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명품거리
유럽 여행 제 9일째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꽃의 피렌체에서 베니스로 약 270Km 버스로 달리며
이탈리아의 전원풍경을 눈 가득 마음 가득 담고,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밤 늦게 도착했다.
그동안 누적된 피곤으로 별 다른 생각 없이 호텔에서 푹 자고
유럽 여행 10일째 아침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깨어났다.
셰익스피어 희극 베니스의 상인을 읽고 난
여중학생때부터 꿈꾸어 왔던 베네치아를 보기위해,
호텔에서 주는 아침을 후딱 먹고는 짐을 싸 대기중인 버스로 갔더니
이탈리아 버스기사인 살바토레씨가 아는 한국어로
'천만에~~요'를 외치며 웃었다.
'이 천만에~~요'는 스위스에 우리를 마중나와 그때부터 여행 끝날까지
우리와 동행했던 이태리 버스기사님을 가이드가 소개 할때
우리가 스위스까지 와 준것에 감사하며 박수를 쳤는데,
그때 한국말에 이태리 억양으로 '천만에~~요'라고 답 해서 다들 웃었다.
그뒤부터 살바토레씨만 보면 '천만에~~요'라고 인사를 했더니
자기도 나보고 '천만에~~요'라며 인사를 했다.
베네치아 거리
인구 6만도 안되는 베네치아에 한 해 2000만 관광객이 온다니
조상 잘 둔덕에 앉아서 전 세계 돈을 벌어 들이는 베네치아.
그러나 비싼 호텔비와 세배쯤 되는 물가때문에 숙박하고 가는 관광객은 예전의 절반으로 줄고,
대신 샌드위치를 싸들고와 잠시 머물다 가는 관광객이 늘면서 시 재정 수입이 줄어 들어
주민 재산세를 인상하고, 해수면이 올라가 시가지가 자주 물에 잠기는 일이 많아 지면서,
주민들이 떠나 주민수가 30년전의 절반으로 줄었다 한다.
그래도 여전히 30평쯤의 아파트가 100만 유로(15억)정도라 한다.
베르사체
패션, 시계, 액세서리, 선글라스, 향수, 화장품, 구두, 가구, 그릇 등의 브랜드로
본사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에 있다.
지아니 베르사체는
1978년에 밀라노에 패션 하우스 '매종 베르사체'를 설립하고 첫 번째 컬렉션을 개최했다.
1981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지아니 베르사체'를 설립했다.
브랜드는 아테네 여신의 저주를 받은 메두사를 로고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프로 한 독특한 신고전주의의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베르사체는 원색의 컬러 프린트를 사용, 화려하고 정열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지아니 베르사체는 쿠튀리에인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아 정교한 입체 재단에 뛰어났다.
전세계에 유행했던 ‘헤드 투 토 룩(Head-to-toe-look)’은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맵시, 균형과 조화에 대한 정확한 감각, 과감한 색채감각이 어우러져 탄생된 것이다.
그의 디자인 이미지는 섹시하고 육감적인 여성의 아름다움이다.
1982년에 오스카 패션상과 오키오 도로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에 미국의 마이애미 자택 앞에서 동성애자 커내넌에게 피살되었다.
그의 사후에 여동생 도나텔라가 디자인 총책임자로, 형 산토가 최고 경영자로 임명되었다.
도나텔라는 고전미에 현대적 세련미를 접목시킨 디자인과 다양한 색상으로 변화를 시도해 성공을 거두었다.
베르사체 로고
2010 F/W Versace collection
베르사체 로젠타
프라다
설립자 마리오 프라다는 1913년 이탈리아 밀라노에 가죽제품 판매 상점으로 import shop을 오픈 했다.
1978년에 마리오의 손녀딸인 미우치아 프라다가 3번째 대표주주가 되어,
가방 종류 뿐 아니라 슈즈, 의류 분야에도 진출하여, 오늘날의 명품브랜드로 변화시켰다.
최고경영자 파트라치오 베르텔리의 경영으로 1995년에는 맨스콜렉션을 발표하게 되었다.
1996년에는 prada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역삼각형의 로고 플렛이 달린 나일론 가방을 대히트 시킨,
미우치아 프라다는 나일론 소재의 실용적인 토트백을 만들어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형성하였다.
평범하고 고급스러운 미니멀리즘의 경향과 독특한 소재로 품격 있고 지적인 분위기의 디자인이 특징이다.
프라다 크로스 가방을 하나 사고 싶은 유혹을 뿌려쳤다.
우리나라에서보다 30만원은 싼것 같았다.
비슷한게 우리나라에서는 80만원정도 였었는데 여기서는 약 50만원 정도였다.
프라다 로고
2012 Fall Prada collection
프라다 가방들
발렌티노
이탈리아 출신의 쿠튀리에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1960년 발렌티노 하우스를 열어서 일상용과 예장용 바지 슈트로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그는 1960년대 중반 이미 이탈리아 쿠튀르의 간판 디자이너가 되었다.
1968년 화이트 컬렉션으로 패션계를 놀라게 한 이래, 발렌티노는 한결 같은 스타일로
이탈리아적 쿠튀르의 자존심을 지켜왔으며, 2008년 봄 여름 쿠튀르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은퇴했다.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스타일은 “섬세하고 우아하고 사치스러운 쿠튀르 드레스”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여성이면 인생에 한 번쯤은 입어보고 싶어할 그런 드레스이다.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디자인에는 전통에 대한 경외와 디자이너의 자신감이 묻어 있다.
패션계에서 발렌티노의 업적은, 혁신이라기보다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고급 문화와 쿠튀르를
한층 더 영광되고, 화려하고, 장엄하게 꽃피워 21세기까지 이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헵번, 소피아 로렌, 줄리아 로버츠,우마 서먼, 기네스 팰트로, 앤 헤서웨이 등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은막의 스타들과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다이애나 왕세자비,등 유럽 사교계의 유명 인사들이 발렌티노의 친구이자 오랜 고객이었다.
발렌티노 로고
2007년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45년 회고전에서 발렌티노의 레드 드레스들
좌 발렌티노 45년 회고전의 하얀 드레스 섹션
<출처: (cc) Annalisa Califano at commons.wikimedia.org>
우 발렌티노 45년 회고전의 검은 드레스 섹션
<출처: (cc) Loquax at commons.wikimedia.org>
펜디
Fendi는 200여 년의 역사를 통해 모피와 가죽 제품의 명가로 인식되며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대중적인 명품 브랜드 중 하나이다.
피혁 제품을 다루고 있던 아드레 카사그란디가
1918년 로마 중심가의 Via del Plebiscito에 작은 가죽과 모피 가게를 설립한 것이 Fendi 브랜드의 시작이다.
아드레 카사그란디는 1925년도에 에도알도 펜디와 결혼을 한 후 상호를 펜디로 변경하여 지금까지 사용해 오고 있다.
그 둘 사이의 다섯명의 딸인 paola, Anna, franca, carla, alda 다섯 자매가
1946년 사업에 참여하면서부터 본격적, 근대적인 2차적 시작을 이룬다.
그리고 1965년,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와 펜디의 다섯 자매들과의 합작을 통해
모피 시장에 창조적인 혁신을 불러일으키며 진정한 발전을 이루었다.
1969년까지 펜디는 모피코트 라인에 기성복 라인을 도입하고 또 가죽 제품도 프린트를 하거나,
섞어 짜기, 염색 그리고 태닝 등의 새로운 가공방법을 도입하여 실용적이면서도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모피라는 아이템으로 계속적인 성공을 거듭하였다.
1970년대에 펜디는 ‘펜디우먼’스타일의 재킷, 코트, 드레스를 럭셔리 기성복 시장에 선보였다.
펜디 로고
Fendi 2012년 F/W Milan collection
에트로
패션의 본산지랄 수 있는 밀라노에서 생산해 내고 있는 최고 품질의 브랜드다.
화려한 색상과 문양의 천연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되는
최고의 브랜드 에트로 브랜드는 1968년 짐모 에트로에 의해 탄생되었다.
옷감 전문 메이커였던 당시의 짐모 에트로는 ETRO s.p.a 라는 직물 업체를 차리고
캐시미어, 실크, 린넨, 면 등 고급스러운 천연섬유로부터 만들어진 독창적인 원단을
전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에게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으로 점차 그 규모를 확대해 나갔다.
고급 원단으로 유명해지게 된 에트로는 1975년부터 지금의 에트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페이즐리 문양을 원단에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 명성이 전세계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짐모 에트로는 인도의 고풍스런 캐시미어 숄을 수집하면서 페이즐리 문양을 접하게 되었고,
고급스런 직물에 독특한 페이즐리 문양을 사용하여 에트로만의 오묘하면서 풍부한 색감과 곁들여지면서
페이즐리 문양 자체는 에트로만의 특색을 나타내며 유럽 전체에 급속히 확대되었다.
이 페이즐리 문양은 원래 모직물의 본고장인 영국 스코틀랜드의 작은 시에서 이름을 따온 것인데
이제는 에트로하면 페이즐리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로 유명해졌으며 유럽 클래식을 대표하는 문양으로 자리잡고 있다.
에트로의 창시자 짐모 에트로의 아들 '킨 에트로'가,
이제 그 전통과 명맥을 이어가면서 유럽 최고의 품위를 상징하는 브랜드로서의 성장을 이루어가고 있다.
에트로의 페가수스 로고
2012 에트로 가을 기성복 collection
2012 에트로 S/S collection
에트로 머플러
에트로 가방
루이 비통
가방, 의류, 쥬얼리, 신발, 선글라스, 시계, 필기구 등의 브랜드.
LVMH 그룹이 소유하고 있으며, 본사는 프랑스의 파리에 있다.
1885년에 영국 런던에 첫 번째 매장을 열었고 1892년에 회사는 처음으로 핸드백을 만들기 시작했다.
루이뷔통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모조품이 많은 브랜드이며, 현재 세계 140여 개국에 진출해 있다.
루이비통 로고
루이비통 Louis Vuitton
루이 비통은 프랑스 앙쉐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854년 뤼뇌브 데 까푸신느 4번가에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
1896년, 루이 비통의 아들 죠르쥬 비통은 그의 아버지 이름의 머리 글자인 그 유명한 LV를 결합시켰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노그램 캔버스가 진짜 탄생한 것은 1896년 루이 비통 본인이 아닌 조르쥬 비통에 의해서다.
그는 아버지의 이름 첫글자인 L과 V를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의 영향으로 꽃과 벌의 무늬가 반복되는 모노그램 캔버스를 제창했다.
이 모노그램 캔버스는 그 후로 루이 비통의 전 제품에 사용되었고, 루이 뷔통 제품을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자리잡았으며,
최초로 제품에 회사 마크를 도입한 사례로 평가된다.
루이 뷔통의 디자인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면서도 전통을 지키고 있다.
또한 모노그램 캔버스처럼 같은 디자인을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만들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도록 하였다.
루이 뷔통의 사업은 현재까지 150년 동안 5대를 걸쳐 이어져 내려오며 전세계로 확장되었다.
사업 분야 역시 액세서리·의류 등 토털패션 전영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파리 패션 위크 2012 Louis Vuitton 봄 collection 마크 제이콥스
에르메스
프랑스의 유명한 명품회사.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에 의해 설립되었다,
원래 유럽귀족에게 납품하기 위한 마구 작업장으로 시작한 에르메스는 기본적으로 가죽공정의 완벽한 장인정신의 구현과
테크닉으로 현재에도 수작업으로 마무리 공정하는 방식을 택해 명품중의 명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마차 모양 로고는 이러한 역사에서 기원했다.
1922년 최초의 가죽 핸드백을 출시한 이래 전 세계 여성들이 꼭 가지고 싶어 하는 핸드백을 탄생시켰다.
1935년 선보인 가죽백은 모나코의 왕비가 된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1956년 미국 잡지 라이프 표지에 임신한 배를 가리기 위해
들고 나온 모습이 실린 이후, 켈리백으로 불리게 되며 현재에도 인기를 얻는 최고의 명품이 됐다.
1878년 창업자 티에리 에르메스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가 선친의 일을 계승,
새로운 사업들을 창출해내며 기존의 가죽제품 위주의 생산에서 부티크 사업으로 확장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에르메스의 사업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게 되고,
각국의 정,재계 유명인사 및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사람들이 에르메스의 주고객이 되었다.
그레이스 켈리, 윈저 공작 부부,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잉그리드 버그만, 재키 케네디와 같은 사람들이 에르메스의 단골 고객이 된 것.
알프레드 드 드뢰의 19세기 석판 르 뒤끄 아뗄에서 로고 형태를 따왔다.
에르메스 마차 로고
2012 에르메스 봄 collection 파리 패션 위크
버킨백
켈리백
브루노 말리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부 장관, 배우 소피아 로렌 등이 애용하는
이탈리아 고가 핸드백 및 제화 브랜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제화가 수입 공급원이다.
이탈리아 상업과 무역 가죽 산업의 중심지로 유명한 에밀리아 로마냐의 중심 도시인 볼로냐에서1936년 설립.
창립자 브루노 말리는 항상 진정한 아름다움과 장인정신,디자인 혁신에 대한 연구를 강조하였으며
그의 정신은 지금까지 브루노 말리의 근간을 이룬다.
브루노 말리 로고
브루노 말리 쿠보백
브루노 말리 도나백
몬띠피콜로 프레즐
샤넬
프랑스의 의류, 향수, 액세서리, 선글라스, 핸드백 등의 브랜드.
1910년 가브리엘 샤넬이 설립했으며 본사는 프랑스 파리 방돔광장에 있다.
샤넬은 “패션은 사라질지라도 스타일은 남는다”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조오지 버나드 쇼 는 샤넬을 현존하는, 세상의 가장 중요한 두 명의 여성 중에 한명
- 다른 한 명은 마리퀴리였다. - 이라고 언급했다.
1910년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이 파리에 샤넬모드란 여성용 모자 가게를 열었다.
활동적이고 입기 편한 저지옷은 코르셋과 페티코트에 얽매어 있던 여성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1921년에는 어네스트 보가 개발한 향수 '넘버 파이브(No.5)'를 출시하여 상류사회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1939년에 쿠튀르 하우스의 문을 닫고 은퇴했으나
1954년에 71세의 나이로 패션계에 복귀한 그녀는 컬렉션을 통해 발표한 트위드 투피스로 재기에 성공했다.
1955년에는 '2.55'란 이름의 퀼트 백을 출시하였다.
액세서리가 출시되는 등 그녀의 이름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1983년에는 독일의 유명 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가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에 올랐다.
그는 대담, 완벽, 독특, 정열, 환상의 5가지 원칙을 세우고 샤넬의 변화를 시도했다.
코코의 CC를 의미하는 샤넬 로고
샤넬 (1883- 1971) 1909년 무렵
20세기 여성 패션에 커다란 혁신을 불러일으키면서 패션 제국 ‘샤넬’을 이룩한 가브리엘 샤넬.
코코라는 별칭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는 그녀의 일생은 ‘사랑하고 일했다’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샤넬은 몸을 꽉 조여 억압했던 코르셋에서 여성들을 해방시켰다.
무릎 근처까지 올라 간 치마를 통해 여성들을 땅에 닿는 긴 치마로부터 해방시켰고 편하고 활동이 자유로운 여성용 바지를 만들었다.
또한 손가방에 끈을 달아 어깨에 멜 수 있게 해주었다.
지금은 당연시되는 여성 의상들이지만 당시로서는 혁명이자 해방이었다.
샤넬은 여성의 사회 활동이 확대되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단순하면서 편하고 실용적인, 그러면서도 우아하고 기품 있는 스타일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 옷들은 바느질과 마무리가 완벽해 입는 이들마다 극찬했다.
샤넬은 피카소, 달리, 장 콕토, 스트라빈스키, 헤밍웨이, 콜레트, 그레타 가르보, 마를레네 디트리히,
그 밖에도 수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어울리며 때로는 그들을 후원했다.
예컨대 그녀는 장 콕토의 알코올 중독 치료비를 부담하는가 하면,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을 작곡할 수 있도록 후원했다.
전쟁 전 유럽 문화의 수도였던 파리에서 샤넬은 단연 문화예술계의 허브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랐던 시기에 관해 샤넬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
18살 때인 1901년 물랭의 기숙학교로 옮겨 졸업한 뒤, 보조양재사로 일하면서 밤에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불렀다.
여러 차례 사랑에 빠졌고 주위에 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늘 외로웠다. 그리고 늘 일에 몰두했다.
일하지 않는 일요일이 그녀에게는 가장 견디기 힘든 날이었다.
그녀는 언젠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친구들! 사실 친구란 없어.”
1971년 1월 10일 일요일 "이것 봐, 이렇게 죽는 거야.”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발렌시아가, 입 생 로랑, 피에르 발맹, 살바도르 달리 등이 애도하는 가운데 샤넬은 스위스 로잔에 묻혔다.
그녀의 육신은 묻혔으되 그녀가 창조한 스타일은 불멸의 이름을 획득했다.
“사람들이 샤넬 패션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샤넬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니라 하나의 스타일이다.
패션은 철 지난 것이 되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스타일은 결코 그렇지 않다.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좌 리틀 블랙 드레스 1926년 발표한 별다른 장식은 물론 깃과 단추도 없는 이 검정 드레스는 오늘날까지도 하나의 전설이다.
우 프랑스 여배우 잔느 모로가 입은 샤넬룩 여성의 풍만한 라인을 강조하는 것에서 벗어나 남성복 요소들을 도입,
단순한 편리성을 강조한 샤넬 정장도 또 하나의 혁명이었다.
자신이 만든 향수'샤넬 넘버5'의 모델이 되어1937년 패션매거진 <하퍼스 바자>에 게재된 광고 사진
2012 S/S 샤넬 collection
2012 샤넬 파리-봄베이 공방 collection
인도의 마하라자 궁전을 재현하여 화려한 런웨이를 만들었다.
2011년 파리-비잔틴 공방 collection
런웨이
10개의 카펫과 150개의 쿠션 그리고
60kg의 진주 비즈가 궁전의 입구에 드리워진 커튼을 장식하여 이스탄불 비잔틴 룸을 재현
샤넬 핸드백
샤넬의 기본 핸드백
프라텔리 로제티
1953년 프라텔리와 동생 레나토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태리 구두 전문 브랜드로 이태리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구두 브랜드로 손꼽히고 있으며,
밀라노를 거점으로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럭셔리 구두 브랜드이다.
전통과 트렌드를 믹스한 완벽한 스타일로 매니아들에게 각광 받는다.
RENE CAOVILLA 르네 까오빌라
1950년대 이태리 구두 명장인 에도아르도 까오빌라와 그의 아들 르네 까오빌라에 의해
발렌티노,크리스티앙 디오르와 같은 최고급 오트쿠튀르 슈즈 제작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밀라노에 부티크 오픈을 시작하여 두바이, 동경, 베벌리 힐즈 등지로 영역을 넓혀 오고 있다.
세계적인 유러피안 하이엔드 멀티 슈즈 클래식과 시크함을 오묘하게 조화시킨 오트쿠튀르 슈즈.
전지현 웨딩구두 200만원대
donna carolina
카니발은 교회력으로 사순절 고난 기간전에 여흥을 갖는 절기를 이른다.
2월말부터 3월초에 걸쳐 2주동안 열리는 베니스의 카니발이 유명하며,
그 절정이 가면무도회이다.
귀족들이 신분을 숨긴채 파티를 즐기기 위해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한다.
카니발이 시작되면 와인 수도가 설치 되어, 수도꼭지를 틀면 와인이 나온다 한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기간에 여행을 한다면 와인을 대접으로 마실 수 있을것 같다.ㅎㅎ
다양한 가면들
각종 가면과 악세사리들
화려한 베네치아의 장신구들
소다유리와 15세기에 개발된 거의 무색의 크리스탈에 의한 그릇류,
장식품이 특히 환상적 형태인 술잔과
유백색의 가는 유리를 그물 모양으로 녹여 만든 그릇류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베네시안 글라스란 말이 따로 있듯이 베네치아는
13세기부터 독특한 기법으로 아름다운 유리 공예품을 만드는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
이미 13세기 말에 제작 기법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베네치아 본 섬 북쪽으로 2Km 떨어진 무라노섬으로 유리공장을 강제 이주시켜 조직적으로 생산 했다.
무라노는 지금도 베네치아 유리 공예품의 집산지로 유명하다.
베네치아 유리는 불어서 만드는 수법을 사용하여 짙은 색채를 내며,
갖가지 금속을 넣어 빚은 화려한 색채, 에나멜 기법 그림으로 유명하다.
레이스 무늬, 다이아몬드 칼로 새긴 무늬, 비취무늬 같은 다양한 무늬를 넣는 기법을 발명했고,
수정을 모방한 크리스탈 제품을 처음 개발한 곳도 베네치아이다.
출처: 네이버 백과 사전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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