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베네룩스 3국과 중부,동유럽 여행 제 1일째
서 유럽의 북해에 면해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1516년 에스파냐의 영토가 되었고 18세기초에는 오스트리아, 1789년부터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워털루전투 뒤 네덜란드에 병합되었다. 1830년 8월에 독립하여 1839년 런던회의에서 영세중립국으로 보장받았다.
유럽지도
벨기에 지도
정식명칭은 벨기에왕국이며, 북부와 동부는 네덜란드·독일, 남쪽은 룩셈부르크, 서쪽은 프랑스와 접하고 북서부는 북해에 면한다. 북쪽의 네덜란드와는 지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관계가 깊어 이 두 나라를 저지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벨기에 국기
벨기에 국왕은 국가원수로서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존재이다. 이와 동시에 국정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벨기에 군사를 지휘하는 최고 통수권자이다. 일반적인 정치 상황에서 국왕에게 주어진 역할은 헌법에 의해 부여된 권한행사, 즉 제안, 조언, 주의, 고무 등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위기가 닥치면 의회를 해산하는 등 국왕의 역할과 영향력이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
벨기에의 국왕은 세습제도에 따라 승계되며, 국왕의 서거 시 왕위를 계승할 자가 만약 미성년자일 경우 상원과 하원의 합동의회에서 섭정권자가 결정된다. 특히 벨기에에서는 정치와 사회체제가 두 개의 언어권(네덜란드어, 프랑스어)으로 나뉘어 있어 오랜 세월 갈등의 양상을 보여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국왕의 조정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각 언어권 별로 정당이 연합해 연립내각(연정)을 구성하는 벨기에 정치의 특성상 국왕은 국정을 중재하는 쉽지 않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벨기에 신임, 전임 국왕 (AP=연합뉴스)
벨기에의 필립 왕세자가 2013년 7월 21일 브뤼셀의 의회에서 헌법수호 선서를 한 뒤 제7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사진은 즉위식 후 브뤼셀 왕궁 발코니에서 필립 새 국왕(오른쪽부터)과 알베르2세 전 국왕, 파올라 전 왕비, 마틸드 새 왕비가 군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필리프 제 7대 벨기에 국왕과 마틸드 벨기에 왕비
필리프 제 7대 벨기에국왕
새 국왕 필립은 벨기에 왕립 군사학교를 거쳐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그는 벨기에 무역협회 회장직을 역임하면서 벨기에의 경제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탰다.
그는 20년 전 백부인 보두앵 1세가 사망했을 당시 왕위를 계승할 수도 있었으나 부친인 알베르 2세의 즉위를 도왔다.
벨기에 국민은 필립이 오랫동안 왕위 승계 수업을 받아 준비된 국왕으로서 직무를 잘 수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필립 왕세자가 필립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왕세자비 마틸데는 왕비가 되고
장녀 엘리자베스(11) 공주는 서열 1위 왕위 계승권자가 됐다.
1991년 개정된 벨기에 왕실 법규는 공주에게도 왕자와 동일한 왕위 계승권을 부여했다.
벨기에에서 7대 왕에 오른 필립 국왕에 이어 8대는 처음으로 여왕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 연합뉴스]
마틸드 벨기에왕비
마틸드 왕비는 현재 필리프 1세의 아내이다. 결혼하기 전의 이름은 마틸드 마리 크리스틴 기슬렌느 둑케넴 다코즈였다.벨기에 태생의 귀족인 패트릭 둑케넴 다코즈와 폴란드계 귀족 어머니 안나 마리아 코모로프스키 사이에서 태어났다. 폴란드의 대통령인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와 사촌 지간이다.[출처: 위키백과]
유럽에서 가장 작은 나라의 하나로, 네덜란드와 함께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조밀한 지대를 형성한다. 1948년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네룩스를 결성한 것을 비롯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유럽연합(EU)에도 가입하였다. 행정구역은 10개주 3개구로 이루어져 있다.
입헌군주제의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의회는 상·하원 양원제로 구성되어 있다.
벨기에는 온화한 해양성 기후가 특징인데, 연중 평균기온의 경우, 여름에는 12~25℃, 겨울에는 0~10℃ 정도를 기록하고, 연간 강우량은 약 780~850㎜ 수준이다.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 가운데 하나로, 전체 국토면적은 한국 경상남북도 크기 정도이며 2009년 기준 벨기에의 인구는 약 1,060만명이고 수도는 브뤼셀이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은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함께 사용하는 2중언어 지역일 뿐만 아니라, 1989년 이후로는 연방정부를 구성하는 지방정부 가운데 한 곳이다. 또한 유럽 연합(EU) 본부가 위치한 도시로,사실상 유럽 연합의 수도이기도 하며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등 많은 국제기구가 위치한 도시이다.
주요 민족의 구성비를 살펴보면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플라망 족이 56%,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왈론 족이 41% 정도를 차지하고, 기타 민족의 구성비는 3% 수준이다. 벨기에의 옛 식민지였던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온 이민자들도 많이 살고 있다.최근 아랍계 이민자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 두 언어가 공용어로 지정된 이중 언어 지역으로모든 거리의 표지판이나각종 공공기관의 명칭은 두 가지 언어로 표기된다. 제3국과 소통하는 대외 언어는 영어를 사용한다.
벨기에의 종교 구성은 로마 가톨릭인 구교가 75%를 차지하고, 그 밖에 유대교,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이슬람교 등의 기타 종교가 25%이다. 이들 6개 종교가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보조금을 받는다.
벨기에의 의무교육 기간은 12년이다
1인당 GDP는 2012년 기준 43,175달러다.
벨기에의 화폐단위는 유로로 1유로는 1.3미국달러(2010년 8월 기준)이다.
이 지역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네안데르탈인의 자취로 보아 5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3세기부터 대부족을 이룬 겔트족과 게르만족이 라인강을 건너 이곳에 이주해와 벨그라는 종족을 이루었다.
스페인·오스트리아·프랑스공화국 등에 합병되었다가, 1815년 빈 조약의 결과로 네덜란드에 병합되었다. 그러나 1830년 벨기에 혁명이 일어나자, 1831년 7월 21일 레오폴드 1세를 국왕으로 하는 벨기에왕국을 세우면서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고 헌법을 제정하였다.
초콜릿은 스위스가 유명한데 벨기에도 초콜릿이 유명하다.
세계 3대 초콜릿 중 2개가 벨기에에서 만들어지는데
고디바 초콜릿도 노이하우스와 함께 세계 3대 초콜릿 중 하나다.
벨기에 와플은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벨기에는
예전에 수도원과 각 마을마다 고유의 맥주들을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전해지는 맥주 종류만도 200~300여종에 달한다고 한다.그리고 개성있는 고유의 맛을 지키기 위해
그 맥주의 향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잔에 부어 마신다고.그래서 맥주마다 특징적인 잔을 구경할 수도 있단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주로는 호가든, 레페, 듀벨 등이 있다,
만화 스머프
1958년 벨기에 만화가 페요(본명 피에르 컬리포드)의 작품 스머프는
숲 속 깊은 곳의 버섯 집에서 모여 사는 파란 난쟁이,
스머프들의 숲 속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크기는 사과 세개만 하고, 몸 색깔은 푸른색, 똑같이 하얀 바지와 모자를 갖추고,파파 스머프를 리더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스머프들은 각자 재능에 따라 개성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가장 가장 큰 적은 사악한 마법사 가가멜과 그의 고양이 아즈라엘이다.
1958년에 첫선을 보인 이 만화는
1981년 미국 한나 바버라 프로덕션에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만들어
전 세계에 스머프 열풍을 일으켰다.스머프가 더 유명해진 것은 이 만화가 마르크스주의를 전파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1992년 한 인터넷 매체에서
스머프는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위장 전술이란 주장을 했는데
그들이 밝힌 이유로는 스머프(Smurf)는Socialist Men Under Red Father(붉은 아버지를 둔 사회주의자들)의 머릿글자를 딴 것이며,
붉은 옷을 입고 있는 파파 스머프라는 강력한 지도자의 지휘 아래
똑같은 노동자 복장을 한 채 집단생활을 하고 재산이 공동 소유이며 농부 스머프, 편리 스머프 등 역할도 잘 분배되어 있고 모두가 평등하다.그리고 종교도 없다.
결정적으로, 모든 캐릭터들의 뒤에 공통적으로 붙는 스머프라는 호칭은동무를 연상하게 한다.
파파 스머프는 칼 마르크스를 상징하고, 가가멜은 자본주의를 상징한다는 등이다.
그리고 의외로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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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역사
4세기 무렵부터 중앙구릉지대의 삼림을 경계로 북쪽에는 플라망족,
남쪽에는 왈론족이 거주하였으나 9세기에 모두 샤를마뉴(카를 대제)에게 정복되고
벨기에는 그 제국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편리한 교통 때문에 주변 민족의 시선을 끌어 이 지역은 전쟁터가 때때로 되었으나,
평화 시에는 도시의 자유수단이 강화되고 상공업도 발달하는 곳이 되었다.12∼13세기 무렵 헨트·브뤼지 등 플랑드르의 모든 도시는 모직물 공업이 고도로 발달하였으며,
그 명성은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14세기에는 모직물 업자간의 내분, 도시 부르주아와 지방 농민과의 반목으로
플랑드르는 위기를 초래하여 수많은 모직공들이 영국으로 도피하였기 때문에
양모공업의 번영중심지는 영국으로 이동하였다.
이 틈을 타서 프랑스의 브르고뉴가의 세력이 벨기에로 뻗었으며
다시 15세기에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합스부르크가의 카를 5세가 1516년 에스파냐의 왕위를 계승하면서
이 곳은 자동적으로 에스파냐 영토가 되었다.
카를 5세는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에 그의 치하에서
벨기에는 르네상스를 맞이하여 플랑드르파라고 불리는 위대한 화가들의 제작 활동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1555년 필립 2세가 왕위에 오르자 극단적인 가톨릭 보호정책을 취하여
신교도가 많은 네덜란드는 폭동 끝에 1581년 독립하기에 이르렀다.
카톨릭교도가 많은 벨기에는 명목상 그대로 에스파냐 영토로 머물렀으나
대폭적인 자치권을 획득하였다.17세기의 벨기에는 영국·프랑스·에스파냐·오스트리아 등 각국의 투쟁 무대가 되었다.
18세기 초 에스파냐의 합스부르크가로부터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에 지배권을 이양하여
벨기에는 오스트리아의 영토가 되었으나
1789년 프랑스의 혁명정부군이 두 번에 걸쳐 벨기에를 점령하고 프랑스의 영토권을 확립하였다.
1804년부터 10년간 나폴레옹 1세가 통치하였으나
그의 반 그리스도교적· 군국주의적인 정책은 시민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의 싸움에서 실패하자
같은 해 빈회의에서 벨기에는 네덜란드에 병합하게 되었다.
그러나 1830년 8월 혁명에 의해서 네덜란드로부터 독립,
1831년부터 벨기에 왕국으로서 각국으로부터 승인되고
또한 1839년의 런던회의에서 벨기에의 영세중립이 보장되었다.
독립 후에는 레오폴드 1세·2세의 현정이 계속되고
1885년에는 본국의 80배나 넓은 콩고자유국을 영유하여 경제적 대국이 되었다.
1934년 즉위한 레오폴드 3세 (1934-1951)는
외교 수완이 부족하여 제1차, 제2차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점령을 경험하였다.
제2차 대전 중 레오폴드3세의 대독항복으로 영국에 망명정부가 수립되고 그는 퇴위, 스위스로 망명하였다.
1947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간 관세동맹(베네룩스 3국)이 결성되는 가운데
1951년 레오폴드 3세의 장남인 Baudouin 국왕이 즉위(1951-1993)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후 1960년 콩고의 독립을 승인하고,
르완다와 부룬디에 대한 신탁통치권도 포기하는 가운데
1970년 이래 양대 언어권인 불어계와 화란어계 주민간의 대립이 첨예화되는 불안정한 연정이 계속되었지만
1979-1992년간 기민당의 Wilfried Martens 내각이 2차례에 걸쳐 집권하면서 정치적 안정을 되찾았다.
1993년 헌법 개정을 통해 연방국가로 변모하고,
양대 언어권의 조화를 위한 국가개혁과 유럽통합의 주축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최대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브루게 역사 지구 2000년 중세 문화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역사도시
2. 스토클레 저택 2009년 20세기 초에 건축한 건물과 더불어 내외부 장식, 가구와 일용품, 정원 등
3. 건축가 빅토르 오르타의 저택 2000년 초기 아르누보 작품으로 디자인한 4채의 주요 타운하우스
4. 브뤼셀의 그랑플라스 1998년 17세기 후반부터 공공건물과 개인 건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발전한 곳
5. 플랑드르 지방의 베긴회 수녀원 1998년 주거지, 교회, 부속 건물과 녹지 공간으로 구성된 건축물 유적
6. 투르네의 노트르담 대성당 2000년 고딕양식이 중세시대에 풍미하기 이전에 나타난 고딕 양식의 시초
7. 플랑탱 - 모레투스 박물관 2005년 르네상스 및 바로크 시대의 옛 인쇄소,출판사
8. 비블리오테카 코르비니아나 컬렉션 2005년 기록유산 15세기 유럽이 남긴 르네상스 시대의 공동 문화유산
9. 벨기에와 프랑스의 종루 1999년 11세기~17세기에 걸쳐 오랜 시기에 만들어진 종루들
10. 왈로니아의 광산 유적 2012년 가장 잘 보존된 19세기와 20세기의 석탄광산 유적
11. 오피시나 플란티니아나 경영 기록물 2001년 기록유산 벨기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쇄 및 출판사의 경영록
12. 안트베르펜 파산 부동산 공문서 2009년 기록유산 근세(1500~1800)의 국제관계를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유용하다.
13. 상트르 운하, 4개의 리프트와 주변 지역 1998년 짧은 운하 구간에 4개의 수압식 선박 리프트와 그 주변 건축물
14. 스피엔네스의 신석기 시대 플린트 광산(몽스) 2000년 유럽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오래된 신석기 시대 고대 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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