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빈 시청사, 쇤부른 궁전
여행 제 5일째 4월 26일 토요일
멜크 수도원의 애비성당의 화려함에 압도 당한 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향했다.
여기서는 또 어떠한 놀라움이 나를 반길지 상당히 기대된다.
이때까지의 여행 중에서
웅장한 거룩함에 있어서는 이탈리아의 베드로 대성당,
외관의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밀라노의 두오모성당
그 크기의 거대함에 있어서는 독일의 쾰른대성당,
성당 내부의 화려함에 있어서는 오스트리아 멜크수도원의 애비성당이 생각나는데
앞으로 할 여행에서는 또 어떤 성당이
나의 뇌리에 어떠한 모습으로 각인 될지 모르겠다.
유네스코 지정 빈 역사지구인 빈 시내로 들어왔다.
LG TV 간판이 보인다.
비엔나
유네스코 빈 역사 지구는 초기 켈트족과 로마 인의 거주지였다.
중세에는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도시로 번영을 누렸고,
근세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였다.
또한 빈 고전 음악의 전성기를 거쳐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음악을 이끄는 중심지였다.
비엔나는 알프스산맥의 동쪽 끝과 다뉴브강 연안에 위치한
중부 유럽의 경제, 문화, 교통의 요지로서
중세시대 십자군 원정의 통로로 사용되었으며
로마제국의 동방 방어진지의 역할을 하는 군영을 토대로 세워져
도시가 번창하였다.
빈 역사중심지의 명소는
유명한 환상도로 주변에 몰려 있다.
빈 중심부를 감싸고 있는 이 도로는 1857년에 건설된 것으로
길이는 4km에 불과하지만
폭이 50~60m나 되는 넓은 도로다.
빈 역사 지구에는 바로크 양식의 성과 공원, 기념물,
큰 건물들이 늘어선 19세기 말의 환상 도로(Ringstrasse) 등
여러 건축물이 있다.
살기좋은 도시로 선정된 비엔나는
높은 소득만큼 물가도 비싸고
아주 소수의 경우를 빼고는 이민이 허용되지 않아
관광객과 상사직원, 외교관 가족과 유학생들을 빼고는
외국인 거주자가 많지 않다.
23개 구역으로 나뉘어진 각 구마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비엔나는 박물관의 도시다.
이 박물관들은 미술전시관,문화역사전시관,주요인물 기념관,
종교전시관,공연예술전시관,진기명품전시관 등
그 종류만도 수십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듯 많은 박물관이 생기고 유지되는 것은
옛 문물을 소중히 여기고 수집하여 간직하려는 보수적인 국민성에다
그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며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의 수요에
맞추기 위한 상업적인 동기에서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비엔나는
세계음악계를 이끌어온 작곡가들인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하이든, 요한 슈트라우스,
브람스, 아놀드 쇤베르크, 구스타프 말러 등
수많은 음악가들을 배출했다.
지금도 세계의 수 많은 유망한 인재들이 비엔나로
유학와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지금까지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가 18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이중 대부분이 의학과 물리학등의
기초학문을 기반으로 한 탁월한 과학적 업적으로 수상했다고 한다.
비엔나는
세계 최정상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500년 전통의 빈 소년 합창단,
세계 3대 오페라극장인 국립 오페라극장을 가지고 있다.
구시가지의 중후하고 클래식한 건물들은
세계의 각종 고전건축양식들이 총 집결된 건축물들로서
높은 예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것이 인정되어
이 지역 일대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빈은 언제나 국제 정보전의 한가운데에 있다.
냉전 시대 동서의 스파이들이 공공연히 정보전을 펼치던 곳이었고,
철의 장막이 해체된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에서 외국인 정보 조직원의 비율이 가장 높은
스파이 허브 지역이다.
비엔나는
세계 문화강대국인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도시로서
뉴욕, 제네바와 함께 UN의 상주기관들이 많이 자리잡고있는데
북한상주대사관도 아직 이곳에 주재하고 있다고 한다.
비엔나 음악대학에만도 현재 북한 유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어
동서 양 진영의 외교 문화의 각축장이기도 하다.
종전후 미,소,영,불에 의해 10여년동안이나
신탁통치의 쓰라린 아픔을 겪었던 비엔나는 지금은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IAEA(세계원자력기구) 등 수많은 유엔 기관들이 들어서
국제정치의 중심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전체 인구 860만명중
비엔나에만 약 160만명이 살고 있다고 하며
도시의 이름있는 건축물 등은 대부분 지금으로부터
150년~ 200년전에 지어진 건물들이라고 한다.
하얀빛 화강암으로 지어진 오래 된 건물들이 많아
비엔나를 빛나는 다이아몬드에 비교하기도 한단다.
비엔나는
고전주의,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에 이르는
시대별 양식이 섞여 있는 건축 전시장이다.
시내 전역을 운행하고 있는 트램은
다른나라 트램보다 작고 귀여운 것 같다.
비엔나 시내에는
6개노선의 지하철 노선중 5개노선만 운행되고 있다.
비엔나 시내의 건축물들
비엔나 시청으로 가고 있다.
시청 가는 길 주변의
아름다운 옛 건물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가 신왕궁 테라스에서
오스트리아와 독일제국과의 합명을 선언했는데
그 때 50만 명의 시민이 몰려와 환호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건축물들로 가득한 비엔나의 골목
포티브 성당의 첨탑
아름다운 포티브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포티브 성당
쌍둥이처럼 우뚝 솟은 두 첨탑이 아름다운 포티브 성당은
1853년 2월 18일 이 성당 맞은편에서 발생한
프란츠 요제프 황제 암살 기도 사건이 황제의 단추에 흉기가 걸려 미수에 그치게 되자
훗날 멕시코 황제가 된 동생 막시밀리안 대공이
황제의 무사함에 감사하며 봉헌하려고
1856년부터 1879년까지 하인리히 폰 페르스텔에 의해
신고딕양식으로 완공한 성당이다.
비엔나 시청사
건축가 프리드리히 폰 슈미트가
벨기에 브뤼셀 시청사를 본 따 신고딕으로 지은 건물로,
1883년에 세워진
네오 고딕양식의 5개의 탑이 솟아 있다.
비엔나 시청사 건물
신고딕식 건물로 빈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다.
대부분의 오스트리아 시청사는
시민을 위해 시청 광장을 개방하고 있어 문화공간으로 이용되는데,
비엔나 시청사도
여름에는 필름페스티벌, 겨울에는 강림절 행사인 크리스마스마켓 등
일년 내내 크고 작은 축제들이 열린다.
비엔나 시청사
7월, 8월
여름밤에 열리는 필름페스티벌에서는 대형스크린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및 오케스트라의 콘서트,
그리고 오페라가 무료로 상영된다.
비엔나 시청사
크리스마스마켓은 11월 16일부터 12월 24일까지 열리는데,
행사가 시작되면 시청 앞에 늘어선 140여 개의 가판대에
설탕에 절인 과일, 군밤, 솜사탕 등 먹을거리와 크리스마스 장식품이 진열되며,
전세계 합창단이 참가하는
크리스마스 캐럴 콘서트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페스티벌 홀에서 열린다.
시청사의 중앙 첨탑은
높이가 104m에 이르는 아름다운 탑이다.
첨탑 꼭대기에는
갑옷을 입고 창을 든 기사가 서 있다고 한다.
건물 외벽은
합스부르크왕조와 오스트리아의 인물들이
조각되어 세워져 있다.
비엔나 시청사 앞의 공원
아침이라 벤치들이 비어 있다.
비엔나 시가지의 가로등은
공중에 매달려 있다.
다시 이 곳에서 버스를 타고
쇤부른 궁전으로 간다.
뮤제움콰르티어(MQ)
10개 이상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밀집되어 만들어진 뮤제움콰르티어(MQ)는
2001년에 오픈되어 규모로는 세계에서 10위 안에 드는 종합 박물관이다.
에곤 쉴러의 작품이 200점이상 전시되어 있는 레오폴트 미술관이 가장 유명하며
피카소와 앤디워홀 등의 20세기 현대예술가 작품이 전시된 근대미술관,
어린이박물관 등이 있다.
[출처: 저스트 고]
쇤부른 궁전 가는 길의 비엔나 도심 풍경
버스에서 하차하여 걸어 갔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쇤부른 옐로우가 칠해진 건물들이 있는 것을 보니
쇤부른 궁전에 다 왔나 보다.
쇤부른 궁전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남서쪽 교외에 있는 합스부르크가의 여름 별궁으로,
합스부르크 왕조 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마리아 테레지아를 비롯한 많은 왕들이 이곳에서 정무를 보았고,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했을 때는 나폴레옹군의 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했다.
쇤부른궁전의 정문 모습으로
두 마리의 독수리가 하늘 높이 조각돼 있는데
독수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비상하는 듯한 합스부르크가의 독수리
아름다운 샘에서 유래한 쇤부른궁전은
가장 아름다운 궁전의 하나이다.
정원에서 바라 본 쇤부른 궁전
1569년 막시밀리안 2세가
사냥터로 쓰기 위해 숲속 동물원과 정원을 만들었고,
1696년경 레오폴트 1세의 명령으로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을 모방하여 지었다고 하는데
이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때인
1744년부터 1749년 사이에 니콜라우스 파카시의 설계에 따라
로코코 양식으로 대대적인 개축이 이루어졌다.
궁전은 부드러운 황색의 외벽이 인상적인 거대한 3층 건물로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에 자극되어
당시 독일,오스트리아에서 많이 세운 바로크양식의 대표적인 대궁전으로
방이 1,441개나 되며,
그 대부분은 로코코양식의 실내장식을 해 전체적으로
화려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다.
쇤브룬 옐로우(황색)색으로 칠해진 궁전
외벽의 옅은 황색 칠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좋아한 색깔이라는 설도 있으나
사실은 여왕이 사망하고 난 뒤인
1817년 아만이 당시의 고전주의 취향에 따라 칠한 것이다.
이 단일한 색은 건물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해 준다.
이 황색은 이후 오스트리아의 우체국과 철도 역사
그리고 교회에도 많이 사용되어 일명 쇤브룬 옐로우(황색)라고 부른다.
궁전안에는 총 1,441개의 방이 있으며,
넓은 대지에
수많은 분수와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조각품들이
세워져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정원에는 이외에도
1752년에 세워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
아치형의 독특한 모양을 한 온실,
1690~1918년까지의 마차가 전시된 궁정마차박물관 등이 있다.
쇤부른이란 이름은
1619년 마티아스 황제가 사냥을 하다가
맑고 시원한 샘을 발견한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쇤부른이란 아름다운 샘이란 뜻이다.
쇤부른 궁전은
방이 1441개, 부엌 130개로
당시 궁내에 거주하는 사람만도 1,000여 명이었다고 한다.
쇤부른궁전 내부로 들어가고 있다.
현재 쇤부른 궁전의 방 중에 관광객에게 공개되는 방은 45개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화려했던 과거를 엿볼 수 있다.
그 중에는 모차르트가 여섯 살 때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연주했던 거울의 방과
마리아 테레지아의 거실, 딸 마리 앙뚜와네트의 방,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아내 엘리자베트 왕후 방도 있는데
실내에서는 사진을 못 찍게 한다.
대회랑
마리아 테레지아가 화려한 대연회와 각종 회의를 열던 곳으로
사진을찍지 못하게 해서 출입구 근처에서 찍었다.
이곳의 천장 프레스코화는 3개로 구성 되어 있는데
'정치, 경제, 전쟁'으로 구성되어 있고 경제 그림을 보고
등소평이 극찬을 했다고 한다.
등소평은 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밑의 내부 사진들은 쇤부른 궁전 홈피에서 퍼 왔다.>
대회랑의 천정화
거울의 방
6살 모짜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처음으로 연주한 곳
나폴레옹의 방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를 정복했을 때 사용한 방
마리아 테레지아의 침실
원래는 침대로 쓰였으나
살이 너무쪄 그냥 침대를 집무실 대용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화장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자들이 치장하던 곳
마리 앙투아네트 방
중국풍으로 꾸민 방
궁전의 내부는
호화로운 로코코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천정은 프레스코 화로 가득 채워져 있고,
특히 마리아 테레사 여제가 수집했던
동양의 자기들과 페르시아에서 가져온 세밀화등을
장식으로 사용했다.
쇤부른 궁전 내부를 둘러 보고 수신기를 반납하고
정원으로 나왔다.
합스부르크의 문장은 쌍두의 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펼친 것으로
그 주위에는 제국의 영토들을 대표하는 문장들이 둘러쳐 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문장에도 쌍두독수리가 등장한다.
쇤부른 궁전 정원
궁전 뒤로는 1.7㎢ 달하는 광대한 프랑스식 정원이 펼쳐져 있는데
화단과 분수, 정교한 조각상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원은
1996년 궁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글로리에테와 넵튠분수
1757년 코린에서의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이 프리드리히 대왕의 프로이센군에 승리한 것을 기념해,
마리아 테레지아가 1775년에 궁전의 맞은편 정원 끝 언덕에
신고전주의양식의 주랑식 개선문인 글로리에테를 건축했다.
글로리에테
페르디난트 폰 호헨베르크에 의해 설계되고
완성된 신고전주의풍의 아케이드로서 외관이 아름답다.
11개의 도리스식 기둥이 열주를 이루고 있고,
높이가 20m를 이루기 때문에 이곳에서 비엔나 전경을 보기에 좋다.
1780년 즈음에는 다이닝 룸으로 사용했었으나
현재는 Café Gloriette 로 이용하고 있다.
언덕 위의 글로리에테
아치형의 주랑과 정교한 조각이 일품인 신전풍의
건물 자체도 아름답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궁전과 정원의 전망이 좋기로 유명하다.
넵튠분수
바다의 신 넵튠(포세이돈)과 암피트리체 사이의 아들인
반인반어 트리톤이 조각되어 있다.
글로리에테는 현존하는 개선문 중
가장 아름다운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다.
쇤부른 궁전은
역사적인 사건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1805년과 1809년 나폴레옹 1세가 사령부를 설치 했고,
1818년 합스부르크가의 마지막 황제인 칼 1세가
퇴위 결의서를 서명한 곳이기도 하다.
1961년에는 존 F. 케네디와 후르시초프가 악수를 하며
동서냉전을 허무는 기반을 마련하면서 동서문명의 화합의 터전이 되었다.
왕궁 정원은
약 1.7㎢에 달하는 바로크 양식으로 단장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다수의 분수와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44개의 대리석상들이 있다.
나폴레옹 1세는 1805년과 1809년까지 쇤부른 궁전에 머물렀고,
나폴레옹과 합스부르크왕가의 마리 루이스 사이에서 태어난
라히슈타트 공작도 쇤부른 궁전에서 죽었다.
열강의 대표들과 귀족들은 당시 유럽 전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의 물결에 모두 출렁거린 통에
회의는 춤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쇤부른 궁전은 이 말을 탄생시킨 바로 그 장소다.
1762년 6살 짜리 신동 모차르트는
처음으로 빈을 방문하고 쇤부른 궁전에서 연주회를 열게 된다.
이곳에서 꼬마 모차르트는 당시 음악가들의 전폭적인 후원자였던
마리아 테레지아 여황제 앞에서 연주하는 영광을 얻었다.
여황제의 위엄 앞에서도 끄떡하지 않고 대범하면서도 훌륭한 연주력을 과시한
어린 모차르트는 여황제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꼬마 모차르트의 대범함은 연주로만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연주를 지켜보고 있던 어린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다가가더니
"나는 너를 나의 아내로 삼을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구혼하는 것이 아닌가.
이를 지켜보고 있는 주위사람들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물론 공주는 16살이 되자 루이 16세와 결혼을 했지만 결혼 전까지는
이 쇤부른 궁전에서 지냈다고 한다.
쇤부른 궁전의 정원에 있는 숲
정원에서 바라 본 쇤부른 궁전
정원과 비엔나 시내를 둘러보는 마차도 있다.
쇤부른 궁전 정원을 둘러 볼 수 있는 꼬마 기차
오스트리아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마리아 테레지아와 남편 프란츠 1세
범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엘리자베트 황후(시시)
프란츠 요셉 황제와 엘리자베트 황후(시시)의 자석
쇤부른 궁전을 나가면서 뒤 돌아 찍었다.
여기에서 버스를 타고 게른트너 거리로 간다.
거기에서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거행된
성 슈테판 대성당을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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