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오슬로] 오슬로 시청

푸른 바다. 2013. 7. 13. 02:07

오슬로 시청사

 

 

 

 

 

비겔란 조각공원을 보고 오슬로 시청으로 왔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윗쪽 지방에서의 홍수로 결국 오늘 돔바스로 올라가지 못하고

오슬로에서 1박을 더 해야 한다고 인솔자가 말했다.

결국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게이랑에르 피요르드와 뵈이야빙하,

피얼란드 빙하박물관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대신 기존 관광 코스에

노르웨이 민속박물관과 홀멘콜렌 스키점프경기장 그리고 오페라하우스를

추가하는 오슬로 전일 관광을 하고

내일 햄세달을 거쳐 구드방겐에서 송네피요르드 투어로 대체 한다고 한다.

게이랑에르 피요르드는 평소에도

길이 열리는 여름철 3~4개월 정도 밖에는 볼 수 없다는걸 알고 있었는데,

이번 여행코스에 들어 있어 기뻐하며 기대를 많이 하고 볼 날을 기다렸었다. 

그런데 자연재해라 어쩔수 없음에도  못 본다는 사실에 무척 실망이 되었다.

 

오슬로시 청사 전경

 

오슬로는 피요르드 해안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노르웨이의 수도이며  

이 나라 최대의 도시로 인구는 465,000여 명이다

마치 전원도시를 연상하게할 만큼 숲이 많은 오슬로는 거의 1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050년 노르웨이의 마지막 바이킹 왕이었던 하랄 왕이 도시의 기반을 만들고,

1299년 호콘 5세에 의하여 정식 수도가 된 후 한자동맹의 항구로서 번영했다.

1624년에 일어난 대화재 후에 재건되었으며  

한때는 지배를 하고 있던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4세의 이름을 따서 크리스티아니아로 불리기도 하였다.

오슬로라는 이름은 덴마크의 지배가 끝난 1925년 1월1일부터 불리기 시작하였다.

도시의 크기는 남북 약 40㎞, 동서 약 20㎞로서 면적이 매우 넓다.

그리고 도시 안에는 녹지와 숲과 공원의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또 피오르드가 들어와 있어서 경치가 아름답다.(출처: 위키백과)

 

오슬로 시청

 

두 개의 탑이 좌우로 대칭되어 솟아 있는 현대식 건물인 오슬로 시청사는 

오슬로 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해서 1950년 완공된 건물로 

외관만 보면 심플하다 못해 딱딱하다는 인상마저 주지만 내부는 겉모습과는 달리 매우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건물 1층과 2층에는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거대한 유화가 있고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예술가 뭉크의 인생이라는 작품을 비롯해 수 많은벽화와 그림이 있다.

 노르웨이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바이킹 신화,

그리고 노르웨이의 문화와 역사 등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 벽화이다.

 제2차대전 당시 독일군 점령으로 인한 어두운 역사도 잘 표현되어 있다.

오슬로 시청사의 이 중앙홀에서는 매년 12월 노벨 평화상 수상식이 행해진다.

 평화상을 제외한 다른 부문의 노벨상은 노벨의 모국인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선정하고 수상하지만

평화상만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오슬로 의회가 선정하고 수상하는데

노벨이 왜 이런 유언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많은 이들이 이를 궁금히 여기고 있다.

(출처: 두산백과)

 

오슬로시 시조인 백조 분수대

양쪽 회랑에 16개의 에다 목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청앞 분수대에서 본 풍경

 

 

오슬로 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해 세운 것이 지금의 시청 건물이다.

전국의 건축가를 대상으로 작품을 공모, 그중에서 2명의 설계안을 채택해 1931년 부터 공사에 착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잠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으나,

 1050년 하랄 왕이 오슬로 시의 기초를 확립한 지 꼭 900년 뒤인 1950년 완성되었다.

 

 

 

 

처음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 하노라. -노르웨이 시인 군나르 롤드크밤-

지난 2000년 노벨평화상 노벨위원회 베르게 위원장이 바로 이 오슬로 시청의 중앙 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 수상을 선정한 이유를 발표하면서 인용한 말이다.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한 남북한 화해의 절차를 위해

 평화상을 수여 하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베르게 위원장은 그와는 별도로 김대통령의 인권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만으로도

수상후보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설명했다.

 

헨릭 쇠렌센(1882~1962)의 노동, 행정, 축제라는 그림이다.

 

노르웨이의 문화와 번영을 그린 유럽에서 제일 큰 유화로  

 가로 42m, 세로 13m의 나무판에 그렸다.

                                                        

1층 콘서트홀

 

2000년 12월 10일 오후 4시30분 시청사 콘서트홀에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노벨평화식이 거행되었던 곳이다.

 시상식 날짜와 시간은

같은 시간 이탈리아 산레모 휴양지에서 숨을 거둔 노벨을 기리기 위해서 정해졌다 한다.

노벨상의 다른 5개 부분은(문학, 의학, 물리, 화학, 경제) 노벨의 뜻에 따라

노벨상 수상자 선정 발표는 스웨덴의 한림원에서,

시상식은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거행된다.

그러나 노벨평화상만은 노벨의 유서에 의하여

노르웨이 퇴임 국회의원 5명으로 구성된 노벨위원회가 발표하며,

 홀에서 노벨 평화상이 수여된다.

시상식 또한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사에서 거행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이 자리에서 조수미는 사랑의 기쁨을 불렀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점령으로 고통 받았던 사실들을 그림으로 표현

 

 

이 커다란 벽화 그림들은

독일군 점령기에 억압받는 오슬로 시민의 모습 들을 주로 묘사하여

 당시 고통 받던 국민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정면을 향해 왼쪽부터 이야기 순서대로 놓여 있다.

 

 

  

2층 테피스트리가 걸려 있는 방

 

2층의 접견실에 뭉크의 인생이 걸려 있다.

 

뭉크의 인생

처음에는 독일의 드레스덴에 있었으나

히틀러가 싫어해서 반환된 그림이라 한다.

 

 

테피스트리와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저 창문으로 밖을 보면 오슬로피요르드가 바로 보인다.

 

 

악셀 레볼트 (1887~1962)의 그림이다.

 위의 그림은 조선해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맞은 편에는 농업과 목축 그리고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활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들은 표현주의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노르웨이인의 생활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과 목축 그리고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활이 그려져 있는

악셀 레볼트의 그림이다.

 

창 밖 풍경

2층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오슬로 피요르드에  

각종 요트와 선박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보인다.

 

2층에서 바라본 창 밖 풍경

 

노벨평화상을 수여 받은 사람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함께 만찬을 하는 곳이다.

사람은 평등하다. 이런 의미로 누드로 그렸단다.

 

옆의 벽에는 현재 노르웨이 국왕과 왕비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관광객중 한 분이 미국의 유명한 피아노라 하는데...

 

현노르웨이 국왕과 왕비인 하랄 5세와  소냐 왕비

초상화 배경이 독특하다.

 

노르웨이의 국왕은 헌법상 교회의 수장이며,

총리 및 각료 임명권, 법률거부권, 국군통수권을 보유하나 형식적인 권리일 뿐이다.

2012년 현재, 노르웨이의 국왕은 하랄 5세로 1991년 1월 21일에 즉위하였다.

 하랄 5세 국왕은 손야 왕비를 두고 있으며, 슬하에 호콘 왕세자와 메테마리트 왕세자비, 루이즈 공주등이 있다.

노르웨이의 왕실은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네이버지식백과

 

 

하랄 5세(1937년 2월12일 ~ )는 노르웨이의 왕(1991년 1월17일 ~)이다.
                 울라프 5세전 국왕과 스웨덴 왕실의 메르타공주 사이에서의 막내로 오슬로 근교 스카우굼 왕실 영지에서 태어났다.

1940년, 나치군이 오슬로를 공습하자 런던에서 할아버지를 보좌해 망명 정부를 지휘하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모친 및 누이들과 함께 노르웨이를 떠나 전후까지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칩거하였다.

1955년, 오슬로 대학에 진학, 노르웨이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1960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 베일리얼 칼리지에서 역사및 경제학을 수학하였다.

 1968년 평민 소냐 하랄센과 결혼하여 장녀 마르타 루이세(1971년생), 왕세자인 장남 호콘(1973년생)을 두었다.

2001년 미혼모 여성 메테마리트 셰셈외이비를 맏며느리로 맞아

2004년에는 장차 여왕이 될 손녀 잉리드 알렉산드라(2004년생)가 태어났다.

2003년 12월 방광암으로 입원한 데 이어 2005년 초에는 심장병으로 또 다시 입원(호콘이 섭정이 됨)하는 등

흡연으로 인해 건강에 이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00년 노벨 평화상 수상 차 오슬로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바 있다. (출처:위키백과)

 

노르웨이 왕세자빈 메테마리트 ( 1973년 8월 19일~ )는 호콘 왕세자의 아내로  현재 노르웨이의 왕세자빈이다.

 호콘 왕세자와 혼인 전에 마피아와 관계를 가져, 마리우스 보르 호이뷔란 아이가 있는 미혼모 여성이었다.

 이 때문에 노르웨이에선 호콘 왕세자와 그녀의 결혼 문제는 큰 화제가 되었었다.

왕세자비가 된 이후에도 두 명의 아이를 더 낳아,

장녀인 잉리드 알렉산드라 공주는 현재 노르웨이의 왕위 계승 서열 2위다.

 

왼쪽부터 하랄 5세, 소냐 왕비, 하콘 왕세자, 메테마리트 왕세자비.

하랄 5세 취미가 혼자서 수도 오슬로 시내를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는건데

 왕실에서 하랄 5세에게 경호붙이겠다고 하니까 

 내게는 경호원이 400만명(즉 노르웨이 국민)이나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라고 했다 한다.

또 왕세자비인 메테마리트의 경우

 노르웨이에서 마약공급책으로 활약한 범죄자의 전 애인이고

 왕세자비 본인도 마약을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데다가 범죄자의 아이까지 낳았는데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나중에는 왕세자가 좋아하면 그만 아닌가하고 결혼을 허락해 주었다 한다.

 

2층에 있는 검소한 시 의회 의사당

 

  회기중이 아니면 일반에 개방하며, 따로 직업을 가지고 명예직으로 무보수이다.

 이는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모두 다 마찬가지이다.

 

의장이 서는 곳에 단상이 없는데

이유는 사람위에 사람없다라는 평등을 나타낸거라고 한다

 

시청 완공 기념 선물들

 

2층 복도에는 시청이 완성됐을때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선물들을 전시하고있다.
우리나라에서 보내온 거북선작품(1994)도  눈에 띄었다

 

서울시의회에서 오슬로 시청에 기증한 거북선 선물

 

중국  서상기라고 적해 있는 인물 도자기

 

에티오피아

 

일본   인형

 

인도   타지마할 대리석 모형

 

스리랑카   코끼리상

 

태국   금빛의 용선

 

 

 

 

 

 

 

 

기념품들

 

 

 

 

 

 

 

 

시청에서 만찬시 사용했던 식기와 글라스들을 전시해 놓았다.

 

 

 

지하실의 화장실 앞 벽화

 

1층 복도의 사진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입장하는 사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설하는 사진

 

공연모습

 

2000년 우리나라 김대중 대통령도 이 곳에서 평화상을 수상했다.

 

 

노벨의 초상

 

 

 

 

 

 

오슬로 시청사는

시청사 공모전에서 뽑힌 Arnstein Arneberg (위 조각상)와 Magnus Poulsson(아래 조각상)의 작품이다.

 

 

 퀼트로 만든 오슬로의 관광안내도

 

시청사를 중심으로 오슬로 시내 풍경을 담은 퀼트 작품이다.

 

 

시청사 복도에 있는 책자 판매대

 

좌우 벽면에는 북유럽 신화 에다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16개의 목판에 담았다.

 

북유럽 신화를 담고있는 서사시 에다에 나오는

 창세신화, 신들의 삶, 지혜, 사랑, 증오, 전쟁, 운명, 복수, 예언 등과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

 

 

이 장대한 신화는 그리스 신화와 함께 유럽 신화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북유럽 신화는 대부분 구전되었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에다,헤임스크링라를 집필한 아이슬란드의 스노리 스툴루손등 후세 학자들이 기록한 자료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북유럽의 기독교 개종 이후에 자료를 남겼지만

옛 신들을 악마로 매도하지 않고 학문적으로 탐구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古 에다는 운문 에다로도 알려져 있으며 13세기 후반에 기록되었다.

 29개의 장시(長詩)를 포함하는데,

그중 11개는 게르만족의 신에 관한 내용이며

나머지는 시구르드(중세니벨룽겐의 반지의 지크프리트에 해당) 등 영웅에 관한 내용이다.

스노리의 에다보다 기록 시기가 늦어지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내용 자체는 더 오래되었기 때문에 古에다라고 부른다.

新 에다는 산문 에다 혹은스노리 에다로도 알려져 있으며

고 에다보다 50년쯤 전 스노리 스툴루손이 기록했다.

 

 

북유럽 신화의 신은 아스와 반 두 신족으로 나뉜다.

요툰, 즉 거인들은 신들과 대적 상태에 있었다.

 북유럽 신화에는 또 앨프 즉 요정과 드베르그 즉 난쟁이, 펜리르라는 늑대,

 미트가르트 뱀 또는 요르문간드라는 거대한 뱀 등이 등장한다.

위그드라실이라는 거대한 서양 물푸레나무인 세계수가 있다

 

 

신들은 아스가르드에 살았다.

거인들은 요툰헤임에 살았다. 땅밑에는 춥고 어두운 니플헤임이라는 저승세계가 있었다.

 그 중간에는 우리가 아는 세상인 미드가르드, 즉 중간계가 있었다.

 

 

오딘은 북유럽 왕가의 조상으로 아스 신중에서 최고신으로 궁전인 발하라에 살며,

여기에서 아스신이나 에인헤르야르라고 하는 전장에서 용맹하게 전사한 용사들을 위해서 축연을 베푼다.

오딘은 군신이자, 죽음의 신이기도 하며,

 한쪽 눈을 담보로 지혜의 샘에서 샘물을 한 모금 마셨기 때문에 지혜의 신이기도 하며,

룬 문자나 마법을 가르쳤는데 두 마리의 까마귀를 보내서 전 세계의 정보를 앉아서 다 알았기 때문에 까마귀신이라고도 한다.

또한 거인의 비장의 시인의 밀주를 훔쳤기 때문에 시의 신이기도 하다.

수요일은 나타내는 영어의 Wednesday는 오딘의 날이라는 뜻이다.

 

 

오딘의 자식 토르는 신들과 인간의 수호자로,

언제나 거인과 싸웠는데 2마리의 산양이 끄는 차를 타고 하늘을 질주하였고

그때 나는 무서운 소리를 천둥소리라고 북유럽 사람들은 생각하였다.

 망치와 힘의 띠와 철장갑을 세 개의 보물로 지니며, 그것은 거인퇴치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무기이다.

천둥의 신 토르는 ‘묠니르의 망치’라고 하는 보배를 갖고 있어 그것을 거인에게 던져 쓰러뜨린다.

 거인을 쓰러뜨린 이 망치는 저절로 날아 돌아오는 망치이다. 

 

 

여신 프리가(Frigg, 금요일(Friday)의 어원)는 오딘의 아내로,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것이 빛의 신 발드르인데 신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선량하며 현명한 웅변의 신이다.

 

 

어느 날, 발드르가 목숨에 관한 꿈을 꾸었기 때문에,

프리가는 지상의 모든 것에 발드르에게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을 것을 맹세시켰다.

 그런데 악신 로키가 서약을 하지 않은 숙목을 화살로 바꾸어서 쏘게 해서 발드르를 죽인다.

 이 로키는 원래는 거인의 자식이었는데, 오딘과 피를 섞어서 의형제가 되고, 아사신의 대열에 들어갔다.

 나쁜 지혜로 신들을 언제나 곤경에 빠뜨리지만, 또한 꾀를 내서 구출하는 것도 그이다.

그에게는 무서운 재난을 낳는 3명의 자식이 있는데 괴랑(怪狼) 펜니르, 미드가르드의 큰뱀, 죽음의 여신 헬이 그들이다.

발데르의 살해를 알고 격노한 신들은 로키를 쫓아가서 붙잡아 바위에 묶었다.

독사를 그의 얼굴에 똑바로 독액이 얼굴에 떨어지도록 묶었으며

로키의 아내는 옆에 서서 통으로 독액을 받다가, 가득 찬 통을 비우러 가는 동안에 로키의 얼굴에 독이 떨어졌고

 이 때문에 맹렬히 발버둥치기 때문에 대지가 흔들렸는데 이것이 지진이라는 것으로

로키는 이렇게 해서 세계의 종말까지 묶여있다.

 

 

오딘의 자식 튜르(Tyr)는 아스신 중에서 가장 용기있는 신인데

군신으로서 오딘보다 오래전부터 숭배되었던 것 같다(그 이름은 영어의 화요일(Tuesday)에 남아 있다). 

 

 

전 세계가 사람도 신들도 거인도 모두 라그나레크에 멸망하게 되는데

먼저 많은 전조와 예언이 그것을 고한다.

 가령 수탉이 소란스럽게 아스가르드에서도 거인의 나라에서도 울어대고,

개가 명부의 문에서 무섭게 짖어댄다.

 

 

이런 세계의 종말에서 신들과 거인족의 처절한 싸움에서는

 신들도 게르만 역사상의 영웅과 마찬가지로 멸망한다.

게르만의 종말론적 운명관에서는,

신들도 멸망하여 그리스 신화나 그리스도교의 신에 대한 사고방식과 눈에 띠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처절한 싸움 후에 이 세계는 멸망했는데,

그후의 일에 대해서 에다는 아름다운 푸른 대지가 바닷속에서 떠오르며,

 이 새로운 세계에 살아남은 신들과 인류가 살고, 발드르는 명부에서 돌아오며,

 성실한 사람들이 영원히 행복한 생활을 보낼 것이라고 예언해서 끝맺고 있다.  

 

 

에다는 세상을 다음과 같이 예언한다.

세계는 창의 시대, 칼의 시대, 폭풍의 시대, 이리의 시대를 거치면서 무서운 겨울이 온다.

 세계의 종말은사악의 신 로키가 풀려나고, 이리가 된 그의 아들 펜리르가 오랏줄을 끊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오딘의 아들인 토르는 뱀인 요르문간드와격투를 벌이다 함께 쓰러지고,

 프레위르는 거인 수르트와 겨루다 죽는다.

 칼을 빼든 오딘의 다른 아들 비다르가 이리의 심장에 일격을 가한다.
온 세상은 수르트가 던진 불길에 휩싸여 종말을 고하고,

세상은 다시 아름다운 푸른 숲에 둘러싸인 새로운 땅이 바다에서 솟아오른다.

그리고 발드르와 함께 세상은 성실한 사람들의 행복한 생활터전이 된다.
(이상 네이버 지식백과, 위키 백과)

 

 

 

시청사 뒷 모습

 

 

바이킹 시대 마지막 왕인 하랄 3세

 

노동자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석공의 모습

 

벽돌공의 모습

 

목수의 모습

 

시청사 뒷쪽 건물 벽 윗쪽에 있는 부조 

 

전설에 의하면 할바드는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1043년 위기를 맞은 어느 여인을 구하기 위해 그의 배에 태워 안전한 곳으로 가다가 둘 모두 잡혀 죽는다.

할바드는 세 발의 화살을 맞았고 맷돌과 함께 묶여 바다로 던져졌으나 며칠 뒤 그의 몸은 맷돌에 묵인 채 바다위로 떠오른다.

이 지방 사람들은 이러한 할바드의 시체를 발견하고 이는 그를 성인으로 추앙하라는 계시로 받아들인다.

 1130년에 오슬로 성당이 완성되고 바로 그 성당 강단 앞에 할바드의 유골이 안치된다.

 이로부터 2세기가 지난 후 오슬로시는 이 전설을 묘사한 그림을 오슬로시의 문장으로 사용한다.

 이 이야기는 시청사를 장식하고 있는 각종 그림 등이 묘사하고 있는 주된 주제이다.

 

 

 이 그림이 오슬로시의 문장이다.

위의 퀼트사진에도 이 문장이 표시되어 있다.

 

오슬로의 수호신인 성 할바드인데 오른손에는 맷돌을 왼손에는 화살 3개를 든 채

두 마리의 사자로 장식된 옥좌에 앉아 있고 그의 발아래에는 한 여인이 누워 있다.

 

숲이 있는 곳으로 올라 가면 아케르스후스성이 나온다.

  

 

  오슬로 시청이 위치한 장소는 본래 항구의 슬럼가였는데

1915년 당시 시장이 이 슬럼가를 정리할 목적으로 시청사를 이곳에 짓기로 결심하고

1918년 건축공모를 통해 새로운 청사의 모습을 확정한 후

1931년 착공하여 오슬로시 900년을 맞아 1950년 5.15 준공하였다.

  

 

 

 

시청 건물 뒷쪽에 있는 공원광장

 

 

여행 끝날 즈음에  타 유럽 국가의 수도들과 비교해 보면 오슬로는

골의 어느 소도시처럼 한적한 도시였던것 같다.

 

 노르웨이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시골이라고 하던 가이드 말이 생각난다.

 

노벨 평화 박물관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노벨 평화상의 모든것이 전시되어 있다 한다.

그리고 2층에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을 전시하는 방이 있는데

그곳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진도 있다고.

 

 

이곳에서는 오슬로 관광 피오르 크루즈라는 범선 세일링을 즐길 수 있는데

실제로는 엔진으로 움직이지만,

나무 갑판 위 마스트(돛대)에는 돛이 말려 있어

1000여년전 유럽 바다를 지배했던 바이킹의 배에 탄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한단다.

 

오슬로 시청 근처의 트램 (전차)

 

오슬로 항으로 이어지는 시청사 뒤편 거리를 로드허스 브뤼게라고부르며

각종 상점과 레스토랑 등이 있다는데

 일정상 가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