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소피아에서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가는 길
2017년 4월 25일 화요일
발칸 9개국 여행 열째 날
크로아티아 - 슬로베니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 알바니아 -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 불가리아 - 루마니아
산세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불가리아를 뒤로 하고
코마네치의 나라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영어 부카레스트)로 가고 있다.
이제 루마니아에 입국함으로서
발칸 9개국 여행의 마지막 나라에 들어섰다.
이번 여행의 종착지라 감회가 남 다르다.
유럽의 젖줄 다뉴브강
이 다리가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국경이다.
왼쪽 하안 (서쪽)이 불가리아,
오른쪽 하안 (동쪽)이 루마니아
이 다리 양끝에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국경 사무소가 있다.
루마니아 국경 사무소
16:18분 경 불가리아 국경을 통과하고
천천히 다리를 건너
16:25분 경 루마니아 국경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입국 검사를 기다리는 버스가 없었다.
루마니아 국경에서는 군인이 버스에 올라와
일일이 얼굴을 대조하면서
직접 여권을 검사하고 버스 짐칸도 열어 조사했다.
16: 52분 경 루마니아에 입국했다.
우리나라는 비자 없이 EU 국가에서
3개월 체류가 가능하며
우리나라 여권은 독일, 프랑스와 나란히
상위 그룹에 속한다고 가이드가 말한다.
루마니아의 평야
불가리아의 토지도 비옥하지만
루마니아는 흙이 거무스레한게
더욱 더 비옥하다고 한다.
비옥한 루마니아의 평야가
펼쳐진다.
친환경 기름을 얻을 수 있는
끝 없는 유채꽃밭은
유럽에서는 아주 흔한 풍경이 되었다.
루마니아의 과학기술은 일찍부터 발달하여
2명의 노벨 생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였고,
19세기 후반에 원유정제의 기술을 개발해,
가로등을 전기로 점등할 정도였고,
1912년에는 비행기의 제트엔진과
만년필도 발명하였다.
루마니아는
인슐린을 최초로 개발해 사용한 나라이며,
최초로 신장 결석을 제거하는 수술을 한,
의학이 발달한 나라로
이러한 의료 산업은 20세기 들어와서도
발전을 거듭해 노화방지 약품을 개발하니,
챨리 채블린과 모택동도 루마니아에 와서
시술을 받았다고 한다.
오늘날도 루마니아는 이런 명성을 바탕으로
메디칼투어를 운영하고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체조 요정 코마네치가
차우세스쿠의 아들 니쿠에게
성적노리개로 시달리다가
CIA의 도움으로 헝가리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는데,
망명 후에도 계속되는 암살위협에
어느 한적한 시골에 잠적해 있다가
차우세스쿠 정권이 무너지고 난 뒤에야
체육 코치로 일하고 있다 한다.
이 이야기를 가이드에게 자세히 들었을 때
분노가 일어났다.
루마니아는
유럽 남동부에 있는 나라이다.
투르크의 지배를 받던
몰다비아공국과 왈라키아공국이
1861년 합병하여 루마니아 공국이 탄생한 지
20년이 지난 1881년에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독립했다.
1948년 소련의 영향으로 인민공화국이 되었다가
1990년 민주화되었다.
묘지
유럽여행을 다니다 보면
묘지 문화가
우리와는 차이가 많다는 걸
항상 느낀다.
수도 부쿠레슈티 표지판
부쿠레슈티는 루마니아 표기이고,
부카레스트는 영어 표기이다.
루마니아는
발칸반도에 위치한 라틴계 공화국으로,
해안선의 길이는 225㎞이다.
면적은 23만 8391㎢,
인구는 2159만 9736명(세계58위, 2016.07. 현재),
수도는 부쿠레슈티(영어 부카레스트)이다.
루마니아의 주요 민족은
루마니아인으로 89.5%에 달하며
나머지는 헝가리인과 독일인이다.
언어는 루마니아어가 공용어고,
그 밖에 헝가리어와 독일어도 소수어로
사용되고 있다.
루마니아의 종교는
동방정교회(86.8%)가 대부분이고,
개신교(7.5%), 로마가톨릭교(4.7%)의
분포이다.
루마니아의 기후는
전체적으로 대륙성기후이며,
주요 자원은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이다.
2015년도 국민총생산량은 1771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1,898억$
세계51위(2017 IMF 기준)
루마니아는
14세기경부터 루마니아인의 활동이 본격화되었으나
19세기 후반까지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다가
1881년 독립하여 루마니아왕국을 세웠고,
1947년 12월 1일 헌법을 제정하고
12월 30일 루마니아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1965년 사회주의공화국으로 국호를 고쳤다.
차우세스쿠가 당 제1서기가 되고
1964년 4월 탈소련 자주화 노선을 선언한 후
국가이익과 주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해 왔다.
차우세스쿠는 1967년 대통령에 취임하여
1989년 12월 민주혁명으로 사형당할 때까지
24년 동안 루마니아를 통치하면서
그 일가를 당과 정부의 요직에 임명하여
족벌체제를 구축, 권력을 독점하고
강권통치를 행사하였다.
반가운 기아자동차 로고가 보인다.
1989년 11월 당대회에서
차우세스쿠가 당 서기장으로 6번째 재선되면서
국민들의 반정부 의식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1989년 12월 티미쇼아라에서
차우세스쿠의 강경통치에 항의하여
시위가 일어난 것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으로 무장봉기가 확산되고
결국 차우세스쿠 정권은 붕괴되고,
차우세스쿠는 체포되어 공개 처형되었다.
루마니아는
로마화 된 사람들이 사는 땅이란 의미의
라틴어인 로마누스에서 유래되었다.
발칸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라틴 족 후손들이 살고 있다.
독재자 차우세스쿠는 북한을 자주
방문하면서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었고,
차우세스쿠가 북한을 방문하면
김일성은 많은 시민을 동원하여
루마니아 민속춤을 교육한 후
루마니아 의상을 입히고
엄청난 환영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차우세스쿠가 총살형 당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검증 안된 이야기지만
김일성이가 울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법원 건물
부쿠레슈티는
루마니아의 수도로 영어로는 부카레스트이다.
도나우 강 하류의 루마니아 평원,
발라키아 지방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지명은 환락의 도시, 즐거운 도시라는 뜻이다.
부쿠레슈티 지명은
이곳에 처음 거주한 양치기
BUCUR에서 유래한다고 하며
발라키아 왕시대(15세기)에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
부카레스트 카지노
루마니아의 부카레스트는
공산국가였다는게
안 믿어질 정도로 거리가 밝고
활기차다.
인구 225만의 부쿠레슈티는
루마니아의 작은 파리라고 할 만큼
도심의 거리 모습은 품위와 역사를 느끼게 한다.
공원이나 가로수도 많고 숲에 둘러싸인
현대적 정원도시로 꽃과 공원이 유명하다.
부쿠레슈티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치하에서는
역사적 건물들이 많이 파괴되었고
1977년 대지진으로 1,500명의 사망자가 났다.
2000년대 이후 루마니아의 경제 호황에 따라,
부쿠레슈티는 현대화되었으며
역사적 건축물들 또한 복원되고 있다.
부쿠레슈티 개선문
헤러스트러우 공원으로 통하는 키셀레프 거리 도중의 로터리에 있다. 제1차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922년 나무와 회반죽을 써서 처음 세웠으며, 1935년 콘크리트 건축물로 교체했다. 규모가 조금 작다.
높이 27m로 파리 개선문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파리의 개선문과 쌍둥이 같은 부카레스트의 개선문
루마니아의 대표적인 건축가
페트레 안토네스쿠가 설계했으며,
정면을 장식한 조각들은 이온 잘레아, 콘스탄틴 메드레아 등
당시 루마니아의 쟁쟁한 조각가들의 작품이다.
계단을 통해 테라스까지 올라갈 수 있다.
거리의 양쪽은 보리수와 마로니에가 무성한 녹지대로
개선문의 백색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동방 정교회
트램
서울 한식당
이 곳에서 발칸 여행 중
처음으로 육개장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얼큰한게 꿀맛이었다.
이제 호텔로 향했다.
무슨 건물인지 찿지 못했다.
Hotel Phoenicia Express
호텔 입구문
Phoenicia Express Hotel 리셉션
객실
욕실
호텔 베란다에서 본 낙조
[참고: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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