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리노공화국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에 있는
유럽 최소, 최고의 공화국으로
정식명칭은 산마리노공화국(Republic of San Marino)이다.
바티칸시국, 모나코 다음으로
유럽에서 세번째로 면적이 좁은 나라로
남부 유럽 이탈리아반도 중부의 산악지대에 위치한다.
여러 차례 피정복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독립을 유지해 1815년 빈회의 결과
독립국으로서의 국제적 승인이 이루어졌다.
유럽 지도
산 마리노공화국은
유럽 남부 이탈리아반도의 중북부에 있는 공화국으로
아드리아 해안에 위치한다.
국경이 이탈리아에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으로,
티타노산의 산 중턱 및 산정에 입지한 도시국가이다.
수도는 산 마리노(San Marino)이다.
산마리노 지도
북위 43도 46분, 동경 12도 25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38.6㎞의 국경이 이탈리아에 둘러싸여 있는
61.2㎢(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가지고 있다.
서울의 약 10분의 1 정도의 크기이며,
세계에서는 다섯 번째
유럽에서는 바티칸, 모나코 다음으로 작다.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주,
마르게주 및 몬테펠트로주와 서로 접하고 있다.
산마리노 국내 지도
산마리노의 행정구역은
9개 자치구(castello)로 나뉘어 있으며,
산마리노 전체에는 44개의 마을이 있다.
수도는 산마리노 시이다.
국토는 산이 많으며 바다가 없는 내륙으로,
대체적인 사각형모양의 국토 중앙에
석회암지대인인 티타노산(749m)이 솟아 있다.
남서쪽은 구릉지대이며 북동쪽은 평야지대이다.
영역의 가장 긴 폭은 13킬로미터 정도이며
주요 하천은 산마리노를 거쳐 아드리아해로 흐르는 마라노아무사강,
이탈리아 중부 주요 하천인 마레키아강으로
연결되는 산마리노강이 나라를 가로지르고 있다.
전 국토가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주, 마르케주에 둘러싸여 있다.
산마리노 국기
현재 국기는 1797년에 제정하였다.
하얀과 하늘색의 2개 띠로 구성되었고
공화국임에도 불구하고 왕관이 포함된 국장이 들어 있다.
하얀은 순수함을 나타내고,
하늘색은 달마치아 지방의 석공이었던
성 마리누스(마리노)가 종교적 박해를 받다가
4세기경에 이곳으로 피신해왔다는 건국신화에서 유래하는데,
그가 동료들과 함께 숨었던 티타노산을 덮은 하늘과
아드리아해를 나타낸다.
산마리노의 국장은 산마리노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국장의 원형은 14세기로 추정된다.
1862년 4월 6일에 제정되었으며
현재의 국장 디자인은 2011년에 수정된 디자인이다.
국장 가운데에는 티타노 산에 위치한 3개의 봉우리에 서 있는
세 개의 하얀색 탑(산마리노의 세 개의 탑)이
그려져 있는 파란색 방패가 그려져 있으며
방패 위에는 왕관이 올려져 있다.
방패 왼쪽에는 참나무 가지가 장식되어 있고
방패 오른쪽에는 월계수 가지가 장식되어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왕관은 주권을 방패를 감싸고 있는
참나무 가지와 월계수 가지는
공화국의 안정과 자유를 지켜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장의 아래쪽에 있는 리본에는 산마리노의 나라 표어인
"자유"("LIBERTAS")가 라틴어로 쓰여 있다.
국장은 티타노산 세 봉우리에 서 있는 흰색 탑,
'자유'라고 표시된 리본,
월계수와 떡갈나무의 가지와 왕관으로 되어 있다.
산마리노의 정치는 공화제로
1600년에 제정된 법을 기초로 한 산마리노 헌법을 기초로,
고대 로마 공화국의 전통을 이은 집정관(총리)이 이끄는
회의제 정부를 구성한다.
국가원수는 집정관 2인이 맡고 있으며 6개월마다 교체된다.
1243년에 처음 선출된 집정관은
고대 로마공화정 시대의 집정관 제도에서 유래하여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는데,
현대에서 유일하게 집정관이 국가원수로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산마리노의 정체는 공화제의 의원내각제이며,
1600년 10월 8일 제정된 헌법 전통에 따라
임기 5년의 60명으로 구성되는 대평의회가 국회에,
대평의회가 임명하는 11명의 국가회의와
2명의 집정관이 행정기관에 해당된다.
집정관(총리)은 6개월마다 대평의회 의원 중에서
2명을 뽑아 매년 4월 1일과 10월 1일에 취임한다.
주요 정당은 기독교민주당(PDCS),
사회주의자당(PSS), 전진민주당(PDP) 등이다.
산마리노의 집정관 제도는
고대 로마 공화정 시대의 집정관에서 유래한 것으로
1243년 최초로 2명의 집정관이 대평의회에서 선출된 이후
현재까지 이 제도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산마리노는 현대에도 집정관이 통치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산마리노는 외교권만 있고 관세권은 없다.
이탈리아와 긴밀한 협조 아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992년 3월 UN에 정식회원국으로 가입하였고,
외교관계는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유럽의 주요국 및 미국 등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국방을 맡아주므로 군대는 없지만
2006년 자발적으로 조직된 군대가
국가 의전과 제한된 임무를 맡게 되었다.
산마리노의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이며 따뜻하고 햇볕이 좋아
좋은 와인과 치즈의 산지이다.
연평균기온은 16℃이고,
봄의 기온은 12℃에서 24℃ 사이이고,
여름의 온도는 20℃에서 30℃,
겨울의 최저기온은 -6℃이다
강수량은 겨울이 여름보다 많고
연평균 강수량은 약 560~813㎜이다.
전제 국토면적은 61㎢이며
이 중에서 경작 가능지는 16.67%,
삼림 및 기타 83.33%이다.
산마리노에 거주하는
외국인(주로 이탈리아인, 1천명)을 포함하면
33,020명의 인구이다.(2015년)
산마리노인 5천명이 외국에서 살고 있는데,
주로 이탈리아에 거주하고 있다.
평균수명은 81.88(2008년)이다.
산마리노의 주민은
전체 인구의 약 95%가
이탈리아계의 산마리노인과 이탈리아인이다.
산마리노의 종교는
국민의 97%가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이나,
산마리노 정부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
언어는 이탈리아어가 공용어이며,
에밀리아-로마냐 방언이 널리 쓰인다.
산마리노의 교육은
13세까지 8년 간은 의무교육이 무상으로 이루어지며,
그 이상의 고등교육에 대해서는 국가가 보조금을 지원한다.
학제는 초등교육 5년, 중등교육 8년(3/5년),
대학교로 이루어진다.
의료혜택도 전체 주민에게 무상으로 지원된다.
국내총생산은 2016년 현재 16억 달러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9991달러이다.
관광산업이 주민의 주요 소득원으로
국가세입의 60%를 차지한다.
산마리노의 주요 산업은
수도인 산 마리노 북쪽에 세라발레를 중심으로
약간의 산업권이 형성되어 있고,
밀,귀리 등의 농산물을 경작하는 외에
중세의 고성 등 관광지가 잘 발달해 있어,
관광수입이 국가 전체의 60%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에는 3백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였다.
농목업 이외에 은행, 방직업, 건재업, 포도주,
피혁 제조업, 의류와 도자기 공업이 발달하였다.
산마리노는
국방은 이탈리아에 맡기고 있어
정규 상비군을 가지지 않은 대신,
필요시에 교사와 학생을 제외한
16세부터 55세까지의 국민을
민병대로 동원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산마리노 자체적으로는
의회호위대, 요새기병대 등의 군사적 조직이 있다.
산마리노는
대외적으로 중립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이탈리아 영토 내의 소국이기 때문에
1862년 당시 왕국이었던 이탈리아와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여
이탈리아 국토 내에서 독립된 공화국을 유지하기로 한 이래,
현재까지 몇 차례에 걸친 수정은 있었으나
계속 조약을 갱신하여 왔다.
또한, 산마리노는 미국,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과 범인인도협정을 체결하였고,
영국 등과 총영사를 교환하고 있다.
EU와는 관세협정(1991년)을 체결하였고,
1992년 UN가입으로 다변적인 외교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그밖에 유네스코, 국제노동기구(ILO),
만국우편연합(IPU) 등과 같은
국제기구에도 가입하였다.
산마리노는
2002년부터 산마리노 리라 대신
유로화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유럽 연합 회원국은 아니다.
산마리노의 교통은
이탈리아와 연결된 철도는 없으나,
이탈리아 아드리아 연안도시
리미니에서 버스로 갈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 안도라, 모나코, 바티칸 시국과
같이 공항이 없고,
가장 가까운 공항은 16km 떨어진 리미니 공항이다.
산마리노는 남북한 모두 수교국으로
우리나라는 2000년 9월 25일 정식 수교하였으며,
업무는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북한과는 2004년 5월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주 이탈리아 북한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산마리노의 역사
산마리노의 국가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전설에 따르면 유고 지역의 달마치아 지방 석공이었던
성 마리누스(마리노)가 종교적 박해를 받던 중
A.D. 301년인 4세기 경 로마 황제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서 신앙 공동체를 만들었고,
그것이 나중에 발전하여 현재의 산마리노가 되었다고 한다.
산마리노에서는 매해 9월 3일을 공화국 설립 기념일로 경축하고 있다.
기록 상으로는 산마리노성에 관한 A.D.755년의 글이 있으며,
885년에는 국가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1263년에는 최초의 공화정체가 수립되었지만,
그후 인접 지역으로부터의 잦은 침입때문에
몬테펠트로가와 로마 교황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1503년 이탈리아의 전제군주 체자레 보르지아에 의해
한때 정복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충지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호 균형의 차원에서 대체로 독립이 유지될 수 있었으며,
1631년에 교황의 인준을 받아 공식적으로 독립 국가의 모습을 갖추었다.
나폴레옹1세 역시 독립을 승인하였으며,
1815년의 빈회의에서도 독립국으로서의 국제적 승인을 받았다.
1862년에는 이탈리아와 관세동맹을 성립하고,
1897년에 우호조약을 맺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인 1915년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포고를 했으나,
산마리노는 중립을 지켰다.
1923년 이탈리아에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서자
산마리노도 그 영향권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1922년 결성된 산마리노 파시스트당(PFS)은
1923년 4월에 첫 집정관(줄리아노 고치)을 내었고,
1926년부터 1943년까지 산마리노 파시스트당이
유일 합법정당이 되어 다른 정당의 활동은 일절 금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산마리노는 중립을 지켰다.
1943년 베니토 무솔리니가 실각하자
잠시 비파시스트 정부가 들어섰으나,
독일군이 점령해 오자 산마리노 파시스트당은
1944년 1월 산마리노 공화국 파쇼라는 이름으로
부활하여 정권을 잡아,
같은 해 11월의 연합군 점령 때까지 계속되었다.
산마리노는 1992년에 유엔에 가입하였다.
산마리노 유네스코 세계유산 총1건
[글 발췌: 산마리노 개황(외교부), 두산백과,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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