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여행 제2일~제5일 바이킹의 나라 노르웨이
입헌군주국인 노르웨이의 정식 명칭은
노르웨이왕국으로 비교적 늦은 872년에 통일 국가를 이루었으며,
14C 경에는 칼마르 연합에 의해 덴마크 왕의 지배를 받았다.
덴마크의 지배는 19C까지 지속되었고
이후 1814년 킬조약에 따라 스웨덴의 지배에 들어가게 된다.
노르웨이의 독립은 1905년 국민투표에 의해 이루어졌다.
노르웨이 지도와 국기
유럽지도
북유럽 지도
노르웨이
세계 지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는 노르웨이의 총면적은 323,877㎢이다.
동부쪽으로는 소련, 핀란드, 스웨덴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서부에는 노르웨이해, 북해와 대서양이 위치해 있다.
2만㎞가 넘는 해안선과 남단에서 북단까지 일직선으로 1,750㎞나되는 피요르드로 유명하다.
국토의 형태는 남북으로 좁고 긴 형태를 하고 있으며, 국토의 30%가 북극권에 속해 있다.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2,000여개의 섬을 포함하여 약 15만개의 섬을 가지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3국(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연합(1397-1523)국의
일원으로서 총 면적은 남한의 4배 크기이며,
인구는 460만명에 불과하지만 개발도상국에 많은 원조를 하고 있는 대표적인 복지국가이다.
전국토의 80%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으로 10km당 1명의 인구 분포를 이루고 있다.
국토의 길이는 2천 km, 피요르드 해안선의 총 거리는 2만km로 지구의 반 바퀴에 해당한다.
1969년 북해 유전에서 브렌트유라고 불리어진 품질이 좋은 석유가 발견되었는데,
석유가 산출되면서 이로 인한 엄청난 이윤을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있다.
노르웨이 국민소득은 연 10만불(통계마다 약간씩 다름)로 세계2위이며,
국채가 하나도 없는 나라이다.
석유수출로 국민소득 세계 1위인 카타르를 잘사는 나라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부가 국민 소수에게 편중되어 빈부격차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반면 노르웨이 국민은 소득수준과 삶의 수준이 모두 비슷하다.
약 30%~50%의 세금이 수입에 따라 다른 세율로 적용되니 결국 세금을 제외하면
사장님의 월급이나 근로자의 월급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대는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지만
앞으로 석유가 고갈될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상당 부분 다시 석유펀드라는 형식으로 저축한다.
북극해와 노르웨이를 끼고 있는 노르웨이는
국토의 절반 정도가 북극권에 속해 지형이 매우 거칠고 험하며,
이러한 지리적 여건상 도로교통보다 해상교통이 발달했다.
노르웨이(Norway)라는 이름도 바이킹 시대(8~11세기 무렵) 당시
남쪽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항해하는 길을
‘북쪽으로 가는 길’로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하랄 5세 국왕과 손야 왕비,호콘 왕세자와 메테마리트 왕세자비
노르웨이는 중세 이후 덴마크와 스웨덴의 지배를 받다가
1905년 스웨덴으로부터 완전 독립하면서
덴마크 왕통의 호콘 7세 (영국 에드워드 7세의 손자)가 초대 국왕이 되었다.
총리가 이끄는 국가평의회가 실질적인 집행권한을 행사한다.
왕은 의회의 동의를 얻어 총리·국가평의회를 형식적으로 선정한다.
하랄 5세 1994년 발행 화폐 20Kroner
하랄 5세는 1937년 2월 올라브 5세와
스웨덴 공주 출신인 메르타 사이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1991년 1월 올라브 5세의 사망 후 즉위하였다.
1968년 노르웨이 최초로 평민 출신인 소냐 하랄센과 결혼하여
공주 마르타 루이스(1971년생)와 왕세자 호콘(1973년생)의 1남 1녀를 두었다.
하랄 5세는 1370년 올라브 4세의 탄생 이후 567년만에 노르웨이에서 출생한 왕자로,
왕세자 시절에 요트 국가대표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였다.
2006년 9월 건강이 악화되어 왕세자인 호콘이 섭정을 맡고 있다.
공사중이라 출입이 통제된 궁전
하랄 5세 일가가 거주하는 오슬로의 슬로테트 궁전은 19세기 초반
노르웨이와 스웨덴왕을 겸했던 카를 14세의 노르웨이 궁전으로 지어졌다.
보통은 궁전과 정원까지 모두 일반에게 공개 되어 있다.
세계 제일의 소득을 가진 부유한 나라의 왕궁이
너무나 검소한 것을 보고 많이 놀랬다.
유럽의 국가들은 대부분 ( 프랑스 .독일. 스웨덴. 덴마크.등 27개국 )은
유럽연합 국가이지만 노르웨이는 국민투표 결과
두차례나 반대표가 많아 아직은 EU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노르웨이는 산림자원이 풍부해 목조주택이 거의 대부분이다.
노르웨이에는 섬이 15만개나 되는데 그중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2천여개이며,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계속되고 겨울에는 3-4시간만 해를 볼 수 있는 긴 밤이 계속된다.
우리나라보다 4배 정도 큰 땅을 가졌지만 국민은 겨우 500만명뿐이다.
이중 10분의 1인 50만명이 오슬로에 거주하니
노르웨이 교외는 그야말로 자연을 자연 그대로 향유하며 살아간다.
노르웨이 중산층 상당수가 캐빈을 가지고 있어 가능하면 거의 매주 주말 별장에 간다.
캐빈은 다양한 레저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산이나 바다에 짓는다.
해변에 있는 전망좋은 집들이 캐빈이고, 개인 소유의 요트가 있다.
노르웨이 사람의 약 10%는 개인 요트를 가지고 있다 한다.
뉴에이지 그룹 시크릿 가든의 나라이며 근대 사실주의 희극의 창시자 헨릭 입센과 그의 서사시인
주말에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
캐빈에는 전등 대신 초로 불을 밝힌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장은 집과 다르길 원하기 때문에
전등이 없거나 수돗물이 없는 것을 원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잘 구사하지만
프랑스인만큼이나 영어로 말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유럽 공통화폐인 유로가 통용되지 않는다.
사실 노르웨이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다.
굳이 다른 회원국과 어깨동무하지 않아도 홀로 충분히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킹의 나라답게 선박 강대국이며 석유 매장량이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아부다비 등에 이어 세계 5위다.
척박한 툰드라 지역에 사람 사는 집이 있다.
자연을 훼손 하지 않고,
자연에 적응해 가며 살아가는 노르웨이 사람들은 과연 바이킹의 후예답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로 꼽는 노르웨이는
아름다운 산맥들과 피요르드, 거대한 빙하가 있는 곳이다.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는 노르웨이의 의료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다르다.
아플 때 마음대로 병원을 찾아가면 안 되고 먼저 패밀리 닥터에게 신청을 한 후
보통 3주에서 5주간을 기다려야 의사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의사의 진료 1회에 무조건 4만원의 진료비를 지불해야 하며 연간 40만 원 이상의 의료비에 대해서만 무료이다.
환자가 아무리 통증을 호소해도 의사가 아무 문제가 없다는 판결이 나면 다음 면담 때까지 3주를 더 기다려야 된다.
이곳에선 '아레멘떼‘ 라는 말이 있는데 ’무조건 기다려‘ 라는 뜻이다.
자신이 아프다고 의사에게 전화나 이메일을 해서도 안 되며 의사의 2회 차 검진을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2차 검진기관 (큰 병원)에서 사진을 찍어보거나 하기 위해서는 2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
어쨌든 이곳에서 암에 걸리면 기다리다가 말기암환자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의사가 이곳에서도 여전히 인기 있는 직업이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의료시스템적인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한다.
아프면 당장 큰 병원에 달려가서 사진 찍어 보고 수술날짜 잡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의료체계이다.
사회 평등을 지향하는 이 나라에서도 부유층은 절대로 무료 국가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으며
많은 돈을 지급해야 하는 프라이비트 병원을 이용한단다.
그러니 의료비가 싼 해외로 의료관광을 많이 가기도 한단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비가 내리면 비를 피하지 않고 잘 맞는다.
비를 맞으며 걷고, 자전거도 타고, 볼 일도 본다.
북극 가까이 위치한 노르웨이는 겨울이 6개월이나 될 정도로 매우 길다.
겨울에는 해가 12시~오후3시까지 3시간 정도만 떠있고
북쪽 지방에는 11월말에 해가 지면 10주 동안이나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는 곳도 있단다.
여름은 5월말에서 9월말까지이다. 이때는 또 밤이 3~4시간 정도로 짧다.
이 4개월 동안 사람들은 햇볕에 미친다.
오후 3~4시면 퇴근해서 햇볕을 쬐러간다.
공원에서 다 벗어 던지고 햇볕에 온 몸을 내 맡긴 사람들
이 곳 사람들은 너무 외로워서 개를 키운다고 한다.
개는 가족이므로 집에 불이나면 노약자, 여자, 개, 남자어른 순으로 구조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단다.
아이들을 추위에 단련을 시키기 위해 유아원이나 유치원에서는 유모차에 태운채로 옷을 많이 입혀 추운 밖에 내 놓기도 한단다.
세계 최대 연어 생산국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49%를 점유하고 있다.
연어 요리는 젓갈류 같은 연어, 훈제연어, 올리브등에 가미된 연어, 양념에 쪄서 나오는 연어등 다양하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피오르드 끝 부분에 세워진 조용한 항구 도시다.
원래는 아케르 강 남동쪽에 있었으나, 1050년경 하랄 하르드로데 왕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 후 1624년 대 화재로 파괴된 것을 크리스티안 4세가 아케르스후스 요새 성벽 아래에 신도시를 세워 크리스티아니아라고 불렀다. 19세기 인구가 늘어나 베 르겐 보더 커진 크리스티아니아는 1925년 현재 이름인 오슬로라고 이름을 고치고 확고부동한 노르웨이의 중심수도로 자리 잡았다
9백여년전 북유럽을 주름잡던 바이킹들이 가장 사랑했던 도시 오슬로는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때인 8세기 이후로 바이킹의 활동이 두드러져 바이킹의 수도라는 별명을 얻었다.
피요르드의 북쪽 안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도시의 인구는 465,000명이다.
타 유럽국가들의 수도와는 달리 시골과 같은 한적함을 느낄 수 있으며,
면적의 3/4이 삼림과 전원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여름과 겨울 내내 수영과 스키를 즐기고자 하는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드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자연을 훼손한다고 고속도로도 만들지 않는 노르웨이라 하는데역시나 수도 오슬로의 차도도 2차선이 대부분이었다. 브릭스달 빙하
뭉크 미술관
그의 초상화가 1000크로네 지폐에 들어 있을 정도로 노르웨이 국민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예술가 뭉크.
뭉크 미술관은 1863년에 태어나 1944년에 사망한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탄생 100주년(1963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관했다. 뭉크는 그가 소장하고 있던 1,200점의 그림과 4,500여점의 데생, 18,000여점의 인쇄물, 6개의 조각 작품 등을 조건없이 오슬로 시에 기증했고, 오슬로 시는 뭉크 사후 1946년 뭉크 미술관을 개관하기로 결정하고, 1951년 박물관 건축공모전을 열어 당선작으로 공사를 시작해 뭉크 탄생 100주년이 되는 1963년 5월 29일에 일반인에게 그 모습을 공개했다. 현재 뭉크 미술관은 뭉크의 작품과 편지, 저서 등 2만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중 500여점만이 상설 전시관에서 볼 수 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교체 전시한다.
(글 참고, 출처:두산백과,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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