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북유럽 여행 8일 9일째 발트 3국 개황

푸른 바다. 2013. 9. 25. 21:32

 

 

 

 

 

 

 

 

 발트해의 진주라는 탈린은 고풍스럽고 중세적인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라트비아>

 

 

 

라트비아 지도

 

라트비아 국기

 

1282년 외부 침략자에 맞서 싸울 때 리보니아인들의 의용군이 사용한 것에서 유래한다. 밤색은 전쟁 과정에서 흘린 국민의 피와 조국 수호에 대한 단호한 결의를, 하얀색은 자유로운 시민의 성실함, 진실과 정의와 자유를 의미한다. 1918년 11월 18일 독립을 선언한 이후1922년에 처음으로 국기로 제정되었다. 그러나 1940년 8월에 소련이 불법 점령(발트 3국 측의 공식적인 입장)을 한 이후에는 사용을 금지당했으며, 이후 1990년2월 27일에 다시 국기로 공식 제정되었다.[이상 출처:위키백과]

 

 

 

라트비아의 정식 명칭은 라트비아 공화국(Republic of Latvia) 이다.2010년 기준 라트비아 전체 인구는 230만 명이다.  수도는 리가이며 수도에 거주하는 인구는 74만 명이다.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약 1/3이다.

 전역이 대체로 평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토의 44%가 삼림지대이다.

러시아, 벨로루시,리투아니아, 에스토니와 국경이 접해 있다.

 

 

 

라트비아의 인종은 라트비아인 57.7%이며, 러시아인이 29.6%, 벨라루스인 4% 등이다.

 1940년~1991년 소련 점령기 동안 소련의 강제 추방과 러시아화 정책 등으로

 라트비아인 비중이 73%에서 58% 수준으로 감소했다.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라트비아어가 공용어이다.

라트비아어는 인도-유럽어 계통이며, 리투아니아어와 유사하다.

러시아어는 전체 인구의 약 37.5%가 구사할 수 있다.

 

 

종교는 루터교가 24%, 카톨릭교가 18%,

러시아정교가 15.3%이며, 무교가 35%이다.

 

 

 

라트비아는 1991년 유엔에 가입하였고 2004년 5월에는 유럽연합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아직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자국 화폐인 라트를 사용한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라트비아는 계속적으로 성장하는 경제를 가진 민주주의 국가이다.

새로운 세기를 맞아 라트비아는 변화와 변형의 꾸준한 국면 속에서

지속적으로 현대적인 유럽국가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발트해 연안에 정착하였던 라트비아인들은

다른 발트계 민족들처럼 10세기 전후하여 바이킹족에 이은 게르만인들의 침략을 받았으며,

 16세기까지 독일 게르만의 지배를 받았다.

 1561년 게르만의 통치가 끝나면서 라트비아는 양분되어 각기 스웨덴과 폴란드에 귀속되었다.

 

 

 

18세기 초 피터대제에 의하여 러시아 영토로 복속될 때까지

 끊임없이 스웨덴과 폴란드, 그리고 러시아의 영토 팽창욕에 시달렸다.

1918년 독일에 할양되었으나 독일의 패망으로 독립국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라트비아는 1940년 8월 23일 체결된 독소불가침조약으로 다시 소련에 병합되었다.

라트비아인들은 소련 내부에서도 페레스트로이카의 불길이 채 타오르기도 전인

1986년부터 민족주권 회복을 위한 대열의 선두에 섰다.

1991년 9월 6일 소련에서 독립하였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는 발트해를 통해 해양으로 나아가려는

독일인에 의해 1201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했다.

리가는 고대부터 중개무역 지대의 강성한 도시로서

  최근에는 '동유럽의 라스베이거스'로 불릴 정도로 유흥업이 발달해 있다.

또한 리가는 발트 3국에서 가장 많은 교통 노선이 취항해 교통망이 잘 발달되어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다.

 

 

 

리가는 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도시로구시가를 걷다보면 성벽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곳이 한때 거대한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자동맹 시절부터 세워진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리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발트 3국 한가운데 자리 잡은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는, 라트비아뿐만 아니라 발트3국 전체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경제와 무역의 중심지다.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대부분 리가에 진출해 있어 발트3국 중에서는 한국인 교민의 수나 한국과의 교역량도 가장 많은 곳이다.

 

 

 

라트비아의 기후는 온화한 해양성 기후로,

연평균 기온은 -5℃ ~ 20℃이다

  

 

 

정부 형태는 의원내각제로 대통령과 총리가 있으며

의회는 총 100석으로 구성되고 의원 임기는 4년이다.

1999년에는 여성대통령이 당선되기도 했다.

 

 

 

리가는 화재와 전쟁으로 초기 건물들이 많이 소멸되었으나  유럽 건축사에 큰 족적을 담긴 미하일 아이젠스타인이 설계한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은 유럽 전체에서도 최고로 알려져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다.

 

 

독일의 사상가인 요한헤르더(요한 헤더)와 오페라 작곡가 바그너 등 유럽의 명사들에게 리가는 사상적 예술적 동기를 부여한 무대가 되기도 했다. 바그너는 1837년부터 1839년까지 2년의 짧은 기간 동안 리가에 거주했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의 대명사인 "소나무야"와 그의 대표적인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영감을 리가에서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잘아는 백만송이 장미의 원곡은

 라트비아의 가요 "마라가 준 인생"이란 곡을 러시아어

로 가사를 붙인 곡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불러 대중에게 알려졌다.

 

1981년 라트비아의 방송국이 주최한 가요 콘테스트에 출전한 Aija Kukule, Līga Kreicberga가 "마라가 준 인생"을 불러 우승한다.마라가 준 인생의 가사 내용은 백만송이 장미와 전혀 다른 내용으로, 강대국에 나라의 운명이 휘둘리는 라트비아의 고난을 암시한 것이다.제목에 나온 마라는 라트비아 신화의 여신으로 최고의 신 중 한 명이다.

 [출처: 위키백과]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 국기

 

 

노랑색은 빛과 태양을, 초록색은 리투아니아의 자연을, 빨강색은 활력을 의미한다.

1918년 4월 19일 독립을 선언한 이후 처음으로 국기로 제정되었다.

그러나1940년 6월에 소련이 불법 점령(발트 3국 측의 공식적인 입장)을 한 이후에는 사용을 금지당했다.

1988년,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최고회의가 1918년에 제정되었던 옛 리투아니아의 국기를 다시 제정하기로 결정하고

1989년 3월 20일에 다시 제정하였다.

 

[이상 출처:위키백과]

 

 

 

리투아니아의 정식 명칭은 리투아니아 공화국(Republic of Lithuania)이며

 리투아니아 전체 인구는 2011년 2월 현재 305만 명이다.

수도는 빌니우스이며, 수도에 거주하는 인구는 57만명이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 1/3로 발트3국에서 가장 영토가 넓고 인구도 많다.

 대부분 평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토의 28%가 삼림지대로

발트3국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하며

 라트비아, 벨로루시, 폴란드,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와 각각 접경해 있다.

 

 

 

리투아니아의 인종은 리투아니아인이 83%이며, 폴란드인이 6%,

러시아인이 4.8%이다.

 

 

 

 사용되는 언어는 리투아니아어이다.

 리투아니아어는 라트비아어와 같은 어군으로

기초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라트비아어와 유사성이 높으나

 에스토니아어와는 전혀 다른 언어이다.

에스토니아어는 핀란드, 헝가리어 등과 같은 어족으로 분류된다.

 


종교는 가톨릭이 79%이며, 러시아정교가 4.1%, 개신교가 1.6%이다.

 

 

리투아니아는 1991년 유엔에 가입하였고 2004년 5월에는 유럽연합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아직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자국 화폐인 리타스를 사용한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중 인구와 영토 규모가 가장 큰 국가로서, 

유럽의 지리적 중심국가임을 표방하며 발트 지역에서 구심적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탈냉전 체제 변혁기인 1990년 3월 11일 소련연방 내의 국가들 중 가장 먼저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여타 발트 국가들의 독립에 있어 선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13세기 중엽 민다우가스공(公)이 몽골 침입에 대항한 공적으로 리투아니아 대공이 되었다.

14세기에는 대공 게디미나스(1275?~1341)가 몽골및 독일기사단에 계속 항전하면서

 영토를 확장하여 그로드노에서 키예프 에 이르는 지역을 통일하였다.

 이때부터 러시아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다.

대공 야기에요는 독일기사단에 대비하여 폴란드와의 동맹을 추진하여 왕녀 야드비카와 결혼함으로써

 리투아니아 ·폴란드 왕국 군주가 되었으며,

 1410년 타넨베르크전투에서 독일기사단을 격파할 수 있었다.

 

 

 

 17세기에는 러시아 ·스웨덴 ·오스만투르크 등의 압박이 강화되었고,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 때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일시 독립하였으나,

1940년 다시 소련에 강제 합병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때 독립했으나

1991년 8월 소련 쿠데타 실패 후 독립을 선언, 1991년 9월 독립을 인정받았다.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는

 1232년 게디미나스 공작이 성을 지으면서 도시 역사가 시작되었고,

  중세를 통해서 무역 도시로서 번영했으며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16세기에는 도시에 성벽이 정비됐으며, 공국령의 각지에서 다양한 민족이 모여 국제도시로 성장했다.

현재 도시의 규모는 발트3국중 리가 다음으로 두번째로 큰 도시다. 

 

 

  빌뉴스는 전형적인 중세도시 모습을 오늘까지 잘 간직하고 있다.  고딕과 바로크 양식 등 양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교회와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고동부 유럽에서 가장 유서 깊은 대학 중 하나인 빌뉴스 대학은 이곳의 명소다.

 1569년 리투아니아 최초의 대학교로 승격되었고, 수많은 문학가와 사상가, 철학가들이 이곳 출신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대학교 건물 자체가 유물이자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1994년 빌뉴스 역사지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리투아니아의 기후는 온화한 대륙성 기후로 연평균 기온은 -5 ~ 23℃이다.

 

 

 

리투아니아의 정부 형태는 대통령제를 가미한 의원내각제이다.

 의회 구성은 총 41석이며, 임기는 4년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좁은 골목에서는 곳곳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문학인의 거리에서는 유명 작가들을 테마로 볼거리를 제공하고,

 빌뉴스의 몽마르트르 `우주피스 마을`도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글 출처:1. 네이버 지식백과 발트 3국 개황 

2011.6,외교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