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텐슈타인
정식명칭은 리히텐슈타인공국
(Principality of Liechtenstein)으로
유럽 중부 알프스 산중에 위치하는 영세중립국이다.
바티칸시국, 산마리노, 모나코공국 등과 함께
유럽의 소국에 속한다.
유럽 지도
리히텐슈타인 지도
리히텐슈타인은
동쪽과 북쪽은 오스트리아와,
북쪽, 서쪽, 남쪽은 스위스와 접해 있다.
리히텐슈타인 전국 지도
면적은 160㎞²이며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의
유럽 중부에 위치해 있다.
라인강 최상류 계곡의 오른편에 위치한
북부 저지와 남부의 넓은 대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 국토에서 경작이 가능한 땅은 24%,
영구초원은 16%, 산림지대는 35%를 차지한다.
행정구역은 11개 주민자치제(Gemeinde)로
이루어져 있다.
리히텐슈타인 국기
위로부터
파란색과 빨간색 두 가지 색의
가로 줄무늬로 구성되어 있으며,
파란색 줄무늬 왼쪽, 깃대 쪽 상단에
금색 왕관이 그려져 있다.
파랑은 빛나는 하늘을, 빨강은 불을,
금빛은 국민과 국가와 왕실이 정신적으로 단합되는 것을,
왕관은 통치자인 공작의 지위를 나타낸다.
가로세로 비율은 5:3이고,
기를 수직으로 게양할 때는
왕관이 똑바르게 서 있는 기를 사용한다.
1921년 제정하였다.
유럽 중부의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리히텐슈타인은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1921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입헌 세습의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공국의 국가원수는
1990년 즉위한 한스 아담 2세이다.
대공은
왕은 아니지만 공작보다는 높은
독립국가를 이끌어 가는 사람을 말하며,
대공국은 왕국보다는 규모가 작고
왕국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지만
독립국가라는 특징이 있다.
한스 아담 2세 (Hans Adam Ⅱ, 1945.2.14- )
1945년 2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대공 요제프 2세와 백작부인사이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리히텐슈타인의 공식어인 독일어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도 능통하다.
한스 아담 2세는 1967년 7월 사촌인
마리에 대공비와 결혼하여 슬하에
대공세자 알로이스(1968년생), 막시밀리안(1969년생),
콘스탄틴(1972년생), 타티아나(1973년생)의
2남 2녀를 두었다.
1985년 왕위에 오른 후 2003년 3월
국민투표를 통해 의회해산권 및 법안 거부권,
판사 임명시 캐스팅보트 행사권한 등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을 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민투표로 통과시켜 왕권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유럽 각국으로부터 심각한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비난을 받았다.
재위 기간 동안 입법, 사법부와 자주 갈등을 벌이면서
전제군주제로 나아갔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4년 8월 가문의 관습대로 첫째 아들 알로이스 왕세자에게
권력을 이양하여 섭정체제에 들어갔으나,
여전히 공식적인 국가원수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LGT은행그룹을 소유하고 있으며
개인 재산이 20억 파운드가 넘어 유럽의 부호로 손꼽힌다.
마리 대공 부인 (1940년 4월 14일~)
리히텐슈타인 대공 부인 마리는
리히텐슈타인의 대공 한스아담 2세의 배우자이다.
리히텐슈타인 가문 사람으로
보헤미아 모라바 보호령(지금의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결혼하기 전의 이름은
마리 아글라에 킨스키 폰 브히니츠테타우였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8조원이 넘는 재산을 보유해
유럽의 군주들 가운데 가장 부유하다.
국가 예산 전체를 대공 가문이 부담하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납세의 의무를 지지 않으며
1868년 군대가 해산되고 안보를
스위스가 책임지므로 병역의 의무도 없다.
덕분에 대공 가문에 대한 인기는
여전히 굳건히 유지되고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통치권을 지니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1866년 독립한 이후
요한 2세, 프란츠 1세, 프란츠 요제프 2세,
한스 아담 2세가 왕위를 이어왔다.
2004년 8월 전 대공인 한스 아담 2세가
공식적인 대공위를 양위하여
그의 장남인 알로이스가 즉위하였지만
실질적인 지위는 한스 아담 2세가 장악하고 있다.
한스 아담 2세 일가가 살고 있는
파두츠성은 14세기에 지어졌으며
중세시대 때는 요새로 이용되다가
1712년부터 대공 일가가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치의 사령부로 쓰이기도 했다.
리히텐슈타인은
1921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입헌 세습의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의회는 단원제로
임기 4년의 의원 25명으로 이루어지며,
20세 이상 국민의 직접선거와
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
국경선 길이는 76㎞
크기는 남북 25㎞ 동서 6㎞ 정도에
면적이 160㎢에 불과해
우리나라 강화도의 절반 수준이며,
유럽에서 네 번째,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작은 나라이다.
인구수는 2012년 기준 36,713명이다.
수도 파두츠에 5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기후는 온화하며 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연강수량은 914∼1,143㎜이며,
여름 낮 평균 최고기온은 20∼28℃이다.
리히텐슈타인의 주민은
대부분 독일계로서
전체인구의 86%를 차지하며
이탈리아계와 터키계 주민이
주민의 14%를 차지한다.
공식 언어인 공용어는 표준 독일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스위스와 유사한
방언 독일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국교인 로마가톨릭교가 76.2%,
개신교가 7%, 기타가 16.8%이다.
국경일은
성모승천대축일인 8월 15일이다.
교육은 의무교육제이며
교육과정은 초등 8년,
중등 3년으로 이루어지며,
그 밖에 직업학교, 문법학교, 상업고등학교,
음악학교, 기술대학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0세 이상 인구는 모두 문자해독을 할 수 있다.
통화는 스위스 프랑(CHF)을 사용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금융업을 바탕으로 하여
11만 8000달러(2009)를 기록하고 있다.
1978년 유럽평의회에 가맹하고
1991년 스위스와의 관세동맹을 개정해
재차 독자적으로 EFTA(유럽자유무역연합)에 가입하였다.
1994년에는 OSCE(구주안보협력기구),
1995년에는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였다.
재외 공관은 스위스, 오스트리아, 유럽평의회,
벨기에, UN(국제연합)에만 있고
다른 국가에서는 주 스위스 공관에서 겸임한다.
1867년부터 영세중립국으로 있으며,
납세와 병역의 의무가 없고,
왕족 이외에는 빈부의 차가 거의 없으며
실업과 범죄도 없는 평화로운 나라이다.
대한 관계는
1993년 3월 1일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로
대부분의 UN 전문기구와 직속기구,
기타 일반 국제기구에서
긴밀히 협력하여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한국은 수교 이래 주 스위스 대사가
리히텐슈타인 대사를 겸임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1719년에 셸렌베르크공국과 파두츠공국이
리히텐슈타인이 되었고
1806년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떨어져나와
1815년에 독일 연방에 속했다가
1866년에 독립하여 이듬해에 영세 중립국이 되었다.
1990년 UN(국제연합)에 가입한 엄연한 주권 국가이지만
스위스와 조약을 맺어 관세, 통화, 통신 등이 공통되므로
스위스의 한 주와 마찬가지로 취급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국민의 다수가
농, 목축업에 종사하는 가난한 나라였으나,
전후에는 완전히 그 양상을 바꾸어 공업국으로 전환되었으며,
경제가 안정되어 있는 세계 최고의 부국 중의 하나로 꼽힌다.
공장의 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금속, 기계, 정밀기기,
화학, 의약품, 가구, 실내장식품 등의 부문에서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의치가 우수한 것으로 유명하며,
100개국 이상에 수출되고 있다.
국내 시장이 좁기 때문에,
이들 제품의 대부분이 스위스·유럽공동체(EC) 등
유럽을 중심으로 수출된다.
이처럼 전후의 공업화를 지탱한 것은
가까운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등으로부터
유입된 숙련노동자에 의한 것이었으며,
이 나라 총인구의 약 1/3을 차지하는
외국인 거주자의 다수가 이들 노동자이다.
그 밖에 외화획득원으로서는
관광과 우표발행에 의한 수입이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우표는
세계적으로도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어서
판매실적이 좋으며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항상 수도 파두츠의 우체국에 가득하다.
또 국적 취득이 쉽고 법인세 등
각종 세부담이 매우 적기 때문에
외국기업의 명목상 본사·사무소가 많이 설치되어 있다.
이에 따라 2007년 조사된
리히텐슈타인 국내총생산(GDP)의 30%는
금융업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자국의 15개의 은행이 벌어들인 순이익이
269억 유로에 달하며
이 중 대부분이 해외 고객 자산 유치에서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리히텐슈타인 역사
신성로마제국에 속해 있던
셸렌베르크 공국과 파두츠 공국이
1719년에 카를 6세의 명에 의하여 통일되어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형성하였고
신성로마제국의 일부로 남아 있었다.
1806년에는 라인동맹의 일원이 되면서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1815년부터 독일연방에 가맹해 있다가
1852년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과 관세동맹을 체결,
1862년 입헌군주제 헌법을 제정하였다.
1866년에 독립, 1867년에 영세중립국이 되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오스트리아와
관세, 통화동맹을 맺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실질적으로
스위스의 보호하에 들어갔으며,
1919년 오스트리아 및 헝가리와의 관세동맹 해체한 후
스위스와 영사 및 외교적 이익보호협약 체결하였다.
1921년에는 입헌군주제의 신헌법(현행)을 제정하였고,
1924년에는 스위스와 관세동맹을 체결함과 더불어
스위스 프랑을 리히텐슈타인의 공식 화폐로 결정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급격하게 산업화가 이루어졌고
1950년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 가입하였다.
1960년 유럽자유무역협정(EFTA) 가입 의정서 체결,
1972년 스위스-EC 및 스위스-OSCS 협력협정연장 협정 체결,
1978년 구주의회 가입, 1990년 UN(국제연합)에
160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1991년 EFTA 가입, 1995년 EEA 협정 체결 및
WTO 협약을 체결하였다.
[참고 발췌: 두산백과, 리히텐슈타인 개황(외교부),
시사상식사전, 세계의 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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