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크레믈린

푸른 바다. 2013. 12. 16. 13:18

 크레믈린

 

 

 

트로이츠카야탑,대통령궁,쿠타파탑,크레믈린 대회궁전,궁전 병기고

블라고베센스키( 성모수태고지) 당,크레믈린 대궁전,

 그라노비타야 궁전, 테렘사원, 총주교사원, 우스펜스키(성모승천)사원,

이반대제의 종루 (스파스카야 대종탑),아르항겔스키 사원(미카엘 대천사 사원)

12사도 (성모승천)사원,주교 궁전,짜르(황제)의 종,짜르(황제)의 대포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과 붉은광장은 유네스코문화유산에 1990년도에 등재되었다.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로

  수백년 동안 러시아 권력의 중심지이자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난 격동의 무대였으며,

무엇보다 러시아 건축예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크레믈린 안에는 14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건축의 발전 단계를 반영하는 건축물들로 가득 차 있다.

 후기 고딕 양식의 지붕을 가진 탑들과 병기고, 소비에트 전당대회장, 내각궁전,

12사도 사원, 우스펜스키 사원, 블라고베센스키 사원, 아르항겔스키 사원, 총주교 사원,

이반 대제의 종루, 대 크레믈린궁, 그라노비따야 궁, 무기고 등등.

이러한 크레믈린의 건축군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역사적인 공간이 사원광장이다.

 

트로이츠카야탑과 베이지색의 대통령궁

 

크레믈린은 원래 요새, 성벽을 의미하는 뜻이었으나, 

세월이 흐른 뒤 황제의 성이란 의미로 쓰였다.

현재의 크레믈린 성벽 모습은 1495년에 완성되었으며,

크레믈린궁은 모스크바 한복판에 위치해 있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러시아 역사 문화의 총 집합체다.

 

검색대가 있는 쿠타파탑의 측면 모습

 

검색대 통과 절차를 걸쳐

 이곳에서 가장 높은 탑 트로이츠카야탑을 통과해야 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크레믈린 궁 출입구 광장에서 본 쿠타파탑과 트로이츠카야(삼위일체)탑

사진의 왼쪽은 대통령궁 오른쪽은 대회궁전( 크레믈린대회당)

 

쿠타파 탑 밑의 둥근 대문 밑의 검색대를 통과해서

크렘린궁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길게 서 있다.

 

크레믈린으로 입장하는 문인 삼위일체탑(트로이츠카야탑)의 아치문

 

1499년에 건립된 트로이츠카야탑은 삼위일체탑이라고도 불리며,

 크레믈린 궁전에서 내려다 볼 때 삼각형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이곳은 관광객이 드나드는 통로로 사용되고 있지만,

짜르시대에는 전쟁에서 돌아온 군대가 입성하였고,

또한 이 문으로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의 군대도 입성하였다.

 

트로이츠카야(삼위일체)탑

 

탑의 높이는 80m로 크레믈린을 둘러싸고 있는

 2235m의 성벽 사이 사이에 있는 20여개의 탑 중에서 가장 높다.

 

트로이츠카야(삼위일체)탑의 에메랄드 ( 가이드의 말 - 내 눈에는 루비 같아 보이는데)

 

 탑 위에 설치되어 있는 황금색 별 모습은

지름이 3.75m에 이르며, 1.5톤의 금이 사용되었다 한다.

 

크레믈린 궁 안으로 들어가는 길인 트로이츠카야(삼위일체)탑

 

17세기에는 이 탑의 지하실이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너무나 이쁜 러시아 소녀들

 

이 꼬맹이의 웃음 띤 얼굴이 한동안 눈앞에서 춤을 췄다.

 

 

입구로부터 왼쪽에는 현직 대통령 푸틴의 집무실, 클레믈린궁(정부청사)이

 자리하고 있으며  출입통제 구역이다.

관광객에게 허용된 지역은 오른쪽에 위치해 있는 사원광장이다.

 

 

크레믈린을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대통령궁을 비롯한 정부청사로 쓰이는 건물들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궁전과 어울리지 않는 유일한 현대식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은 공산국가 시절에 지은 대회궁전이다.

건물위에 황금색의 쌍두 독수리 문양이 걸려있고 공산당의 전당대회등 주로 정치적 행사를 위해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국제회의장이나 볼쇼이 제2극장으로 음악회, 오페라공연, 발레공연등 문화행사가 열린다.

 

크레믈린 대회궁전

 

1661년에 건립된 건물로 현재는 국제회의나 연회,리셉션, 콘서트 등이 열리는

크레믈린 대회궁전이다.

주위의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지었고 건축 부문 레닌상을 수상할 만큼 실용적이라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주위 건물들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그야말로 옥에 티 같은 존재라고 느껴졌다.

 

러시아 연방의 상징인 쌍두독수리( 러시아황실의 상징도 쌍두독수리였는데...)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계속해서 받는다는

크레믈린 대회궁전의 앞모습

 

 다닌 국가들 중 러시아 여성들과 소녀들이 제일 이쁜것 같다.

 

궁전 병기고

 

표트르대제 때 만들어진 바로크 양식의 궁전 병기고는

여러 무기들이 전시된 전시관이 있다.

 

궁전 병기고 앞 프랑스식 대포들

 

나폴레옹 군대가 퇴각할 때 버리고 간 프랑스식 대포들을

궁전 병기고 앞에 진열해 놓았다.

 

  

대통령궁

 

궁전 병기고 옆으로 러시아 연방 대통령이 집무하는 공식 장소인 대통령궁이 있다.

1790년에 완공된 건물은 당시 상원 건물이라 불렸는데,

1918년부터 1991년까지 소비에트 정부의 수반이 들어서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역대 서기장들의 집무실로 사용되었으며 1918~1921년에는 레닌부부가 거처하던 장소로

지금도 3층에는 레닌이 사용하던 책상,펜들, 마지막 편지 등 소박한 살림살이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14-20세기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를 상징하는 건축물들이

 크레믈린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사원광장의 성당들은 모두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 되어 있다.

 

블라고베센스키( 성모수태고지) 과 뒷편의 크레믈린 대궁전 

 

크레믈린 대궁전은 고전주의, 바로크 및 로코코 양식의 장식물과

유명한 화가 및 조각가의 작품 등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테렘 성당, 테렘 궁전, 황금의 방 등 주위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다.

현재 궁전내에는 700여개의 방과, 2개의 대형 행사장, 4개의 의전용 홀이 위치하며

특히 Georgievsky Hall은 대궁전내 최대 규모의 행사장으로서, 러시아 군대의 영광을 상징하며,

 1796년 예카데리나 여제 당시 건축되었다.

황실 가족의 별도 주거공간은 서재, 침실, 식당, 응접실 등으로 되어 있다.

 

가장 러시아적인 블라고베센스키( 성모수태고지) 성당

 

모스크바의  대공이었던 이반 3세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크고 작은 공국들을 규합해 하나의 국가로 만들어 가는 가운데

모스크바 크레믈린에 대한 대대적인 축조 공사를 펼쳤다.

  그 과정에서 1484년 기존의 성당을 허물고 3개의 돔으로 된 블라고베센스키 성당을 짓게 하는데

 이 성당은 황제의 가족 예배사원이니 만큼

사원 앞뜰이 크레믈린 대궁전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블라고베센스키( 성모수태고지) 성당의 현관

 

 

사진촬영 금지로 사원 팜플렛을 찍어 올려보았다.

 

 

제단 옆으로 15~16세기에 여러 대가들이 그린 이코노스타시스가 화려했었는데...

 

 

 

 

 

 

일반 십자가와 다른 러시아 정교회의 십자가

 

블라고베센스키성당, 크레믈린 대궁전, 그라노비타야 궁전, 테렘사원, 총주교사원, 우스펜스키사원

 

 테렘사원의 꾸뽈들

 

오른쪽 한개의 금빛 돔이 있는 곳이 총주교사원이다.

 

러시아 총주교 사원은 푸스코프 장인들에 의해 지어진 

러시아 정교 사원의 공간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총주교 한 사람만을 위한 크기가 작은 종교적 공간이다.

단순하면서도 어떤 세속적 의미도 용납치 않는

오직 신과 주교만이 존재하는 종교적 공간으로 지어졌다.

 

 

러시아식 성당의 양파 모양의 돔을 꾸뽈이라고 부르며

 이는 인간의 신에 대한 간절한 기도를 형상화한 것으로

 둥근 양파머리는 촛불이고 그 위의 십자가는 촛불의 심지다.

 양파머리의 꾸뽈이라는 촛불이

 간절한 염원을 인간을 대신하여 하늘을 향해 불태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라노비타야 궁전

 

이반 대제 시절인 1491년에 지어진 다면체 궁전 그라노비타야

 독특한 벽면의 석축공법에서 유래되었는데 르네상스 시대를 대변하는 건축물이.

크레믈린 대궁전과 테렘 궁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다면체 궁전은

15세기 무렵에 마르코 루포와 피에트로 솔라리오라는 이태리 건축가에 의해 지어졌다 

  

우스펜스키 사원과 이반대제 종루

 

  우스펜스키 성당 (성모승천성당)

 

14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는 크레믈린 사원광장의 중심에 

이반 3세의 명령에 의해 1475-1479년에 걸쳐 세워진

러시아 제국의 국교 대성당인 성모승천대성당(우스펜스키사원)이 있다.

지금도 실제로 크레믈린 내부의 대통령실이나 의회 직원들을 대상으로한

예배가 진행되는 성당이다.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된 우스펜스키 성당

 

우스펜스키 성당은 러시아 황제들의 즉위시 중요한 의식 중의 하나인 성유를 바르고

 이어서 총 대주교에 의해 러시아 왕관이 수여되는 대관식이 거행된 장소임과 동시에

역대 러시아 정교의 수장인 총 대주교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스펜스키 성당 (성모승천성당)

 

1547년 이반 4(이반 뇌제)가 처음으로 이곳에서 성유를 바르고 황제 대관식을 거행한 이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에 이르기까지

 역대 러시아 황제들의 대관식이 이곳 우스펜스키 성당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이곳에서 황실의 결혼식이 거행되기도 하고

로마노프 왕조의 초대 짜르였던 미하일에 대한 황제 지명 등

차기 황위 계승자에 대한 발표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우스펜스키 성당 (성모승천성당)

 

1326년 이반 1세와 표트르 대주교에 의해 고도 블라디미르에

한개의 돔을 가진 우스펜스키(성모승천) 성당이 처음으로 건립된 이후,

 이반 3세 치세 시절인 1470년대에 초기 우스펜스키성당을 모방하여

 다섯개의 돔을 가진 지금의 우스펜스키 성당이 이태리 건축가 아리스토텔 피오라반티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둥근 아치형 천장이 천국을 상징하고 있는 우스펜스키 성당은

러시아 교회의 건축 양식에 더해서 이태리의 르네상스 풍이 많이 가미된 모습을 띠고 있다.

 

우스펜스키성당의 금색 돔과 성화

 

 5개의 돔을 둘러싼 금은 24k골드로

300kg의 순금이 사용 되었다고 한다. 

 

우스펜스키성당의 꾸뽈

 

최초 우스펜스키사원은 백색의 돌로 지어진 작은 사원이었는데

이반 3세는 낙후된 사원을 헐고 강성해진 권력을 반영하고자 크렘린의 사원을 재건했다.

당시 러시아 전역에서 유명 건축가들을 모아 우스펜스키사원을 다시 짓기 시작했으나

지붕 붕괴로 말미암아 실패함에 따라

황제는 이탈리아 건축가 아리스토텔 피오라반티를 초빙하여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는

다섯개의 돔과 원형의 정문을 초기 우스펜스키사원에서 차용하여 건설하였다.

 사원의 내부 공간은 러시아 정교 건축 형식에서 벗어난 궁전의 홀과 같은 양식으로 건설되었고

종교적 색채보다는 오히려 세속적 색채를 더 많이 띠고 있다.

 

우스펜스키성당의 정면 출입문

  

이탈리아 건축가에 의해 세워진 이 사원의 예술적 의미는

 러시아의 문화적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며,

러시아 정교 교리의 엄격한 요구 사항들이 충실하게 이행된

당시의 낙후된 건축기술을 서구 수준으로 향상시킨 계기가 된 건축물로 평가되어진다.

 제단 부분에는 러시아 화가 지오니씨의 지도하에

1481년에 완성한 벽화의 단편들이 본래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우스펜스키성당의 현관 위의 성화

 

대성당의 벽과 지붕은 프레스코화 이콘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곳에 성화를 그리기위해 무려 1천명이나 되는 화가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12세기의 성 게오르기상과 13~14세기의 삼위일체상이 유명하며,

 나폴레옹 군대가 퇴각할 때 훔친 300㎏의 금과 5톤의 은을 되찾아 만들었다는 샹들리에가 있다.

 

 

크레믈린의 4개 사원 중 가장 오래된 러시아 정교회 사원이다.

 

우스펜스키성당의 측면

 

나폴레옹이 이곳을 점령하여

우스펜스키성당을 마굿간으로 사용하였다 한다.

 

왕권과 교권의 상징인 이반대제의 종루

 

우스펜스키사원의 맞은편에 위치한 이반대제의 종루는

 제정 러시아 당시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종탑이 있는 건물이었다.

당시 이 종루가 완공된 후에 이반대제는

 법으로 모스크바에 이 종루 보다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반대제의 종루 (스파스카야 대종탑)

 

이탈리아 건축가에 의해 1543년에 본관이 먼저 완공 되었고

 완성된 이반대제 종루는 크레믈린 사원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 사원 광장안의 모든 사원을 대표하는 단 하나뿐인 종루이다.

 이후에 이반대제의 명으로 1600년 증축을 통해 높은 종탑을 지어 오늘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이 종탑은 81m의 높이를 가지고 있고, 종탑 안에는 21개의 종이 있다.

 

 

이반 4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보리스 고두노프는

이반 종루 위에 층을 더하고 현재의 양파 모양의 지붕을 얹었다.

그리고 자신이 전 러시아를 통치하는 짜르임을 알리는 황금으로 글씨를 새겼다.

고두노프에 의해 그 높이가 더 해진 이반 대제의 종루는

 당시 러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되었으며 크레믈린의 아름다운 수직 축을 이루게 되었다.

 

 

종루 옆에 4층으로 건물에다 한개의 돔을 위에 올린 종탑은

표트로프 말리에 의해 1543년에 세워졌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서 퇴각할 때 이곳을 폭파하도록 명령했으나

폭파되지 않고 아직까지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고.

국경일에는 21개의 크고 작은 종들이 타종되었으며 평상시에는 파수대의 역활을 했단다.

 

 

이반대제의 종루가 있는 곳은

모스크바의 정 중앙에 해당한다고 한다.

국경일이 되면 21개의 종이 일제히 울린다고.

 

일반적인 로만 십자가와 다른 러시아 정교회 십자가

 

이런 형태의 십자가를 로렌십자가라고 하는데 프랑스의 지방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맨 위쪽의 막대는 빌라도가 예수의 머리 위에 붙여 두었던 비문

 즉 INRI를 나타내며 하단의 기울어진 가로 막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렸을때의

발판 모습을 상징한다.

 

이반대제 종루

 

1508년에 마르코 프랴진에 의해 축조된 이반대제의 종루는

 당초 자리에 있던 이반 클리마쿠스 종루의 이름을 따서 이반이라는 이름이 지어졌고

높이의 장대함에 대해 위대함이라는 의미가 붙여졌는데,

모스크바의 중흥을 이룩한 이반대제라고 불리는 이반 3세의 호칭과

우리말로 같은 이름으로 표기되지만 실지 이반 3세의 호칭과는 별개인 셈이다.

 

소보르나야 광장의 아르항겔스키사원과 블라고베센스키사원

 

 

아르항겔스키 사원(미카엘 대천사 사원)

 

아르항겔스키사원은 두 번째로 사원 광장에 재건축된 건물로

 우스펜스키 사원과 대각으로 맞은 편에 위치한 사원이다.

 러시아의 황실 무덤인 아르항겔스키사원은

알레비즈 노브이라는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장식가에 의해 지어졌다.
그가 건설한 아르항겔스키 사원의 다섯 돔은 우스펜스키 사원으로부터 유래했지만

사원의 내부 공간에 있어서는 오히려 러시아의 전통적인 정교 건물과 유사하다.

 

아르항겔스키 사원(미카엘 대천사 사원)

 

1505년-1508년에 이탈리아 건축가에 의해 세워진 사원으로

 천사대성당이라 불리는 아르항겔스키사원

 역대 귀족 및 왕들의 총 48개의 관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특히 이 사원은 외부 벽면이 2층으로 나뉘어 있고,

러시아정교 건축에서 최초로 2층 발코니가 만들어졌고 둥근 모양의 창이 있는 장식은

이후 러시아 전 지역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한다.

 

아르항겔스키 사원(미카엘 대천사 사원) 입구

 

 

아르항겔스키사원 현관 입구의 성화들

 

 

성당의 벽화는 이반 대제때인 1565년에 그려진 것으로

 벽화에는 전쟁에 관련된 사건과 러시아 성립 까지의 내용이 의화적으로 그려져 있으며

그 외에 대공, 황제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아르항겔스키사원 (대천사사원)내부의 벽에 그려진 이콘화와 외벽의 장식이 아름답고 수려하다.

 

 

 

 

 

 

 

 

 

 

 

아르항겔스키 사원(미카엘 대천사 사원)

표트르대제 전까지의 영주들과 짜르들의 관이 놓여 있는 곳으로

그 안에는 가장 오래된 1340년에 죽은 이반 칼리타공을비롯하여

드미트리 단스코이, 이반 3세, 이반대제와 그의 아들들 등이 46개의 관에 묻혀 있다.

 하얀 벽돌의 관들은 1903년 동과 유리로 만들어진 관으로 덮여 지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다.

 

아르항겔스키(미카엘 대천사)사원

 

1333년 이반 1세가 성 미카엘에게 봉헌하는 조그만 교회를 짓고

그의 후계자에게 자신을 거기에 묻어달라고 유언한게 아르항겔스키 성당의 시초이며

1505- 1508년 사이 이태리에서 초빙된  베네치아 건축가 알레비스 노브이가

먼저 있던 교회 위에다 새로운 교회를 지으면서

1508년에는 러시아 대공들의 모든 유해가 이곳으로 옮겨지고

1564년 이반대제의 지시에 의해 이 곳에 프레스코화가 그려지게 된다. 

16세기 후반에는 작은 돔 하나를 가진 명상의 교회와 세례요한의 교회가 추가되었다.

 

아르항겔스키 성당

 

 사원 내부의 이콘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작품들이 유명하다.

 

12사도 (성모승천) 사원

 

5개의 은색 돔을 가진 사원으로 1655년 완성 되었으며

 1681년부터 현재의 12사도 사원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1963년부터 17세기 미술작품들을 비롯 보석, 가구, 손으로 쓴 출판물 등

 황실 생활용품과 장식용품이 전시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2사도 (성모승천)사원과 주교 궁전

 

1652 대주교였던 니콘은

기존의 거처인 로브 성당이 자신의 위상에 맞지 않고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12사도 성당과 함께 대주교의 새로운 궁전을 옆에 함께 지었는데 

1656년에 이반 시묘뇨프와 알렉세이 카롤코프에 의해 완공되었다.

 

12사도 (성모승천)사원의 은색 꾸뿔

 

 

 

크레믈린의 사원 광장의 건축에서 특별한 점은

 그 대부분이 이탈리아 건축가들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현재의 크레믈린을 이룩했던 이반 3세 시대의 러시아의 건축기술은

 몽고 타타르의 압제 하에서 낙후될 만큼 낙후되어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없이 당대의 가장 발전된 기술을 지니고 있었던 이탈리아 건축가들을 초대한 것이다.

 

그들에 의해 현재의 크레믈린 성벽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지어졌으며

지금의 성벽과 탑들이 건설되었다.

이들에 의해 주도된 크레믈린의 건축이 어떤 서구 유럽의 성채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러시아만의 문화적 역사적 특성을 가지게 된 것은

건축가들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러시아 황제들이 건물 하나 하나에

러시아의 민족적 전통과 정교 문화가 반영하기를 강력하게 요구했던 덕택이다.

 

 

통상  토요일 오전 11 ~ 12 경에

근위대의 퍼포먼스 장면이 성당광장에서 펼쳐진다고 한다.

 

짜르(황제)의 종

 

무게가 200톤인 세계에서 제일 큰 종인 황제의 종

 

크레믈린궁 내에는 두개의 대표적인 제정 러시아의 기념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짜르의대종(황제의종)이다.

 

황제의 종

 

미완성으로 한번도 울려 본적이 없는 종으로 

무게 200톤, 높이 6.14m, 직경 6.6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다.

이반 모토린과 아들 미하일 모토린이 1735년 2년간의 작업 끝에 구리, 금 72kg, 은 525kg을 사용하여 완성하였다.

그러나 1737년 종 주조공장의 화재 당시 누군가 급하게 진화하면서 종 위에 찬물을 붓는 바람에

종의 일부가 균열이 생기면서 깨졌는데 깨져나간 부분이 11.5톤에 이른다.

현재의 위치에 옮겨진 것은 1836년이다.

 

 

종을 만드는 주조 공장의 화재때

 찬물을 붓는 바람에 균열이 생겨 일부가 떨어져 나가

한번도 울려보지 못했다 한다.

 

 

위에는 종의 유래가 적힌 글과

 로마노프 황실 초기 짜르 모습들이 그려져 있다.

 

이바노프 여제의 초상

 

종의 표면에는 황제 알렉세이와 이바노프 여제의 초상

부조되어 있다.

 

 

짜르(황제)의 대포

   

1586년도에 안드레이 초코프가 주조한 것으로 무게가 40톤에 이르는 대포이다.

 대포의 길이가 너무 짧아 현실적으로 사격이 불가능하다 하며,

실제 크레믈린궁을 방어하기 위해 제작되었으나

 한번도 발사된 적이 없다는 황제의 대포가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짜르(황제)의 대포

 

제정 러시아의 기념물인 차르의대포(황제의대포)는

 무게가 40톤이고 길이 5.34m, 포 구경이 89cm에 이르는 대포인데

 황제의 권위와 위용을 과시 하기 위해 제작된 대포로 비 실전용 대포다.

 

성당 광장의 황제의 대포 포탄은 실제로 전장에서 사용한 것이 아닌 전시용

 

대포의 표면에는 황제가 말을 타고 달리는 용맹스러운 모습이 부조되어 있고

대포 마차에는 화난 사자가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대포 밑에 있는 장식용 탄알은 무게가 1톤이나 된단다.

 

 

 

 

 

 

다시 트로이츠카야(삼위일체)탑의 아치문을 통과하여

 

 

들어 왔던 쿠타파탑을 향해 가고 있다.

 

 

 크레믈린의 사원광장에서 느낀 감동을 뒤로 하고

이제 참새언덕과 아르바트 거리를 보기 위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