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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거리, 성 마틴 대성당, 미카엘 문

푸른 바다. 2014. 7. 19. 11:08

 브라티슬라바

 

 

브라티슬라바거리, 성 마틴 대성당, 미카엘 문

 

 

제 6일째 4월 27일 일요일

 

오늘은 나폴레옹 투어 즉 정복투어를 하는 날이다.

하루에 3개국 이상을 소화하는 일정일 때

부르는 말이라고 가이드가 설명을 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출발하여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를 관광하고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오늘 다 둘러봐야 하는 일정이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어젯밤 묵었던 파크호텔에서 아침 산책으로

클로스터노이부르크 마을을 둘러 보았다는

블로그의 글을 읽고는

정보를 모르고 간 나 자신을 자책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까지는 약 1시간 거리다.

 

 

 

 

 

 

 

 

 

 

비엔나 외곽지역

 

 

 

 

오스트리아 석유 저장 단지

 

 

 

 

오스트리아의 풍력 발전기들

 

 

 

 

다뉴브강 (도나우강)

 

독일어로는 프레스부르크,

헝가리어로는 포조니라고 하는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했다.

 

 

 

 

브라티슬라바 슬로바키아의 수도로

 다뉴브 강을 끼고 있으며 인구는 약 43만 명이다.

슬로바키아 남부 도나우강 연안의 하항이다.

철도의 분기점이며, 고대부터 교통의 요지를 이루었다.

 로마 시대부터의 거주지이며,

 9세기 중엽부터 슬라브인이 거주하였다.

 

 

 

 

체코족과 슬로바키아족은 언어도 다른 별개 민족이지만

9세기부터 연방형태 모라비아제국을 이뤘다.

10세기엔 헝가리에 점령당하면서

체코와 분리돼 천년 넘게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다.

 

 

 

 

 

도나우강변 언덕에 브라티슬라바성이 서 있다.

 

브라티슬라바

오스만투르크가 침입했던 1541∼1784년에는

헝가리의 수도였으며,

18세기 말부터 정치·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1차 대전 이후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에 편입되었다가

 1993년 슬로바키아 공화국이

국민투표를 거쳐 독립하면서 수도가 되었다.

 

 

 

 

브라티슬라바는

 러시아 연방에서 송유되는 송유관의 종점으로

슬로바키아의 정치,경제뿐 아니라 문화,교육의 중심지이며

 코멘스키대학(1467)을 비롯하여

슬로바키아 공과대학·음악대학 등 여러 교육기관,

과학아카데미·극장 등이 있고,

 데빈의 고성과 프란치시칸 대성당(1294) 등이 있다. 

 

 

 

 

노비모스트 다리(새로운 다리)

 

도나우강에 놓인 다리로

 1967년 착공하여 1972년 8월 26일 완공되었다.

총길이 430.8m, 너비 21m, 높이 84.6m, 무게 7,537톤이다.

1개의 철탑과 1개의 사장판이 있는 사장교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다.

  교량 위쪽은 차량용 4차선 도로로 되어 있고

도로 아래 양쪽으로

자전거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나 있다.

 

 

 

 

 노비모스트는 새로운 다리라는 뜻이다.

브라티슬라바에서

도나우강을 건너는 2번째 다리로 건설되었으며,

 다리 건설로 인해 브라티슬라바성 아래에 있던 구시가지 중

유대인지구를 포함한 주요부분이 파괴되었다.

 

 

 

 

노비모스트(새로운 다리)

 

노비모스트

다리 위 84.6m 높이 탑 위에 날아가는 접시 형태의 UFO라

 불리는 레스토랑으로 인해 UFO다리라고도 불린다.

레스토랑은 왼쪽 기둥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올라갈 수 있는데,

 브라티슬라바의 전경이 내려다 보이며

 오른쪽 기둥은 430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브라티슬라바성

 

 브라티슬라바성은

다뉴브강이 내려다보이는

카르파티아 산 남쪽언덕에 있다.

 이 성은 대모라비아왕국 시대에는

중요한 정치적인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대모라비아왕국 소멸 이후

헝가리 정부의 국경요새로 역할을 했다.

 

 

 

 

브라티슬라바성

 

 1811년 나폴레옹 전쟁때

완전히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다가 1953년 재건되었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의 브라티슬라바 거처이자

 슬로바키아 국회의사당으로 이용되었다.

 현재에도 일부분은 슬로바키아 의회로 사용되고 있으며, 

시립박물관의 주건물로 이 성의 3층에서는

20세기 슬로바키아의 역사, 문화, 예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성루에 오르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명확히 보인다.

구시가지는 헝가리 통치 시절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유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고

다리 건너 신시가지는

사회주의식의 황량한 회백색 건물로 채워져 있다.

 

 

 

 

브라티슬라바 도시 곳곳에서 

 St. Elisabeth 를 기리는 건축물과 상징들을 볼 수 있는데,

브라티슬라바성에서 엘리자베스 공주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결혼 뒤 남편을 잃고

다시 이 성으로 돌아와 빈민구제에 남은 여생을 헌신했고

뒤에 성녀로 시성 되었다.

 

 

 

 

KIA 로고가

슬로바키아와 맞물린 아이디어가 좋다.

 

 

 

 

브라티슬라바성과 성 마틴 대성당의 첨탑이

한 공간에 잡혀 있다.

 

 

 

 

 


 

성마틴 대성당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가 있던 자리에 다시 세워진 성당은

도시를 둘러싼 요새화 된 성벽 안쪽에

 1221년부터 건축하여 15세기에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완성되었다.

그후 전쟁,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고 현재의 성당 모습이 된 것은 1849년이다.

성당에는 15세기에 건축된 고딕 양식의 성모 마리아 예배당과

18세기에 건축된 바로크 양식의 사도 요한 예배당이 있다.

 

 

 

 

성마틴 대성당

 

성당의 주입구로 사용되는 문 위에는

홀리 트리니티를 묘사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또한 성당에는 제단,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의 묘비,

도너에 의해서 제작된 성 마르틴의 동상을 포함한 조각들,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등

 많은 예술적이고 역사적인 유물이 남아 있다.

 

 

 

 

성마틴 대성당은

브라티슬라바가 헝가리 왕국의 수도였던 

1563년에서 1830년에 걸쳐

19명의 헝가리 왕과 여왕들이 대관식을 가졌고

 또한 베토벤의 장엄미사를 초연한 장소이기도 하다.

 

 

 

 

15세기 축성된 성 마틴 대성당의 첨탑

 

 타워의 높이는 85m로

타워의 상층부는 금으로 도금된 받침대가 있고,

19세기에 설치된 300kg의 무게가 나가는

1m 높이의 거대한 성 스데반의 왕관 모형이 있다.

성당의 타워는 마을을 방어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오늘날 성당은 붕괴 위험에 처해 있으며

1999년 보수작업이 시작되었다.

2002년 슬로바키아 정부에 의해서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성 마틴 대성당의 지하무덤에는

고위 성직자와 귀족들의 무덤이 있으며

지하무덤은 1895년까지 사용되었다.

 

 

 

 

성당 옆 광장쪽에 있는 조각상

 

 

 

 

 

 

 

 

 

 

흐베즈도슬라보보광장을 통과해

 

 

 

 

국립극장에서 중앙광장 쪽으로 갔다.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면서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다소 생소했던

 브라티슬라바는 화려함이 아닌 소박함으로 다가왔다.

 

 

 

 

브라티슬라바에서 유명한 추밀이라는 맨홀 맨

 

옆에 Man at work

작업중이라는 뜻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지나가는 예쁜여자들을 구경하고 있다는 의미라나 ㅋ

 

 

 

 

구시가지 메인 스트리트에 있는

 맨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추밀은

브라티슬라바에서 제일 유명한 동상이라고.

 

 

 

 

브라티슬라바 구 시가지 곳곳에는 재미있는

동상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꼭 챙겨 보아야 할 세개의 동상이 있는데

맨홀 맨 추밀, 훔쳐 보는 사람, 훔쳐 듣는 사람이라고 한다.

 

 

 

 

파파라치맨  훔쳐 보는 사람

 

 

 

 

중앙광장의 나폴레옹상으로  훔쳐 듣는 사람이다.

 

 

 

 

옆으로 중앙광장의 구 시청사가 보인다.

 

 

 

 

바람맞은 신랑 이그나즈의 동상

 

결혼식날 신부가 나타나지 않아 하객들이 다 떠나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친 늦은 밤

연미복을 입고 신부를 찿아 헤메였다는 사연을 가진 동상으로

이그나즈는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사랑으로

실성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늘 말쑥한 차림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모자를 벗어들고 상냥하게 인사를 하거나

아름다운 여인에게는 꽃을 주었다고 한다.

40년을 착하게 살다 간 이그나즈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제작 되었다 한다.

 

 

 

 

 엘 디아브로 음식점 2층 창가에

 멕시코 인형이 놓여져 있다. 

 

 

 

 

 

 

 

 

 

 

 

 

 

체코 맥주 필스너 우르켈 간판

 

1842년 필스너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 바로 체코의 플젠으로

 필스너라는 맥주의 이름은 플젠이라는 지명에서 나온 것이다.

 필스너 맥주는 밝고 투명한 황금색으로 깔끔한 맛과

 뒷맛에서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홉의 쓴맛이 특징이다.

필젠에서 만들어지는 필스너 맥주는

필스너 우르켈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오리지널(원조) 필스너 맥주라는 뜻이다.

 

 

 

 

 

 

 

 

 

 

 

 

 

구시가지에 있는 KORZO

 

KORZO라고 적혀 있는데 유래를 모르겠다.

검색에도 안 나온다.

 

 

 

 

 

 

 

미로같은 구시가의 상징적인 기준이 되는

 미카엘 탑이 보인다.

 

 

 

 

 

 

 

KORZO 바위 옆의 골목 길

 

 

 

 

미카엘 문을 향해 직진

 

 

 

 

미카엘 탑은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의 관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탑 주변에는 노천바들이 늘어서 있다.

 

 

 

 

미카엘 문 Michael's Gate

 

도시 요새 5개 중에서 다른 문들은 화재로 소실되고

단 하나 남은 문으로 중세시대를 느낄 수 있다

미카엘 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11년으로

 14세기 전반기에 고딕 형식의 정사각형 탑이 있었는데 

16세기에 현재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오늘날의 형태는 1753년~1758년에 걸쳐 바로크 양식의 지붕으로

재건축 되었다.

 

 

 

 

  고딕과 바로크가 뒤섞인 14세기 미카엘 탑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지 여행은

구도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중세시대 성벽과 함께 건축된 문인

미카엘 탑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14세기에 세워진 미카엘 탑은

오랫동안 브라티슬라바의 관문이었다.

성 마틴 대성당, 성 프란시스코 교회, 시청사 등

대부분의 볼거리들이 인근에 몰려 있다.

 

 

 

 

미카엘 문은

51미터의 높이의 탑으로 7개층으로 되어 있다.

최근 모습은 1758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 되었으며,

 탑위에 미카엘 상과 용을 추가 했다.

 

 

 

 

51m 높이의 6층으로 된 성문의 탑위에 올라가면

 전망대에서 구도심과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관람할 수 있다.

 

 

 

 

 꼭대기에 미카엘과 용이 놓여져 있어

미카엘 게이트라 부른다.

옛날에는 구시가지를 둘러싼

성 마틴 대성당의 성벽이 이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이 문만 남아 있다.

 

 

 

 

 탑 위의 미카엘상과 용

 

현재는 브라티슬라바 시립 박물관 무기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미카엘 문에 대한 동판

 

 

 

 

미카엘 문 아치

 

 

 

 

미카엘 문 안에 있는 금색 원

 

 

 

 

현재 위치에서

 각 나라 도시까지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보여준다.

반갑게도 서울이 있다. 8,138Km이다.

 

 

 

 

미카엘 문을 통과하면

나무와 벽돌을 사용하여

1727년 만들어진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가 나온다.

 

 

 

 

 

 

 

다리 난간의 석상

 

 

 

 

이 다리를 통과하면

 

 

 

 

 트리니타리안 성당 Trinitarian Church

 

1727년 건축된 바로크 양식의 성당으로

 내부 인테리어는 18세기 중반까지 계속 되었고

아치형의 천장과 프레스코가 아름다운 성당이다.

 

 

 

 

도로를 건너 들어가 봐야 했는데

일행들도 아무도 안 보이고

자유시간도 많이 지났고 해서 줌으로 당겨 입구만

찍고는 모이는 장소로 돌아섰다.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건너

 

 

 

 

미카엘 문을 나오면

중부 유럽에서

가장 폭이 좁은(130cm) 케밥 건물이 있다.

 

 

 

 

약학 박물관

 

미카엘 문앞에 위치한 약학 박물관은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 건물을 개조해 사용하고 다.

중세에 사용하던 약병, 처방전, 조제할 때 사용하던 도구 등

 신기하고 귀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미카엘 문 주변에는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중세 골목의 특징인 좁은 미로 같은 골목

 

 

 

 

 

 

 

중세 기사가 서 있는 레스토랑

 

 

 

 

레스토랑 기사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꼬마 형제

 

 

 

 

 

 

 

보헤미안의 풍류가 서린

수도 브라티슬라바의 거리는

고풍스럽고 정감 넘친다.

 

 

 

 

 

 

 

 

 

 

 

 

 

 

 

 

노천바에 앉아 맥주를 주문하면

알싸한 맛이 강한 보헤미안 맥주 필스너 우르켈이

가득 담겨 나온단다.

 

 

 

 

 

 

 

 

 

 

 

 

 

 

 

 

 

 

 

 

 

 

 

 

 

왼쪽 프랑스 대사관 건물 옆으로 들어가면

중앙광장이다.

 

 

 

 

메인 도로에서 옆으로 보면 좁은 골목들이 보인다.

 

 

 

 

 

 

 

노천 카페

 

 

 

 

 모이는 장소로 가기 위해 다시 국립극장 쪽으로

부지런히 가고 있다.

 

 

 

 

거리의 행위예술가

 

행위예술가인데

처음에 여느 가게 앞 중세기사인줄 알고

가까이 갔다가 눈을 뜨는 바람에 깜짝 놀랬다.ㅋ

 

 

 

 

아이스크림 가게

 

브라티슬라바의 물가는

다른 이웃 나라들보다는 많이 싸다.

 

 

 

 

아이스크림 색깔이 예뻐 찍어 봤다.

 

 

 

 

 

 

 

 

 

 

 

 

 

 

 

 

 

 

 

브라티슬라바 골목을 누비고 있는 시티투어 버스

 

시티투어 버스가 너무 조그마한게 귀엽다.

 

 

 

 

이쁜 꼬마들이 인형과 포즈를 잡고 있기에

 

 

 

 

스쳐 보다가 정말 깜짝 놀랬다.ㅋ

 

 

 

 

 

 

 

골목마다 소박한 정취가 느껴진다.

 

 

 

 

이 골목 끝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공중에 매달려 있는 저 구조물까지만 보고 돌아섰다.

 

 

 

 

옆 건물들에 줄을 연결해 걸어놓은 것은

브라티슬라바시 문장이다.

 

 

 

 

 

 

 

 

 

 

국립극장 근처의 레스토랑

 

 

 

 

 

 

 

뭘 먹는지 궁금해서 줌으로 살짝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