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스톡홀름] 바사박물관

푸른 바다. 2013. 9. 14. 21:30

바사박물관

 

 

 

 

바사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으로

스웨덴에서의 일정이 마무리되고

또 한번의 크루즈에 탑승하여 오후에 라트비아 리가로 떠나게 된다. 

 

바사 박물관은

현존하는 배 중 가장 오래된 배인 바사호를 전시해 놓은 박물관으로 

스톡홀름에 있는 60여개의 박물관 중

북방민족 박물관, 스칸센 박물관과 함께 사람들이 가장 즐겨찾는 박물관이다.

 

 

 북방민족 박물관과 스칸센 박물관, 바사호 박물관이 있는 유르고덴 섬은

400년 전 왕의 사냥터였던 곳으로 

스톡홀름을 이루고 있는 14개의 섬 중 가장 사랑받는 섬이다.

 

 

 

1897년 스톡홀름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립된 유르고르덴 다리가 있다.

 

노르디스카 박물관 (북방민족 박물관)

 

유르고덴 섬 입구의  국립문화민족박물관인 노르디스카 박물관이다.

 

 

스칸센 박물관

 

유르고덴 섬에는 세계 최초의 야외박물관이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스칸센 박물관이 있다.

  스웨덴 사람들의 과거 생활을 보여주는 건물과 농장, 그리고 동물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이벤트도 유명하다.

 스웨덴 각지에서 옮겨온 17∼20세기의 건물과 농장 등 150여 개의 시설과 구축물이 있는데,

교회·농가·풍차·산장·저택 등 다양한 건축물을 통해

각기 다른 신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거주했는가를 보여준다.

 내부의 장식도 당시의 양식으로 재현되었으며,

인쇄공장·직물공장 등에서는 민속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당시의 작업환경을 실연해 보인다.

건물 중에는 도시지역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도 있으며,

1729년에 건축되고 1916년에 스칸센으로 옮겨온 세그롤라 교회, 17세기의 영주저택 등이 유명하다.

 

 

노르디스카 박물관 (북방민족 박물관)

 

건물은 전체적으로 덴마크 풍의 르네상스 양식을 구현하고 있으며,

내부 대형 홀은 고딕 교회 양식을 일부 차용하고 있다. 

 

북방민족박물관

 

노르디스카 박물관은 1907년 개장한 곳으로 152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스웨덴의 문화사와 민족사를 주제로 하고 있다.  

 

 

 각 시대 스웨덴인들의 문화와 풍속을 보여주는 농업, 공업 제품과 생활용품,

 의상, 신발, 주방용품, 장식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서민들의 생활상부터 상류층 및 도시민의 삶까지

스웨덴의 일상생활을 다룬 전시물을 두루 관람할 수 있다.

 

바사 박물관

 

바사왕가의 구스타프2세가 재위했던 1625년에 건조하기 시작하여

1628년 8월 10일 스톡홀름 항에서 다른 여러 함대와 함께 첫 출항했는데,

 겨우 1300m정도 항해하다가 수심330m의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한 비운의 전함 바사호를 전시한 것이다.

 

 큰 배에 돛을 단 것 같은 모습의 바사 박물관이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전시하고 있는 바사호의 보존을 위해 실내 온도와 습도를 맞추어 놓았기 때문이다.

 

바사호의 선수부(앞부분)

 

한 컷에 잡을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의 바사호이다. 

 

 

한 컷에 담을 수 없어 부분 부분 나누어 찍었다.

 

 

전체 길이 62m, 최대 폭 11.7m, 높이 50m의 바사호는

 스웨덴이 막강한 국력을 자랑하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 왕 시대에

왕의 명령으로 네덜란드 출신 조선사 헨릭 하버트슨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배로

적재 대포 64문, 10개의 돛이 달린 3개의 돛대를 갖고 있으며,

 탑승가능인원은 450명(300명의 군인)이고 자작나무로 만들었다.

 당시 발트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전함이었다고 한다.

 

 

 스톡홀름 바다 속 깊은 곳, 진흙 뻘 속에 묻혀있던 이 배를

1956년 해양고고학자 안데스 프란첸에 의해 발견되고,

침몰된 지 333년 만인 1961년에 인양되었다. 

1962년 임시박물관이 문을 연 후

1979년까지 17년동안 특수보존처리용 보호액을 뿌리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1988년 반정도 완성된 현재의 박물관으로 옮겨 1990년에 바사박물관을 개관하였다.

 

바사호의 선미부 (뒷부분)

 

17년간 보호액을 뿌리는 작업을 계속하여

거의 원형 그대로 전시되고 있는 바사호는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17세기 선박인 목조 전함이다.

 

바사호 선미 부분의 조각들

 

 

 

 

바사호를 건조했던 조선소 자리에

 인양한 선체를 복원·전시하고 있는 바사호 박물관은
스칸디나비아반도 박물관 중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관람객들은 배의 선박 바닥을 받치는 재목인 용골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총 6 곳의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바사호를 감상할 수 있다.

 

 

바사호는 배의 장식이 화려하여

333년이나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손상되지 않았다.

 

 

금색으로 덮여 있었다던 바사호의 선미다. 

북극의 사자라는 별명을 가진 구스타프 2세 아돌프 왕을 상징하는 사자 상을 새겨 놓았는데,

333년 동안 바닷속에 잠겨 있었음에도 부식의 흔적없이 화려하고 웅장했다.

 

 

바사호는 선체에

황금으로 도금한 영웅과 병사의 조각상 180여 개를 새겨놓은 호화로운 배였다.

 

 

 바사호 인양당시 14,000여개 이상의 목재 조각 장식품들이 함께 출토되었는데

 보존처리를 하여 원래 위치에다 짜 맞추었다고 한다.

 

 

  뒤쪽에는 7층 높이의 관람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화려하고 정교하게 조각한 선박장식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바사는 스웨덴 왕가의 이름이며, 바사호는 그 이름을 딴 배다.

 

한 옆에 10분의1 크기의 축소된 모형배가 전시되어 있다.

 

 

 

180여개의 조각과 물감으로 화려하게 만든 바사호

 

 

전시된 바사호는 333년 동안 진흙에 묻혀 있었어도

웅장한 외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축소된 모형을 보는 순간 

  바사호가 얼마나 색채적으로도 화려한 배였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 배는 전함임과 동시에 바다에 떠있는 궁전이기도 하기에

정밀하고 예술적인 의미를 가진 많은 조각품을 장식했다고 한다.

 배에 장식된 조각상은 사자상, 영웅의 상, 황제의 얼굴, 해양 동물상, 천사상 등으로

정교하게 목재로 조각되어 있다.

 

 

인양하는 광경

 

 

박물관은 총 4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층에서는 바사의 준공, 취항, 침몰, 인양의 각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바사호 인양은 해양 고고학의 위대한 업적의 산물이다.

 

 

인양한 바사호의 목재

 

인양 당시 활동한 잠수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1956년 발견후 진흙깊이 5m까지 묻힌 바사호를
물위로 끌어올리는데까지만
2년이 걸렸고,

 1961년 완전 인양하여 17년간 보존액을 뿌리는 작업을 계속하여,

30여년에 걸친 복원작업을 거쳐 원형의 95% 이상이 보존되었다.

 

 

바사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당시 북유럽의 강국이었던 스웨덴은 더많은 영토를 확장하고

외국에 널리 스웨덴의 국력을 과시 하기 위하여 바사호를 건조하였다.

 

침몰하는 바사호를 모형으로 만들어 설명하고 있다.

 

약 2년간의 제작기간을 걸펴 완성된 이 군함은

어느 나라 배와 싸워도 지지 않으리라 자신하던 배였지만,

어이없게도 진수식 당일

갑자기 불어 닥친 돌풍을 맞아 왼쪽으로 넘어지면서 그대로 침몰하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 근해에서 침몰하여 진흙에 묻혀 있은 까닭에

거의 완전한 상태로 오늘날까지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1628년 8월 10일,

 독일과의 30년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왕궁 근처의 부두에서 첫 항해에 나섰지만

출항 15분만에 육지에서 1.3km정도 나아간 곳에서 수심 45m의 해저로 침몰하고 말았다.

이유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당시의 건조기술로는 경험이 없었던 큰 선박을 건조해야 했고,

애초에 계획했던 단층 32문의 함포를  2배 더 늘린 복층 64문의 함포로

추가 배치한 설계 변경으로 상부 하중이 늘어나면서 무너진 균형에다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에 침몰하고 만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이보오~  들었수!!!  글쎄  바사호가 침몰했다지 뭐요.

 

 

 

뭐라고요!!! 그게 정말이오. 이럴수가...

 

 

  바사호가 침몰했다는 소문이 퍼지는 과정을 모형으로 재미있게 표현해 놓았다.

 

 

당시 해상 지도

 

 

9세기부터 바이킹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발트해와 흑해 사이의 중요한 무역 거점 역할을 했던 스웨덴은

막강한 해상력을 바탕으로 서쪽으로는 잉글랜드, 프랑스

 동쪽으로는 러시아, 아랍세계까지 세력을 확장하면서 번영을 누렸다. 

  

 

당시 스웨덴은 북유럽 발트해 주변 제국 건설에 주력해

막강한 해군력을 절실히 필요로 했기 때문에 전함 건설에 총력을 기울였다.

 바사호는 그 당시 건설된 전함 중의 하나이다.

 

전함 바사호 내부구조

 

침몰 원인이 된 복층으로 대포를 실은 것이 보인다. 

 

바사호 내부구조

 

이 모형은 배 안에서의 선원의 생활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120톤 가까이의 돌을

맨 아래층에 가득 채워

 선박의 무게중심을 유지하려 했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있다.

 

바사호 내부구조

 

 침몰 당시 승선했던 147명이 맡은일에 따라 일하는 모습을 모형으만들어 놓았다.

 

그 당시 전함 모습의 모형

 

 

 379년 전에 독일의 30년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출항했다 침몰한 바사호는

 현존하는 배로는 가장 오래된 전함이다.

 

 

 

바사호 장교 침실 및 사용공간

 

 

바사호를 만든 구스타프 2세는

스웨덴의 골든 에이지라고 여겨지는 스웨덴 제국의 창시자이다.

 1594년에 태어나 1611년 17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며,

 독일에서 벌어진 30년 전쟁중 가장 중요한 전투중의 하나인 루첸 전투에서 1632년 전사했다. 

그는 스웨덴의 중흥기를 이끈 인물로 그의 통치기간 동안 

스웨덴은 유럽에서 러시아, 스페인에 이어 3번째로 강성한 국가가 되었다.

 그는 The Lion of the North - 북극의 사자로 북유럽의 오래된 예언에 나오는 중요한 인물-로 여겨졌다.

재임기간 내내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 스웨덴 제국을 세우고, 황금기를 가져온 왕으로

유일하게 대왕(the Great) 칭호를 받는 왕이다.


선실의 조각들

 

 

 스웨덴 해군의 주력군함으로 사용하기 위해 64문의 대포가 장착되었는데

그 중 대부분은 24파운드의 포(24파운드 또는 11kg 이상의 포탄을 발사하는 포)였다.

이러한 육중한 대포를 배 위, 아래 2개 층에 배치함으로써

 무게중심을 상실하여 침몰된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바사호 건조에는

그시대 최고의 조선술을 보유하고 있던 네덜란드의 조선 기술자들이 참여하여,

당시의 조선술로는 이렇게 큰 전함을 건조해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이 전함을 건조하게 되었다.

 네덜란드 기술자들은 배에 대포를 한열로 적재하게 설계 하였는데,

스웨덴 왕인 구스타프 2세는 대포를 복층 2열로 배치할수 있도록 설계 변경을 요구하였다.

기술자들과 왕의 대립속에서 왕이 승리하여 대포를 복층 2열로 배치하게 되었는데,

 결국 전함은 상부하중이 너무 커저서  처녀 항해때 침몰하고 말았다 .

  

바사호에 탑재되었던 대포

  

침몰한 전함의 선원 모형

 

 그당시 선원들은 군인이 아니라 차출된 농노나 월급을 받기 위해 지원한 서민 출신들이다.

  선원들의 평균키가 150센티 정도로 지금보다 훨씬 키가 작았다.

 

 

바사호를 인양할 때 함께 나온 유물들

 

 

바사호에서 인양 당시의 목조품, 배안의 조각상, 생활용품, 돈,

선박용품, 선원의 유골,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배에 승선하고 있던 150여명 중 30여 명이 익사했는데,

333년 만인 1961년에 인양된 배에서 25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마지막 홍보관에서는 바사전함의 건조서부터 침몰과 인양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영상으로 설명하는 영화가 상영된다.

 

 침몰한 선원들의 모습

 

 장교는 50여명이고 기타 선원들은 농노 등이다.

 

선수(배 앞머리)를 장식한 조각상을 복원하여 근처 벽면에 전시해 놓은 모습

 

 군함의 위용을 뽐내기위해 제작 했다고 한.

 

 

무슨 건축물인지 자료를 못 찿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