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모나코 개황

푸른 바다. 2019. 3. 25. 19:11

모나코 공국




입헌 군주국으로 독립국이면서도

프랑스의 보호하에 있는 국가인

모나코는 유럽에 있는 작은 공국으로

공식 명칭은 모나코 공국이다.





유럽 지도

바티칸시국(면적 0.44㎢)에 이어

국토면적이 1.96 km²인 세계 제2의 소국이다.





모나코 지도


 지중해 연안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접경지역에 위치하며,

남쪽으로 지중해에 면한 해안을 따라 길이 3㎞,

너비 500m의 땅을 국토로 한다.

수도는 모나코이다.





모나코 행정지도


이탈리아와 국경을 접하는

프랑스 알프마리팀 데파르트망

(Alpes-Maritimes Department)으로

3면이 둘러싸여 있다.

프랑스의 니스 시에서 동쪽으로

14㎞ 떨어진 곳에 있으며

언어와 통화가 프랑스와 동일한

모나코는 4개의 주요 지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나코빌(Monaco-Ville)은 지중해까지 뻗어 있는

돌이 많은 곶에 위치하는 오래된 도시이며,

라콘다민(La Condamine)은 항구를 따라 위치한 지역이며,

몬테카를로(Monte-Carlo)는

주된 거주지역이자 휴양지로 유명한 지역이고,

폰트빌레(Fontvielle)는 바다를 매립하여

건설된 새로운 지역이다.





모나코 국기

빨강과 하양은 10세기에 이 지역에 들어온

제노바의 명문 그리말디왕가의 전통적인 빛깔이다.

두 색의 사용은 1339년까지 거슬러올라가나,

시대에 따라 디자인은 변화를 겪어왔다.

17세기에는 빨강과 하양의 마름모문장가 사용되었다.

가로세로 비율은 5:4 또는 3:2이다.

1881년 4월 4일 제정하였다.

인도네시아 국기와는 비율만 빼고 동일하여,

인도네시아에서 이 나라의 국기 변경을

요구한 적도 있다고 한다.





모나코의 국장


모나코의 국장은 모나코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현재의 국장은 알베르 2세의 문장이다.

왕관이 올려진 빨간색 망토 가운데에는

빨간색과 하얀색 두 가지 색의

마름모가 그려진 방패가 그려져 있으며,

방패 둘레에는 성 찰스 훈장이 장식되어 있다.

방패 양쪽에는 한 손에 칼을 휘두르고 있는

두 명의 수도사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1297년 프랑수아 그리말디가 모나코를 정복할 때

수도사 차림의 병사들이 칼을 성직복 아래에 숨겨둔 채로

진격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방패 아래에는 모나코의 나라 표어이며

그리말디 왕조의 표어인

"함께 하느님의 도움을"("Deo Juvante")이라는

문구가 라틴어로 쓰여져 있다.





전 국왕 레니에 3세 (1923.5.31 - 2005.4.6 )


현 알베르 대공의 아버지

본명은 레니에 루이 앙리 막상스 베르트랑 드 가리말디이다.

프랑스 귀족 폴리냐크 백작 피에르 공과

모나코 국왕 루이 2세의 무남독녀로

왕위 계승권을 가진 샤를로트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영국·스위스 등지에서 공부하였고,

프랑스 몽펠리에대학교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1941년에는 프랑스군에 포병장교로 자원입대하여

알자스주 탈환 작전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어머니가 왕위 계승권을 포기함에 따라

1949년 5월 5일 루이 2세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1956년 미국의 인기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와 결혼하여 세계적으로 화제를 뿌렸다.

2005년 4월 6일 사망하기까지

57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새 헌법을 공포하고

국민의회와 시회를 재건하는 등 정치 개혁에 힘썼으며,

모나코의 경제를 관광,금융,도박 산업 중심으로 크게 발전시켰다.

1974년에는 국제서커스대회를 창설하였고,

993년에는 국제연합의 183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등

모나코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후 아들 알베르 2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레이스 패트리샤 켈리 (1929.11.2 - 1982.9.14 )


미국배우이며 모나코의 대공 레니에 3세의 대공비이다.

1929년 11월 1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명문가에서 출생하였다.

1950년, 20세의 나이로 연기를 처음 시작한 후

그녀는 뉴욕에서 연극과 생방송드라마에 출연하였다.

1953년 10월, 모감보로 영화계에 데뷔한 이후

그녀는 1954년,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갈채

비롯해 5개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였으며,

골든 글로브상을 탔다.

26살에 은퇴하고 모나코로 가게 된 그녀는

모나코 공녀 카롤린알베르 대공,

그리고 스테파니 공주를 낳았다.

또한 그녀는 미국 시민권과 모나코 시민권을 둘 다 유지했다.

1982년 9월 13일 둘째딸 스테파니 공녀를

조수석에 태우고 차를 운전하여

모나코에서 프랑스로 가던 중에 갑작스런 발작을 일으켰다.

결국, 자신이 운전하던 차가 37m 아래

산비탈로 굴러떨어지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다음날 9월 14일 모나코 라 콜레의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스테파니 공녀는 살아남았지만,

경추 골절 및 뇌진탕 증세로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1999년 6월 미국 영화 연구소가 선정한

미국영화의 전설적인 50명의 배우 중

한사람으로 선정되었다.

참고로 그녀와 모나코대공국에 대한

국내 관련 책으로는

'그레이스 켈리와 유럽 모나코 왕국 이야기가 있다.





그레이스 켈리의 12캐럿 다이아몬드 약혼반지


1954년 잡지에 실릴 사진을 찍으러 모나코에 갔다가

레니에 3세를 만나게 되고

레니에 3세는 그레이스 켈리에게 청혼 선물로

1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게 되고,

이 반지를 끼고 그녀의 작품 ‘상류사회’에 출연했다

 그 뒤1956년 4월 레니에 3세는 결혼을 하게 된다.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의 결혼 사진


그리말디 가문은

이탈리아 제노바 공화국에 기원을 두고

13세기 말 이래로 모나코를 통치해 왔으며,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군주 가문 중 하나이다.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의

1956년 4월 결혼식 사진















레니에 3세, 그레이스 켈리,

알베르 2세, 하노버 왕자비 카롤린,

폴리냑 여백작 스테파니


결혼과 함께 은퇴한 그레이스 켈리는

1957년 1월에 공주 캐롤라인을,

1958년 알베르 대공을,

그리고 1965년스테파니 공주를 낳음으로

프랑스와 합병되는 위기를 무사히 넘기게 된다.

아울러 모나코의 관광객을

결혼 이전의 몇 배로 끌어 올렸다.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











현 모나코 대공 알베르 2세 (1958.3.14 - 현재 )


모나코 왕궁에서 레니에 3세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출신으로 대공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76년 알베르 1세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1년 동안 왕세자로서의 다양한 직무를 익혔다.

197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있는 앰허스트 칼리지에

입학하여 정치학, 경제학, 음악, 영문학을 공부하였고

1981년 정치학 분야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학창시절 각종 운동 종목에서 탁월한 실력을 갖춘 선수였고

1988년부터 다섯 차례 동계올림픽에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였다.

또한 유명한 파리-다카르 자동차경주대회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1985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2005년 3월 모나코 왕궁은

당시 대공 레니에 3세의 병이 악화되자

왕세자 알베르를 섭정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하였고,

4월 레니에 3세가 사망하자  알베르 2세 대공의 자리에 올랐다.

그해 7월 대성당 미사에서 열린 즉위식 연설에서

모나코의 불법 자금 세탁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50세가 넘도록 독신을 고집하다가

2011년 7월 1~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대표

수영선수였던 샤를린 위트스톡과 결혼했다.





샤를린 리넷 위트스톡 (1978.1.25 - 현재 )


모나코 공작 부인 샤를린

모나코의 군주인 알베르 2세의 대공비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영(배영) 선수이다.

결혼 전 이름은 샤를린 리넷 위트스톡이고,

결혼한 후의 이름은 샤를린 그리말디로 바뀌었다.

호칭은 모나코 공작 부인이다.

종교는 프로테스탄트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현재의 짐바브웨로디지아불라와요에서

영국계 짐바브웨인 가정에서 태어나,

12살 때 가족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하우텡 주로 이주했다.

2000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시드니에서

개최된 200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여자 400m 릴레이로 5위를 하였다.

2011년에는 2006년부터 교제하고 있던

모나코의 알베르 2세와 결혼하였다.

2014년에는 이란성 쌍둥이인

가브리엘라와 자크를 낳았다.





알베르 2세와 샤를린 위트스톡의 결혼식


2011년 세계에서 부유한 군주들 중 9위를 차지한

모나코 왕가의 알베르 2세는

2011년 7월 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수영선수

샤를린 위트스톡(1978년 출생)과 결혼하였다.





2014년 그리말디 대공가의 모습.

왼쪽부터 현재 모나코 대공인 알베르 2세,

누나인 카롤린,

카롤린의 아들인 안드레아 카시라기 부부


알베르 2세는

결혼 전에 여러 모델과 염문을 뿌리면서

미혼으로 살아 왔고,

토고 승무원 출신의 니콜 코스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알렉상드르와

미국인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자스민 그레이스 그리말디가 있다.

이 자녀들은 혼외정사로 태어난 사생아로서

모나코 법에 따라 계승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 동안 알베르 2세에게 끝까지 적자녀가 생기지 않아,

누나 하노버 왕자비 캐롤라인가계로

공위가 넘어가게 될뻔 했지만

알베르 2세와 샤를린 대공비 사이에서

2014년 이란성 쌍둥이가 태어났고

쌍둥이중 둘째인 자크가 아들인 관계로

자크가 공세자가 되었다.





알베르 2세와 샤를린 위트스톡





알베르 2세와 샤를린 위트스톡의 자녀


2014년 샤를린 대공비는 이란성 쌍둥이

가브리엘라 그레이스 그리말디와
자크 스테파니 그리말디 남매를 출산하였다.





쌍둥이중 둘째인 자크가 아들인 관계로

자크가 공세자가 되었다





그리말디왕가의 알베르 1세가

1918년에 프랑스와 맺은 파리 조약은

프랑스에 의한 모나코 공국의 보호를 보장했지만

이 조약에는 공위 계승자가 없을 경우

모나코 공위가 샤를 3세의 사위 가문인

독일의 뷔르템베르크 가문으로 이전될 것을 염려하여

 공위 계승자가 없을 경우

모나코가 프랑스에 병합된다는 조약을 포함하고 있다.






모나코의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로

1949년 즉위한 레니에 3세가 38년간 통치한 이후

알베르 2세가 2005년 4월 이후 국가 수반이 되었다.

국무장관이 총리에 해당하며

프랑스와의 보호조약에 의해 프랑스가 추천,

대공이 임명한다.






의회는 단원제로서

18석은 지역구에서 8석은 비례대표제에

의하여 선출되며  임기는 5년이다.

1962년 12월 17일 도입된 신헌법에 따라

의회의 권한이 강화돼

대공과 의회가 공동으로 입법권을 행사한다.





외교 관계는 프랑스 주재

각국의 외교 사절과 관련을 가지며

프랑스를 통해 신임장을 제정한다.

국방은 프랑스에 책임이 있으며,

경호단이 의례상 궁중 경호책임을 지며

모든 국민은 18세 이상 국방의 의무가 있다.

모나코 국민은 소득세 등

일체의 납세의 의무는 없다,





모나코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부드럽고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로 유명하다.

1, 2월 평균 기온은 8℃이며 7, 8월은 26℃이다.





민족구성은

프랑스인 47%, 모나코인 16%,

이탈리아인 16%, 기타 21%이며,

인구는 3만 535명(2015년 현재)으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종교는 카톨릭이 국교로 90%를 차지한다.






프랑스인이 많아 프랑스어가 공용어이며

영어, 이탈리아어, 모나코어 등도 사용한다.






2013년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6만 4082달러에 이르는 부국이다.

일반세금이 없기 때문에 부자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으며,

인구의 30%가 백만장자이다.

왕실은 몬테카를로에 카지노장을 개설하고

그 수입으로 나라를 운영한다.

소득세가 없으며 영업세도 매우 낮으나

호텔과 금융기관, 산업체에 부가가치세를 적용하고 있다.

국가 주요 세입원은

카지노,관광업, 우표 판매업, 모터스포츠 등이다.





자국민은 물론 프랑스를 제외한

외국기업의 영업활동에 대해

세금을 면제해 주는 정책으로

룩셈부르크, 지브롤터와 함께

유럽 내의 대표적인 조세천국으로 유명하다.






통화는 유로화를 사용하며
산업 구조는 공업이 4.9%,

서비스업이 95.1% (2005)이고 실업률은 0%이다.

주로 소규모, 고부가가치 산업이 주종을 이루며

최근 관광과 도박수입 격감으로

금융도시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상호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하는

통화 및 관세협정을 체결하였고,

수출입은 프랑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클럽인

AS 모나코 FC의 연고지이며

AS 모나코는 프랑스의 축구 최상위 리그인

리그1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모나코 축구 국가대표팀은

국제 축구 연맹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모나코는 포뮬러 원 그랑프리의 수도로

포뮬러 원(F-1) 시즌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모나코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와의 관계는

2007년 6월 14일 조일환 주불대사가

모나코 알버트 대공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모나코 공국과 공식적인 수교를 맺었다.

현재 북한과는 수교를 맺지 않아

대한민국과 단독 수교를 맺고 있으며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이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제24회서울올림픽대회에는

17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바 있다.






모나코에는 도박 산업이 발전하여

화려한 카지노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몬테카를로 카지노가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카지노는 1878~1910년 사이에 건축되었으며,

지역 시민들은 도박 행위가 금지되어 있어

카지노에 입장 할 수 없다.

그러나 국민들은 세금을 면제받고 있다.





1918년 프랑스-모나코 보호조약을 개정한

2002년 프랑스-모나코 우호조약이

2005년 12월 1일 이후 발효되면서,

모나코가 타국과 독립적인 외교관계 수립이

가능해졌다.






모나코는 도시국가이며

유럽과 세계의 주권 국가 중에서

바티칸 시국에 이어 두 번째로 영토가 작은 나라인데

바티칸 시국은 유엔에 가입하지 않았으므로

유엔 회원국 가운데는 모나코가 국토 면적이 가장 작다.

한국으로 치면 한 개 동에 해당하는 규모여서 공항은 없으며

근처 니스에서 기차나 차로 방문한다.





문화유적으로는

근위병들의 절제된 모습을 볼 수 있는 왕궁

왕궁 남쪽에 위치한 나폴레옹의 유품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나폴레옹의 손수건, 양말, 제복, 검, 훈장 등이

진열되어 있다.
이들 이외에 모나코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으로는

몬테카를로 지구의 그랑 카지노, 국제회의장, 국립인형박물관,

국제스포츠클럽, 팔라소테라피, 그랑 카지노의 오페라 극장,

일본정원에서 마르탱 해변으로 이어지는

그레이스 왕비거리 등, 모나코 빌 지구의 대공궁전

 역사박물관, 모나코 밀납박물관, 모나코 역사박물관,

해양학박물관과 수족관 등,

풍비에이유 지구의 레니오 대공 클래식카 컬렉션,

선박박물관, 우표와 동전 박물관 등을 들 수 있다.






모나코의 역사


BC 10세기경 페니키아인이 거주하였으나

로마에 정복되었고

로마 시대에는 무역항으로 번영하였으며

100년경부터는 기독교화되었다.
7세기 이래 모나코는

롬바르디아 왕국·아를 왕국 등의 영토였다가

약 200년에 걸쳐 사라센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0세기에 들어와서 제노바의 명문 그리말디가

프랑스의 원조를 받으면서 진출하여,

1297년부터 그리말디가의 영지가 되었다.

16세기에는 에스파냐의 보호국이 되었고,

1641년 다시 프랑스의 보호하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프랑스 혁명기 및 제1제정 때 프랑스는 모나코를

그리말디가로부터 몰수·합병하였다.

1814∼1815년 빈 회의에서 모나코는

그리말디가에 반환되었으나

다시 사르데냐 왕국의 보호하에 놓이게 되었다.
1848년 2월혁명 후에 모나코의 망통, 로크브륀의

두 도시가 반란을 일으켜 사르데냐 왕국의 속박에서 벗어나

프랑스에 합칠 것을 요구함으로써

모나코는 분열의 위기를 맞게 되었으나,

나폴레옹전쟁 이후 1861년 샤를 3세가

두 도시에 대한 권리를 프랑스에 팔아넘기고,

모나코는 현재의 영토로 축소된 상태에서

사르데냐로부터 이탈하여

프랑스 보호하의 독립국이 되었다.

1919년 베르사이유협정에서

모나코의 독립과 주권을 국제적으로 보장받았으며,

외교권을 프랑스가 행사하는

단원제의 입헌군주국의 형태를 띠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그리말디가의 재정이 악화됨에 따라

독립된 주권국가를 지탱하기 어려운 경제적 난국을 맞게 되었다.
그 해결책으로서 고안된 것이 1863년 개설한 카지노인데,

그것이 성공을 거두어 숙박시설·극장시설 등도 따라서

정비되어 새로운 도시 몬테카를로가 크게 발전하였다.

모나코는 중세 이래 전제정치를 펴왔으나,

1911년 해양학자로도 유명한 알베르 1세가 헌법을 제정하고

국왕을 보좌하는 국회도 성립시켰다.

알베르 1세는 그 밖에도 프랑스와

안전보장협약·관세동맹을 체결하였고,

모나코 국민으로 하여금 일체의 납세의무에서 면제시키

 획기적인 법안을 성립시켰다.
1949년 왕위에 오른 레니에 3세는

상업·공업을 발전시키는 개혁을 추진하여

국가의 정치적·경제적 규모를 확대하였고,

1962년의 헌법개정으로 집정회의와 국민의회가

입법권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1962년 12월 국회의 권한을 강화한 신헌법을 제정하였다.

2005년 4월 레니에 3세가 사망한 뒤

모나코는 현재 알베르 2세 국왕이

2005년 4월 즉위하여 통치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자유진영의 편에 서서

유네스코·세계보건기구,만국우편연합 등

주로 비정치적 국제기구에 가입해 왔으며,

1993년 5월 28일 유엔에 정식 가입하였다.

한편, 그리말디가는 1731년 남계의 대가 끊겨,

왕녀 루이스 이폴리트의 남편이 자크 1세로서 가계를 이었고,

레니에 3세는 1956년 할리우드의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를 왕비로 맞이하였다.








[문헌참고: 두산백과. 위키백과, 세계의 왕가, 저스트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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