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 프라우뮌스터 교회, 그로스뮌스터 교회, 니더도르프 거리
2018년 3월 30일
미소국여행 둘째 날
어제 인천공항을 출발해
약 10시간 후 핀란드 헬싱키에서 환승한 뒤,
약 3시간 정도 더 비행하여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했다.
어제 07시가 공항 미팅 시간이라 그 전 날
부산에서 심야우등버스를 타고 인천에 왔던지라
몸이 천근만근 엄청 피곤했었다.
이 피곤함을 노보텔 취리히 에어포트 호텔에서
하룻 밤 묵으며 여독을 풀었다.
이제 오늘부터 이번 여행의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되었다.
이번 여행 루트
스위스 지도
호텔에서 조식 후
취리히에서 둘러 볼
프라우뮌스터, 그로스뮌스터
니더도르프 거리를 향했다.
날씨가
비가 오다 그친 후 안개가
도시를 덮고 있다.
취리히
취리히호의 북안에서 흘러나오는
리마트강과 그 지류인 질강 연안에 위치한다.
스위스 제일의 도시이며,
도로와 철도의 결절점에 해당하여
각 방면으로 직통열차가 발착한다.
또 도심에서 11km 북쪽에 있는 클로텐 비행장은
스위스 최대의 공항으로 세계 각지와 이어져 있다.
중세의 취리히는 북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요지에 있었기 때문에
상업의 중심지로서,
또한 견직물의 대표적 생산지로서
번영하였으며(16세기),
길드 세력이 도시의 실권을 쥐고 있었다.
취리히
17세기에는 면공업과 염색업도 성하여
공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취리히호를 이용하여 호반의 여러 도시에
직물공업을 전파, 보급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의 섬유공업에도
계승되고 있으며,
19세기 후반부터는 라인강의 수력발전을
이용한 중화학공업이 크게 발전하여
세계적인 기계공업 공장이 입지해 있다.
그 밖에 전자기계와 양조공업도 활발하다.
경제적, 정치적 안정 때문에 신용이 높아
국내 은행 이외에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이
지점을 설치해 놓고 있으며,
세계금융주식의 중심지로서
유럽 최대의 외환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취리히는
1351년에 스위스 연방에 가입하였고,
1519년부터는 츠빙글리에 의한
종교개혁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리마트강 연안에 있는 구시가에는
스위스 최대의 로마네스크 건축인
그로스뮌스터(대성당)와
스위스 최고(最古)의 장크트페터성당
(유럽 최대의 시계탑이 있음) 등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취리히
그 밖에 옛 취리히의 모습을 전하는 것으로는
17세기의 시청사와 리마트 강변의 길드관 등이 있다.
현재의 취리히 중심지는 역앞에서
호안에 이르는 지역인 반호프슈트레세이며,
상점과 은행이 늘어서 있다.
또 시내에는 스위스의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문화재 컬렉션으로 유명한 국립박물관,
스위스의 대표적 화가인 호들러의 작품 이외에
세잔, 르누아르, 마티스, 위트릴로, 피카소 등의
걸작을 모은 미술관 등이 있다.
취리히
대학으로는 1855년 연방차원에서
설립한 취리히공과대학과
1914년 창설된 종합대학 등이 있다.
특히 취리히공과대학은
1996년 현재 유전공학연구소,
원자핵연구소, 반도체연구소 등
84개의 산하 연구소가 있으며,
1995년 현재 1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기초과학 분야에 있어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취리히는 또한 G.켈러, J.페스탈로치 등을
비롯하여 많은 작가와 학자를 낳은 곳으로 유명하며,
유럽 굴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관광도시로서도 알려져 있다.
차창으로 보는 취리히시 풍경
차창으로 취리히시 풍경을
보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시 트램
리마트 강
작지만 큰 도시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취리히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고객의 익명성을 보호하기 위한
비밀계좌제도를 운영하는
스위스 중앙은행도 취리히에 있을 정도로,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취리히를 설명하는 말은
바로 첨탑의 도시로
그만큼 취리히 내에는 성당과 교회가 많다.
프라우뮌스터 교회(취리히 성모성당)와
한스 발트만 기마상
프라우뮌스터 교회
리마트 강 서안,
뮌스터 다리 옆에 세워진 성모 성당은
예리하게 뻗은 청록색 첨탑이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9세기에 수녀원으로 지어진 오래된 성당이다.
리마트 강을 끼고 그로스뮌스터와 마주하고 있다.
성당 건물은 12~15세기에 걸쳐
고딕 양식으로 탈바꿈하였고
18세기에 시계탑이 완성되었다.
프라우뮌스터 교회 (취리히 성모성당)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이나
지금은 신교의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프라우뮌스터 교회 (취리히 성모성당)
9세기 853년에 동프랑크(독일)의 루드비히 2세가
딸 힐데가르트를 위해 수녀원으로 지었다.
이후 남독일 귀족 가문의 여성들이 원장이 되어
이 곳에서 살면서 넓은 영지를 소유하고
면세 등 갖가지 특권을 누렸고,
그 부력으로 사원을 짓고 예술가를 비호하여
취리히의 문화적 번영에 크게 기여하였다.
소박한 수도원 건물의 내부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가대 석과
높은 아치형의 복도가 매우 아름답고,
파이프가 5793개나 되는 취리히주에서 가장 큰 오르간,
아름다운 스테테인드글라스가 있다.
성가대석 근처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은
마크 샤갈(Marc Chagall)의 작품이며,
안뜰을 둘러싼 복도에는
수도원 설립 과정을 그린
파울 보드머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프라우뮌스터 교회 (취리히 성모성당)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가대와
높은 아치를 이루는 천장은
교회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특히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는 성당의 명물로,
북쪽 긴 창의 스테인드글라스는
1945년에 제작한 자코메티의 작품 천상의 낙원이며,
남쪽의 장미창과 성가대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샤갈이
1960년대 후반부터 제작한 작품이다.
프라우뮌스터 교회 (취리히 성모성당)
내부 사진은
두산백과에서 가져왔다.
마크 샤갈의 스테인드 글라스
(인터넷에서 퍼 옴)
성서에 나오는 5가지 이야기를 보여준다.
샤갈은 '예언자 엘리야의 승천',
'야곱의 싸움과 천국의 꿈',
'예수의 생애',
'세상이 끝나는 날 트럼펫을 부는 천사',
'백성의 고통을 내려다보는 모세의 모습'을
차례대로 유리에 묘사해 냈다.
프라우뮌스터 교회 (취리히 성모성당)
파라데광장
프라우뮌스터 교회
옆의 광장
뮌스터 다리를 건너기 전
왼쪽으로 강변을 따라
자유시간에 걸어 갔다 나왔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3층 건물이
취리히 시청이라고 한다.
리마트 강
한스 발트만 기마상
한스 발트만은 스위스 연방의 장군이자
취리히 시장을 역임,
취리히에 경제 발전을 가져온 인물이다.
그로스뮌스터 교회가 보인다.
한스 발트만 기마상
종교개혁이 일어난 그로스뮌스터 교회
뮌스터 다리
그로스뮌스터(대성당)
그로스뮌스터 교회는
츠빙글리가 종교개혁에 불을 지핀 곳이다.
이 성당과 연결된 신학대학은
노벨수상자를 21명이나 배출한 취리히대학의
초기 원형이었다.
뮌스터 다리를 건너고 있다.
취리히호에서 시작되는 리마트강이
취리히시를 가로질러 흐른다.
성 피터(베드로)교회 시계탑
취리히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시계 바늘의 길이만 해도 3m가 넘는
유럽에서 가장 큰 10m 크기의 시계를 볼 수 있다.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거대한 탑이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주황색 대리석 기둥과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회의장이 눈에 띈다.
개장시간: 월~금요일 08:00~18:00,
토요일 09:00~16:00, 일요일 12:00~17:00
뮌스터 다리를 건너며
멀리 또 다른 다리를 본다.
성 피터교회의 시계탑
8세기 건축되었고
13세기와 1705년 개축되었다.
종탑은 취리히 시내 어디서던
잘 보인다.
그로스뮌스터 대성당에서 본
뮌스터 다리와 프라우뮌스터 교회
그로스뮌스터 대성당
그로스뮌스터 대성당
스위스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로마네스크성당으로
종교 개혁가 츠빙글리가 시무하여
종교개혁의 어머니 교회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다.
그로스뮌스터 대성당
구시가의 한 모퉁이에 우뚝 솟아 있는
스위스 최대의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다.
지금의 건물은 11~13세기에 세워진 것인데,
이 자리는 본래 취리히에서 순교한
세 수호성인의 무덤터였고,
일찍이 카를 대제(742~814)가 세운 참사회로 지어졌다가,
중세에는 콘스탄티누스 주교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츠빙글리가
목사로 있으면서 개혁을 주도했던 교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취리히의 상징이 된 후기 고딕 양식의
쌍둥이 탑 중 남쪽에 있는 탑 아래에는
큰 칼을 가지고 있는 카를 대제의 상이 있다.
184개로 이뤄진 계단을 올라가 첨탑 정상에 이르면,
취리히 시내의 전경과
호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로스뮌스터 대성당 북쪽 문의 청동 장식
유명한 조각가 오토 뭉크의 브론즈 작품으로
청동 문의 조각은 성경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로스뮌스터 대성당의 첨탑은
돔으로 장식된 높이 60m의
쌍둥이 고딕식 탑으로
취리히의 가장 상징적인 랜드마크이다.
니더도르프 거리
그로스뮌스터 대성당 뒷쪽으로
취리히 구시가지인
니더도르프 거리가 있다.
골목길
구시가지 니더도르프 거리
구시가지 니더도르프 거리는
관광객들과 현지 젊은이들,
쇼핑객들이 주로 많이 찾는다.
자유시간을 가진 후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약속 장소로 이동 중이다.
츠빙글리 동상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취리히 대성당의 설교자
훌드리히 츠빙글리(1484-1531)
비르트하우스에서 출생하였으며,
바젤, 빈, 베른 등에서 인문주의적 교육을 받았다.
처음에는 취리히 대성당의 사제가 되어 설교자로서
일하며 체계적인 성경강해로 명성을 날리었다.
그 후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고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연구하면서,
점점 가톨릭 교회와 결별하기 시작했다.
성찬론으로 인해 1529년 루터와
신학적으로 일치하지 않아 대립하여
마르부르크 회담이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프로테스탄트 세력의 단결에 실패하였다.
그의 개혁운동은 스위스 각주로 확대되었지만,
후에 1531년 가톨릭군과의 전투에서
종군목사로 활약하다가 카펠에서 전사하였다.
그의 개혁운동은 그 인문주의적 경향과
스위스적 사정에서 정치와 밀착한 형태로 추진되었는데
그것은 칼뱅의 개혁 속에 이어진다.
역으로 개혁의 정치적인 측면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자각적인 성인세례에 의한 교회형성을 목표로 한
재세례파도 츠빙글리의 개혁에서 파생하여
종교개혁 운동의 독자적인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츠빙글리 동상과 바세르 교회
취리히 트램
취리히 리마트 강
이제 스위스에서
리히텐슈타인 파두츠를 향해
출발했다.
리히텐슈타인 투어가 끝나면
나중에 다시 스위스 벨린초나로
넘어 올 예정이다.
[참고 발췌: 두산백과, 저스트 고, 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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