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루마니아] 브란 성

푸른 바다. 2017. 8. 26. 13:17

루마니아 브란 성

 

 

 

2017년 4월 26일 수요일

발칸 9개국 여행 열 하루째 날

 

크로아티아 - 슬로베니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 알바니아 -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 불가리아 - 루마니아

 

 

펠레슈 성을 보고난 뒤

브란 성으로 가고 있다.

드라큘라 성이라는 별명을 얻은 브란 성은

드라큘라의 모델로 여겨지는 블라드 체페슈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성이라고 하며,

드러쿨레쉬티 가문 역시

드라큘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드러쿨레쉬티 가문은

험난한 중세의 역사 속에서 때로는 외세와 대립하고

 때로는 외세에 굴복하기도 하면서

루마니아 남부 발라히아 공국을 꿋꿋이 지켜낸

위대한 왕가라고 한다.

 

 

 

 

 

루마니아는

14세기경부터 루마니아인의 활동이 본격화되었으나

19세기 후반까지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다가

1881년 독립하여 루마니아왕국을 세웠고,

1947년 12월 1일 헌법을 제정하고

12월 30일 루마니아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1965년 사회주의공화국으로 국호를 고쳤다.

 

 

 

 

 

차우세스쿠가 당 제1서기가 되고

1964년 4월 탈소련 자주화 노선을 선언한 후

국가이익과 주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해 왔다.

차우세스쿠는 1967년 대통령에 취임하여

1989년 12월 민주혁명으로 사형당할 때까지

24년 동안 루마니아를 통치하면서

그 일가를 당과 정부의 요직에 임명하여

족벌체제를 구축, 권력을 독점하고

강권통치를 행사하였다.

 

 

 

 

 

1989년 11월 당대회에서

차우세스쿠가 당 서기장으로 6번째 재선되면서

국민들의 반정부 의식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1989년 12월 티미쇼아라에서

차우세스쿠의 강경통치에 항의하여

시위가 일어난 것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으로 무장봉기가 확산되고

결국 차우세스쿠 정권은 붕괴되고,

차우세스쿠는 체포되어 공개 처형되었다.

 

 

 

 

 

루마니아는 슬라브계가 아닌

발칸 유일의 라틴계이다.

 

 

 

 

 

 

 

루마니아 브란

 

브라쇼브 시로부터

약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브란, 포아르타, 프레델룻,

시몬, 소호돌이라고 하는

다섯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브란

 

13세기 초반에 독일기사단

이곳에 목재로 된 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1242년에 몽골이 이 요새를 파괴한 이후

1377년에 헝가리의 왕 지기스문트

이곳에 돌로 된 요새를 지을 것을 명령하면서

이곳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가파른 산 위에 성이 지어지면서 트란실바니아

왈라키아 사이의 전략적 무역로를 지킬 수 있었다.

 

 

 

 

브란

 

1498년에 브란은

브라쇼브 시의 관할 구역에 포함되었다.

헝가리의 지배를 벗어나

터키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트란실바니아의 관할 구역이 되었으며

1800년대 초반에는 오스트리아령으로,

1866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으로

여러차례 외침을 겪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루마니아령이 되었다.

 

 

 

 

브란

 

유명 관광지로는

1200년대에 지어진 브란 성이 있는데,

이 성은 브람 스토커의 유명한 소설인

드라큘라 성의 배경지로 유명세를 얻어

오늘날 루마니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로 꼽히면서

많은 방문객이 찿아온다.

 

 

 

 

브란마을에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

브란 성으로 걸어가고 있다.

 

 

 

 

기념품점이 많은 곳이다.

 

 

 

 

브란 성 관광안내소

 

 

 

 

 

 

 

 브란 성 매표소

 

 

 

 

브란 성

 

루마니아 브라쇼브주 브라쇼브에 있는 성으로

카르파티아 산맥을 오가는 교역요지

브란 협곡에 있다.

흡혈귀 소설 드라큘라의 가상모델인

블라드 3세가 잠시 머물렀던 곳으로,

드라큘라의 성으로 알려졌다.

 

 

 

 

브란 성

 

전형적인 중세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은

1212년 독일 기사단인 튜튼 기사단이

만든 성이라고 전해진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양식이 추가되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양식이 결합되어 있다.

1920년 브라쇼브 의회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 왕비에게 헌정하였고,

이후 대대적인 개조를 통해

애초 요새로서의 외양이 사라지고

왕실의 여름별장으로 사용되었다.

 

 

 

 

 

 

 

 

 

 

브란 성

 

아일랜드작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소설로 유명해진 브란 성은

브라쇼브 남서쪽 32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드라큘라의 성'으로 알려지면서

동유럽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다.

 

 

 

 

 

 

 

공원

 

 

 

 

브란 성

 

브란 성 자체의 기원은 불명확하지만,

1212년 독일 기사단인 튜튼 기사단

(종교 기사단 중 하나)의 요새로 만들어졌는데,

15~16세기엔 트란실바니아와 왈라키아 공국을

잇는 연결지 역할을 하면서

오스만투르크로부터 헝가리 왕국을

지키는 관문이 되었다.

 

 

 

 

브란 성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몇 세기 동안 브란 성은

여러 소유주의 손을 거쳐 왔는데,

블라드의 할아버지인 미르체아 현공도 그중 하나였다.

1920년 12월 브라쇼브 의회가 이 성을 마리에게 헌정했다.

그 후 이 성은 영국 태생의 루마니아 여왕 마리가

가장 좋아했던 거처가 되었으며,

1948년까지 왕실 소유로 남아 있다가

이후 공산주의 정권에 왕족이 추방되고

압수당해 국유화되었다.

여러 해 동안 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민주화 이후 사유재산 반환조치에 따라,

 2006년 마리의 딸 상속인들에게 반환되었다.

 

 

 

 

드라큘라의 성 브란 성

 

브란 성이 드라큘라의 성이 된 것은

아일랜드 소설가 브램 스토커의 소설에서 유래했다.

1897년에 쓰인 그의 드라큘라는 역사 속의 실제 인물,

'찔러 죽이는 자 블라드'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한

블라드 체페슈(1476년 사망)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다.

블라드 체페슈는 드라큘라(드라큘의 아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의 아버지 이름이 블라드 드라쿨이다.

드라쿨은 용처럼 용맹하고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브란 성의 십자가

 

 

 

 

 

 

 

 

 

 

 

드라큘라의 모델은

15세기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 출신의

왈라키아 공 블라드 체페슈로 알려져 있지만,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고는 블라드의 별명인 드라큘라와

출신지가 오늘날의 루마니아라는 점 뿐이다.

예를 들면 블라드는 왈라키아인이며 공작이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드라큘라는

트란실바니아의 제켈리 민족으로 작위는 백작이다.

드라큘라 관련 영화가 수십 편 제작되던 중에

어느새 블라드 공을 연상케 하는 설정이 덧붙여지면서,

블라드 체페쉬=드라큘라가 정착한 것으로 여겨진다.

드라큘라의 모델이 블라드 공이라는 사실에 대해,

현지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관광에 이용할 수 있다고 좋아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

조국의 영웅을 괴물 취급하는 것에 대해

불쾌해하는 이들도 있다.

 

 

 

 

사진 촬영을 하려면

입장료 외 따로 10유로를 내야 했던

시나이아의 펠레슈 성과 다르게

브란성은 사진촬영이 자유이다.

 

 

 

 

 

 

 

 

브란 성은 지하의 감방을 포함해

57개의 방이 있는데

왕가의 여름별장으로 쓰였던 곳이기에

왕과 왕비의 방, 공주와 왕자의 방, 침실,

게임룸, 음악실 등이 있다.

 

 

 

 

브란 성 내부

 

내부는 성이라기엔 매우 소박하다.

브란 성은 예전에 펠리소르성에서 묵었던

페르디난드1세와 마리왕비 부부가

여름 궁전으로 사용한 곳인데

무척 검소하고, 소박하다.

커다란 연회장 같은 곳도 없고,

작은 방들이 미로처럼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는 구조이다.

 

 

 

 

 

 

 

 

 

 

 

 

 

 

 

 

 

 

 

벽난로

 

 

 

 

성주의 방

 

 

 

 

앞 그림

 

 16세기 브라쇼브의 영주이자

이 성의 성주였던 Licas Hirscher의 그림

 

 

 

 

성주의 방

 

1920년 이 방은 마리왕비의 취향에 따라

천장도 높이고 아치형의 문도 만들어졌다고.

 

 

 

 

 

 

 

 

 

 

 

 

 

페르디난드 1세(1865년 ~ 1927년, 재위 1914년 ~ 1927년)

 

 루마니아 왕국의 두 번째 군주로

남부 독일지그마링겐에서 태어났는데,

숙부인 카롤 1세가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카롤 1세의 형인 호엔촐레른 공 레오폴트의 차남이었던

그가 루마니아의 추정상속인이 되었다.

그는 독일계 국왕이었지만 영국인 아내였던

에든버러의 마리아의 요구에 의하여

루마니아를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측에 참전시켰다.

승전으로 그는 트란실바니아, 베사라비아, 부코비나도브루자

루마니아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의지력이 약했지만 그와 에든버러의 마리아

이 사건으로 루마니아의 가장 중요한 군주와 군주 배우자가 되었다.

그는 전 국왕인 카롤 1세와는 달리

루마니아와 그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페르디난드 1세 왕비 에든버러의 마리아 (1875년 ~1938년)

 

작센 코부르크고타의 알프레트

그의 아내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이다.

따라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친손녀이며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외손녀이다.

1893년에 루마니아의 페르디난드 1세와 결혼하여

1차 대전 와중인 1914년에 루마니아 왕비가 되었다.

루마니아의 페르디난드 1세를 설득하여,

루마니아 왕국연합국으로 참전시켜

후에 많은 영토를 얻어냈기에,

루마니아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계단

 

1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너무 좁아서 덩치큰 사람은 힘들것 같고

경사져서  줄을 잡고 올라가야 한다.

 

 

 

 

성안에 절벽을 그대로 깎아서 만든

비밀통로라고 한다.

 

 

 

 

음악실과 서재

 

마리 왕비가 여름별장으로 썼던

 성 내부는 과거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는데

의복, 창, 방패, 갑옷 등이 전시돼 있는 것은 물론

침실 같은 생활공간도 엿볼 수 있다.

 

 

 

 

음악실과 서재

 

 

 

 

왈라키아 산 카페트

 

 

 

 

독일의 드레스덴 산 피아노

 

 

 

 

 

 

 

곰 가죽

 

 

 

 

음악실과 서재

 

책장 앞에 Brasero라고 불리는

독특한 놋쇠난방기구가 있다.

책장 오른쪽을 밀면 다른 방으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다고.

 

 

 

 

벽난로

 

벽난로의 타일은

이 지방의 민속도자기 스타일이다.

 

 

 

 

장식장

 

토스카나의 르네상스 스타일로

상감세공한 장식장

 

 

 

 

1823년 마리왕비와 일리나 공주의 사진

 

왼쪽 아래 사인은 나중에

장성한 공주의 사인이라 한다.

 

 

 

 

일리나 공주

 

1910년까지 이 성에서 살았던 일리나 공주.

2006년 합스부르크 왕가후손으로,

마리 왕비의 딸인 일리나 공주의 아들

도미니크 폰 합스부르크가

성의 소유권을 되찾았다.

 

 

 

 

 

 

 

 

 

 

 

 

 

브란 성

 

 

 

 

브란성은

ㅁ자 형태로 가운데에 마당이 있는 구조다.

성안을 구경하다 보면 테라스로

수시로 마당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사실 성 내부 구경보단

성안에서 바라보는 성의 전경이 더 좋다.

 

 

 

 

브란 성 중정

 

브란 성 내부는 밖에서는 알 수없는

 테라스를 따라 돌게 되는 구조인데

여기서 내려다보이는 성 중심의 중정이다.

중정에는 우물과 저울대가 있다.

 

 

 

 

 

 

 

 

 

 

 

 

 

 

 

 

보수공사가 안된 수백년전 창틀

 

 

 

 

브란 성에서 내려다 본 풍경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으로

큰 길은 헝가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이고,

왼쪽 아래 보이는 건물이 옛날 세관으로

사용하던 건물인데,

브란이란 세관을 뜻한다고 한다.

구 세관 건물 뒤에는 구 성벽이 보인다.

 

 

 

 

구 세관 건물과 뒷편 구 성벽

 

 

 

 

 

 

 

니콜라스 왕자

 

페르디난드 1세와 마리왕비 사이의

4번째 자식으로 영특하기로 소문나

영국의 이튼 스쿨에 유학한 인텔리였다.

그러나 정치적 격변과 왕실의 몰락으로 우여곡절 끝에

1979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사망했다.

 

 

 

 

니콜라스 왕자의 방

 

이탈리아의 네오 바로크 양식의 장식장과

중앙에 단검을 수집한 유리장이 있다.

 

 

 

 

 

 

 

벽난로가 아름답다.

 

 

 

 

브란 성 복도

 

브란성은 요새답게 미로처럼 되어있다.

적이 쳐들어 왔을때를 대비해서

문처럼 되어 있지만 실은 문을 열면

방이 없다고 한다.

 

 

 

 

브란 성 계단

 

좁은 복도와 좁은 계단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고

무작정 어떤 계단을 따라가다 보면

막다른 곳에 이를 수 있다.

또 어떤 계단에는 비밀통로가 있어

위급할 때 탈출구가 된다.

이런 구조는 다 적이 침입했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었다.

 

 

 

 

 

 

 

적 침입시 혼란을 줄 목적으로

계단 끝은 막다른 곳일 수 있다.

 

 

 

 

 

 

 

 

 

 

드러쿨레쉬티 왕가 계보

 

 

 

 

블라드 2세 드라쿨, 블라드 체페쉬의 아버지

 

발라히아 공국의 드러쿨레쉬티 왕가는

바사라브 왕가의 방계로 미르체아 첼 버트른의 아들인

블라드 드라쿨을 시조로 하는 왕가이다.
블라드 드라쿨은 드라큘라의 모델이 되는

블라드 체페쉬의 아버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미르체아 첼 버트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블라드 2세는

헝가리의 왕이자 이후에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는

지기스문트에게 용의 기사단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1436년, 발라히아 공국의 왕위에 오른 블라드 2세는

기사단을 상징하는 용의 문양을 동전에 새겨 발행하였고

 새로 짓는 교회들도 용의 문양을 넣어 건축하게 하였다.

차츰 용의 문양은 발라히아 공국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고

 발라히아의 국민들은

블라드 2세를 블라드 드라쿨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루마니아어로 용을 일컬을 때 대개 ‘드라고눌’이라고 하지만,

당시 ‘드라쿨’이라는 단어는 용과 악마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즉, 블라드 드라쿨의 이름에 붙여진 ‘드라쿨’은

악마를 의미한 것이 아니라

용처럼 용맹하고 현실적인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국의 찰스 황태자는 BBC방송에서

자신을 비롯한 영국 왕실은 드러쿨레쉬티 왕가의 후예인

블라드 체페쉬와 혈연적 관계에 있다고 밝히면서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언급하였다.

[출처: 루마니아 왕가]

 

 

 

 

블라드 3세 바사라브 = 블라드 3세 드라쿨레아의 초상화(16세기)

 

블라드 3세 바사라브는 1431년 겨울

루마니아 무레슈주 시기쇼아라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인 1435년 아버지 블라드 드라큘이

왈라키아 공국의 군주가 되면서 이곳을 떠났다.

블라드 3세는 여러 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본명보다 오히려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우선 블라드 체페슈라는 별명이 있는데,

체페슈는 '꼬챙이' 또는 '꼬챙이로 찌르는 자'라는 뜻이며,

왈라키아 공국을 다스릴 때 외부의 적은 물론

반대파 귀족, 부패한 상인 등 내부의 적까지 꼬챙이에 꿰어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하나의 별명은 유명한 블라드 드라큘레아(영어 드라큘라)인데,

드라큘레아는 루마니아어로

'용의 아들' 또는 '악마의 아들'로 해석할 수 있다.

아버지가 용을 의미하는 드라큘 기사단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전자라는 쪽이 더 설득력이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블라드 3세는

헝가리와 오스만투르크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약소국 왈라키아 공국을 지킨 국가적인 영웅이다.

다만, 치세에 그가 보여주었던 적에 대한 잔인성과

유럽에 퍼져 있던 흡혈귀 전설이 맞물리면서

19세기 아일랜드의 괴기 소설가 브램 스토커의 소설에

‘흡혈귀 드라큘라’로 변형되어 등장하게 되고,

이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출처: 두산백과]

 

 

 

 

블라드 체페쉬

 

블라드 체페쉬가 흡혈귀 드라큘라로 소개된 것은

1460년경, 브라쇼브와 시비우 등지에 거주하던

독일계 작센인 상인들과의 충돌 때문이었다.

당시 루마니아 내에서는 작센인 상인들이

밀매와 무관세 무역을 하며 막대한 부를 축척했던 반면,

루마니아 일반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이에 체페쉬 영주는 작센인 상인들에게 적정한 세금을 부과하여

루마니아인들의 궁핍한 생활을 호전시키려 하였다.

당연히 이러한 체페쉬의 정책은 작센인 상인들과 충돌하였다.

일부 작센인 상인들은 체페쉬 영주에게

노골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체페쉬 영주는 이들을 잡아 죄의 경중에 따라

혀, 코, 귀 그리고 성기 등을 자르거나 혹은 장대에 꽂아 처형하였다.

또한 그는 400여 명의 작센인 가톨릭 도제들까지

산 채로 태워 죽여 버렸다.
이러한 과정을 독일어로 기록한 게르만 연대기 저술자들은

작센인들을 처참히 죽인 블라드 체페쉬 영주를

사악한 악마로 묘사하였다.

따라서 그는 서방세계에 잔혹하고 두려운 인물인

흡혈귀 드라큘라로 알려지게 되었다.

 

 

 

 

 

드러쿨레쉬티 가문의

실제 역사는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드러쿨레쉬티라는 가문의 이름은

소설이나 영화 또는 컴퓨터 게임상에서

흡혈귀의 대표적인 가문으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바로 브람 스토커의 베스트셀러 소설인 드라큘라의 흡혈귀 모델이

드러쿨레쉬티 가문의 블라드 체페쉬였기 때문이다.

체페쉬는 루마니아 말로 가시, 꼬챙이 등

뾰족한 물건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가 이런 별칭을 가지게 된 것은 죄인이나 전쟁 포로 등을

끝이 뾰족하고 기다란 장대에 꽂아 죽이는

잔혹한 처형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브란성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드라큘라의 성으로 알려지면서부터다.

1460년경 잠시 이 성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되는

왈라키아 공국의 군주 블라드 3세 바사라브(1431 ~ 1476)는

블라드 체페슈 또는 블라드 ‘드라큘라’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재위기간에 적과 범죄자를 가혹하게 다뤄 악명을 떨쳤는데,

1897년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가 흡혈귀 소설 《드라큘라》를 쓰면서

블라드 3세를 가상모델로 삼았다.

이후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소설은 물론 영화, 드라마에까지 등장하면서 유명세를 떨쳤고,

루마니아인들의 영웅이었던 블라드 드라큘라는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동일시되었다.

더불어 브란성은 드라큘라가 실존했던 증거인 양 관심을 모았지만

흡혈귀 전설에 어울리는 음습한 공간이라기보다는

동화 속에 나오는 낭만적인 성에 가까운 모습이다.

 

 

 

 

 

체페쉬에 대한 소문을 우연히 접하게 된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소설가 브람 스토커는

소설 드라큘라 1897년)를 출판하였고,

그 후 1931년 미국에서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가 제작됨으로써

드라큘라는 흡혈귀의 대표적인 인물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블라드 체페쉬가 속해 있던 드러쿨레쉬티 가문은

자연스럽게 흡혈귀를 대표하는 가문으로 인식되어

각종 문화 콘텐츠에 그 이름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높은 지대에 세워져

바람이 강하게 부는 탓인지

계단 창들이 대체로 작고 아담하다.

창 바로 앞엔 앉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가 독특하다.

 

 

 

 

 

 

 

 

 

 

 

 

 

페르디난드 1세

 

 

 

 

페르디난드 왕의 방

 

 

 

 

방 문에는 독일 풍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왕의 침실

 

옆 유리장에 왕관과

조부의 왕위 계승식때 사용한 용품이 들어있다.

 

 

 

 

침대 머리맡에는

왕과 왕비의 결혼식 사진이 붙어있다.

 

 

 

 

당시에는 귀했던 추 달린 시계


 

 

 

아름다운 벽난로

 

 

 

 

 

 

 

방이 넓어서 벽난로가 두군데 있다.

 

 

 

 

 

 

 

세라믹으로 만든  옛날식 보일러

 

저 안에 물을 넣어 끓여서

방을 데우는 방식

 

 

 

 

무기실

 

 

 

 

문장과 방패

 

머리 둘 달린 독수리는

합스부르크왕가의 문장

 

 

 

 

 

 

 

 

 

 

 

 

 

갑옷과 무기

 

 

 

 

 

 

 

 

 

 

 

 

 

 

 

 

 

 

 

 

 

 

 

 

 

 

 

 

 

 

 

 

 

 

 

 

 

 

 

 

 

 

 

 

 

 

 

 

 

방어용 회랑

 

방어용 탑으로 왕래하는 보초들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만든것이다.

 

 

 

 

 

 

 

 

 

 

회랑에서 본 우물

 

전설에 따르면

이 곳에 있는 우물의 물을 황금 잔에 따라 마시고,

황금 잔을 이곳에 두면 블라드의 영혼이 머물러

도둑들을 얼씬 못하게 한다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가 도둑질을 하면

블라드 체페슈가 도둑을 찾아내 잔혹하게 죽이고,

벌할거라고 여겼단다.

그만큼 블라드가 무서운 사람이었다고. 




 

마녀 심판 저울과 우물

 

 

 

 

대포

 

적의 습격이 있을 때 조그만 구멍으로

도로쪽으로 총이나 대포를 쏘았지만

지금은 창으로 다 개조되었다.

 

 

 

 

 

 

 

 

 

 

 

 

 

 

 

 

 

 

 

 

 

 

 

 

 

 

 

 

 

 

 

중정으로 내려오는 좁은 계단

 

 

 

 

중정에서 올려다 본 모습

 

 

 

 

중정에서 올려다 본 모습

 

우물이 있던 중정에 내려와

이제는 밑에서 올려다 본 모습

 

 

 

 

성이 4층인걸 알 수 있다.

 

 

 

 

 

 

 

중정의 우물

 

 

 

 

우물

 

우물이 그냥 우물이 아니라

외부로 통하는 비밀통로로도 쓰였다.

 

 

 

 

마녀 저울대

 

마녀를 가려내는 저울이라고 하는데

  돌보다 무게가 작게 나가면

몸안에 마녀가 있다고 판단해

죽인다고 한다.

마녀는 귀신의 일종이라 원래의 체중보다

가벼울 것이라는 믿음이 퍼져 있었다고.

 

 

 

 

마녀 심판 모습

 

 

 

 

블라드 체페쉬의 처형 장면 포스트

 

위엄 있고 용맹스럽던 블라드 체페쉬는

포로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광기에 가까울 만큼

잔인무도한 면모를 드러냈다.

그는 수천 수만의 포로들을 꼬챙이나 말뚝에 꽂아서

서서히 죽이는 방법을 택했다.

포로들의 항문에 꼬챙이를 끼워 몸의 무게에 의해서

서서히 말뚝에 깊이 박히면서 과다출혈로 고통스럽게 죽어갔는데,

이 모습을 당시 블라드 체페쉬는 처음부터 끝까지 목도했다고 한다.

그때 그가 즐겨 사용한 처형 도구인 '꼬챙이' 또는 '가시'가

루마니아어로는 체페쉬인데,

여기서 그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블라드의 잔혹한 처벌은 단지 포로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국 내의 배신자나 부패한 귀족,

거지나 불치병자와 같은 최하층 계급의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형벌을 내렸다.

당대는 물론 후대의 사람들까지도 그를 공포의 대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제 브란 성에서 내려간다.

 

 

 

 

 

 

 

 

 

 

내려가면서 뒤돌아 본  브란성

 

세계에서 두번째로 비싼 집` 루마니아 드라큘라성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집' 리스트에 올랐다는

이 성의 시가는 알려진 게 1억4000만달러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이곳을 전세계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흡혈귀 소설 드라큘라의 가상 모델인

블라드 3세가 잠깐 머물렀다고 알려진 뒤

그 흔적을 찾기 위한 것이다.
정작 이 성의 실 소유주이면서

후손인 건축가 도미닉 합스부르크 로트링겐 씨는

 '"흡혈귀 성이 아니다. 그건 픽션이다.

브란 성은 단지 나와 내 할머니의 집일 뿐"이라고

지금도 못을 박는다.

 

 

 

 

 

 

 

루마니아의 오래된 집

 

 

 

 

오래 전에 사용했던 옹기를 전시

 

 

 

 

 

 

 

기념품 선물가게

 

 

 

 

 

 

 

브란 성 아래에는

선물용, 기념품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이제 브란 성을 끝으로

발칸 9개국 모든 일정을 마쳤다.

아쉽지만 이때까지의 여행 여운을 모두 가지고

그리운 집으로 갈 일만 남았다.

 

 

 

 

버스를 타고 부쿠레슈티

헨리 코안더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참고출처: 두산백과,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