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성바실리성당,역사박물관,무명용사의 불,굼 백화점

푸른 바다. 2013. 12. 9. 22:25

모스크바

 

 

 

 

붉은 광장, 성바실리성당, 국립역사박물관, 무명용사의 불, 굼 백화점

 

 

잊지 못할 감동으로 다가 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기 위해

아침 일찍 공항에 가 인천으로 짐을 보내고

호텔에서 싸 준 간단한 샌드위치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고는 

모스크바행 국내선 비행기에 올랐다.

오늘 모스크바 관광이 끝나고 오후에 모스크바 공항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타면

 북유럽 여행 12박 13일의 대장정이 아쉽게 끝난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행 아에로플로트 국내선 티켓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국내선인 아에로플로트의 샌드위치

 

노랑 봉투의 마요네즈를 뿌려 먹을만 했던 샌드위치

 

크레믈린 성벽 사이 사이에는 각자의 이름을 가진 20개의 탑들이 세워져 있다.

 

크레믈린은 원래 성벽을 의미하는 뜻이었으나 나중에 황제의 성이란 의미로 쓰였다.

14세기 타타르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떡갈나무로 두껍게 성벽을 건설하였고,

 1367년 이것을 하얀 돌로 대체하였다. 

 이것이 벽돌의 총안이 있는 성벽이 되었으며,

 15∼16세기에 다시 축조되어 현재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오랫동안 러시아 황제의 거성이었으나 18세기 초 페테르부르크에 겨울궁전이 세워지면서

 황거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뜻의 붉은광장

 

붉은광장은 러시아 고어로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크라스나야 뽈로사지인데

 현대어로 아름다움과 붉은이라는 뜻의 발음이 같아지면서 붉은광장이라고 변했다 한다.

그리고 메이데이와 11.7일 혁명 기념일에 역사박물관과 굼백화점 벽에 붉은 현수막이 걸리고

사람들도 붉은 깃발을 손에 들고 있어, 광장이 온통 붉은 색이 되었던 것에서

아름다운광장 보다는 붉은광장이라고 더 불리게 되었단다.

 

 

붉은광장의 길이는 695m 폭 130m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넓이는 약 27,000평 규모이다.

원래 이곳은 시장이었는데 목조건물에서 화재가 자주 발생하자 

 15세기 말 이반 3세가 건물을 철거 시키고 지금과 같은 광장을 만들었다.

성바실리성당, 국립역사박물관, 레닌묘, 카잔성모성당, 굼백화점, 크레믈린 성벽이 있다.

 

 

붉은 광장은 15세기말경 크레믈린 성벽이 완공 되면서

만들어져 오랫동안 러시아와 소련의 정치사회사의 구심점이 되어왔고

특히 노동절 행사와 10월혁명 기념일에 하는 행사는 유명하다.

 

 

 붉은광장 왼쪽으로 크레믈린궁, 가운데 붉은 건물은 국립역사박물관,

오른쪽으로 러시아 최대의 국영백화점인 굼 백화점이 보인다.

 

붉은광장 크레믈린의 스파스카야 탑과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인 성바실리 성당

 

러시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인 성 바실리성당은

 붉은 광장의 남쪽 끝에 있으며,

 러시아 정교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유명하다.

 

북쪽편에서 본 성바실리 성당

 

남쪽에서 본 성바실리성당

 

러시아는 역사상 단 한번 몽골 카잔 한에 의해 200년간 지배를 받았는데,

  이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반대제(이반 4세)는 당대 러시아 최고의 건축가인 바르마와 보스또니끄 야코쁠레프를

수석건축가로 임명하여 성당을 짓게 했다.

  착공 6년만인 1561년 7월 12일 완공된 성 바실리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한 이반대제는

이런 아름다운 건축물을 다른 곳에 짓지 못하도록

그들의 두 눈을 뽑아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아름다운 성바실리 성당

 

성바실리 성당의 원래 이름은 보크로프스키사원이라 불렸지만

이반대제의 미래를 예언하고 모스크바의 화재를 예언하는 등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당시 러시아 민중들의 추앙을 받았던 덕망높은 탁발 수도사인 바실리가

이 곳에 기거하다 1588년 이 곳에 묻히게 되면서 붙은 이름이란다.

 

 

현존하는 가장 아름답다는 이 성당마저도 소비에트 사회주의 혁명중에

스탈린에 의해 파괴될 위험이 있었다.

스탈린은 신을 부정하며 당시 성당을 파괴하고 사제들을 처형하는 등 박해를 가했지만

이곳 성바실리 성당은 우여곡절 속에서 가까스로 파괴되지 않고 운 좋게 살아 남았다 한다.

 

 

성바실리성당은 화려한 다채색 47m 높이의 팔각형 첨탑을 중심으로

예배당을 형성하는 4개의 다각탑과 4개의 원형탑 등

총 9개의 탑이 조화롭게 배열되어 있어서

외부에서는 8개의 지붕탑만 보이고 어느 쪽에서 보던지 8개의 탑이 보이는

아름다운 구조로 되어 있다.

 

 

9개의 지붕은 몽고 카잔 한과 싸워서 이긴 전투의 횟수를 상징하며,

창문과 회랑 그리고 문의 처리기법은

러시아의 목재건축물의 모습을 그대로 따왔다.

 

바실리성당의 벽면 무늬

 

각양각색의 9개의 양파형 돔 지붕의 성바실리성당은

러시아 정교로 국민들을 통합시키고 애국심을 북돋기 위해 만든 정치적, 종교적 상징물이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외관의 돔 모양은 비잔틴양식인 양파 모양의 9개의 탑이 

제 각각의 모양과 색채, 크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조화롭게 솟아있다.

 비잔틴양식과 러시아양식이 한데 어우러져 러시아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바실리 성당의 별명은 일명 테트리스 성당이다.

세계적인 컴퓨터 게임인 테트리스의 첫 화면에 등장하면서 바실리 성당은 유명해졌다.

 

미닌과 포자르스키 동상

 

1612년 폴란드가 모스크바를 침공 크레믈린이 함락되고 만다.

 정육점 주인인 미닌과 수르달의 대공이었던 포자르스키가 의용군을 조직,

민병을 이끌고 적의 수중에 들어간 크레믈린을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그 후 1818년 이들을 기리기 위해 청동으로 만든 조각상을 붉은 광장 중앙에 세웠으나

1930년 성바실리 성당 입구로 옮겼다.

 

 

동상 밑의 비문에는

대 러시아로 부터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민 미닌과 포자르스키공에게. 1818

 

미닌과 포자르스키 동상

 

이반 마르토스에 의해 1818년에 완성된 청동상이다.

원래는 붉은광장 중앙에 있던것인데 1930년 광장을 포장한 자갈을 석판으로 바꾸며,

혁명기념 열병및 시위를 위한 공간 확보를 위해 지금의 성바실리성당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붉은 광장에서 본 성바실리성당과 크레믈린 성탑들

 

모스크바의 심장, 붉은 광장이다.

옛날부터 이곳에서는 차르의 선언, 판결, 포고가 내려지던 곳으로

지금도 국가적 행사나  사열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로브노에 메스토의 원통형 구조물이 보인다.

 

붉은 광장의 바실리 성당과 백화점 사이에는

로브노에 메스토라고 불리는 둥근 원통형의 구조물이 보이는데 

 이곳은 짜르나 주교들이 가운데 단상에 올라서서

대중에게 연설을 하거나  중대 칙령을 읽어 내리던 곳이었다.

 

로브노에 메스토 칙령 반포대와 처형대

 

로브노에 메스토는 대중들에게 칙령을 반포하는 자리인 동시에

농민 반란의 지도자 스첸카 라진이 곳에서 처형되는

내란 중대 범죄자로 지목된 사람에 대한 공개 처형장이 되기도 했다.

 

로브노에 메스토

 

오늘날 시민들은 연단 주변에

동전을 던져 죽은 영혼들을 위로한다고.

 

스파스카야 탑 (구원의 탑)

 

크레믈린의 스무개 탑 중 대표적 탑이라고 할 수 있는 스파스카야 탑은

러시아 황제들의 주 출입문 기능을 하였으나

 지금은 대통령 취임식 행사나 주요 외교 의전 행사시에만 사용하고 있다.

 

 

 

 

바실리 성당에 인접한 스파스카야 탑은

교회 의식을 베풀기 위한 장소로도 자주 사용이 되었는데

제정 러시아 시절 정교의 사제들은 노새를 타고 스파스카야 탑 문으로 들어가면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을 재현하기도 했다. 

 

 모스크바 표준시를 알리는 대형 시계

 

17세기경 설치된 시계는 문자판 직경이 6.12m이며,

레닌묘의 위병교대식은 1시간마다 이 시계 종소리에 맞추어 거행된다고 한다.

 

 

탑 위에 걸려 있는 홍보석 별은

스파스카야탑을 비롯하여 니콜스카야, 트로이츠카야, 바로비츠카야,

바다브즈바드나야탑 등 다섯 곳에 올려져 있는데,

당초 있었던 황실의 문장은 1937년 소비에트 시절 지금의 별모양으로 대치되었다.

별 하나의 무게는 1 ~ 1.5톤 정도라고 한다.

 

광장에 행사가 있어 펜스를 쳐 길을 안내하고 있다.

 

 

굼백화점과 광장 사이에 검문소가 있다.

평시에도 있는 검문소인지 아니면 행사때문에 임시로 생긴건지는 잘 모르겠다.

 

왼쪽에 살아 있는 그대로의 레닌 사체가 보관된 레닌의 묘가 보인다.

 

예약한 사람만 오전에 입장 가능하고

카메라는 물론 조그만 손가방도 반입이 금지 된다고 한다.

 

레닌의 묘

 

러시아의 건축가 알렉세이 쉬추세프가

크레믈린 대통령궁 앞 붉은광장에 목재의 묘지를 만들었다가

 1930년에 벽돌빛 화강암을 사용하여 피라미드형으로 다시 만들어 

레닌의 유해를 특수 화학처리를 하여 방부 처리과정을 거쳐 커다란 유리상자 속에 정장 차림으로 안장 했다.

 소련이 해체한 직후 레닌을 땅에 묻자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다수석을 차지한 공산당의 반대로 결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붉은 광장의 레닌묘

 

레닌를 위해서 그 어떤 기념비도 세우지 말고

그의 이름으로 그 어떤 거창한 건물도 짓지 말 것이며

그를 위한 그 어떤 추모의 행사도 필요하지 않다라고

 레닌의 부인 크룹스카야가 말했다 한다.

그리고 오랜 망명생활을 하며 고향과 어머니를 누구보다도 그리워했던

 레닌의 마지막 소원은 자신의 어머니 묘소 옆에다 묻어달라는 것이었는데,

스탈린은 그런 레닌을 공산사회주의의 신격화 대상으로 만들고

1924년 1월 21일 심장마비로 사망 크레믈린은 레닌의 시체를 영구 보존키로 결정하고

특수 화학처리를 하여 방부 처리과정을 거쳐 붉은광장에 안치했다.

 

 

레닌의 형 울리야노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등이

황제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당하자 레닌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스위스로 망명한다.

때마침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던 독일로부터 지원을 받은 레닌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함으로써 소비에트 연방을 수립한 공산주의 혁명가이다.

레닌의 묘 뒤로 대통령궁이 보인다.

 

 

레닌의 묘 뒤쪽으로는 10월혁명 때 숨진 노동자와 병사의 무덤이 있다.

그리고 레닌 묘의 바로 뒤에는 역대 소련공산당 서기장들인

스탈린,브레즈네프,안드로포프,체르넨코,초대 KGB 의장인 제르진스키의 묘가 있다.

 

배구시합을 하고 있다.

 

빨간 구두에 빨간 백... 멋쟁이 샘이다.

 

 

연습을 하고 있다.

 

 

 

한쪽에선 본게임을 하고

한쪽에선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

 

 

이 행사때문에 넓은 붉은 광장을 찍지 못해 아쉬웠지만

반면에 이 학생들을 찍을 수 있어 좋았다.

 

북쪽에서 본 성바실리성당

 

 

홍보석 별

 

밤에는 붉은 색으로 빛난다고 한다.

 

 

국립 역사박물관 배경이 레닌광장에서 가장 멋있는 장소이다.

 

 

붉은 광장에 있는 국립역사박물관은 1883년 블라디미르 쉐어우드에 의해

러시아 복고풍 스타일로 다시 지어졌으며

러시아의 건국에서 팽창까지를 나타내는 4백만점 가까운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붉은광장 쪽에서 본 국립역사박물관

 

 

 

러시아 황실을 상징하는 쌍두독수리

 

 

 1883년부터 개관했고,

잠시 동안 문을 닫았다가 혁명 이후 대중들에게 개방했다.

총 40여 개의 방이 있으며 405만 개의 전시물과 1500만 장 이상의 사학 자료를 모아 두었다.

 

 

 

카잔 성모성당

 

폴란드의 침공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1637년에 지은 카잔 성모 성당은

 아홉살 소녀의 꿈에서 나타난 성모 마리아가

 가리킨 카잔의 폐허에서 발견된 성화 (성모이콘)가 안치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1612 폴란드를 몰아낸 미닌과 포자르스키 또한 카잔 성모의 성화 앞에서 기도를 하고

성화를 앞세워 민병대들의 신앙을 결집시켜 승리를 이끌어 냈다고 전해진다. 

 

 

스탈린 시절인 1936년에 파괴되었던 건물 자리에 1993 모습으로 재건되면서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루쉬코프 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알섹세이 2 대주교에 의해서 봉헌되었는데

카잔 성모 성당은 구소련 당시 억압받던 정교의 복권에 따라

새롭게 재건된 모스크바의 여러 성당들중 첫번째 성당이다 

 

바즈크레센스키 문 (부활의 문)입구

 

붉은광장 쪽인 이 곳을 통과하면 마네지광장이 나온다.

 

 

 

붉은 광장으로 들어 가는 부활의 문

 

우리는 이쪽으로 나왔다.

 

성모의 작은성당

 

카잔의 성모이콘화가 유명하다.

 

 

마네지광장 쪽에서 본 국립역사박물관

 

 

마샬 주코프 동상

 

제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군 총사령관을 지낸 장군

 

 

 

 

 

마네쥐광장에서 본 크레믈린 성벽

 

 

알렉산드로프 공원 입구

 

 

알렉산드로프 공원은 알렉산드르 1세의 지시로

1812년의 나폴레옹 침공을 물리친 이후 많이 손상된 크레믈린 주위를 새롭게 재편하는 과정에서 조성되었는데

 짜르인 알렉산드르 1세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르 광장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로프 공원으로 들어가는 문 양쪽 위로는

 러시아의 황실 문장인 쌍두독수리가 걸려 있다.

 

무명용사의 불이 있는 성벽

 

1941 - 1945 라고 쓰여진 숫자는

 지난 세계2차대전에서 러시아와 독일간의 전쟁이 진행되었던 연도를 나타내는 숫자로

 나치 히틀러의 침공에 의해 수천만명의 병사와 민간인들의 생명이 사라져간 것을

절대 잊지말고 늘 기억하자 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한다.

 

 

역사박물관과 크레믈린 입구 사이에는 마네쥐라는 광장이 있고,

이 광장의 크레믈린 성벽을 따라 가면 불이 타오르는 곳이 있는데

 이 곳이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무명용사의 불이다.

이 불은 비가와도 눈이와도 꺼지지 않고 항상 두명의 군인이 지키고 있는데,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추워도 더워도 꼼짝 않고 서있는다고 한다.

 

 

1967년에 조성된 꺼지지 않는 불꽃은 상트페테르부르그에 있는

1900년대 러시아 혁명에서 희생 당한 사람들을 위무하는 화성 광장에 세워진 불꽃으로부터 점화되었다고 한다 

  2 대전 당시 죽어간 이름모를 병사의 유해가 곳으로 이장되었는데

기념비에는 이름 모를 그대여 그대의 숭고한 정신은 영원하리라 라고 새겨져 있단다 

 

 

2차 대전시 사라져간 2천만 전몰용사와

2천만 민간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꺼지지 않는 불

 

2 세계 대전으로  러시아의 군인들 이천만명이 전장에서 이슬로 사라졌고

민간인을 포함하면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의 희생자 수는 4천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미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 세계 대전으로 인해 전세계에서 5천만명이 희생되었는데

그중 러시아가 2천만명으로 40% 차지한다고 한다.

 

 

불꽃을 지키는 위병 뒤로 보이는 보이는 또 한명의 위병은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온다던지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서 있는 위병이라 한다.

여기에 서 있는 위병들은 러시아 군인들 중에서 제일 잘 생긴 사람들이라는데

내 눈에는 .....

 

붉은 광장의 아름다운 국영 굼 백화점 건물 

 

 굼 백화점에서의 자유시간 40분을 백화점에서 다 쓰기 싫어

 다시 붉은 광장으로 나가 레닌묘를 찍고

모이는 장소인 굼 백화점으로 와서는  화장실을 이용하고

다 함께 모여 부활의 문을 지나 마네쥐 광장쪽으로 해서

알렉산드로프 공원의 무명용사의 비와 꺼지지 않는 불을 보고는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굼백화점

 

크레믈린궁과 길게 마주 서있는 러시아 최대 최고의 국영 백화점 이다.

굼은 국영상점을 뜻하는 러시아어의 이니셜을 따서 부르는 이름이라 한다.

 

 

 1893년에 지어진 3층 건물로 오래된 건물이지만,

 1953년 대폭적인 개조를 통해 러시아 최고의 백화점으로 손꼽히고 있다.

냉전시절 서방측에 소련에도 이렇게 큰 백화점이 있다는것을 과시하기 위해서란다.

 

 

1893년 알렉산드르 포메란초프에 의해

당시 유행했던 러시아 복고풍 스타일로 완성된 건물이다.

  

백화점 골목

 

굼백화점 입구

 

  3층 건물이며 지붕은 유리로 되어 있다.

 

 

세계의 유명 브랜드 화장품, 가방 등 패션 제품 가게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는 굼 백화점은

3층 건물내에 세 부분으로 된 아케이드가 자리잡고 있으며

궁전같은 외양에 아치형으로 된 긴 유리 천장을 통해 내비치는 햇살이 아름답다.

 

 

한 때는 모피와 실크를 파는 천여개의 상점들이 이곳에 들어서 있었고,

1921년 국영화된 이후소련시절에는 사무실 빌딩으로 개조되기도 했단다.

 

 

국영 백화점이라는 뜻의 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기 전에는

 윗 교역상가라고 불리웠는데

 당시에는 상가 건물의 길이가 지금의 붉은 광장 입구에서부터

모스크바 강가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소피아 로렌 주연의 옛날  영화 해바라기에서

소련으로 귀화한 남자 주인공이 이탈리아에 두고 온 애인 소피아 로렌을

만나러 가기 전 선물을 사기 위해 들르는 백화점이 바로 굼 백화점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아울렛을 보는 기분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분수대가 있다는데

시간상 거기까지는 들어 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