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창 밖으로 본 상트페테르부르크 시가지

푸른 바다. 2013. 12. 3. 01:37

 

 상트페테르부르크 시가지

 

 

 

 

 

 

유럽을 향한 열린 창이라 불리는 러시아 제 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차창 밖으로 본 풍경들이다.

기획도시답게 도로를 먼저 넓게 내고 난 뒤 건축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유럽 도시들의 좁디 좁은 도로들만 보다 처음에는 도로가 너무 넓어 적응이 안되었다.

그러나 우중충하고 때가 낀듯한 첫 느낌의 페테르부르크는

건물 하나 하나, 골목들을 자세히 보기 시작하자 너무나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한 구역도 아니고 도시 전체의 건물들이 18~19세기의 아름다운 건축기법으로 지어져 있어

왜 유네스코가 도시 전체를 문화유산으로 등재 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도시를 창조했던 표트르대제의 열정적인 꿈과 막강했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대자연이 우리로 하여금

유럽을 향한 창을 열고

바다를 향해 두 발을 당당히 딛도록 했으니

이제 새 항로를 따라 이곳으로

각 국의 선박이 깃발을 날리며 모여들고

우리는 주연을 베풀리라

 

-푸쉬킨의 서사시 청동기마상 중에서-

푸쉬킨이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보고 나서 지은 시다.

 

 

 

물 위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모스크바에서 715㎞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화려한 바로크풍의 건축물들이 즐비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전체는

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러시아 제2의 도시이자, 학술과 문화예술의 중심지이다. 

 

 

영어의 세인트, 러시아어의 빼째르, 독일어의 부르크가 합해진

 세나라 말로 이루어진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성스러운 표트르 대제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간단히 빼째르( 표트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북방전쟁의 결과로 스웨덴으로 부터 획득한 발트해 동쪽 네바강 하구 불모지인 삼각주에 

 표트르 대제는 먼저 페트로파블로프스키 요새를 세운다.

이때가 1703년 5월 27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원일이다.

 유럽에서 1,000명이 넘는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초빙되었고, 매년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강제 동원 되었다.

표트르 대제는 옛 수도 모스크바를 벗어나

서구 유럽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화려한 수도 건설을 원하여,

많은 인명과 물자의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새 수도 건설을 진행하였다.

 

 옛날 싱어 재봉틀 회사의 본사로 사용되다가 러시아 아르누보 스타일로 아름답게 재건된 건물인 싱어빌딩, 현재는 서점이다.

 

 첩의 자식으로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표트르 (피터) 1세

2m가 넘는 훤칠한 키에 배를 만드는 기술을 알고 있는 왕으로,

유럽 순방을 통해 유럽의 문명을 직접 접해보고 새로운 구상에 들어간다.

러시아가 유럽의 중심이 되기를 꿈꾸며,

이를 이루기 위해 유럽으로 통하는 항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1703년 스웨덴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네바강 하류 습지대에 건설된 요새의 완공과 함께 탄생된 이 도시는

1712년 모스크바대신 러시아의 수도로 선포된다.

 

 

사실상 허허 벌판의 상태에서 수도로 공표된 상트페테르부르크

표트르1세는 모스크바에 남아있기를 원하는 귀족들의 이주에 대한 묘안찾아낸다.

 자신의 두번째 부인과의 결혼식을 이곳에서 갖고,

 여기에 참석한 귀족들에게 자신의 명령 없이 한 발자국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려

자연스럽게 이주 작업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도시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한다.

 

 

표트르 대제의 야심찬 수도건설에는 러시아 병사는 물론, 스웨덴과 오스만 제국의 전쟁 포로,

그리고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노동자와 인부들의 엄청난 노동력이 강제 동원되었다. 

프랑스 건축가 알렉상드르 르블롱의 도시 설계에 따라 척박한 해안 지역을

궁전, 교회, 수도원과 2층 석조 건물이 있는 최고의 도시로 탈바꿈시켰고,

이 기간은 2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데,

 러시아의 저력 혹은 전제정치의 무자비함을 아울러 느끼게 한다. 
 (참고, 문화재청 유네스코 등재 세계유산)

 

 

 석재를 징발하기 위해 전국의 석조 건축이 금지 되었고,

신도시 주민들에게 목재용으로 쓰이는 나무를 함부로 벨 수 없도록 명령하였고,

이곳을 통과하는 자는 통행세 명목으로 자신의 머리보다 큰 돌덩이 2개를 내도록 강제 조치했다고.

 

 

바닷가의 황량한 습한 불모지에 건설되는 도시라

 토목공사에 지친 민중들의 마음이 사나워져 반란이 일어나자,

표트르 대제는 비밀경찰을 통해 많은 반대자들을 처형했다 한다.  

 

 

1703년 네바강 하구 델타지대의 수많은 섬들 위에 조성한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초가 완성된 것은 1712년,

1713년 표트르 대제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긴다.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200여년 동안 제정러시아의 수도로서 번창하게 된다.

 러시아를 개혁하고 유럽으로 진출 하려는 표트르 대제의 의지의 산물이다.

그래서 유럽으로 향한 창이란 별칭으로 불리운다. 또한 북구의 베니스란 찬사도 받는다.

 

 

표트르 대제의 재위 초기부터 그물 같은 운하와 도로, 부두 등이 점차적으로 건설되었다.

 또한 18세기 안나 이바노브나,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예카테리나 2세 여제의 재위 시절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시 풍경은 기념비적인 장관을 이루었다.

라스트렐리, 리날디, 콰렌기, 캐머런, 발랭 드 라 모트를 비롯한 여러 외국 건축가들은

수도에 거대한 궁전과 수녀원을 지으면서 서로 그 대담함과 웅장함을 겨루었다.

[출처: 유네스코]

 

 

네바강의 거리라는 뜻의 넵스키대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명한 번화가이다.
 상트의 모든 길이 넵스키대로와 통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교통의 요지이고 
또한 19세기에 건축된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보존되어 있는 운치가 빼어난 거리이다.

 

 

호텔, 레스토랑과 카페, 상점들, 음악당 등이 위치하고 있는 넵스키대로

 

1703년 피터(표트르) 대제가 8년에 걸친 오막살이 생활을 감내하면서 이룩한 계획도시 길들이 다른 여타 유럽 국가보다 넓다.

 

 

세계2차대전때 당시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독일군을 방어하기 위해

 시민군을 조직하여 도시를 지켜냈는데,

공방전과 장기간에 걸친 봉쇄로  45만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시민들이

전사당하고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갔다.

전 후 그들을 묻어두었던 묘지위에는 굴복하지않는 시민의 용기를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900일간 봉쇄된 채 수많은 독일군의 포탄 공세와

 봉쇄 조치로 인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늘어나는 가운데에서도

매일 밤 음악회가 열렸을 정도로 음악을 듣고 시를 읽으며 버텨냈다고 한다.

 

 

1918년 수도가 다시 모스크바로 옮겨지고,

 공산혁명이후인 1914-1924년까지는 페트로그라드로 불렸고,

1924년 1월 레닌이 죽자 그를 추모하여 레닌그라드라 명명 되었다. 

소련 정권 붕괴후 1991년 9월 6일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옛이름을 되찾았다.

 

 

 

 

구시가지 안의 모든 건물은 5층 이하로 건물들은 서로 가깝게 붙어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수도 건설 당시 일반 건물의 높이는 궁궐의 높이를 초월할 수 없으며 

단 사원(성당)의 높이는 제한받지 않았던 관례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페테르부르크 중요 건축물들의 형식은 당대 유럽 건축의 총집합체이며  

 유럽 정예예술가들의 정수를 모은 작품이라고 한다.

 

 

 

 

아니치코프 다리의 네 모퉁이에 세워져 있는 말과 마부 동상

 

폰타카 운하가 흐르고 있는 아니치코프 다리는 1715년 표트르 1세의 명으로 세워졌다.

이 다리의 명칭은 다리 건설을 주도한 육군 중령의 성을 따서 지어졌다.

 

 

러시아 조각가 표트르 클로트가 4필의 말과 마부상을 1830년대에 제작하여

1849~1850년에 설치하였다.

 

 

네 곳 각기 다른 동작의 모습을 조각하였으며 날뛰는 말을 진정시키는 것이 공통적인 소재로,

이 동상들은 그당시 러시아 미술사에서 작품을 구상한 사람이 주조도 겸한 유일한 사례였단다.

 

마부의 몸 근육들과 말 다리의 핏줄까지도 선명하게 표현 했다고 하는데 이 사진으로는 ㅜ

 

 이 말 동상을 만든 조각가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자

화가 난 조각가는 불륜남의 얼굴을 네마리 말 중,

한마리 성기 부근에 조각해서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예카테리나 2세의 동상

 

 

넵스키 대로변에 위치한 카잔성당

 

페테르부르크에서 자주보게 되는 쿠투조프장군의 동상

 

1812년 모스크바로 진격한 나폴레옹을 물리친 조국전쟁에서

 러시아를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바르클라이 데 톨리의 동상

 

조국전쟁 (1812년 모스크바로 진격한 나폴레옹을 물리친 전투)의 또 다른 영웅

 

 

 문화 예술의 도시로 유럽으로 열린 창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러시아에서 가장 서양적이다.

 

 

 

에르미타쥐 박물관 (겨울궁전)

 로마노프 왕조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

 

에르미타쥐 박물관의 창으로 바라다 본 자야치섬의 페트로파블로프스키 사원과 첨탑

 

스위스의 건축가인 도메니코 토레지니에 의해 1712년 착공하여 1733년에 완공되었으나

처음에 나무로 지어진 성당은 화재로 소실되고 1850년 철골을 세우고 탑을 만들었다.

첨탑은 표트르 대제의 명에 의해 모스크바 크렘린 내의 이반대제의 종루보다 높이 지어져

페테르부르크에서도 가장 높아 (122.5m) 이정표가 되고 있다.

이곳에는 표트르 대제에서 알렉산드르 3세까지의 로마노프 차르들이 묻혀 있다.

 

페트로파블로프스키 요새 (피터&폴 요새)

 

페트로파블로프스키 첨탑의 꼭대기에는 천사모양의 피뢰침이 있는데

이 피뢰침을 단 사람의 조건은 술을 무제한으로 마시는 것이었다고.

이에 허가증을 발부했는데 술을 먹고 그 허가증을 두번이나 분실하자

표트르 대제는 그사람의 목에 인장을 찍고 그 인장을 보여주면 언제던지 술을 주라고 명령 했단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목을 가리키면 한 잔하자는 뜻이라고.

 

 

 

네바강과 네프스키대로를 중심으로

에르미타쥐 박물관(겨울궁전), 카잔성당, 성이삭성당, 해군성본부, 피의성당 등 주요 명소가 몰려 있다.

 

 

 

86개의 강과 운하, 101개의 섬이 365개의 다리(교외까지 포함하면 623개)로 연결된

물의 도시이기 때문에 북방의 베네치아, 제 2의 암스텔담 이라고 불리었다.

 도시 면적의 1/10이 수면이고, 늪지대를 매립해서 건되어 이러한 이름들이 붙여졌다.

 곳곳에 들어선 공원, 광장, 궁터 그리고 질서 정연한 도시계획 때문에 쪽의 파리라고도 한다.

 

이삭성당의 금빛 돔이 보인다.

 

네바강

 

전체길이 740km. 라도가호에서 서쪽으로 흘러 하류에 큰 삼각주를 형성하고,

핀란드만으로 흘러들어간다.

네바강은 12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는 결빙된다고 한다.

 네바강은 항행이 가능할 뿐 아니라 백해와 발트해를 연결하고, 

 모스크바와 볼가강 유역의 도시, 카스피해와 흑해를 잇는 중요한 수상교통로 구실을 한다.

 

 

네바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스핑크스상

 

1832년 이집트 나일 강변에서 가져온 것으로 스핑크스의 얼굴은

이집트 왕국 번성기때의 파라오 아멘호테프3세의 얼굴이라 한다.

 

 

 

프랑스에서 기증한 다리라고.

 

 

자정이 넘으면 네바강 다리가 열린다.

화물을 실은 상선들이 바다에서 강으로 들어오는시각이다.

강 다리가 자정 이후에만 열리는 것은 차량 소통이 뜸한 때를 이용해 화물선을 통과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 다리가 열리는 것은 네바강을 투어하는 야간 유람선 관광의 클라이맥스라고 한다.

 

 

 

 제정 러시아때는 수도였으며 지금도 모스코바는 정치, 행정적인 수도로,

페테르부르크는 문화, 예술의 수도로 불리고 있다.

 

양파 돔을 봐서는 사원인것 같은데 

찿아봐도 자료를 못 찿겟다.

 

 

 

운하들은 18-19세기에 지어진 우아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과 어우러져 베니스만큼 아름답다.

 

개선문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 개선문

 

 

 

 이곳 러시아는 개방화가 진전되면서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긴 했지만

아직까지 사회주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는 나라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도시 전체가 등재된,

  러시아 최고의 역사와 문화의 도시,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

 
차이코프스키도 상트의 음악원에서 공부를 했고, 기념공원도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살던 집도,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체홉, 톨스토이 ,고리키, 푸시킨 등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좋아서 살았거나 관련이 있는 저명 예술가가 너무나도 많은 도시이다.

 

 

 

 인구 500만명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65개의 네바강의 지류가 흐르고 101개의 섬이 365개의 다리로

연결된 운하의 도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86개의 강과 운하, 101개의 섬이 365개의 다리로 연결된

운하의 도시로 북방의 베네치아라고 불린다.

 

네프스키대로

 

 네프스키 대로는 구 해군성에서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까지 4.5㎞에 이르는 길이다.
모든 관광 포인트가 이 길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유흥, 쇼핑 등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 노선 버스와 수로 관광까지도 이 대로를 중심으로 운행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크게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획하는데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 고층건물이 못 올라가지만

신시가지는 제한없이 고층건물을 짓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페테르부르크의 예술적인 건축물들 

 

 

 

 

 

 

 

18~19세기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온통 도시 전체를 형성하고 있으니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이리라.

 

 

 

 

 

 

 

 

 

 

 

 

 

  

호텔로 가는 길이다.

 

오늘 하루 더 묵을 브리스톨호텔

 

 

호텔 정문

 

 호텔 로비

 

호텔 객실

 

 

 내일은 아침 4시반에 일어나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로 이동하는 날이다.

아쉬운 북유럽 여행의 마지막 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