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여행 7일째 그룹 아바의 나라 스웨덴
스웨덴 국기
전쟁에 출정하던 십자군에게 로마 교황이
수여한 기에서 유래한, 현존하는 국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덴마크 국기에서 영향을 받았다.
유럽지도
스웨덴 지도
스웨덴은
면적 45만k㎡로 한반도의 2.4배, 남한의 5배이며
인구 수는 950만명으로 수도인 스톡홀름에만 200만이 살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GDP 55,000불, 국가경쟁력 세계 3위,
국가혁신도 EU 1위, R&D 투자 EU 3위의 나라로
1930년 이후 복지국가를 확립하였다.
구스타프 16세 국왕
정식 국가 명칭은 스웨덴왕국(Kingdom of Sweden)으로
입헌군주제의 의원내각제이며, 의회는 임기 4년의 단원제(349석)이다.
할아버지 구스타프 아돌프 6세 국왕이 1950년에 즉위했을 때,
비행기 사고로 서거한 부친 대신 4살의 어린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973년 9월 15일 할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물려 받아
현재까지 스웨덴의 군주로 있는 구스타프 16세 국왕이다.
우리나라에도 실비아왕비와 함께 공식 방문하였다.
실비아 왕비
독일 평민 출신의 실비아 왕비는 뮌헨 올림픽에서 구스타프왕세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전에 실비아 왕비는 뮌헨에 있는 아르헨티나 영사관에서 일했으며,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는 의전부책임자로 일했다.
한때 항공기 승무원으로 일하기도 한 실비아는
스웨덴어, 독일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등
6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수준 높은 통역인이었다.
1976년 6월 구스타프 16세 국왕과 실비아 왕비의 결혼식
앞 좌석 릴리언 왕자비, 구스타프 16세 국왕, 실비아 왕비, 빅토리아공주
뒷 좌석 마들렌공주, 칼 필립왕자
슬하에 2녀 1남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자녀들은 스웨덴 왕위 계승 자격이 있는 빅토리아공주, 칼 필립왕자, 마들렌공주이다.
왕위계승자의 결혼식 비용은 31억원이 들었는데 반은 왕실에서 부담했고 반은 정부예산으로 집행했다.
결혼식장인 니콜라스 대성당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보수하는데 드는 비용이
별도로 약 1천2백만 크로네가 들었는데 이는 정부가 보조했다.
정부예산은 국민의 세금이다. 그래서 일부 국민들은 호화결혼식에 대하여 이래도 되느냐면서 비판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빅토리아의 결혼식을 지지했기 때문에 커다란 반대는 없었다.
성니콜라스 교회에서의 결혼식.
네명의 주교들이 공동주례를 보았으며 대표는 우프살라 대주교였다.
전직 평민 헬스 트레이너와 결혼하여 예쁜 딸을 낳은 차기 스웨덴 왕 서열 1위 빅토리아 공주 부부
평민 헬스 트레이너인 다니엘 올로프 베스틀링은 결혼과 동시에
베스테르예틀란드 공작 작위와 스웨덴의 왕자 작위를 받으면서,
왕실의 성인 베르나도테를 성으로 쓸 권리를 받아 현재 그의 정식 이름은 다니엘 올로프 베스틀링 베르나도테이다.
그와 빅토리아의 자손들은 베스틀링성을 쓰지 못하고 베르나도테란 성을 쓰게 된다.
칼 필립왕자
태어난후 왕세자가 되었으나 1980년 1월 1일자로 왕위계승법이 개정되어
누이인 빅토리아공주에게 왕위계승권 1위를 넘겨주어야 했던 칼 필립왕자는
누드모델인 소피아 헬크비스크와 열애에 빠졌는데
왕자가 일반인도 아닌 누드모델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에
그동안 자유로운 이성교제를 지지해온 스웨덴왕가조차 충격에 빠졌다고.
왕위계승 서열2위였던 왼쪽의 칼 필립왕자는
누나인 빅토리아공주가 딸을 낳자 왕위계승 서열 3위가 되었다.
왕위계승 서열2위는 새로 태어난 에스텔공주로 이변이 없는 한 엄마에 이어 스웨덴의 여왕이 된다.
구스타프 16세 국왕과 앞으로 2명의 스웨덴 여왕이 될 딸과 손녀 3대가 찍은 사진
1980년 1월 1일은 빅토리아의 운명이 바뀐 날이다.
그날로부터 스웨덴의 개정된 왕위계승법이 효력을 발생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일찍이 1810년부터 시행하여온 장자상속권을 폐지하고
첫째 자녀가 왕위를 계승한다는 새로운 왕위계승법을 적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구스타브16세 국왕의 첫 딸인 빅토리아공주가 다음번 왕위계승자로 확정되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스칸디나비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3국)에서 제일 큰 도시이다.
9∼11세기의 바이킹시대를 거쳐 13세기 초에
신왕조를 창시한 비르에르얄이 통일국가의 기초를 닦았다.
14세기 말 인접한 덴마크·노르웨이와 함께 칼마르동맹을 결성하였고,
1523년 구스타브 에릭슨의 지휘 아래 독립할 때까지 사실상 덴마크왕조의 지배를 받아왔다.
1809년 6월 헌법을 제정하였고, 17세기 후반에는 한때 유럽의 강대국으로 국세를 떨치기도 했으나,
나폴레옹전쟁 이후 덴마크로부터 양도받은 영토인 노르웨이가
1905년에 독립함에 따라 오늘날의 스웨덴을 이루게 되었다.
북유럽 4개국 가운데 가장 큰 나라인
스웨덴은 지형적으로 북유럽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곳으로
많은 섬과 호수로 이루어진 나라다.
종교는 노르웨이와 같이 루터교를 국민의 87%가 믿고 있다.
이태리, 중동, 북아프리카를 비롯한 다른나라의 이민과 정치망명을 받아들여
전체인구의 25%가 외국인 혈통이다.
스웨덴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연중 기온이 온화하다.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동일 위도상의 다른 지역보다 따뜻하여
남부와 중부 지방은 여름에 종종 25 ~ 30℃에 이른다.
그러나 북부 지방은 북극 기후의 영향으로 6개월간 영하의 온도가 계속된다.
라플란드 지방은 잦은 눈으로 일년 중 약 200일은 눈으로 덮여있다.
많은 연안 항구들이 겨울 내내 얼어 있는 반면, 스톡홀름 군도는 두어 달만 얼음이 언다.
사회민주주의 전통에 근거하여 모든 공교육 시스템이 무료로 제공된다.
1세부터 6세까지를 위한 유치원 과정, 7세에서 16세까지는 초, 중교육이
모든 사람들이 교육에 공평한 접근이 법에 의해 의무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고등학교는 의무는 아니지만 무료이다.
총 61개의 대학교 교육도 무상으로 제공되며, 심지어는 유학생도 2011년까지는 무상이었다.
교육만큼은 모든 사람이 태어나서 부터 대학교육까지
경제적, 사회적 격차에 관계없이 동등한 접근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100퍼센트 등록금 걱정 없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북구의 낙원이라 불리는 세계최고수준의 복지국가로서,
전국민에 대한 의료혜택·실업수당·무료교육·노후연금 등 완벽한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스웨덴의 1인당 세금 부담은 소득의 50%에 달하기 때문에
복지정책이 가능하단다.
한. 스웨덴 수교 이래 최초로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프 16세와 실비아 왕비가 국빈 방문했었다.
그 때 국왕은 GDP의 50%를 수출로 벌어들이는 인구 950만 명의 작은 나라 스웨덴이
지금과 같은 복지 정책이 가능했던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비(연간 GDP의 5%)를 쏟아 부으며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하여 혁신으로 이룩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복지도 가능했던 것이라 했다
스웨덴은
6.25 전쟁때 의료선으로 우리나라를 지원 해준 나라이며,
1953년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우리나라 교민은 북유럽 국가 중 제일 많은 2000여명이 살고 있다.
최근 유로연합은 도시 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고자
매년 한 도시씩 유럽의 녹색 수도로 선정하기 시작했는데
스톡홀름은 2010년 첫번째로 유럽의 녹색 수도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스톡홀름에서는 출근길 대중교통이용과 자전거 이용 장려하여
출근자의 80%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고,
지난 10년간 자전거 이용자는 130%나 증가하고,
획기적인 쓰레기 배출 과정등을 통해 탄소 배출을 급속히 줄여
2050년에는 탄소 배출을 완전히 없앤다는 계획하에 온 국민이 노력한다는 것이다.
점심은 간단하게 샌드위치 등으로,
공원에서 햇빛을 쬐이며 주로 해결한다.
북유럽 공통인 것 같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되어 그들에게 동조하는
비이성적 현상을 가리키는 범죄심리학 용어이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은행에 침입한 4명의 무장강도가
은행 직원들을 볼모로 잡고 6일간 경찰과 대치한 사건에서 처음 관찰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처음에는 인질들도 범인들을 두려워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그들에게 동화되어 자신들을 구출하려는 경찰들을 적대시하고,
사건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강도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심리현상을 말한다.
스웨덴의 국가적 마스코트인 목마 달라헤스트
시청사 입구에는 스웨덴의 상징 달라헤스트가 있고
그 뒤 벽에 노벨과 노벨상을 상징하는 내용의 부조가 있다.
다이너마이트 발견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스웨덴인 노벨의 유언으로 제정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상이 스톡홀름에서 시상된다.
그룹 아바(ABBA)
스웨덴 출신의 보컬 쿼테트 그룹인 아바(ABBA)는,
두 쌍의 부부 그룹으로써 1974년 유로비젼 송 컨테스트에서 Waterloo란 곡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스탠다드 팝 그룹으로 발전했다.
비요른과 베니는 자신들의 걸 프랜드였던 아그네사, 아니와 함께
자신들의 이름 첫 자를 이니셜해서 아바(ABBA)라는 그룹명을 만들고 1973년부터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다 .
아바는영국 브리이튼에서 열린 1974년 유로비젼 송 컨테스트에서 Waterloo란 곡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그때부터 스웨덴의 달라 박스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계속 발표한 곡마다 히트하여 전 세계에 아바의 선풍을 불러 일으켰다.
아바 마니아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붐을 일으켰던 아바는
각각 1979년과 1981년에 두쌍이 다 이혼을 했지만 그 이후에도그룹 활동은 계속하였다.
아바는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스웨덴의 국위 선양과 외화 획득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공로상을 받았다.
스웨덴 국왕보다도 더 많은 재산을 지니고 있다는 이들은
갖가지 사업에도 손을 뻗쳐 대 재벌로 성장했다고 한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팝스타소사전, 삼호뮤직)]
전설적인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과 그레타 가르보도 스웨덴 출신이다.
그레타 가르보의 스웨덴 이름은 그레타 루이자 구스타프손으로 스톡홀름 출생.
1922년 열일곱살의 그레타는 백화점 점원이었다가 영화계에 데뷔 했다.
스무살에서 부터 오랫동안 할리우드 엠지엠MGM의 인기스타로 있었다.
무성영화시대의 대표작으로 <마타하리>, <안나 크리스티>의 주연을 맡았다.
우수를 머금은 듯한 미모와 어딘지 불행한 면모가 엿보이는 쓸쓸한 분위기는
결국 그녀 자신까지도 폐쇄적인 성격으로 만들었으며,
1928년 연인인 감독 모리츠 스틸레르가 죽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는
36세 때 연예계에서 은퇴, 뉴욕에서 집고양이처럼 틀어박혀 고독한 은둔생활을 하였다.
그녀가 죽은 1990년 4월 15일까지 아무도 그녀 소식을 몰랐다.
말괄량이 삐삐
말괄량이 삐삐로 유명한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도 스웨덴 출신이다.
바사호박물관 옆에는 말괄량이 삐삐박물관이 있으며,
말괄량이 삐삐의 작가 아스트리트 린드그렌의 동화를 테마로 만든
어린이 테마파크인 유니바켄이 유명하다.
말괄량이 삐삐의 원제는 삐삐 롱스타킹으로
스웨덴의 유명한 아동문학가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책이다.
동화작가가 되기 전에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어린 딸에게 자장가대신 들려주던 이야기였다고 한다.
괴력을 지닌 말괄량이 소녀 삐삐 롱스타킹과 이웃집에 사는 토미와 아니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원숭이 넬슨씨와 말 한 마리의 모험담이다.
이케아
이케아는 제2차 세계 대전 전후에 탄생한 전설적인 브랜드다.
여러가지 생활에 필요한 가구들을 손수 조립 생산비와 유통체계를 혁신한 브랜드이다.
1943년 17살의 스웨덴 소년 잉바르 캄프라드는
아버지에게서 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통신판매회사를 설립했다.
회사의 이름은 그의 이름 이니셜 I와 K, 그가 자란 농장과 마을이름인 엘름타리드와
아군나리드의 이니셜 E와 A를 합하여 이케아(IKEA)라고 지었다.
처음에는 볼펜,지갑,액자,시계,장신구 등을 팔았으며 1947년에 가구를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1951년에는 다른제픔들의 판매를 중단하고 가구에만 주력하기 시작했다.
이케아는 독특한 디자인의 가구를 싼 가격에 공급하여 인기를 얻었다.
1956년에는 조립식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조립식 가구는 포장 운송, 창고비용 절감의 효과를 창출하며 이는 다시 제품의 가격인하로 이어졌다.
이에 1963년 처음으로 외국시장으로 진출하여 노르웨이에 첫 매장을 오픈하였고
이후 덴마크, 스위스, 미국, 영국 등 세계 각지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현재 세계 35개국 253개의 매장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곧 들어온다고 한다.
자신의 고향이름으로 회사명을 만들고
이케아 마크의 푸른색과 노랑색 로고 칼라스킴은 스웨덴 국기에서 응용할 정도로 애국심이 깊다.
앱솔루트 보드카
이 보드카는 독한 보드카인 앱솔루트 보드카이다.
60년전 스웨덴에서 처음으로 미국 시장에 자신만만하게 수출한 수출품이다.
첫해에는 만병 남짓 팔렸지만 지금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보드카의 대명사가 되었다.
앱솔루트 보드카 Absolute Vodka,
그 두 단어 사이에 이 보드카의 슬로건 인 컨트리 오브 스웨덴(사랑하는 나의 조국)이 적혀있다.
앱솔투트 보드카는 무색무취의 기존의 보드카에 향기를 불어넣어 개성을 살린 제품이다.
15세기경 스웨덴에서 첫 생산을 시작한 프리미엄 보드카 앱솔루트는
1986년 전 세계 최초로 보드카에 향을 더한 플레이버 보드카 '앱솔루트 페퍼'를 출시하여
보드카는 무색무취라는 기존의 공식을 파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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