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
중앙역,쾨니히스문,쾨니히거리,성 로렌츠교회
여행 제 9일째 4월 30일 수요일
체코의 프라하를 출발해
중세의 아름다운 도시 체스키크룸로프를 마음에 담고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여장을 풀기 위해
약 5시간여를 달려 도착했다.
신성로마제국의 작은 보석 상자로 불렸다던 뉘른베르크는
그동안 전범재판을 연 도시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여러가지를 알게된 것이 참 좋았다.
보통 시 외곽 지역의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만 떠났었는데,
이번 뉘른베르크에서는 구시가를 걸어서 볼 수 있는 호텔에 머물게 되어
야경이지만 간단하게 둘러 보았다.
뉘른베르크를 향해 가고 있다.
독일의 농촌 풍경
정말 목가적인 모습이다.
독일 Serways 휴게소
이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다시 뉘른베르크를 향해 달렸다.
밭 작물에 물을 주고 있는 광경인데
멋있었다.
경작해 놓은 밭엔 뭘 심을려는지 궁금하다.
스포츠카가 버스와 나란히 달리고 있어 찍었다.
여유 있어 보이는 독일의 농촌 마을
뉘른베르크는
뉘른베르크는 독일 바이에른주 제2의 도시로
마인강의 지류인 페그니츠강 우안의
해발고도 300m 지점에위치한 상공업 도시이고
오랜 제국도시로서 옛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으며,
환상성벽과 역사적인 탑, 재건된 성이나 교회가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1219년 제국도시가 되어 제국의회가 열렸으며,
1424∼1796년 제국의 보물이 간직되어 있었으나,
성주에 대한 독립투쟁이 일어나 1427년 시에 성을 매도하였다.
1525년 종교개혁때에는 프로테스탄트 쪽에 섰으며,
1532년에는 ‘뉘른베르크의 종교회의’를 체결하는 등 지도적 역할을 하였다.
1806년 바이에른령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연합군에 의한 독일전범의 군사재판이 열렸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 등 4연합국이 주관하였고
전쟁을 일으키고 대학살을 자행한 독일의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1943년 10월에 연합국 전쟁범죄위원회가 런던에 설치되어,
전쟁범죄인의 처벌에 관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1945년 10월11일 독일 뉘른베르크시의 '정의의 전당' 법정에서 재판이 열렸다.
재판은 403차 공판을 거쳐 이듬해인
1946년 9월 30일부터 10월 1일까지 2일간에 걸쳐서 판결이 언도되었다.
자살 또는 병사한 2명을 제외한 22명에 대해,
괴링 이하 12명에게 교수형, 헤스 이하 3명에게 종신형,
다른 4명에게 유기형을 부과하였고 3명은 무죄였다.
1935년 9월에 뉘른베르크법이 제정되어
인종차별과 유대인 학살의 법적근거가 되었다.
뉘른베르크법의 3개법령 중
독일인의 혈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법이
1999년 6월에 미국의 헌팅턴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이 문서에는 아돌프 히틀러와 고위 나치 장교의 친필서명이 있었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대인과 독일인간 결혼은 물론, 어떠한 성적 접촉도 금지한다.
제3국에서 치러진 결혼일지라도 모두 무효이며,
이를 어긴 자는 강제노역에 처한다. 유대인의 독일 국적을 박탈한다.
유대인은 독일 국기를 게양할 수 없으며, 독일인 하인을 둘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후 전범재판과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로 유명한
뉘른베르크시에 도착하였다.
뉘른베르크의 구 시가지는
옛 성벽을 복원하여 성벽이 구 시가지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뉘른베르크시는 비록 대학살이 자행된 곳이었지만
종전 이후 전범재판이 열려 인종과 상관없이,
인권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준 곳이라 도시로는 최초로
2001년 4월21일 유네스코의 인권상을 수상했다.
독일에서 철도를 가장 먼저 개설한 곳이며,
세계 장난감 박람회를 개최한 연유로
장난감의 도시라고도 한다.
성벽이 구시가를 감싸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괴멸적인 폭격을 당해
옛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지만
성벽이나 호굴은 그대로 남아 있다.
중세의 성벽에 둘러쌓인 도시 뉘른베르크
인터넷에서 퍼 온 성벽 안의 모습
뉘른베르크시는 히틀러가 가장 사랑한 도시로
나치 제국의 수도가 되어 나치 사령부가 있었고
1933년부터 1938년까지 나치전당대회가 열린 장소이다.
덕분에 뉘른베르크는
전쟁 내내 엄청난 폭격이 집중되어 온 도시가 파괴되었다가
전 후 원형대로 복원되었다.
뉘른베르크 중앙역
쾨니히스문과 수공예인광장(Handwerkerhof)
수공예인광장(Handwerkerhof) 입구 문
이런 망루같은 문들이 사방 곳곳을 둘러싸고 있는 곳이
바로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이다.
뉘른베르크에 도착하여 Tempel 중국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중앙역 근처에 있는
nH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호텔이라 걸어서
뉘른베르크 구시가 야경을 보기로 하고 일행 5명과 함께
중앙역으로 나왔다.
여기서 2명은 중앙역사 안에 있는 마켓 구경을 한다며 빠지고
4명만 지하도를 건너 반대편 쾨니히스문 쪽으로 갔다.
중앙역 광장
뉘른베르크 중앙역 정문
중앙역 파사드 조각
중앙역사 실내 광경
역사내 모자이크 장식 벽면
우리가 묵었던 호텔 근처
중앙역 앞 모습
구 시가지 동남쪽 성곽 밖에 있는
중앙역 앞에 서면 전차가 다니는 큰 길이 있고,
정면에 원통형 탑인 쾨니히스 성문이 있다.
여기서부터 중앙으로 뻗은 쾨니히가가 시작된다.
쾨니히스문과 수공예인광장(Handwerkerhof) 문
높이 40여m인 원통형의 육중한 탑은
견고한 요새의 초소 역할을 했던 곳으로
중앙역 정문으로 나오면 바로 건너편에 보이기 때문에
뉘른베르크 관광의 시발점 역할을 한다.
쾨니히스문(왕의 문)
뉘른베르크 중앙역에서
연결된 지하도를 따라 나오면 쾨니히스문이 나온다.
우리도 여기로 나왔다.
쾨니히스문(왕의 문)
옛 성이 존재하던 시절,
성을 드나들던 출입문이 동서남북에 있었는데,
그 중 오늘날까지 가장 잘 보존된 것이
왕의 문이라는 뜻의 쾨니히스 문이다.
뉘른베르크 관광의 중심지인
구시가가 이 탑에서부터 시작되고
여기서부터 카이저부르크까지 이어진 중앙로를
쾨니히슈트라쎄라고 부른다. 뜻은 왕의 길이다.
수공예인광장(Handwerkerhof)
수공예인의 광장으로 들어가는 구시가 쪽 문이다.
일찌기 수공업이 발달했던 뉘른베르크에는
수공업의 장인들이 많이 거주하였다.
그들은 나무나 금속, 유리 등으로 다양한 수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하였는데,
그 수준이 매우 뛰어나 독일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뉘른베르크는 이후 그 명맥을 유지하여,
옛날 모습 그대로 장인들이 수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공방을
한 곳에 모아두었으니 그 곳이 바로 수공예인 광장(한트베르커호프)이다.
공방은 비교적 일찍 문을 닫지만 같은 곳에 위치한 선술집들은 늦게까지 영업을 한다.
쾨니히 문이 바로 올려다보이고 성벽으로 둘러 싸인 곳에서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이루는 조화도 아름답고,
섬세한 수공예품을 구경만 하는 것도 흥미로운 곳이다.
뉘른베르크에 있는
고딕이나 르네상스의 유명한 건축물로는
화가 A.뒤러의 집과
제바르도스교회·로렌츠교회·프라우엔교회 등이 있다.
구 시가지를 관통하는 쾨니히 거리
St. Klara Kirche
현대식 성당으로
클라라 성녀는 이탈리아 아씨씨 출신으로
가난한 자의 수호성인이다.
구 시가지 쾨니히 거리
성 로렌츠 교회의 초록색 첨탑이 보인다.
쾨니히슈트라쎄( 쾨니히 거리)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기로도 유명하다.
히틀러는 뉘른베르크를 방문할 때마다
성 로렌츠 성당옆에 있는
도이체 카이저 호텔에 숙박 했다고 한다.
뉘른베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성 로렌츠 교회
쾨니히가 정면에 보이는 탑은
1270년에 시작해 207년이 지난 뒤 1477년에 완공된
성 로렌츠 교회의 첨탑으로,
고딕 양식의 최고봉 중 하나로 꼽히는 교회이다.
뉘른베르크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며
구 시가지를 관통하는 쾨니히 거리의 쾨니히 광장에 위치한다.
성 로렌츠 교회
조각상으로 장식된 화려한 정문 안으로 들어가면
목조각가인 바이트 슈토스가 대제단 앞의 천장에 새긴 수태고지가 눈에 띄고,
벽기둥에는 하늘까지 닿을 듯이 솟아 있는 성체 안치탑이 조각되어 있다.
내부 정면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의 아름다움이 눈길을 끌고,
이 교회에 설치된 오르간은 그 아름다운 음색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가끔 오르간 연주회가 개최되고 콩쿠르도 열린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교회 정면 부분은 어느정도 파괴를 면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퍼 온 성 로렌츠 교회
장미창과 입구 파사드의 조각이 아름답다.
교회 입구 바로 북쪽으로
미덕의 분수라는 의미의 투겐트부르넨이 있는데,
미덕의 일곱 여신 조각의 가슴 부분에서 물이 뿜어져 나온다는데
아쉽게도 보지 못했다.
성 로렌츠 교회 앞에서
늦은 시간에 연주하고 있던 거리의 밴드
성 로렌조 교회 앞 로렌츠 광장
뉘른베르크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만남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기사인 발터 폰 슈톨징이 노래 시합에서
우승하고 사랑하는 에바의 사랑도 얻는다는 줄거리다.
뉘른베르크는
중세시대 인형 제작에서 시작해
산업화시대의 주석 인형과 주석 장난감 생산에 이르는 전통을 갖고 있다.
또 현재는 세계에 널리 알려진 장난감 전시 및 교역 행사인
국제 장난감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뉘른베르크를 포스팅하면서 후회한 것은
좀 더 정보를 알고 갔더라면
성 제바르도스교회와 구 시청사가 있는 광장까지 가 볼 수 있었는데
그만 성 로렌츠 교회에서 발을 돌린 것이다.
다시 쾨니히스 문을 향해 가고 있다.
오른쪽 카페에서 독일 맥주를 마시고 있던
일행들이 있어 합석했다가 같이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이리시 펍
아일랜드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아이리시 펍을 만날 수 있다더니
뉘른베르크에서 만났다.
저렇게 늙어 가야지 하는
모델이 되어 주신 일산에서 오신 김선생님 부부와
미소가 예쁜 대구에서 오신 보경어머니 부부와
룸메이트인 제천 아가씨와 함께 한 낭만과 추억이 가득했던
뉘른베르크의 깊어가는 아쉬운 밤이었다.
맥주 이름은 잊어버렸다.
햄 샌드위치
뉘른베르거 소세지와 샤우어크라우트 (양배추절임)
뉘른베르크 지역은
고유의 소시지가 특히 유명한 곳으로 손꼽힌다.
뉘른베르거 브라트부르스트라고 불리는데,
독일의 다른 지방보다 소시지(부르스트)가 짧은 것이 특징이란다.
뉘른베르크성
카이저부르크성과 부르크크라펜성으로 되어있다.
페그니츠강 북쪽에 위치한다.
뉘른베르크가 역사적 문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1050년이지만,
이 성은 1105년 까지 역사적 문서에 나타나지 않았다.
1050년에서 1571년까지 신성 로마제국의 모든 황제들이
뉘른베르크를 방문했을 당시 이 성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1140년에 콘라드 3세는 황제가 머물 궁으로 카이저부르크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13세기에 뉘른베르크가 자유시가 되면서 이 성은 뉘른베르크 시에서 관리하게 됐다.
이 시기에 성의 많은 부분들이 새롭게 증축됐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이던 1944년에서 1945년까지 이 성은 큰 피해를 입었다.
전쟁 이후 건축 전문가들은 역사적인 성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실제 복원된 모습이 과거 성의 모습과 대부분 일치한다.
성의 본관 건물 내부에는 왕들이 사용했던 방과 예배당, 연회실 등이 있으며
당시 사용했던 무기와 기구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늘날 성의 마구간을 개조해서 만든 집은 유스호스텔로 사용되고 있다.
아침에 찍은 호텔 사진
호텔 데스크
호텔 로비
객실
냉장고와 금고
욕실
'독일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일] 로텐부르크의 상점들,케테 볼파르트 크리스마스 상점 (0) | 2014.09.14 |
---|---|
[독일] 로텐부르크 마르크트광장,시청사,시청사 탑, 시의회 연회관,성 게오르크(조지)상,마르쿠스탑,뷔텔하우스 (0) | 2014.09.14 |
[독일] 퓌센 노이슈반슈타인성,호엔슈반가우성 (0) | 2014.06.26 |
[독일] 프랑크푸르트, 뮌헨에서의 식사 (0) | 2014.06.23 |
[독일] 뮌헨 마리엔광장,신 시청사,구 시청사,호프브로이하우스 (0) | 2014.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