고
광장 주위는 시계탑, 시청사, 공개재판소
자다르시 인포메이션 센터, 카페 등이
둘러싸고 있다.
나르도니 광장의 자다르 시청사
나르도니 광장의 시계탑
자다르의 중심거리인 시로카 대로의 끝
나르도니 광장에 위치한 시계탑은
1562년 베네치아인들이 건축한
르네상스 양식의 로지아(회랑,홀)이다.
자다르 문을 만든 건축가 미켈레 산미첼리 작품으로
시계탑과 담장은 19세기에 추가된 것이다.
시계탑
시계탑 건물은 현재 베네딕트 수도회의
교회 예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계탑 근처에는 노천까페, 시청사, 재판소 등의
건물들이 모여 있다.
옛 재판소 (로지아)
원래는 재판소였고 의회였으나
그 뒤에는 도서관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전시관이다.
2차 세계대전시 심하게 파괴되었으나
복원되었다.
올드타운 (구시가지) 길
페트라 조라니챠 광장
성 시메온 성당
14세기에 지어졌고 16세기에 개축되었으며
제단 앞엔 성 시메온의 손가락이 담긴
유품 보관함이 있다.
삼나무 위에 250Kg에 달하는
은과 금도금으로 새겨진 유품 보관함은
당시 금은세공 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보물로 여겨진다.
성 시메온 성당
성 시메온 성당
성 시메온 성당은
자다르의 수호성인 중 한 분인성 시메온의 관을 모신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성 시메온의 관에 대해서는 여러 전설이 내려오는데
첫번 째는 시리아에서 콘스탄티노플로,
다시 베네치아로 옮겨졌던 이 관이 자다르로 오게 된 경위로,
한 베네치아 상인이 이 관을 싣고 항해하던 중 자다르 연안에 난파하였는데,
위험을 피하기 위해 관을 어느 묘지에 묻어 두었다.
그리고는 곧 병을 얻어 앓아눕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밤 이 상인을 돌보던 사람들의 꿈에 세 명의 성직자가 나타나
성인의 관이 있는 장소를 말하더라는 것이다.
다음날 그 장소를 향해 가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진짜로 그 장소에서 관이 나왔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자다르 사람들이 이 관을 돌려보내지 않고
자다르에서 모시기로 했다는 전설이 있고
두번 째는 1371년,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왕비인 엘리자베스(Elizabeth of Bosnia)가
예배 중 성인의 손가락을 훔쳐 드레스 앞섶에 숨겼다고 한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 손가락이 곧바로 부패하기 시작했고,
왕비가 놀라 다시 손가락을 관 안에 되돌려놓자 부패가 멈췄다는 것이다.
놀라움과 죄스러움에 왕비는 밀라노의 장인을 고용하여
굉장한 관을 만들어 교회에 헌사하였다고 한다.
페트라 조라니챠 광장의 오벨리스크
로마시대 오벨리스크인데,
18세기에 이 광장으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오벨리스크보다는
신전 기둥 같다.
베네치안들이 세운 성벽과 광장
강화유리 밑에 로마 유적이 있다.
16세기 중반 베네치안들이 구축했던 성벽으로
가운데에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사자상이 있다.
16세기 중반 베네치안들이 구축했던 성벽
다섯 우물 광장
1574년 본래 해자가 있던 자리에
베네치아인들이 오스만 터키의 침략에 대비하여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고
5개의 우물을 팠다.
위협이 사라지고 난 1838년까지도
시민들이 사용하던 중요 식수원이었다.
오늘날은 여름시즌마다 광장에서 콘서트가 열린다.
일직선 상의 5개 우물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으며
그 당시에도 예술작품 같이
시각적인 면을 중요시하여 만들었다.
19세기까지 사용된
도르레가 달린 5개의 우물
원래 이 곳은 성벽의 바깥 해자가 있던 곳인데
새로이 성벽을 쌓으면서 성벽의 안으로 들어왔다.
사령관 탑 (캡틴 타워)
광장 왼쪽에 베네치안이 구축한 감시탑인
사령관 탑 (캡틴 타워)이 있다.
성벽 이전에 존재했던 중세 성벽인데
13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오스만 투르크의 침략에 대비해 세워졌으며,
당시 자다르의 베네치아 사령관의 숙소가 인근에 있어서
사령관 탑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사령관 탑 (캡틴 타워)
중세 시대에 성벽을 축조할 때
성벽 하단에 작은 구멍을 내어 유리를
끼워 넣었다고 한다.
이것은 성벽이 외부의 충격으로 변형이 일어나면
유리가 깨어지게 되고 붕괴의 위험을 알게 되어
보수를 하게 된다고 한다.
저 계단으로 올라가면
에레네 마디예브케 여왕 공원이 나온다.
에레네 마디예브케 여왕 공원
우물광장 옆 공원은
자다르에 최초로 생긴 공원인
에레네 마디예브케 여왕 공원으로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으로
감옥 일부를 헐어내고 공원으로 조성했다.
에레네 마디예브케 여왕 공원에서
내려다 보면 육지의 문이 보인다.
테라페르마 문 밖의 조그만 부두
여왕 공원에서 내려다 본 테라페르마 문 (육지의 문)
자다르 올드타운은 요새 도시이다.
원래는 내륙과 바다에 4개의 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일부만 남아있다.
테라페르마 문은 육지로 난 문이라는 뜻인데
반도의 동쪽, 육지로 가는 길목에 있다.
테라페르마 문 (육지의 문)
자다르 성벽의 남문인 이 문은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구시가지의 메인 문으로
1543년 베니스인들이 도시 성벽을 재건축 할 때
만든 것으로 르네상스양식이다.
달마티아 르네상스 양식의 좋은 예인 이 문에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 성 마르코(마가)의 상징 사자와,
자다르의 수호성인 중 한 분인
성 크루슈바나(Sv.Krsevan)의 기마상이
그리고 양 옆으로는 자다르 도시를 상징하는
방패가 조각되어 있다.
베네치아의 문장인 마가의 날개가 달린 사자상
사자의 앞 발로 잡고 있는 책에 있는 라틴어는
성 마태의 사자라고 하는데
내용은 당신에게 평화를, 마태, 나의 전도자라고 한다.
승리를 상징하는
3개의 아치 형태의 이 문은 16세기에
베네치아가 자다르 구시가 둘레로
방어벽을 건설할 당시 베로나 출신 장인인
미켈레 산미켈리에 의해 지어진 문이다.
다시 페트라 조라니챠 광장으로 나와
버스를 타러 간다.
에레네 마디예브케 여왕 공원
크로아티아 자다르에는
매년 7월 달에 2주간 개최되는
더 가든 페스티벌이라는 음악 축제가 있다.
2006년부터 개최되었으며,
라이브 밴드들과 DJ들이 춤, 음악 파티를 주도한다.
수영도 즐길 수 있으며, 테라스에는 바도 준비되어 있다.
약 3000명 이상의 관객이 참여해 왔다.
버스를 타고 점심식사를 위해
자다르 항구 쪽으로 이동한다.
아드리아해에 그림과 같이 떠 있는 요트
[참고: 두산백과. 위키백과, 세계지명 유래사전, 네이버 캐스트]
[서명이 없는 사진은 퍼 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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