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2018년 12월 18일 화요일
이집트 여행 둘째 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피라미드는
이집트를 넘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고대 유적이다.
이집트 기자에 위치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4500년 전인 기원전 2560년 무렵
고대 이집트 왕국 제4왕조 시대에 만들어졌다.
기자 피라미드는 쿠푸왕의 피라미드,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 등 크게 3개로 나눌 수 있다.
사진으로만 봐 왔던 피라미드를 직접 본 소감은
몇 천년 전 기계도 없는 시대에
인간의 힘으로 쌓았다는게 무척 놀라웠고 경이로웠다.
2.5t이나 되는 돌의 크기와 무게를 고려할 때,
설계의 기하학적 정밀성이나 돌을 깎은 정확도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수학적인 사고가 뛰어났음을
또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쿠푸 대피라미드를 외관으로 보고 자유시간 및 포토타임후
두번 째 카프레 피라미드는 내부까지 본 뒤
마지막으로 3개의 피라미드를 모두 볼수있는
피라미드 파노라마 지역으로 이동하여 사진을 찍었다.
낙타 탑승체험 옵션도 이곳에서 한 뒤,
피라미드와는 또 다른 랜드마크인 스핑크스를 보러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점심식사 후 기자로 가고 있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농사를 짓고
나무들도 자라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사막에 속하여
나일강 동쪽을 아크로폴리스(산자들의 도시)라 부르고,
나일강 서쪽은 완전 사막으로 죽음의 땅이라
주로 무덤이나 장제전을 짓는 곳으로
나일강 서쪽 사막지역을 네크로폴리스(사자의 도시)라 불렀다.
이집트에서는 건물이 완공되면
세금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미완성된 집에서 사는 가구들이 많다고 한다.
유적지 테러 방지차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드디어 보이는 피라미드
"기자의 피라미드를 보지 않고는 이집트를 말하지 말라"
흔히 기자 지역의 3대 피라미드를 보고 하는 말이다.
기자(Giza)는 카이로 시내에서 서쪽으로 13km 가량 떨어진
변두리로 사막과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다.
이러한 광대한 지형위에 현재 눈을 놀라게 하는
3개의 피라미드가 우뚝 솟아 있다.
이집트의 기자 지역에 위치한 3개의 피라미드는
이집트에 현존하는 70여 개 피라미드 중
가장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며 또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이 3대 피라미드는 지금으로부터 약 4500년 전인
고대 이집트 왕국 제4왕조인 쿠푸 왕과 카프레 왕,
멘카우레 왕의 무덤으로 이들은 아버지, 아들, 손자 관계이다.
피라미드까지 차가 들어간다.
기자의 피라미드는
나일강 서쪽의 바위고원에 세워진 것으로,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시대라 부르는
제3왕조(BC 2700?)∼제6왕조(BC 2200?)의
고왕국시대 왕묘로서, 크고 작은 9개 피라미드가 있다.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보다도
한층 발전한 방형추체 형태를 갖추었는데,
주위에는 현관들의 마스타바 분묘가 둘러싸고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 146.5m,
기부 한 변의 길이 230m의 대피라미드이며,
이외에 카프레왕, 멘카우레왕 등의 것이 있다.
기자 피라미드 매표소
쿠푸 왕의 피라미드의 북동쪽 모퉁이에 매표소가 있고,
입장권 1매로 3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까지 관람할 수 있다.
기자 피라미드 티켓
160 이집트 파운드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 파라오들의
3개 피라미드와 카프레왕의 스핑크스까지
볼 수 있는 티켓이다.
기자 네크로폴리스 무덤 배치도(위키피디아)
쿠푸왕 피라미드 왼쪽의 서쪽 묘지에 쿠푸왕 피라미드를
설계하고 건축한 쿠푸왕의 재상인 헤몬의 묘가 있다.
동쪽 묘지에는 쿠푸왕 어머니의 묘가 있다.
1925년 쿠푸의 둑길 상단 가까이에서
쿠푸의 어머니 헤테페레스 왕비의 장비를 담고 있는
구덩무덤이 발견되었다.
돌이 들어찬 깊은 구덩의 밑바닥에는 여왕의 빈 돌널이
제4왕조 장인들의 탁월한 예술성과 완벽한 기술을 보여주는
가구와 보석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쿠푸왕 좌상( 재위 BC 2589년-BC 2566년) 이집트박물관 소장
이집트 4왕조 3번째 파라오이다.
기자 대피라미드의 주인 쿠푸왕의
부장품 중 남아있는 것은 높이 7.5Cm인
하이집트 왕관을 쓴 이 상아 조각상이 유일하다.
그는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대피라미드를
남기면서도 자신에 대한 흔적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이 유물은 1903년 아비도스 근처 콤엘술탄에서
플린더스 페트리가 조각상의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했다.
페트리는 조각상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머리를 찿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내 걸었다.
그리고 3주 후, 머리는 더 깊은 층 방의 잔해에서 발견되었다.
쿠푸 대피라미드와 카프레 피라미드
최고로 높고 큰 쿠푸왕의 대피라미드와
2번째로 큰 카프레왕의 피라미드가 보인다.
기자의 3개 대형피라미드 둘레에는 왕들의 친척이나
대신들의 장지로 사용된 '마스타바'로 불리는,
격자모형으로 늘어서 있는
꼭대기가 평평한 장례용 구조물의 분포지가 있다.
제4왕조의 중심적 마스타바를 비롯한 많은 마스타바 중 몇 개는
제3왕조(BC 2650~2575경)의 것이고,
나머지는 제5~6왕조(BC 2465~2150경)의 것이다.
사면의 피라미드 벽면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르키고 있다고 한다.
역광이라...
사진의 색깔은 햇빛 차이로
각각의 방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쿠푸왕의 피라미드(Pyramid of Khufu)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약 13㎞ 떨어진 기자의 사막고원에 있다.
이집트 고왕국 제4왕조의 제2대 파라오인
쿠푸(재위 BC 2589∼ BC 2566)가 자신의 무덤으로 세웠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드 가운데 하나이며,
이집트 전 지역에 현존하는 70여 개의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커서 대(大) 피라미드라고도 불린다.
엄청난 규모와 복잡한 내부로 인해 세계 최대의 건축물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도 유일하게
원형이 잘 보존된 유물이다.
쿠푸 대피라미드
기자의 피라미드 중 메인으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원래는 높이 147m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꼭대기 부분이 10m 가량 파손되어 현재 높이는 137m이다.
밑변은 230m에 이르고, 건축 당시 들어간 돌의 전체 무게는 약 5900만 톤,
평균 무게 2.5t의 석회암과 화강암 230만 개를 정교하게 쌓아올려 만들었다.
돌을 쌓은 단층의 수효는 원래 210단인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203개이다.
건축 당시에는 외장용 화강암으로 표면을 매끄럽게 마무리하여
돌을 쌓아 올린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풍화되고 도굴로 인하여 파헤쳐져
표면이 벗겨지면서 울퉁불퉁한 돌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10만 명의 인원이 약 20년에 걸쳐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며,
건축 방법에 대한 의문점은 아직도 해명되지 않아
더욱 신비감을 준다.
쿠푸 피라미드 입구와 도굴 구멍
내부 관람을 하려면,
9세기 알 마문이 뚫은 북쪽 도굴 구멍으로 들어간다.
도굴꾼이 팠던 구멍이 이제는 내부 관람을 위한 입구가 되었다.
이 입구의 위쪽으로 약 10m되는 곳에 있는
윗쪽 구멍은 신전이 있던 자리로,
원래의 입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폐쇄되어 있다.
아래에 사람들이 드나드는 구멍이 도굴하느라 뚫린 구멍인데
지금은 그곳을 통하여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를 들어가면 곧 오른쪽으로 꺽여서
높이 약 1.2m의 좁고 가파른 통로를 오르게 되고,
다시 높이 약 8.5m의 큰 회랑을 거쳐 왕의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피라미드의 석축을 오르고,
좁고 가파른 통로를 올라가야 하므로
여성도 바지를 입는 것이 좋다.
쿠푸 대피라미드 내부 구조도
대피라미드에는 두 개의 입구가 있으며,
피라미드의 내부는 긴 터널을 지나
대회랑과 왕의 방, 왕비의 방, 내려가는 통로,
올라가는 통로, 수평 통로, 환기통 등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다.
왕의 방과 왕비의 방, 이 방들은 애초부터 텅 비어 있었다는 설이 있다.
고고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곳은 도굴꾼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가짜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공간의 명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며, 왕비의 방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오늘날 내부를 관람하기 위하여 들어가는 입구로 사용되는 곳은
9세기에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마문 왕이
도굴을 위하여 파헤친 곳이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기자의 3개 피라미드는 내부와 외부가
모두 고대에 이미 도굴당해 시체 안치실에 있던
부장품들도 대부분이 사라졌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내부에서는
미라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피라미드는 묘가 아니라 왕이 사후세계를 위해
세운 기념 건축물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다.
유일하게 왕의 미라가 발견된 곳은
사카라 피라미드 하나뿐이라고 한다.
쿠푸 대피라미드
아직 제자리에 남아 있는 외벽 돌들은
그 무게가 16t까지 나가는 것도 있지만
이 외벽 돌은 물론 내벽까지도
고대 이집트를 비롯한 세계 어느 곳의
석조건축물 보다도 더 정교하게 시공되고 쌓여져 있다.
쿠푸 대피라미드
쿠푸 피라미드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단일 건축물로는
1311년 잉글랜드에 링컨 대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무려 3800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알려졌다.
쿠푸 피라미드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는 들었지만
그동안은 아 그런가보다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 이렇게 직접 보고 만져보고 또 멀리서도 보고
또 가까이서도 보고 하니,
4,500년 전에 이렇게나 큰 돌을 변변한 도구나 기계도 없이
평평하게 다듬어 크기에 맞게 하중과 중심을 잡아
몇 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무너지지 않게 쌓았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아 계속 감탄만 하고 있다.
쿠푸왕 피라미드
쿠푸 왕의 피라미드를 보면,
1개의 무게가 2.5t~16t이나 되는 거대한 돌을
147m 높이까지 쌓아 올려 4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보존할 수 있었던 건축술은
이집트의 건축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수많은 돌들을 쌓아 복잡하게 지었는데도
방위와 공간배열이 매우 정확하다.
또한 첨단 과학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한 변이 230m에 달하는 거대한 피라미드 바닥 면의
기울기가 16mm에 지나지 않았다.
수천 년의 긴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 측정한 것을 생각하면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불가사의한 건축물임에 틀림없다.
햇볕에 말린 흙벽돌로 만든 초창기 무덤 마스타바
피라미드는
초창기 파라오의 무덤인 마스타바에서 유래되어,
최초의 피라미드인 사카라의 조세르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에서
기자의 사각뿔 피라미드로 진화해 왔다.
피라미드는 일반 자유민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석재는 경사로를 통해 운반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대규모의 피라미드가 지속적으로 건축된 이유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남아있다.
조세르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
제3 왕조 2대 왕이었던 사카라의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는
이집트에 세워진 피라미드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자의 피라미드 모습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는 모두 6층으로 이루어져,
이전에 만들어진 직사각형의 마스타바 무덤과는
전혀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
약 62m 높이에 커다란 계단 모양을 띠고 있어
일반적으로 계단식 피라미드라고 불린다.
가장 밑 층인 1층에 이전 왕들의 무덤처럼 마스타바가 있고,
그곳에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각기 크기가 다른 5층의
마스타바를 올려놓아 계단을 이룬 모습이다.
이전까지는 왕이나 왕족의 무덤을 모두 흙벽돌로 지었는데,
처음으로 돌로 만든 무덤이 계단식 피라미드였다.
이후 이집트의 왕들은 모두 돌을 이용해서 무덤인 피라미드를 지었다.
스네페루 왕 시절에 만들어진 피라미드
메이둠 피라미드는
원래 8단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만든 후
그 주위를 돌로 덮어 4각뿔 형태로 완성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경사각을 54도로 과도하게 잡아 표면을 덮은 돌들이
무너지는 바람에 현재는 2단의 탑 모양으로 남아있다.
굽은 피라미드는 높이가 102미터인데,
하단은 경사각이 54도인 반면 상단은 43도로 굽어 있다.
당시의 기술자들은 메이둠 피라미드의 붕괴에서 교훈을 얻어
굽은 피라미드 상단의 경사각을 줄였던 것이다.
붉은 피라미드는 붉은 색을 띤 화강암으로 건축되었으며,
세계 최초로 완전히 매끈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피라미드에 해당한다.
붉은 피라미드의 높이는 105미터이며, 경사각은 43도이다.
이후에 건축된 피라미드의 경사각은 50도 이상으로 증가했는데,
그것은 내부 버팀목 기술이 발달되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기자의 사각뿔 피라미드를 만들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사로의 다양한 유형
피라미드를 건조할 때 사용된 도구는
암산에서 적당한 돌을 끊어오는 데에는
곡괭이, 망치, 쐐기, 톱, 칼, 끌 등 모든 수단이 동원되었다.
이렇게 잘라낸 석재는 둥근 나무토막으로 만든
굴림대를 이용해 공사장으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라미드를 건조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거운 석재를 필요한 높이까지 운반하는 일이었다.
많은 학자들은 피라미드 측면에 경사로를 만들어
석재를 운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 피라미드 사이로 카이로시가 보인다.
카프레왕 피라미드 내부 티켓
카프레 왕 좌상의 두상 뒤쪽에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 신이
날개를 펴 파라오를 지키는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이것은 파라오의 힘과 신의 힘을 이상적으로
결합시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혹은 석상의 목이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껍게 처리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집트 화폐 10파운드에 나와 있다.
제 4왕조 카프레왕의 좌상 (재위 BC 2558년-BC 2532년) 이집트박물관 소장
이집트 제 4왕조의 4번째 파라오이며
쿠푸왕의 아들이다.
섬록암으로 만들어진 카프레 왕의 실물 크기 좌상은
1880년 발굴 작업 막바지에 우연히
카프레 피라미드의 계곡 신전에서 발견되었다.
이곳에는 조각상 거치대가 23개나 있었는데
이 조각상 하나만 남아 있었다.
카프레는 전형적인 파라오 모습인 네메스 왕관을 쓰고
턱에는 특유의 수염 장식을 하고 있다.
카프레 피라미드 계곡 신전 옆에는 카프레왕보다도 더 알려진
유명한 스핑크스가 있다.
카프레왕 피라미드
기자의 3대 피라미드 중 두 번째 것으로,
쿠푸왕의 피라미드 바로 옆에 있고
전체적으로 가장 중앙에 위치해 있다.
쿠푸왕의 아들인 카프레왕은 아버지의 피라미드와
같은 장소에 비슷한 규모의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높이 143m로 건축됐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장재가 벗겨져 현재는 높이 137m, 밑변 216m로
쿠푸왕의 피라미드보다 약간 작은 규모이다.
카프레왕 피라미드
높은 지대에 세워져 있어
보는 위치나 각도에 따라 가장 높은 것 같이 보인다.
3대 피라미드 중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고
표면의 상단과 하단에 외장용 화강암이 일부 남아 있어
이집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관을 지닌 피라미드로 꼽힌다.
카프레왕 피라미드 동쪽에 피라미드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전체 길이 약 70m, 높이 약 20m에 달하는
이집트의 상징으로서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거대한 스핑크스가 자리 잡고 있다.
동쪽 사면의 밑변에 있는 입구
좁은 통로라 조심해서 작은 보폭으로
내려 가다가 수평이동 후 다시 올라가야 한다.
석관만 있다.
꼭대기에 남아 있는 화강암 외장석
높이 143M의 카프레의 피라미드는
삼각형 모양의 꼭대기에 외장석이
아직 남아 있어 원형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랜 세월을 통해 풍상에 의해 망가진 것도 있겠지만
후대의 왕조가 그들의 건축물을 지으려고
뜯어 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자의 피라미드 단지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 가장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기자 피라미드는 보존 상태도 훌륭하여
언제나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원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 3개의 피라미드가
이웃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피라미드 사이의 간격이 먼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패키지 관광객들은 피라미드와 피라미드 사이를
버스로 이동하기도 한다.
3개의 피라미드를 대략적으로 둘러보는데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3개의 피라미드가 보이는
파노라마 전망대로 이동 중이다.
멘카우레의 피라미드(Pyramid of Menkaura)
멘카우레왕 피라미드
기자 3대 피라미드 중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으며,
쿠푸왕의 손자인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이다.
쿠푸왕 피라미드와 카프레왕 피라미드의
절반 정도의 규모로, 3대 피라미드 중 가장 작다.
카프레 왕의 것과 같은 배열의 하안신전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폐허로 변했다.
높이 65m, 밑변 105m의 규모이며 훼손이 가장 심한 편이다.
이에 반해 멘카우레 왕의 석상은 보존이 훌륭해
국보급 유물로 이집트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멘카우레 왕 피라미드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고
안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찾아오는 관람객이 적고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멘카우레 3신 조각상 (재위 BC 2532년-BC 2504년) 이집트박물관 소장
좌우로는 하토르와 바트
이집트 제 4왕조 5번째 파라오 멘카우레 3신 조각상이다.
그는 카프레의 아들이자 쿠푸의 손자이다.
멘카우레의 자세는 전형적인 파라오의 모습으로
왼 발을 앞으로 살짝 내밀고 상이집트의 왕관인 기다란 백관을 쓰고
턱에는 특유의 수염장식을 하고 있으며 전통의상인 킬트를 입고 있다.
파라오 옆의 두 여신은 하토르와 파르바의 수호신인 바트인데
하토르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하늘, 사랑, 기쁨, 결혼, 미를 관장하는
여신이고 바트는 나중에 중왕국 시대로 접어들면 하토르와 합체된다.
두 여신의 머리 장식을 보면 신성한 암소의 모습인데
하토르여신의 암소 뿔은 바깥쪽으로 휘어져 있고,
바트 여신의 뿔은 안쪽으로 휘어져 있다.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와 여왕들의 피라미드
멘카우레는 고대 이집트 제4왕조의 파라오이다.
그는 카프레의 아들이고 쿠푸의 손자로
카프레의 뒤를 이어 파라오가 되었다.
그는 기자에 세 번째이며 가장 작은 피라미드를 건설하였으며,
이름은 “레(Re)의 영혼과 같이 영원하다” 라는 뜻이다.
그의 장례 신전에서 발견된 부싯돌 칼에는
어머니가 카메레르네브티 1세로 되어 있으며,
최소한 두 명의 부인을 둔 것으로 보인다.
이 피라미드는 세 개의 보조 피라미드가 있는데
이들은 카프레의 여왕들의 피라미드로 보인다.
주로 벽돌로 지어지고 제5왕조와 제6왕조에 와서
확장된 것으로 보이는 계곡 신전이 발굴되었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멘카우레와 여왕
그리고 몇 신위의 동상들이 발견되었다.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와
여왕들의 피라미드가 제대로 보인다.
(여행사 사진)
전체 피라미드를 모두 관망할 수 있는 파노라마 전망대
전망대라고 하지만 특별한 것은 없고
단지 피라미드 3기가 잘 보이는 공터이다.
이 곳에서 보면 피라미드 사이가 가깝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멀어 버스로 이동했다.
남쪽 끝에 마지막으로 세워진 피라미드(오른쪽)는
제4왕조 6번째 왕 멘카우레의 피라미드이다.
하늘에서 본 기자의 피라미드
왼쪽부터 쿠푸 왕의 피라미드,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 앞에는 왕비 혹은 왕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규모의 피라미드 3개가 있다.
낙타 체험 옵션을 할 수 있다.
스핑크스를 보러 간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드의 석재는 대부분 석회암인데,
이는 기자 남동쪽 약 15km 지점의 투라 채석장에서 가져왔으며,
화장석으로 쓰인 화강암은 남쪽으로 850Km나 떨어진
아스완에서 나일강을 이용하여 운반되었다.
이집트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스핑크스와 3개의 피라미드
매일 저녁 7시 30분 경 이곳에서
'빛과 소리의 쇼'가 펼쳐지는 장소이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에
레이저를 쏘면서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비가 올 경우 취소되는데,
카이로에는 비가 올 경우가 거의 없다.
카프레왕의 장제전 옆에 있는 스핑크스
대피라미드의 남쪽 카프레 계곡 사원 부근에는
카프레왕 피라미드를 지키는 수호역의 대 스핑크스상이 있다.
스핑크스(아브르 호르)는 아랍어로 '공포의 아버지'란 뜻으로,
바위산을 깎아 만든 이 스핑크스의 얼굴은 카프레 왕이고
몸은 누워 있는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길이는 약 73m, 높이는 20m에 달한다.
카프레왕 피라미드와 카프레왕 스핑크스
스핑크스의 기원은 이집트이며,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동체를 가지고 있다.
왕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표현된 것인데,
이집트의 기자에 있는 제4왕조(BC 2650년경) 카프레왕의 피라미드에
딸린 스핑크스가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자연암석을 이용하여 조각한 것으로 군데군데 보수한 흔적이 있다.
전체의 길이 약 70m, 높이 약 20m, 얼굴 너비 약 4m나 되는 거상으로,
얼굴은 상당히 파손되어 있으나 카프레왕 생전의 얼굴이다.
앞으로 뻗은 앞다리 사이에는 투트모스 4세의 석비가 있다.
이 스핑크스는 ‘지평선상의 매’를 나타내는,
태양신의 상징이라고 한다.
카프레왕의 스핑크스
스핑크스는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심하게 훼손되었다.
특히 스핑크스의 코 부분이 심하게 훼손되었는데,
아랍의 지배시기에 맘루크왕조의(AD1250) 병사들이
대포사격연습을 해 파괴되었고,
턱수염은 영국이 떼어가 현재 대영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스핑크스 주변으로 개보수가 진행되고 있어,
작업 현장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카프레왕 피라미드와 카프레왕 스핑크스
스핑크스의 몸은 사자의 모습으로 용맹을 나타내고,
머리는 파라오의 모습으로 지혜를 나타낸다.
스핑크스는 기자 언덕의 석회암을
깍아 만들어 진 것이라 늘 모래속에 잠기게 된다.
매년 불어오는 모랫바람은 몇 년만 그대로 두면
스핑크스의 목까지 모래로 잠기게 된다.
모래에 묻혀져 있던 스핑크스(Sphinx) 그림
아주 오래 전에 그려진 스핑크스는
모두 모래 위에 불쑥 튀어나온 기념비적인
머리의 형태만이 묘사되어 있었다.
1816년 카비글리아의 지휘로 시작되었던
모래 제거 작업은 한때 중단되었다가
1886년 가스통 마스페로와 브룩슈의 작업으로
파라오 카프레의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건축된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기자의 사자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스핑크스 (여행사 사진)
카프레왕 스핑크스는
투트모스 4세에 의해 BC1450년경 모습을 드러 내었고,
이후 람세스 2세의 아들 케무아세트에 의해
BC1250년경 모습을 드러내지만 다시 모래에 묻혔었다.
프톨레마이오스시대에서 로마시대에 거쳐 모습을 드러내었고,
다시 모래에 묻혀 있던것을
프랑스의 고고학자 가스통 마스페로에 의해
1886년경 모습을 드러내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몸부분의 블럭모양은 복원한 것으로
원래는 하나의 통돌을 깍아 만든 것이라 한다.
스핑크스 (인터넷 사진)
'빛과 소리의 쇼'가 펼쳐지는 장소
어느날 왕자는 사냥을 나와
스핑크스의 머리그늘 아래에서 깜빡 잠이 든다.
꿈속에 스핑크스가 나타나 말하기를
"내가 모래속에 갇혀 있어서 갑갑해 못견디겠다.
네가 나를 꺼내주면 너는 후에 파라오가 될 것이다."
꿈에서 깬 왕자는 스핑크스 주변의 모래를 제거하여
스핑크스의 모습을 드러내게 하였고,
훗날 자신의 형이 죽음으로 그는 파라오가 된다.
이 전설은 스핑크스 다리 사이에 석비로 존재한다.
일명 '투트모스 4세의 꿈의 비문'으로 일컬어진다.
투트모스4세는 BC1450년경 아멘호텝의 아들이었다.
BC1446년을 출애굽의 시기로 본다면
모세의 10번째 재앙 '장자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멘카우레 피라미드 옆으로 해가 지고 있다.
스핑크스는 이집트 외에 시리아, 페니키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등지에도 일찍부터 알려져 있다.
특히 그리스 신화에서는 에키드나와 오로토로스의 아들,
또는 라이오스의 딸이라는 등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그 중에서도 테베의 암산 부근에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라는,
이른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내어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그것은 사람이다.
(사람은 어렸을 때 네 다리로 기고, 자라서는 두 발로 걷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어 세 다리로 걷기 때문에)”라고 대답하자,
스핑크스는 물속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일행들이 다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참고 발췌: 두산백과, 세상을 바꾼 발명과 혁신, 교과서에 나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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