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유럽여행 5일째 알프스의 자연을 뒤로 하고 약 280Km를 달려 이탈리아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 도착하였다.유럽 통합으로 국경도 자유롭게 버스 안에서 그대로 통과하므로, 가이드가 말해주지 않으면 국경을 통과 했는지도 모를 상황이다.그러나 가이드 말고도 국경을 넘으면 어김 없이 다른나라로 들어 왔다는걸 알려 주는건 로밍해서 가져온 핸드폰이었다.국경을 넘는 순간 이 나라에서는 통화료가 얼마인지를 가르쳐 준다.개인적으로 유럽 통합으로 나라별로 여권에 스탬프가 찍히는 재미가 사라져 아쉽다.
밀라노 두오모 성당보는 순간 한동안 눈도 깜박일 수 없을 정도로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새삼 인간의 무한한 능력에 경이감이 든다.
핑크빛이 감도는 대리석의 외관밀라노의 두오모 대성당은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다른 특별한 이름이 있는데 바로 와아~ 성당이란다.보는 순간 와아~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큰도시에 있는 그 지역의 가장 큰 대성당을 두오모라 부르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주교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주교좌 성당을 말한다.
이탈리아에서 두오모는 단순한 종교적 장소뿐만 아니라 지역민에게 가장 중심적인 장소인데,
과거 도시 계획자들은 한 도시를 건설할 때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두오모를 배치한 후 주변에 시민광장, 관청, 공공시설, 상가 등을 배치하였다.
1386년 안토니오 다 살루초 대주교가 시작한 공사를
그의 사촌인 밀라노공 잔 갈레아치오 비스콘티 공작의 명으로
착공하여 500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어 19C 초에 완공되었다.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베드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스페인의 세비야 대성당 다음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 고딕 양식 성당 중에서 세계에서 제일 큰 밀라노 두오모성당.이 성당은 비스콘티 가문의 잃었던 민심을 회복하고,바티칸과 프랑스, 독일을 향해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던 밀라노의 야망의 증거이다.
비스콘티 가문의 야망이 "크기와 화려함에서 기독교 세계의 모든 교회를 능가하는 성당”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길이 157m, 높이 108.5m의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세계에서 가장 많은 3,159개의 거대한 조각 작품으로 장식되어 있고 총 3,159개의 조상중 2,245개는 건물 외부에서만 볼 수 있다.그리고 135개의 첨탑이 하늘로 치솟아 있다.
가장 높은 첨탑에는 도시를 수호하는 황금의 마리아상이 세워져 있다.
작은 성모라는 뜻의 마돈니나는가장 널리 알려진 조각상으로 3,900장의 금박으로 덮여 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두오모 건축 공방을 만들어 이탈리아, 독일,프랑스 건축가와 유럽 최고의 조각가, 화가, 스테인드글라스 화가등을 모아,1386년에 착공되었지만 건축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아 수많은 건축가의 손을 거쳐500년 가까이 공사를 한 끝에 1890년에 와서야 마무리 되었다.독일, 프랑스 건축가들의 성향이 들어가 이탈리아 성당 중에 알프스 이북 고딕 색채가 가장 짙은 성당이 되었다.
거대한 청동문에는 성모마리아와
4세기 밀라노 대주교를 지낸 밀라노의 수호 성인 성 암브로시우스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
외부 5개 문 중 청동의 중앙문은 천국의 문이라 불리며,
루도비코 폴리가기의 1906년 작품으로 '예수 태형' 부조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소문으로사람들이 하도 많이 만져서 반지르르하게 닳아 있다.
성당의 문은 모두 안쪽으로 열리게 돼 있는데 이는 교회가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뜻이다.
1796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정복한 뒤 밀라노의 두오모를 보고는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건물의 외관을 완성하도록 지시하였는데,그때까지 지지부진하던 공사가 나폴레옹이 독려하고 나선 지 7년 만에 외관 공사가 끝났다. 무려 430년 만이었다.그 뒤 나폴레옹의 명에 의해 완성된 것을 계속 보완하여 완전한 마무리는 1851년에 이루어졌다.그리고 감사의 표시로 나폴레옹의 조각상이 한 첨탑의 꼭대기에 설치되었다. 또한 1805년 5월 20일 공사중이던 두오모에서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국왕으로 등극한다.
성당 외벽을 빙 둘러가며 사도와 성자와 예언자들 모습이 3159개 조각상으로 부조돼 있다.
성당 안의 계단이나 엘레베이터를 통해 성당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는데, 다른 성당과는 달리 직사각형의 옥상이 있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어이곳에서 밀라노 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밀라노의 랜드마크로 탄생한 두오모는오랜 기간 공사를 한 탓에 당시 유행하던 르네상스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 고딕, 르네상스, 신고전주의 양식이 현란하게 혼합된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외벽이 번잡할 정도로 조각 장식이 많고 첨탑도 너무 빽빽해 통일감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지만, 내가 보기에는
조각 하나 하나가 개별적 예술품으로서도 충분히 가치 있어 보였다.
성당을 짓기 위해 사용된 대리석은 피에몬테 주 토리노에서 북동쪽으로 120km 떨어진 곳의 채석장에서, 마조레 호수로 운반해 온 핑크 칸돌리아 마블을 사용했다.
참고로 금방 캐낸 대리석은 아주 부드러워 조각은 그때 이루어지며,
시간이 경과 할 수록 , 외기와 접촉 할 수록 아주 단단하고 견고하게 굳는다고 한다.
정면 앞쪽에 있는 두오모 광장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기마동상밀라노 사르데냐(사보이)의 제2대 국왕, 이탈리아의 제1대 국왕. 입헌군주제 체제로 행정 ·재정의 근대화를 추진했고 이로 인해 사르데냐는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모체가 되었다. 가리발디의 남 이탈리아 원정 등을 거쳐 이탈리아를 통일했다. 밀라노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근거지이자 첫 수도이다.
유난히 비둘기가 많은 광장.낯 선 외국인이 비둘기 모이를 내미는 것을 받았다간 낭패를 본다.그걸 미끼로 돈을 요구하고 안 주면 횡패를 부린다.
밀라노의 중심가인 두오모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 거리로 일컬어지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회랑과 연결돼 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건물
이 곳은 밀라노의 응접실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아케이드형 쇼핑센터로 대성당 바로 옆에 위치 한다.
1865년부터 이탈리아를 통일한 기념으로 공사를 시작해 1877년에 라틴 십자가 모양으로 완공되었으며,금속과 유리로 만들어진 지붕과 꼭대기의 거대한 돔이 화려한 밀라노를 대변하고 있다. 갈레리아는 회랑이라는 뜻을 지닌 아케이드이다.
밀라노는 유럽연합에서도 가장 잘사는 도시에 꼽히는 이탈리아 경제 수도이며아르마니, 프라다, 베르사체 같은 명품 브랜드로 상징되는 도시이다.
이 대리석 건물은 이탈리아 최초로 유리와 금속으로 만든 유리 돔을 얹고 있는 천장이 아름다운 거대한 건축물이다.
유리를 통해 자연 채광을 하는 회랑이 200m나 이어진다.
수 많은 부티크와 레스토랑, 카페들로최첨단의 패션과 유행의 도시 밀라노를 실감나게 한다.
간판도 모두 검정 바탕에 간단한 황금빛 글자로 통일돼 있다.
맥도날드가 붉은색 고유한 간판을 포기하고 이곳 양식에 맞춰 검정 간판을 내건 유일한 곳이다.
프라다 본점밀라노는 뉴욕, 런던, 파리와 함께 세계 4대 패션 도시이며
수많은 디자이너와 명품 브랜드 본사가 밀집해 있다.
1913년 프라다 창업자 마리오 프라다가 처음으로 매장을 낸 곳도 이곳 갈레리아라고 한다.
루이 비통
이탈리아 총리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도 밀라노의 재벌 출신이다.
에마누엘 2세 아케이드는 쇼핑 공간인데도 바닥에 프레스코화가 칠해져 있다.
미국,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4개 대륙을 상징하는프레스코화로도 유명하다.
노천 카페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시간 여유가 좀 있었다면 젤라또를 먹고 싶었는데 도저히...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주도인 밀라노.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서부 롬바르디아 자치주에 있는 이탈리아 최고의 산업도시이자 세계적인 패션 예술의 중심지이다. 이탈리아 대부분의 대기업 본사가 이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통 섬유공업에 중화학공업도 발달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공업도시이다.
밀라노는 이미 1천년 전부터 롬바르디아 평원에서 가장 큰 도시였으며, 서기 313년 동-서 로마제국 황제가 밀라노에서 만나 그간 탄압해오던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공인한 밀라노칙령을 선포한 곳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는 도로 사이에 이런 작은 조각 분수대가 많았다.
에마누엘 2세 아케이드를 벗어난, 조그만 광장에 서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각상... 뒷모습이 찍혀 있다.
15세기 중반 한때 서로마제국의 수도였던 밀라노는 부흥을 꿈꿨다. 천재 건축가와 화가를 밀라노로 끌어들인 것은 문화적, 경제적 기반을 지닌 부호들이었다. 토스카나의 빈치라는 마을 출신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 당시 밀라노에 입성해 르네상스 최고의 걸작을 그려냈다.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식당 벽면에 3년간에 걸쳐 완성했다는 최후의 만찬이다.
산타 마리아 델레그라치에 성당은 건축의 대가인 브라만테가 1492년 완성했고,
본당은 고딕양식이지만 브라만테의 손길이 닿은 부분은 신르네상스 양식이다.
불행하게도 밀라노까지 와서 최후의 만찬을 소장하고 있고,
세계문화유산인 산타 마리아 델레그라치에 성당을
보지 못하고 떠나야 해서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매번 도시 마다에서 아쉬움들이 많이 남는데
정말 다시 배낭 여행으로 와서 천천히 보고, 느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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