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영어 부카레스트)
개선문,카롤1세 동상,혁명 광장,크레출레쿠 정교회,
인민궁전(의회궁전, 차우세스쿠 궁전), 혁명기념탑, 구 공산당 본부
2017년 4월 26일 수요일
발칸 9개국 여행 열 하루째 날
크로아티아 - 슬로베니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 알바니아 -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 불가리아 - 루마니아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날로
루마니아 동쪽의 파리라는
부쿠레슈티 시내를 투어하는 것을 시작으로
드라큘라 성으로 유명한 브란성과
루마니아 국보 1호라는
시나이아의 펠레슈성을 관광하는 날이다.
이 투어들이 끝나면
공항으로 가 이스탄불에서 환승해
인천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부쿠레슈티는
루마니아의 수도로 영어로는 부카레스트이다.
도나우 강 하류의 루마니아 평원,
발라키아 지방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지명은 환락의 도시, 즐거운 도시라는 뜻이다.
이 지명은 이곳에 처음 거주한 양치기
BUCUR에서 유래한다고 하며
발라키아 왕시대(15세기)에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
부쿠레슈티는
중세 이래 왈라키아 공국의 수도가 되어오다가
1861년 왈라키아와 몰다비아의 합방으로
루마니아가 성립되자
1862년에 통일 루마니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 이후 부쿠레슈티는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
급속히 발전, 동쪽의 파리라는 별칭을 얻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전에는
경공업이 중심 산업이었으나,
후에는 기계,차량 등의 중공업이 발달하였다.
풍부한 석유와 천연 가스를 바탕으로
대단위 공업 단지가 건설되어 있다.
시내에는 공원과 녹지대가 많은데 북부의 8개 호수
이용하여 만든 헤라스트라우 공원은
스포츠와 레저에 이용된다.
부쿠레슈티 개선문
헤러스트러우 공원으로 통하는
키셀레프 거리 도중의 로터리에 있다.
제1차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922년 나무와 회반죽을 써서 처음 세웠으며,
1935년 콘크리트 건축물로 교체했다.
높이 27m로 파리 개선문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규모가 조금 작다.
파리의 개선문과 쌍둥이 같은 개선문
루마니아의 대표적인 건축가
페트레 안토네스쿠가 설계했으며,
정면을 장식한 조각들은 이온 잘레아, 콘스탄틴 메드레아 등
당시 루마니아의 쟁쟁한 조각가들의 작품이다.
계단을 통해 테라스까지 올라갈 수 있다.
거리의 양쪽은 보리수와 마로니에가 무성한 녹지대로
개선문의 백색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제1차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부카레스트 개선문
발칸 여행 중 제일 많은
차량을 본다.
조지 에네스쿠 기념 음악당
조르주 에네스쿠(1881.8.19,- 1955.5.4)
루마니아 출신의 역사적인 바이올린의 대가.
작곡가, 지휘자 그리고 피아니스트로 활약했다.
4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하여 8세 때 데뷔했다.
교육자로서도 뛰어나,
그 문하에서 페라스, 기틀리스 , 그뤼미오,
메뉴인 등의 대가가 배출되었다.
관현악곡 및 기악곡을 중심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인구 225만의 부쿠레슈티는
루마니아의 작은 파리라고 할 만큼
도심의 거리 모습은 품위와 역사를 느끼게 한다.
공원이나 가로수도 많고 숲에 둘러싸인
현대적 정원도시로 꽃과 공원이 유명하다.
미술관
부쿠레슈티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치하에서는
역사적 건물들이 많이 파괴되었고
1977년 대지진으로 1,500명의 사망자가 났다.
2000년대 이후 루마니아의 경제 호황에 따라,
부쿠레슈티는 현대화되었으며
역사적 건축물들 또한 복원되고 있다.
부쿠레슈티의 건축물들은
여타 서유럽의 건물들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는것 같다.
루마니아 외교부 건물
카롤1세 동상과 옛 겨울 궁전
혁명광장 왼쪽 옆으로 서 있는
카를 1세 동상과 옛 겨울궁전으로
1989년 공산정권이 붕괴되면서
루마니아 국립중앙도서관이 되었다.
혁명 광장의 초대 국왕 카롤1세 동상
루마니아의 왕(재위 1881-1914).
산업, 교육을 장려하며 철도를 새로 놓는 등
루마니아의 근대화를 위하여 진력했다.
행정, 경제기구의 개혁, 철도 부설, 군대의 강화 등에 노력하여
루마니아를 발칸 반도에서 으뜸가는 육군국으로 만들었다.
루마니아 국왕 카롤1세 (1839-1914)
근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루마니아 초대 국왕 카롤 1세는
부친 쪽으로 프러시아 국왕을 배출한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 왕가 출신이며,
모친 쪽으로 프랑스 국왕 보나파르트 나폴레옹과
아주 가까운 친척 관계이다.
카롤 1세는 루마니아에 입성한
1866년 4월부터 군주로 인정받았으며
그해 5월 10일에 루마니아 공으로 정식 취임하였다.
루마니아가 완전한 독립국의 지위를 얻은 다음인
1881년 3월 14일에 카롤 1세는
루마니아 공에서 루마니아 왕으로 승격하여
1881년 5월 10일에 또 한 번 성대한 대관식을 치렀다.
1914년 10월 10일 시나이아의 펠레쉬 성에서 사망할 때까지
그는 루마니아의 왕으로서 소임을 다하였다.
카롤 1세의 왕비 비트의 엘리사베타
카롤 1세는 독일계 귀족이었던
비트의 엘리사베타와 혼인하였고,
딸인 마리아 공주가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조카인 페르디난드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부쿠레슈티 혁명 광장
부쿠레슈티 빅토리에이 거리
남쪽에 있는 넓은 공간으로
1989년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12월 혁명의 배경장소다.
1939년에 처음 건설된 공간으로
화재나 혹시 있을지 모르는 폭동으로부터
왕궁을 보호하기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오른쪽 건물 구 비밀경찰청사(중앙정보국)
성난 군중에 의해
허물어진 부분만 유리로 재건축하여
독특한 건축물이 되었다.
개인이 불하 받아 신축건물을 지으려고 했으나,
기념 건물이라 허물지 못하게 하여
두개 층은 그대로 두고
그 위에 건물만 재건축하였다.
혁명 기념탑
혁명 광장 주위에는
정부종합청사, 구 공산당 본부,
비밀경찰본부, 국립도서관, 혁명 기념탑 등
루마니아 주요 건물들이 밀집 되어 있다.
혁명 광장의 구 공산당 본부
국기가 꽂혀있는 바로 위 발코니가
차우세스쿠가 1989 12월 21일
당시 연설하던 장소라고 한다.
차우세스쿠는 연설을 한 이 광장에서
그를 규탄하던 시민들을 향해 발포함으로서
혁명의 발단이 되었는데, 그는
혁명이 일어난 후4일 만인
1989 12월 25일 부부가 함께 총살되었다.총살 후 죽어서도 같이 묻히면 역모를 일으킨다고
반대 방향으로 떨어트려 묻었다고 한다.
1989년 12월 21일에 시작된 민중봉기는
나흘 후, 12월 25일 차우세스쿠 부부의 사형집행과
그 시신 사진이 공개되면서 마무리 되었다.
니콜라에 차우세스쿠가 연설한 발코니
1989년 12월 21일은 혁명의 날로
외국 순방에서 돌아온 차우세스쿠가
티미쇼아라 사태가 전국적으로 번져나가는 것을
진정시키고자 위 공산당사에서 TV 생중계로 연설도중
한 젋은이가 '차우세스쿠 물러가라' 고 외치자
군중들이 합류하면서
정오에 있었던 차우세스쿠 대통령의 연설이
5분 만에 중단되었다.
대통령 지지 집회가 아수라장으로 변하면서
옥상에서 비밀경찰이 발포하게되고 성난군중들로 하여금
불같이 반정부집회장이 되어갔다.
놀란 차우세스쿠는 헬기로 이곳을 탈출했지만,
루마니아 12월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틀간의 시위와 총격전 끝에 시위대가
루마니아 국영방송국을 장악했고,
12월 25일에는 차우세스쿠 대통령 부부가
총살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혁명 이후에도 공산당 간부들이
여전히 실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반뿐인 혁명’ ‘도둑맞은 혁명’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루마니아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광장 주변의 건물들에는
그때 당시의 탄흔이 선명하게 남아
숨가빳던 당시의 순간들을 떠올리게한다.
당시 시위 장면은 국영 텔레비전을 통해
루마니아 전역에 방송되었고
후에는 전세계에 방송되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혁명 기념탑 앞 동상
총탄을 맞은 동지들이
얽혀있는 형상을 표현한 동상
혁명 기념탑(진혼탑)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25m 높이의
삼각형 조형물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데,
1989년 당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혁명 기념비이다.
조형탑의 붉은 페인트로 표현 된
붉은 피는 민주혁명 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을 상징한다.
오른쪽 희생자 명단
혁명 당시 희생자 명단을
타원형의 검은 대리석 판에
당시 희생된 1,000여명의 사망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통나무
승리의 탑 아래 바닥에는
통나무가 박혀 있는데 이 통나무는
이때 희생된 사람 수만큼 이라고 한다.
차우세스쿠 (1918.1.26~1989.12.25) 는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고 호형호제하며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제도를 고쳐
개인숭배를 강화해 나갔고,
김일성은 세 번 루마니아를 방문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1989년 12월 빅토리아에 거리, 마게루 거리,
인터콘티넨탈 호텔 앞의 광장 등이
수많은 피로 물들였다.
그러나 거리에 비쳐진 꽃다발이나
건물에 남아있는 탄흔을 제외하면
시민혁명 폭풍의 흔적은 어디에도 볼 수 없다.
루마니아 국립 오페라 극장
혁명광장 주위 크레출레쿠 정교회
크레출레쿠 정교회 근처에는
공산당본부와 연결된 비밀 통로가 있었는데
그 통로는 대각선 방향으로 광장 밑을 가로질러
정교회와 연결되어 있어
혁명 당시 비밀경찰이 나타나서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십자가가 특이한 크레출레쿠 정교회
대법관이었던
이오르르나케 크레출레쿠와
그의 아내 사프타가 18세기 초에 세운
비잔틴 로마네스코 양식의 정교회이다.
크레출레쿠 정교회 앞
인물 흉상은
루마니아의 보수 정치가
크레출레쿠 정교회
부쿠레슈티 시내의 중심지인
혁명광장 근처 빅토리아 거리에 있다.
십자가가 특이한 형태다.
주교들은 가로대가 하나 있는 십자가를,
대주교들은 가로대가 두개 있는 십자가를,
교황만이 가로대가 세개 있는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다고 한다.
정교회는 십자가 가로대가 두개인데
이 곳은 세개이다.
크레출레쿠 정교회 입구
크레출레쿠 정교회는
원래 차우세스쿠 궁전을 지은 자리에 있었는데
당시에 모든 집들은 다 밀어버렸지만
크레출레쿠 정교회는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옮겨오는 방식은 피라미드 돌 옮기듯이
무수히 많은 레일을 깔고
그 위로 끌고 왔다고 한다.
중앙 제단
내부 벽화
당대의 유명한 화가 게로게 타타레스쿠가
내부 벽화를 그렸다.
돔 중앙에 예수님
크레출레쿠 정교회 뒷 면
크레출레쿠 정교회의
뒷 면은 타원형이다.
크레출레쿠 정교회 앞에는
공원 같은 넓은 잔디 정원이 있다.
루마니아의 부카레스트는
공산국가였다는게
안 믿어질 정도로 거리가 밝고
활기차고 건물들도 우아하고 아름답다.
돔보비차 강의 수로
인민궁전(의회 궁전, 차우세스쿠 궁전)
세계에서 미국의 펜타곤
다음으로 큰 건물이라 하는
차우세스쿠 궁전이 보인다.
현재는 국회의사당이다.
현재 의회궁전, 국회의사당
의회궁전은 1981년에서 1988년에 걸쳐
루마니아의 유명한 건축가인
Anca Petrescu 에 의해 설계되었다.
265,000㎡ 넓이의 부지에
높이 85m, 가로 270m, 세로 240m,
지상 11층, 지하 3층으로 만들어진 건물로
단일건물로서 그 규모가 미국의 펜타곤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 째로 큰 규모의 건물이다.
의회 궁전 (인민궁전, 차우세스쿠 궁전)
25개의 홀과 수십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철권통치자의 대표주자였던,
차우세스쿠의 과대망상의 결과라고 말할 만큼
현지인들에게 있어서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이자리에 있었던 아름다운 고건축물들은
이 의회궁을 짓기위해 모두 파괴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 의회궁이 끝나는 거리를
부카레스트에 대한 사회주의의 승리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기도 하였다.
차우세스쿠는 이 건물 부지 마련을 위해
19개의 루마니아 정교회, 6개의 유대 시나고그,
3개의 개신교 교회, 3만여 가옥을 철거하고
엄청난 건설 비용으로 나라 재정을 악화 시켰다.
의회궁전, 국회의사당
공식적으로 이 의회궁전은
1990년에 최초로 공개되었다.
4백여명의 전문인력과 2만여명의
노동인력이 동원되었으며,
내부에는 엄청난 규모의 샹들리에와
홀을 모두 채울만한 크기의 카페트 등이 깔려 있다.
이 의회궁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은 냉정하다.
하지만, 쓰라린 역사의 한켠을 기억하기위한
건축물로 여전히 그 위풍당당한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의회궁 내는 여러 의회관련 사무실과,
회의실, 연구소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영어가이드를 따라 가이드 투어를 할 수도 있다.
국회의사당, 의회 궁
차우세스쿠는 북한 김일성의 주석궁을 보고
차우세스쿠 궁전을 건설하였는데
궁전을 마무리하기 전 차우세스쿠는
1989년 12월 25일 유혈 혁명으로
총살을 당하게 된다.
그는 궁전이 다 만들어지면 앞 발코니에 나와서
인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싶어 했으나
그곳에서 최초로 손을 흔들게 된 사람은
아이러니칼 하게도 마이클 잭슨이었다고 한다.
정부 종합청사
인민궁전 앞으로
좌측과 우측에 바티칸 궁전을 본 떠서
부속건물을 지어 놓았다.
의회궁전 앞 통일광장과 분수거리(상젤리제 거리)
통일광장 분수거리
차우세스쿠의 부인 엘레나가
파리의 샹젤리제를 재현하고 싶어
부카레스트 혁명광장 앞
거리에 조성한 것이
41개의 분수가 있는 분수거리이다.
41개의 분수가 있는 분수거리(상젤리제거리)
파리의 샹젤리제보다
조금 더 넓게 만들어졌다는데
유럽풍의 건물과 도로의 41개 분수,
울창한 가로수가 인상적이다.
부쿠레슈티 트램
대법원 건물
대법원 건물 왼쪽 첨탑은
왕실부속성당
부쿠레슈티는
사실 별로 기대를 안 한 도시인데
생각 밖으로 정감이 가는 도시다.
깨끗하고 공원이 많고 아름다운 건물들과
문화가 있는 도시로 기억될 것 같다.
Lascar Catargiu (1823–1899)
루마니아의
존경받는 보수적인 정치가
위 건물의
forte asigurati reasigurari
루마니아어를 해석하면
빠른 보험자 보증갱신
이제 부쿠레슈티에서
루마니아 국보 1호인
시나이아의 펠레슈성으로 간다.
[참고출처: 루마니아 개황, 두산백과, 위키백과]
[서명 없는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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