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스플리트
2017년 4월 19일 (수요일)
발칸 9개국 여행 넷째 날
크로아티아 - 슬로베니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 알바니아 -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 불가리아 - 루마니아
자다르의 바다 오르간과
올드타운을 투어한 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스플리트의 구시가지를 보기 위해
약 2시간 30분 정도 버스로 이동했다.
이번 발칸 여행에서는 9개국을 투어하지만
여섯개 도시를 관광하는 크로아티아가 중심이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라스토케, 플리트비체, 자다르를
투어했으니 남은 도시로는 지금 가는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가 남았다.
구름이 너무 이쁘다.
로마유적으로 가득 찬
크로아티아 달마티안 최대의 항구도시
스플리트를 향해 달리고 있다.
크로아티아 달마티안 지역은
점박이 개 달마티안의 원산지이다.
달마티안
원산지는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이다.
고대 그리스 조각에 그려져 있을 정도로 오래 되었고,
유랑민족 집시의 반려견으로 유럽에 분포하였으며
1533년대 유럽의 영국에서
장거리 마차 양쪽을 호위하던 장식 겸 경비견으로
이용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스플리트는
305년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이 곳에 궁전을 건설한 것을 기념하여
붙인 지명으로 궁전이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통상의 중심지로 번영하였고,
많은 세력의 쟁탈지가 되었으나
1945년 이래 크로아티아에 속하게 되었다.
온화한 기후와 디나르알프스 산맥이
아드리아 해와 조화를 이룬 경치가 아름답고,
역사적인 건물이 많아 관광, 휴양지로 유명하다.
달마티안의 황홀한 꽃으로 불리는
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 서남부
스플리트달마티아 주에 있는 도시이다.
아드리아 해와 마주하는 항구 도시이며,
크로아티아에서 수도 자그레브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스플리트는 역사가 깊은 도시로,
기원전 그리스의 거주지로 건설되었다.
그 후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후를 대비해 305년 이 곳에 거대한 궁전을 지으면서
본격적으로 도시로 발전하였다.
7세기에 슬라브족이 이 곳으로 들어와 궁전에 정착하였다.
그 후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궁전은 비잔틴, 고딕 건축 양식 등의
화려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스플리트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리예카가 잠시 이탈리아로 넘어간 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로 개발되어 근대적인 항만시설이 갖추어졌고
달마티아 지방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폭격의 피해를 받지 않아 귀중한 유적들이 보존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비롯한 옛 유적이 많아
관광객이 많이 몰려든다.
스플리트는
아드리아 해안 지방의 교통의 요지이며
경제 중심지로 조선, 화학, 시멘트, 식품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다.
관광의 중심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유적으로
로마시대의 대표적 건축물로 유명하다.
그 밖에 로마시대의 대성당, 베네치아 고딕 스타일의 공회당,
고고학 박물관 등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구시가지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스플리트 지도
스플리트의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3면은 육지에, 1면은 바다를 향해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성 내부에는 주민이 살고 있으며,
옆으로 확장하여 형성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다쪽도 매립하여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지금은 작은 궁전에 불과하지만
4세기에 5,000여 명의 사람들이 성곽 안에서 살았다고 한다.
중세가 되자 폐허가 된 궁전의 돌로 새로운 시를 건설했고
성곽 내부에는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길,
대리석으로 지어진 아주 작은 호텔, 카페, 레스토랑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들어서서
시민들의 휴식터로 이용되고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로마황제 가이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 후 남은 여생을 보내기 위해
295년부터 305년까지 10년에 걸쳐 스플리트에
건설한 거대하고 웅장한 궁전이다.
로마네스크 교회 및 중세요새가 있으며
15세기 고딕풍 궁전, 르네상스, 바로크풍의 건축물 등이 현존한다.
궁전에 사용된 재료와 기술은 로마제국의 건축기술을 잘 보여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305년에 생을 마감해
퇴위 후 이 궁전에서 생을 보낸 적은 없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복원도
1700년전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동서 180m, 남북 210m, 총면적 3만㎡에 이르는 궁전을
높이 18~22m 두께 2m 성벽으로 둘러치고
로마군 진영의 구조로 동서남북 통로로
4구역으로 나누고 16개의 망루를 구축했다.
3면은 육지, 한 면은 바다와 접해 있다.
궁전 내부는 일직선으로 난 동문과 서문을 중심으로
남문이 나 있는 바다 쪽은 황제거쳐와
황실 가족의 아파트와 신전이 있고,
북쪽 장방형 지붕들이 있는 두 구역은
하인 700명과 병사들이 생활하는 곳이었다.
호화로운 궁전이면서 성문을 갖추고 감시 탑이 있는
군사 요새의 구조를 하고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보존 수준 면에서뿐 아니라
역사적 의미를 계승한 건축물이라는 면에서
지역적 중요성을 뛰어넘는다.
이들 건축물들은 옛 스플리트 도시 지역이
로마 시대에 어떻게 계획 건설되었는지
보여주는 증거이다.
리바거리
스플리트의 메인 거리로서
디오클레티안 궁전 남문에서부터
아드리아 해를 끼고 늘어선 200m 길이의 산책로이다.
황제의 공간이었던 남문 쪽은 바다를 매립하여
거리와 노천카페가 되었다.
남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리바 거리
마리안 해안을 따라 이어진 도로로
야자수가 줄지어 서 있고,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한 거리로
한편에는 푸른 빛의 아드리아 해가 펼쳐져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천카페와 레스토랑들이
길게 늘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남문 쪽 성벽에 덧대어 지은 건물
성벽에 지지대가 붙어 있는 것은
벽체가 느슨해지는 걸 막기 위함이며,
지지대를 수시로 돌려 조인다고 한다.
거리 연주자
야자수들이 늘어선 리바 거리에서는
노천 BAR들이 들어서 있다.
남쪽문(청동의 문)이 있는 성벽
바다를 통한 황제 전용 문인
남문 (청동문)을 통하여 성곽안으로 들어간다.
바다 쪽 정문인 이곳 남문은
1층 가게 사이로 들어가게 돼 있다.
남문(청동문)으로 들어가면
지하궁전
지하궁전으로 들어가게 된다.
지하궁전은 원래는 일층이었지만
남문 앞 바다를 매립하면서 매몰되었다가
1960년에야 발굴되었다.
지하궁전
궁 안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되었는데,
그나마 온전히
로마시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은지하궁전 뿐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쓰레기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하궁전에는 기념품 상점들로 가득하다.
궁전 건축물에는
스플리트 주변 섬에서 채취한 석회암과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대리석을 사용했다.
로마시대 부조
지하궁전에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주화
디오클레티아누스 ( 245~316, 재위 284~305)
로마의 황제로 달마티아의 디오클레아에서 출생.
284년 고대 로마를 통치하던 누메리아누스 황제가
페르시아 원정에서 돌아오던 중 새아버지에게 암살당하자,
부하 군단이 경호 대장이었던 디오클레티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이로써 로마의 속주 달마티아의 천민 출신 군인이었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군인 황제 시대(235~284)의
혼란을 끝내고 황제가 되었다.
그는 전제군주체제를 확립한 뒤 로마에서 반란이 자주 일어난 것은
영토가 너무 넓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293년 로마 제국을
두 개의 제국으로 나누어 정제와 부제가 통치하도록 했다.
자신은 동쪽 제국, 발칸, 소아시아, 이집트를 다스렸다.
이와 같은 4분 통치제, 즉 사두정치가 시작된 이후 반란이 크게 줄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국의 안정과 개혁에 힘썼지만
로마 제국에서 가장 심하게 기독교를 박해한 황제로 유명하다.
기독교 자료에 따르면 2년 동안
3천 명이 넘는 기독교 신자들이 순교했다고 한다.
이후 400년이 지난 7세기에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내에 있는
황제의 영묘는 기독교 대성당으로 바뀌었고,
황제에 의해 죽임을 당한 성 돔니우스에게 바쳐졌다.
하지만 성 돔니우스 대성당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황제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열주광장
남문 쪽에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열주광장 전경이다.
북문 쪽에서 본 열주광장
어디로든 통하는 광장으로,
역사적 유서가 깊은 스플리트 구시가지의 중심이자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안뜰로
대리석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한 분위기이다.
성 돔니우스 대성당과 황제의 알현실,
지하궁전으로 이어지는 황제의 구역이다.
궁전의 개인공간에서는 바다가 내려다보이게 했다.
황제의 알현실로 통하는 궁전의 열주랑은
원주 16개가 반원형 아치를 떠받치고 있는데
이는 로마 건축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건축형태이다.
열주광장
동쪽과 서쪽에 각각 6열,
남쪽에 4열의 열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열주 광장
궁전 중심에 있는 이곳은
광장이라고 하기에는 작지만
당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실제로 집무를 보고 활동했던 역사적인 곳이다.
그리스에서 대리석 기둥을,
이집트에서 스핑크스를 직접 가져와
궁전을 지었다.
상점이나 카페로 활용되고 있는데
열주광장 계단 위에 깔려 있는 빨간 방석들은
카페에서 내다 놓은 의자 대용이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스핑크스
열주 광장 서쪽의 주피터 신전에는
이집트에서 갖고 온 검은돌의 스핑크스상이 있는데
원래는 여러개였으나 거의 파괴되고,
지금 온전한 것은 이것 뿐이다.
스핑크스 상은
포토 스팟으로도 유명하다.
이집트 스핑크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그리스의 대리석과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가져와 장식할 정도로
이 궁전에 많은 애정을 쏟았다.
열주 광장의 주변 건축물은
로마 건축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건축형태라 하여
보존가치가 굉장히 높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아드리아의 동부 해안 지역에서
가장 가치 있는 로마 건축물이며,
궁전 안에 있는 건물의 형태와 배치는
황실의 별장과 그리스 도시, 로마 주둔 지역의
과도기적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스플리트에서 여생을 보내기 위해
295년부터 10년에 걸쳐 스플리트에
개인 궁전을 짓기 시작하여
그가 퇴위한 305년에 완성했다.
그는 궁전이 완공된 305년에 생을 마감해
그가 이 궁전에서 보낸 날은 하루도 없었다고 한다.
무너지지 않게
지지대를 받쳐 놓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규모는
동서 215m, 남북 181m,
궁전을 둘러싼 성벽의 높이는 25m이다.
궁전의 대부분은 스플리트 앞 바다에 있는
브라치 섬에서 가져온 석회암과
이탈리아나 그리스에서 수입한 대리석과
화강암을 사용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권력과 영토를 분할해 통치함으로써
은퇴 후 자기에게 닥칠 분란을 막으려 했지만
그가 물러난 뒤 그가 창안했던 사두정치 체제는 빠르게
붕괴되어 많은 내전이 일어났는데
그 와중에 아내 프리스카와 딸 발레리아가 다음 황제인
막시미누스 다이아에 의해 납치되었다가
결국 막시미누스의 정적 리키니우스에 의해 살해되고,
그의 시신 역시 도난 당해 찿을 수가 없게 된다.
성 돔니우스(도미니우스) 대성당
스플릿의 초대 주교이자 수호 성인인
성 도미니우스의 관이 모셔져 있는 성당이다.
원래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시신을 모신 영묘로 세웠던 것인데
기독교를 심하게 탄압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게
처형됐던 순교성인 성 도미니우스를 기리기 위해
서기 653년 이 도시에 부임한 라베나 주교가
영묘를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개조했다.
성 돔니우스(도미니우스) 대성당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천민 출신에서 황제가 되어 안정과 개혁에 힘썼지만
로마 제국에서 가장 심하게 기독교를 박해한 황제로 유명하다.
기독교 측의 자료에 따르면 2년 동안 3천 명이 넘는
기독교 신자들이 순교했다고 한다.
이후 400년이 지난 7세기에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내에 있는
황제의 영묘는 기독교 대성당으로 바뀌었고,
황제에 의해 죽임을 당한 성 돔니우스에게 바쳐졌다.
하지만 성 돔니우스 대성당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황제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구에 두마리의 사자 석상이 지키고 있다.
성 돔니우스(도미니우스) 대성당
대성당은 전체적으로 로마네스크 양식
(두꺼운 벽, 둥근 아치, 단단한 창간 벽, 커다란 탑 등)의
팔각형 구조로 정교한 무늬의 코린트식 원주 16개가
성당을 받치고 있으며
외관의 섬세한 부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내부에는 15세기에 만들어진 화려하면서도 신비감을 주는고딕 양식의 성 돔니우스 제단이 있다.
성 돔니우스(도미니우스) 대성당 종탑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3~14세기에 추가로 건축된 높이 60m의 종탑은
스플리트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구시가지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1700년 전에 지어진 로마 유적과 빨간 지붕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183개의 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이르면
한눈에 도시의 규모와 궁전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성 돔니우스(도미니우스) 대성당 종탑
퍼 온 사진
성 돔니우스(도미니우스) 대성당
종탑에서 바라다 본 스플리트 전경
13, 14세기에 상업이 번창하면서
집중적으로 건물이 들어서자
궁전 서쪽 벽 바깥으로
구시가지가 미로처럼 퍼져 나갔다.
황제 알현 대기실로 통하는 궁전의 열주랑은
원주 16개가 반원형 아치를 떠받치고 있는데
이는 로마 건축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건축형태이다.
황제 알현 대기실
황제를 알현하려는 사람들이
허락을 기다리며 대기하던 장소이다.
황제 알현 대기실 천정
원래는 지붕이 있었다고 한다.
황제 알현 대기실
이곳은 울림이 좋아
가끔 음악 연주회가 열린다고 한다.
남성 4명이 아름다운 하모니로 노래하면서
본인들이 녹음한 CD를 팔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지는
궁전을 중심으로 미로처럼 뻗어 있다.
서민의 생활 터전이 돼버린 로마 유적
궁전은 사람들의 주거지가 된 지 오래라
궁을 둘러싼 성벽도 덧 입혀지고,
그나마 민가 건물 벽과 뒤 섞여 있어
구별이 안되는 곳도 있다.
이 주변이 궁전에서
황제의 거처였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사후에는
쫓겨난 로마의 황제들이 기거했고
로마 제국의 붕괴와 함께 황폐화되고 말았다.
그 후 전쟁을 피해 온 이주민들의 피난처로 사용되면서
그들에 의해 비잔틴, 베네치아, 헝가리 양식 등이
가미된 성벽이 건설되었다.
성 돔니우스 대성당이 로마네스크 양식
(두꺼운 벽, 둥근 아치, 단단한 창간 벽, 커다란 탑 등)인 것과
팔각형이라는 사실이 여기서 보니 실감이 난다.
성 돔니우스(도미니우스) 대성당
벽에 붙여서 집을 지어 놨다.
성벽에 난 창을 메우고
지붕을 올리고 집을 만들었다.
1700년 된 로마 고성 벽에 핀
보랏빛 라벤더
로마시대 건축물 안에서
서민들의 일상이 이뤄지는 모습이 생경하다.
보통은 유적 보호를 위해 퇴거시키고
복원할텐데...
1700년 넘은 로마 유적 내에서
삶의 흔적을 본다.
세월의 연륜이 보이는 화강암 보도블록
손을 뻗으면
맞닿을 것 같은 좁은 골목길이
미로같이 얽혀있다.
무엇이 있었던 곳인지
모자이크 바닥이 노출되어
망가져 가고 있다.
성 돔니우스(도미니우스) 대성당
대성당이 전체적으로 로마네스크 양식
(두꺼운 벽, 둥근 아치, 단단한 창간 벽, 커다란 탑 등)인 것과
팔각형이라는 사실이 여기서 보니 명확하다.
성 돔니우스(도미니우스) 대성당 종탑이
이 골목에서는 바로 보인다.
신하와 하인들이 거주하던 궁전 안 200여 개 집터는
그 잔재가 남아 상점, 카페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남문에서 시작하여 열주광장을 거쳐
스프리트 구시가지를 둘러보고 있다.
구 시청사 건물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북문 (황금의 문)을 지난다.
북문으로 나서면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이 서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북문 (황금의 문)
고대 로마를 향하게 건축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북문은
가장 화려해서 황금의 문이라고 불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북쪽 성벽
성벽은 화산재를 시멘트처럼 사용하여
화강암 등을 단단히 쌓아 올린 것이다.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
디오클레시안 궁전의 북문 밖에는
그레고리우스 닌의 4.5m의 거대한 동상이 서 있다.
한쪽 팔은 책을 들고 있고
다른 팔은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면서
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
그레고리우스 닌 주교는
10세기에 활약한 크로아티아의 종교적 지도자이며
크로아티아 어학사전을 편찬한 어학의 아버지이다.
대다수의 서민들은 라틴어로 행해지던 예배를 들을 수 없었기에
크로아티어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종교회의에서 로마교황을 설득하여 성사 시켰다.
그 영향으로 크로아티아 독립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
1929년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조각가인
이반 메슈트로비치가
높이 약 4.5m인 청동으로 만든 작품으로
스플리트의 상징이다.
동상의 왼쪽 엄지 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이 있다.
얼마나 만졌는지
반들반들 광채가 난다.
나도 만졌다.ㅋ
15세기에 건축한 아르니르 성당
이제 스플리트 투어는 끝났고
쇼핑점으로 가고 있다.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기념품점을 나와
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북문으로
가고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북문 (황금의 문)을 통과해서
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스플리트의 아드리아 해
석양이 지고 있다.
여행 중 어떤 곳에서던
석양을 보게 되면 마음이 찡해 온다.
낯 선 곳에서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센치해져서이다.
크로아티아의 국경을 통과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넘어 간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치트룩
보스니아 치트룩
Brotnjo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를 유숙 할 Hotel Brotnjo
4성급 호텔
리셉션
식사를 하게 될 레스토랑
객실
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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