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헝가리] 부다페스트 부다왕궁, 겔레르트 언덕, 치타델라

푸른 바다. 2014. 7. 30. 15:07

부다페스트

 

 

 

 

부다왕궁, 겔레르트 언덕, 치타델라

 

 

헝가리 투어를 하면서 아쉽게도 부다왕궁과

내가 보기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회의사당이라고 생각되는

헝가리 국회의사당을 조망으로만 보고 지나쳐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

도나우강 야간 유람선 예약 시간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는건 알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한숨이 나온다.

 

 

 

부다왕궁이 있는 언덕을

성채의 언덕이라는 뜻의 바르 헤지라고도 부른다.

 

 

부다왕궁으로 가는 길에 있던 조각상

 

부다성 뒷쪽이다.

 

도나우강변과 부다성 지역은 

1987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도나우 강과 이어지는 언덕에는

변화의 역사를 겪어온 왕궁이 서 있다.

 

부다왕궁의 돔이 보인다.

 

13세기에 세워진 왕궁은 부다 지구의 상징이자 시련의 흔적이다.

지어 놓으면 전쟁이 휩쓸어 폐허만 남고,

 다시 지으면 또 전쟁이 몰려온 곳이기 때문이다.

 왕궁은 한때 몽골,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의해 파괴됐고

 오스트리아와의 헝가리 독립 전쟁과

2차 세계대전 때 또 파괴 되었다.

50년대 재건된 왕궁으로 올라서는 길목에는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좌 국립무용극장 (구 왕궁 극장)    우 대통령궁

 

원래 수도원에서 후일 바로크 교회당이 되었다가

1787년 현재의 극장 모습으로 개축 되어 궁정극장으로 문을 열었다.

2차대전 때 파괴된 것을 다시 짓고

2001년 고전 발레에서 현대,민속 무용까지 아우르는

무용 전용극장이 되었다.  

 

극장 벽의 베토벤 부조상

 

1800년 5월 7일 베토벤이 이곳에서

엘리제를 위하여와 월광 소나타를 연주했던 것을 기념하고 있다.

베토벤은 독일 태생이지만 주로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했고

헝가리 백작과 친분이 있어 자주 부다페스트에 왔다고 한다.

 

대통령궁

 

헝가리는 수상이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은 상징적인 존재라고 하지만 그래도

대통령궁 치고는 참 수수하며 경비도 삼엄하지 않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지나다니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건물 건축 연도가 적힌 삼각 박공이 있는 쪽은 

이 곳을 돌아 가면 보인다. 

 

 

부다왕궁은

15세기 헝가리의 황금시대를 연 마치시 1세 때

르네상스양식으로 화려하게 건축되었으나

 1541년 오스만투르크와의 전쟁과 1686년 십자군전쟁을 거치면서 파괴되었다가

 17세기 합스부르크의 지배하에 재건되었다.

 

부다왕궁 뒷편이다.

 

2차 대전 때 파괴된 것을 1950년에 들어서 복구하여

지금의 웅장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왕궁이 된 것이라 하는데

현재는 역사박물관과 국립미술관, 국립도서관 등으로 쓰이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최근 한국 방송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지로 유명해졌는데

해발 167m 언덕에 세워져 있는데 이 왕궁은 13세기에 몽고군의 침입을 받고

국민의 절반을 잃은 벨러 4세가 옛 수도 에스테르곰에서

1265년에 현재의 이곳인 도나우강 서쪽 부다지구에 건설한 성이다.

 

 겔레트레 언덕에서 본 부다왕궁

 

왕궁의 북쪽 벽에는 아직도 2차 대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헝가리 공산당은 왕궁 내부를 파괴하였다.

 

  다뉴브를 향해 날아오를 듯 날개를 활짝 펴고 왕의 칼을 발에 든 투룰 상

 

왕궁 동쪽 문 탑위에 있는 새의 동상은 투룰이라고 하는데 

헝가리 왕가를 상징하는 우리나라의 봉황 같은 의미의 새이다.

 이 새는 헝가리 선조인 알모시의 어머니 태몽에 나오는 전설의 새로

그녀의 꿈에 하늘에서 날아온 투룰새 한 마리가 그녀의 자궁 속에 들어와

 샘이 솟아나고 급류가 멈춘 그 자리에 아름다운 나무가 자라는 꿈을 꾼 후

 임신하여 낳은 왕이 알모시이고 그가 헝가리의 최초의 왕조인 아르파드의 선조가 되었다.

그래서 헝가리 민족 상징의 새가 되었다는 투룰.

 

왕궁 분수 청동말 상

 

노동운동박물관에는

 헝가리 투쟁운동과 사회주의 하의 헝가리 모습을 담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국립미술관에는 11세기부터 현재까지의 미술품회화 6천점,

르네상스와 고딕양식 조각품 2,100점, 판화 5천점이 전시되어 있다.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이다.

 

오이겐(유진) 왕자의 청동상

 

부다왕국 정원 중앙엔

 오스만투르크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150년간의 터키의 폭정으로부터

 헝가리를 해방시킨 사보이 왕국의 오이겐 왕자의 청동상이 있다.

1697년 그가 이끈 연합군이 오스만트루크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던 젠타 전투 승전 기념비로 1900년에 세워졌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현장

 

부다 왕궁의 국립미술관 1층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왕궁 복원 시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조각품의 하나는 벨라 3세의 조각상인데,

이 유물은 대개 800여 년 전인 12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다 지구 안내판이 벽에 붙어 있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요새였던

치타델라로 가고 있다.

 

 

 

겔레르트 언덕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한때 중유럽을 정복한 최강의 민족이었던 켈트인들이

다뉴브강을 따라 내려오며 찾아낸 곳으로
언덕의 꼭대기에 천혜의 요새를 건설한것에서 부터 출발한다.

 

 

겔레르트 언덕

 

해발고도 235m의 작은 바위산으로

 12세기 헝가리에 카톨릭을 전파하려다 순교한

이탈리아의 수도사인 성 겔레르트의 순교 장소이다.
그는 1046년에 헝가리의 마자르인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려는 의도로 파견되었다가

 기독교화에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킨 이교도들에게 붙잡혀,
산채로 못이 박힌 와인 통 속에 가둬지고 언덕에서 다뉴브강으로 굴려졌다.

그래서 본래는 케렌 언덕이었는데 헝가리 최초의 순교자인 그를 기리기 위하여

 겔레르트 언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언덕 정상에는 과거 오스트리아군이 헝가리 해방군을 감시하기 위해 쌓은 요새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와 싸우다 희생된 

소련군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벽에 총탄 자국이 무수히 나 있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군요새였던 치타델라 

 

1850년대의 모습

 

겔레르트 언덕으로 오르는 

 치타델라 성벽에는 부다페스트의 역사적 사진들이 붙여져 있다. 

 

1860년대의 모습

 

 1870년대의 모습

 

오스트리아 제국의 군 요새였던 치타델라 

 

성 겔레르트 언덕을 따라 뻗어 있는 치타델라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제국에 대하여 일으킨 독립전쟁진압하고 나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에1851년

부다페스트의 독립군들과 왕궁을 감시하고 위협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겔레르트 언덕의 치타델라는

 부다페스트의 정상으로

 부다페스트의 시내와 도나우 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으며

헝가리의 아픈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되었다가 보수를 통해 복원되었으며

현재 전망대와 유스호스텔로 사용되고 있다.

 

 

겔레르트 언덕에 있는 치타델라 성벽은

  동.서 방향으로 길이 200m, 높이 4~6m, 벽의 뚜께는 1~3m인데,

​19세기 말 합스부르크 제국 군대가 철수할때 부분적으로 파괴되었고,

 2차 세계대전 때는독일이 들어와 요새에 방공포를 설치하고,

 다른쪽은 전범 수용소로 이용했다고 한다.

 

 

 

 

 

요새 주위에는 

2차세계대전 당시 사용됐던 대포들이 노천에 그대로 전시되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 뒷모습

 

2차 세계대전 때 소련의 붉은 군대가 독일로부터 헝가리를 해방시킨 기념으로

소련이 헝가리에 요청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자유의 여신상

 

겔레르트 언덕 위

 치타델라에 있는 소련군 추모의 위령탑이 자유의 여신상이다.

 이곳은 1894년 부다페스트의 소유가 되었지만

2차세계대전 땐 독일이 점령하여 부다페스트시내를 포격하였고

1945년엔 이 도시를 해방시킨 소련군이 위령비를 세우고 독립을 기념하는 뜻으로

235미터의 겔레르트 정상 위에 자유를 외치는 두 남자의 동상과

 그 중간에 40m 높은 탑 위에 모스크바 쪽을 향하여

종려나무 잎을 두 팔로 높이 치켜든 채 승리를 뜻하는 자유의 여신상을 세웠다.

  

 

이후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자유의 여신상 철거문제가 야기 되었으나,
영광이든 치욕이든 그것도 자신들 역사의 일부분으로 삼고

 이 기념비를 보존하면서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다짐의 증표로 남겨 두었다고 한다.

 

 

부다 지역 도나우 강변 있는

겔레르트 언덕 중앙의 치타델라에서 바라보는 시내 조망은

부다페스트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며

강 양쪽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부다와 페스트 지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특히 이곳에서 보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고 한다.

 

 

뒷쪽 다리 있는 곳의 녹지가

길이 2.5km, 너비 500m로 길게 뻗은 마르기트섬이다.

13세기 벨라왕이 딸 마르기트(마가렛)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약속하고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자

 마르기트는 이 섬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 기도와 수도를 하고

훗날 성녀 마르기트로 시성되었고,

섬 이름도 마르기트라 부르게 되었다.  

왕가 사냥터였다가 산책로, 수영장, 놀이시설을 갖춘 공원이 되었다.

 

 

쪽이 세체니 다리로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부다지구와 페스트지구를 연결하는 8개의 다리 중 가장 아름답다.

쪽은 마르기트섬 남쪽을 지나는 마르기트다리로

에펠탑을 만든 구스타프 에펠이 참여해 1879년 완공했다. 

 

 

1999년 영화 글루미선데이의 중요 배경지였던

 세체니다리는 부다와 페스트를 하나의 도시로 합친 다리로

부다페스트의 상징으로서

 특히 야경이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이 도시의 명소이다.

 

부다 지구의 부다왕궁과 그 뒤 마차시 성당이 보인다.

 

 

부다지역

 

 

페스트 지역에 있는 성 이슈트반 대성당의 돔과 탑이 보인다.

 

페스트 지구

 

 

노을이 진다.

오후 7시 34분이다.

 

벽에 난 구멍들은 총탄 자국이다.

 

 

이제 버스를 타고

도나우강 야간 유람선을 타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