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스톡홀름] 스톡홀름 시청사 외

푸른 바다. 2013. 9. 8. 15:49

 

스톡홀름

 

 

 

스톡홀름 시청사, 중앙역,귀족의 집,국회의사당,중세박물관,구스타프 아돌프 광장,

오페라극장,왕립공원,국립미술관,그랜드호텔,구스타프3세동상,에이에프채프만 유스호스텔

 

 

 어제 덴마크 헬싱괴르에서 페리를 타고 스웨덴 헬싱보리에 도착 후

왼쇠핑으로 이동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북유럽 여행 제7일째인 오늘 드디어 북유럽의 베니스라는

아름다운 물의 도시 스톡홀름에 도착하였다.

 

 

스톡홀름은

 통나무라는 뜻의 스톡과 섬이라는 뜻의 홀름이 합쳐 만들어진 이름이다.

 1252년 멜라렌 호수 상류에서 통나무를 띄워 땅에 닿는 곳에 도시를 짓기로 했는데

통나무가 현재의 시청사 부근에 멈췄고,

 당시 만들어진 도시가 스톡홀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스톡홀름은

발트해로부터 약 30킬로미터 거슬러 올라간 지점의

 멜라렌 호수 동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시가는 호수를 끼고 많은 반도와 섬들로 이루어진 물의 도시로서

북구의 베네치아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도시 전체를 감싸고 흐르는 발틱해와 멜라렌 호수가 만나는 지점의

14개 섬이 57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1523년 스웨덴의 국부 구스타프 바사가 스톡홀름을 수도로 정했다.

스톡홀름은 현재 인구 167만의 대도시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대도시라는 평을 듣고 있다. 

 

 

유럽의 건물들은 대개 6층을 넘지 않도록 정부에서 규제를 한다.(신시가지 제외)

 

스웨덴의 카페 체인점인 에스프레소 하우스 

 

 햇빛을 쬐기 위해 거리에 의자를 내 놓고 있다.

 

 

북유럽 4개국 중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가 스톡홀름이다.

스웨덴(북유럽국가)에서는 저녁 6시 이후에는 일체 술을 팔지 않는다.

 

 

유서 깊은 건물이 즐비한 스톡홀름은

1523년 수도로 정해진 이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해 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로 꼽히는 스톡홀름 도심의 작은 공원

 

공사중인 스톡홀름 중앙역

 

 버스에서 찍은 사진이라 미흡해

밑에 사진을 두산 세계대백과사전 두피디아에서 퍼 왔다.

 

 

 광장에는 발명가이자 기계공인 Nils Ericsson의 동상이 서 있다. 

 그는 스톡홀름 중앙역을 재건하고 설계하였으며,

역 내에는 그의 이름을 딴 터미널이 있다. 

 

 

스웨덴에서 가장 큰 역으로 매일 2만 5천명이 방문하는

 북유럽 지역에서 가장 이용객이 많은 역이다.

 

스톡홀름 시청사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

 

스톡홀름 시청사는  스웨덴 최고의 건축가로 추앙받는 

라구날 오스트베리가 설계하고

800만 개의 벽돌과 1900만 개의 금도금 모자이크를 사용하여 1923년에 완공하였다.

 스톡홀름의 상징적 건물이며 해마다 노벨상 수상식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중세 북유럽풍 디자인이 특색이며 106m 높이의 탑과 붉은 벽돌, 고딕양식 창문, 금색 장식 등이 눈길을 끈다.

 북유럽 최고 건축미를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되고 있다.

 

스톡홀름 시청사의 106m 높이의 첨탑이 보인다.

 

 

첨탑 전망대에 올라가면 스톡홀름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첨탑은 5월~9월 10:00~16:30 사이에만 개장한다.

 

 

청사지붕 위의 높이106m 첨탑 위에는 3개의 황금색 크라운(왕관)모형이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스칸디나비아 3국(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의 국왕을 상징하는 의미라 한다.

 

106m의 탑과 담쟁이 덩쿨로 뒤덮힌 적벽돌로 된 시청사

 

 북유럽 최고의 건축미를 자랑하며 스톡홀름의 상징적 건물인 스웨덴시청사는

쿵스홀멘섬 남쪽에 위치했고 1911~1923년에 완성되었는데,

 베네치아궁전의 영향을 받아 시청사라기는 보다 왕의 궁전이라고 느껴지는 곳이며

 내셔날 로만 양식의 건축으로 북유럽의 중세 분위기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시청사  내부 관람은 유료 가이드 투어를 예약해야만 가능하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의 왕이었다는 자부심을 상징하는 세개의 왕관

 

첨탑 꼭대기의 장식들이 다양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청 건물로 손꼽히고 있는 스톡홀름 시청사 

 

 시청사는 죽기 전에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 올라와 있다.

 

 

붉은 벽돌의 건물 외관과 아름다운 고딕식 창문이

 멜라렌 호수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북유 중세풍의 디자인이 독특하며 베니스  궁전의 영향을 받았다고하는 외관

시청이라기보다는 궁전이나 고성 분위기가 느껴지며,  

매년 12월, 노벨상 시상식(스톡홀름 콘서트홀) 후 축하 연회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스톡홀름 시청사의 첫인상은

 고딕풍의 유리창과 조화를 이루어 궁전과 같이 웅장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멜라넨 호수와 어울러진 정원은

우리나라로 옮겨 오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정도로 아름다왔다.

 

베니스의 두칼레 궁전이 연상된다.

 

 

이탈리아 도시들의 르네상스적 흥분이래, 이와 견줄 만한 건축물은 없었다.

W.B.예이츠

 

 

노벨상 시상은

물리학상, 화학상, 생물-의학상, 경제학상, 문학상은 스톡홀름의 콘서트 홀에서 시상되고

평화상은 노르웨이 오슬로시청에서 거행된다.

전체 여섯 부문으로 수학상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당대 최고의 수학자 레플러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란다.

 

노벨상 중에서 경제학상은, 노벨이 아니라 스웨덴 중앙은행이 창립 300주년을 기념하여 1968년에 만든 상이다.

 

 

스톡홀름 시청사는 스톡홀름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건물이다.

 

 

비잔틴 양식의 창문

  

 

 

 

건물의 서쪽에는 블루 홀과 골든 홀이 있다.

 블루 홀에는 대형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는데 오르간은 총 10,270개의 파이프로 구성되어 있어

스칸디나비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블루 홀 위쪽에 있는 골든 홀에는 스웨덴 역사를 모티브로 한 대형 금박 모자이크 작품이 있다.

 

 

 

 

 

내부 투어를 하지 못한 관계로 같이 여행한 일행분들을 위해

 밑에 내부 사진들은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들이다.

 

 블루 홀

 

 블루 홀은 원래 바닥 부분(푸른빛 대리석)처럼 홀 전체 벽을 푸른색으로 만들려 했으나, 

 노을이 붉게 물든 어느 오후  이 방을 물들인 노을 빛의 아름다움에 반해 

붉은색 벽돌로 마무리 했는데 홀 이름은 처음 지은 그대로 놔 두었다고 한다.

 

 계단은 하이힐 신고, 드레스 입고 가장 편하고 우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인데

폭은 약간 넓고 두께는 얇으며 드레스가 밟히지 않게 계단 끝은 둥글게 마무리했다.

 

블루 홀에서의 만찬 사진

 

블루 홀 계단에서의 공연 장면

 

 

 계단 복도 끝에는 시청사를 지은

건축가 라구날 오스트베리의 모습이 문 위에 조각되어 있다.

 

황금의 방

 

스톡홀름 시청사 2층의 황금의 방은 노벨상 시상식 후 축하 무도회가 열리는 길이 44m의 연회장이다.

1층 푸른방에서 식사를 하고 이곳 황금의 방에선 무도회를 연다.

무도회가 열릴 경우 최대 7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이 황금의 방은 스웨덴의 화가 아이나르 포르세트가 디자인하고

200여명이 2년동안 작업을 하여 만든 고대 비잔틴 스타일의 작품들로 장식되어 있다.

 사방벽은 모두 스웨덴의 역사와 건축을 그리고 있다.

 

 황금의 방 (Gyllene Salel)

 

2층 황금의 방은 노벨상 시상 때 무도회장으로 사용되는 곳으로 

모두 1900만개의 금박 모자이크로 벽면이 장식되어 있다.

여기에 들어간 황금량은 10kg이 들었다 한다.

 

스톡홀름시를 수호하는 멜라렌 호수의 여신

 

 멜라렌 호수 여신의 커다란 눈과 입은

세상을 두루 잘보고 제대로 말하라는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으며,

 뱀같은 머리카락은 호수의 파도를 뜻한다.

 넘실거리는 파도위에 존재하는 것도 스톡홀름이 자리잡고 있는 호수와 왕국을 의미하며, 

여신의 왼쪽에는 서양, 오른쪽에는 동양의 모습을 그려넣어 동서양의 중심에서

화합을 이끄어 가는 스웨덴을 상징하였다고 한다.  

 

 

 검소한 스웨덴인들이 만든 방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1900만개의 비잔틴 양식의 금박 모자이크로 장식된 화려한 벽면이 환상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스톡홀름 시 의회

 

시의회 건물은 바이킹 배를 뒤집어 놓은 듯한 바이킹식 구조의 독특한 천장,

  동양적인 문살무늬의 벽이 독특하다. 

시의원은 모두 101명이며 그 중에 여성의원이 56명이다.

  매 격주 월요일에 스톡홀름 시 의회가 개최된다.

일반 관광객의 입장은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자유 입장은 허용되지 않는다.

 

노벨상 연회에 쓰이는 집기들

 

12월 10일 노벨이 사망한 날에 열리는 노벨상 수상 후축하 만찬회는 블루홀에서 열린다. 

 

이 회랑 끝에는

 

 

벽면에 부조들이 붙어 있다.

 

 

회랑의 벽면에 있는 몇개의 부조들 중 알 수 있는 건 알프레드 노벨이라는 이름 뿐이다.

매년 12월 노벨이 사망한 날 시상되는 노벨상 시상식과 수상 축하파티가 이 곳 시청사에서 열린다.

 

 

노벨시상식에 사용되는 모든 꽃들은 해마다

노벨의 마지막 거주지였던 이태리 San Remo에서 기증한단다.

 

 

스웨덴의 국가적 마스코트인 목마 달라헤스트

 

 시청사 입구에는 스웨덴의 상징 달라헤스트가 있고

그 뒤 벽에 노벨과 노벨상을 상징하는 내용의 부조가 있다.

 

 

 감라스탄 스토르토에트 광장에서 벌어진 1520년 스톡홀름 대학살 당시

덴마크에 유학 중이던 바사왕조의 구스타브 1세가  달라르나 지역으로 도망가

이듬해 덴마크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1523년 스웨덴을 독립국가로 세웠다고 한다. 

 그 때 구스타브 1세가 숨어 있었던 달라르나 지역엔 말이 많은 곳이었고 

 그 곳 아이들의 목각 말 인형으로부터 달라헤스트는 스웨덴의 상징이 된 것이라고 한다.

 

각종 달라헤스트

 

부를 상징하는 빨강과 건강을 상징하는 파랑 달라헤스트를

결혼하는 이들에게 선물로 준단다.

 

 

힘, 용기, 충성, 지혜, 존엄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달라헤스트

  

스톡홀름 지명의 근거가 된 통나무 모형

 

 스톡홀름은 도시 건설 전 상류에서 통나무를 띄워 도착한 지점에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그 통나무가 도착한 지점이 바로 이 모형이 있는 곳이다.

 

건물을 돌면

 

 

시청사 앞면에 13세기 스웨덴의 통치자이자

스톡홀름을 건립한 비르예르 얄(Birger jarl) 왕의 관이 있다.

그러나 관 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상징적으로 만들어 놨단다.

 

비르예르 얄 (Birger Jarl, 재위 1250년~1266년)

 

9∼11세기의 바이킹시대를 거쳐

13세기 중엽 스웨덴에서는 최초의 왕조 창시자로 알려진 비르예르 얄이

 법률을 정비함으로써 왕국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비르예르 얄 왕은

교회와의 협력을 통해 강력한 중앙집권국가 형성을 도모하는데 중점을 두었고,

 통일국가의 기초를 닦았다.

 

스톡홀름 시청사 앞의 도시 공원과 멜라렌 호수

 

맞은편에 감라스탄이 보인다.

 

 

 

스톡홀름은 북유럽의 베네치아라 불릴 정도로 운하가 발달한 곳이다.

 

 

 

15세기 스웨덴의 혁명가 엥겔브렉트의 동상과 각종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파란 호수와 잔디밭에 설치된 각종 조각품,

중세의 교회 분위기를 자아내는 20세기 북유럽 최고의 건축미를 자랑하는 고풍스런 시청사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 한폭의 풍경화와 같다.

 

 

 

 

스톡홀름은 14개의 섬으로 이뤄진 북유럽의 베니스라 불리는 물의 도시다.

 

 

주변경관이 아름답다보니

시청사는 연인들과 가족 단위의 시민들, 관광객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스톡홀름시에서도 이들을 위해 청사앞 광장뿐 아니라

 시청내부까지 휴식 및 문화공간으로 개방하고 있다.

 

 

멜라렌 호수변에 위치한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는 주변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공원 앞에는 멜라렌 호수가 보이고 호수 저편으론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느긋하게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앉아 쉬고 싶다.

 

유로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스톡홀름을 가리켜 물위의 도시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스톡홀름시는 매일 3차례 외국인을 위한 시청 안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리다르홀름 교회

 

리다르홀름섬에 있는 높은 첨탑의 교회이다.

13세기에 수도원으로 지어진 것이 17세기 이후에는 역대 국왕의 묘소로 사용되고 있다.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첨탑은 1835년 벼락으로 부서졌다가 현재의 주철탑으로 다시 지어졌다.

스톡홀름의 구도시를 이루고 있는  감라스탄

 

왕궁, 대성당, 귀족의 성관, 리다르홀름교회 등이 몰려있다.

 

 귀족의 성관(Riddarhuset)

 

1688년에 건축된 네덜란드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지어져

귀족계급의 회의가 처음 열렸던 곳이다.

 

 

귀족의 집 앞에 있는 동상은 16세기 국왕 구스타프 바사 왕의 동상이다.

 스웨덴과 러시아간의 북방전쟁 초기인 18세기 초,

카를 12세가 에스토니아 나르바지역에서 대승 후,

 노획한 대포로 만든 것으로 무게가 11t이다.

 

스톡홀름 본데 궁전

 

  

아바(ABBA)

 

스웨덴 출신의 보컬 쿼테트 그룹인 아바(ABBA)는,

두 쌍의 부부 그룹으로써 1974년 유로비젼 송 컨테스트에서 Waterloo란 곡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스탠다드 팝 그룹으로 발전했다. 

 

 비요른과 베니는 자신들의 걸 프랜드였던 아그네사, 아니와 함께 

자신들의 이름 첫 자를 이니셜해서 아바(ABBA)라는 그룹명을 만들고 1973년부터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다 .

아바는영국 브리이튼에서 열린 1974년 유로비젼 송 컨테스트에서 Waterloo란 곡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그때부터 스웨덴의 달라 박스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계속 발표한 곡마다 히트하여 전 세계에 아바의 선풍을 불러 일으켰다.

아바 마니아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붐을 일으켰던 아바는

각각 1979년과 1981년에 두쌍이 다 이혼을 했지만 그 이후에도그룹 활동은 계속하였다.

아바는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스웨덴의 국위 선양과 외화 획득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공로상을 받았다.

스웨덴 국왕보다도 더 많은 재산을 지니고 있다는 이들은

갖가지 사업에도 손을 뻗쳐 대 재벌로 성장했다고 한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팝스타소사전, 삼호뮤직)]

 

스톡홀름 안내도

 

시청 인근의 선착장

 

요새 같은 Royal Gripsholm Castle이 있는

  Mariefred 행 보트가 출발하는 곳이다.

 

 

 

1823년에 건축된  노르스테츠(Norstedts) 출판사 건물

 

 

 

국회의사당 둥근 부분의 건물

 

왕궁옆의 국회의사당

 

스웨덴 국회의사당 겸 중세박물관

 

스톡홀름 시내와 감라스탄 사이에 떠있는 작은섬에

  20세기초에 지은 석조건물인 스웨덴 국회의사당이 있다.

 

인구는 950만명 수준이지만,

 정책 결정과 정부 구성의 주체인 국회의원은 349명이나 되는데, 

모두 지역구 의원이 아니라 비례대표제 의원이다.

 국민의 정치 참여율도 높아서,

 4년마다 이루어지는 국정 선거의 투표율은 언제나 80%를 넘는다.

 

스웨덴 의회 (SVERIGES RIKSDAG)

 

 중세박물관 (Medeltidsmuseet)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국회의사당 지하에 있다는 그 위치만으로도 특별하다.

주차장을 만들려다가 발견한 중세도시의 흔적으로 중세도시의 벽을 비롯한 유적들이다.

 Gustav Adolfs와 Gamla Stan을 연결하는

Norrbro 다리의 중간에 지하로 연결된 게단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구스타브 바사 왕
이 16세기 초반에 건축한 스톡홀름 성곽, 7톤에 이르는 유골이 발견된 중세 교회 마당  등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와 유물들이 1970년대에 대거 발굴되었고,

 이때 발굴된 유물들에 관한 전시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박물관이 건립되었다.

성곽과 마당 등을 보존하기 위해 박물관은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2.5배나 많은 스웨덴 국회의원들은 

차량유지비는 커녕 대중교통비조차 지원을 받지 않으며,

국회의원 두 명당 한 명의 비서를 같이 사용한다고 한다.

 

구스타프 아돌프 광장

 

왕립오페라극장 앞 광장에는 구스타프 아돌프의 청동상이 있다.

이 광장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스톡홀름  왕립오페라극장(OPERAN)

 

 노르말름섬 남쪽에 있는 구스타프 아돌프 광장의 유명한 오페라 극장 OPERAN

문화적으로 공헌을 많이 한 구스타프3세가 설립했다.
구스타브 3세는 극본을 쓰는 재능있는 문학인이었으며 스웨덴 예술을 진흥시키기 위한 후원자였다.

스웨덴 왕립오페라극장은 스웨덴의 국립오페라극장으로

오페라와 발레를 주로 공연하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오페란(Operan)이라고 불리는 이 극장은

북구에서는 그나마 가장 전통이 있고 역사가 깃든 훌륭한 극장이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내부는 파리의 국립오페라극장(갸르니에극장)을

 따라서 지었다고 할 정도로 화려한 분위기이다.

 

오페라 극장(Operan)

 

다른 나라의 오페라 극장에 비해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건물 자체보다는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로서 더 유명하다.

 이 오페라 극장에서 이 건물을 건립하도록 지시한 스웨덴 왕이 암살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왕은 구스타프 3세이다.

구스타프 3세의 시대는 스웨덴의 중흥의 시대이며,

또한 문화면에서 로코코시대라고도 불렸다.

 

1792년 3월 16일, 구스타프 3세는 이 극장에서 열린 가면무도회에서 

측근인 야콥 요한 안카르스트룀이 쏜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가 얼마후 세상을 떠났다.

이같은 역사적인 사건이 나중에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의 소재가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외스테르말름 지구의 왕립공원

 

세르겔 광장 남동쪽에 있는

왕립공원은 스톡홀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원이다.

18세기 말까지 궁중 정원으로 왕족과 귀족이 산책을 즐기던 곳이다.

 공원 주변의 카페와 레스토랑은 스톡홀름 시민들로 붐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공연장과 수영장 같은 넓은 분수대가 나온다.

여름에는 이곳 카페에서 백야를 즐기면서 해가 지지않는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다.

 

 카를 12세의 동상이 서 있다.

 

스웨덴의 왕(재위 : 1697~1718). 카를 11세의 아들. 일생 독신으로 지냈다.

스웨덴을 분할시키려는 열강에 대항, 북방 전쟁을 일으키고(1700~21) 한때는 덴마크,러시아,폴란드를 눌렀으나,

 뒤에 포르타바의 전쟁에서 대패하여(1709) 터키로 망명하였다.

 그는 다시 세력을 얻지 못하고, 돌아온 후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의 원조를 얻어 노르웨이로 쳐들어 갔다가 전사했다.

 그는  군사적 천재였으나 전쟁이 끝난 뒤 생각이 모자라 실패하였다.

 

유럽은 도심 곳곳이 공원화 되어

길 가다가도 쉽게 앉아 쉴 수 있게 되어 있어

너무 부럽다.

 

 

 

스톡홀름에서 물의 도시 베니스를 떠 올리게 될 줄 미처 몰랐다.

 

 

이 운하의 물들이 흘러 발트해와 만나게 된다.

 

 

노벨 수상자들이 시상식때 투숙한다는 그랜드 호

 

 

스웨덴은행

 

 

스톡홀름 국립미술관(박물관)

 

 왕립공원을 지나 그랜드호텔을 지나 세프스홀멘

진입다리 직전에 있는 것이 국립박물관이다. 박물관 보다는  미술관에 가깝다.

현재의 건물은 1866년에 이전하여 개관하였다.

 

스톡홀롬 국립미술관

 
스웨덴 스톡홀름의 국립미술관은 북유럽 최고의 미술관으로

스웨덴의 대표적인 화가 안데르스 소른과 칼 다르손의 작품을 중심으로

 렘블란트, 드가, 세잔, 엘그레코, 네덜란드 회화, 프랑스의 17~18세기 회화,

17세기에서 현대까지의 스웨덴 미술공예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구스타프 3세의 동상이 왕궁을 바라보며 서 있다.

 

구스타프 3세의 동상

 

 러시아, 덴마크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스웨덴을 가장 강하게 만들었던 왕 중의 하나이다.

 또한 각종 스캔들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왕이 되기 전 어머니와 사촌이었던 덴마크 왕비의 딸 공주와 결혼했으나

왕비가 된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시어머니와 앙숙지간이었다.

덴마크 땅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결혼이었기에 의회가 승인하였지만 어머니는 이에 대해 불만이 많아

구스타프 3세와 왕비사이가 좋지 않다는 불화설을 소문내고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어차피 정략결혼이었던 구스타프 3세도 이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게이설도 나돌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결혼 8년만에 왕비가 임신을 하게 되어 왕비가 외도했다고 시어머니는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구스타프 3세도 어머니와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었다.  

구스타프 3세가 암살되고 나서 구스타프4세가 왕이 되었으나

핀란드를 잃게 되자 쿠데타가 일어나고, 국왕 승인권을 가졌던 스웨덴 의회는 칼14세 요한을 왕으로 승인한다.

 

 

구스타프 3세 암살 사건이

나중에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의 소재가 되었다.

 

구스타프 3세의 동상

 

가장 유명한 왕이었던 것만큼 일화도 많다.

커피에 대한 부정적 효과를 확인시키기 위해

쌍둥이에게 각각 커피와 차를 먹여 누가 빨리 죽나 시험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암살당하는 바람에 차를 마셨던 쌍둥이가 먼저 죽었다는 것을 확인못했지만...

 

 

유스호스텔 에이에프 채프만

 

강위의 에이에프 채프만 유스호스텔은 1888년에 건조된 훈련용 군함을 개조해 만들었다.

원래 이름은 Dunboyne 였다고 하며

 영국에서, 아일랜드로, 미국으로, 호주로 운행을 하다가 스웨덴에 1915년에 도착하여

스웨덴 해군이 사들여 스웨덴의 유명한 해군이었던

 Fredrik Henrik AF Chapman의 이름을 따서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그냥 보기에는 낡은 배이지만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배다.

 

유스호스텔 에이에프 채프만

 

 워낙 유명한 호스텔이라 몇 개월 전에 예약하거나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투숙할 수 있다고.

선실은 다소 비좁고 환기가 잘 되지 않지만,

 물살에 가볍게 흔들리는 배 안에서 먹는 아침 식사와

창밖으로 보이는 스톡홀름의 구시가지는 특별한 풍경을 선사한단다.

 

 

노르딕 국가란

스칸디나비아에 핀란드, 아이스란드, 그린란드를 더한거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스칸디나비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3국)에서 제일 큰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