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독일] 퓌센 노이슈반슈타인성,호엔슈반가우성

푸른 바다. 2014. 6. 26. 11:12

 

퓌센

 

 

 퓌센 노이슈반슈타인성,호엔슈반가우성

 

 

여행 제 4일째인 4월 25일 금요일

 

어제 늦게 뮌헨에 도착해

너무 아쉽게 마리엔 광장을 둘러보고

오늘은 바그너에 집착해 동성애가 아닌가 의심까지 받았다는,

그래서 더 고독하게 바그너의 오페라에 나오는 영웅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몽상 속에서 평생을 헤어나오지 못한,

바이에른 국왕 루드비히 2세가 지은 로엔그린의 꿈을 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라는

디즈니랜드성의 모티브가 된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둘러 보았다.

 

 

뮌헨 이비스 호텔 앞의 조용한 거리

 

 

뮌헨의 조용한 아침 거리

 

 

 

 

 

 

 

 

우리나라도 길모퉁이 작은 공간에

 이런 분수들을 곳곳에 설치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뮌헨 거리 풍경

 

 

 

 

 

 

뮌헨 빌딩 건물

 

 

뮌헨을 벗어나 퓌센을 향해 가는 중이다.

뮌헨에서 퓌센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퓌센 가는 도중 어느 마을의 가게 윈도우

 

 

아름답고 작은 자주색 돔을 가진 교회와 마을

 

 

노이슈반슈타인성으로 가는 길은 로만틱 가도 쪽 이외에도

뮌헨이나 인스브루크에서도 가능하다.

 

 

퓌센은

바이에른 알프스 산맥의 동쪽 기슭에 위치하며,

 레히강을 비롯하여 주변에 아름다운 

호수가 많아 독일 내에서도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이다.

 

 

조그만 돔지붕이 있는 교회와

자주색 지붕의 목가적인 마을들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오

아직도 산봉우리에 하얀 눈이 덮여 있는

 바이에른 알프스의 산맥들과

초록으로 물든 들판들의 멋진 풍경들이

눈을 맑게 해 주고 아울러 마음까지 정화시켜 줌을 느낀다.

 

 

눈 덮인 알프스 산봉오리와

초록의 구릉지대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아

눈을 뗄 수가 없다.

 

 

독일 바이에른의 알프스 산맥

 

 

산봉우리에 하얀 눈이 덮인

 아름다운 바이에른 알프스의 산골마을 

퓌센의 슈반가우 마을에 거의 도착한 것 같다.

 

 

독일 남부 중요 관광코스인

 로만틱가도의 종점에 해당되는 도시인 퓌센은

 인구가 약 1만4천명 밖에 되지않는 작은 도시임에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1년에 약 3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퓌센

700여년 역사를 가진 로만틱 가도의 종점인 퓌센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지대 인근의

 알게우알프스산맥 동쪽 끝 레히강 연안에 있다.

옛 로마제국의 국경초소가 있던 지역이며

628년에 세워진 베네딕투스회 성마그누스 수도원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다.

 

 

1294년 자치시가 되었고

1745년 이곳에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에서 바이에른군대를

철수시키는 조약이 체결되었다.

독일 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고급 휴양지로 잘 알려져 있다.

 

 

중세도시 퓌센에서 4km

떨어진 곳에 슈반가우 숲이 있고 그 숲 한자락에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의 성을 지을 때 모델로 삼았다는

노이슈반슈타인성(일명 백조의 성)이 솟아 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새로운 반석위에 앉은 백조라는 뜻으로 

 슈반가우라는 작은 마을에 있다. 

독일 로맨틱 가도의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퓌센은
 바로 이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보러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있는

슈반가우 마을로 들어 가는 입구이다.

 

 

 

백조의 성은 중세기사 전설에 매료된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에 의해서 1869년부터 1886년에 건축되었다.

 왕은 17년동안 짓고 102일 밖에 이곳에서 살지 못했다고 한다. 

성의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루트비히 2세의 고독하고 기구한 죽음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어 동화의 나라라 불리는  퓌센을 

 더욱 신비롭게 하고 있다.

 

 

길 가의 집들이 너무 이쁘다.

 

슈반가우 마을

 

 슈반가우 마을의 집들은 각기 다른 모습이면서도

독일 전통 양식을 하고 있다.

또한 대규모 관광객을

 수용하는 현대식 호텔 빌딩을 짓는 것이 아니라  

이곳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 

작고 아담한 호텔을 지어 주변 경관과 어울리게하여 

 마을 전체를 한층 더 아름답게 꾸며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호엔슈반가우성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노이슈반슈타인성과 마주보고 있으며

 20분 정도의 언덕길을 올라가야 한다.

 이 성에도 로엔그린의 그림과 백조의 조각이 있다.

백조의 기사 홀에는 로엔그린의 스토리가 표현되어 있다.

성 안에는 동양의 미술품과 예술작품 등이 보관되어 있으며,

 호엔슈타우펜의 방이라고 하는 3층에는

왕이 바그너와 함께 연주했던 하얀 나무로 된 피아노가 있다.

 

 호엔슈반가우성

 

노란색 외벽이 따뜻해 보이는 이 성은

 루트비히 2세의 아버지이자

바이에른의 선제후인 막시밀리안 2세가 지은 성으로

네오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4층 건물로 각각 모서리에 탑이 세워져 있는것이 특징이다.

2층에는 루드비히 2세의 어머니 마리여왕이 살았다.

  

 호엔슈반가우성

 

이 곳은 루트비히 2세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2세가 1832년 왕위 계승 왕자로서 폐허의 성을 상속 받아

상상속의 로만틱한 의도로 건축가이자 무대 미술가인 도메니코 콰글리오로 하여금

 중세 양식으로 재건축 하게 했다.

그래서 루트비히 2세는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이 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것이 그가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이 외딴 산골에 짓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막시밀리안 2세는

이 곳에 머무는 동안 바그너를 초청하여 연주를 하고 친분을 쌓았는데,

 루트비히 2세도 이 때부터 바그너와 어울리며 그의 작품을 흠모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중에 왕이 된 뒤에도 바그너를 수시로 불러 교감을 나누었다.

하지만 바그너가 국고를 심각하게 낭비하고 

심지어 루트비히 2세와 바그너가 동성연애 중이라는 말까지 나돌자,

루트비히 2세는 어쩔 수 없이 바그너를 추방하게 되었다.

 

 호엔슈반가우성

 

 바그너가 이 성에 체재한 때는

뮌헨에서 일어난 반 바그너의 소요가 커진 1865년 11월 11일에서 18일 사이로,

 그는 이 조용한 성에서 시끄러운 세상을 피해 지낼 수 있었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로

 운명적인 경험을 소재로 담은 로엔그린이

1861년 뮌헨의 궁정 오페라극장에서 상연된 것은

바그너와 바이에른 왕가와의 친분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호엔슈반가우성 전경

  

 눈 덮인  호엔슈반가우성

 

 

로맨틱 가도의 남쪽 끝자락 

바이에른 알프스 연봉의 슈반가우 마을은 

노이슈반슈타인성과 호엔슈반가우성이란 두개의 성이 있는

산골마을이다.

 

 

디즈니랜드의 동화 속의 성이 저멀리 보인다.

드디어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내 눈으로 보는 순간이다.

서유럽여행 중 오지 못해 항상 안타까워 하고

언젠가는 와야지 했었는데 그 바람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라

너무 감격스럽다.

 

아름다운 티롤의 노이슈반슈타인성 

 

  산마루턱,

구름에 휩싸인 울창한 숲속에

그림같이 솟구쳐 있는 하얀 성채를 보는 순간

내 눈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꿈과 같이 느껴졌다.

 

줌으로 찍은 노이슈반슈타인성 

 

저 유명한 디즈니랜드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 등장하는 성의 모델이다.

 

노이슈반슈타인성 

 

 바그너를 좋아한 루트비히 2세가

오페라 로엔그린 중 백조의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어 지은 성으로

중세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1869년 착공되어 1896년 완공되었는데,

 이 성이 완공되기 전 갑작스런 루트비히 2세의 죽음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었다.

지금까지도 많은 관광객들이 들러보는 성안의 16개의 방은

왕의 죽음 전에 완성된 것이다.

 동화같은 삶을 살기 원했던 루트비히 2세의 화려한 성을 보기 위해

매년 수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으로 몰려온다.

 

성으로 올라 가는 길에 있던 표시판

 

가이드 가라사대

"여기서는 조망만 하고 할슈타트로 가야 하는데

뮌헨에서 2시간 넘게 차 타고 와 20분 조망만하고 가기에는 너무 아쉬우니

  시간 엄수 하신다면 50분 줄테니 성에 올라 갔다 오세요" 였다.

모두들 "예, 감사합니다"

 

 

저 성까지 왕복 50분만에 구경하고 화장실 이용하고

내려와야 하는데

안내지에는 올라가는데만 25분이라고 적혀 있단다.

그래도 가이드는 왕복 30분~40분이고 성에서 10분~20분 걸리면 된다니

믿고 도전해 보기로 했다.

 

 

  관광용 마차, 구간운행 버스등이 성 중턱까지 간다고 하는데...

 

 

이 마차를 6명이 조를 마추어 타면 절감 되는데

혼자 타기에는 왕 부담이라 걍 걷기로 하고

 

 

앞에 가는 싱글 아가씨 뒤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올라가는데 25분 내려올 때 뛰면 10분 화장실 5분

성에서 보고 사진 찍는데 10분 도합 50분

머리 속으로 계산 끝

 

 

 헉헉 거리면서도

찍을 곳에서는 그래도 서서 찰칵

 

 

이 아가씨 따라 안 들어가고 나는 계속

성으로 고고

 

전망대에서 본 노이슈반슈타인 성

 

 

가쁜 숨 몰아 쉬면서 헥헥 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올라와

가이드가 일러 준 무료 화장실 이용하고

옆 가게에서 마그네틱 자석 하나 사고

 

 

26분만에 산중턱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도착

 

 

50분-26분=24분

24분- 내려 가는데 10분= 14분

성을 둘러 볼 시간 14분

나 때문에 출발 못하고 기다리게 하는건

혼자 다니는 내가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사항이라

항상 시간 엄수를 칼 같이 할려고 노력한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측면

 

노이슈반슈타인이란 새로운 백조의 성이라는 뜻인데

그 이유는 이 성을 지은 루드비히 2세가

유난히 백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독일뿐 아니라 전세계를 통틀어도

유사한 성이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면서 아름답기까지 한

노이슈반슈타인 성

 

  노이슈반슈타인 성  안내도

 

각 언어별 가이드 투어가 가능하며

성 내부 촬영은 금지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는

중세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을 열정적으로 숭배했는데,

이러한 관심사는 바이에른 알프스에 지은

 중세풍 성인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하나로 합쳐졌다.

 

 

루트비히 2세(1864~1886년 재위)는 18세에 왕이 된 지 2년 만에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주권을 잃고 이름뿐인 왕으로 전락한다.

 이후 교권 강화를 둘러싸고 관료들과 마찰을 빚는 등 

여러 정세로 인한 압박감에 본래 심약한 성품이 더해져

그는 고결한 왕들과 강인한 게르만족 신화 속의 신들이 사는

바그너 풍의 몽상의 세계에 틀어박히고 말았다.

이후 정치에서 점점 멀어져 갔고, 광적으로 건축에 몰두했다.

그는 산꼭대기의 호엔슈반가우 성에 틀어박혀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비롯한

 다른 여러 곳에 성을 짓게 되면서 국고를 낭비하고, 수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결국 1886년 루트비히 2세는 의료진으로부터 정신병자 판정을 받게 되었다.

그는 왕위에서 퇴위당했고,

퇴위당한 지 3일 만에 슈타른베르그 호수에 빠져 익사했다.

사인은 자살로 공식 발표되었으나, 실제로는 많은 의문점을 낳고 있다.

 

 

성문 입구

 

 

성의 입구만 붉은색인 이유는

 백조의 머리에 해당하기 때문이란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중

 백조 전설에 영감을 받아 지은성이라고 하는데

바그너를 무척이나 아꼈던 루드비히 2세는

미완성이지만 성 안에 공연장을 만들기도 했다고. 

 

 

성문 통과 중

 

성문을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풍경

 

중세의 중후한 멋을 풍기면서도 우아한 자태인

노이슈반슈타인성의 지붕 위에는

 여러개의 푸른 원추형 첨탑들이 비대칭적으로 서있으며, 

흰색과 베이지색의 대리석을 사용해 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연회색 화강암으로 만든 외벽이 차갑게 느껴진다.

 

계단 위로 올라 가 본다.

 

계단 완전히 위에서 뒤쪽으로 바라 본 건물 모습

 

이 모습은 원래 계획의 완성된 모양이 아니고

더 멋있게 지어져야 했는데 이정도에서 멈췄다고 한다.

 

 

풍경화가 크리스티안 양크의 작품에 나오는

장면을 기초로 한 이 고딕 성은,

연회색 석회암으로 지어졌으며 중세의 건축학적인 디테일을 살려냈다.

그리고 노이슈반슈타인의 방들은 웅장하기 그지없으며,

외관은 비록 중세지만  중앙난방으로

 건물 전체에서 따뜻한 물과 찬물이 나오게 하는 등 최신식 기술을 사용했고

수도, 수세식 화장실 등 근대 문명의 이기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내부에는 시인인 탄호이저,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과 그의 아버지, 성배의 왕인 파르지팔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모두 바그너의 음악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성 안에서 찍은 성 문

 

디카로는 다 안 잡히는 성 문.

이럴때 DSLR카메라 생각이 간절하다.

이 정도 크기면 DSLR카메라라도

 광각렌즈가 있어야 하려나 모르겠다.

 

성문과 돌산

 

루트비히의 몽상을 현실로 만들어준

크리스티안 얀크(1833~1888년)의 원래 직업은 무대 감독이었으며,

 노이슈반슈타인은 이러한 사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단순히 중세의 성을 충실히 재건한 것이 아니라,

 로마네스크, 비잔틴, 고딕 양식이 한데 어우러져 조화롭다.

모든 방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그리고 그 밖의 바그너 테마를 묘사한 조각과 프레스코를 볼 수 있으며,

성 전체로 보았을 때에는 중세의 성배 전설을 표현하고 있다.

 

 

이 성은

 내부가 완공되지 않은 채 바이에른 주의 소유가 되었다.

 알프스에 위치한 이 성의 대단한 아름다움과 성에 얽힌 로맨틱한 이야기로,

노이슈반슈타인은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 중 하나가 되었다.

 

마리엔브리케 다리

 

노이슈반슈타인 성 아래에 있는 마리엔브리케는

성보다 더 오래된 다리로

 다리 아래로 폭포가 떨어져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리엔 다리

 

지상에서 92m, 폭포로부터 45m 높이에 있는 이 다리의 이름은

 프로이센의 공주이자

왕의 어머니인 마리 여왕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원래 목조로 된 것을 1866년에 철제구조로 재건 되었다.

 

 

마리엔 다리에서

찍는 성의 모습이 제일 아름답다고 하는데

시간상 가지 못하고 반대로 성에서 다리를 찍었다.

 

 

성에서 바라다 본 알프스 산봉오리

 

 

 저 멀리 백조의 호수인 알프제 호수가 약간 보인다.

 

 

 성에 집착한 루트비히 2세는

 이 성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이 성의 모티브를 제공한 바그너 역시 이 성에 와보지 못했다고.

 

 

 다른 각도로 보자 다른 성인 것 같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의 모형

 

 

1864년에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황후인 시씨는

 조카가 되는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2세를 만났다.

시씨는 자신의 막내 여동생 조피를 소개했고 루드비히 2세는 조피와 약혼했다.

그러나 결혼을 앞두고 일방적으로 파혼을 선언하고 평생 독신으로 산

루드비히 2세는 동성연애자였기에 여자들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씨에 대하여는 평생 존경하고 사모하였다.

 

루트비히 2세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로 뮌헨의 님펜부르크 궁전에서 태어났다.

 호엔슈반가우 성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1864년 3월 10일, 부왕의 서거와 함께 19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다.

1886년 1월 막스 요세프 공작의 다섯째 딸인 조피 샤를로테와 약혼하였으나 파혼했다.

예술적인 감성이 뛰어났었으며,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화려한 성을 짓기를 좋아해 3개의 성을 지었는데

17년 동안 막대한 경비를 들여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1886년 완공하였고,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트리아농 궁전을 본떠 만든 린더호프 성과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하여 지은 헤렌킴제 성이 있다.

1886년 6월 8일 궁정 의료진에게 정신병자로 판정되어 폐위되어

뮌헨 근처의 베르크 성에 거처하던 중

 폐위 3일 뒤에 슈타른베르크 호수(당시의 호수명은 뷔름세)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밑에 이미지와 글 내용은 같이 여행 하던

권영희선생님이 주신 자료이다.

 참고로 성 내부는 촬영 금지라 사진으로도 잘 접하지 못하기에

이렇게 사진을 찍어 올려 보았다.

 

현관홀

 

대리석 포탈은 대관홀까지 이어진다.

그림 좌측: 레긴이 지구어트에게 그람 칼을 갈아 만들어 주고 있다. 

 

대관홀

 

화려한 비잔틴 양식으로 홀 내부를 장식했다.

인조수정과 단단한 라피스라줄리로 된 기둥의 긴 세로열은

루드비히 2세가 세상을 뜬 1886년완공 되었다.

 

대관홀의 도금된 반원형 공간

 

반원형의 푸른색의 반구형 하늘 아래에

 마리아와 요한에게 둘러싸여 관을 쓰는 예수, 성신들에게 에워싸여 있다.

아래 6인은 카시미르, 슈테판, 하인리히, 페르디난트, 에두아르드, 성 루드비히다.

 

9개의 대리석 계단을 오르면 금과 아이보리로 된 대관좌까지 이어지도록

설계는 했으나 완공되지는 않았다.

  

식당


 식당에는

1207년경 있었던 전설적인 악사 대회의 장면을

  바트부르크에 있는 것처럼 재현하고 있다.

바그너는 이 테마를

 탄호이저의 전설과 함께 그의 가장 뛰어난 오페라의 대본으로 선택했다.

 

 커튼이 있는 문 위에는 파르지팔이나 로엔그린을 쓴 시인 에센바흐의 모습이,

다른 방으로 통하는 문 위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가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의 그림으로 묘사되어 있다.

탁자 위에는 뮌헨의 예술가가 루트비히 2세에게 선물한

용과 싸우는 지그리트가 있다.

 

수 많은 목부조로 장식된 왕의 침실

 

전체적으로 주를 이루는 로만틱식과는 달리 침실은

전체가 신고딕양식으로 장식되었다.

14개의 목조각품은 14년 반에 걸쳐완공된 것이다.

 

침대위 오른쪽 그림 : 이졸데와 작별하는 트리스탄

 

특히 바그너의 오페라를 유독 좋아했던 루트비히 2세는

 바그너가 오페라를 공연할 수 있도록 성 내부에 공연장까지 만들려 했으며

(결국 미완성으로 끝났다),

 자신의 침실이나 공연장 등의 벽에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침실과 연결된 루드비히 2세의 기도실

 

탈의실

 

탁자위에 왕의 보석함이 놓여 있다.

벽화들은 중세 음유시인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와 한스 작스의 일생을 담은

 시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거실

 

거실 벽화는 로엔그린의 전설과 파르지팔이다. 

백조의 코너라고도 불리우는 코너장이 설치되어 있고,

벽부조와 금실로 수 놓아진 비단 덮개와 커튼의 무늬는 모두 백조이다.

백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모든 장식과 문고리까지 백조의 형상을 하고 있다.

 

로만틱 양식으로 꾸며진 왕의 서재

 

벽장식용 카페트 위에 그려진 그림들은

 탄호이저와 바트부르크의 악사대회를 소재로 하고 있다.

 

악사홀

 

4층 전체의 동쪽을 포함하고 있는 이 홀은

튀링엔주에 있는 바트부르크의 가수홀과 연회장을

율리우스 호프만이 한 장소에 연결시켜 놓은 것이다.

 벽화들은 파르지팔이다.

 

주방

 

완벽히 보존된 성의 주방은

 당시로서는 놀랄만큼 기능및 기술적인 설계와 장치가 뛰어난데

냉,온수가 항상 흐르고

전 자동으로 그릴구이 꼬치가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테라스에서 바라 본 슈반가우 마을

 

루드비히 2세는 왕위를 계승할 젊은 왕자로서

리하르트 바그너를 통해 로엔그린의 오페라 상영을 직접 경험하고,

백조의 기사처럼 자신을 느끼며,

그에 맞추어 분장을 하는 것을 즐겼다.

로엔그린의 비극은 그를 고독하게 했으며,

왕의 운명이기도 했다.

 

 

성은 백조를 형상화한다.

높이 솟은 탑은 백조가 날개를 접고 있을 때 위로 솟아나오는 깃털이고,

성의 정면으로 갈수록 낮아지다가 입구는 다시 높이 솟은 것도

백조가 웅크리고 있을 때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백조를 본따 손백의 성을 지었으나 정면 입구만큼은 외벽을 붉은 색으로 칠했는데,

백조의 머리에 붉은 색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왜 백조의 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지 납득이 간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라는 이름에서 Schwan이 백조라는 뜻의 독일어이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의 여러 계절 이미지들은

브로마이드를 찍은 것이다.

 

 
영웅이 되고 싶었던 왕
 루드비히 2세의 광기어린 집착으로 탄생하게된 백조의 성
 

  

 

 

 

 

 

 

올라갈 때는 지나쳐 간 레스토랑을 찍었다.

 

 

 

중간 부분 정도에 있던 자동차와 마차 주차장

 

마차 타는 곳이라는 표지판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뛰다가 하산하면서 찰칵

 

 

곳곳에 이런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박물관에서 전시한다는 선전 표시인지 잘 모르겠다.

 

 

 

바쁘게 하산하면서도

알프스 산봉오리를 한번 더 찰칵

 

 

 하산 완료하여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에 오니

몇 분의 여유가 있었다.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루트비히 2세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한다.

그는 불행하게도 너무나 아름답고 현명하며 숭고하고 군주다워,

 나는 그의 생명이 희미해져 사라질까 두렵다고.

 

 

너무도 아름다운 성이기에,

 루트비히 2세는 자신이 죽고 나면 성을 파괴하라는 말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바램은 실현되지 못했고,

 

 

훗날 독일을 지배하던 히틀러도

 이 성을 보고 나서 너무도 감탄한 나머지

똑같은 말을 남겼다고 하지만 그 또한 실현되지 못했다.

덕분에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오늘날까지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미국의 월트 디즈니는 화가 지망생이었으나,

고생 끝에 애니메이션으로 크게 성공했다.

그는 애국심이 투철했는데 공산주의자를 일제 검거할 때는

 영화계에서 1, 2위를 다툴 만큼(로널드 레이건과 1, 2위를 다툴 정도라는 뜻이다.)

적극적으로 협력해 암흑의 제왕이라 불렸다.

 그는 거대한 유원지를 만들어 그 안에 잠자는 숲속의 공주 성을 만들었다.

이 성의 모델이 된 것이 바로 노이슈반슈타인 성이었다.

 

 

이제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호수인 짤츠캄마굿을 향해 가고 있다.

 

 

버스 차창 밖으로 찍은 독일 농촌 풍경들이다.

 

 

 

 

 

독일 퓌센의 농촌 마을 풍경

 

 

 

 

 

 

 

 

 

 

 

 

 

 

 

 

독일 퓌센에서 오스트리아의 짤츠캄마굿 호수가의

아름다운 마을 장 크트 길겐으로 가고 있다.

 

 

 

 

 

 

정말 목가적인 풍경들이다.

 

 

작고 소박한 모습의 둥근 양파모양의 돔을 가진 교회들과 

 자주색 지붕들의 민가들이 어울려 한폭의 그림처럼 보인다.