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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 구시가 광장,구시청사,천문시계,틴교회,성 니콜라스성당,얀 후스동상,화약탑,시민회관

푸른 바다. 2014. 8. 25. 17:26

 

프라하

 

 

 

 

구시가 광장,시청사,천문시계,틴교회,성 니콜라스성당,얀 후스동상,화약탑,시민회관

 

 

여행 제 8일째 4월 29일 화요일

백탑의 도시 프라하에 오후 6시 넘어 도착해

몰다우강변의 야외조각 전시장 같은 아름다운 카를교를 보고 

멀리 프라하성을 강변에서 조망하고는 

각기 다른 시대에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로코코 ,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은 건물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건축 박물관이라 불리는 구시가 광장으로 향했다.

 

성 살바토르 성당

 

트램역과 신호등이 있는 곳이다. 

 

 왼쪽 클레멘티눔에 속해 있는 성 살바토르 성당 

 

 

이 신호등을 건너서 맞은 편 골목으로 들어가

구시가 광장으로 갔다.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이처럼

 중세의 역사적 유물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는 찾아볼 수 없는데, 

유네스코는 1992년 프라하를 세계문화유산의 도시로 지정했을 뿐만 아니라,

 2000년에는 유럽연합이 정한 유럽문화의

중심지 9개 도시중 하나로 프라하를 선정했다. 

 

 

 프라하는 천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도시로

긴 역사만큼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12세기에 이미 부유럽의 최대도시로 성장 했고,

신성로마제국의 수도가 된 14세기에는 최 전성기를 누리다가 

15세기에는 종교전쟁의 싸움터가 되었으며,

17세기에는 세계최고의 종교전쟁으로 기록되는 30년전쟁에 이어

 2차에 거친 세계대전과 공산주의 혁명과

 프라하 봄으로 불리우는 1968년 자유주의 운동과

구 소련군의 탱크공세까지 프라하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프라하의 봄으로 잘 알려진 체코는

유럽의 4대 관광도시이다. 

 

 

프라하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으로 유명하며,

연간 1억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이 숫자는 이탈리아의 로마보다 많은 인원이라고 하는데,

다만 머무르는 기간은 로마보다 짧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도시 비엔나보다 이곳 프라하에서 훨씬 인정을 받았으며

그래서 생전에 이곳을 여러 번 방문하여 공연활동을 했다.

프라하 시민들은 그의 음악적 재능에 매료되었고 그를 열렬이 환호했다.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오페라 중 하나인 돈 지오반니는

바로 이곳 프라하의 국민극장에서 초연되었고,

1791년 그가 죽었을 때 이곳의 성 니콜라스 성당에는 3천명 이상의 시민들이 모여

모차르트의 곡을 연주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했다.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1000년 세월을 간직한 프라하는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클람 갈라스 궁전

 

초기에는 갈라스가가 그 이후에는 클람가가 머물면서

클람 갈라스 궁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클람 갈라스 궁전

 

바로크 양식으로 전시회 또는 연주회장으로 쓰이고 있다.

 

 

미로처럼 뻗은 골목에서 마주치는 

 고딕, 바로크,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들은

프라하가 중세 건축의 전시장임을 보여준다.

 

 

체코 출신 밀로슈포르만이 감독한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던 영화 아마데우스는

인간의 시기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너무나도 잘 표현한 작품으로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흥미 진진하고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걸작이다.

 

 

체코 맥주가 독일 맥주보다 맛있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체코의 대표적인 맥주가 필스너 우르켈이다.

1876년 버드와이저의 창업주인

 아돌퍼스 부쉬 체코 바바리아 지역 출신의 미국 이민자였는데,

자신이 살던 고향 마을 부트바이스의 지명을 따서 맥주 이름을 지었다.

그런 연유로 체코의 부드바이저맥주는

미국의 버드와이저와 오랫동안 상표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수많은 역사를 간직한 신비스러운 고도 프라하는

작은 골목 하나에도 중세의 향기가 배어 있다.

 

구 시가 광장

 

유럽의 시대적 건축양식의 건물들이 다양해 한자리에서 돌아가며
11∼13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 13∼15세기의 고딕 양식,
 16세기의 르네상스 양식, 17∼18세기의 바로크 양식 등
역사적인 건물들을 볼 수 있다.

 

 

프랑스 조각가 로댕이 프라하를 북쪽의 로마라고 찬미했다.

 

여행사 카탈로그에서

 

 

구시가 광장은

 프라하 관광의 최고의 명소로 프라하의 번화가이자 심장부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고딕,바로크,르네상스,로코코 등

각기 다른 시대와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건축 박물관이라 불린다.

구시가 광장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면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아르누보 양식까지 모든 건축 양식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프라하는 2차대전시 독일군이 진격해오자

싸우지 않고 미리 항복해 건축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구시가 광장

 

프라하 역사지구의 중심인 구시가 광장,

 이 광장 중앙에는 체코의 종교 개혁자인 얀 후스의 조각상이 있고

주위에는 중세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주거지가 남아있다.

구시가 광장을 중심으로  틴 성당, 구 시청사와  천문시계, 성 미쿨라쉬 성당,

로코코 양식의 킨스키 궁전 등이 있는 이 광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프라하 역사지구의 중심축을 이룬다.

 

 

블타바 강 오른쪽 중심에 위치한 

구시가 광장은 중세시대부터 행정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번창하였으며,

 11세기에 형성된 이래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종교개혁때는 얀 후스의 추종자들이 처형 당하기도 했고,

 1948년 체코슬라바키아의 민주공화국 몰락선언,

1968년 프라하의 봄,

1989년 벨벳혁명이 모두 이 광장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프라하 구시청사 

 

옛날 시청으로 사용되었던 구 시청사 건물로,

프라하 구시가지의 랜드마크와 같은 건축물이다. 

 1338년 고딕 양식으로 완공된 이래

 수세기를 거쳐 증개축한 여러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구 시청사는 특히 독특하고 화려한 천문시계가 설치된 탑으로 유명하다.

 만든 지 600년 되는 시계로 처음 형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또한 구시청사 안에는 역사박물관, 예배당, 집무실 등이 있다.

예배당에서는 천문시계 내부를 볼 수 있다.

 

옛 시청사 벽에 있는 커다란 천문시계

 

 1410년 시계공 미쿨라시와

 뒷날 카를 대학의 수학교수가 된 얀 신델이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1490년 달력이 추가로 제작되고, 외관이 조각으로 장식되었다.

 1552년 이후 시계는 여러 번 작동을 멈추었고 그때마다 수리가 뒤따랐다.

17세기에 움직이는 조각상을 덧붙이고,

 1865년과 1866년에는 복구작업 끝에 사도들의 형상을 추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전쟁의 영향으로 일부가 파손되면서 다시 작동을 멈추었으나

이후 보수를 거듭한 끝에 1948년에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문시계

 

구시청사 건물 벽면엔 프라하의 상징과 같은 인형달린 천문시계가 있다.

시계는 상하 2개의 큰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쪽 시계를 칼렌다륨, 아래쪽을 플라네타륨이라고 부른다.

 칼렌다륨은 천동설의 원리에 따른 해와 달과 천체의 움직임을 묘사하였다.

 일반적으로 1년에 한 바퀴씩 돌면서 연, 월, 일, 시간을 나타낸다.

아래쪽 원은 12개의 계절별 장면들을 묘사하여 제작 당시 보헤미아의 농경생활을 보여준다.

매시 정각이 되면 칼렌다륨 오른쪽의 해골 모형이 움직이면서

12사도들이 2개의 창을 통해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어서 시계 위쪽의 황금색 닭이 나와 울면서 시간을 나타내는 벨이 울린다.

 

 

매시 정각이 되면

칼렌다륨 오른쪽의 해골 모형이 움직이면서 12사도들이

2개의 창을 통해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어서 시계 위쪽의 황금색 닭이 나와 울면서

 시간을 나타내는 벨이 울린다. 

 

위쪽 칼렌다륨, 아래쪽 플라네타륨

 

오를로이 천문시계는 복잡한 구조와 정교한 조각상들로 되어 있다.

 천문시계는 상하 2개의 큰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쪽 시계는 천동설의 원리에 따른 해와 달과 천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칼렌다륨으로

일반적으로 1년에 한 바퀴씩 돌면서 연, 월, 일, 시간을 나타낸다.

아래 둥근 부분은 별자리가 그려져 있고 계절마다 다른 열두 달 농민의 생활모습을 그려

 제작 당시 보헤미아 농경생활을 보여주는 플라네타륨이다.

 

 

 칼렌다륨

 

매 시간 정각이 되면 인형이 나와 약 1분간

 인간이 갖고 있는 다양한 욕심을 표현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정각이 가까워 오면

 시계 오른쪽 위 모래시계를 들고 있는 최후의 심판 즉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 인형이

자신의 오른손에 감긴 줄을 잡아당긴 다음

 왼손으로는 모래시계를 들어 올려 뒤집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오스만 터키와 인간의 정복욕을 상징하는 터키군 인형과

인간의 탐욕과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돈자루를 들고 있는 유대인 인형,

허영과 망상을 상징하는 거울 든 인형들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어서 시계 위 닫혀 있던 두개의 창이 열리고

시계 태엽에 해당하는 12사도(정확히는 11명의 사도와 성 바울)가

오른쪽에 천국의 열쇠를 든 성 베드로를 따라 차례차례 등장한다.

열두 사도 회전이 끝나면

위쪽 황금 닭이 울면서 정각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칼렌다륨

 

천동설에 기초해 만들었다는

 천문시계는 시간, 일출, 일몰, 월출, 월몰까지 표시해준다.

 칼렌다륨 한 가운데에는 푸른지구가 위치해 있고, 

 3개의 시계바늘축은 지구의 중심으로서 프라하를 가리키고 있다.

천문 시계의 바깥 원은 청색, 흑색, 그 사이사이에 갈색으로 4개 부분으로 나뉘어

각각 낮과 밤, 새벽, 저녁을 나타내며 천문 시계 안쪽 원은 태양, 달, 북극을 상징한다.

시계안에 있는 금별은 북극성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 시계의 특징은 옛날 체코사람들이 믿고 있던 

하루 20시간을 반영하고 있다.

 

천문 시계 하단의 플라네타륨

 

하단의 시계에는

  4명의 인형이 있는데 한명은 천사고

 나머지 세명은 시민계급으로

중세 사람들이 가장 존경했던 직업을 상징하며,

 왼쪽부터 수학자, 수호천사, 천문학자, 철학자로 되어 있다.

원 안에는 12달의 계절별 장면들을 묘사하여

제작 당시 보헤미아의 농경생활을 보여준다.

12달 가장자리를 따라 매일 상징하는 성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구 시청사보다 더 유명한 것이 입구에 있는 천문시계이다.

오늘날 프라하의 명물로 손꼽히면서

매시 정각에 그 유명한 퍼포먼스를 펼치는데,

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1552년 시계 장인 얀 타보르스키가 시계를 수리하면서

 원래의 제작자로 하누시를 언급하였다.

이후 더 이상 똑같은 시계를 제작하지 못하도록 하누시의 눈을 멀게 만들고,

그의 죽음과 함께 시계 또한 작동이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졌는데,

오늘날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출처: 두산백과]

 

 

프라하 구시청사 벽에 걸려 있는 천문시계는

 69.5m높이의 타운홀 타워에 있다.

 

 

중세에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시계를 높은 탑 위에 설치하였다.

천문시계가 달려 있는 탑은 1364년 세웠다.

 높이 69.5m로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이용해 오를 수 있다.

 탑에 오르면 프라하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왼쪽: 르네상스 양식에 스크라피토 장식을 한 집

 

 

틴 성당은

프라하 ​구시가 광장에 있는 성당으로

80m의 높이의 2개 첩탑과 크고 작은 첨탑이 특징인 

보헤미아 고딕 양식의  건물로 프라하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1365년 건축된 후 17세기까지 다양한 건물 양식이 가미되었다.

북쪽 벽에 있는 로코코 양식의 제단과 

아름다운 동북쪽 출입문이 유명하다.

 

 

틴성당은 

15세기 초부터 1620년까지 후스파의 본거지로 사용되었다.

종교전쟁에서 패한 후

카톨릭 세력에게 넘어가 1621년에는 카톨릭 성당으로 개조되면서

 첨탑 사이에 있던 후스파의 상징인 황금성배와

 보헤미아 왕 조각상을 녹여 마리아 상으로 만들었고

내부 예배당도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교체되었다.

 

틴성당 (성모 마리아 성당)

 

황금 성배를 녹여 부착한 첨탑의 성모마리아상,

고딕양식으로 조각된 실내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그리스도상,

백랍으로 만든 세례 받침 등도 성당의 명물로 꼽힌다.
성당 안에는 루돌프 2세를 위해

 일했던 덴마크의 천문학자 브라헤가 묻혀 있다.

 

 

 2개의  첨탑 사이에 있던

후스파의 상징인 황금성배와 보헤미아 왕 조각상을 녹여

제작한 성모 마리아 상이 있다.

 

 

왼쪽: 로코코 양식의 골즈 킨스키 궁전

중간: 14세기에 지은 고딕양식 돌종의 집(갤러리)

오른쪽: 틴성당 고딕 양식, 틴성당 밑의 분홍색 건물 르네상스 양식

 

왼쪽 건물들 바로코 양식   오른쪽 골즈 킨스키 궁전 로코코 양식

 

 골즈 킨스키 궁전

 

프라하를 대표하는 로코코 양식의 화사한 건물로

 1765년 킨스키 백작에 의해 지어졌다.

외벽 위의 조각상은 1760~1765년 사이에

 프란츠 플라쳐라는 작가가 조각한 4요소라는 작품이다.

현재는 현대회화, 판화 등을 전시하는 국립 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합스부르크 시절에는 중학교였고 카프카가 다니던 학교였다.

건물 1층에는 한 때 카프가의 아버지가 운영한 상점이 있었고,

 2층은 카프카의 가족이 살던 아파트였다.

 

얀 후스의 동상

  

  얀 후스의 순교 500주년을 맞이하여 1915년 7월 6일 세워졌는데,

얀 후스(1372~1415년)는 체코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인으로

15세기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보다 1세기 앞서 종교개혁을 주장한 인물이다.

15세기 라틴어로 진행하던 예배를 체코어로 바꾸고,

 당시 부패한 카톨릭 교황과 성직자,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면죄부 판매를 맹렬히 비난했다.

이로 인해 1411년에 파문당한 후 1415년 이단으로 화형당했다.

그의 죽음은 체코 전역에 파장을 일으켜

 신교(후스파)와 구교(카톨릭 세력과 합스부르크 가)간의 종교전쟁을 유발하게 된다.

 결국 후스파가 패하고 합스부르크 가의 300년 식민통치를 받게 되었지만,

후스의 사상과 정신은 독립을 향한 민족의 핵심 사상이 되었다고 한다.

 

전도연 주연의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소원의 벽으로 나왔다.

 

 얀 후스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옥스퍼드대 유학을 다녀와

프라하대 총장까지 지낸 당대 최고 지식인으로

 카톨릭의 면죄부 발행을 비판하다가 교황 요한 23세에 파문당하고

화형을 받은 체코의 신학자이다.  ​

그가 화형을 당한 7월 6일은 얀 후스의 날로서

체코의 국경일로 정해졌다.

 

 

"진실한 크리스천들이여

진리를 찾으라, 진리를 들으라, 진리를 사랑하라,

진리를 말하라, 진리를 지키라,

진리가 너희를 죄와 악마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의 마지막 유언이 동상 아래 새겨져 있다.  

후스는 명한 예언도 남겼는데

"지금은 당신들(로마 교황청)이 거위(후스라는 이름이 거위를 뜻함)를 제거할 수 있지만

백년 뒤 나타날 백조는 결코 제거하지 못할 것이다."

예언로 백년 뒤 마르틴 루터라는 백조가 등장해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1621년엔 종교개혁을 지지하던 프라하 귀족 27명이 한꺼번에 화형을 당했다.

 

 

건축 양식의 전시장인 구 시가 광장에서 불 쇼를 하고 있다.
 

 성 미쿨라세(성 니콜라스) 성

 

 구 시가지에 위치한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다.

1278년에 건축되어 14세기 틴성당이

 들어서기 전까지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회합의 장소였다.

 1735년 킬리안 이그나즈 디엔체호퍼의 설계로 현재의 모습이 됐으며

여러 곳에 안토닌 브라운의 바로크양식 조각 작품이 장식돼 있다.

 

 성 미쿨라세(성 니콜라스) 성

 

본당 천장에는
유럽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성당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성당 명칭이 유래된 수호성인인 성 니콜라스(산타크로스)를
찬양하는 대형 프레스코화가 있으며 
80미터 높이의 양쪽 종탑은 1891년까지 전망대로 쓰이다

이후 원래의 기능인 종탑의 기능으로 쓰이고 있다.

 

 성 미쿨라세 (성 니콜라스) 성당

 

많을 때는 4,000명이 넘는

프라하 시민이 미사를 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후스파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미사 외에 다양한 고전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모차르트가 자주 찾아 오르간 연주를 한 곳으로도 유명한데,

179112월 그가 죽었을 때 추모미사가 열린곳으로

지금도 모차르트가 1787년 연주한 오르간이 남아 있다고 한다.

 

 

프라하의 도로는 아스팔트보다는

커다란 돌을 넣어 만든 비율이 훨씬 많다고 한다.

 과속도 방지하고 아름다움도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정책이라 한다.

 

카를교 탑의 원형인 화약탑이다.

 

첼레트나 거리는 왕이 지나닌 왕의 거리로

 시가 광장에서 화약탑까지 이어져 있다.

화약탑에서부터 첼레트나 거리를 지나 카를교를 건너

프라하성의 성 비투스대성당까지

보헤미아왕의 대관식 행렬이 이루어졌다.

 

 화약탑

 

프라하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나뉘는 지점으로,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화려하고 우아한 시민회관 왼쪽에

불에 그을린 듯 칙칙한 잿빛 탑이 65m 높이로 솟아 있다.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라하 구시가지로 들어서는 관문 화약탑이.

중세 프라하의 성곽 출입문으로

1475년에 지금의 구 시가지를 지키는 13개 성문 가운데 하나로

 대포 요새로 건설된 높이 65m,

총 186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고딕양식의 탑이다.

 

 

 총기 제작공이자 종 주조공인

 야로스의 거처 겸 작업실로 개축되었다가,

루돌프 2세때인 17세기 초에 연금술사들의 화약창고 겸 연구실로 쓰이면서

화약탑으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연금술과 관련한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쓰고 있고

계단을 올라가면 구시가지가 내다보이는 전망대 구실도 하고 있다.

 

 

프라하의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화려한 장식과 다양한 색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달리 어둡고 칙칙한 느낌을 준다.

사암으로 만들어 세월이 갈수록 빛깔이 검게 변해 가기 때문이.

 

 

오베츠니 돔의 2층과 화약탑이 아치형의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아치통로 위에

 방패모양 안에 탑 3개가 성곽 위에 있는 모양인 프라하시 문양이 있고,

화약탑을 설계한 마테이 레이세크 조각상이

시민회관 건물에 붙어 서 있다.

 

화약탑 옆의 시민회관(오베츠니 돔)

 

옛날에는 왕과 여왕의 대관식을 거행하는 장소이자,

 외국 사신들이 프라하성으로 들어올 때는 꼭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이용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부터는 연금술이나 종 주조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독립10주년 기념동판

 

화약탑과 시민회관 사이 기둥에

시민회관의 연혁을 새긴 부조가 붙어 있다.

 

아름다운 프라하 시민회관

 

원래는 1383년 바츨라프 4세가 지은 후 1484년까지

 보헤미아 왕조의 궁궐이었다.

 1485년 왕의 거처가 프라하성으로 옮겨지면서 긴 세월 방치되다가

기존의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1905년부터 1911년에 걸쳐 현재의 건물을 신축하였다.

건축 당시 알폰스 무하, 카렐 슈필라, 얀 프라이슬러 등  

당대 최고의 미술가와 건축가가 참여하여

1912년에 외관은 네오바로크 풍으로,내부는 아르누보 양식으로 완성하였다.

 1918년 10월 28일, 300년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벗어나

 체코슬로바키아 민주공화국이 선포된 장소이기도 한

이곳은 역사적인 장소이다.

 

 프라하 시민회관(오베츠니 돔)

 

콘서트홀과 전시회장, 레스토랑 등을 포함하여

 500여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복합 문화시설이다.  

현재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주무대로 

음악회 외에도 연극, 발레, 오페라 등을 공연하고 있다. 

건물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장소는

 체코의 음악축제 프라하의 봄의 개막과 폐막 공연장으로 유명한 스메타나 홀이다.

스메타나가 죽은 날로 축제의 첫날인 매년 5월 12일 저녁,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의 연주와 함께 개막 공연이 시작되고

프라하 국제음악축제가 시작된다.

 

 

프라하 시민회관의 정면은

카렐 슈필라의

 "프라하의 경배"라는 반원형 모자이크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 벽화 위에 금색으로 쓰여진 문구이다.

 

 프라하여 그대에게 영광 있으라! 

시대의 악의에 저항하며

그대가 수세기에 걸쳐서

  모든 폭풍우에 참아온 것 같이!

 

 

시민회관의 아름다운 유리로 만든 돔 아래

왼쪽: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라의 수치" 조각품

 중앙: 프라하의 경배 모자이크화

오른쪽:  독수리를 팔에 앉힌 모습의 "나라의 부활" 조각품

유리 돔 부분: 프라하시 문장  

 

프라하의 경배 모자이크화 

 

멀리서 보면 일반 회화 같지만 일일이 타일을 붙여 만든

 카렐 슈필라의 프라하의 경배라는 모자이크화는

프라하를 신격화하므로서

 합스부르크의 지배를 받았 과거를 딛고

보헤미아 국가를 부활 시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한다.

유리 돔 부분의 프라하 문장은 스웨덴과의 전투 이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는 손목이 새겨져 있다.

 

 

프라하시의 각종 문장과 아르누보 양식의 장식들이 보인다.

     

 

시민회관의 유리 돔 천장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인터넷에서 퍼 온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가 열리는 프라하 시민회관의 스메타나 홀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르누보 양식의 진수인 시민회관은

체코 국립 오케스트라 스메타나 필하모니가 상주하는 곳이다.

 

레푸블리키 광장

 

아르누보란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으로

 1890~1910년 사이 국제적으로 유행한 양식으로

덩굴식물 모티브와 구불구불하고 유연한 선으로 장식된 철제 난간,

섬세한 꽃무늬의 반복적인 패턴, 긴 실루엣의 여인 이미지 등이 주를 이룬다.

 

 

1층엔 커다란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다.

 

 

화약탑과 나란히 있는 길이 신시가지,

탑을 지나 서쪽 길이 구시가지가 각각 시작되는 곳이다.

 

히베르니아 디발도(극장)

 

마리 앙트와네트를 공연하는가 보다.

 

 

프라하는 유럽의 음악원으로 불리는 음악의 도시로

크고 작은 수 없이 많은 곳에서 음악회가 열리는 도시이다.

국립박물관의 웅장한 중앙 홀에서도 시로 콘서트가 열린다고 한다.

 

체코 국립은행 나로드니 방카

 

시민회관 맞은편에 있는 웅장한 체코 국립은행의 전경으로

 중앙현관 옥상에는 청동기마상 조각이 있다.

이전에는 호텔 이었다는데

쇼팽이 프라하에 오면 이 호텔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래서 건물 벽 한쪽에 쇼팽 부조가 부착 되어 있다는데

가까이 가지 않아 보지 못했다.

 

체코 국립은행 나로드니 방카

 

나로드니는 국민, 민족을 뜻하고

볼타바강 동쪽 강변 국립극장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카페 거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신시가지 쪽의 프라하 백화점

 

이제 저녁 식사를 하고 프라하 야경을 보러

다시 구시가 광장으로 올 예정이다.

 

천문시계 기념품

 

마리오네트 인형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