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고사 필라르 광장
2018년 4월 5일 목요일
미소국여행 여덟째 날
피레네 산맥 깊숙한 안도라 공국에서
약 4시간을 달려 도착한 사라고사는
스페인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옛 아라곤 왕국의 수도이다.
이슬람 국가였으나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로
기독교 국가가 된 사라고사는
기독교와 이슬람 두 양식이 조합된
아름다운 무데하르 양식을 꽃 피웠다.
한때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았지만
이를 배제하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
아름다운 문화로 꽃 피우는 힘이야말로
스페인의 힘인 것 같다.
이번 미소국 여행에 포함된
북 스페인여행을 무데하르 양식으로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이 곳 사라고사에서 시작했다.
여행 지도
사라고사는 스페인 북동부
아라곤 자치지방의 수도이자
사라고사주의 주도이다.
바르셀로나 서쪽으로 약 296km,
마드리드에서는 325km 지점의 내륙에 있으며,
에브로강 유역의 아라곤 지방 중앙에 위치한다.
산으로 둘러쌓인 강 유역에 자리한
반건조 지역으로 여름(최고 40 °C)에 덥고,
겨울(최저 -15 °C)에 춥다.
인구는 2014년 기준 666,058명으로
아라곤 자치지방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이슬람의 도시였으나
레콩키스타로 카톨릭 성지가 된 곳으로,
두 문화의 역사가 혼재된
무데하르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북 스페인 지도
사라고사는 피레네 산맥 남쪽의
에브로 강 서쪽에 위치한다.
지명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에서 딴
카이사라우구스타가 변하여 된 것이다.
본래 이베리아족의 도시였으나
로마의 군사 식민 도시로 건설되었으며,
11~15세기에 아라곤의 수도였다.
현재 공업의 중심지로
기계, 식료품 등의 공업이 발달했다.
간선 도로와 철도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고딕,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피사의 사탑,
기울어진 종루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 사라고사
이슬람의 예술적 전통이
12세기 레콘키스타(국토회복운동) 이후
아라곤 가톨릭 왕국 내에서 변화, 발전하여
무데하르(Mudejar) 건축 양식을 탄생시켰다.
이슬람 전통의 영향을 받은 이 예술은
당시 유럽의 여러 양식들,
특히 고딕 양식도 반영되어 있다.
17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이 예술은 건축물,
특히 종루에 벽돌과 반짝거리는 타일을
매우 세련되게 창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라 세오 성당, 알하페리아 궁전 등 6개 기념물이
2001년 ‘아라곤의 무데하르 건축’ 제목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사라고사는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필라르 대성당
채색 타일로 장식된
아름다운 필라르 대성당의 돔 지붕들
아라곤의 수도 사라고사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
이들 가톨릭 군주들의 결혼으로
아라곤 연합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이 결합하여
스페인 왕국의 토대를 쌓았다.
아라곤 연합 왕국의 정치적 수도는 사라고사로,
아라곤의 왕은 이 도시의 라 세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아라곤의 경제 중심지는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였다.
팔마데마요르카 또한 중요한 항구도시였다.
필라르 대성당에는
채색 타일로 장식된
11개의 돔 지붕이 있다.
필라르 대성당의 첨탑
스페인에서
가장 긴 910km 에브로강
사라고사 대성당의 건너편에서
하차하여 에브로 강을 걸으며,
높이 솟아 있는 성당의 첨탑에
감탄하며 걸어갔다.
사라고사 역사지구의 중심인
필라르 광장에 위치한 대성당은
사라고사의 랜드마크며
옆으로는 에브로 강(Rio Ebro)이 흐른다.
필라르 대성당
필라르 대성당은
필라르 성모 대성당이라고도 한다.
필라르는 스페인어로
기둥이란 뜻이며, 성모마리아가
야곱에게 신앙의 기초가 되는 기둥을
전했다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필라르 대성당
Basilica de Nuestra Senora del pilar
필라르 대성당은
전설과 기적의 역사를 지닌 성전이다.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스페인어로 산티아고)는 계시를 받고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와 선교활동을 벌였다.
서기 40년 에브로 강가에서,
선교에 지친 야곱에게 성모마리아가 출현하여
신앙의 기초가 되는 돌기둥을 주면서
계속 복음을 전파하라고 당부했다.
야곱은 4년을 더 선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으나
로마군에 의해 참수되어 순교했다.
그 유해는 산티아고콤포스텔라에 안치되고,
그를 기리는 순례자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이 탄생했다.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신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때부터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10~ 12세기에 절정에 이렀다가
현재까지도 모든 순례자들의 로망이 되고 있다.
그 돌기둥은 기적의 증거가 되어
수많은 카톨릭 신도들에게 추앙받고 있다.
이 기둥 위에 세워진 성당이
성모 마리아의 필라르 바실리카이다.
필라르 대성당(필라르 성모 대성당)
성당 규모가 대단해
내 카메라로는
한번에 담아지지가 않는다.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바로크 풍의 성당이다.
필라르 대성당의 채색타일 돔 지붕
필라르 성모성당의
화려한 타일로 장식된 돔 지붕이
아름답다.
필라르 광장
필라르 광장
원구는 2008년 6월
물 엑스포가 열렸을 때 설치된
지구 조형물이다.
입구 문
필라르 성모성당 중앙제단 뒤로 가면
성모가 주었다는 기둥이 나온다.
이곳에 입을 맞추거나 만지고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성당 내부의 모습도 외부처럼
웅장하고 대단하며,
고야의 프레스코화가 돔 천장에
그려져 있다.
고야 천정화 (위키백과 사진)
필라르 성모성당에는
고야가 그린 레지나 마르티룸
(Regina Martyrum, 순교자들의 여왕)을
포함한 프레스코 천장화 2점이 있다.
하나는 원형, 하나는 직사각형의 천장화다.
본전은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성모마리아의 돌기둥은 그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다.
돌기둥 꼭대기에는 32cm크기의 작은 성모상이 서 있다.
돌기둥에는 녹색망토를 치마처럼 둘러 놓았는데
망토는 한 달에 두 번 바꿔 준다고 한다.
성당 내부 사진은
여기까지 찍자 사진촬영 금지라해서
더 이상 찍지 않아 사진이 없다.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곳곳에서는
정부군과 프랑코의 반정부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었다.
사라고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반정부군 폭탄 중 2발이 대성당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불발탄이었다.
카톨릭에서는 이것을 필라르 성당의
기적에 포함시켰다.
당시 폭탄의 모형이 성당 내부
대리석 벽면에 장식되어 있다.
필라르 광장
대성당 라 세오 (Catedral La Seo)
광장 끝쪽에 첨탑이 하나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라 세오(La Seo) 성당이 있다.
아름다운 성당 '라 세오 La Seo,
(Catedral del Salvador de Zaragoza)가 있다.
무슬림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성당이 들어서면서
로마네스크, 고딕, 무데하르,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가 복합적으로 반영된 모습이다.
아름다운 태피스트리(그림을 짜넣은 직물)가
전시되어 있는 '태피스트리 박물관'도 볼거리다.
산 살바도르 대성당, 라 세오
(Catedral de San Salvador, La Seo)
필라르 대성당과 함께
사라고사의 메인 성당인 라 세오성당의
원래 이름은 살바도르 성당
(Catedral del Salvador)으로
12세기 아라곤 왕조가 정복한 이후 세웠다.
2001년 ‘아라곤의 무데하르 건축’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성당(카테드랄·Catedral) 벽면은
아름다운 무데하르 양식으로 장식돼 있다는데
시간상 보지를 못햇다.
왼쪽 깃발이 꽂혀 있는 시청사
시청사와 그 옆 건물 라 론하 (La Lonja)
시청사 옆에 있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 론하(Lonja)는
아라곤 왕국 시절 상인들을 위한
상품거래와 은행으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시립 전시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구글 지도
고야 뮤지엄
스페인을 대표하는
프란시스코 고야 전시관이다.
고야 동상
고야는 사라고사가 고향이며,
그의 생가와 사라고사 뮤지엄
이베르카하 카몬 아즈나르 뮤지엄 등
주요 명소에서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다.
프란시스코 고야 (1746.3-1828.4)
스페인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이자 판화가이다.
고야는 궁정화가이자 기록화가로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18세기 스페인 회화의 대표자로
특히 고전적인 경향에서 떠나 인상파의 시초를 보인
스페인 근세의 천재 화가로 알려져 있다.
파괴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과
대담한 붓터치 등은 후세의 화가들,
특히 에두아르 마네와 파블로 피카소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카를로스 4세의 궁정화가로 활동했지만
왕가와 귀족만이 아닌 부패한 시대상과
비참한 민중의 모습을 과감히 그린 천재 화가였다.
프랑스군 침공 때 왕은 나라를 버리고 떠났지만
민중은 남아 저항하다 처형당하는 모습을 그린
'1808년 5월3일 마드리드'가 대표작이다.
프란시스코 고야 (1746.3-1828.4)
1746년 스페인 아라곤의
푸엔데토도스에서 도금업자의 아들로 출생했다.
사라고사 대성당 화가가 되어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1775년부터 궁정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며,
태피스트리의 밑그림을 그렸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로
산페르난도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고,
카를로스 3세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궁정화가와 수석 궁정화가로 임명되었다
궁정화가가 된 이후에는
주로 왕족과 귀족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이 시기에는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이 유명하다.
1792년 콜레라로 청각을 잃고 침체기에 빠졌다.
콜레라 이후 어두운 색조와 무거운 주제를 담은
그림으로 변모하게 된다.
1799년 오늘날까지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카툰의 시조로도 추정되는 판화집 '카프리초스'를 남겼다.
1808년부터는 프랑스와 스페인 간의
반도 전쟁의 기록화를 그렸다
전쟁의 참상을 여과 없이 기록하였으며,
'1808년 5월 3일', '전쟁의 재난'이 대표적이다.
이외에 대표작으로
'옷을 입은 마야', '옷을 벗은 마야',
'산 안토니오 데 파투아의 기적' 등이 있다.
카를로스 4세의 가족
1800년~1801년
에스파냐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옷 벗은 마하
1800년
에스파냐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옷 입은 마하
1805년
에스파냐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왼쪽 시청사,
중앙 라 세오 대성당,
오른쪽 고야 뮤지엄
원구는 2008년 6월
물 엑스포가 열렸을 때 설치된
지구 조형물이다.
그 뒤에는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는
조형물인데 잘 안보인다.
2008년 6월 물 엑스포가 열렸을 때
설치된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는
조형물이다.
이제 버스를 타고
저녁식사를 하러 간다.
로마인들이 건설했다는
데 피에드라(de Piedra) 다리
사라고사는
스페인에서 5번 째로 큰 도시이다.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가고 있다.
아시아 중국 레스토랑
중국식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포스팅은 다음 편에...
이제는 호텔로 Go
오벨리스크
푯말에 기아가 있어서 ㅋ
사라고사 외곽 HOTEL REAL
리셉션
의자가 독특하다.
객실
전 날에 찍지 못해
자고 일어난 뒤 찍은거라
정리가 영 ㅜ
욕실
[참고 발췌: 두산백과, 위키백과, 세계지명 유래 사전,
미술대사전(인명편), 501 위대한 화가]
[서명 없는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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