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폼페이] 시간이 멈춰버린 고대도시 폼페이

푸른 바다. 2010. 5. 11. 11:19

 

시간이 멈춰버린 고대도시  폼페이

 

 

 

 

로마 관광을 아쉽지만 마치고

베수비오스 화산 폭발로 최후를 맞이한 비극의 도시 폼페이로 향했다.

폼페이 아고라 광장 깊숙히 들어가 사진 찍느라

 일행을 놓쳐 중요한 사진들을 찍지 못했다.

일행은 왔던 길과 다른 길로 내려 가고 나는 왔던 길로 내려가고...

로밍해 간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는 바람에

정작 봐야 할 곳을 못 봐 너무나 아쉬웠다.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고대 도시 폼페이는

 바닷가 절벽 위에 위치하여 아름다운 경관을 지녔고,

로마 귀족들의 별장지역이었다.

 

 

남이탈리아 캄파니아 지방의 고대 도시 폼페이는

 나폴리에서 남서쪽으로 23km 떨어진 베수비오스 산 근처에 위치해 있다.

기원후 79년 8월 24일에 비수비오스 화산이 폭발 하면서 헤르쿨라네움, 스타비아이와 함께 매몰되어

1,500년 동안 땅 속에 완전히 묻혀 있다가

1738년, 헤르쿨라네움 근처에서 우물을 파던 한 농부가 파묻힌 도시 폼페이를 발견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나폴리 왕인 카를로 3세는 스위스 출생의 군사 기술자

카를 베버의 책임하에 폼페이를 전면적으로 발굴할 것을 명했다.

그후 나폴리,사르디니아,시칠리아 등 여러 왕국으로 나뉘어 있던 이탈리아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 의해 통일되었고,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고고학자 주제페 피오렐리로 하여금 폼페이를 과학적으로 발굴하게 하였다. 

피오렐리는 오늘날과 같은 발굴 방식을 처음 시도했으며, 비로소 합리적인 발굴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그 뒤 200여년에 걸쳐 많은 유물을 찾아냈고 대부분 나폴리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지금도 계속 발굴하고 있는데 옛 시가지의 70% 정도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복원된 옛길 마리나문 (바다를 향해 난 문이라는 뜻)

 

유적지의 입구는 마리나(바다를 향해 난 문) 문으로 

 당시 마을에서 항구로 통하던 길의 성문이다.

왼쪽문이 보행자들의 출입문이고

오른쪽문은 마차나 동물들이 지나던 문이다.

 

제우스 신전터   포로(공공광장)

 

폼페이의 마리나 문을 따라 길을 올라가다 보면

이 도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포로(공공광장)가 나타난다.

저 멀리에는 이곳 폼페이를 한순간에 묻어버린 베수비오스 화산이 보인다.

 

 

중앙광장인 포로(공공광장)에는 도리아식 원주가 서 있고,

포로를 왼쪽으로 돌아나가서 마첼룸을 지나면 주요 건물 유적들이 있다.

파우니의 집, 베티의 집, 큐피드의 집 등

당시 부유한 귀족들의 저택들이 늘어서 있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회화, 조각 등은

 나폴리 북쪽의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부근에는 폼페이에서 가장 큰 건물인 바실리카, 아폴로 신전, 주피터 신전 등이 있다.

 

또한 사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곳 주변 곳곳에는 시청사, 재판정, 의회장소인 바실리카 등이 있어

고대국가인 로마의 도시에서 오늘날 도시 형태를

그대로 옮겨 유지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에우마키아의 집

 

당시 폼페이에서 번영하던 직물 산업을 위한 건물이었던 에우마키아의 집

 

저 멀리 제우스 신전과 포로(공공광장)가 보인다.

 

제우스 신전으로 기원전 2세기에 건설된 곳이다.

 

사제만 출입하는 신성한 지역으로

현재는 기둥만 서 있지만 옛날에는 제우스, 헤라, 미네르바 세 신상이 있던 곳이다.

앞에 보이는 제우스 신전의 제단은 베수비오스 산을 향해 세워져 있다. 

오른쪽 아치는 양측으로 2개 있는 티베리오 개선문이다.

 

 

 오른쪽 끝 건물이 측량소인데 사진이 없어 올리지는 못했지만

화산 폭발 당시 화산재에 묻혔던 시신과 가재도구 등을 발굴하여 전시해 놓은 곳이다.

 그릇들과 마차, 피할 틈도 없이 웅크리거나 엎드려 죽은 시신들이 캐스트화되어 

죽을 당시 상태대로 재현해 놓았는데 처참했던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진짜 캐스트들은 나폴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한다.

캐스트란 화산재로 덮힌 후 그대로 굳어진 사람과 동물들의 빈 공간에,

즉 시간이 지나면서 유기물은 부패하고 건조되어 내용물은 다 없어진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죽을 당시 상태대로 재현해 놓은것을 말한다.

 

 

1748년 발굴로 광장,목욕탕 , 원형극장,

 약국 유적지등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3분의 2가 발굴되었다.

따라서 발굴이 완료된다면 로마 미술의 최고걸작으로 평가받는

큐피드 벽화와 춤추는 폰의 동상등의 수준 높은 문화재들이

더욱 많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제우스 신전터

 

제우스 신전터

 

아폴로 신전터

 

 공회장 왼쪽에 있는 이 신전은 

코린트식 48개의 기둥만 남아 있는데 헬레니즘 문명의 영향을 받은것이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활을 쏘는 아폴로 동상이 남아 있다. 

 

 

 

포로 밑에 있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 있던 신성한 곳이다.

 

제단

 

 

 

폼페이는 교통의 요충,

 비옥한 토지를 배경으로 일찍이 오스크인이 촌락을 이룬 뒤,

BC 8세기 이후 그리스의 식민자 에트루리아인이 이주하면서

 마을이 확대되었다.

 

 

마체룸 시장은

광장 동편에 있는 유적으로 AD1세기에 건립된

각종 농수산물을 팔던 시장이었다.

 

 

폼페이 마첼룸  

 

  마첼룸은 상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원전 2세기 경에 성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실리카 주변에 있는 시장터로 

철문 안쪽에서 식료품을 팔고 생선가게, 야채가게등

생활에 필요한 가게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칼리굴라 황제의 개선문

 

포로의 북서쪽에 있는 개선문으로

메르쿠리오 거리와 테르메 거리 등 4개의 거리가 교차 하는 곳에 세워졌다.

칼리굴라 황제를 찬양하기 위해 세운것인듯 하며

 황제의 청동 기마상 일부도 출토 되었다고 한다.

 

광장으로 가는 문

 

상권, 마을등을 구분하고 생활하였음을 말해주는 

 

 

폼페이 사람들은 2000년 전에 이미 구획정리를 한 도시를 만들었다.

인도와 차도를 구분했고, 보행자를 위해 횡단보도에 징검다리를 놓았으며,

다른 각양각색의 대리석 조각들을 이용하여 야광 가로등 표식을 만들었다.

또한 남근 모양의 이정표를 설치하고 공중 목욕탕을 섬세하게 설계하였으며,

낙차를 이용하여 물을 끌어올리고,화덕의 적절한 배치로 주방을 꾸몄다. 

 

 

폼페이 최후의 날을 기록한 문헌으로는 작가 소플리니우스의 글이 있으며,

폼페이를 죽음으로 몰고간 베수비오스 화산은 17세기와 1944년에도 폭발했다.

 다행히 1944년 폭발시에는 나폴리 시민들이 미리 대피했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많지 않았다.

화산폭발이 끝나자 시민들은 돌아와서 재건을 시작하였다.

 

마리나 거리

 

마리나 문을 통과하여 포로까지 이어지는 길

 

해상무역을 통해 경제적인 번영을 누렸던 항구도시 폼페이는

2000여년전 베수비오스 화산의 폭발로 인하여 순식간에 6m가 넘는

죽음의 화산재로 덮인채 이 도시가  발견될 때까지 그대로 매장되어 있었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본격적인 발굴이 되고 있지만

아직 이 도시의 1/3이 넘는 지역이 아직도 땅속에 묻혀 있다.

 

  폼페이의 가장 중요한 도로.

 

마차길 중간 중간에있는 넓적한 돌 3개는

 사람이 건널 수 있도록 횡단보도 역활과

마차가 속력을 못 내도록 서행을 유도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것이라 한다.

이는 마차가 통과할 때 바퀴가 돌 사이로 빠져 나가야 하는데,

속력을 내고 달리다가 튀어나온 돌 위를 달리게 되면 덜컹거리거나

잘못하면 전복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연히 속도를 줄이게 된다고 한다.

인도의 돌들은 가다가 쉬어 가는 곳이다.

 

넓적한 돌 3개는 횡단보도 겸 과속방지턱

 

 폼페이 곳곳에서 공동 상수도를 볼 수 있다.

 

공동 상수도

 

폼페이는 현대의 도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계획 도시로 도시 전체에 납으로 된 수도관이 매설 되어 있다.

 

포로 목욕장( 중앙 대광장 목욕장) 입구

 

폼페이에는  중앙 목욕장과 가장 큰 목욕장인 스타비아 목욕장

그리고 이 곳 포로 목욕장이 있다.

폼페이에서 발견된 세 개의 목욕탕 중 가장 상태가 좋다는 이 목욕탕은

 남탕과 여탕이 구분되어 있고 욕실바닥과 벽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어 수증기를 가지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였다.

남탕은 탈의실, 냉탕, 온탕, 증기 목욕실로 나뉘어져 있다.

 이 목욕탕 거리가 당시 폼페이의 중심 상업지역이었다.

주변에는  빵을 굽던 집과 음식을 만들던 식당의 주방, 술집 등이 도로변에 들어서 있다.

 

 

여자들은 투표를 할 권리가 없는 시대였으나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어떤 직책을 맡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홍보는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벽에 홍보물을 붙이거나 홍보하는 글을 써 놓았던 벽도 있다 한다.

 

 

가정집의 주방과 술집, 와인을 보관하던 항아리, 공중목욕탕, 매춘을 하던 집,

빵을 굽던 집,그리고 도로에 남은 수레바퀴 자국,

도로 표지판 등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행과 헤어져 사진을 찍지 못한 곳 중에

 비밀의 저택과 목신의 집,그리고 루파나레가 있다.

중심지를 지나 귀족들의 묘지가 늘어선 거리를 지나면 비밀의 저택이 있는데

이 저택은 크고 작은 60여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큰 방에는 벽면 가득히 붉은색 배경에 두려운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목신(파우노)의 조각상이 있는 파우노의 집은 훌륭한 정원을 가진 부호의 집이다.

로마 장군의 조카 집으로 짐작되는 호화 저택으로 현관 로비에는 코린트식 원기둥을 사용한

신전 같은 제단이 있고 아트리움에는 춤추는 파우노의 청동상이 있다. (진품은 나폴리 박물관에)

사방이 길로 둘러싸인 하나의 블록을 모두 차지하도록 넓은 이 집은

고대 로마 저택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루파나레는

여러나라 뱃사람들을 위한 사창가로

문 위쪽에는 글자와 말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성행위의 메뉴판을 그려 화대를 매겨 놓았고,

또한 남성 성기모양의  안내판을 만들어 이곳을 찿기 쉽도록 했다 한다.

 

물을 저장했던 일종의 물탱크

 

가장 높은 기둥은 수로의 기둥이라 한다.

 

 

 

소극장으로 들어가는 길

 

 사각회랑

 

대극장 무대 뒤쪽으로

 돌아가면 정방형으로 생긴 회랑터가 나온다.

이곳은 극장들의 사각회랑으로서 

 원래는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 머물던 곳이었으나

나중에는 검투사들의 막사로 이용되면서

 검투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무술을 연마 하던 곳이다.

 

 

무덤이라 한다.

 

서기 79년 8월 24일 정오 무렵,

 베수비우스 화산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화산 쇄설물이 폼페이 시에 비 오듯 쏟아졌고,

 다음 날에는 타는 듯한 뜨거운 가스의 구름이 휩쓸었다.

건물들은 파괴되고 사람들은 압사하거나 질식사했으며,

도시는 재와 화산암 더미 밑에 파묻혀 버렸다.
몇 세기 동안 폼페이는 재로 된 장막 아래,

밑에 깔린 잔해가 완벽하게 보존된 채 잠들어 있었다.

1700년대에 이 도시가 마침내 발굴되자 전 세계가 경악했다.

약 2만 명의 주민이 살았던 그리스-로마 도시가 시간의 흐름을 넘어

그대로 얼어붙은 채 남아 있었던 것이다.

훌륭한 포럼과 원형 극장등 커다란 공공건물들이 서 있었다.

 기원전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호화로운 저택과 온갖 종류의 집들도 있었다.

 내부에는 폭발을 피해 집으로 숨은 사람들의 유해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어떤 이들은 달아나던 모습 그대로 묻혔으며, 빵집의 화덕에는 여전히 빵이 들어 있는 채였다.

폼페이의 건물들과 그 내부는 고대 세계의 일상적인 나날을 보여 주었으며,

모든 고전적인 것에 대한 18세기의 관심을 크게 촉발시켰다.
초기의 발굴 작업은 무계획적이었으며 이따금 유적에 손상을 입히기도 했지만,

근대 고고학 역사의 최초의 이정표가 되어 준 작업이라 할 수 있다.

1800년대에는 더욱 정확한 방법이 동원되었으며

1900년대가 되자 그보다 훨씬 더 나은 방법이 도입되었다.

매번 조금씩 발굴해낼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발굴해야만 할 부분이 남아 있다.

1997년 폼페이, 헤르쿨라네움과 토레 아눈치아타는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출처: 죽기전에 꼭 봐야 할 세계역사유적 1001 리처드 카벤디쉬외 공저 마로니에 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